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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역대 최강의 2인자들
10위 : 주유오나라 최고의 지략가이자 명장이며, 적벽대전에서 위나라를 대파한데 큰 공을 세운 주유.주유는 촉한의 제갈량의 두뇌와 지략을 넘기 위해 여러 술책을 쓰지만 번번히 한수 위의 제갈량에게 지거나 이용당하고 말았다.주유가 죽기전에 했던'하늘은 어이하여 이 주유를 낳고도, 제갈량을 낳았단 말인가. 야속하구나 하늘이여.'라는 말은 주유의 명언이면서, 삼국지 전체의 명언으로도 꼽힌다. 하지만 지지리도 못생겼다고 소문난 제갈량의 아내보다는, 중국 최고의 절세미녀 두명중 한명이었다는 소교를 아내로 맞았으니까 뭐.... 그건 더 낫지 않겠나... 싶다.외모로 봤을때 연정훈이 장동건보다 외모는 밀리지만, 장동건보단 연정훈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듯이..연정훈개객기.비는 더 개객기. 9위 : 펩시1900년대부터 콜라업계에서 코카콜라는 명실상부한 1인자였고, 펩시는 항상 2인자였다. 그러다가 두차례나 파산하기도 했다.몇차례나 펩시를 코카콜라에 매각하려 했으나 그 역시 다 실패했다.그렇게 몰락을 눈앞에 둔 펩시는 가차없는 가격경쟁력으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는데, 이는 굉장히 효과적이었다.코카콜라보다 두배나 큰 병을 같은 가격에 팔았는데, 당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감안했을 때 펩시 입장에선 결정적인 반격이었다. 이후 1939년, 월터 맥이 펩시를 넘겨받았고, 오늘날까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심심하면 서로 소송을 걸고 광고로 서로 까대고, 가격전쟁까지 하는 등.. 쉴새없이 둘은 치고받았다.오랫동안 펩시는 코카콜라에 밀려 만년 2인자라는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지만 마케팅 성공과 지속적인 노력으로 인해 현재는 코카콜라와 규모나 매출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고, 이제는 슬슬 코카콜라를 넘어서고 있는 추세.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영원한 2인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8위 : 서능욱바둑계에서 영원한 2인자로 꼽히는 서능욱 9단. 그는 국내 주요 기전에서 20번에 가까운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단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당대 최강이었던 조훈현에게 몇 차례나 무너졌고, 이후엔 그의 제자 이창호에게도 무너지며 좌절을 맛보았다.그는 빠른 시간안에 이루어지는 속기에 굉장히 능했는데, 이러한 습관이 장점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했다. 항상 제한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속기하는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승전에서도 분명히 잘 나가다가 성급한 속기로 인해 한순간에 판세가 뒤집여서 ㅈ망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정상등극 직전에서 좌절한 적이 너무 많다보니 패해 후에도 늘 태연한 서능욱 9단이었지만, 평생 2인자로 머문 것은 굉장히 큰 한이 되었나보다. 오죽했으면 '우승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혼이라도 팔고 싶다' 라는 말까지 했을까. 그렇게 오랫동안 2인자의 설움을 이어가던 서능욱 9단은 마침내 2012년, 제2기 대주배시니어최강자전 결승전에서 자신 12번이나 패배시켰던 조훈현 9단에게 175수만에 불계승을 거두며 입단 40년만에 첫 우승을 거두는데 성공한다.서능욱 9단은 인터뷰에서 "지금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기쁘다." 라고 밝혔다.40년만에 정상에 오른 기분을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하지만 서능욱 9단의 기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40년의 기다림 끝에 우승을 차지한 그 이듬해 1월 9일. 왕십리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3회 대주배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결승에서 서봉수 9단을 제치고 또다시 우승하며 대회 2연패를 차지한다.이제 그는 승자가 된 것이다. 7위 :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전세계에서 가장 강했던 남자. 무하마드 알리, 호이스 그레이시, 마크 커, 표도르 예멜리아넨코, 앤더슨 실바도 듣지 못했던'향후 10년간 꺾을 사람이 없다' 라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었다.그러나 표도르의 등장으로 처참하게 무너지고.. 그 후 1인자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굉장히 많은 발전을 이루지만 끝내 표도르를 넘지 못하고 무너진다. UFC에 건너와서도 실비아를 꺾으며 잠정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르면서 2인자의 설움을 떨치는듯 하다. 그러나 커투어의 복귀와 뜬금없는 레스너의 타이틀 도전으로 인해 다시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는 입장이 되는데..여기서 프랭크 미어가 나타나서 노게이라의 마지막 꿈의 날개를 제대로 꺾어버린다. 이 시기부터 더 이상 노게이라는 최정상권에서 활약하지 못하고 조금씩 저물어가게 된다. 6위 : 이회창두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두번 다 대통령이 될 뻔 했으나노무현 후보와는 2.3%, 김대중후보와는 불과 1.6% 차이로 좌절의 쓴맛을 보았다.특히 2002년 대선에서는 무려 46.6%의 지지를 받았는데, 이는 13~15대 대통령 당선자의 득표율보다도 높았다.두번이나 정상 근처까지 갔지만 끝내 오르지 못하고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더 이상 정치판에는 미련을 버리나 싶었던 이회창옹도역시 한번 맛보면 절대 놓을 수 없는 '권력'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17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지지만15%라는 처참한 결과를 얻고 또 다시 무너지고 만다. 5위 : 아사다 마오어릴적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피겨계의 1인자로 철저하게 엘리트코스를 밟아 올라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사다의 영광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바다건너 반도에서 나타난 김연아라는 천재소녀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영광을 빼앗겨 버렸다. 김 연아로 인해 뭔가 꼬이기 시작한 아사다는 2라는 숫자와도 밀접한 인연을 맺어가게 되는데, 벤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2월 22일에 열린 쇼트 프로그램 연기 순번 추첨에서 22번을 뽑았으며, 2일 후 치러진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김연아에게 밀려 2위를 기록. 그후 26일에 벌어진 프리 스케이팅 추첨에서 또 22번을 뽑았다. 그리고 김연아의 쇼트 프로그램 스코어 78.50점은 기존의 아사다의 베스트 점수였던 76.28점보다 2.22점 차이를 기록하며 2라는 숫자와 뗄 수 없는 악연을 이어간다. 그러나 현재는 2인자 위치도 위태위태하고, 김연아와 경쟁자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애매해질 만큼.. 좀 슬퍼지고 있다. 4위 : 아시아나 항공대한민국 항공사 TOP2로 꼽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아 시아나 항공은 한국서비스품질지수(KS-SQI) 항공부문 7년 연속 1위. 2007년에는 미국 비즈니스트래블러 선정 최고 기내 승무원상과 최고 기내 서비스상, 미국 글로벌트래블러 선정 3년 연속 최고 기내서비스 및 승무원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에 국가고객만족도(NCSI) 국내선 항공서비스부분 10년 연속 1위, 영국 항공산업 리서치기관인 스카이트랙스로부터는 최고 등급인 5-Star Airline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대한 항공과 비교했을 때, 아시아나 항공은 죽어도 2인자 느낌을 받는다.보통 대한항공보다 아시아나 항공의 티켓값이 약간 더 싼데, 물론 일부 취항지나 여정에 대해 대한 항공에 비해 불편한 곳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요 노선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그 러나, 노선 수에서 많은 차이가 있으며, 비행기 수도 그렇고, 취항지도 대한항공이 훨씬 더 많다. 재정적인 부분에서도 대한 항공이 훨씬 앞선다. 대한 항공은 만약에 부도가 나도 비행기를 팔아서 해결을 할 수 있지만, 아시아나 항공은 상당수의 비행기가 대여비행기다. 뿐 만 아니라, 노선 예약율 자체에서도 대한항공과 큰 차이가 있으며, 대한 항공 자체의 1위 브랜드. 그리고 아시아나 항공에 비해 몇십년 빨리 탄생한 기업인 만큼 기존 마일리지 고객과 시장점유율 등등... 대한 항공이 일찍부터 우월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아시아나 항공이 대한 항공을 넘어서는 것은 너무 어려워보인다. 3위 : 안토니오 살리에르모차르트라는 역대 최고의 음악천재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끝내 따라잡지 못하고 좌절한 비운의 인물.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의 천재성을 따라잡지 못하자 결국 모차르트를 넘어서려는 노력 대신, 그의 옆에서 조력자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 형돈이 무한도전에서 언급하여 일반 대중들에게도 유명해진 살리에르 증후군은, 흔히 원래 1등이었거나 최고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자로 인해 2등, 또는 그 아래로 밀려나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으나 끝내 극복하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자괴감과 좌절을 빗대어 많이 표현되고는 한다. 2위 : 홍진호- 2남중 둘째로 태어남- 2002년 2월 22일 KT배 스타리그 왕중왕전 우승 (그러나 공식우승으로 인정받지 못함)- 2005년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우승상금 2,200만원 획득- 역대 온게임넷 스타리그 다승 공동 2위- 역대 KeSPA 랭킹 최장기간 2위- 프로게이머 역대 2번째 억대연봉자- 역대 팀플 저그 다승 2위- 역대 2번째로 스타리그 통산 100승 달성 (첫번째는 임요환)- 역대 2번째로 스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름 (첫번째는 임요환)- 역대 2번째로 억대연봉 장기계약 체결 (첫번째는 임요환)- 역대 올스타전 최다득표 2위- 공식, 비공식대회 합쳐서 22번 준우승- 2년만에 승리를 거둔 김택용전에서 오후 2시 22분부터 폭풍처럼 몰아쳐서 승리함.- 공군소속 당시 휴가 복귀일과 열차 예매번호 (22일 2호차 22번 좌석)- 스타크레프트 은퇴선언 후 네이버 인기검색어 2위에 오름 (1위는 개기월식)- 마지막 은퇴경기에서 2시 22분에 2번째 선수로 출전- 당시 오후 2시 22분경, TNS 미디어코리아가 조사한 전국 13-25세 남성 기준 최고시청률 2.2%를 기록- LOL 제닉스 스톰 팀 2월 2일 창단- 2월 22일에 제닉스 스톰 팀 창단 발표- 홍진호의 LOL 감독 데뷔전에서 2차예선 2경기 연속 22킬로 2대0 완승- 이후 정규리그 조 추첨 B조(2번째 조) 2번 시드- 홍진호와 '2'의 인연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음. 1위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한때는 호날두와 호나우두를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굳이 따지면 둘다 맞는 말이다. 둘다 철자가 똑같으니까.역대 최고의 축구선수중 한명으로 꼽히는 호나우두의 아류 정도로 평가받았던 호날두지만이제는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선수중 한명이 되었다.하지만 세게 최고의 선수중 한명은 되었으나 세계 최고는 되지 못했는데...자신보다 2년 늦게 세상에 태어난 리오넬 메시의 존재 때문이었다. 호날두가 타고난 재능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노력으로 이루어진 산물이라면메시는 타고난 재능 이 자체가 너무너무너무너무ㅅㅂ 너무너무너무 쩔었다.물론 호날두가 메시랑 대등했던 적도 있었고, 메시보다 나을수도 있다는 기대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량적인 면에서 메시는 점점 미.친놈이 되어가고 있고 호날두는 메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물론 호날두도 세계최고의 기량을 자랑했지만.. 메시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2008년, 호날두의 발롱도르 수상 이후, 메시는 2009년부터 12년까지 4년연속 발롱도르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운다.호날두가 신이내린 재능이었다면 메시는 그냥 신이었다. 국내에서도 메시팬vs호날두팬의 감정싸움이 꽤나 심했는데, 이제는 기량적인 부분에서는 비교를 할 수 없으니까호날두vs메시 다시 태어나면 누구로 태어날래와 같은 의미없는 드립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인간 호날두는 누구보다도 대단하고 성공하였으며 위대함 그 자체이지만,축구계에서는 메시라는 거대한 산에 가린 아련한 2인자가 되어 버렸다.-출처:개드립 역대 최강의 2인자들 ( http://www.dogdrip.net/34425472 )
검선작성일
2013-07-02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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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근성 甲
프로바둑 데뷔 40년만에 우승 서능욱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한 유명한 바둑칼럼니스트는 그의 승리를 ‘군자의 복수’에 비유했다.‘반상의 손오공’ 서능욱(54). 한때 천재 소리를 들었던 그가 40년 만에 처음 우승했다. 14살에 입단해 승승장구하며 13번이나 결승에 오르고도 단 한 개의 우승컵도 갖지 못한 사나이. 서능욱의 우승 소식은 그래서 바둑계의 신선한 충격이자 화제였다. 그에게 12번 연속 결승전 패배를 안긴 상대는 조훈현, 비틀거리는 그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은 조훈현의 제자 이창호. 그런 비운의 서능욱이 천하의 ‘조 국수’(조훈현)를 13번째 결승 승부에서 ‘마침내’ 이기고 생애 첫 타이틀을 딴 것이다. 수십만의 젊은이들이대입 실패 소식을 듣고, 수백만의 중년들이 흐르는 세월 앞에 작아지는 이맘때, ‘늦깎이’ 서능욱의 ‘13전14기’는 이들에게도 무언의 격려가 되지 않을까? 서 9단에게 인터뷰를 청한 이유는 그랬다.한 잊혀진 승부사의 인생 후반전이 멋지게 만개한다면, 말 그대로 군자의 복수는 아무리 늦어도 늦은 것이 아니다.생활리듬 빨라져 바둑계 풍토 변해이번에 우승한 ‘대주배’도 그런 흐름13번 오른 결승서 좌절 안긴 ‘덜컥수’참선·요가로 고치려했지만 결국 못해서능욱 9단이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대회는 지난해 12월27일 끝난 제2회 대주배(우승상금 1000만원). 45살 이상의 시니어들만 출전하는 기전이라 다소 격이 떨어진다는 평이 있긴 하지만, 서봉수(준결승), 조훈현(결승)을 연파하고 안은 우승컵이니 내용상으로 부족함이 없는 승리였다. 그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마음껏 기쁨을 발산했다.-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승부사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우승 소감은 실례지만 좀 ‘오버’ 같았습니다.“저는 솔직히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평생 결승 문턱에서 발목을 잡곤 하던 서 명인을 넘고 올라가 조 국수를 격파했습니다. 원한 맺힌 상대를 다 이겼잖아요.”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다? 서능욱 9단에게 몇몇 고수들의 품평을 부탁했더니, 이창호 9단은 승부사로서의 재기보다는 ‘이창호류의 완성’을, 이세돌 9 대해서는 ‘더 큰 바둑을 위한 자기 수양’을 이야기했다. 신진 기예들을 두고서는 “실력차가 워낙 바늘 끝이니 이기려는 마음이 더 큰 쪽이 이길 것”이라고 ‘훈수’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그랬다. 그는 한이 맺혔다고 했다. 나이 50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승에 대한 미련을 접어야 했을 만큼 숱한 패배를 안긴 장본인들이 아닌가.-여한이 없다는 말은 조 국수를 이겨서인가요, 첫 우승을 해서인가요?“물론 둘 다지만, 만약 상대가 조 국수가 아니었다면 같은 우승이라도 의미가 달랐을 겁니다. 조훈현을 이길 수만 있다면 영혼을 팔아도 좋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으니까요.”서능욱의 장인은 남자가 뭘 하든 다섯 손가락 안에 들면 된다며 중졸 학력의 프로 바둑기사를 흔쾌히 사위로 맞이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현재 서능욱의 통산 랭킹은 5위. 장인의 통찰력이 대단했다고 할까. 그의 이름 위에는 일세를 풍미한 4명의 일인자들(조훈현, 이창호, 서봉수, 유창혁)만이 존재한다. 통산 우승 횟수는 조훈현 158회, 이창호 140회, 서봉수 30회, 유창혁 24회. 그런데 바로 밑 랭킹 5위 서능욱의 타이틀은 0. 정말 이러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 ‘영원한 2인자’에게 돌아온 건 무관의 치욕뿐. 서능욱이 마지막 결승전(1992년)에서 떠오르는 태양 이창호에게 일패도지한 뒤 무려 19년이 흐르고 나서야 1승을 기록했으니, 누군들 영혼을 팔고 싶지 않았을까….-그날 대국의 승부처는?“마지막 국면까지 아주 미세했는데, 조 국수도 실수할 때가 있더군요. 선수로 들여다볼 자리를 그냥 지나치길래 바로 역습을 가했지요.”-운명론으로 말하면 13번째 실수는 조 국수 차례였나 보군요.“그동안 실수는 내 전문이었는데, 별로 어렵지 않은 대목에서 조 국수가 실족을 했으니, 운이라는 게 있긴 있나 봅니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 말이죠. 허, 참.”나야 바둑을 잘 모르지만...진짜 근성하나는 갑인듯~~멋지십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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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조훈현 체스마스터 제압'
지난 5일 KBS 2TV가 방송한 '스펀지'의 일부 내용으로 인해 바둑, 체스 간 온라인 논쟁이 한창이다.
이날 방송에서 스펀지는 프로기사 조훈현 9단이 지난 1979년 독일에서 체스의 마스터와 체스 대국을 가져 이긴 적이 있다는 내용을 다뤘고, 사건의 제보자는 최고점인 별 5개를 받아 지식 개발금 1백만원을 받았다.
문제는 이 방송이 나가자 국내 체스 동호인들이 발끈하고 나선 것. 동호인들은 스펀지 온라인 게시판에 강력한 항의성 글을 올리며 제작진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고, 일부에서는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각 체스 동호회는 물론 바둑 관련 홈페이지에도 이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불붙고 있어 자칫 바둑과 체스간의 온라인을 통한 감정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체스인들의 주장은 이렇다. 일단 조훈현 9단의 말 자체에 신빙성이 없다는 것. 체스의 마스터는 160개국의 수십억 체스 인구 중 고작 500여명 만이 인정받고 있으며 웬만한 체스 동호인이라면 다들 알 만한 인물들이라는 점을 들어 조9단이 이겼다는 이름조차 불확실한 '체스 마스터'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풀지 않고 있다.
또한 체스의 기본 룰조차 제대로 모르는 조9단이 바둑이 아닌 체스로 마스터를 꺾는다는 것은 무협소설과 같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일부에서는 방송 내용에 대해 체스가 바둑보다 못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체스의 폄하에 대한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혹자는 그 마스터란 인물이 체스를 모르는 조9단에게 체스를 가르쳐주기 위해 일부러 패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바둑 팬들 역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 바둑과 체스에 대한 비교 자체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 이미 세계 1인자가 슈퍼 컴퓨터에 패한 적이 있는 체스와 바둑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
나아가 조훈현 9단이 마치 사실을 조작한 듯이 이야기하고,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하는 등 조9단 개인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일부 체스인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결국 일이 불거지자 조훈현 9단은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이번 스펀지 방송 건에 대한 해명의 글을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이 글에서 조9단이 밝힌 26년 전의 상황은 이러했다.
"79년 유럽바둑선수권전이 독일에서 개최되었고 나는 한국 프로기사 자격으로 초청 방문했다. 지도 대국을 끝내고 보니 옆에서 체스를 두고 있기에 구경을 했다. 계속 보고 있자니 대국자 중 한 사람이 내게 한판 둘 것을 권했고 나는 이에 응했다. 첫 판은 졸(폰) 하나 차이로 졌고, 다시 새로운 대국이 시작됐다. 중반 들어 상대의 제일 센 말이 내 졸을 잡으려다 오히려 잡혔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졌다며 패배를 시인했다. 종국 후 상대에게 어느 정도 실력이냐고 물었더니 '바둑은 약하나 체스는 마스터'라고 대답했다. 여기까지가 당시의 전말이다."
조9단은 글 말미에 이 일은 분명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나, 워낙 세월이 흘러 상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며 또한 상대방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기에 정확한 의사소통이 힘들었다는 점을 밝혔다.
그는 이 문제로 체스를 폄하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생각은 전혀 없으며, 그런 의도 또한 없다는 말로 자신의 글을 마쳤다.
전문가들은 게임 논리가 완전히 다른 바둑과 체스의 우열을 논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데에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조훈현 9단은 그저 자신이 과거에 겪은 에피소드를 말했을 뿐이며, 이를 소재로 채택한 방송국에서 극적인 재미를 불어넣기 위해 다소 과장되게 재구성한 면이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이번 일을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본다면 바둑과 체스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로 활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
바둑과 체스는 동서양을 대표하는 최고의 두뇌 스포츠들이다. 세계화와 스포츠화라는 현실적인 고민도 함께 하고 있다.
사족 하나. 스펀지 제작진은 이번 에피소드를 다루며 좀 더 신중한 자료의 수집과 확인을 거쳐야 했다. 조9단이 분명 '마스터'라 칭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는 '체스의 최고수'로 단정지어 발표한 것부터가 오버였다.
체스인들이 주장하듯 체스 마스터는 전 세계 500여 명이 있을 수 있지만, 최고수는 단 한 명뿐인 챔피언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조훈현 9단이 후지사와 9단과 내기바둑을 두어 스승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는 내용 또한 오류다. 후지사와 9단은 조9단에게 있어 '제2의 스승'과 같은 인물이며, 조9단이 세고에 겐사쿠 9단의 문하생으로 있을 당시 내기바둑을 둔 상대는 아베 요시테루란 6단의 프로기사였다.
그리고 분명히 스펀지가 조훈현 씨를 인터뷰 할 때
분명 당시' 체스 챔피언'을 이겼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럼 채택 꼭 해주세요 ~ ^^
사실일까요? ,,,, 체스마스터라면 9단정도인대 ,,,, 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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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우낀 바둑 해프닝 (여자 MC들의 망발?)
- 여자 mc들의 망발? 시리즈 -* 바둑이 생방송으로 많이 나가다 보면 바둑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mc가 실례의 말을 할 때가 있다.특히 여자들 쪽에서 그런 실수를 할 때가 많다. 89년 조훈현이 응창기배를 우승하고 금의환향 했을 때의 일이다.kbs에서 특집 생방송을 했는데 많은 기사들도 덩달아 출연했다. 물론 주인공은 조훈현이고 나머지는 들러리 신세였다. 그 중에 6,70년대를 주름잡은 김인 9단도 참석해 있었다.천하의 김인 9단이 조훈현 9단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이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세월의 무상함 마저 느낄 지경이다. mc들은 내내 조훈현 9단과 대화를 나누다가 김인 9단에게도 말을 걸어 주었다. 김인 9단은 한시간 내내 침묵해야 했다가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마지막에 여자 mc는 김인 9단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여자 mc " 근데, 김인 9단께서는 지금은 뭐하고 지내세요? " 으갸갸갸!! 여자 mc는 마치 김인 9단이 은퇴라도 한 줄 안 모양이었다. 김인 9단을 완전히 잊혀진 인물로 취급하고 있었다. -_-;;그렇지 않아도 잊혀지고 있는 중이고 들러리까지 서는 게 기분 좋을 리없던 김인 9단의 표정 더욱 굳어졌다. 김인 9단은 어이가 없었던지한동안 입을 열지 않다가 마지 못해 힘없이 대답했다. 김인 9단 " 전... 아직도 바둑 두고 있습니다. -_-;;;; " 김인 9단이 그날처럼 불쌍해 보인 적은 없었다. * 대머리로 유명한 김수영 7단이 모 라디오 프로에 출연했을 때의일이다. 해설자 출신답게 김수영 7단의 입담은 물흐르듯 했고, 프로그램도 화기애애 했다.그런데 갑자기 여자 mc가 불쑥 이런 질문을 김수영 7단에게 던진다.여자 mc " 근데, 바둑을 두는 것도 직업이 될 수 있나요? "김수영 7단 " -_-;;;; " 우랄랄라... 오직 바둑으로 30년간 밥을 먹어 온 사람에게 바둑 두는 게 직업이 될 수 있냐고 묻다니... 그게 직업이 아니면 그럼 뭐가 직업이란말인가. 이창호, 조훈현은 그럼 취미로 바둑을 둔단 말인가?그날 여자 mc에게 당한 수모를? 김수영 7단은 훗날 케이블에서하는 자신의 5분짜리 사활 프로그램에서 갚아 준다. 김수영 7단은 프로그램 서두에서 수모를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그런 질문을 받아 황당했다는 말을 웃으면서 꺼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뼈있는 한 마디를 던진다. " 방송국에서는 여자 mc를 얼굴만 보고 뽑는 것 같더군요. " * kbs, nhk, cctv가 공동 주최하는 아시아 속기 바둑 대회 때였다. 일본과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4회대회가 열렸다.한국의 서능욱 9단과 중국의 마효춘 9단이 1회전에서 붙게 되었다. 마효춘은 중국 랭킹 1위답게 서능욱을 압도했다. 그리고 거의 승리를 목전에 두었는데 그만 덜컥수를 두어 서능욱 9단이 이기고 말았다. 바둑이 끝나자마자 여자 mc는 서능욱과 인터뷰를 했고, 잠시 후다 이긴 바둑을 져서 망.연.자.실.해.있는 마효춘 9단과도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초장부터 초치는 질문을 던진다. 여자 mc " 오늘 졌는데, 서능욱 9단에게 배울 점은 뭐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으갸갸, 도대체 누굴 보고 뭘 배우라는 건가? 9단이면 입신(入神) 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들이 가지는 9단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데...그들에겐 그런 질문 따위는 어울리지도 않고, 큰 실례가 될 뿐이란 걸 그 아줌마는? 죽었다 깨도 모를 것 같았다. -_-;; 통역을 통해 그 질문을 받은 마효춘 9단은 의외로 차분하게 질문에대답했다. 잠시 후, 통역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전해 주었다.통역 " 별로... 배울 점은 없다는 데요. -_-;;;; "* 1988년 제1회 후지쯔배 세계 바둑 대회가 열렸을 때 한국의 13세 소년 이창호가 한국에게 배당된 4명의 엔트리에 끼어서 일본에가게 되었다. 예선 하루 전날 선수들은 이름이 들어 있는 구슬을 하나씩 뽑아서대적할 상대 선수를 뽑게 되었다. 이창호가 눈감고 뽑은 선수는운 좋게 일본의 2류급인 왕명완 8단... 대진이 모두 가려지자 사회자는 기사들을 한 명씩 호명해 소감을 말하게 했다. 여자 mc가 이창호와 붙게 될 왕명완 8단을 호명할 때였다. 그 여자 mc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여자 mc " 왕명완 8단, 좀 살살 다뤄 주세요. ^^; " 으아악, 이건 완전 모독이었다. 살살 다루라니... 누가? 왕명완이?이창호를 다뤄? 어린애라서? 2단이라서? 키가 겨우 150을 넘어서? 한국측에선 누구 하나 분개하지 않는 이 없었다. 상대가 아무리 어린아이일 지라도 명색이 프로 기사 아닌가? 프로 기사에 대한 예우상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말 가슴 아팠던 건 그 여자 mc의 말대로 왕명완 8단은 이창호 2단을 공 가지고 놀듯 다뤄서 이겨 버린 사실이었다. 모두들 은근히 이창호가 왕명완을 눌러서 매운 맛을 보여주길기대했는데... 기대가 큰 만큼 더욱 큰 쓰라림이 밀려 올 뿐이었다. 하지만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듯 2년 후, 15세의 이창호와왕명완은 다시 대결을 갖게 된다. 그리고 왕명완 8단은 이창호에게 복날 개 맞듯 처참한 불계패를 당하게 된다. 이른바 복수혈전이었다. 그 후, 이창호는 일본 기사들을 절대 살살 다루지 않았다. 혹독하게 다뤘다.
[서프라이즈]
기르아작성일
2007-05-1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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