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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공일기장] [이벤트]바텐더 썰(부제:병돌리는 바텐더)
편의상 반말을 쓰겠습니다. 긴글 주의 안녕 형,누나,동생들~ 지금은 아니지만 20대에 바텐더로 일했던 사람이야. 나 같은 경우, 플레어 바(쉽게 말해서 병 돌리고, 불 쏘고, 칵테일 쇼 하는 곳)에서 일했지 시작한 계기는, 군대 면회장소에서 바텐더 형을 만나고나서지(세계 대회 우승자) 그 형이 막 병을 돌렸는데 정말 엄청 신기했어 아무튼, 전역하고 바텐더(특히 병 돌리는 바텐더)를 하고 싶어서 네x버, 다x 카페 등을 다 돌아다니면서 수소문해서 한 바에 갔어. 정말 무작정 갔지 면접보고, 저녁 6시 오픈 새벽4시 마감으로 시작했고 월급은 월 60만원이었나? 아니 ㅋㅋ 지금 생각해보니깐 더 열받네 어떻게 밤 일을 월 60만원을 받고 일했는지 에휴.. 3개월 수습 후 90만원… 하… 4대 보험도 안된 상태 그때 준코 밤에 일하면 130~140만원 받음. 아무튼, 그 당시에 바텐더는 콧대가 엄청 높았어..(사실 월급은 쥐꼬리인데) 플레어(병돌리는 것)를 갈켜준다고 해서 냉큼 들어갔지 근데 똥군기는 어딜가나 있나 봐… 몇 가지를 이야기 해주면 (1) 바는 칵테일 레시피 모두 외우고 허락 받을 때 가지 바 안으로 못 들어감- 나중에 레시피 갈켜주고 손님 없어서 외우고 있으면 레시피만 외운다고 뭐라고 하고(청소 다 하고 나서)(2) 프로토콜 같은 거 없음… 그냥 존나 열심히 하래 니가 주인인 것 처럼 (3) 교육??? 처음에 그딴 거 없었음 웃긴 건 1달~2달 뒤에 어떤 형이 와서 주류이론, 칵테일 갈켜 줌 (4) 마감이 새벽 4시라도 손님 한명이 양주까면 그딴거 없음 새벽 6~7시 오버타임 후에 집에 감. 초과근무 비용 ㄴㄴ 심지어 나한테 칵테일 레시피 북도 못 보게 하고, 파티 열어서 파티하다가 칵테일 못 타냐고 함.. 갈켜줘야지 타던지 말던지.. 그때 느꼈지.. 아 이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도 없고 갈켜주고 싶은 마음도 없네 하고 때려침. 그리고 나서, 서울로 가서 바텐더학원 다니면서 마술, 병 돌리는거, 주류이론 배우고 그 당시 유명한 체인점 ‘더 플x어’라는 곳을 감(나중에 단골 손님에게 물어봤는데 병 2개를 빠르게 돌리면 3개를 돌리던 4개를 돌리던 일반인 눈에 다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서 현타 씨게 왔던적이 있었음) 여기는 그나마 다른데보다 체계적인데 너무 바쁜 곳으로 발령받아서 오티도 제대로 못 받고 갑자기 안주를 만들래 아니 갈켜주고 만들라고 해야지.. 어떻게 사람이 처음부터 짠 하고 안주를 만듬?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막 만들어서 손님에게 냈는데.. 솔직히 미안하더라 그 후로 이것도 아니다 싶어서 때려치고, 마지막으로 나 학원에서 갈켜 준 형 가게로 감 여기는 잘 갈켜주고, 좀 갈구고, 또 갈켜 줌.. 칵테일 쇼 때 여장하고 춤췄지만.. 재미있었지(하.. 현타오네) 가끔 불 쏘는거 뭘로 하는지 궁금해서 갈켜주는데 예전에는 바카디 151(75.5도 짜리 술)로 쐇고, 나중가니깐 싸구려로 쏨.. 이걸 입에 머금고 있으면 아픈데 10초 정도 머금고 있으면 입 안을 손톱으로 긁어보면 점막이 하얗게 긁혀 나옴.. 암튼, 이렇게 해서 바텐더를 시작하게 됐지.. 근데 여기는 손님이랑 친하게 지내면서 술 먹으면서 영업하는 곳이라 단골이 와서 양주 한 병 까면.. 그날은 죽는 날이지 그때도 월급 첫달은 90만 그 다음달 100만 셋째달에 110만… 그 다음부터 연봉 협상.. 말이 연봉협상이지 그냥 내가 즐기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정도의 월급이야 거기다가 출근해서 만원의 행복 찍어야 돼.. 시켜 먹냐고?? 아냐 만들어 먹어야 돼.. 2만원 이하로 4~5인분을 만들어야 되고, 메인도 따로 있어야 됨… ㅋㅋㅋㅋ 아직도 생가나는데 내가 그때 요리를 정말 못했거든, 근데 김치찜을 했는데 사수형이 잘 먹어줬지 ㅋㅋㅋ 지금은 아마 최저임금 혹은 좀 더 받을거야. 4대 보험도 되긴 할건데 알바로 해보는 건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건 확실해, 나 같은 경우 정말 내향적인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밝아지고 외향적이게 됐지 근데, 직업으로 하는 건 절대적으로 추천하지 않아.(코엑스에 있는 세븐럭 카지노 바텐더 아닌 이상.. 비추) 직업적 인식도 그렇게 좋지도 않고 미래에 술집 차리는 것 외에 뭐가 없어.. 시간이 흘러서… 잘 일하는 와중에 내가 이 일을 때려친 건 비전이 없고 위험해서야 미래는 안보이고, 매일 술에 쩔어 있으며, 칵테일 쇼 하다가 다치는 거(화상, 손가락 잘리고 등등 뉴스에 몇 번 나옴) 월급은 적고.. 고민을 하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사장형이 술 먹고, 병원에 입원을 함.. 간 수치가 1000을 넘는데 의사가 당신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수치가 이렇냐고 하더라 한 1주 입원 한걸로 알고 있어. 이게 1차 사건 2차로는 내 친구가 같이 일했는데 이놈도 술 엄청 마시면서 영업을 함… 어느 날 이놈이 주방에서 안나오길래 코피 쏟으면서 담배피고 있음… 몇 일 뒤에 코피 쏟으면서 주방에서 쓰러져 있음.. 아.. 이러다가 내가 먼저 뒤지겠구나 해서 그만두게 됨… 그래서 지금은 다른일을 하고 있지 약 2004년도부터 2010년도까지가 이런 칵테일 바에 전성기였어.. 지금 말하면 거의 준 연예인 급??? 그 이후로는 Ho bar, 펍, 등 싸게 주류를 양주를 공급하게 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지 지금 찾아보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칵테일쇼도 거의 안하는 추세야 솔직히 칵테일 먹을바에 바틀 하나 싸게 시켜서 먹는게 이득이거든 학원 동기 및 형/누나 들은 모두 술집을 차리거나 다른 업종으로 직종을 변경했더라고 정말 소수 형들은 단골손님 장사하고 있고 근데, 이번 코로나 때문에 진짜 거의 폐업이 될 듯 해 마지막으로 내 기억에 남는 특이한(?) 손님과 순간을 써볼께 슈퐁크녀이 사람은 정말 생긴 건 세련됐는데 나중에 단골손님 되니깐 본색을 드러냄슈퐁크라는 삐삐밴드 노래를 술 취해서 신청하고 자기가 따라 불룸…(마이크 모양 팬 붙잡고) 스카치블루 아저씨원래 밖에서 사온 양주는 그 업장에 따라서 테이블차지(테이블 및 준비 비용)을 받거나 거부하는 업장이 있어우리는 안받는 업장이었는데, 장사가 안되니 그냥 받음.이 아저씨는 항상 스카치블루(국산 양주)를 밖에서 사옴.. 근데 나중가니깐 돈 주면서 편의점 가서 사오라고 시키기 까지 함..(거기에 플러스 우롱차까지) 가오남평상 시 양주를 잘 안까다가 바 옆에(특히 여자) 사람이 양주를 까면 자기도 양주를 깜.그 남자 왈 ‘아 안되겠다 차 집에 놔두고 와야겠다.’하고 와서 양주 깜. 사실 바에 앉고 편한 분위기면 단골손님들끼리 연결되기도 함. 10년째 연애중 커플이 커플은 정말 단골손님(거의 일주일에 3~4번은 옴)인데 가끔 술 취해서 진상을 부림..너무 단골손님이라 안주는 거의 프리패스 급.. 질투 다트 남썸녀를 데리고 왔는데 그 여자가 내 단골이 됨. 난 그 당시에 여친이 있어서 아무런 생각이 없고 손님 관리차원에 잘 놀아줌근데 이 썸남이 질투가 났는지 다트 내기를 함.. 한 6~8판을 했는데 내기에서 한 번도 진적이 없음 짬깸보남짱공인들은 잘 아는 오락기일 듯.. 그걸 가계 앞에 비치해놨는데 그 당시 개그맨이 와서 짬깸보만 하고 감..손님들 재미있으라고 코인이 아닌 동전을 넣어 놨고, 확률 주작해서 잘 되게 해놨는데 그색히가 잠옷입고 몇 번을 와서털어 감.. 나중에 그놈 싸이월드에 그만오라고 써놨더니 그걸 또 지움 반전남이건 내가 일하기 전에 들은건데 칵테일쇼를 하고 그걸 나눠주는데 좀 약 팔아서 단골 혹은 단골 될 것 같은 혹은 양주 깐 테이블을 잘 준단 말이야. 그때 당시 막내 바텐더가 분위기 모르고 구석 테이블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혼자 맥주 마시는 곳에 줌 그 아저씨가 ‘너 뭐 먹고 싶냐?’ 라고 해서 로얄 샬루트(그 당시 35만원)을 찍었는데 그거 먹으라고 쿨하게 결제 함.. 양주 포켓볼 내기 막판 뒤집기 남포켓볼로 양주 내기를 바텐더랑 손님이랑 함. 마지막에 검은 공이 하나 남았을 때 흰공이 들어가면 무조건 패배인데마지막 그 바텐더가 검은공이랑 흰공을 같이 넣는 신기를 보여 줌. 그게 나임.. ㅋㅋㅋㅋㅋ손님이랑 내기라서 져도 똥십은 표정을 할 수가 없어서 웃었는데선배색히가 나중에 뒤로 가서 뭐가 좋아서 쳐 웃냐고 함…(아니 그러면 손님 앞에서 죽을쌍 쓰리?) 아, 그리고 술 도매로 받으면 별로 비싸지도 않음. 칵테일용은 한 병에 5천원? 앱솔루트 보드카 레귤러는 그때 당시 거의 만원? 했던걸로 기억 함. 그 외로 박찬욱 감독, 배우 최민식, 표인봉, 나몰라 패밀리 등 등 연예인도 많이 왔다갔기도 했고 나한테 참 재미있었고, 좋은 직업이었지만 반년만 했으면 어땠을 까 하고 생각해 바에 갔을 때 팁을 주자면.. 만약에 칵테일을 모른다 그냥 바텐더를 불러서 칵테일 추천 해달라고 하자. (소주 기준으로)도수, 좋아하는 과일, 향, 같은 걸 말해주면 잘 추천 해준다. 그것도 못하겠다 그리고, 여친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럼 아래와 같은 칵테일을 추천 함. 준벅, 미도리 샤워(2탑 멜론 맛 미도리 샤워는 사이다 들어가니 탄산 싫으면 피할 것. 도수 매우 낮음) 피치크러쉬, 도화(2탑 복숭아 맛. 술 맛 거의 안나고 위에 2개와 같이 음료수 처럼 마실 수 있음) 코스모폴리탄(드라이 하면서, 크렌베리의 향과 오렌지 향이 어울림 섹x앤더시티에서 나와서 더 유명해짐) 술 못마시는 여친을 취하게 하고 싶다면 보드카 병을 시키거나 보드카를 섞어서 먹는 칵테일을 시키자(대표적인게 스크류드라이버 별명 레이디킬러) 마지막으로 플레어가 뭔지 동영상 하나 링크 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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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한국 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끼친 상징적인 영화들.JPG
<서편제, 1993년작, 임권택> 한국영화 최초로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영화.(참고로 서울 기준이다. 전국 추정치는 290만명 정도) 당시에는 멀티플렉스도 없이 단관 개봉하는 경우가 많았고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도 1~20%에 그쳤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작품성과 입소문만으로 흥행을 하면서 서양 문화만 추구하던 당시 대중문화계에 큰 울림을 준 작품. 이로 인해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 자체도 크게 늘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영화산업은 사실 거대한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헐리웃을 포함해 전세계 모든 영화산업은 국가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도 좋은 영화가 자생적으로 만들어 지지 않는다면 무의미해진다. 서편제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쉬리, 1999년작, 강제규>한국 영화 산업은 쉬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분기점이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헐리웃 영화 산업의 물량 공세에 맥을 못추던 한국영화는 쉬리를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로는 거금인 31억원의 제작비가 투입 된 이 영화는 전국관객 600만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 관객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시장 자체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쉽게 말해 한국영화에 투자해도 되겠다, 가능성 있다 라는 생각을 심어 준 영화. <살인의 추억, 2003년작, 봉준호> <올드보이, 2003년작, 박찬욱> 같은해에 개봉한 이 두 영화는 '웰메이드'라는 말을 전파시킨다. 작품성과 장르적 재미,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국내 관객들에게는 수준높은 국산영화라는 체험을, 해외에는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생소했던 이들에게 한국영화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세계 영화사는 시기별로 주목받는 국가의 영화 시장과 흐름이 있는데 193~40년대의 헐리우드 스튜디오 황금기,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1980년대 홍콩 액션 영화 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한국영화는 2000년대 중반 부터 이러한 주목을 받게 되는데, 바로 이 두 영화가 '한국영화'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으며, '어둡고 강렬하며 유머가 섞인 한국 장르 영화'라는 경향에도 영향을 주게된다. 지금도 해외 영화팬들에게 한국영화에 대해서 물으면 이 두 작품의 영향이 지대했음을 알 수 있다. <하녀, 1960년작, 김기영>1960년작임에도 늦게 소개 된 이유는 실제로 이 영화가 주목받게 된 것이 2008년이기 때문이다. 세계영화사에서 한국영화계는 언제나 주변부였다. 비평적으로나 산업적으로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한국영화를 주목하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프랑스에는 트뤼포, 고다르 같은 누벨바그 감독들이 있고, 일본에 구로사와, 오즈 같은 감독들이 있다. 한국영화는 짧지 않은 역사임에도 우리만의 '클래식'이 부재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하녀의 불완전한 복원판을 본 마틴 스콜세지의 도움으로 완벽하게 복원되어 2008년 깐느영화제 클래식 부문에 상영하게 된다.. 개봉한지 50년이 넘은 영화임에도 세련미가 넘치고 파격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해외는 물론 국내 영화계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한국 영화의 클래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국 감독들은 이 작품이 그동안 부재했던 한국영화의 아버지를 찾은 느낌이라고 얘기 할 정도로 정신적인 면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작품이 되고 있다. <기생충, 2019년작, 봉준호>현대의 세계 영화계는 오락성을 갖춘 '즐길거리'로서의 영화와 작품성을 갖춘 '예술'로서의 영화라는 양극화를 겪고 있다. 이는 영화가 대중매체로서 갖을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모습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때문에 박스오피스와 깐느 황금종려상의 간극은 수십년 간 멀어져 오고 있었다. 기생충은 깐느영화제의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 수상한 역사상 두번째 영화일 뿐만 아니라 박스오피스에서도 진기한 기록을 세우고 있다. 어떤 평론가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영화의 진정한 가치라며 추켜 세운다. 기생충이 지금 당장 이루어낸 업적만으로도 이미 한국영화계를 넘어 세계영화사의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있듯 이 영화의 수십년 후는 지금보다 더 거대해 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장타이거작성일
2020-02-20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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