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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건강] 지주막하 출혈 후기
정말 오랜만에 짱공유에 글을 쓰는 것 같네요 2006년에 가입을 했으니 18년이 지났고 저의 나이도 36살이 되었습니다. 24년 1월 17일 아침 7시 50분 경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다가 힘을 줬는데 갑자기 귀에서 삐이 소리가 나면서 소리가 잠깐 잘 안들리기 시작하더니 누가 망치로 뒤통수를 내려치는 것처럼 세상이 360도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침대 근처에 다와서 앞으로 쓰러졌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으니 몸이 잠시 5분정도 제어가 안되고 발작? 으로 기억은 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발작 보다는 어지러워서 몸이 앞 뒤로 크게 움직임을 보였던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난 뒤 뒤통수가 땡겼고 잠시 숨돌릴 틈이 생겨 일어나서 베란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침대에 잠시 누워 있었습니다. 다행히 정신은 잃지 않았네요. 출근을 해야되나 누워서 잠시 고민을 했는데 뭔가 느낌이 일어나서 나가면 죽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119에 신고를 해서 집 주소와 비밀번호를 알려드렸습니다. 119에 전화하고 잠시 뒤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둔내면에 119가 출동? 중이라 구급차가 없어서 청일면에서 출동하는 구급차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있는 곳이 횡성에 있는 둔내면이라서 거리상 12km정도 남았다고 조금 기다려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야는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고 누워서 손모으로 코로 숨만 쉬는 상태인지라 너무 무섭고 힘들었습니다. 구급차 도착까지 시간상 25분 정도 걸렸습니다. 119 구급차 사이렌 소리만 들리기를 기도하고 기다렸습니다. 119가 도착해서 집에 들어온뒤 몸상태 체크 뒤 횡성 대성병원으로 갔습니다. 가서 조금 대기 후 CT를 찍었는데 찍고 나서부터 구토증상이 나타났습니다. CT판독 후 뇌출혈 판정을 받고 바로 원주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다시 토하기 시작하였고 상황이 급박하여 바로 수술대로 갔습니다. 평소에 요도관을 꼽아 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마취도 안하고 바로 꼽아버리니 머리아픈것 보다 순간 더 아팠습니다. 그리고는 곧 잠이 들어 깨고 보니 중환자실 이었습니다. 제가 받은 시술은 코일색전술을 받았고, 처음 이틀까지는 참을만 하더니 3일차 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원래 머리가 아플수 밖에 없다고 하여 진통제를 맞으며 버텼습니다. 1-10 중 5-6정도 고통이 계속 됐던것 같습니다. 진통제 주사도 몸에 맞지 않아 토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처음 계획은 중환자실 7일 일반병동 7일 총 2주 계획이었는데 일반병동 자리가 나질 않아 중환자실에 9일을 머물었습니다. 중환자실에 태어나서 처음 있어보니 왜 사람들이 돈을 더 주고 1인실을 가시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끄럽고 불도 잘 끄지 않고 밝은 상태로 거의 잠을 자다깨다 반복했던것 같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움직이지 못하니 기저귀를 차고 욕창을 걱정하며, 가슴이 너무 답답할때는 아이스팩을 달라고 해서 2개는 겨드랑이에 껴고 하나는 명치에 올려놓고 답답함을 버텼습니다. 일반 병실로 넘어와서는 이제 걸을려고 했는데 처음에 제대로 못걸었습니다. 코어 근육이 짧은사이에 다 없어진건지 한발한발 아장아장 걸을 때마다 허리가 끊어질듯 아팠습니다. 화장실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대변을 볼려면 앉아야 되는데 앉을때 까지 허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어머님이 대구에서 올라오셔서 간병을 해주셨는데 2일차 부터 어머님이 몸 전체를 마사지 해주셨습니다. 이틀 정도 그렇게 마사지를 받고 나니 걷는게 훨씬 수월해졌고, 배에 힘을 빡주며 걸어보니 서서히 걷는게 늘었습니다. 3일차 부터는 잘 걷게 되었고, 틈날때 마다 병동을 계속 어머니와 걸었습니다. 마지막 퇴원하기 전에는 밑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같이 편의점에서 뭘 사먹을수 있을 정도로 걸음이 돌아왔습니다. 퇴원 후 혼자사는 집에 돌아오니 119에 실려가던 그때 그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채 남아 있었습니다. 1월 31일 퇴원을 하고 설날이 되었는데 갑자기 기립성 저혈압이 심하게 왔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날려고만 했던것 같은데 귀에서 삐이 소리가 나며 지주막하 출혈때와는 다른 어지러움과 뒷골이 살짝 땡기는 느낌이 났습니다. 너무 놀라 119에 신고해서 다시 세브란스로 응급실로 갔습니다. 뇌CT를 다시 찍고 결과는 이상 무 였습니다. 기립성 저혈압으로 판단을 내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약간 그런 느낌이 약하게 있었습니다. 집에와서 식사량도 늘리고 자주 걸어다니며, 종아리 운동도 계속하니 기립성 저혈압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3개월치 약을 받아올때는 혈관확장제가 빠졌습니다. 기립성 저혈압 때문인것 같습니다. 돈을 벌어야 해서 설날이 지나고 바로 일을 시작했고, 육체적으로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라 팀원들에게 부탁을 좀 하고 일을 했습니다. 지금 컨디션은 괜찮은 편이고 두통은 그렇게 크게는 없습니다. 가끔 뭔가 느낌은 있는 편인데 다른분 후기를 찾아보니 코일색전술 시술 후 3개월 정도는 다 그런 느낌이 있는것 같았습니다. 아스피린은 시술 후 혈전 방지를 위해 필수이기 때문에 매일 100mg먹고 있습니다. 지금은 약을 계속 먹어서 그런지 신경성인지 역류성식도염으로 예상되는게 나타났습니다. 전과 다르게 속쓰리거나 그런게 아니라 식사 후 명치 쪽이 두근두근 거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서 있으면 괜찮은데 의자에 앉아 있거나 누워있으면 두근거림이 계속 나타납니다. 이것도 이제는 적응이 되어 밥 먹고 바로 좀 걸어주면 훨씬 덜해지는 걸 느낌니다. 조금 더 심해 지면 병원에 가봐야겠네요 코일색전술 단점이 약을 2년 정도 오래 먹어야 된다고 하는데 병원마다, 그리고 그때 그때 환자 상황에 따라 약이 달라져서 얼마나 먹을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위장약, 항경련제약, 아스피린, 뇌기능개선제, 고지혈증약 이렇게 먹고 있습니다.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는데 결론은 “아프면 안된다.” 입니다. 짱공유에 계신 모든 분들도 아프지 마시고 미리미리 검사 받으셔서 다들 건강한 삶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이 최고 입니다. 까마득한 짱공유 후배의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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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컬트 클래식 영화 '더 룸' (2003) 12가지 팩트 + @
*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 및 선정적, 잔혹한 내용도 있으니 주의 부탁 드립니다.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1957년 상영 제목은 Grave Robbers from Outer Space, 1959년 상영 제목은 Plan 9 from Outer Space), '죽음의 밤 2' (Silent Night, Deadly Night Part 2, 1987) '버데믹: 쇼크 앤드 테러' (Birdemic: Shock and Terror, 2010) 등 초저예산으로 한계를 겪은 장면이 운 좋게 화제가 되든, 혹은 의도적으로 화제가 되든 컬트적 지지를 얻은 작품들은 여럿 있었습니다.(후술할 '더 룸'은 연출 겸 주연 '토미 웨소'가 작 중 장미, 미식축구공 상징성은 의도한 게 맞으며, 더 룸은 사실 블랙코미디 영화라 하기도) '더 룸' (The Room, 2003)은 '토미 웨소'가 직접 제작비를 조달한 독립영화 작품으로, 은행원 '자니'와 연인 '리사' 사이에 자니의 친구 '마크'가 삼각관계로 엮이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중심으로 다룬 멜로 드라마 영화(토미 웨소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풍자적 블랙코미디 영화)이며, 토미 웨소가 연출, 각본, 제작, 주연을 담당했습니다. 사람들 주목도 받기 어렵고, 잊혀지기 십상인 저예산 독립 영화들 중 하나였던 이 영화는(제작비도 2003년 로맨틱 코미디 영화 기준 5400만 달러인 벤 에플렉, 제니퍼 로페즈 '갱스터 러버'의 1할 정도인 600만 달러에 불과) 처음 극장 개봉 당시에는 관객이 거의 안 들었으나 이후 작 중 토미 웨소의 연기 및 작 중 내용이 컬트적 지지를 얻어 DVD 뿐만 아니라 블루레이도 출시, 수차례 재상영, 티셔츠 및 장난감 등 굿즈 판매 등도 이뤄졌으며, 아래에 링크해둔 무비웹 기사에 따르면 재상영 등을 포함 추가 수익으로 제작비 5배인 3000만 달러를 벌어 상업적 성공을 달성했습니다. 관련 작품들도 여럿 나와 팬메이드 비디오 게임, 뮤지컬, 다큐멘터리, 웹시리즈, 연극, 제작 비화를 다룬 서적 '디재스트 아티스트' 등이 나왔고, 이 중 '디재스터 아티스트'는 A24 및 워너 브로스 디스커버리 배급의 극장 영화로도 제작되어 손익분기점 (제작비 2배)를 여유롭게 넘기고, 평론적으로도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골든글로브 어워즈 수상작이 되는 영광을 누렸으며,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 유명 비디오 게임 시리즈 '보더랜드' 등 인용 및 패러디 사례들도 수차례 나왔습니다. '콜라이더'에선 더 룸은 나쁜 영화가 아니며 컬트 영화란 점에서 대성공작이란 기사를 냈으며, '캐치플레이'에선 영화 내용을 토미 웨소의 경험담에 픽션을 일부 섞은 반자서전격 내용으로 분석하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해선 아래 링크들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더 룸'은 나쁜 영화가 아니지! 아니야아아아아아아아! 오, 안녕 마크] https://collider.com/the-room/the-room-is-good/ [왜 더 룸은 시네마적으로는 "걸작"일까] https://edsays.catchplay.com/sg/article-1748-ol5lmtif 2023년에는 더 룸 2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들 여럿 나왔는데, 이 중 무비웹은 작품 소개, 추가 수익 3000만 달러 등 컬트작이 되면서 벌어진 상황 정리, 그리고 작품 관련 12가지 팩트를 해설과 함께 올렸는데, 분량 상 이 글에선 팩트 주제만 관련 영상을 일부 첨부해 간단히 추렸으며 해설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부타 드립니다. [더 룸: 컬트 클래식 영화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12가지 팩트] https://movieweb.com/the-room-facts-you-didnt-know-cult-classic/ 1. 35 mm 및 HD 둘 다 동원해 촬영 2. 카메라를 대여가 아닌 구매로 확보 [디재스터 아티스트 영화판에서 재현한 세트 촬영 옥상 장면] 3. 세트를 지은 장면은 로케이션으로도 촬영할 수 있었던 장면 4. 총 제작비는 600만 달러 5. 토미 웨소가 직접 영화에 투자 [토미 웨소 공식 계정에 올라온 4K 꽃가게 장면] [토미 웨소 공식 계정에 올라온 둠 패러디 꽃가게 장면] 6. 꽃가게의 여인은 실은 배우가 아니다. ['디재스터 아티스트' 영화판 아카데미 참석 영상] [토미 웨소도 동행한 '디재스터 아티스트' 골든글로브 수상 영상] 7. 토미 웨소는 영화가 계속 상영되도록 돈을 냈는데, 오스카 선정 조건(극장 상영 기간)을 충족하기 위해서였다. 8. 아이러니하게도 '디재스터 아티스트'가 아카데미의 노미네이트 작품이 되었다. [상영회에서 전통적으로 던지는 숟가락 영상] 9. 심야 상영회에선 관객들이 미식축구공이나 숟가락을 던진다. 10. 많은 대화 분량이 후반 작업 과정에서 더빙됐다. ['디재스터 아티스트' 홍보 당시 토크쇼에서 성관계 장면을 언급한 영상] 11. 영화의 10%가 성관계 장면이다. [토미 웨소가 출연한 트랜스포머 패러디 '카 봇즈!' 영상] 12. 파라마운트 픽쳐스에서 24 시간만에 배급을 거부했다. 위에서 소개한 작품들 중 '더 룸', '디재스터 아티스트' 영화판은 각본을 스크립트 슬러그에서 공개 중이며(과거 인터넷 상에 돌던 소문과 달리 암 대사는 배우 애드립이 아닌 각본에도 있는 대사) 아래 링크들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더 룸' (2003) 각본] https://www.scriptslug.com/script/the-room-2003 ['디재스터 아티스트' 영화판 (2017) 각본] https://www.scriptslug.com/script/the-disaster-artist-2017
콩라인박작성일
2023-12-1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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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정액과 혈액형이 달랐던 연쇄 살인마 안드레이 로마노비치 치카틸로
정액에서 검출된 혈액형은 A형 나머지 혈액형은 ab형이었던 특이 체질로 수사에 혼선을 주었다. 1936년 출생1994년 사망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총기에 죽은 인물 이름안드레이 로마노비치 치카틸로(Андрей Романович Чикатило)[1]출생1936년 10월 16일사망1994년 2월 14일 (57세)국적소련 국기 소비에트 연방 → 러시아 국기 러시아가족아내, 장남 유리 치카틸로, 장녀 류드밀라 치카틸로신장193cm혈액형AB형[2](정액만 A형)범죄 유형연쇄살인 1936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병약한 체질이었던 그는 가난한 집안 환경이 겹쳐 굶기를 밥 먹듯 했고, 그로 인해 점점 시력을 잃어갔다. 게다가 유아 시절 만성적인 야뇨증으로 인해 어머니로부터 매우 혼났다고 한다.[3] 그리고 사춘기 과정에서 자신이 발기부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심한 고민에 빠졌고, 이에 정력제를 먹거나 나뭇잎을 갈아서 으깬 것을 성기에 바르는 등의 여러 방법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나자 매우 절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치카틸로는 그 대안으로 독서와 공부에 열중하며 마을 안에서 수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당대 최고 명문 대학이었던 모스크바 대학 법학부 수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치카틸로 본인은 대조국전쟁 때 아버지가 독일군 포로로 끌려갔다는 기록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서 떨어졌다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학교 성적이 부족해서였다. 치카틸로는 재수를 하지 않고 공업전문대학교에 들어갔고, 졸업하고 여러 기술직을 전전하다가 로스토프 대학에 입학, 35살이 넘어서야 러시아 문학과 철학 과목에 대한 교원 자격을 취득했다. 그리고 로스토프 주의 노보샤흐틴스크 시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치카틸로의 어머니는 항상 어린 그에게, '네 큰 형은 반체제사상가로 몰려 공산당원들에게 산 채로 잡아먹혔단다.'라며 말을 하곤 했고, 이로 인해 생긴 극도의 강박관념과 형을 잡아먹은 존재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되었다.[4] 거기에 시력을 잃음으로써 생긴 콤플렉스가 더해져 정신적인 문제까지 생기게 되었다. 또한 몸이 약하고 발기부전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어서 성생활이 매우 힘들었고, 이것이 훗날 범죄 행각에서 성폭행보다는 잔혹한 살해에 더 집중하는 원인이 되었다. 한편으로 어린 시절에는 왕따를 굉장히 심하게 당했는데 그의 여동생의 증언에 따르면, "오빠는 항상 혼자였습니다. 오빠는 아이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것을 무서워하여 항상 건물 구석에 숨어있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그는 자신의 콤플렉스와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1963년, 여동생의 친구와 결혼하였다. 여기에는 치카틸로가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큰 이유 중 하나였다.[5] 한편 치카틸로는 연애할 때 발기부전을 숨기고자 자신의 아내에게 결혼 전 순결을 지켜주고 싶다는 핑계로 결혼 전까지 성관계를 피했지만, 그래도 불임은 아닌지라 아이는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슬하에 아들인 유리와 딸인 류드밀라 두 아이를 두었지만, 허약한 체질로 인해 생긴 성기능 장애 때문에 가정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눈도 거의 실명상태가 된지라,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군 제대 후 대학에서 교원 자격증을 딴 그는 광산 지역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쳤지만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당시 학생들은 가난한 형편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 마른 몸이었던 치카틸로를 '거위'라고 부르며 비하했다. 그러다가 수영장에서 어린이들과 수영을 같이 하다가 여자아이를 성폭행하고 싶다는 욕망이 느껴져 성폭행하려고 했으나, 여자아이가 격렬히 반항하기도 하고 게다가 발기부전으로 인하여 실패하였다. 그리고 여자아이가 수치심으로 인해 이야기하지 않아서 결국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 버렸다. 그러다가 학생 중 일부가 우연히 그의 집안에 불순분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이 사실을 학교에 고발, 결국 교단을 떠나야 했다. 이후에 몇몇 공장에서 일도 하다가, 80년대 와서는 지방의 작은 기숙사 학교 사감으로 일하게 된다. 4. 살인 행각그에게 숨겨진 본능이 앞의 여자아이의 강간 시도를 통해 서서히 눈을 뜨게 되고, 결국 42세가 되던 1978년 무렵부터, 그는 잔혹한 살인마 로스토프의 백정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9살 소녀 옐레나 자코트노바를 먹을 것을 준다며 꾀어내 오두막집에 데려와 강간하려고 했으나, 옐레나가 격렬히 저항하여 강간은 하지 못하고, 잔혹하게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시체에 자위행위를 했다. 그러면서 밤마다 거리를 지나는 소녀와 여자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는 등의 유혹으로 그들을 꼬여냈다. 아이들만 죽인 것이 아니라 성인 여성들을 끔찍하게 유린한 후 성폭행을 하기도 하면서 살해했다. 치카틸로의 피해자들의 연령은 다양했다. 21살의 여성을 비롯하여, 헝가리에서 온 여자 유학생 및 16살~17살 정도의 청소년 남녀도 피해자들 중에 포함되었다. 젊은 시절의 교사 생활을 통해, 그는 아이들과 성인 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는지를 매우 잘 알았고 이를 잘 이용했다. 충격적인 것은 치카틸로가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인데, 희생자들의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심지어 희생자들은 아직 살아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신체가 잘리는 모습을 보기도 했으며, 다른 사람이 먼저 죽어 치카틸로가 그 사람의 인육을 잘라내는 것을 목격하며 공포를 느끼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 그는 희생자가 공포심에 떠는 모습을 즐겼다고 한다. 남자는 성기를 잘라내고 여자는 내장을 무자비하게 파헤친 뒤 자궁을 꺼내가거나, 유방이나 눈알, 엉덩이 살 등 여러 신체부위를 잘라냈다. 또한 항상 시체의 눈알이 훼손되어 있었는데, 이는 치카틸로가 '사람이 죽기 전 각막에 마지막으로 본 것이 남아있다'는 러시아의 오래된 미신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체는 거의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파헤쳐져 있었다고 한다. 수사관들이 검식을 하려고 왔을 때 너무도 잔인하고 무참히 시체가 훼손되어 있어서, 이건 짐승이 사람을 잡아먹고 시체를 찢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며[6] 러시아의 베테랑 강력반 형사들이나 검식관들도, 이런 잔인한 범죄는 처음 본다면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희생자들의 인육을 집에 가져가서 인육을 소고기라고 속인 뒤 가족과 함께 먹곤 했다. 그러나 피해자들도 모두 무력하게 그냥 당한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피해자 중 한 명이자, 54번째 희생자인 16세 소년 빅토르 티셴코는 1990년 10월 30일, 묶인 상태에서도 온 힘을 다해 치카틸로 손을 힘을 다해 물어뜯어 손톱과 주변 살점까지 깊게 뽑히고 뜯기게 했으며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 힘을 다해 왼쪽다리를 발로 차고 그가 아퍼서 무릎을 꿇자 모든 힘을 다 해 발로 무릎을 찍고 쓰러져 죽었다. 이 덕분에 그는 왼쪽 무릎뼈나 다리뼈에 금이 가서 절뚝거려야 했다. 그밖에도 다른 피해자들이 치카틸로에게 저항하면서 그를 물어뜯어 생긴 치흔(齒很), 묶인 상태에서도 온 힘을 다해 박치기를 하여 그의 콧등이 부러졌다든지, 하이힐로 그의 손등을 찍었다든지 등 온갖 저항을 하여, 치카틸로의 몸 여기저기에는 상처가 꽤 많았다. 이는 후일 치카틸로가 용의자로 체포되었을 때, 그가 진범임을 의심케 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 당시 수사관 이사 코스토예프는, 치카틸로의 온 몸 곳곳에 난 상처를 보고, 이 많은 상처들은 어디서 어떻게 생긴 거냐며 끈질기게 심문했다. 처음에는 넘어졌다느니 등으로 치카틸로는 거짓 해명했지만, 상처 여러 부분은 틀림없이 사람이 물어뜯은 흔적이 깊게 남았기에 이것도 증거가 되었다. 그야말로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저항한 게 수사에 큰 도움이 된 셈이다. 후술하겠지만, 이 사건 관련 서적인 《악마사냥》에서도 이 상처 몇몇이 사진으로 나왔는데, 그야말로 피해자들이 죽기 살기로 저항했음을 보여준다. 물어뜯긴 상처를 보면, 손톱이 뽑히고 손톱 옆 살점들이 깊숙하게 뜯겨나간 깊은 상처임을 알 수 있다. 다친 지 꽤나 지나서 체포되었을 때도 흔적이 크게 남아있을 정도의 부상이었으니, 수사관들도 요모조모 캐물으며 파고든 것. 개에게 물려 다쳤다고 변명했으나, 당연히 상처를 조사하니 개와 사람 이 자체가 달라 사람이 물어뜯은 자국이라는 게 드러나자 결국 자백하고 말았다. 당시 아침마다 살덩이가 잘려나간 시신들이 발견되자, 당시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이 얼굴 없는 살인자를 '시민 X(Citizen X)'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때까지 그에게 살해당한 이는 무려 53명 이상이었지만, 치카틸로가 체포되기 전까지 그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7] 치카틸로가 이토록 오랫동안 잡히지 않고 활개치고 다닐 수 있었던 이유들 중 하나는, 그의 지능적인 범행 수법을 들 수 있다. 희생자들 중에는 어린 남자아이도 있었고, 나이가 좀 든 소년도 있었기에 용의자를 좁히기가 힘들어 수사가 혼선에 빠지기도 했다. 거기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는 정액에서 검출되는 혈액형과 몸의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 100만 명에 한 명꼴로 나오는 특이체질을 지닌 인간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사람이 살인마가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시체가 발견된 곳 주변 마을의 주민들을 모두 조사해보고, 교통기관 등으로 이동할 수 있는 범위에 사는 용의자들까지 다 조사해보아도, 피해자의 몸에 남은 정액의 혈액형과 일치하는 혈액형의 소유자를 찾을 수 없었던 것. 수사관들조차 악마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흔히 치카틸로를 잡지 못한 이유가 러시아 경찰의 삽질이거나 묻으려고만 했던 태도 때문에 잡지 못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러시아 경찰도 이 끔찍한 살인귀를 잡으려고 무지하게 애썼다.[8] 하지만 누가 정액의 혈액형과 실제 혈액형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말이다.[9] 실제 수사관들이 물증을 확보하거나 하여 치카틸로가 주요 용의자로 검거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증거를 대조해보고, “피해자의 몸에서 나온 정액의 혈액형과 다르잖나. 저 사람은 범인이 아니다”가 되어 치카틸로는 방면되었고, 검거된 적이 있지만 무혐의로 풀려난 치카틸로를 다시 의심하여 체포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5. 체포[편집]그러나 연쇄살인범을 끈질기게 쫓던 인구셰티야 출신의 검사 이사 코스토예프와[10] 수사반에 의하여 마침내 검거된다. 살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현장을 배회하던 것이 결국 치카틸로의 덜미를 잡은 것이었다. 코스토예프는 그가 계속 살해 현장 근처에 있었으며, 그가 잡히기 6년 전에도 살인현장에서 같은 가방을 메고, 똑같은 물건과 노끈, 얼음송곳 등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내어 그를 체포하려고 했다. 1990년 11월 20일, 치카틸로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체포할 기회를 노리던 코스토예프와 수사반은 그가 카페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를 체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들어갔다. 그는 저항 없이 순순히 붙잡혔는데, 그가 체포되었을 때 보인 태도는 수사관들을 상당히 의아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범행현장의 잔혹성으로 보아, 범인은 광기에 가득 차 있고 대단히 폭력적이며 잔인한 인물일 것이라 생각해서, 건장한 형사들을 대거 대동하고 출동했는데, 정작 체포된 범인은 한때 교사였을 뿐 아니라 무척이나 침착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던 그였지만, 거듭되는 심문에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했고, 자신을 잡아주어서, 그리고 이 살인을 끝내준 당신에게 감사하다고 하였다.[11] 그의 자백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는 약 50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해했고, 인육을 먹거나 온갖 성적이고 잔인한 행위들을 했다는 것을 자백해 수사관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범행 현장들을 기억해서 그곳들에서 범행을 재현했으며, 어떻게 하면 피를 묻히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어떻게 범행을 들키지 않았는지를 알려주었고, 소름 끼칠 정도로 날짜와 시간, 살해 방법 등을 세세하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며, 살인하던 순간이 떠오르는 듯이 즐겁게 웃으며 범행 재현에 임했다. 그러다 보니 수사관들도 경악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11월 21일, 치카틸로의 혈액을 검사한 결과 혈액형은 AB형이었다. 그러나 치카틸로의 정액 샘플을 얻어 대조한 결과, 치카틸로의 정액은 A형이었다. 이로써 그가 계속 수사망에 걸리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밝혀졌다. 그 자신이 꽤나 지능적인 것도 있었지만, 악마가 선사한 듯한 그의 특이한 신체가 그의 끔찍한 범죄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준 셈이었다. 피해자들[편집]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인 피해자의 수는 지금도 확실하게 나와 있지 않다. 법원과 경찰은 치카틸로가 53명 정도를 죽였다고 추정하고 있으나, 치카틸로 본인은 자신이 적어도 56명 정도의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미치광이에게 공격을 받거나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의 숫자는 약 100여 명에 달할 것이란 사실이다. 심지어 체포되기 직전에도 아이를 꾀어내 살해하려고 까지 했으니 말이다. 만일 미국이었다면 사법거래를 통해 치카틸로의 범행을 입증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소련은 그런 제도가 없었다. 피해자는 소비에트 연방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딱 하나 1989년 치카틸로에게 죽은 바르가 엘레나가 헝가리인이었다. 당시 나이는 19살로 소련 유학을 온 유학생이었다. 이례적으로 치카틸로의 공판 과정이 언론에 생중계되었다. 이는 러시아에서는 굉장히 드문 일이다. 그는 철제 우리에 갇혀서 재판 과정을 지켜봤는데, 희생자의 친척이나 친구들, 그의 범죄에 분노한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아 재판 진행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였다. 치카틸로가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희생자의 가족들은 모두 원성과 분통을 터트리며, 치카틸로에게 "이 악마야,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재판장님, 우리들에게 치카틸로를 넘겨주십시오. 우리들도 그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그를 죽이고 싶으니까요" 라고 외쳤다. 2차 공판이 끝나고, 어떤 방청객은 판사가 재판장을 떠나자마자 방청석에서 뛰쳐나와 치카틸로에게 짧은 쇠막대기를 던졌다. 치카틸로의 머리를 맞히지는 못했지만, 그의 머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 쇠막대가 날아가 떨어졌다. 그는 희생자들 중 한명의 오빠였으며 그는 경찰들에게 잡혀 끌려갔지만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정상참작되어 나중에 풀려났다.치카틸로는 법정에서 굉장히 이상한 행동을 했는데, 위의 영상처럼 갑자기 숨을 거칠게 몰아쉬거나 두 눈을 마구 굴리는가 하면서 피식피식 웃기도 했다.[13] 그의 정신감정을 맡은 알렉산드르 부카노프스키 박사도 방청객으로서 치카틸로의 행동을 관찰했으며, 그를 포함한 심리학자들은 치카틸로가 사형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친 행동을 한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실제로 정신병자였다면 아이들이 그를 따라가 살해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가 그토록 다른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부카노프스키 박사를 비롯한 심리학자들은 치카틸로가 정신상태가 지극히 정상인 살인마라고 단언했다. 재판이 진행 중일 때에도 치카틸로는 유족들을 비웃으면서 끊임없이 재판을 방해했는데, 갑자기 러시아 정교회의 성가를 불러대거나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면서 웃거나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조롱하기도 했으며, "나는 소련 압제의 희생자"라고 외치기도 했고 급기야는 옷을 홀딱 벗어버린 채 자신의 성기를 흔들면서 "이 쓸모없는 것을 보시오. 이것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라고 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언행으로 그는 끌려 나갔다가 판결을 듣기 위해 다시 들어왔다. 소련이 붕괴된 뒤에는 러시아로 처벌 권한이 넘어가 재판이 계속되었다. 검사측이 나열하는 그의 범행에 법원 경비원들도 심한 충격을 받아서 어떤 사람은 동료의 부축을 받으면서 의자에 주저앉을 정도였다. 1994년 2월 14일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재판 당시 어떻게든 살아볼 생각으로 정신이상자 행세를 하였다(50여명을 넘긴 피해자를 발생시킨 범죄자에게는 정신이상자라도 웬만한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무죄는 불가능하다).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런 시도도 소용없이 결국 처형되었다. 이때 사람들이 환호했으며, 치카틸로만이 거짓말이라고 판사에게 격렬히 항의하였다. 관련서적인 《악마사냥》에서의 묘사나 당시 방송의 내용들을 보면, 당시 치카틸로는 항의 정도가 아니라 "난 애국자란 말이야! 왜 나를 그렇게 죽이려 드는 거지?" 라고 적반하장 격으로 판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발광했으나, 판사는 그럴줄 알았다는 식으로 무표정하게 무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족들은 환호보다는 우리 아이들을 죽인 것처럼 잔인하게 죽여 달라고 요구했다. 재판 당시 아들을 치카틸로에게 잃은 한 어머니는 이성을 잃고 덤벼들었다가 제지당하자, 저 악마를 내 아들이 당한 것처럼 죽여달라고 대성통곡했다. 결국 치카틸로는 총살형에 처해졌는데, 기록에 의하면 처형당하기 전에 죽고 싶지 않다며 울면서 살려달라고 발광했다. 이에 교도관이 "그럴 놈이 사람은 왜 죽이고 법정에서 좋아라 웃어? 그냥 편하게 죽여주는 것에 고마워해라"라고 하자 그가 발버둥쳤기에, 교도관에게 얻어맞고 사형장으로 끌려가 총살이 집행되었다고 한다. 시체는 본인이 수감됐던 교도소의 죽은 재소자 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중이다. 이때 치카틸로에게 11살 난 아들을 잃은 한 내외는, 그를 너무 편하게 죽인다며 "내 아들과 많은 피해자처럼 산 채로 찢어 죽여야 했어!"라고 형이 집행된 뒤 불만스럽게 이야기했다.[14]8. 여담[편집]1995년 개봉한 ‘시티즌 X’라는 영화가 이를 배경으로 한다. 안드레이 치카틸로와 그가 일으킨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Child 44》라는 소설이 있는데, 실제 사건과는 다르게 시대를 스탈린 시대 말기의 소련으로 설정하여 시대적 차이가 있다. 이 소설은 2015년 5월에 톰 하디, 게리 올드먼 주연의 《차일드 44》라는 영화로 개봉되었다. 2015년 개봉한 《구울》이라는 영화에서는, 안드레이 치카틸로가 죽은 후 여러 사람들에게 빙의하고 초능력을 부려서 주인공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죽게 만들고, 인육을 강제로 먹이려는 악귀가 되어서 나온다. 그리고 이 악귀를 추종하며 일반인으로 위장하고 인육을 먹으며 사는 식인마도 나온다. 영화 자체는 그냥 싸구려 B급 영화라는 평. 미국 작가 리처드 루리가 이 사건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을 쓰기도 했는데, 1994년에 한국에서 《악마사냥》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치카틸로의 사진과 피해자들 사진, 수사반장 코스토예프, 그리고 이전의 연쇄살인범 스토로젠코의 사진 및 기록도 사진과 사건 현장 사진, 수사기록, 치카틸로의 어린 시절 및 일생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이 사건은 러시아와 전 세계를 뒤흔들었으며, 그의 악행이 알려지면서 그의 추종자들 또한 생겨났는데, 이들은 치카틸로를 옹호하고 추종하기도 하였다. 이 추종자들 중 유명한 사람들이 러시아 체스판 연쇄살인사건을 일으켰던 알렉산드르 피추시킨과 할머니 살인마 타마라 삼소노바다. 원래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살인혐의를 유죄 판결 받았던 살인마였지만 2018년 12월 미하일 포프코프(Mikhail Popkov)가 56건의 살인혐의를 추가로 유죄판결 받아 총 78건의 살인혐의로 안드레이 치카틸로의 기록인 52건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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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대선판에 무속이 묻은 김에 재미삼아 보는 유력 후보들의 관상
참 이번 대선처럼, 선거에 무속과 미신(개인적으로 둘을 별개로 봅니다)이 깊게 들어온 적이 있나 싶네요.아주 예전에, 손 없는 날에 경선하자 같은 주장한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이 정도로 깊게 관여 된 적이 있나 싶네요.토론회 날짜도 어거지로 변경하고…그래서, 이왕 이리 된 거, 정말 재미로 유력 후보들 관상을 아주 조금만 봐봅시다.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세요. 1번 후보.왕의 상은 아닙니다.듣는 자의 상을 가지고 있고, 욕심이 굉장히 많아, 이루려는 의지가 굉장히 강합니다.정치인으로 대성할 수 있는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권력에 대한 욕심이 특히 강한데, 그걸 본인이 사용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2번 후보.왕의 상입니다. 목표에 대한 욕심이 굉장히 강하고, 어떻게든 손에 쥐려고 하는 상입니다.특수 공무원으로 대성할 수 있는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권력에 대한 욕심이 강한데, 그 자리에 앉고 싶기 때문 입니다. 대략적으로 보면, 두 사람의 상은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릅니다.욕심이란 부분, 그 중 권력에 대한 부분에서 두 사람은 모두 대단한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만,한 사람은 그걸 사용하기 위해서, 한 사람은 그 정점의 자리에 앉고 싶어서라는 차이가 있죠. 1번 후보는 듣는 자의 상을 가지고,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권력을 탐하고, 실행하기 위해주변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정합니다. 현대 정치인으로 대단히 좋은 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본인의 욕심에 의해 모인 권력의 부스러기를 먹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2번 후보는 왕의 상이나, 왕의 종류는 많습니다. 국가의 왕이지만 암군,폭군도 있고, 거지들의 왕도 있고..권력에 대한 욕심, 특히 눈 앞에 목표가 보이면, 주변을 보지 않고 저돌맹진하는 스타일 입니다만,그 자리에만 욕심이 있지,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변에 좋은 참모와 뛰어난 인재가 많다면, 용상에 앉아 좋은 왕이 될 수 있지만…현대는 왕정국가가 아닙니다.본인이 자리에 앉아 만족하는 동안, 그 권력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니…측근의 전횡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정도일까요?솔직히 2번 후보에 줄 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도 2번을 지지할 겁니다.크던 작던 콩고물이 떨어질 테니까요.하지만, 객관적으로 누구 지지할꺼야 라고 물어본다면, 1번 입니다.정치는 미래에 대한 투자이고, 개선이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누가 될꺼 같냐구요? 대한민국은 왕정국가가 아니잖습까? 제 답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