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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초등생에 10일간 1억3000만원 결제 유도..'도 넘은 BJ앱
홈 통합검색SN[단독] 초등생에 10일간 1억3000만원 결제 유도..'도 넘은 BJ앱' 음성으로 듣기번역 설정글씨크기 조절하기이미지 크게 보기온라인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앱) '하쿠나라이브' 메인 이미지. 하쿠나라이브의 모회사는 하이퍼커넥트로, 누적 이용객이 1,000만명에 달한다. 하쿠나라이브 제공 "초등학생 딸아이가 10일 만에 약 1억3,000만원을 결제하는 동안 어떤 통제 장치도 없었어요. 그러면서 환불도 안된다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1일 만난 서울 은평구 주민 김모(46)씨는 지난 8월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김씨의 딸 김모(11)양이 온라인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앱) '하쿠나라이브'에 8월 3일부터 12일까지 약 1억3,000만원을 결제한 사실을 알고 난 뒤 지옥 같은 시간이나 다름 없었다고 했다. 문제의 앱은 14세 이상 가입자라면 별다른 제약 없이 방송을 할 수 있는 온라인 개인 방송 플랫폼으로, '아프리카TV' 등과 유사한 구조다. 김양은 시각장애(반맹 판정)와 뇌병변장애(중증2급)를 갖고 있는 어머니 남모(48)씨의 휴대폰으로 앱을 사용했다. 가입에 사용한 계정은 SNS에서 임의로 만든 것으로, 15세로 설정돼있다. 다른 SNS 계정을 통해 로그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11세인 김양이 앱을 사용하는 데 어떤 지장도 없었다. 돈은 남씨의 휴대폰과 연동돼있던 남씨 통장에서 빠져나갔는데, 지난달 전셋집 이사를 위해 모아둔 보증금이었다. 피해 금액 중 상당액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고, 김양은 사건의 충격으로 학교 상담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이미지 크게 보기A씨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하쿠나라이브 방송 실황 사진. A씨로 보이는 남성이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여성 시청자와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A씨 SNS 캡처 35세 호스트가 미성년자를 “회장님” 대우김양이 처음 소셜 앱을 알게 된 건 지난해 8월이다. 온라인 광고를 통해서 접했지만 초기엔 앱을 자주 이용하진 않았다. 그러나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교를 못 가게 되고, 집에있는 남씨가 스스로 거동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앱에 빠져들게 됐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양을 사로잡은 건 35세로 알려진 호스트 A씨(닉네임 '원빈')와 그의 팀이었다. 이 앱에선 개인 방송을 하는 호스트들이 5명까지 뭉쳐 하나의 '팀'을 꾸릴 수 있는데, 이들은 후원금을 공유하고 함께 방송을 하는 경제공동체가 된다. A씨가 팀장을 맡은 팀은 당시 앱에서 영향력이 가장 컸다. 김씨는 "A씨의 팀은 앱 내에서 아이돌에 버금가는 선망을 받았다"며 "이들이 후원금을 내는 다른 미성년자들과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며 딸 아이도 '함께 하고싶다'는 열망에 휩싸이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이미지 크게 보기하쿠나라이브에서 운영되는 팀의 사진. A씨의 팀과는 관련 없다. A씨는 현재 팀이름을 바꿔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쿠나라이브 제공 A씨의 팀은 시청자들의 선망을 이용해 더 많은 후원금을 내도록 길들이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호스트 중 가장 많이 후원한 사람들을 순서대로 '회장님' '부회장님' '사장님'으로 불러 우대했고, 가장 많은 후원금을 낸 사람이 원하는 게임을 방송에서 하는 경매를 열기도 했다. 또 후원금을 많이 낸 사람들만 따로 카카오톡 대화방이나, 앱 내의 '프라이빗방'(비밀번호를 설정한 비밀방)에 초대하기도 했다. 실제 김양이 1억 4,000만원에 달하는 후원금을 내자 A씨는 김양을 "회장님 되겠다"며 추켜세웠고, 팀원들도 김양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물론 A씨도, A씨의 팀원들도 김양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이미지 크게 보기김씨가 지난 8월 13일 하쿠나라이브 측으로부터 받은 환불 거부 답변. 김씨는 전날 이 앱에 미성년자 자녀가 1억3,000여만원을 결제했다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며 환불을 요구했지만 업체로부터 '정책에 의해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짧은 답변만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내부 정책은 그 자체로 약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하쿠나라이브 제공 후원금 공유하는 사업자, 환불은 나몰라라당장 전세금이 날아가 길바닥에 나앉게 된 김씨는 8월 12일부터 하쿠나라이브 측에 환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쿠나라이브 측은 자사 정책을 이유로 “환불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플랫폼 기업으로서 호스트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환불을 진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해명했다. 하쿠나라이브는 시청자가 보낸 후원금의 절반 가까이를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정보통신사업자를 규제하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김씨가 환불을 요구할 법규 자체가 없다. 방통위 관계자는 "아이가 자기 휴대폰을 사용했으면 그렇게 많은 금액을 결제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어머니가 아이에게 휴대폰을 준 것이므로 단지 요금이 많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는 후원금을 받은 호스트 35명을 접촉해 사정을 설명하고 환불 약속을 받아내야 했다. 그러나 김씨의 호소에도 A씨는 환불에 응하지 않아 약 4,63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이에 A씨는 지난 9월 25일 하쿠나라이브를 상대로 컨텐츠분쟁조정위원회의 분쟁조정을 신청까지 했다.코로나19 확산으로 유사한 피해가 확산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앱 과금과 관련한 미성년자 환불 관련 사건 접수는 최근 4년 사이 3,600건에 달한다. 특히 코로나19가 확산한 올해는 9월 말 기준 1,587건으로 지난해 전체(813건)의 2배에 달한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가 스스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상황에서 과금을 유도하고, 심지어 미성년자의 계정에도 어떤 제재가 없었던 점에서 결코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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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배우 최철호 충격적인 근황 일용직 근무중
22일 방송한 MBN '현장르포 특종세상'에 출연한 배우 최철호 (사진='현장르포 특종세상' 캡처) 택배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지내는 배우 최철호의 근황이 공개됐다.22일 방송한 MBN '현장르포 특종세상'에는 배우 최철호가 출연했다. '대조영', '천추태후', '감격시대 : 투신의 탄생' 등 주로 사극과 시대극에서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준 최철호는 현재 일당을 받는 일용직 택배 하차원으로 일하고 있다. 최철호는 "(배우) 일이 점점 줄고 해서 사업을 해보다가 코로나 여파로 빚도 생기게 되고 상황이 되게 안 좋아졌다. 그래서 버티고, 버티려고 빚을 내고 그러다가 결국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온 거다. 집도 정리하고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현재 아내와 아이들은 처가에 있고 부모님은 요양원에 있다고 설명한 최철호는 "첫날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우연히 연극 하는 후배가 돈이 필요할 때 아르바이트로 오면 일당으로 얼마 받는다고 해서 눈이 반짝 떠지더라. 바로 다음 날 오게 됐다"라고 전했다.최철호는 최근 아내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게 됐다고 한 사연을 언급하며 "진짜 고맙더라. 그렇기 때문에 하루라도 빠지면 안 되는 거다. 아무리 힘들어도 만근을 해야 하는 거고 진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택배 일용직을 하는 게 의외라는 제작진 말에 최철호는 "의외고 뭐고 살아야 하니까"라고 답했다.1990년 연극 '님의 침묵'으로 데뷔한 최철호는 1970년생으로 50대에 들어섰다. 드라마 '황금시대', '야인시대', '장길산', '불멸의 이순신', '저 푸른 초원 위에', '비밀의 교정', '대조영', '천추태후', '내조의 여왕', '파트너', '동이', '대왕의 꿈', '앙큼한 돌싱녀', '불꽃 속으로', '조선 총잡이', '왕의 얼굴', '징비록', '사임당, 빛의 일기' 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다.하지만 2014년 1월 술에 취해 주차된 차량을 발로 차는 등 흠집을 내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2010년 7월에도 후배 연기 지망생을 폭행한 혐의로 물의를 빚었고, CCTV 조사 결과 폭행 혐의가 드러나 1년 9개월 동안 자숙 기간을 가진 바 있다.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메일보내기2020-10-23 10:15 코로나여파로 빚이 생겼다는건 얼마안되었다는건데..;; 사람은 바뀐다 VS 절대 안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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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논산 군인(상근예비역) 엽기 살인사건
사건 발생은 2014년 4월 19일 경에 논산에서 한 군인에 의해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범인은 당시 충남 논산시 광석면 율리에 사는 박상병(22)은 육군 제32사단에서 상근예비역(집에서 출퇴근하는 병사)으로 근무하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피해자는 당시 김양(18)은 함께 동거까지 했었던 미성년자였습니다.사건의 시작이 범죄의 시작은 한 20대 남성과 10대 소녀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가해자인 박상병은 2013년 5월경 사촌동생의 소개로 김모양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김양은 가출을 한 상태이거나 아니면 집안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었던것 같습니다.박상병 역시 성장 환경은 피폐하고 불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둘은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 순식간에 연인관계로 발전했다고 합니다.박상병은 태어났을때부터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채 외할아버지 아래서 어머니와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박상병이 초등학교 시절 그 어머니가 재혼해서 떠나고 외할아버지 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어린시절 이런 경험들이 나중에 박씨가 김양에게 그렇게 집착하고 분노했던 시작점이 아닐까 싶습니다.두사람은 각각 10대와 성인으로 어울리지 않는 관계 같았지만 불우한 어린시절을 살아온 동질감으로 금새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사귄지 6개월만에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2014년 2월에는 A양이 임신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아직 책임질 능력도 의지도 없었던 박씨는 여자친구에게 매몰차게 낙태를 종용했다고 합니다. 결국 3월경 임신 5주의 김양은 산부인과에 가서 낙태를 하게 되고, 김양은 무책임하고 우유부단한 박상병에게 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이 후 둘의 사이는 점차 소원해져 갔다고 합니다.특히 낙태 한달 뒤 ,김양이 박상병과의 동거를 끝내고 자신의 친구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더욱 더 멀어졌던것 같습니다. 그러던중 박상병 또한 자신을 멀리하는 애인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하게 되었고 급기야 폭력으로까지 이어집니다.한번의 폭력 이후에는 이제 아무 죄책감없이 자신이 상근예비역으로 근무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김양에게 풀었던것 으로 추정됩니다.2014년 4월 18일 상근예비역으로 근무중이었던 박상병은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김양에게 전화를 합니다."지금은 전화를 받을수 없어.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몇번을 걸었지만 김양은 한번 전화를 잠깐 받았을뿐 계속해서 박상병의 전화를 피했다고 합니다. 박씨로부터 폭력사태를 경험했기 때문에 더욱 당연한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상근예비역이기 때문에 근무 후에는 딱히 하는일도 없고 친구도 많이 없던 박상병은 김양에게만 끊임없이 집착했고, 김양은 폭력적으로 변한 박상병을 만나는것은 너무나 힘들어 했던 것 같습니다.계속해서 김양이 전화를 받지 않자 박상병은 여자친구 김양과 같이 사는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고 합니다.그녀에게서 박상병은 충격적인 답변을 듣게 됩니다.김양의 친구는 "김양이 박상병을 좋아하긴 하지만 헤어질 생각을 하는것 같다." 는 등의 험담을 했던것이 드러납니다.결정적으로 친구가 했던 "남자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닌다"는 말에 박상병은 완전히 폭발해 버렸다고 합니다.범행결심그리고 그자리에서 바로 김양을 살해하기로 결심한 것 같습니다.박 상병은 증오심속에서 계속해서 전화를 겁니다.밤부터 집요하게 전화를 껀 끝에 결국 박상병은 김양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김양이 집근처 중학교 부근에 있다고 하자 박상병은 증오와 분노심을 숨기며 김양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부엌에서 식칼을 꺼내어 신문지에 둘둘 말아 점퍼 안주머니에 넣고 택시를 탔다고 합니다. 박상병은 중학교 근처에 서있던 김양을 태운뒤 다시 집근처로 돌아갑니다. 아마 그 모든 시간이 10분에서 20분 내외였을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둘은 택시에서 내린뒤 어둡고 적막한 농로를 따라 점점 더 한적한 곳으로 갑니다이는 결국 박상병이 살인을 하기 적당한 장소를 찾았던 것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김양은 그저 계속 따라갑니다.대화하기 적당한 곳에 다다른 둘은 그때부터 대화를 이어나갑니다.첨엔 서로 진솔한 얘기도 하고 힘든 얘기도 하면서 괜찮은 분위기였던것 같습니다. 점차 자신의 생각이 오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박상병은 증오심을 풀며 김양에게 오늘 같이 있어 줄거냐, 우리 아무 문제 없는 거냐는 등의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김양과의 만남을 지속해 나갈 생각을 하게 됩니다.그렇게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 두사람은 그대로 농로에서 성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성관계 도중 간혹 오가는 차량의 불빛이 불편했던 두사람은 옷을 챙겨입고 인근의 후미진 건물로 장소를 옮깁니다.사실 시골같은 경우는 서울에 비해 후미진 건물들이 많은 관계로 공장으로 쓰이던 건물이나 축사로 쓰이던 건물 또는 짓다 만 건물등 사람이 죽어도 모를정도로 후미진곳에 있는 건물들도 꽤 근처에 있었다고 합니다.그렇게 장소를 옮겨서 대화를 이어나가던 박상병은 김양에게 재차 오늘 같이 있어줄거냐고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김양은 일단 집에는 가야 한다며 말을 바꿔서 대신 내일 짐을 싸서 다시 오겠다고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이때 박상병은 다시 김양을 살해하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그것도 김양이 가장 당황하고 비참한 상태에서 살해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끔찍하게도 박상병은 성관계 도중 김양을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고 실제 재차 키스를 하는등 성관계까지 행위를 이어나가다가 관계를 하며 둘다 흥분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외투에 있던 흉기로 A양을 무자비하게 찌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무방비 상태에서 등을 여러번 찔린 김양은 몸을 돌려 무자비하게 휘둘러대는 박상병의 칼을 최대한 손으로 막고 발버둥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박상병은 달아나는 김양을 끝까지 뒤쫓아가 마구 찔러다고 합니다 이 상황에서 극도의 고통을 못이긴 김양이 몸부림치며 뼈에 부딪친 흉기가 부러져 버리자 박상병은 흉기자체를 놓쳐 버리게 됩니다. 박상병은 혹시나 나중에 문제가 될까 부러진 칼날과 흉기를 찾으며 동시에 주변에 다른 흉기가 될만한것이 있나 찾기 시작했다고 합니다.이때 김양은 피를 흘리며 도주하기 시작합니다.박상병은 흩어져있던 자재들중에서 쇠파이프를 찾아 히죽거리며 박씨를 뒤쫓기 시작합니다. 헐떡이며 죽을힘을 다해 뛰어보지만 몸도 만신창이인 그녀가 건장한 남자를 따돌릴수는 없었던것 같습니다.결국 동네 어귀의 팔각정까지 도망간 김양을 박상병은 마치 사냥을 즐기는 사냥꾼처럼 천천히 뒤쫓아가 폭행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폭행이 두려웠던 김양은 팔각정 아래로 숨어보지만 잔인한 박상병은 김양을 끌어내어 다시 무차별적으로 폭행했습니다.끌어낸 김양을 쇠파이프로 마구 내리친 박상병은 몸 여기저기의 상처로 인해온통 피범벅이 되고 얼굴부위는 온통 난타당해 알아볼수조차 없어진 김양을 향해 계속해서 폭행을 가하다가 쓰러진 김양을 내팽개치고는 이번에는 김양의 가방을 뒤지기 시작합니다.박상병은 김양의 핸드백속에서 현금 3만원과 휴대전화를 꺼낸뒤 3만원은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공포와 고통에 신음하는 A양에게 격하게 소리지르며 비밀번호를 물어본뒤 휴대전화의 문자와 SNS를 뒤지기 시작합니다.얼굴은 코뼈가 부러지가 두개골이 함몰되고 이빨이 몇개나 부러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그 상태의 김양에게 박상병은 비밀번호를 묻고 잠금장치를 해제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계속해서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해대며 휴대전화를 뒤지던 박상병은전화번호부 속의 여보라는 이름에 다른 사람의 번호가 저장되어있는것을 확인하고는또다시 질투와 증오심에 몸을 떨며 분노를 폭발합니다.그리고는 또다시 쇠파이프와 주먹으로 김양의 얼굴과 온몸을 난타했다고 합니다.이때 김양은 정말 온몸의 성한곳이 없을정도로 전부 부러지고 파열된 시킨 후,박상병은 이런 김양을 그대로 놔둔채 피가 묻은 옷을 갈아입고 몸을 씻기 위해 근처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다고 합니다..샤워후 옷을 갈아입은 박상병은 방안 침대에 누워 천천히 김양의 핸드백과 휴대폰을 뒤져보던중또다시 분노가 폭발합니다. 핸드백안에서 임신테스트기가 나왔던 것입니다.광기에 횝싸인 이 악마는 다시 옷을 챙겨입고 현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현장인 팔각정에 도착한 박상병은 김양이 사라진것을 알고 주변을 뒤지기 시작하는데결국 휴대폰 불빛으로 팔각정 아래에 숨은 김양을 찾아냅니다.김양은 온몸이 망가진 처참한 상황에서도 죽을힘을 다해 천천히 기어서 팔각정 아래로 몸을 숨겼던 것이죠.박상병은 엄청난 공포에 휩싸인 김양을 보며 히죽거리며 비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내가 너 못찾을것 같았냐?"그리고는 또다시 온 얼굴이 흉측하게 망가지고 피투성이가 된 김양에게 다짜고자 욕을 했다고 합니다.감히 니가 날 배신하냐면서 말이죠.결국 죽어가는 김양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합니다,박상병은 이것이 오히려 김양이 바람핀것을 인정한 증거라고 말하며 벽돌로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합니다.눈이 터져나오고 코뼈가 완전히 가루가 되고 이빨이 다 날라간 김양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그자리에서 김양의 목에 난 상처에 부러진 칼날을 박아넣고 발로 밟으며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목에 칼이 박힌채 헐떡이며 목과 입으로 피를 뿜어내는 김양은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합니다.김양의 생명이라 할수있는 몸안의 피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걸 보며 가해자 박씨는 바로 죽어가는 김양을 히죽거리며 비웃기 시작했다고 합니다.담배를 피우면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김양을 향해 끝까지 분노를 표출하던 박씨는죽어가는 김양을 놔둔채 현장을 떠나버립니다.범죄 이후처참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김양을 놔두고 도주한 박상병은 그때까지도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과 죽어가는 김양의 상태는 외면한채 오로지 김양의 변심여부에 대해서만 몰두합니다.박상병은 김양의 휴대폰을 가지고 김양의 행세를 하며 김양의 친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당시 김양의 친구에게 이런 저런 유도심문들을 해가면서 까지 김양의 변심을 확인했다고 하는데요 박상병은 김양이 변심을 한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김양을 살해한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했던것 같습니다.그렇게 정신못차리고 김양이 스스로의 잘못으로 죽었다는 놀랍고도 끔찍한 정당방위논리를 성립해가던 박씨는 어느순간부터 겁이 덜컥 났는지 범죄의 은폐를 시도합니다. 박상병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산속에 김양의 휴대폰을 파묻어 버리고 도주를 합니다.김양의 시신은 끔찍한 상태로 다음날 오전 7시40분쯤 팔각정을 지나던 마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합니다.경찰은 주변 탐문조사를 통해 박 상병을 범인으로 특정하고 군 헌병대와 공조해 추적에 나섰다고합니다.박상병이 군인의 신분이었던 관계로 엄청난 군병력이 그를 체포하기 위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경찰은 박상병이 은신한것으로 보이는 주변 야산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하고 군병력이 대거 투입되어 체포작전을 벌였다고 합니다.박상병은 결국 사건 발생 26시간~33시간이 지난 20일 오전 7시50분~8시경 근처 야산에 숨어있다가 체포됩니다. 당시 가해자 박상병이 은신했던 가장 유력한 장소는 바로 저 두곳입니다. 저 두곳외에는 해당 야산에서 마땅히 숨을 장소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길을 따라 김양과 박씨가 이동했을것이고 박씨가 도중할때도 이길을 이용했을것 같습니다.재판 결과 결론적으로 판사는 사형이 아닌 징역 30년 형과 전자발찌 20년만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군인의 신분이었던 관계로 1심은 군사법원에서 진행했었다고 합니다.구속 이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 상병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 재판부에 수많은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합니다.또 법정에서는 일종의 악어의 눈물을 흘리기는 했지만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범행당시 20대 초반이었으니 30년 후 출소 한다면 50대 정도의 나이에 출소하게 되는 것입니다.당시 유가족들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상생활조차 힘들어 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범죄의 극악함으로 재혼한 박상병의 생모가 5000만원을 공탁하며 엄벌을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박 상병은 이에 불복해 항소와 상고로 이어지면서, 대법원까지 가서야 형량이 확정되었다고 합니다.항소심에서재판부는 "피해자인 애인을 특별한 동기도 없이 단지 변심했을지 모른다는 일방적인 의심만으로 살인을 결심하고 무차별 폭행 후 살해한 것으로 그 범행이 매우 잔인해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여러 사정을 볼 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이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고 합니다.또, 유족에게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점도 형량을 정하는데 참고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유족들은 “보복이 두려워 일상생활이 어렵다”며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 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무기징역이나 사형등의 판결이 나오지는 않았던 걸로 보입니다.2014년경에 발생한 범죄이니 단순계산이라도 30년형이라면 2044년이라고 잡아도 충분히 건강한 상태에서 저런 악마가 세상으로 다시 출소할 가능성이 있다는게 무섭습니다영원히 사회에서 격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관련기사 :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834출처 : https://blog.naver.com/ghshffnfffn1/221980509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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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상담] 서풍의진 님의 글을 읽고 제가 살아온 인생담을 써봅니다.
원래는 아래 서풍의진 님이 쓰신글에 댓글로 달려했던 글이지만 같은 주제로 다른분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싶어 새로 글을 쓰는것이니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이가 딱 제 또래 십니다. 거기다 오랜시간 뭐해먹고 살아야하나 힘들게 고민했던것도 비슷합니다. 내 나이또래 사람들은 다들 뭐해먹고 살아서 밖에서 보면 비싼차 타고다니고 비싼 아파트에 사나 싶어 항상 궁금해하곤 했었습니다. 저같은 경우 어딘가 하나에 크게 몰두하는 타입도 아니었고 크게 재능이 있는 분야도 없었고 머리도 그다지 별로 좋은편이 아니라 뭘 해야하나 참 어린시절부터 고민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나이 되고보니 나만 이런고민을 하는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항상 하는 고민이란걸 깨달았죠. 극히 일부의 다른사람보다 월등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면요. 할줄아는것도 별로없고 잘하는것도 없는 제가 어쩔수없이 노렸던건 돈, 재능, 관심 이 세가지가 교집합을 이룰수 있는 것을 찾는 거였습니다.돈되는게 가장 중요하지만 관심이 없으면 계속 해나가기가 어렵고, 또 관심이 있어봐야 내가 그 방면에 재능이 없으면 열심히 해도 남들보다 발전하기 힘들기에 이 세가지중에 교집합을 찾아야 하는것이었습니다. 이 돈, 재능, 관심 세가지의 교집합을 찾아라 이 말 또한 제가 어떤 일본인 저자가 쓴 책에서 봤었던 글이었고요. 세상에는 참 많고 다양한 업종의 일이 있죠. 그중에 내가할일 하나없을까? 싶을 수 있지만... 네. 없습니다. 막상 찾아보고 나한테 내 상황에 맞는일 찾으려하면 없어요. 정말 없습니다. 이건 이래서 안되겠고 저건 저래서 무리겠고 요건 다른사람과 내가 경쟁이 도저히 안될거같고... 끝도 없었죠. 대체 어떻게 나한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런게 있기나 할까.. 저는 그냥 위의 세가지가 정확히 교집합을 이루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만이라도 세가지에 다 걸리는걸 찾아보려 애썼습니다. 그러고 결국 찾아낸게 제가 다른사람 가르치는걸 그나마 깨알같이 재미있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크게 재미있는건 아니었죠. 그나마 다른일에 비해서 약간의 재미나마 느끼는 정도?? 그런데 그게 결국 제 평생의 직업이 될 줄은 당연히 꿈에도 몰랐습니다. 40이 제법 넘은 지금이야 겨우 그나마 남들과 비슷하게 벌고 살게 된거 같지만 여전히 프리랜서 일이다보니정말 들쭉날쭉 합니다. 물론 잘버는달은 월 8백 정도는 순수입이 되고 평균 5백 정도는 현재 벌고 있지요.(0.1의 과장이 없는 수치입니다)능력좋고 훌륭하신 분들이 보기에는 정말 보잘것 없는 정도이지만 제 주제에 이렇게 오기까지 정말 멀고도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아니 솔직히 말해 저라는 사람의 인생은 항상 돈없고 힘들고 뭐하나 하고싶어도 돈없어서 하지 못하고평생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는줄만 알았습니다. 왜냐면 젊은시절 그토록 이력서를 많이 넣어도 단 한번 회사들에서는 연락조차 오지 않았었고취직이 안되 부산이 고향인 제가 서울에까지 이력서 넣을곳이 없나 기웃거리며 여기저기 다 쑤셔넣다가수백곳중에 겨우 한곳에서 연락이 와서 처음 취직됐다고 기뻐하며 눈오던 새벽에 캐리어 끌고 기차타러부산역 갔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눈길에 캐리어 뒤집어져서 바퀴깨지고 그 뒤로 겨우겨우 식겁해서그거 끌고 서울까지 갔었던 기억도요..그렇게 처음 취직해서 지냈던 서울.. 돈이 없어서 폐쇄공포증이 있는 제가 창하나 없는 고시원에 방을 잡고딱 일자로 누워 잘 공간과 정확히 그만큼의 공간이 옆에 의자놓을 공간으로 허락되었던 그 좁은 고시원에서몇년을 지내며 살았습니다. 서울까지 와서 구한 일자리였지만 파견직이었다 보니 대우가 좋을리가 없었고 급여도 좋을리가 없었고평생 학교다니며 받아보지 못한 무시와 천대,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냈습니다. 또 서울에는 왜 그리 능력 좋은사람들이 많은지요.. 저도 나쁜머리로 공부를 꾸역꾸역 하긴 했었지만 저와는 비교도 안되는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나더군요.이때 평생 안폈던 담배를 입에대기 시작해 하루에 1갑반을 피는 골초가 되었었습니다. 이 시기에 제가 사무실서 일하다 잠깐 쉬러 건물 옥상에 담배피러 올라가곤 했는데 그때 다른 사람들은 바깥 구경한다고난간근처에 가서 아래를 내다보며 담배를 폈지만 저는 감히 그러지 못했습니다.그 당시 너무나도 힘들어서 난간 근처만 가면 제 몸이 자동으로 난간을 붙잡고 뛰어 넘으려고 자꾸만 반사적으로 움직이더라구요. 미치겠어서 도저히 난간 근처를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무직이었지만 IT관련 회사다보니 하루평균 근무시간은 12시간.. 툭하면 주말에도 나와서 일해야 했었고당연히 이 시기에는 야근수당 같은거 따로 챙겨주지도 않았었고요. 그저 이 당시 제 삶의 낙은 금요일 회사가 약간 일찍 마치면 회사 바로앞에 있던 롯데백화점 가서 백화점 마칠시간8시가 임박해서 떨이로 팔던 튀김류와 샐러드 먹거리들 만원어치 사서 편의점 가 맥주를 사와서 고시원 방에 혼자 앉아맥주 마시는게 제 유일한 삶의 낙이었습니다. 그거 하나 하려고 일주일을 버텼습니다. 그러다 나이는 먹어가고 급여는 웃기게도 해가 갈수록 더 낮아지고(회사 사정 안좋다고) 미래 안보이는 파견직 일을 계속 하기가 힘들어 그만두고 다시 부모님 계시는 부산 본집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뭐 하나 잘하는것도 없고 뛰어난게 없다보니 할수 있는게 없더군요. 내가 잘할수 있는것도 없는거 같고..부모님은 그러고 있을 바에야 공부나 더 하게 대학원이나 가라고 하셔서(부모님 두분다 박사학위 있으신 분들이라)취직도 안되고 할게 없던 저는 부모님 말씀대로 대학원을 갔었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이력서를 넣던 중 다시 또 웃기게도 서울 근교의 분당으로 취직이 되어서 거기까지 다시 올라갔었더랬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고시원에서 살았습니다. 물론 예전에 다니던 회사보다는 급여가 높아서 그래도 돈 모으는 재미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여기도 IT관련 업종이었고 보통이 12시간 근무.. 주말에도 역시나 바쁘면 나와야만 했습니다.거기다 회사 근처 고시원이었다 보니 거의 뭐 야근에 주말근무의 연속이었죠. 제 삶이라곤 없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정말 괴팍한 직속상관을 만나 말 그대로 세상살이 어렵고 돈벌기 어렵다는걸 뼈저리게 느꼈다는 겁니다.상관이 제 업무 평가와 저에대한 평가를 위에 제출하는 인간이다 보니 저는 뭐.. 꼼짝도 할 수가 없었죠. 여기서 짤리면 또 어디를 가나 싶은 생각에요. 이 상관의 또라이짓에 갑질중 가장 기억에 남는것중의 하나가 저는 회사근처 살다보니 분당에 있는 고시원에 살고있었는데.. 어느날 새벽에 갑자기 전화가 오는 겁니다. 자다 깨서 "아 ㅅㅂ 어느 미친놈이 이 시간에 전화질이야.. " 하며 전화기를 보니 이 상관인겁니다.시간은 새벽 3시 반.... 잠이 확 깨더군요. 아니 내가 뭘 잘못했나? 사고라도 쳤나? 그냥 회사서 내 성격 안내보이고 죽어지내며 굽신굽신 살아온 기억밖에 없는데 이 야밤에 이인간이 대체 나한테 왜 전화지 별 생각이 다 들면서 전화를 받았죠.. 술이 꽐라가 된 목소리로.."ㅇ ㅑ ㅇ ㅣ ㅅㅂ 새끼야.. 지금 잠이 쳐오냐??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평소에 저한테 갑질하고 지랄맞게는 굴어도 욕은 절대 쓰지 않는 상사였기에.. 받자마자 저 소리를 해대는데 받고도 한참동안 멍... 했습니다. 이게 뭐지? 내가 뭐 사고쳤나??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거 없는데?? "아.. 아니 실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 밤에?? 무슨 일 있습니까??" "아 ㅅㅂ 몰라 이새끼야.. 빨리 텨와" 라고 소리를 지르더니만 퍽.. 끊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뭐지?? 잠이 확 다깨더군요.그 길로 바로 담배하나 꼬나물고 밖에 나가서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받더군요.또 했습니다.또 안받더군요.... "이 dog ㅅㅂ ㄹㅇ 진짜.. 어쩌고저쩌고.." 욕이란 욕은 입에서 다튀어나옴..... 그런데 분명히 오라고 했단 말입니다. 저보고분명히.. 아니 ㅅㅂ 어딘지나 알아야 가든가 말든가 하죠..그래서 계속 다시 욕을 욕을 뱉어가며 전화했더니만 결국 받아서 또 고래고래 ㅈㄹㅈㄹ 술꽐라되서.. "네네 가겠습니다. 그런데 어딘지는 알아야 갈거 아닙니까" 해서 결국 어딘지 듣고보니 서울 한복판..... 분당에서 그 새벽에 택시타고 가면 5만원돈 나오는 곳이었죠.그런데 별수 있나요? 새벽에 대충 씻고 오라는데로 택시타고 갔습니다. 아휴.... 도착하고 보니.. 제 생에 그런곳 처음 가봤습니다. 저는 그저 학교다니며 책보고 도서관 다니거나 피시방가고 헬스장 가서 운동하는게 전부였던 찐따?? 였기에.. 바로 룸사롱이었습니다. 처음 와본데다 보니 잔뜩 쫄아서 오라고 한 방으로 들어갔는데 이미 쿵짝쿵짝 난리법석...들어가니 담배각 집어던지며 담배 사오라 시키더군요. 그러면서 처음보는 놈들도 다들 담배각 던져주며 난 이거 난 이거..이 ㅈㄹ..... 제가 성격이 그렇게 착한놈이 못됩니다. 깽판도 잘치고 어릴땐 판 뒤집어 엎기 달인이었습니다. 그냥 수틀리면 다 뒤집어 엎곤 했었어요..... 평소엔 정말 온화하고 착한데 어느 적정 선을 넘어버린다 싶으면 상대방이 놀래 환장할 정도로 뒤엎는 성격이었습니다. 어릴때부터. 물론 이러다 싸운적도 많았죠. 속에서 천불이 나 올랐지만 여기서 엎었다간 그날로 회사 짤리고 말거란 생각에 그냥.. 시키는대로 했습니다.근처 편의점서 담배사서 들어가니.. 노래를 시키더군요. 아.. 대략 왜 불렀는지 나오더군요. 제가 어릴때 한때 보컬했었다는걸 알고 분위기 띄워보라고 노래시키려 그 새벽에 저를 불러냈던 거였습니다. ㅎ ㅏ ㅎ ㅏ... 진짜 미친...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이 접대자리였는데 지가 계속 술상무 접대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지 밑에 저 불러서 갑질해보겠다고 분당에 있는 저를 서울 한복판으로 새벽 3시반에 불러냈던 거였습니다.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었겠지만.. 시키는대로 노래도 다 하고 분위기 맞춰주고 했었으나 양주를 계속 저한테 먹이는 겁니다.저는 술을 잘 못합니다. 소주 한 반병이 주량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양주를 무조건 원샷 스트레이트로 마시라 하고 한두번 마시고 도저히 못마시겠다 하니 분위기 판깬다고 말 그대로 dog ㅈㄹㅈㄹ 을 하는겁니다. 사람들 앞에서.. 그래서 결국 또 마셨고.. 완전 눈앞은 핑핑 돌고 오바이트 쏠리고.. 곧 화장실 달려가서 목구멍 손가락을 찔러서 다 토해내고.. 토해내는데 또 왜 그리 통증이 심하게 아프던지요.. 눈물이 핑 돌더군요.그렇게 겨우겨우 다 토하고 술자리 기다시피 들어가니 또 원샷 원샷..... 또 원샷.. 그 뒤로도 몇번이나 원샷하고 화장실 기어가서 다 토하고.. 나중에는 식도가 상했는지 피도 나오더군요.진짜 얼마나 dog 같았는지....... 그러고 새벽 한 5시반 되니 거래처 사람들 집 들어가게 대리 부르라 해서.. 완전 정신나가고 핑핑 도는채로 대리 불렀고 차 타고 가는거까지 제대로 보내드려라 해서 또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러고 그 ㅁㅊ 놈은 그 꽐라된 상태로 지 차몰고 미친 음주운전을 하며 집에 가더군요.사실 그때 속으로 빌었습니다. 쳐박고 뒤지라고...근데 이런 ㅅㄲ 는 절대 또 뒤지지도 않아요. 다 끝나고 다시 택시타고 고시원 들어오는데 택시에서도 얼마나 오바이트가 나오던지 몇번이나 내려서 올리고..그러고 고시원 들어와 누우니 진짜 누워있는데 눈앞이 정확히 @_@ 이랬습니다. 세상이 빙글빙글..... 누워서 오바이트 하고 배게 다 버리고.. 그런데 마지막 그 상사놈의 말이 뭐였는지 아시나요? 그 다음날이 평일이었어서 출근해야 했는데 내일 늦지말고 출근해라 였습니다. 누워서 오바이트 하고 온몸이 벌벌 떨리고 몸을 서있을수도 기어서 움직일수도 없는 상태에서 겨우 울고불고 버티다 고양이 세수에 양치만 하고 다시 회사에 기어서 나갔습니다. 말 그대로 거의 기어서요..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몸이 벌벌 떨리면서 눈앞이 핑핑 도는 상태로 그날도 10시간 넘게 일했습니다. 상사 ㅅㄲ요? 12시 넘어서 쑥냄새 풀~풀 풍기면서 출근하더군요. 찜질방 쑥탕 갔다온거였습니다.아주 dog ㅅㅂㄹㅁ........ 그러면서 또 첫마디가 "야.. 출근 제대로 했냐?" 였습니다.... 그날 하루종일 점심저녁 다 못먹고 고시원 들어가며 또 줄담배 피다가 잤습니다.이런 미친 짓거리를 그 뒤로도 여러번을 더 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때 제가 있는 회사는 계열사였고 제 상관 ㅅㄲ가 바로 본사의 술상무였던 거였습니다.그래서 갑질하려고 저를 술자리에 불러내곤 했던거였죠. 이 얘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해주면 아니 대체 안 뒤엎고 뭐했냐고 하나같이들 말합니다.그런데 아마 지금도 그럴거 같은데 저때만 해도 레퍼런스 콜이 진짜 많았습니다. 이력서가 들어와서 그 사람의 이력을 살펴보다 그 사람이 앞서 일했던 직장에 전화를 걸어 이 사람 어땠냐고 물어보는게 바로 레퍼런스 콜입니다. 만약에 그냥 제가 뒤엎고 나왔으면 그 썩을 레퍼런스 콜에 의해 아마 그 뒤로도 제 회사 인생은 줄창 막혀버렸겠죠? 이걸 알고나서 그렇게 미워하던 상사 ㅅㄲ 한테 퇴사하기 전에 그동안 감사하다고 선물까지 주고 나왔습니다. 여기서 정말 회사생활 사회생활 돈벌기 힘들다는걸 절실히 깨닫고 그 뒤로는 무슨 일이든간에 제대로 열심히 했습니다.추가적으로 공부도 계속 했고요. 이 회사를 나와서 또다시 대학원을 들어갔었고 졸업해서 석사학위만 2개를 만들었습니다.이 회사에서 뭐같이 빌빌거리며 그래도 잘 빌붙어서 버틴 덕에 번 돈으로 어릴때부터 그토록 가보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지 못했던.. 해외 연수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유학을 갔다왔고 그 뒤로는 공기업에도 들어갔었고 공기업에서 해외출장 다니며 업무보는 일을 하다가 지금의 4개국어를 하는 여친을 만났고, 너무나도 빡빡한 공무원식 체계에 환멸을 느끼고 나와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맞는다는것을 느끼고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공기업을 자진 퇴사했고, 이때 인연이 있었는지 여친도 퇴사를 하게되어 현재까지 8년 이상을 잘 만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문제는 그당시 나이가 30대 중후반인데 회사는 전부 내발로 다 때려쳤고.. 뭐해먹고 살아야 하나 정말 막막했습니다.여기서도 너무 안맞고 힘들어 평생 안가본 정신의학과에 다니며 정신과 치료에 약을 달고 살며 회사를 다녔습니다.극도의 스트레스에 몸에 별의 별 이상이 다 오더군요. 이꼴이니 도저히 더는 다닐수가 없었죠. 대부분 회사 그만두기 전에 다음회사 갈곳 정하고 그만두라고들 하는데 저는 공기업 다니며 여기서도 또 평균 14시간 하루에 일했고 주말에는 출장가기 일쑤였으며 일해서 제출하면 거지같이 했다고 맨날 욕먹는게 생활이었습니다. 여기 부장도 또라이였거든요. 공기업에서 하루 14시간 일한다고? 제가 얘기하면 전부 안믿습니다.제가 한콘진이나 시청이나 시의회등에 내는 야근장부에는 전부 저는 야근 안하고 칼퇴한걸로 기록되 있습니다.왜냐? 부장이나 팀장이 6시까지 일하고 퇴근한걸로 작성해서 내라고 말하고 야근장부를 건네주기 때문입니다.그렇게 건네주면 제가 시키는대로 써서 내야지 자기 도장 찍어서 결제 올리라 합니다.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저는 야근 안한거죠 ㅎㅎ 실제론 미친 하루 14시간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데 한가지.. 이렇게 회사를 다니며 힘들게 살면서도 서울에서 살때부터 짬나는 시간이나 주말에 해왔던게 있었는데바로 학생들 영어과외를 하는 거였습니다.인터넷 과외사이트등을 찾아서 수업구하는 학생들을 찾아 전화돌리며 가서 상담하고 수업 성사하고.. 성사되면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학생을 가르쳤었습니다. 사람 가르치는게 약간이나마 재미도 있고 돈도 벌수 있으니 놀바에야 이런거나 하자 생각하고 해 온게결국 10년... 15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게 제가 공기업을 그만둘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이었습니다.오랜시간 공부해왔고 오랜시간 학생들을 가르쳐서 그 암기력 안좋고 머리나쁜 제가 그냥 대충 달달달 외우고 있어서 바로 읊을수 있는것만 해도 이미 두꺼운 책 3권이상의 분량이상의 정리된 문법을 이미 다 암기해버렸더군요.암기력 안좋아서 그렇게 학창시절 외우는거 못해서 고생했던 제가 말이죠. 그리고 지금은.. 어느덧 상당한 경력을 지닌 선생님이 되어서 학생들이 대부분 전교1등학생, 과학고 진학준비 학생, 성인 토익이나 공무원 준비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토익이면 토익, 공무원 시험이면 시험, 수능시험이면 수능까지.. 문제 유형까지 다 파악해서 어떠한 단어나 구절이 나오면 뒤에 어떤 유형의 문제가 나오겠고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나오겠고 이 문제를 어떻게 다른 유형으로 바꿀 수 있고 어느 출판사의 어느 저자가 어떤식으로 문제를 내는지까지 다 익히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오기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워낙에 학생수는 줄어드는데 과외수업 하고자 하는 엄청난 스펙의 선생님들은 즐비하고.. 그 경쟁을 뚫어야 하고.. 내 실력까지 키워야 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고교생들 가르치면 보통 12시에 수업이 다 끝나는데 마치고 집 오면 보통 1시.. 1시반.. 그리고 그때 씻고 그 다음날 있을 수업준비 하면 평균 3시~ 늦으면 4~5시까지 준비를 하게 될때도 있습니다.그리고 그 다음날 이르면 저희 집으로 와서 수업하는 성인 여학생이 11시에 오기 때문에 몇시간 못자고 일어나서 또 하루종일 수업하곤 합니다. 점심, 저녁먹을 시간도 따로 없어서 길 가다가 조금 빨리 도착되면 근처 편의점 들어가서 삼각김밥 후다닥 길 걸어가며 먹고 그러고 학생집 들어갑니다. 맨날 배 곯아서 있고 식사시간이 일정치 않아 위염 달고 살고요. 대중교통 타고는 도저히 수업 시간에 맞출수가 없어 전기자전거를 하나 사서 버스타면 1시간, 1시간 반걸리는 거리를 자전거타고 돌아다니며 수업합니다. 밥도 제때 못먹고 전기 자전거라도 오르막길은 죽어납니다. 이렇게 일하며 제 경력 만들었고 돈 벌어서 겨우 그나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프리랜서라서 또 언제 수업 다 빠져나가고 월 수입 2백이하가 될지 모릅니다. 항상 돈도 못벌고 평생 돈없어 술도 천탁같은데 가서 막걸리만 마시던 제가 올해 이나이먹고 처음으로 어버이날에 부모님 용돈도 몇십씩 챙겨드리고 신차도 사고 했습니다.저는 정말 제 인생에 이런날이 올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항상 힘들고 돈없고 고생만 할줄 알았어요.그런데 어쩔수 없이 한거였지만 뭐라도 계속 공부하며 노력했더니만 결국 이런 날이 오네요 제게도.... 정말 주저리 주저리 인생살아온거 다 써놨지만 저의 결론은 이겁니다. 사람 사는거 다 거기서 거기로 다 힘들고 안그래 보일뿐 안힘든사람 없습니다.돈이 많으면 가족사가 문제고 가족간에 화목하면 돈이 너무 없고 궁핍하고 아니면 가족사도 엉망이고 돈도 없고그나마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선진국에 태어났으니 이렇게 인터넷 보고 글이라도 쓰고 하소연이라도 하지동남아나 남미쪽 인도쪽 평민이나 대다수가 사는 빈민가에 태어났으면 정말 거지같이 살다 이미 이나이까지 살지도 못하고 죽었을 겁니다. 좋은 곳에 부모님 덕으로 운좋게 잘 태어나 살게 되었으면 그 이후 나머지는 내가 내 노력으로 계획세우고 무언가를 배우고 나를 발전시켜서 내가 나 스스로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나 스스로를 능력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주지 못합니다. 서풍의진님께 드리고픈 말은.. 무엇 하나를 하더라도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공부될 수 있는 업종을 찾으시고 돈, 관심, 재능이 나에게있어 약간이라도 충족이 되는 일이라면 지레 포기하기 마시고 꾸준히 오랜시간 연마하고 갈고 닦으세요. 공부하고 노력해서 얻는 실력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도 않고 다른사람이 따라올 수도 없습니다. 너무 길게 쓰다보니 주제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거 같은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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