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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조국 펀드 의혹 주인공은 XX?
이렇게 제목글 올리면 자극적인가요? 기사 링크: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492 김어준씨는 ‘조국 일가 사모펀드 의혹’ 수사와 관련 17일 “전체 그림을 보면 주인공은 익성”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언론은 조국 가족에 과몰입 돼 있는데 한발 떨어져서 드라이하게 보라, 누가 진짜 플레이어인가”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한국일보에 따르면 조국 법무부 장관의 5촌 조카인 조범동(36)씨는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의 투자금 중 10억3,000만원을 익성의 이모 회장에게 건넸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익성은 코링크PE의투자기업이고 2차 전지 업체 IFM는 익성의 자회사이다. 블루펀드 투자기업인 웰스씨앤티의 최모 대표가 공개한 녹취록에서도 조씨는 “익성에서 10억원을 전세자금 용도로 해서 좀 뽑아달라고 했었다”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 <이미지 출처=한국일보 홈페이지 캡처>김어준씨는 “전체 그림은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그려졌다. 코링크PE는 이후 출범했다”며 “사업계획서를 보면 자동차 미래 산업에 배팅하는 곳”이라고 했다. 또 “익성을 최초로 설립할 때 자금이 1억 정도 됐을 것 같다”며 “최초 시드머니(종잣돈)가 누구 것인지가 중요하다. 진짜 주인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는 “그 돈 대부분이 익성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다음 유상증자 과정에서 5촌 조카가 들어가는 것”이라고 짚었다. 아울러 김씨는 “녹취록을 보면 투자 금액 중 7억3000만원이 익성으로 간다”며 “이것이 횡령”이라고 지적했다. 통화 녹취록에는 최 대표가 조범동씨에게 “익성 회장한테 7억3천을 줬잖아. 조 대표가”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코링크PE가 웰스씨앤티에 투자한 금액 중 7억3000만원을 빼내어 익성 회장에게 줬다는 것이다. 김씨는 “조국 펀드가 웰스씨앤티로 들어가고 다음에 익성의 자회사(IFM)로 간다”고 자금 흐름을 짚었다. 그는 “웰스씨앤티에 익성의 돈과 조국 펀드 돈이 들어간 후 그중 10억원이 횡령되고 13억 정도는 익성의 자회사(IFM)로 간다”며 “익성의 돈이 웰스씨앤티를 거쳐 익성의 자회사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씨는 “이러한 흐름만 봐도 익성만 이득인 것”이라며 “횡령도 익성이 가져가고 정작 투자된 곳은 익성의 자회사이다, 주인공은 익성”이라고 했다. ▲ <이미지 출처=SBS 화면 캡처>또 “이 투자 그림이 그려졌던 2015년 5촌 조카는 30대 초반에 불과했다”며 “그 나이에 실소유주가 되긴 어렵다. 누군가 대리하지 않았느냐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드라이하게 보라, 누구의 이익이 실현되고 있는지”라며 “조국 가족이 사기꾼에게 당했다고까지는 모르겠지만 배임 당했다까지는 말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울러 한겨레 <조국 부인 돈 5억, 사모펀드 운용사 설립 종잣돈으로>과 KBS <“사모펀드 운용사 설립자금, 모두 정경심 돈”..5촌 조카 부인에게 5억 송금> 등 단독 보도들에 대해 김씨는 “불성실하거나 악의적인 보도”라고 했다. ▲ <이미지 출처=한겨레신문 홈페이지 캡처> ▲ <이미지 출처=KBS 화면 캡처>김씨는 “내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어떤 곳에 투자했으면 은행이 투자한 것인가”라며 “친구한테 돈을 빌려 어디 투자했으면 친구가 투자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5촌 조카가 차용증을 쓰고 그 돈을 정 교수에게 빌려 일부를 썼고 그 돈을 갚았다”며 “코링크PE가 정 교수 것이라는 뉘앙스로 보도하고 있지만 근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씨는 “정 교수의 동생도 나중에 코링크PE의 주주가 되는데 그 배수가 200배이다. 1만원짜리 주식을 200만원에 샀다는 것”이라며 “정 교수가 자기 동생에게 200배 장사를 했다는 것인가, 아주 나쁜 누나인가”라고 말했다. 김씨는 “더 말이 안 되는 것이 그 돈도 동생이 빌린 것”이라며 “정 교수가 자기 회사에서 동생에게 돈을 빌려준 다음 자기 돈의 가치를 200분의 1로 줄였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된다”고 언론 보도를 짚었다. 김민웅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도 한겨레의 해당 보도에 대해 “단독이 붙은 기사의 폭력”이라며 “한겨레는 스스로 폭사하기로 작정했는가”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SNS에서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돌려받았고, 빌려준 돈의 용도까지 책임지라는 것”이라며 “은행에서 대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시스템 운용에 쓰인 게 밝혀지면 은행도 책임을 지겠구나”라고 반박했다.또 김 교수는 “단독? 검찰이랑 짜고 하는 거 분명 아니지?”라며 “그런데 어떻게 무엇무엇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취재라고? 받아 적은 거 아니고?”라고 따져물었다. 이어 김 교수는 “조국 관련 수사는 이렇게 결과 이전에 과정 자체가 방어권 박탈에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며 “언론이 이렇게 검찰의 불법과 한몸이 돼서 어찌 하자는 게냐?”라고 탄식했다. [출처: 고발뉴스닷컴]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492 펀드 관련 하여 좀더 간략하게 표현 된부분 ↓ 출처 이미지(뽐뿌)이 밑 내용 : https://gongu-s2.tistory.com/1121요약.1.익성이 자본금 1억으로 코링크 PE 설립2.조국 5촌 조카가 정경심에게 5억 빌림 (2018년 상환 완료)3.조국 5촌 조카가 코링크PE에 2.5억 유상증자 투자4.코링크PE가 만든 블루펀드에 정경심 14억, 익성 10억 투자5.조국 5촌 조카가 펀드에서 10억 횡령해 익성에 돌려줌6.블루펀드는 웰스씨앤티 지분27% 인수 코링크PE의 배터리펀드는 상장사인 WFM 인수 코링크PE의 레드펀드는 익성에 3대주주로 참여7.WFM + 웰스씨앤티 + IFM(익성 자회사)를 합병해 우회상장 시도했으나 실패 결 과1.이 게임의 최대 위너는 익성 : 코링크PE 소유하면서 WFM+IFM+웰스씨앤티 모두지배 (블루펀드 투자금 10억도 횡령으로 가장납입해 무자본 투자)2.조국 5촌 조카 : 5촌 숙모한테 돈빌려서 PE사의 지분 챙기고, 투자금 받아내 펀드까지 설립3. 정경심 : 믿었던 5촌 조카한테 사기? 당함 포인트1.만약 정경심이 검은돈을 위해 차명으로 코링크PE와 블루펀드를 소유할 목적이다면 공직자 재산신고에서 다 오픈하는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됨.2.검찰은 조범동이 횡령한 돈을 조국이 정치자금으로 쓸려고 한걸로 각잡았지만? 정작 익성 대표이사 전세자금으로 쓰임. -----------------------------------------------------------------------------------------------------------아직 이건 확실하지는 않은 부분익성의 서성동 등기이사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호처 차장이라는 소리에 MB와 관련된 업체가 아닌가? 라는 썰이 돌아다님. 또한 검찰의 수사방향이 어제 저녁부터 표창장으로 급선회 한게 아니냐? 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음. 또한 메이저 언론들이 해당 기업(익성)에 대한 보도가 많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에 좀더 부추기는 감이 있음. ----------------------------------------------------------------------------------------------------------- 또다른 분의 생각 : http://m.ppomppu.co.kr/new/bbs_view.php?id=issue&no=194917 검찰 수사 현황 : https://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389자칭 검찰 수사현황 이라는 글에서 보면 조국관련 의혹과 함께 "익성" 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그냥 슬쩍슬쩍 나오네요. 느낌은 큰거 잡을려고 그물 던졌는데 정작 피라미가 잡히네? 그런데 이놈들은 아닐거야 인정 할수 없어 하면서 아직도 큰것이 잡혔다고 생각하고 외치는걸까? 아니면 실존하는데 우리가 보지를 못하는건가? 누구 눈이 동태눈 일까? 그냥 익성에 관한거 싸그리 털면 누구 말이 사실인지 좀더 명확해질걸로 보이네요. 아직 뭔가 확실하게 잡을 만하게 없어서 일까 아니면 잡은게 있는데 아직 명확하지가 않아서 말을 안하는걸까
Rafa작성일
2019-09-1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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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김성환 화백
1932년 10월 8일 ~ 2019년 9월 8일 (향년 86세) 대한민국의 만화가. 경기도 개성시 출생.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만주에서 살다가 서울특별시로 내려와 경복고등학교에 진학. 경희대학교를 다녔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을 다녔다. 시사만화가로서 거의 평생에 걸쳐 고바우 영감을 연재했다. 1950년 12월 30일 전쟁 와중에 고바우 영감을 처음 그렸으며[1] 이후로 전쟁과 여러 문제로 연재와 휴재를 되풀이하다가 1955년 2월 1일부터 동아일보에서 첫 연재를 시작하여 문화일보로 옮겨가면서 2000년까지 4컷 만화를 연재한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등록되어 있다. 일단 20대부터 데뷔부터가 대단한 기록. 시사만화를 그리다 보니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젊은 시절에는 6.25 전쟁에 참전했고, 벌금형에서 금고형까지 질리게 겪었다. 경무대 똥통 사건이 대표적인 예. 그럼에도 결코 기죽지 않고 이승만과 자유당 시절, 박정희와 군부 독재시절에도 날카로운 만화를 계속 그렸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 벌어진 '가짜 이강석 사건'을 빗댄 내용으로 「고바우영감」 이 필화를 겪게 된 원화. 「고바우영감」 은 세계만화대백과사전에 한국만화가로 유일하게 등재된 김성환 화백(1932년생)의 시사만화이다. 1955년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조선일보>를 거쳐 2000년 9월 29일자 <문화일보>에서 14,139회를 끝으로 연재가 끝났다. ‘한국 최장수 신문연재 시사만화’라는 기록은 물론 세계최고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2013년에는 김성환 화백이 보관하던 6,496점이등록문화재 제 538-1호로 지정받아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동아일보사가 소장한 4,247점은 등록문화재 제538-2호로 지정받았다. 연재 초기에는 가정과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유머를 담은 가벼운 세태풍자물이었으나 점차 사회 모순을 직·간접적으로 풍자하는 시사만화로 발전해 갔으며 현실 정치를 풍자할 때는 권력으로부터 압력이 들어와 몇 차례 필화를 겪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1958년 1월 23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경무대 똥통 사건’이 우리나라 언론사에서 시사 만화가로는 처음으로 필화를 겪은 사건이었다.앗! 저기 온다. 귀하신 몸 행차하시나이까.저 어른이 누구신가요?쉬- 경무대서 똥을 치는 분이요. 일반 똥지게꾼들이 경무대에서 나온 똥지게꾼을 보고 90도로 인사하며 ‘가짜 이강석 사건’으로 유행어가 된 ‘귀하신몸’이라고 표현하자 황당해하는 고바우영감을 묘사한 내용으로 경무대의 똥지게를 지는 사람도 권력을 갖고 있음을 비판한다. 이 원화를 게재한 뒤 김성환 화백은 사흘간 문초를 당하고 즉결심판에 넘어가 450환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며칠간 고바우영감을 그릴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후 2월1일자에 게재한 고바우영감에 돈키호테를 등장시키며 언론에 탄압을 가하는 권력을 다시금 풍자한다. 이후에도 유신 및 군사정부에 대한 고바우영감의 풍자와 비판은 계속 됐으며 각종 필화 사건을 겪어야 했다. 검열에 의한 삭제와 수정, 재판과 벌금형, 정보부 요원들에 의한 취조 등 종류는 다양했다. 1963년 AP통신은 군사정부의 언론탄압 소식과 함께 고바우영감을 소개했고, 1973년 산케이신문은 고바우영감이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는 소식을 토픽으로 전하였으며, 이후 ‘고바우 영감은 살아있다’는 기사를 통해 김성환 화백의 건재를 알리는 등 외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고바우영감은 14,139건의 사건사고를 소재로 굴곡의 한국현대사를 함께하였으며 당대의 생활문화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음성 기능은 200자로 제한됨옵션 : 역사 : 피드백 : Donate닫기
맘상했어작성일
2019-09-11추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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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강추)(펌글) '사회적 박탈감'으로 포장된 권력 카르텔의 '반격'
'사회적 박탈감'으로 포장된 권력 카르텔의 '반격'
김민웅 경희대학교 교수?입력 2019.09.07. 22:38?수정 2019.09.07. 23:32댓글?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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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정신]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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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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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권 강화, 그게 답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취임 이후 가장 어려운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그 위험도는 어느 것이 낫다고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상황관리의 주도력이 그나마 높은 쪽이 답"이다. 주도권이 끊임없이 동요하거나 상대 진영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것은 처음부터 배제하는 것이 옳다.
어느 것도 그 결과를 확신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저항과 이탈, 그리고 반격'이라는 역동적 정세는 어느 쪽을 취하던 발생한다. 총선이라는 시간표에 따른 민심의 지지 기반을 확대하면서 정국의 핵심 과제를 풀어나가는 정국 관리의 명확성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정치로 옮기는 작업은 최고 권력자로서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1. 인사권, 2. 정세 설명의 힘 3. 정책 집행력을 과감하게 행사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법무부 장관 내정자 조국 검증 과정에서 나온 도덕성과 사회적 박탈감의 문제는 장관 임명의 자격에 치명적 결격사유가 아닐뿐더러 조국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이는 그에 대응하는 정책의 문제로 풀 문제이며, 조국이 지난 세월 내세웠던 진보적 메시지와 특권적 삶의 격차에 대한 도덕성 비판은 조국이라는 한 인간의 책무로 향후 감당해나가면 된다.?
문제의 핵심은 조국으로 압축되는 권력기관의 개혁에 대한 집단적 저항이 도덕성과 사회적 박탈감을 외피로 쓰고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저항의 종국적 목표물이 문재인 대통령 자신과 문재인 정부 자체라는 사실이다. 촛불시민혁명의 성과가 이로써 급격하게 후퇴하거나 폐기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은 조국 논란을 넘어선 "역사적 승패의 문제"이다.
이는 분명 권력투쟁이며, 권력투쟁이 곧 폄하되어야 할 사안은 아니다. 촛불시민들이 요구한 정치적, 사회경제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권력구도를 짜는 것은 촛불혁명정부의 가장 중대한 임무이며 이 틀 거리가 무너지는 순간부터 진보적/개혁적 역량은 해체의 위기를 맞게 되며 민중의 삶은 또다시 특권 체제를 고수해온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통치 아래 들어가게 된다.?
적폐세력은 집단적 생존과 그 운명을 모두 걸고 권력투쟁을 하고 있는데, 이쪽은 정치적 순진함과 이념적 순결주의, 도덕적 아마추어리즘에 빠진 진영논리 비판에 갇혀 고도의 정치적 반격을 취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진영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역사의 진보,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적 임무를 자신의 공적 책임으로 여기는 이들의 삶이다. 이 진영을 위한 진영논리와 싸움은 너무나도 정당하다.?
진영논리와 전략이 지금 필요한 이유
누군가는 이러한 권력투쟁이 "586의 기득권 수호 전쟁"이라고 하지만 그건 하나만 보고 열은 놓치는 오판이다. 그러한 지점이 있다고 해도 전체의 판은 권력기관의 뿌리 깊은 기득권 청산의 움직임에 대한 반격으로 인한 소용돌이라는 것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조국 청문회 과정에서 말미에 법사위원장인 자유한국당의 여상규가 여유롭게 웃으면서 조국에게 부인 구속/기소와 사퇴를 연결시키며 확정을 되풀이 밀어붙이고자 할 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건 음모론적 관찰이 아니라 사실로 존재하는 검찰 권력과 의회권력, 언론권력의 총력전이 애초 계획했던 전술대로 집행되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나마 박지원의 노련한 기지로 음모의 일부가 폭로되고 조국이 그 함정에 빠지지 않았지만, 대통령의 임명권에 대한 검찰의 일격은 마치 최후의 항전(抗戰)처럼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최후의 항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 문제는 좌고우면하거나 여러 요인을 고민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 일단 진압해야 할 긴급사태다. 정변(政變)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검찰의 쿠데타'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이 지금 하고 있는 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 권력의 개혁주체로 신뢰받아 그 지위에 올랐지만, 그의 입에서 단 한번도 "검찰개혁"이라는 화두를 앞세운 바 없다. 뿐만 아니라 조국 검증 논란이 벌어진 시기에 그는 가까운 측근들에게 대통령이 시국 관리에 "버벅거린다"고 능멸적 언사를 했고, 아무런 증거나 정황도 없던 상황에서 "조국은 수사대상"이라고 말했으며 "조국 측의 증거인멸"을 흘려 언론에 보도되도록 함으로써 기소 내지 구속수사를 예고했다.?
어디 그 정도였던가? 그가 의도했던 아니던 민감한 수사내용이 유출되어 '피의사실공표죄'라는 중범죄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자료들이 버젓이 청문회 석상에서 그대로 공격 근거로 사용되도록 했으며 이에 더해 그동안 언론들의 미확정보도를 부풀려준 내부정보제공혐의 역시 벗어날 수 없다. 사실이라면 죄질이 대단히 나쁘다.?
더군다나 국민적 관심사이기에 전격 수사에 돌입했다고 하면서 그 정도의 중요성을 가진 사안을 임명권자인 대통령, 지휘체계의 상관인 법무부 장관에 일체 보고하지 않고 밀어붙인 것도 그대로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절대로 아니다. 보고는 하지 않고 밖으로는 수사의 움직임에 대해 계속 흘렸다? 용납이 되는가. 이러한 행태는 검찰개혁의 대상이지 그 주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반란"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대통령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검찰 전체의 지휘권을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검찰개혁이라는 정치적 과제는 검찰출신의 몫이 아니다. 문민통치의 권리아래 들어가지 않은 조직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특권화되기 마련이다. 검찰개혁은 행정사안이 아니라 정치 사안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그러한 정치적 지휘에 충실하게 따라야 할 제도적 수단이었다. 그러나 그 수단이 지휘체계까지 점령한 결과 오늘의 사태가 발생했다. 국무위원은 고도의 정치적 배치에 따른 결정이다. 대통령은 그러한 정치적 결정의 권한을 최고의 수준에서 국민들이 맡겼다. 그걸 즉각 행사해야 한다.
둘째, 검찰 보고체계의 위반과 피의사실공표, 그리고 언론과의 커넥션을 조사해야 한다. '검찰 쿠데타 혐의'는 내란에 준한다. 지금까지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조국 관련 수사는 정황과 증언만으로도 검찰이 고강도의 수사를 펼쳤다.?
따라서 수사 개입 논란에 비틀거리면 안 된다. 정부는 이 같은 정변의 주도권을 정면으로 분쇄하지 않으면 향후 정국 위기 관리의 축은 무너진다. 조속히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면 된다. 혐의가 없다면 복귀시키고, 있다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것이 곧 검찰개혁 의지의 관철이다.
셋째, 사회경제적 박탈감, 불평등의 문제는 단지 조국 검증 논란 과정에서 유독 불거진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 도처에 민생의 절규와 불평등의 고통에 대한 호소는 차고 넘쳤다. 이를 위한 과감한 조처가 빠르게 취해져야 한다. 그리고 전력투구해야 한다. 대자본에 의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자본의 독점구조를 깨고 보통 사람들의 삶이 사회경제적 권리를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확실하게 밀고나가야 한다.
역설적인 것은, 이번 과정에서 자한당 조차도 특권체제를 옹호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점을 짚어 자신있고 과감하게 특권타파를 위한 평등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로써 모든 논란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개혁 에너지를 집결시켜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긴박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와 함께 대일(對日)외교정책과 한반도 평화정책을 다시 재가동해서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힘을 모아나가야 한다. 돌아보면, 조국 사태는 한일관계, 그리고 그에 따른 우리 내부의 친일잔재세력의 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에서 비롯되었다. 이들 세력의 적이 누구이며 무엇인지 명확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러한 사태에 대한 해결방식의 확고한 의지와 추진력을 굳게 기대해본다. 지지자들은 오늘도 긴박하게 기다리고 있다.
김민웅 경희대학교 교수 (?)
카이레스작성일
2019-09-0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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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경희대 본교 vs 평교
간략히 말하면 경희 학원 안에는 경희대학교, 경희중학교, 경희고등학교, 경희사이버대학교, 경희 글로벌 미래교육원 (이하 평생교육원) 등 이 있음 지금 논란은 <경희대학교>랑 <경희글로벌미래교육원> 사이 문제ㅇㅇ (경희글로벌미래교육원에는 실용무용계열, 항공계열, 미용예술계열 등이 있음) 시작은 경희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오면서였음 경희대학교에는 무용학부가 엄연히 존재하고, 실용무용'과'라는건 없음. '글로벌 미래교육원 실용무용계열' 만 존재 그런데 실용무용과 학생들이 본인의 페북, 인스타에 서울캠퍼스 실용무용'과'라고 올리는게 학과 창조/ 사칭을 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이 생김 처음 대숲에 올라온 글 그리고 댓글 사실 그 동안 평생교육원이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댓글이 기폭제가 돼서 경희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평생교육원 논란' 이 일어남 경희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고 평생교육원 소속 반박글이랑 반박 댓글들 올라옴 이 반박글들이 올라오니까 그동안은 논란에 끼지 않고 가만히 있던 무용학부 학생들까지 합세함 논란이 계속되자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행정실 직원 및 조교들 까지 합세 여기에 평생교육원을 졸업하면 경희대 메인 학과인 호텔경영학과의 관광학사 등 졸업장 내용까지 똑같이 준다는게 알려지면서 대자보 얘기부터 총장에게 반대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는 등의 목소리가 나오는중 그리고 한편에서는 경희대 학사가 뭐 그리 대단한거냐고 인생에서 내세울게 졸업장밖에 없냐는 반응도 있고 평생교육원 실체가 이런건지 몰랐다는 반응도 나오는 중 (최소한 졸업장은 다르게 나올줄 알았다는 반응) 물론 경희대 학생들이 추하다는 반응도 있음 논란의 메인 반응 두 개는 학생들을 돈 벌이로 이용하는 학교가 잘못됐지, 돈을 주고 그 학교 브랜드를 산 학생들은 잘못 없다는 반응과 돈 주고 학교 이름을 샀더라도 그건 평생교육원이지 경희대학교가 아니지 않느냐, 학과가 아닌데 학과 사칭을 하냐 (정식 무용학과가 존재해서) 이 두 반응으로 나뉘는중 실용무용계열 이런거 자체가 생긴지 2년밖에 안됐고 학생들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생겨버려서 논란이 지금 터짐 예민하다 vs 쿨병이다 더쿠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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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문재인과 노무현의 첫 만남
경찰서에서 열흘 정도 조사를 받고 검찰로 이송되었다.서대문구치소에 수감 됐을때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고 문재인은 말한다. (박정희 정권에서 제일 먼저 이루어진 ‘강제징집’은 1971년 교련반대시위 주도 지도자급 학생 200여 명을 강제 입영시킨 것이 시초였습니다.이후 박정희 정권은 학생운동 주도자급은 신체검사 등급에 상관없이 전원 현역으로 군대에 입대하는 정치공작을 벌입니다. 한쪽 눈이 실명한 사람도, 육안으로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의 소아마비 장애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특히 만 19세 이하로 현역 입영연령이 되지 않아도 무조건 군대에 보냈습니다.) 문재인은 출소 이후 시위 주도로 바로1975년 8월강제로 징집되어1975년8월입대하였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문재인은 육군신병훈련소에서 두각을 나타낸다.'특등사수','선임분대장'으로 활약하면서 훈련을 마친후특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 배치되었고여단장은 준장 전두환,대대장은 중령 장세동이었다.주특기는 '수중폭파'군복무 중에 당시특전사 사령관 정병주로부터 폭파과정 최우수상을 받았고, 전두환 여단장에게화생방 최우수표창을 받았다. 31개월 군복무를 마치고대학 제적생 신분이었던 문재인은 1980년 봄,경희대학교 법학과 4학년 2학기로 복학을 했다. 복학 조처로 학교를 되돌아갔지만전두환에 항거하는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또 다시 경찰에 체포 된다.그리고 이때 문재인은사법고시 합격 통지서를 유치장에서 받게 된다.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지기 하루 전 비상계엄에 따른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체포됐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서도 시간을 내어 2차 시험을 보긴 했지만 준비가 워낙 소홀했던 터라 경험이나쌓자는 심정으로 치른 시험이었다.따라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청난 시위와 구속을 거쳐 유치장에 갇혀 있을 무렵에는 합격자 발표가 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합격 직후 안기부(현 국정원) 직원이'과거 데모할 때와 생각이 같은가'라고 물었지만 문재인은 '그때 나의 행동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합격 취소를 각오한 말이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재인은 사법시험 2차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은 며칠 후 석방 됐다.그리고 그해 경희대학교를 졸업했다. 문재인은 그 만남에서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한다. 노 변호사의 첫 인상은 매우 소탈하고 격의가 없었다."무엇보다 느낌이 달랐다.그동안 내가 만났던 법조인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아주 소탈했고 솔직했고친근했다."우리는 곧바로 의기투합하여 당일로 변호사 동업을 하기로 결정해버렸다.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은 부산 부민동에 있었다. 수수하다 못해 조금 허름한 건물이었다.그곳에서 그분을 처음 만났다. 차 한잔을 앞에 놓고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 날 바로 같이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만남이 내 평생의 운명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노무현 변호사는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 한뒤 짧은 판사 생활을 마치고1981년 독서모임 학생과 시민등이 빨갱이로 조작된 '부림사건'을 계기로 인권 변호사의 첫발을 떼던 때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1982년 '변호사 노무현 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다.노 전 대통령은 문재인 보다 사법시험5년 선배였고 6살 위였다.그럼에도 갓 사법연수를 마친 후배를 자신과 동등한 조건으로 대우했다.문재인은 변호사 생활할 때에노 전 대통령에게항상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는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한번 해보자고 얘기했다. 그리고는 당시의 관행처럼 되어 있던 사건 알선 브로커를 단칼에 끊어버렸다. 판검사에 대한 접대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수입이 줄긴 했지만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자연히 주변의 법조인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했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했고 인간적으로도 매우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는 나를 동료로서 존중하여 결코 말을 낮추지는 않았다.처음부터 작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에게 찾아오는 각종 인권, 시국, 노동 사건을 기꺼이 맡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고 나중에는 우리 사무소가 부산 경남 울산의 노동인권 사건의 센터처럼 변해버렸다. 재야운동에도 자연히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문재인은 부산 신접살림도 노 대통령이살던 부산 광안리 삼익 아파트 단지 내의 전셋집에서 시작했다 문재인 변호사는 이 모든 일을 함께했다. 나는 돈 버는 일을 전폐했지만 그는 사무실 운영을 도맡아 하면서 매월 내게 생활비를 주었다. 부산에서 선거를 치를 때마다 있는 힘을 다했고, 대통령선거 때는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아주었다.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서 대통령 임기 내내 나를 도와주었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리와 퇴임 후 검찰 수사 때도 내 곁에 있었다.나이는 나보다 젊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친구로 생각했다. 그와 함께한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며 영광이었다.<운명이다> 86쪽 노 전 대통령은 문 이사장에 대해 “술잔을 기울이면서 심경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가끔 꿈에서 대통령을 만나기도 한다. 술을 한 잔 마시면 가끔씩 옛날을 추억한다.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운명 같은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온 것 같다.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도 마치 정해진 것처럼 느껴진다."http://instiz.net/pt/4325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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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문재인의 운명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한 문재인. 결국 서대문 구치소에 투옥되면서 대학에서 제적 당함.출소 후에는 바로 군에 강제 징집된다.제대 후, 다시 전두환의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청량리 구치소에 투옥되었고,옥중에서 경희대학교 조영식 총장의 신원보증 아래 제 22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에 극적으로 석방.청량리 구치소에서 사법시험 합격 통지서를 받은 문재인은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박원순, 고승덕, 조영래 등의걸출한 인재들 속에서 수석을 하며 두각을 나타낸다.사법연수원 수석으로 연수원 내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성적이 차석으로 밀렸고, 원하던 판사는 물론 아무런 임용도 되지 못했다.당시 사법 연수원에서 12등이었던 고승덕은 판사로, 상위권이 아니었던 박원순도 검사로 임용되었기에, 불합리한 처사였다.이후 문재인은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그의 운명을 바꿔줄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오랜 시간을 인권변호사로 생활한다."나와 같은 과다."문재인은 그를 처음 본 순간 느꼈다.문재인은 권위적이고 엘리트 의식이 있던 선배 법조인들과 달리 7살 많은 노무현의 소탈한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부산에서 잘나가던 선배 변호사 노무현이, 이제 갓 들어온 신참 변호사 문재인과 수익을 배분한 것은 노무현의 성품을 여실히 말해준다.(좌)문재인 대통령, (우)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에서 합동법률 사무소를 운영하던 1980년대.직원들과 함께 야유회를 가는 모습."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은 부산 부민동에 있었다. 수수하다 못해 조금 허름한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그분을 처음 만났다. 차 한잔을 앞에 놓고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날 바로 같이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그 만남이 내 평생의 운명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문재인은 그렇게 노무현 곁에서 부산 지방 변호사회 인권위원장,부산 민주 시민 협의회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다.1988년, 노무현과 문재인이 이별한다.김영삼은 당시 노무현, 김광일과 함께 문재인에게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했지만, 문재인은 3명 중 유일하게 정치입문을 거절한다.정계입문을 결심한 노무현과 김광일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한 뒤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서도, 문재인은 부산에서 홀로 남아 부산 변호사 협회 인권위원장을 지내면서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시국사건을 변론했다.그리고 2002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 선거.언론은 노무현과 문재인을 가리켜 친구라고 말하지만, 문재인은 그와 친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오히려 자신을 친구로 불러준 것을 감사하다고 말한다.문재인의 동업자, 인권 변호사 출신의 새천년민주당 노무현은 48.9%의 득표율로 한나라당의 이회창을 누르고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된다."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대선 당시 곁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도왔던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후에 변호사 복귀 뜻을 여러차례 밝혔다.하지만..."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면 책임져라."결국 대통령이 된 절친한 선배의 말에 부산 출신의 인권 변호사는 생애 처음으로 청와대로 향한다.문재인의 청와대 경력.2003~2004 대통령 비서실 민정수석 비서관2004~2005 대통령 비서실 시민사회 수석비서관 2007~2008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 정무특보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초대 민정수석을 지낸 문재인은 녹내장과 고혈압등의 건강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난다.2012년 sbs 힐링캠프에서 그가 했던 말을 인용하면, "청와대의 직함이 별로 영광스럽지도 않아서 사표를 내고 쉬었다"고 한다.그러나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청와대의 연락을 거절한 그는, 네팔 산행 도중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노무현 대통령의 법정 대리인으로 귀국해 변호인단을 꾸린다.그리고 2005년 다시,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 비서실 시민 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의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다.문재인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노무현 대통령 인생 최악의 순간에 그와 함께 했고, 허탈함과 안타까움을 뒤로한채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생활을 마무리 한다.그리고 2009년 5월 23일.문재인의 30년 인생의 동반자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세상을 떠난다."새벽에 봉하산에 올랐다가 떨어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병원으로 후송 중인데 상태가 엄중하시다고 했다.""그 새벽에 봉하산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힘들어는 했지만, 굉장히 강인한 분이었다. 어렵지만 견디실거라 생각했는데.."노무현 대통령의 사망 직후 문재인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첫날에는 가슴이 찢어지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상주로서 수많은 일들을 결정해야 했다.그의 사인을 확인하고, 국민들에게 전 대통령의 사망 사실을 알리는 것도 모두 그의 몫이었다.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그의 눈물은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장 '노제'에서 터져나왔다.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과 1982년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합동 법률사무소'를 개업한 이래.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구이자 동지로서 한 시대를 동행했다.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를 항상 지니고 다닌다.1988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첫 출마 때 만든 선거 명함도, 항상 지니고 다닌다.차마 버릴 수가 없는 것이 이유이다.노무현 대통령이 죽지 않았더라면, 그는 정치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그럼에도 그가 정치에 들어선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의 뜻과 새로운 정치를 위함이라고 말한다."노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2011년 그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초대완료작성일
2017-05-27추천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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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밑에 서유리 토크쇼
안녕하세요? 서유리입니다. 이런 주제로 글을 쓰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네요. 경희대학교 토크쇼를 앞두고 부랴부랴 관련 서적이나 뉴스 등을 찾아보며, 나름의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페미니즘과 양성평등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꽤나 신중하게 서적들을 찾았습니다. 30년 넘게 살아오며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이론에 접목시켜 여학우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적잖이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마침 이런 일이 생기네요. '너 역시 메갈(?)이었구나! 딱 걸렸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양성이 평등하고, 평등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결코 어느 한 쪽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여성으로서, 남성들이 즐기는 문화 또한 많이 즐겨왔습니다. 그만큼 남성과 여성 두 입장 모두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독립적인 여성이며, 누군가에게 의존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SNS상에서 몇 남성들과 논쟁하지 않았냐구요? 남혐 하는거 아니냐구요? 얼마 전 있었던 일입니다. 녹음 일이 있어 평소의 방송메이크업 과 다른 가벼운 메이크업을 하고 셀카를 올렸었습니다. 웃는 얼굴이었구요. 그에 달린 멘션입니다. '얼굴이 이상하다, 화장이 이상하다, 눈이 짝짝이다.' 이 멘션은 한 남성분이 보내신 멘션이었고 저는 '촬영도 아니고 녹음이라 화장 안한건데 왜그러시냐. 남의 얼굴 지적하지 마시고 그러면 님도 비비라도 바르고 다니세요' 라고 답했습니다. '가방을 살까 덕질을 할까' 라는 트윗에는 '그러다 된장녀 돼요' 라는 멘션이 왔습니다. 이 또한 안타깝게도 남성분이셨구요. '제가 벌어 제가 사는데 된장녀라니요' 라고 답을 했습니다. 이것들이 남성이 보낸 멘션이었던 여성이 보낸 멘션이었던 제 답은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저에게 보내진 다소 무례한 이 멘션의 주인들이 이때는 공교롭게도 남성이었을 뿐입니다. 세상에 성별 무관하고 이상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런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집단 전체를 일반화하는 오류는 범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남녀 더치페이에 대한 논쟁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사례일 것 같아 저의 경우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성인이 된 이후로 제가 거의 밥을 다 샀습니다. 일찍 돈을 벌기 시작했기 때문에, 또래 남자동기나 동생들보다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밥을 샀습니다. 수많은 남자사람친구와 동생들이 제가 밥을 살 때 더치페이를 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가지고 신경쓴 적은 없습니다. 자. 제가 여학우들에게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를 할 것 같으십니까? 저는 양성평등주의자이고, 한 인간으로서 남성 여성 모두가 평등을 위해 힘을 모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동안 스스로는 나름 실천하고 있었으나, 이론적인 부분이 명확치 않아 고민하던 차에 토크 제의를 받고 제 의견도 어필하고 젊은 여학우들의 생각도 들어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수락했습니다. 이런 이슈가 생긴 김에, 가능하다면 주최측의 동의를 얻어 제 토크 내용을 녹음해서 공개하는 쪽으로 제의 해 보려고 합니다. 직접 토크 내용을 들어보시면 가졌던 의구심(?)도 풀리실 뿐더러, 공감이 가신다면 후에는 양성 평등을 위해 힘을 써 주시겠지요. 답답한 마음이 이제 좀 풀어지는 것 같습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도 모쪼록 저와 같은 마음이시길 바랍니다. 토크쇼 날이 여러모로 기대됩니다. 많은 준비를 해서 모두에게 유익할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마치며... 일부 커뮤니티에서 이번 이슈에 관해 과도한 인신공격성 비난이나 사실 무근의 루머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부디 자제를 부탁드리며 정도를 지나친 글들은 만약을 위해 저장하겠습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yurise0/220712636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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