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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논쟁으로 얻고 싶은 것.

jin-x 작성일 19.06.11 19:54:42
댓글 23조회 1,297추천 5

A급 전범, 망언 일본인에 훈장 상납하고도…정부 "취소 어렵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96&aid=0000265933

 

 일본인 수훈자 326명 가운데 12명 부적격

 

아베 총리 부친과 조부(A급 전범)에게 훈장을 준 박정희

박정희

기시 노부스케 - 1961년 11월 A급 전범(아베 총리 외조부)에게 훈장수여

사토 에이사쿠 - "독도는 일본의 영토라는데 의심이 없다."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에게 훈장 수여

아베 신타로 - 전 총리(아베 신조)의 부, 독도는 일본땅,

사사카와 료이치 - A급 전범 용의자에게 훈장 수여

가토 카쓰야 - 살아 있는 사람에게 생체실험을 한 731부대원에게,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여고다마 요시오 - 1946년에 A급 전범 용의자로 연합군에 체포, CIA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1948년에 석방

다카스기 신이치 - 한국을 20년 더 지배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 놈에게 훈장 수여

시나 에쓰사부로 - "조선병합은 영광스런 일본제국주의다.라고 한놈에게 훈장 수여

전두환

스즈키 젠코 - 야스쿠니 신사 참배한 놈에게 훈장 수여

나카소네 야스히로 -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소 설치에 관여한 인물에게 훈장 수여

 

김영삼

다케시타 노보루 - 일제 침략전쟁 미화발언을 한 놈에게 훈장 수여

이명박

모리 요시로 -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주장한 놈에게,수교 훈장 중 최고 등급인 광화대장 수여


웃기는 것은,안전행정부,훈장 수훈자 이름 공개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된다며 관련자료 제출 거부합니다.
일제 침략기는봉건국가의 몰락과 제국주의의 침략앞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새로운 사상을 찾았고 무정부주의부터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 등 많은 사상에 심취했을 시대입니다.김원봉 시대엔 어떤 사상을 가졌냐가 문제라긴 보다 독재주의로 변절된 남,북한의 권력자가 문제겠지요.이념전쟁에서 이미 공산주의는 쇠퇴했고 남은 것은 친일파-매국노, 그들의 뿌리를 감추려는 흔드는 공산주의만 남았습니다. 북한이 말로만 공산주의지 독재주의죠. 그들은 허상을 계속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황교한의 행보를 보면 그가 얻고 싶은 것은 그 허상을 보며 동조하는 세력 이겠죠.다만 6.25전쟁에서 김원봉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것은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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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in-x19.06.11 20:41:10댓글바로가기
    0
    결과론 적으로 보니 이렇게 보는 겁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남에서는 암살이나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궁핍하게 살았고 북에선 김일성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숙청을 당했습니다.
    김원봉이 김일성에게 부정적이었다거나 남침에 반대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175505
    뉴스 내용 일부-
    김원봉은 北 노동당 핵심 권력자였나?

    그렇다면 김원봉이 북한의 '핵심 권력자'였다는 세간의 평가는 맞는 걸까요? 초대 내각에서부터 장관급 직책을 맡았으니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평이 엇갈립니다. 실제 전문가들은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먼저 사실부터 확인해보면, 일부 잘못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원봉은 북한 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노동당' 당원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노동당 핵심간부'라는 표현은 틀린 말이 됩니다. 약산 김원봉은 노동당에 가입한 적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군소 정당인 '조선인민공화당'의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었습니다.

    당시 북에는 이름의 한자까지 같은 김원봉(金元鳳)이 여럿 있었는데, 노동당원인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함남적색농조사건으로 3년간 수감된 적 있는 다른 인물입니다. 이 김원봉은 조선노동당 강원도당 위원장을 지냈습니다. 약산 김원봉과 비슷한 시기인 1959년에 숙청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숙청 시기까지 겹치다 보니, 약산 김원봉이 노동당에 가입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북한 권력 구조의 특성상, 노동당의 당원이 아니고서는 핵심 권력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북한사 전문가인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북한이 추구하는 건 당국가 시스템"이라며, "(노동당원이 아닌) 김원봉이 맡은 직책은 사실 권력의 핵심이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김광운 연구관은 "김원봉이 1948년 무렵에는 민족해방운동의 대표 인물로 대우받았으나 북한 사회가 변화하면서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다"고 덧붙였습니다.
  • ZIOZIA19.06.11 20:06:24댓글바로가기
    0
    김원봉은 이미 6.25때 어떤활동했는지 다 나와있는데 뭘 더 논의하자는건가요

    6.25때 군사위원회로 전권대표로 참전하고 그 공로로 훈장을 받고
    6.25때 남한의 경제혼란을 목적으로 남파된 간첩들 지휘한것도 있는데

    어떤걸 더 논의하자는 글인가요.

    김원봉서훈은 청와대에서도 논란여지없이 현행규정상 불가라고 했습니다.

    현재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인물중 상훈받은자가 244명이나 됩니다.
    이들 상훈취소를 해야죠.

    상훈취소가 가능하도록 개정하기위한 법안도 이미 2016년도에 발의됐지만, 국회 심사위에서
    논의조차 되지않고있고요.
  • ZIOZIA19.06.11 20:06:24 댓글
    0
    김원봉은 이미 6.25때 어떤활동했는지 다 나와있는데 뭘 더 논의하자는건가요

    6.25때 군사위원회로 전권대표로 참전하고 그 공로로 훈장을 받고
    6.25때 남한의 경제혼란을 목적으로 남파된 간첩들 지휘한것도 있는데

    어떤걸 더 논의하자는 글인가요.

    김원봉서훈은 청와대에서도 논란여지없이 현행규정상 불가라고 했습니다.

    현재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인물중 상훈받은자가 244명이나 됩니다.
    이들 상훈취소를 해야죠.

    상훈취소가 가능하도록 개정하기위한 법안도 이미 2016년도에 발의됐지만, 국회 심사위에서
    논의조차 되지않고있고요.
  • jin-x19.06.11 20:41:10 댓글
    0
    결과론 적으로 보니 이렇게 보는 겁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남에서는 암살이나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궁핍하게 살았고 북에선 김일성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숙청을 당했습니다.
    김원봉이 김일성에게 부정적이었다거나 남침에 반대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175505
    뉴스 내용 일부-
    김원봉은 北 노동당 핵심 권력자였나?

    그렇다면 김원봉이 북한의 '핵심 권력자'였다는 세간의 평가는 맞는 걸까요? 초대 내각에서부터 장관급 직책을 맡았으니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평이 엇갈립니다. 실제 전문가들은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먼저 사실부터 확인해보면, 일부 잘못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원봉은 북한 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노동당' 당원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노동당 핵심간부'라는 표현은 틀린 말이 됩니다. 약산 김원봉은 노동당에 가입한 적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군소 정당인 '조선인민공화당'의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었습니다.

    당시 북에는 이름의 한자까지 같은 김원봉(金元鳳)이 여럿 있었는데, 노동당원인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함남적색농조사건으로 3년간 수감된 적 있는 다른 인물입니다. 이 김원봉은 조선노동당 강원도당 위원장을 지냈습니다. 약산 김원봉과 비슷한 시기인 1959년에 숙청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숙청 시기까지 겹치다 보니, 약산 김원봉이 노동당에 가입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북한 권력 구조의 특성상, 노동당의 당원이 아니고서는 핵심 권력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북한사 전문가인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북한이 추구하는 건 당국가 시스템"이라며, "(노동당원이 아닌) 김원봉이 맡은 직책은 사실 권력의 핵심이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김광운 연구관은 "김원봉이 1948년 무렵에는 민족해방운동의 대표 인물로 대우받았으나 북한 사회가 변화하면서 점차 주변부로 밀려났다"고 덧붙였습니다.
  • ZIOZIA19.06.11 21:36:23
    0

    북한 개국공신에다
    6.25 전권대표로 참전해서 공을세워서 북한 훈장을 받고
    6.25당시 남한 경제혼란과 선거방해목적으로 남파된간첩을 지휘한점도있고,
    게다가 1958년 환갑을 맞아 훈장을 한번 더 받습니다.

    그후에 숙청을 당하는건데 이런 행적을 단순히 수동적 동조로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죠.
  • jin-x19.06.11 21:45:11 댓글
    0
    그래서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죠.
    누구는 마지막을 북한에 동조한 공산주의자로 볼 것이고
    누구는 마지막을 민족주의자로 보니깐요.
    처음부터 김일성이 독재체제를 구축한 것은 아닙니다.
    독립운동가를 이용하기도 하면서 숙청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며 독재체재를 구축한 것이죠.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사람들을 서서히 권력에서 사라지게 한 것이고 그런면에서 김원봉은 김일성에게 껄끄러운 상대였을지도 모르죠.
  • ZIOZIA19.06.11 22:13:19
    0
    억지같은데요.
    6.25참전과 남파간첩을 지휘한건 직접적으로 한국에 피해를 준것이기때문에
    그부분에대해서는 역사적 책임이 있습니다.

    다만 독립군으로서의 업적은 당연히 인정받아야죠.
  • jin-x19.06.11 22:32:37 댓글
    0
    뉴스 링크 안 읽어 보신 것 같은데 읽어보시고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사회적 협의가 이뤄줘야 서훈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 드리즈트19.06.11 23:00:14 댓글
    0
    전 솔직히 말해서요, 김원봉이 대한민국에 반해서 북한을 적극적으로 도왔어도, 그걸 비판할 자격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개인을 배신했을때, 개인은 국가를 배신하면 안되는건가요?

    김원봉은 대한민국에게 배신당했습니다. 일제치하에서도 겪지않은 굴욕을 해방된 고국 에서, 그것도 일제치하에서 악질로 이름높은 친일고문경찰에게 당했습니다.
    전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이 김원봉이 북에 협력한것에 대해서 비판할 자격을 대한민국은 스스로 포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김원봉의 행적에 대해 평가할 권리도요.

    그런의미에서 김원봉에게 서훈을 준다면 저 개인적으로는 찬성합니다.
    말했다시피 대한민국이 김원봉을 배신했을때,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 평가할 권리는 대한민국이 스스로 포기한것이고, 그 이전의 행동은 서훈을 받아 마땅할정도의 공로들이니까요.
  • ZIOZIA19.06.11 23:12:27
    0
    이건 뭣 헛소리인가요.
    6.25당시 사망자가 137만여명인데 기습남침한건 북한입니다. 당연히 북한에 책임이있고
    그당시 김원봉에ㅣ 북한실세로서 참전한건 결코 그냥 넘어갈수가없습니다.

    한국 민간인 사망자만도 24만여명인데 그 피해를 입은 한국이 왜 그 책임이 있는 북한과 그 참전실세들에
    평가할 권리가 없다는 소릴합니까

    통일말고는 답없는겁니다. 최소 종전선언이후는 돼야 통합을 거론하면서 과거를 묻을수있는거지
    지금은 논의고 뭐고 할게없죠.
  • 드리즈트19.06.11 23:20:42 댓글
    0
    왜 없냐에 대한 제 생각은 이미 글에 다 적어놨는대 그걸 왜없냐고 다시 반문하신다면 어떻게 반응해야할지를 솔직히 모르겠내요.

    제가 말한 핵심 요지는 너무 간단합니다.
    국가에서 개인을 배신하고 적대시했을때, 개인 또한 국가를 배신하고 적대시할수있다.

    거기에 전쟁사상자가 몇명이고 누가 먼저 공격을 했고, 그런건 다 부수적인겁니다.
    개인이 국가를 적대시한 결과로 벌어진 일이고, 그 개인이 국가를 적대시한 이유는 국가가 먼저 개인을 배신하고 적대시했기때문이니까요.
  • ZIOZIA19.06.11 23:53:27
    0
    뭔 헛소리지 전쟁사사장자 몇명이고 누가 먼저 공격했고는 다 부수적인거라니 ..
    그게무슨 개인이 국가를 적대시한 결과에요.

    북한 김일성이 적화통일할려고 기습 남침으로 밀고내려온거고 거기에 적극협력한건데
    그 공로로 훈장까지받고

    김원봉만 그런대우를 받은것도 아니고, 다 김원봉같은 선택을 한것도 아닙니다.
    김원봉은 독립투사때도 하루도 쉬지않고 독립운동했다고 표현될만큼 뭐든 열성으로 하는인물이었으니
    북한에서도 똑같이 그렇게 했겠죠.

    그러나 그것이 현재 한국입장에서는 받아들이수없는 역사적 책임인거고.

    북한에 올라가게된 경위에대한 정서적인 참작은 있을지라도, 북한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는
    결코 그냥 넘어갈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 드리즈트19.06.12 00:16:40 댓글
    0
    김원봉만 그런 대우를 받지않았다고 해서 김원봉이 그런 선택을 한것이 비난받아야할 일이 되는건가요?
    김원봉이 어떤 대우를 받았느냐가,그런 행동을 선택할 만한 일을 당했느냐가 중요하지, 다른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느냐가 중요합니까?
    김원봉만 그런 대우를 받은거 아니고 다른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안했다?
    민주화투사 고문하고 잡아갈때, 독재자들이, 그 하수인들이 그렇게 말하곤했죠.
    다른 사람들 다 얌전히 있는대 유별나게 왜 그러느냐고

    헛소리 헛소리 하시는대, 전 그게 더 헛소리로 들립니다.

    그리고 그 협력의 원인이 바로 국가에서 김원봉을 먼저 배신한 결과로 발생한 일이라는 말을 하고있는건대,
    그건 무시하고 계속 최종적으로 벌어진 일의 결과만 봐라 를 반복하시는군요.

    결과의 규모, 성질만 주목하지말고 그 행위가 발생한 원인이 무엇이냐를 저는 묻고있는거잖습니까.
    그 말이 그렇게 이해가 안되십니까?
  • ZIOZIA19.06.12 00:33:33
    0
    김원봉 논란을 님처럼 연속성에서 판단하려니 문제가 되는겁니다.

    김원봉논란은 북한으로 넘어간 이전과 이후를 분리해서 이해해야합니다.
    북한으로 넘어간 계기가 당시 남한에서 버림받고 목숨의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라고해도

    북한에서 북한정치인으로 행한 행동에 대해서는 그역시 역사적 책임을 져야되는겁니다.

    북한으로 올라갈수밖없는 사정을 중요하게 여겨서 북한에서의 행적조차 미화된다면
    친일파가 될수밖에없는 사정이 있어서 친일행적으로 독립군때려잡은 친일파도 죄를 물을수없고
    일본 전범자들도 목숨의 위협을 받아서 어쩔수없이 전범자가 됐다면 그 역시 죄를 물을수없게됩니다.

    그 과정에대한 정상참작은 있을지몰라도 그 행위에대해서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하는겁니다.
    게다가 김원봉은 단순히 북한 정치인도 아니고,
    북한 개국공신에 장관급역임에 625당시 전권대표로 훈장을 받고 남파간첩까지 지휘했는데

    그걸 남한에서 먼저 버린거니 우리가 평가할수없고, 잘못을 물을수없다고 한다는게 말이안되는거죠.
  • 드리즈트19.06.12 00:59:59 댓글
    0
    말이 안된다고만 반복하지마시고, 그게 왜 말이 안되는지를 한번 설명해보십시오.
    님의 말엔 왜 가 빠져있잖습니까. 이것저것 다 쳐내고나면 그냥 말이 안된다 는 말만 반복하고 있으신겁니다.
    왜가 빠진 반박은 반박이 아닙니다.

    왜 연속적으로 보면 안되는가, 왜 이전과 이후를 분리해야하는가, 왜 말이 안되는가, 다 왜가 없잖습니까
    혹시 북한 개국공신에 6.25때 훈장받았다 라는 말이 왜 라고 생각은 말아주셨으면 하내요.
    제 문제 제기는 애초에 왜 그런일이 벌어졌느냐에서 시작하는거니 말입니다. 그건 왜가 되질못하죠.

    그렇게 따지면 친일과 전범들도 합리화 된다구요?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립니까
    부역자들이 부역자가 된게 조선이 그들을 배신해서 그렇게 된겁니까?

    님은 제말의 요지를 정말 하나도 이해조차 못하고있으시내요, 아니 애초에 이해할 마음이 없으니 이럴수도 있지만,
    제가 말하는건 김원봉에게 먼저 잘못을 한것이 누구냐는겁니다.
    그래서 국가가 먼저 개인을 배신했을때, 개인이 국가를 배신하면 안되느냐는 질문을 했잖습니까

    다시한번 말씀드리는대, 반박을 하려면 왜 그렇게 주장하느냐, 왜 그 주장이 틀렸느냐를 좀 넣어서 말하십시오.

    왜 님의 연속적으로 보면 안되느냐가 잘못된것이라고 생각하냐하면, 인생은 연속된것이기때문에 그렇다고 말씀드리죠.
    이근안이 목사가 되었다고 변했습니까?
    성범죄자들은 형기를 다 채웠는대 왜 전자발지 채우죠? 연속적으로 보면 안된다면 죄에 대한 처벌, 다 끝냈으니까 그러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 ZIOZIA19.06.12 09:34:51
    0
    왜 연속적으로 볼수없느냐
    대한민국의 역사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할수없기때문입니다.
    공과 과를 나눠서 보지않는다면 이런 끊임없는 말꼬리잡기만 계속될뿐입니다.

    광복전 독립운동가라고해서 모두가 같은 이념속에서 독립운동한게 아닙니다.
    공산주의를 근본으로하는 좌익단체의 독립운동 반대의 우익단체 독립운동이 있었습니다.
    김원봉역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우호적이었고, 우익단체와는 광복군합류 이후에도 갈등은 계속됐습니다.

    “김원봉이 내게 특별히 만나기를 청하기로 어느 날 만났더니 그는 자기도 (독립운동 세력) 통일운동에 참가하겠은 즉 나더러도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그가 이 운동에 참가하는 동기는 통일이 목적인 것보다도 중국인에게 김원봉은 공산당이라는 혐의를 면하기 위함이라 하기로 나는 통일은 좋으나 그런 한 이불 속에서 딴 꿈을 꾸려는(同床異夢) 통일운동에 참가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백범일지』 中)

    김구가 쓴 『백범일지』엔 김원봉에 대한 그의 시각이 잘 드러납니다. 김구는 일생동안 공산주의·사회주의 세력을 매우 불신했던분으로 1920년대 무장투쟁이 두드러질때는 수면위로 떠오르지않았지만
    1930년대부터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광복군합류후에도 이범석 지청천등과의 갈등도 계속됐고 장준하 편입과정을 높고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1935년 김원봉이 창당한 민족혁명당역시 레닌이나 마오쩌둥의 전술을 받아들이 것이었고요.

    김원봉의 의열단역시 대부분 중국공산당에 편입 이탈되고, 그후 일부만 데리고 광복군에 합류한겁니다.
    광복군 합류후에도 우익단체이던 광복군과는 서로 갈등상황이 계속됏어고.
    광복군 주요 지휘자였던 이범석은 김원봉은 자신들 세력만키우기력하고 옌안과 내통하고있다고 비판을한점이 장준하열전에도 나옵니다. 그러나 그당시의 공산주의는 오늘날의 부정적인시각만으로 볼수없고
    굉장히 순수한생각에서 나왔고 그 부정적인 면이 나타나기전의 사상이라는점을 참고해서 그자체가
    나쁘다고는 볼수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광복후 외부영향없었어도 내부적으로 좌우갈등은 분명존재했을것입니다.
    친일경찰에 뺨맞고 수모를 받은게 결정적이었었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수모가 없었어도
    공산주의를 근간으로 독립운동한 좌익단체들은 북한으로 모였을겁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독립운동이라고 모두가 같은이념으로 운동한것이 아니지만, 광복을 위한다는 하나의 목적으로
    활동한점. 그리고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점에서
    광복활동과정에서의 모든 독립운동가들은 좌익이든 우익이든 모두 대한민국의 역사로 받아들이게됩니다.

    그러나 북한으로 넘어간후의 김원봉의 행적은 북한의 역사지.
    그 북한에서의 행적까지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는것은 아닙니다.

    나눠서 이해해야한다는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독립운동과정의 김원봉은 대한민국의 역사지만,
    김원봉이 북한정치인으로서의 행적은 북한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에 올라간것까지는 국가에버림받아서라는 감성적인 동정을 받을수있으나
    당시 그러한 수모없이 북한으로 넘어간 좌익단체들이 많기때문에 북한에 자리잡은 김원봉을 단순히
    남한에서 버림받았기때문이라고 단정지을수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단순히 남한에 버림받은인물이 북한개국공신부터 장관을 역임하고
    6.25 전권대표로 참전해서 그 공로로 훈장을 받고,
    환갑을 맞아 또 훈장을 받고 . 남파간첩지휘하고 하는 지위를 누리고 그러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겁니다.

    북한에 올라간후의 북한정치행보는 친일경찰에 수모를 당했다. 국가가 먼저버렸다 등의 동정받을수있는 선을 훨씬 넘어선 행위입니다.

    그러한것 조차 동정심으로 이해받을려면 최소한 종전선언이나, 통일이후에나 가능한
    정서적인 부분을 지금 강조하는거 말이 안됩니다.

    이것이 왜 독립운동가 김원봉과, 북한정치인 김원봉을 분리해서 봐야하는 이유입니다.
  • 드리즈트19.06.12 22:17:40 댓글
    0
    퇴근하고와서 이게 무슨 헛된 노력인지 싶긴하지만서도....
    정말 이제는 무슨말씀을 하시는지 당췌 모를지경이내요.

    연속적으로 볼수없는 이유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할수 없기때문이다??
    이게 대체 무슨말인가요?
    역사는 단편적으로 이해할수없죠. 그러니까 연속적으로 봐야하는거고, 그건 개인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연속적으로 봐야하는 근거를 말하면서, 주장은 연속적으로 볼수없다는 주장을 하시니 정말 이걸 뭐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내요.

    그리구요...하 역사를 좀 띄엄띄엄 아시나본대요...

    김원봉은 엄밀히 따지자면 민족주의 계열의 중도파입니다. 그리고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좌익으로 몰려서 탄압받은 가장 큰 이유는, 이념에 관계없이 양쪽 모두 통합해야한다는 주장을 주로 했기때문이구요.
    즉 때려잡자 공산당이라고 말할때, 민족끼리 그런거에 신경쓰지말고 힘을 합치자 라고 말했다가 빨갱이 취급받은 사람들이라는겁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우호'적이어서 그랬던것이 아니라요.

    그리고 김원봉은 여운영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주도한 사람중 한명이구요, 이에 가장 크게 반발한 사람이 웃기는 일이지만 가장 좌측에 있었다고 할수있었던 박헌영입니다.

    또한 이건 말하기 조금 조심스러운말이긴하지만, 김구선생은 위대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보자면 이념적으로는 너무 편향되어있었고, 그렇게 신중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사실이 아닌것을 사실로 판단해 정치적인 판단에 실수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운동가로서의 김구는 카리스마있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존경받아 마땅한 운동지도자였지만, 정치인으로서의 김구는, 냉정히 말하자면 그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표적인게 찬탁반탁운동에 대한 김구의 태도였죠. 당시 김구는 동아일보의 (고의라고 생각되는) 오보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찬탁운동을 격렬하게 비난했었습니다.
    또한 광복후의 반헌영등에 의한 친일파 극각 숙청론에 대해서도 건국후 배제론을 발표해 친일파청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바도 있으며, 좌우합작운동에 대해서도 당시에 당수로 있던 한독당 내부의 반대때문도 있었겠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않고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는 한독당의 구성원중 상당수가 친일파세력이었던점도 크게 작용했을것이라고 판단하는것에 무리가 없을것입니다.

    김구가 백범일지에 이러이러하다고 적었다고 그게 모두 사실이 되는것은 아니며 그것을 따라야하는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김구의 생각일뿐이고, 백범일지에 적혀있는 백범의 말 중 당시의 실제 사건과 모순되는 기록 또한 꽤나 찾아볼수있습니다.

    또한 김원봉이 북에 잔류하며 비서였던 사마로에게 적어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북조선은 그리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남한 지역의 정세가 너무 나쁘고 심지어 나를 위협하여 살 수가 없다'

    김원봉이 한국에서 핍박받아서 넘어간게 아니라 원래 좌파여서 넘어간것처럼 생각하시나본대, 정말 한숨만 나옵니다.

    북한으로 넘어간후의 김원봉의 행적은 북한의 역사다? 나눠서 이해해야하는 이유가 그거라구요?
    정말이지 이건 단언하지않은수가 없군요. 그건 헛소립니다.

    김.원.봉.의 행적이 김원봉의 역사지, 그게 어떻게 북한의 역사가 됩니까. 국가에 관계없는 개인의 역사라는것이 있는것이고, 그것은 어느 국적으로 바뀌었느냐에 따라서 사라지거나 바뀌거나 하는 간단한것도 아닙니다.

    님의 논리대로라면 일제시대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뀌었으니 일제시대때의 친일파들 개개인의 역사는 사라지고, 대한민국의 역사만 남아야하겠내요. 이걸 진짜 말이라고 하십니까?

    왜를 말해보라고 했더니 정말이지, 괜한말을 했내요. 왜가 되지않는,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근거를 자신의 주장의 근거라고 가져오질않나,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말이 안되는 소리를 근거라고 말하시질않나, 진짜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리고 동정심이라니....한숨만 나오는군요.
    저는 가장 냉정하게 따져보고있는겁니다.
    국가라는것의 의미는 구성원들을 지키고 보호하는것에 그 본령이 있으며, 그것을 지키지않고 반대로 국가가 먼저 구성원 개인을 공격하고 배신한다면 그 개인에게 있어서 국가란 의미가 없는것이고, 그렇기에 개인은 국가에 충성을 할 필도도 없다 라는겁니다.
    또한 민주주의라는 제도하에서 국가의 모든권력은 국민에게 나오다는말은 반대로 국가가 벌이는 일에 대한 책임 또한 국민 개개인에도 있다 라는 의미가 되는겁니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 국가의 잘못의 책임은 국민에게도 있고,
    바로 그 의미에서 김원봉의 행적에 대해 대한민국과 그 국민은 판단과 비난의 권리가 없다라는것입니다.

    이 말의 어디에 동정심과 정서적인것이 있죠? 저는 가장 근본적인 원칙을 가장 냉정하게 말하고있는겁니다.
    오히려 피해를 봐라 몇명이 죽었다 라고 말하는게 정서적인점을 자극하는 언어죠.

    마지막으로요, 그 북한에서 훈장을 받았다, 그게 사실이라고 완전히 믿으시는것같은대요, 그거, 확인된바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6.25 이후의 김원봉에 대한 기록은 남로당파의 숙정이 시작되면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어느정도로 사라졌느냐하면 아직 김원봉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그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밝혀진바가 없습니다.
  • ZIOZIA19.06.12 23:38:59
    0
    님이 가장 잘못 말하고있는게
    김원봉의 행적에대해 대한민국과 그 국민은 판단과 비난의 권리가 없다라고 말하는점입니다.

    김원봉은 북한 실세로서 6.25당시 군사위원회 평안북도 전권대표로 참전했습니다.
    통합 100만명 한국 민간인만 20여만명이 사망한 한국전쟁을 일으킨 북한 실세로 전쟁에 참여했는데
    어떻게 대한민국이 비판하고 평가할 권리가없다고 말하는겁니까?

    이런 잘못된 인식으로 김원봉을 바라보니 말이 안통하는겁니다.

    김원봉이 북한에서 필부로 살아갔으면 그건 김원봉 개인의 역사이지만

    북한 초대내각에서 국가검열상이라는 장관급직책을 맡고
    6.25당시 군사위원회 평안북도 전권대표를 맡고 남파단첩을 지휘했습니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게 어떻게 김원봉 개인의 역사입니까

    당장 대한민국의 장관, 각부의 장 , 육군참모총장등의 행위는 그대로 대한민국의 역사로서 기록이되지
    그게 개인의 역사로 남습니까?
    장관급의 행위가 개인의 역사면 전부 개인의 일탈이되는겁니다. 뭔 말도안되는 소리를합니까

    김구에대한 평가에대해 님이말하는 부분역시 기록된 역사입니다. 그 기록된 역사에대해
    김구에대해서는 다양한 평가를 인용하면서 김원봉에대한 다양한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는것도 말이안되네요.

    또한 기존에 알려진 역사적 기록에 반대되는 말을 하고싶은면 타당한 근거링크라도 달고 그런말을하세요.

    김원봉의 기록이 사라지는건 1958년 환갑을 맞아 또한번 노력훈장을 받고
    1958년 6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2기 3차 회의에 참석한게 마지막 공개활동입니다.
    그후에 숙청됐다고 추정되는거고요.
  • ZIOZIA19.06.13 00:21:46
    0
    그리고 훈장을 받은거 확인된적없다는 헛소리좀 하지마세요.
    제대로 확인도하지않고 알지도못하면서 뭔 확인된바가 없다는소릴해요.

    이미 국가보훈처에서 김원봉토론회때 1952년 3월 19일 북한노동신문기사가 공개됐습니다.
    김원봉 국가검열상에게 조국해방전쟁(6.25)에서 공훈을 세운 공로로 노력훈장을 수여한다.
    라는 내용이 국가보훈처 김원봉 자료집 17페이지에 실렸습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490870
  • 드리즈트19.06.13 00:29:26 댓글
    0
    그 어떻게 비판하고 평가할 권리가 없냐는것은 이미 충분히 말했습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계속, 반복해서, 매 답글마다, 님이 원하는 그 어떻게는 말하고있잖습니까

    님이 그걸 안듣고, 반박은 못하면서, 반복해서 그럴수있다 라고 반복적으로 말하고있으시죠.
    반박을 못하겠으면 그냥 말을 마시던가요. 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고 그게 이유나 근거가 됩니까?

    저보고는 무슨 정서적인 부분을 강조한다는둥, 동정심으로 이해받으려한다는둥하면서,
    님이 지금 반복하고있는게 뭡니까?
    사상자가 몇명인대 만 반복하면서, 정서적인것만 반복하고, 자기말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으십니까?

    다시말하는대, 저는 근본적인 질문을 한겁니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책임은 무엇이냐,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하는 역할은 무엇이냐,
    국가가 그 역할을 다하기는 커녕,반대로 국민 개인을 공격했을때, 공격받은 개인에게 국가는 의미가 없는것이며,적대시한다한들 그것은 그 개인을 탓해야하는것이 아니며 국가를 탓해야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의 잘못은 또한 국민의 잘못이기도 하기에 국민 또한 그것을 비판할 권리를 잃은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며, 그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오기때문이다!!!!

    제 말을 부정하고싶으시면 이걸 반박해보란말입니다! 그놈의 사망자 몇명 타령만 앵무새처럼 반복하지마시고!

    그리고 김원봉이 북한에서 뭔가해서 북한의 역사에 남을만한 일을 했다고해서, 김원봉 개인의 역사가 어떻게 개인의 역사가 안된다는겁니까!!
    북한의 역사속에서의 김원봉이 있는것이지, 김원봉이라는 개인의 역사가 북한의 역사에 편입되는게 아니라는거라구요!

    대한민국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역사고, 그 속에 사는 개개인에게는 그 개개인의 역사가 다 따로 있다는겁니다.
    그리고 그 개인의 역사는 그 사람이 어디에 소속되어있는냐에 상관없이! 연속적이고 독립적으로 쌓이고 있는거라구요.

    님의 논리대로라면!! 국가가 망했을때!! 그 국가의 역사에 남은 사람들 개개인의 역사가 소멸되는거냔말입니다.
    이런 간단한것도 모릅니까?
    님의 논리대로라면 친일파 청산은 왜 해야합니까. 일제가 망하고 한국은 광복되면서 친일파 개개인의 역사는 사라지는게 되는건대!!!

    그리구요, 님이 말한 그 역사적 기록에서 일단 헛웃음이 나옵니다.
    북한이 자신들의 공식기록을 공개한적이 있습니까?
    전부 증언같은걸로 추정할뿐이지, 공식적인 기록으로 확인된적은 없습니다.
  • ZIOZIA19.06.13 01:05:42
    0
    6.25사망자가 100만명이고 한국 민간인 사망자가 20만여명이라고 말하는게 뭔 정서적인발언이라는겁니까?

    6.25는 북한의 일방적 남침이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한국의 피해인데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게 무슨
    정서적이고 동정심이라는겁니까?

    뭔 ㅋ 국민주권타령이 나와요 김원봉이 북한을 넘어가는 상황에대해서는 생명의 위협과 수모라는
    인정이나 이해를 얻을수있으나

    북한정권에 적극가담하고 6.25의 전권대표로 참전하고, 남파간첩을 지휘한 시점에서 그 이해와
    인정의 범주를 벗어난겁니다.

    님은 지금 주권은 국민에게있고 국가의 주인이 국민인데, 그 국민이 김원봉을 버려서 김원봉이
    북한에 갔으니 그 이후행적은 대한민국 국민과 국가가 평가할 자격이나 권한이 없다는 소릴하는거
    아닙니까?

    이게 무슨 중2병걸린 감성에서나오는소리입니까

    김원봉이 북한에 올라가게된 상황에대해서는 안타까울수있으나, 그후 김원봉이 북한 정권에
    적극 개입하고 6.25남침에 참여한 시점에서 그 안타까움의 범주를 넘어선겁니다.

    북한정치인으로서의 김원봉인거지. 뭔 헌법이나 읇조리고있어요.

    개인의 역사가 북한의 역사에 편입되는게 아니라고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겁니까?

    문재인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행동한 역사가 대한민국에 편입 안됩니까?
    강경화장관이 장관으로서 행동한 일들이 대한민국에 편입 안됩니까?

    북한정치인으로서의 김원봉의 행동은 당연히 소속국가인 북한의 역사에 편입되는거지 뭔 이상한
    소리를 하고있어요.

    이상한 헛소리를하는데 대한민국의 역사라는거 자체가 사람이 모여서 쌓아올린 역사인겁니다.
    역대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대통령과 장관으로서 행동한 정책들역시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개인이라고해도 개인이 모여서 영향력을 발휘한것역시 단순히 개인의 역사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금모으기운동, 한일월드컵 길거리응원, 촛불집회 등 개인이모여 대한민국의 역사가 된거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고있는겁니까.

    꺼꾸로 말하고있군요. 님말대로 개인의 역사는 개인의 역사일뿐 개인의 역사가 국가에 편입되지않는다면
    뭐하러 독립운동과 국권회복운동을 합니까.
    일본이 점령하든 미국이 점령하든 개인의 역사일뿐인데

    일본의 침략과 점령에 끝까지 항거한이유는 개인들의 역사를 일본의 역사에 편입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손기정은 마라톤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뛰어야했습니다.

    단순히 손기정 개인의 역사면 가슴에 일장기든 뭐든 손기정개인의 역사일뿐이죠.
    이런 간단한 논리도 거꾸로 이해하고있으면서 저한테 모르냐고 되묻는겁니까?

    말이 되는소리를 하세요
    님이 국가보훈처보다 자료가 더 많고 정보력이 뛰어납니까?
    국가보훈처에서 제공한 자료도 믿지않겠다면 뭘믿겠다는겁니까?

    국가기관이 수집해서 정리한 자료를 믿지않으려면 그에 합당한 반대근거가 있어야하는데
    국가보훈처든, 한국사편찬위원회든 북한자료는 다 공식기록아냐 안믿어 이딴소리입니까?

    통일부가 수집하고 관리하는 북한자료센터나 북한인권기록센터 보훈처에서 수집한자료
    한국사 편찬위원회등의 자료들이 머릿속 상상에서 나왔나 봅니다.

  • 드리즈트19.06.13 01:33:39 댓글
    0
    잘시간도 훌쩍 넘기기도 했고, 정말 같은 말만 반복하는게 지겨워서 여기까지만 하겠는대,

    XX명이 죽었는대 어떻게 그렇게 말할수가 있냐 가 정서적 발언이 아니면 뭐가 정서적 발언이라는건가요?

    김원봉의 행위가 이해를 벗어난다는 말의 근거는 뭡니까? 까놓고 말하죠. 당신이 뭔대 그걸 판단하십니까?
    반대로 이해될수있는 범위는 그럼 어디까진대요? 북으로 넘어갔으나 일개 개인으로 살았으면 이해할수있다는겁니까? 당신이 뭔대 그런 판단을 내리시는거죠?
    법대로? 그 법을 관장하는 국가가 잘못을 한건대 법대로 라는 말이 성립이 됩니까?
    그건 피해 당사자가 판단할 일입니다. 당신이 판단할 일이 아니라요.

    그리고 개인의 역사가, 국가의 역사에 편입된다구요?
    진짜 멍청한 소리는 좀 작작하시라구요.
    개인의 역사가 국가의 역사에 편입되는게 아니라, 개인의 활동이 국가의 역사로 남는것이고, 개인의 역사는 또한 동시에 개인의 역사로 남는겁니다.

    문재인대통령의 역사가 대한민국의 역사에 편입이 안되냐구요? 당연히 안되죠. 둘은 따로, 그리고 동시에 존재하고있는겁니다.
    계속 반복하는대,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국가가 망했을때 그 국가에 소속된 사람, 개인의 역사가 사라지는게 되는거고, 누군가의 국적이 바뀌면 마찬가지로 이전국가에서의 개인의 역사가 사라지는게 되는겁니다.
    개인의 역사 라고 표현을 하니까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시는것같은대 개인의 역사라는것은 그 개인의 삶의 궤적을 말하는겁니다. 그게 국가가 사라진다고, 국적이 바뀐다고 없어집니까?

    개인의 역사는 개인의 역사고, 국가의 역사는 국가의 역사입니다.
    저보고 간단한것도 모른다구요? 님이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그건 님 머릿속에서만 간단한거고, 실상은 그냥 말이 안되는걸 말이 된다고 생각하고있는것뿐입니다.

    마지막으로요, 일단 그 자료라는거, 보훈처가 수집한게 아니라 관련연구하는 사람들이 수집한거고,
    그 교수들이 토론회를 한거고, 그 토론회의 주체자가 보훈처인겁니다.
    그리고 그 교수들의 자료는 다른게 아닙니다. 노동신문, 문자로 된 자료는 딱 그거 하납니다. 북한의 공식 기록이 아니라요.
  • ZIOZIA19.06.13 08:56:40
    0
    진짜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네요.

    그럼 개인의 행위가 국가의 역사에 편입되는데 까지는 인정하는거죠?

    그럼 개인의 행위가 어떤 시기에 어떤 국가의 역사에 편입됩니까?
    바로 소속되거나 해당국가의 역사적사건의 장소에있을때 그 국가의 역사에 편입됩니다.

    그럼 김원봉이 어떤 국가의 소속으로 국가 검열상이돼서 활동하고, 어떤 국가의 소속으로
    6.25에 참전했습니까?
    북한의 소속으로서 그런 활동했으면 당연히 북한역사에 편입돼는거고

    그리고 100만명사망하고 민간이 20만여명이 사망한 사실에대한 책임을 묻는게 왜 감성적인겁니까
    피해자로서 가해자에게 당연한 권리로 책임을 묻는거지

    일본에 책임묻는거나
    그럼 세월호사고로 책임을 묻는거나 몇명이 사망했고, 그 과정이 잔혹했음을 사실대로 얘기하면 그게 감성적이고 정서적발언입니까?

    북한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정책이나 방향성 성과를 선전매체를 통해 발표해왔기때문에
    기록으로서의 의미가 있는겁니다.

    북한의 문서화된 공식기록을 확인하기전에는 아무런 북한관련이슈를 믿지않겠다는 말인데
    이건 정말 웃기는소리네요.

    북한의 선전매체는 사실상 북한의 공식적인 정책이나 방향성에대해 발표를 많이 하는데
    청와대의 발표를 우리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도 문서화된 공식기록을 확인해서가 아니라
    발표의주체가 누구냐의 문제인겁니다.

    문서화된 북한의 공식기록확인하기전에는 믿기않겠다니, ㅋ

    김원봉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에대한 기록역시 자료수집을 통해 공식기록된거고
    그 기록이 반론근거가 나오기 전에는 계속 인정을 받는겁니다.

    님이 김원봉훈장에대해 반론을하려면 김원봉이 훈장을 받은 자료에대해 반대되는 근거를갖고
    얘기를 하세
  • nofogo19.06.11 21:43:23 댓글
    0
    하나 빼먹은거같아서요.
    도요다 다이쥬 - 일본 대사관저의 히로히토 일왕의 분향소를 조문함
  • jin-x19.06.11 22:01:48 댓글
    0
    조문외교도 모르는가 보네.
    국회의장과 국무총리도 분향소 들렀고 일본 대사관이 밝히지 않았지만 600명이 다녀갔음.
    그리고 당시 여당인 민정당도 당차원에서 따로 조문단을 보냄. 여기에는 박태준도 포함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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