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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가장 사랑했던 미국장군

무수타파 작성일 23.10.08 08:49:16
댓글 14조회 9,850추천 42
1.jpg 일본이 가장 두려워했던 미국 장군
2.jpg 일본이 가장 두려워했던 미국 장군

 

커티스 르메이(Curtis LeMay, 당시 소장)이지휘하는 제20공군은

일본 본토 폭격을 위해 남태평양 보급기지의 모든 폭탄을 끌어왔고매일 수백여대의 B-29 전략 폭격기들을

일본 상공으로 보내었다.르메이 장군은 남태평양 전선의 모든 폭탄을 일본 주요도시에 쏟아부어 1주일만에

모두 사용해버렸다

 

 

부활하소서 장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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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1723.10.08 08:58:28댓글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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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또곰23.10.08 09:03:50댓글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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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티스르메이가 한국전쟁때 평양과 수원등 주요북한점령도시에도 도쿄마냥 폭탄을 떨어뜨렸고, 피난민들 행렬에 기총소사를 퍼부으라고 지시한 자란것도 알고는 있습시다.
  • 이원상23.10.08 14:55:09댓글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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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의 그 저돌적인 사상과 필요하면 민간인이 섞여 있어도 가차없이 폭격하는 단호함 덕분에 밀려오는 중공군의 진격 저지했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혼란에 빠져 후퇴하던 연합군이 지금의 3.8선 부근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시다.

    그리고, 커티스르메이 장군 입장에서는 동맹국은 남한 입니다. 남한 입장에서는 북한이 동포지만, 르메이 장군 입장에서 북한은 동맹국인 남한을 위해 물리쳐야 하는 적일 뿐이었고,
    그레서 북측 도시에는 가차없이 폭탄을 떨어뜨렸고(그레야 동맹인 남한이 안전하니까), 피난민 행렬에 기총소사를 한 것은 북한군들이 피난민 들에 섞여서 이동하니까 공격한 것입니다. 그들을 구출하고 싸울게 아니면 같이 몰살시키는게 남한을 지키는데 유리하니까요.
    민간인을 총알 받이로 내세운 북한군의 잘못이 더 크다고 봅니다. 두번째는, 피난 행렬을 지키지 못한 국군의 잘못 이겠죠. 르메이 장군은 남하하는 북한군을 공격 해야 동맹국을 지킬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 거고(게다가 자국 국민도 아님)...

    더 좋은 방법도 있었을 수 있겠지만, 6.25 당시의 남한은 전투능력 처참했고(용감했냐 안했냐는 둘째 문제고, 보충병 끌고와서 훈련도 재대로 안시키고, 보급도 부족한 상태에선 전선에 투입하면, 당연히 도망자가 속출하지 재대로 싸울 사람이 있을리가...), 연합군의 손에 나라의 운명을 맡긴 상황이라(3.8선도 사실 대부분 연합군이 지켜 준 거지, 한국국은 방어전에서 거의 활약 못함. 활약 못한 정도가 아니라, 한국군 혼자 밀려서 전체 방어선이 후퇴한 경우가 허다함. 한국군 때문에 뒤로 밀린 방어선 끌어올리는 건. 연합군 몫이었고...) 커티스 르메이 장군의 미친 폭격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3.8선도 못지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합군 입장에서는 동맹국의 영토를 수호하는게 우선이고(자국의 이익과 부합되니까), 자신들의 국민인 자기나라 군인들을 챙기는게 다음이고, 마지막이 남의나라 민간인 인걸요. 한국도 베트남 전에서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 배다른민족23.10.08 08:57:18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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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놔 사랑했구나..
  • 281723.10.08 08:58:28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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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또곰23.10.08 09:03:50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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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티스르메이가 한국전쟁때 평양과 수원등 주요북한점령도시에도 도쿄마냥 폭탄을 떨어뜨렸고, 피난민들 행렬에 기총소사를 퍼부으라고 지시한 자란것도 알고는 있습시다.
  • 삭제 된 댓글 입니다.
  • 이원상23.10.08 15: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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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색수염 르메이 장군은 케네디 정부 때 카스트로가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만들자 쿠바에 선제 핵공격을 해야 한다고 하는 강경파 였는데, 그런 르메이 장군을 케네디가 공군 참모총장에 임명했습니다, 이유는 핵전쟁이 정말로 벌어질 경우 핵전쟁을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지휘관은 르메이 장군밖에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 2차대전대 일본 쑥대밭
    - 한국전쟁때 중공국의 남하 저지
    - 베를린 봉쇄때 베를린에 물자 수송작전 지원
    - 쿠바 사태때 공군 참모총장
    - 여담으로 베트남 전에 보급된 M16 조차 르메이 장군이 공군기비 방어용으로 적극적으로 구매해서 육군에 시범운용 해달라고 맏겼 던걸 베트남 전쟁이 터지자 미육군이 가져다 쓰기 시작한겁니다.

    그냥 호전광 이라기에는 업적도 많고, 밀려오는 중공군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그 호전성 덕분 이었습니다. 지금 시대 기준에는 너무 극단적인 인물이지만, 2차대전 전,후로는 꼭 필요했던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원상23.10.08 14:55:09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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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의 그 저돌적인 사상과 필요하면 민간인이 섞여 있어도 가차없이 폭격하는 단호함 덕분에 밀려오는 중공군의 진격 저지했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혼란에 빠져 후퇴하던 연합군이 지금의 3.8선 부근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시다.

    그리고, 커티스르메이 장군 입장에서는 동맹국은 남한 입니다. 남한 입장에서는 북한이 동포지만, 르메이 장군 입장에서 북한은 동맹국인 남한을 위해 물리쳐야 하는 적일 뿐이었고,
    그레서 북측 도시에는 가차없이 폭탄을 떨어뜨렸고(그레야 동맹인 남한이 안전하니까), 피난민 행렬에 기총소사를 한 것은 북한군들이 피난민 들에 섞여서 이동하니까 공격한 것입니다. 그들을 구출하고 싸울게 아니면 같이 몰살시키는게 남한을 지키는데 유리하니까요.
    민간인을 총알 받이로 내세운 북한군의 잘못이 더 크다고 봅니다. 두번째는, 피난 행렬을 지키지 못한 국군의 잘못 이겠죠. 르메이 장군은 남하하는 북한군을 공격 해야 동맹국을 지킬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 거고(게다가 자국 국민도 아님)...

    더 좋은 방법도 있었을 수 있겠지만, 6.25 당시의 남한은 전투능력 처참했고(용감했냐 안했냐는 둘째 문제고, 보충병 끌고와서 훈련도 재대로 안시키고, 보급도 부족한 상태에선 전선에 투입하면, 당연히 도망자가 속출하지 재대로 싸울 사람이 있을리가...), 연합군의 손에 나라의 운명을 맡긴 상황이라(3.8선도 사실 대부분 연합군이 지켜 준 거지, 한국국은 방어전에서 거의 활약 못함. 활약 못한 정도가 아니라, 한국군 혼자 밀려서 전체 방어선이 후퇴한 경우가 허다함. 한국군 때문에 뒤로 밀린 방어선 끌어올리는 건. 연합군 몫이었고...) 커티스 르메이 장군의 미친 폭격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3.8선도 못지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합군 입장에서는 동맹국의 영토를 수호하는게 우선이고(자국의 이익과 부합되니까), 자신들의 국민인 자기나라 군인들을 챙기는게 다음이고, 마지막이 남의나라 민간인 인걸요. 한국도 베트남 전에서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 맹구가온다23.10.08 09:16:36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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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모든걸 다 쏟아부었구나~~
  • 뀨잉사랑23.10.08 09:18:4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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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나면 살아남기 힘들겠네 ㅜㅜ
  • 노아2223.10.08 10:13:17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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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사진이군 ㅊㅊ
  • 살인나비23.10.08 11:58:59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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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더 많이 사랑해 주시지 말입니다.
  • 삭제 된 댓글 입니다.
  • lee197923.10.09 10:05:02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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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린보단 부족하지만 화끈한 네이팜을 내려줬죠.
  • 치다루마23.10.08 14:44:03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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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강하게 나가면 일본은 좋아함.지금 미국 좋아하는거 보면
  • 별이둥이23.10.08 15:35:18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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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병시인드라23.10.08 17:24:03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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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렇게 많이 죽었는데도 일본인이 더 많구나..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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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겁게 사랑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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