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형님들.
요즘 제 삶의 낙이 유튜브로 리뷰 채널들을 보는 것인데요, 덕분에 닌텐도 스위치도 사고 즐거운 마음으로 각종 문화들에 대해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리뷰라는 걸 해보고 싶어져서...
그래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잘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리뷰해보는 것은 어떨까하여 작게 기획하게 된 게시글, 바로 장르 소설 리뷰입니다. (장르 문학쪽으로 아주 작게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물론 제 수준이 누구를 평가할수 있을만큼 높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해당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이런식으로 보는 구나... 라고 생각하시면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첫번째로 리뷰하게 될 소설은 바로, 판타지 소설, 하얀늑대들입니다.
스포일러는 거의 없으니까 안심하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얀늑대들(윤현승)
윤현승의 장편소설 '하얀 늑대들' 1권이 나온 뒤로 거의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한국 출판 시장에서 장르문학들이 인기를 타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15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최고의 '판타지소설'을 뽑을 때, '하얀 늑대들' 뽑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필자 역시 최고의 소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떤 점들이 하얀 늑대들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걸까?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얀 늑대들을 사랑하는 걸까?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1. 캐릭터
캐릭터 묘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생동감이다.
특히 설정이나, 배경, 혹은 스토리 라인보다 캐릭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 컨텐츠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하얀 늑대들'에서는 수많은 캐릭터들의 색깔을 놓치지 않고 표현했다.
전형적으로 '과묵한 검사' 스타일인 제이메르와, 마찬가지로 '과묵한 검사'인 빌리는 분명히 비슷한 스타일이지만 전혀 다른 개성을 뽐낸다. 한 소설 내에서 이처럼 비슷한 캐릭터가 전혀 다른 개성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소설이 얼마나 캐릭터를 잘 그려냈는지를 알 수 있다. (심지어 빌리와 제이메르는 같은 에피소드에서 등장한다.) 어떻게 같은 스타일의 캐릭터임에도 이런 개성을 만든 걸까?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캐릭터를 얼마나 적재적소에 배치했는가'가 그 답이다.
로핀과 에밀은 정말 비슷한 캐릭터임에도 겹치지 않게 등장한다. 로핀은 전대의 하얀늑대로, 에밀은 주인공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특히 아버지역할의 에밀은 주로 '카셀의 말재주가 어디서 왔는지 알려주는 장치'로써 주인공의 대화 속에 간접적으로 더 많이 등장하는 반면, 로핀은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가장 커다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같은 스타일의 캐릭터들이지만 한쪽은 주인공의 능력을 위한 장치로, 다른 한쪽은 소설의 중요한 부분을 맡고 있다. 이로 인해 캐릭터끼리 부딪치는 일을 막은 것이다.
게다가 오히려 에피소드 상에서 서로의 부재로 인해 허전함을 느낄 수 있는 독자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해주기까지 한다.
또한, 많은 캐릭터들의 등장이 생뚱맞지 않게 그려졌다.
하얀늑대들에서 카셀은 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 중요한 인물들은 항상 단서를 먼저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즈윈은 계속 존경한다고 말하는 여자 기사인 '아이린'에 대해 묘사해주는데, 이로 인해 주체적인 여성이라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된다. 독자들은 이런 장치를 통해 아이린이 등장하는 새로운 에피소드에 대한 접근을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또,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자 주인공의 아버지인 '에밀 노이'는 독자로 하여금 빨리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들 만큼 매력적인 단서들이 중간중간 나온다.
"그는 긴장하면 할수록 아버지의 말투를 흉내내게 되었다. 그게 장점인지 단점인지 당사자로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이 순간만큼은 쓸만한 버릇이었다."
-하얀 늑대들中
2. 세계관과 설정
소설 속 세계관이나 설정은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것이 흥행에 가장 도움이 된다.
필자가 하얀 늑대들의 장점으로 가장 최고로 꼽는 것이 바로 익숙하면서도 신선하고, 누구나 접근하기 편한 세계관이다. 판타지 소설을 전혀 읽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심지어 게임조차도 거의 하지 않아서 판타지 용어들이 낯선 이들에게도 하얀 늑대들은 굉장히 접근성이 좋다.
"잠깐 잊어버리긴 했지만, 당연히 그의 꿈은 기사였다. 그리고 방금 기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세 명이 코 앞에서 지나갔다."
-하얀 늑대들 中
그냥 '기사'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이미지들, 예를 들면, 중세, 기사도, 갑옷, 말 같은 것을 떠올릴 정도만 되면 누구나 접근가능한 세계관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판타지를 열심히 읽는 사람도, 판타지를 전혀 읽지 않는 사람도 같은 출발선에서 이 세계를 접근해나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근래 나온 소설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설정이다.
그런데 이걸 알면서도 왜 다른 작가들은 이처럼 '새로운 세계'를 배경으로 판타지 소설을 그리지 않는 걸까?
이것이 바로 하얀 늑대들의 가장 탁월한 점 중 하나이다. 윤현승은 많은 실패한 작가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 '설명충'이 되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면, 새로운 세계를 소개한답시고 설명만 늘어놓으면서 독자들에게 인내심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전개 속도가 떨어질 정도로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독자가 그냥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세계관을 알게 된다는 점은 '하얀늑대들'을 보면서 가장 편하게 다가오는 포인트였다.
(물론 후반부로 갈 수록 설명이 길어지는 경우도 생기지만, 이미 매력적인 캐릭터와 스토리에 흠뻑 빠져든 독자들에게 그런 설명은 오히려 즐거움이 된다.)
3. 스토리
사실 복선회수, 개연성... 이런 것들은 사실 따로 매력이라고 뽑기 힘들 만큼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장르 문학계는 이런 기본을 지킨 것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로 난잡한 지경이다. 그래서 '하얀늑대들'은 깔끔하게 느껴진다. 복선회수와 개연성이 그래도 지켜졌기 때문이다. 혹자는 개연성 부분을 거의 대부분 '아란티아의 마법'으로 해결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비판하기도 하고, 필자 역시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이 글을 읽는 데에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한 마디로 아주 빼어난 개연성을 가진 스토리는 아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계관이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달까?
"카셀은 보검을 뽑았다. 보검은 뽑는 순간부터 강렬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하얀 늑대들 中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아란티아의 보검)
굳이 우열을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하얀 늑대들'은 이영도의 '드래곤라자'에 비하면 비교적 단순한 갈등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드래곤라자'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존재하고 작가조차도 주인공을 통해 그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시작한다. 그것은 드래곤라자의 세계관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스토리라인을 풍부하게 만들고, 독자들에게 나름대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사실 장르 문학에서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은 이영도 뿐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하얀 늑대은 굉장히 단순한 갈등구조를 그린다.
선 vs 악
어떻게 보면 전형적으로 '권선징악' 혹은 '정의구현'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그러나 전형적이라는 것이 진부하다는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절대악을 설정해 놓으면, 캐릭터나 세계관에 대한 묘사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절대악을 설정해 놓은 뒤, 이것을 대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은 독자로 하여금 아주 높은 수준의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것이다.
개인마다 차이점은 있겠지만 장르문학을 읽는 사람들에게 장르문학의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가 뭐냐고 물어보면 역시 '대리 만족'일 것이다. 그리고 동서고금, 전세계를 통틀어봐도 '권선징악' 혹은 '정의구현'은 언제나 커다란 대리만족을 선사해왔다.
그리고 다소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과 전형적인 권성징악형 구조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는 주인공의 고난과 고뇌,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반전'있는 행동들은 이 소설을 전형적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세련된 방식으로 그려져있다.
(이에 대해 정말 자세하게 묘사하고 싶지만...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
아, 한가지 더.
하얀늑대들 외전을 통해 등장하는 거의 모든 조연 캐릭터의 서브스토리까지 완성시킨 것은 팬의 입장에서 가슴 설렐 정도로 큰 기쁨이었다. (외전은 네이버에서 볼 수 있다.)
윤현승의 '하얀 늑대들' 리뷰를 마치면서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종종 이 책이 더 쩌네, 그 책 쓰레기네... 하면서 싸우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서로의 취향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이게 더 좋네, 아니네 하면서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정말 솔직하게 영화 '반지의 제왕'보다 김승우 주연의 '라이터를 켜라'를 더 재밌게 봤다. 색즉시공2를 두 번 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필자가 저질의 감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이라는 게 처한 상황이나 환경, 그리고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 다르다.
철학과 교수 아버지 밑에서 자란 A군은 어려서부터 생각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달빛조각사'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아무 생각없이 사고치고 다니던, 그리고 고정관념이 굉장했던 필자는 '드래곤라자'를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작품에도 격(格)이라는 게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도 일리는 있다.
그리고 장르문학에도 격이 떨어지는 작품이 분명히 있고 비판의 여지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격 높은 식견'을 가지고 선민의식 따위를 가지는 것은 그야말로 격 떨어지는 일이다. 누구나 더 잘 아는 것이 있고 더 모르는 것이 있으므로 그런 식의 선민의식을 갖는 것은 결국 다시 자신을 격하시키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진짜 격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토론 태도에서도 격을 챙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