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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장영자 * 이철희 어음 사기사건 - 2편
사건의 수사 및 여파 1982년 5월 2일이철희 장영자 부부 체포전 청와대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비상회의를 소집했다고 합니다.회의는 전두환의 주재 아래 청와대 서재에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재무부에서는 나웅배 장관과 이규성 1차관보, 검찰에서는 정치근 총장과 이종남 중수부장,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이범석 비서실장과 허화평 정무1수석, 이학봉 민정수석, 김재익 경제수석, 박철언 정무비서관 등이 참석했다고 합니다.이 자리에서 전두환은 이철희와 장영자를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기업들에 대해서는 가급적 은행의 지원을 통해 무너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또 공영토건은 법정관리로 넘기고, 일신제강은 부도 처리되는 것으로 결론지었으며, 사채업자들은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합니다.여론의 강력한 반발 이철희와 장영자 부부가 여러모로 당시 정권과 친인척 관계로 얽혀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청와대가 당시 배후에 있는게 아니냐는 끊임없는 의혹을 받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 발표에 대해서 언론부터 받아들이지 않았고, 국민들의 의혹은 해소되기는커녕 더 커져만 갔다고 합니다. 결국 전두환은 5월 11일에 다시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격론 끝에 이규광을 광업진흥공사 사장에서 물러나게 했다고 합니다.정권 수뇌부 사이의 갈등 하지만 이규광에 대한 처리를 놓고 전두환과 검찰, 그리고 비서진의 입장이 갈립니다.당시 검찰총장 정치근은 이규광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고, 허화평과 허삼수는 세간에서 이 사건의 배후로 청와대를 의심하고 있다며 전두환을 압박합니다.이에 밀린 전두환은 결국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규광을 구속하는 것은 반대했습니다. 전두환은 이철희가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몰아세웠습니다. 그러나 이규광을 구속하지 않고는 청와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누그러지지 않을 기세였습니다. 결국 전두환은 이규광을 구속시키라는 지시를 내렸고, 다음 날 이규광은 장영자로부터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사건의 여파로 인한 숙청 민심을 달래기 위한 내각 개편을 단행합니다.이 사건으로 국무총리 유창순, 경제기획원장관 겸 경제부총리 신병현, 외무부장관 노신영, 문화공보부장관 이광표, 법무부장관 이종원, 검찰총장 정치근, 국가안전기획부장 유학성, 내무부장관 서정화, 총무처장관 김용휴, 재무부장관 나웅배, 체신부장관 최광수, 보건사회부장관 천명기, 민주정의당 사무총장 권정달, 교통부장관 윤자중, 농수산부장관 고건, 상공부장관 서석준, 동력자원부장관 이선기, 정무수석비서관 허화평, 사정수석비서관 허삼수 등 당시 5공의 실세들이 물러나게 됩니다.또 당시 정권의 실세들로 불리던 허화평과 허삼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들을 공직에서 배제하려고까지 하였고 심지어는 전두환 정권의 개국 공신들인 유학성, 노태우,정호용 등을 궁정동 안전가옥에 초대하여 전두환에게 친인척의 2선 후퇴를 건의할 것을 결의하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이 점 때문에 그들은 전두환의 눈 밖에 났다고 합니다.장영자에 대한 수사 장영자는 수사 당시에나 기자들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워낙 사기 규모가 커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수 없게 오직 이사건만을 다루는 청문회가 열릴 정도 였고 담당검사가 티비 청문회에 참석 사건에 대해 리뷰를 하고 국민적 의혹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까지 할 정도로 여파가 어마어마했습니다.이 사건수사에 관련된 검사들만 1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장영자사건은 진귀하고 특이한 상황을 많이 연출했는데 국회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당사자 장영자를 세우려고 했지만 그녀가 단 한번도 출석을 하지 않아 직접 교도소로 찾아가 질의하는희대의 사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장영자 본인은 정치적 희생양에 불과하다고 주장했고 그대로 놔두었다면 충분히 해결가능한 어음들 이었다고 주장합니다..........결국 장영자는 1983년 희대의 어음 사기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습니다. 이후 형기 5년을 남겨두고 1992년 3월 가석방됩니다. 남편 이철희는 복역중 먼저 가석방 되었다고 합니다.출소 이후 2차사건으로 구속1992년 가석방된 후에도 용인술, 처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언론 보도를 내는가 하면, 다시 시중 은행의 주요 간부들을 자신있게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1994년에 다시 140억 원대 어음사기 사건을 저질러서 4년간 복역합니다.3차사건으로 구속1998년에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이번에야 조용히 사나 싶었지만 또 다시 구권 화폐 사기를 일으키며 2000년에 다시 구속되었다가 2015년 1월에야 석방되었습니다.4차사건으로 구속2018년 12월 21일, 출소 3년 만에 또 6억대 사기를 쳐서 다시 구속됩니다. 이 때 나이가 75세였다고 하는데 거의 일평생 사기와 관련된 범죄를 저지른것 같습니다.장영자의 재산 사채시장 거물로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엄청난 재력가였으며, 젊은 시절부터 미모와 남다른 지략으로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데 매우 능한 인물로도 명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재산증식 과정 자체에 대해서는 세간에 크게 자세히 알려진적은 없다고 합니다.1992년 1차 가석방 후에도 살펴보면 구속기간중에도 장영자 개인의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올라서 거의 1000억에 육박했었다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석방 후에 다시 사채시장에서 활동할 뜻을 보인적도 있다고 합니다.이후 또 압류취소청구소송에서 승소해 국세청에 압류당했던 골동품 서화류 1,000여점등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았다고 합니다.재산자체는 차명으로 되어 있는 부동산 재산과 은행기록으로 남지 않는 골동품 서화류등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장영자 관련 지하자금 관련해서 취재를 한 적이 있었는데 500억정도의 지하자금이 있다며 예금증서를 가지고 실제로 은행을 방문하는 일반인이나 검찰, 경찰등이 취재 당시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예금증서는 실제로는 위조로 보이고 500억 자체의 예금이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이철희 이전에 2명의 남편과 결혼한적이 있었지만 모두 끝까지 잘 살지는 못했고 이철희가 세 번째 남편이었다고 합니다. 결혼 당시 장영자와 이철희의 나이는 21살정도 차이가 나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만 둘 사이의 부부관계 자체는 원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결국 이 어음사기사건은 금융실명제 도입의 시초가 되고 전두환 대통령 당시에도 건의가 됐으나 여러 반대에 무산되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도입이 됩니다.출처 : https://blog.naver.com/ghshffnfffn1/222000330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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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장영자 * 이철희 어음 사기사건 - 1편
사건의 발단1980년대 일어난 경제사건이자 조희팔 이전 대한민국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금융사기사건으로 이른바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사건'으로 회자되었다고합니다.1982년 5월4일,언론과 방송은 일제히 검찰이 장영자·이철희 부부를 구속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됨으로써 온 세상에 이 사건이 알려집니다. 1982년 5월4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외국환관리법 위반혐의로 이철희-장영자 부부를 구속하고 이들이 명동 암달러시장과 캘리포니아에서 80만 달러를 모았다고 발표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이 뒤에 각종 어음관련 사기행각이 드러나게 되는데 당시 장영자가 유통한 어음 규모가 총 7111억이었고 이 액수중 사기관련 금액은 6404억에 달하는 천문한적인 액수였다고 합니다.2020년인 현재에도 엄청난 액수인데 1980년대에는 사회적 충격이 더 컸을 것 같습니다.장영자는 체포 당시 손에는 1억 2천만 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2명의 비서와 4명의 경호원이 곁을 지켰으며, 평균 대기업 직장인 월급이 20 ~ 30만 원초이던 시절 한 달 생활비로 3억 9천만 원을 쓸 정도로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전해집니다.1980년대초의 물가를 한번 검색해봤습니다. (잘못된게 있는 걸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1982년 쌀 한가미(정부미 기준) : 5만6천원도시 대기업 근로자 평균 월급 : 20만원 ~ 30만원초1982년 프로야구 박철순 선수 당시 최고연봉 : 2400만원프로야구 평균 연봉 : 1215 만원1982년 사병 월급 : 병장은 4200원, 상병 3700원, 일병 3300원, 이병 3000원1980년대 초 서울 서민용 개포동 18평 주공 아파트 : 600 ~ 700만원 사건의 발생1981년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보안처장이었던 정도영 준장은 '어느 중년 여인이 군 부대 불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거액을 뿌리고 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조사를 시작합니다.이상한 점은 해당 부대의 부대장들과 아무런 인연도 없으면서 거액을 기부했다는 점입니다.조사 결과 여인의 이름은 장영자(당시 나이 37세), 법명은 보각행(普覺行) 이었다고 합니다. 곧 장영자는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었다고 합니다.1981년 청와대 산하 민정수석비서관실에 장영자 부부에 관한 첩보가 입수되었고, 민정수석비서관인 이학봉은 국가안전기획부장 유학에게 통보해줬다고 합니다.유학성은 처음엔 별 거 아니라고 여겼으나 곧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그 이유는 바로 남편 이철희(육사2기출신)는 중앙정보부 차장출신이고 또 국회의원을 역임한 점이 있다고 합니다. 장영자 관련해서는 이 때 전두환의 처삼촌이 이규광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처제에 해당하는게 바로 장영자이기 때문입니다.여러모로 당시 정권과 친 / 인척 관계에 얽혀 있던 상태였다고 합니다.이후 1982년 4월 공영토건이 장영자에게 어음 사기를 당했다며 진정서를 대한민국 검찰청에 제출하며 이들을 향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며 둘다 구속됩니다.주로 행했던 사기 수법 대통령의 친인척인 장영자와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국회의원 출신의 이철희, 이 두 사람의 신분과 이름이 곧 이 사기수법의 기반이 되었던것 같습니다.일단 이들은 본인들의 이런점을 이용해서 은행에서 거액의 편법 무담보 대출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돈을 종잣돈 삼아 그 돈을 자금 회전이 아쉬운 기업인들에게 빌려주면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결코 약속한 기일 내에는 유통시키지 않는다는 약속하에 대출액의 2~9배에 이르는 거액의 어음을 받았다고 합니다.당시 자금난에 시달리던 공영토건의 경우 초기 160억을 사채시장에서 이철희가 운영하던 대화산업에서 빌렸지만 차후 갚아아할 어음이 1279 ~1300억원에 달했다고 합니다.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지하경제(사채시장)에서 장씨가 큰손이라고 일단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게 컸는데 100억 ~ 200억 차입한도를 두고 이걸 2년 또는 3년 분할상환에 연 금리 20~22% 의 이율로 갚는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일신제강, 라이프, 삼익주택, 태양금속, 해태제광등에 같은 방법으로 범행을 반복합니다.초기 장영자가 빌려준 사채금액은 576억을 빌려주고 2,223억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서 자금으로 조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자금을 쪼개서 다른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다시 갚겠다고 어음을 받은것이 총 6404억에 달한 것입니다. 당시 지금처럼 금융실명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명거래가 일반적이었던 금융시장의 맹점을 활용했던 돌려막기 수법인 것으로 보입니다.사건 이후공영토건 ( 당시 건설회사 도급 순위 8위) , 일신제강 (당시 철강업계 2인자) 이 2곳이 지금 기준으로 보면 대기업으로 할 수 있는 회사들이 부도처리로 무너지게 됩니다. 이 두 회사에서 성실히 일하던 근로자들이 갑자기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되고 실직자가 됩니다. 당시 이 두회사의 소액주주 9400명의 주식은 모두 종이조각이 되어버리고 어음피해자들이 속출했다고 합니다.위 사진의 서경단 할머니는 평생 고생을 해서 모은 9백만원으로 공영토건의 어음을 샀다가 모두 잃게 됩니다.검찰 수사로 이철희-장영자 부부와 은행장 2명, 기업인 6명, 사채업자 3명 등 29명이 구속이 됩니다.또 어음 등 금융거래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시중 자금 흐름이 마비돼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됩니다. 한국은행이 긴급자금 1000억원을 방출했지만 응급조치에 그쳤다고 합니다.사건의 여파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글이 길어져서 2편에 계속됩니다.출처 : KBS한국경제를 누가 망치고 있나: 한국개발경제비화https://blog.naver.com/ghshffnfffn1/22199958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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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추억의 만화 주인공들 나이
1. 아기공룡 둘리(1983년)
둘리
1983년생 / 현재 나이 28살
(철수, 영희는 36~38살 정도, 희동이는 25살~26살 정도)
ㅎ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철수는 이제 아이 아빠겠군요. ㅠㅠ
희동이는 88세대
2. 열네살 영심이(1990년) - 방송 당시 14살
오영심
1977년생 / 현재 나이 33살
(월숙이뇬, 왕경태, 장영자(반장선거 앞머리녀) 동갑, 순심이는 아마도 25~27살 인듯)
영심이랑 경태 결혼했을거 같음. 거울미신이 그렇게 말해줬으니...ㅋㅋㅋㅋㅋ
3. 달려라 하니
하니
1985년생 / 현재 나이 26살
(창수 동갑, 나애리는 아마 27~28살 정도)
하니도 88세대구나...
올림픽 국대로 뛰었을것 같은 스멜...
그 외...
웨딩피치(1995년)
피치 1983년생 / 현재 나이 28살
릴리, 데이지, 사루비아, 케빈 1982년생 / 현재 나이 29살
피구왕 통키(1989년) - 방송 당시 8살
나통키, 오맹태, 손미나 1982년 / 현재 나이 29살
타이거 1980~1981년 / 현재 나이 30~31살
피구로 세계정ㅋ벅ㅋ했을 듯
축구왕 슛돌이(1991년) - 방송 당시 13살
슛돌이, 캐더린 1979년 / 현재 나이 32살
뾰로롱 꼬마마녀(1990년) - 방송 당시 12살
민트 1979년 / 현재 나이 31살
달의 요정 세일러문(1992년) - 방송 당시 14살
세라, 유리, 비키, 리타, 미나 1979년 / 현재 나이 31살
이제 변신하기도 힘들 듯...ㅎㅎㅎㅎㅎㅎㅎ
면죄자작성일 2010-03-26추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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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장영자사건을 아시나요? 그 1000배의 사기사건이 터졌습니다!
장영자사건을 아시나요? 그 1000배의 사기사건이 터졌습니다! -펌-
만원짜리 지폐를 백두산 높이만큼 쌓을 수 있는 액수를 해먹었다던
장영자, 이철희 부부 는 축에도 못 낄
21세기 최대, 최악의 사기잡범 커플
참여정부 당시 세계 11위권 경제를 4대강에 말아먹다!!
연간 1조원의 대통령 교부금....5년에 총 5조원
4대강, 대운하, 인천공항 등등 5년간 1000조 해 처먹어...
(환차손 200조 날려먹은 것도 친다면?? )
“이 모든 것의 원동력 미디어법 통과가 제공한 듯 ..........”
(한국 국가부도, 일본의 채무청산 조건 신탁통치 시작 후 외국으로 밀입국한
한 불법체류자의 인터넷 넋두리에서...)
보라 삶 자체가, 평생이 사기인 이 자들을~
소아암병동을 방문한 김윤옥 정말무개념입니다.암병동 그것도 소아암병동은 무균실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곳에 출입하는 모든 관계자 및 심지어 부모도 마스크를 절대 착용해야 합니다.지가 머라고 마스크도 안쓰고 여기를 방문해서....제가보기에는 사진한장 찍을려고 그러는것 같습니다.마스크쓰면 사진이 잘안나오니까.....부창부수라고 정말 짜증납니다.[정말로 화가 납니다..정말..]
[이 사진은 청와대 홈피에 버젓이 걸려있는 사진입니다]
기자로 위장해 공짜해외여행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부인 김윤옥 씨를 해외 순방에 동행시키면서
편법으로 여비를 지급하기 위해 동행 취재단 명단에 끼워넣은 사실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4일 대통합민주신당 유은혜 부대변인은 "위장의 달인, 가족이 위장 기자 행세까지 했었다"면서 한
동영상 주소(http://www.youtube.com/watch?v=GXBPZwF_YxM&feature=related%20) 를 공개했다. 유 대변인은 공개한 동영상은 지난 2004년 11월 방영된 MBC 시사프로그램 <사실은>의 '서울시가
기자단의 취재비를 댄 까닭'을 누군가가 미국의 유투브에 업로드 시켜놓은 것이었다. 2004년 이명박 당시 시장이 프랑스·미국, 상하이·베니스· 모스크바를 순방하면서 동행취재단에게 왕복
항공료는 물론 소요경비 전액을 지급한 사실을 꼬집은 이 프로그램에는 이 후보의 부인 김윤옥 씨 관련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 2004년 서울시가 작성한 동행취재단 경비 내역서, 이 후보 부인 김윤옥 씨 이름이 포함되어있다. 김 씨의 여비는 일반 기자의 세 배 가량이다.
서울시가 김 씨를 기자명단에 포함시켜 여행경비 일체를 편법으로 지급했던 것. 또한 당시 서울시가
작성한 '동행취재단 소요경비 산출내역'이라는 문건에는 신문기자들의 여비가 440여 만 원인데 비해
김 씨의 여비는 1200여 만 원으로 적시됐다.
이 자는 청계천 공사시 청계천 상인들에게도 역시 똑같이 대했다.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공연. KBS 〈뉴스9〉는 “이들의 공연에 먼저 김윤옥
여사의 눈에 물기가 비쳤고 애써 참아내던 이 대통령도 끝내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고
전했다. 관련 내용이 방송전파를 타게 된 이유 - 20일이 장애인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쳐다보는 장애인 무슨 생각?..... " %까고 있네..." ?
20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장애인들은 “지난 5년간 장애인이 70만 명이나 늘었는데도 올해
장애복지예산은 지난해보다 400억 가까이 줄었다”며 “장애인복지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상파 방송3사 중 MBC에만 보도됐다.
용산참사
서민지원예산 삭감
복지예산 삭감
비정규직 양산
희망근로
본인은 병역면제
까지는 좋았는데 ...그런데.....
뉴욕타임즈"이명박 대북강경노선, 부시의 골칫거리"
(국민들은 언제든지 총알받이...정말 꼴깝도 이정도면 기네스북 수준이다)
이 병역면제 한마리 때문에 올라간 국제사회에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신용도 하락, 국방안보비용 증가, 개성공단개발 무산 손실(중국,베트남
대체 생산기지) 등의 경제손실을 합치면? 만원짜리로 에베레스트산을
비롯한 전세계 5천미터이상 고봉이란 고봉은 다 높이만큼 쌓고도 한참
남겠네....미꾸라지 한 마리가 동해 서해 남해 세 바다를 흐려놓는구나
(참 너는 사해로 알고 있지....ㅎㅎㅎ 국토가 삼면이 바다인지 사면이
바다인지도 모르는게 군통수권자? 헐)
주가는 지금 1400 이다 (참여정부때는 2000 이 넘었다)
국민소득 4만불 간다고 했냐?
지금 1만6천 불이다 ( 참여정부때는 2만 불이었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모여들었던 민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명박 정부가 가진 정책과 공약 실천에
반대하는 반정부적 성격을 띠면서 진행되고 있다.
김윤옥 "李대통령, 작은 눈 매력적이고 멀리보는 안목있다"
너도 안목있다. 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걸 손에 넣는 딱 맞는 콤비를 고른
걸 보니. 그리고 니들 둘 다 다이아 보는 안목 있는 것도 만천하가 이제 알겠다
홍준표 이놈이 자기 딴에는 이명박이를 도와준답시고 상대당에서 이 소문을 거론하며
공격할까봐 미리 쐐기를 박는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폭로했다는....
서울시장까지 역임하고 대통령 후보에 오른 놈의 마누라가 고작 발가락에 다이아
반지끼고 밀수를 하다가 적발된 이 코메디는 언론새끼들이 이리 저리 감춰서
논란거리도 되지않고 사라졌다.
발가락 다이아 여사가 멀리 보는 안목 있는 건 알겠는데 이건 알고 있는지 몰라....
같은 자리에 있었나 참....이거 좀 말려주지...얘들이 무슨 죄야...
청계천 오픈
▲ 전문가들은 청계천이 하루만 단전 되도 심각한 오염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청계천은 거대한 '시멘트 연못'일 뿐"
어처구니없게도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 때문에 이제 청계천의 어디서도 청계천의 오랜 역사
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은 본질적으로 시멘트 옹벽에 갇힌 시멘트 수로이다.
조경업자들이 열심히 풀을 기르고 옮겨 심어서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시멘트
옹벽 사이에 여러 풀들을 심어서 옹벽을 그럴 듯하게 치장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다. 그저 돈이
필요할 뿐이다.
모든 것은 투표일 전까지만 멀쩡하면 된다! 10여년전종로 국회의원
선거 때 부정을 저지를 때도 그랬고, 대선 때도 그랬다. 현대 건설에
있을 때도 그랬다. (정주영회장은 이명박이에 대해 "종놈으로도
쓰지 마라" 고 했다고 한다. 현대건설이 부도가 난 것도 다 이 자의 탓..)
용현코비작성일 2009-07-19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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