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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바이크] 내가 만나본 중산층 이상/부자들이 타는 차들
특정 모임을 하면서 만나본 중산층/부자들이 타는 차들재산 수준을 대략적으로 알수있는 사람들만 1. G80 -자차:중견기업 임원/연봉 1.7억/경기도 아파트 3채/땅-나이: 50대초반-맞벌이: 와이프도 G80 2. 렉서스 ES -자차: 중견기업 부서장급/연봉 2억(부부합산)/아파트-나이: 40대후반~50대초반 -자차: 중견기업 부서장급/연봉 9천/아파트7억/외벌이-나이: 40반후반 3. 카니발 하이리무진, 벤츠스프린터, G90, 벤츠s -법인차: 코스닥 상장사 대표들/연봉 의미없음 배당으로만 매년 20억~100억 추정-자차: 자차가 없거나 비공개 4. 포르쉐 -위의 오너 자녀들이 주로 타는차들(30-40대) 5. 그랜저하브 -중견기업 과차장급/연봉 9천/10억대 아파트/외벌이-나이: 40대후반 6. 벤츠S, 렉서스LS -의사친구, 감정평가사친구, 중소기업 오너 친구 7.본인 -렉서스 NX/연봉 1.1억/아파트1채/외벌이 ———특징 직장인으로 성공한 사람은 주변에G80, 렉서스ES를 많이 탐.G80이 압도적으로 많음 코스닥 상장사 대표들(시총 1조~3조)은법인차로 카니발리무진, 벤츠스프린터를 주로 굴림전용차로 이용목적, 그리고 차는 단지 이동수단으로로생각함. 자녀들이 주로 좋은차 많이 타고다님(외제차, 포르쉐가 압도적) BMW나 벤츠E를 타고 다니는 사람 거의 못봄.회사내 젊은 친구들이 BMW를 많이 타는데재산 수준은 측정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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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매불쇼 최민희 의원 실시간 발언 정리
- 헌법 재판소 판결은 많은 사람들이 금주, 혹은 차주 초를 이야기했으나 원래도 본인은 3/13-14 다음 주 말로 예측했었다. 그 일정에 영향을 안줄 거라고 생각한다. 초가 되던 말이 되건 다른 거 없다. 우리의 가슴은 분명히 타들어 가겠지만, 헌재 재판은 그대로 진행될 것이다. 걱정하는 마음 분명히 이해는 하나 헌재에서도 폭동 등에 대비해서 준비할 것이고,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헌재를 보호할 것이다. 파면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 중요한 것은 대선 국면으로 넘어가려는 시도를 주의해야 한다. 3월 8일 집회에 집중해야 하고 내부에서 1위 후보를 흔드는 시도 하는 것 안된다. 이게 민주당에 주는 교훈이다. - 구속 취소 충격적인 소식이지만, 판결문을 한번 봐라.법원의 결정문을 봤 을떄 윤석열 측의 주장이 전부 받아들여진게 아니다. 공수처가 수사권이 있냐 없냐-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외에도 중요한 두가지 주장을 받지 않았다. 윤석열 측의 주장 중 1) 구속의 상당성이 없다 2) 증거인멸의 여지가 없다 는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결국 체포적부심을 이유로 구속을 취소해준것이다. - 체포적부심은 애초에 아주 생소한 개념이었고, 당시에도 이것을 구속 기간에 넣냐 안넣냐는 논쟁이 살짝 있었다가 없어졌다. 법원에서는 많이 고민을 했을거 같고, 법원도 부담을 많이 갖고 꼼꼼하게 본 것 같다.일말의 여지도, 조금의 여지도 주고 싶지 않았고, 조금의 흠결도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 헌재 판결 나오기 전에 윤석열이 극우집회에 나와서 선동을 한다?영상으로 나타난다? 그건 헌재 판결에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결과일 것이다 - 이런 일이 벌어질 때 역사가 쭉 직진해서 우리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다. 이럴때 직진하게 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모여서 정의의 응원봉을 들자 3줄요약1. 윤석열 측 주장 다 받아들여준거 아니고, "체포적부심" 기간 때문에 법원이 고민하다 구속 취소 해준 것 같다.2. 헌법재판은 순리대로 갈 것이다. 예상은 3월 14일, 15일 판결 예상 3. 내란은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 대선국면으로 섣불리 넘어가지말자. 우선 3월 8일 집회에 집중하자. 그렇다고 합니다
0홀랑0작성일
2025-03-0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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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남은 후손 유장부님의 이야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3월 1일, 삼일절이 되면 유관순 열사를 떠올릴 거에요. 삼일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는 부모님을 일본 군경에 의해 잃었고, 형제들까지 일제에 체포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그렇다면, 유관순 열사가 떠난 후 그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했을까요? 당시 어린아이였던 동생 유관석 선생님은 일본 헌병들의 보복을 두려워한 주변의 외면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결국, 고작 여섯 살이었던 아들 유장부 님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유장부 님은 올해 86세가 되셨습니다.노환으로 인해 몸이 불편한 상황이지만, 몇 년 전까지 건물 청소와 주차 관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어려워 생활고에 시달리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광장에 나가 외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용기가 부족할 수도, 적극적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 한 번쯤 관심을 기울이고, 작은 도움을 보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유관순, 이봉창, 윤봉길.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독립 영웅들의 후손을 위한 캠페인에 함께해주세요. https://2531.ondaycampaig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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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5ch] 아까워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전에 살던 지역은 한밤중에 쓰레기를 수거해가곤 했다. 우리 아파트는 조립식 창고 같은 곳에 쓰레기를 가져다 놓게 되어 있었는데, 나는 보통 출근 전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이래저래 바빠서, 한밤중이 다 되어서야 쓰레기를 버릴 짬이 났다. 집 현관문을 나서자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벌써 쓰레기 수거하는 분들이 왔나 싶어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역시나 쓰레기 수거장에는 벌써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쓰레기 한 개만 더 가져가 주실 수 있을까요?] 하지만 대답이 없길래 못 들었나 싶어서, 이번에는 그 남자 바로 뒤에 바짝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그러나 또 대답이 없다. 이쯤 되자 뭐야, 이 자식, 귀가 먹기라도 했나 싶어서 짜증이 치솟았다. 그래서 귓가에다 다시 한번 말을 걸어볼 생각으로 그 남자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데, 짙은 남색 상의를 입은 중후한 체격의 남자였다. 쭈그리고 앉아 쓰레기 수거장에 머리를 넣고,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 뒤에 서서, 내려다보며 말을 걸 생각이었다. 정작 가까이 가보니, 그 사람은 그저 쓰레기봉투에서 쓰레기를 꺼내는 일에 몰두하며 쓰레기를 가만히 바라보다 자기 앞에 늘어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아깝네, 아까워..]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엄청나게 소름이 끼쳤지만, 그때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겠거니 싶었다. 당연히 엮이고 싶지 않아서 그냥 발길을 돌리려 했는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혀 발이 움직이지를 않았으니까..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태였다. 어떻게든 움직이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뭐라고 해야 할까, 보기만 해도 아찔하고 생기를 빨아들이는 것만 같은 눈이었다. 검은자위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텅 빈 구멍이 뚫려있는 것처럼.. 하지만 눈이 마주치자 곧 시선을 돌리더니, 그 사람은 길 건너편으로 가버렸다. 큰길과는 반대편, 산 쪽으로 사라져 갔다. 그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갑작스레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구르듯 집으로 도망쳤다. 내게 진짜 이변이 찾아온 것은 그 후부터였다. 시작은 벗겨낸 양파 껍질을 버리는 것이 이유 없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부터였다. 싱크대 배수구에 버려져 다른 음식물 쓰레기와 뒤섞인, 엉망진창이 된 그것을 집어서 입에 넣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몰라서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묶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었다. 마음속은 개운치 않았지만, 그 무렵에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게 되어, 결국 전부 먹어치우게 되었다. 채소를 씻어 먹는 것도 납득할 수 없어서, 흙이 묻은 채소를 그대로 씹어 먹게 되었다. 먹을 게 붙은 건 죄다 먹어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름이 묻은 감자튀김 종이봉투까지 입에 넣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생명체로서,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감정에 지배당해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아깝고 아까워서, 빨리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빼앗길 것 같은 위기감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나중에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 내가 식사할 때 말고도 밖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고 한다. 동료들은 너무 지쳐서 그런 게 아니냐고, 잠시 일을 쉬는 건 어떻겠냐고 걱정을 했었지만, 나는 완고하게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이번에는 기억이 흐릿해지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아까까지는 아침이었는데,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런 상태로 제대로 출근을 할 리가 없었고, 무단결근이 이어졌다. 내 상태를 이상하게 여기던 동료가 상사에게 상황을 전달해 준 덕분에, 다행히 해고까지는 가지 않고, 일단 휴직 처리가 되었다. 사실 그 이후의 일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전하자면, 내 상태가 너무 이상해진 끝에 주변 사람들이 부모님에게 연락해 나를 고향 집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고향에서 느긋하게 지내다 보면 회복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눈의 초점도 흐릿해지고, 밤만 되면 밖을 나돌아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잠시 눈을 떼기라도 하면 금방 집에서 뛰쳐나가 어딘가로 가버리려 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신앙심이 깊은 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이 절로 달려가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지만, 나의 상태는 그대로였다. 기억이 흐릿한 와중에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대개 어두운 골목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무언가 목적지를 발견하고 거길 향해 빨려 들어가듯 나아가고, 또다시 멍하니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했다. 다만 한 가지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기억이 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어두운 골목을 걷다가 목적지를 발견하고 거기로 끌려간다. 도착한 곳은 은색 문 앞. 나는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연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서는 눈앞의 물건에 손을 뻗는다. 그 순간, 누군가 등을 툭툭 두드리며 [괜찮으세요?]라며 말을 걸어온다. 뒤를 돌아보자 회사원처럼 보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의식이 맑아지는 감각과 함께, 나의 시야는 다시 어두워진다. 그 후 정신을 차렸을 때는 고향 집 이부자리 위였다. 고향 집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 골목에서 나 홀로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갑자기 제정신이 된 나를 보고 더더욱 놀란 모양이었다. 그 후에는 별다른 이상 없이, 무사히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다. 내가 회복한 이유는 결국 알 수 없고, 마지막에 눈을 마주쳤던 남자가 진짜로 있었던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만약 그 사람이 실재한다면, 나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게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 뿐이다. 출처 : VK's Epitaph
금산스님작성일
2025-02-2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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