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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끝나지 않는 지배 10부
그제야 이 모든 비극이 퍼즐이 끼워 맞춰지듯 상황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이 상황을 안다면 필시 일본인들이 희열과 통쾌감을 느낄 것이 틀림없다.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전략이 성공한 샘이다.시나브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는 일본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태규와 산호는 어떻게든 구로다를 막아야겠다고 다짐했다.그러나 망령과 싸울 마땅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과거 노승이 준 단검이 몇 개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신(神)이 되어가는망령과 대적하기에는 한 없이 부족했다. 패배를 각오하고 싸우는 것과 같다.산호는 반드시 노승이 준 단검이여만 망령과 싸울 수 있다고 했다.왜냐하면 노승의 단검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보슈 김형, 정말 이걸 산에 기거하는 노승이 줬단 말이오?허허... 이런 것은 단군신을 받드는 무당도, 100년을 도를 닦는 도사도만들 수 없는 것이라오. 한 마디로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란 말이오.이 단검에는 신선의 영력이 들어 있수다. 참 신통방통한 노승일세..?” 산호는 그렇게 고민하지 말고, 노승을 찾아가보라고 했다.하지만 태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이미 그곳을 몇 번을 찾아갔다. 하지만 노승이 기거했던 흔적들은 하나 없었다.물론 도움을 청하러 간 것은 아니라, 감사함에 대한 인사를 하러 간 것이었지만매번 그곳에 갈 때마다 우거진 나무들과 이름 모를 잡초만 무성했다.현실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서 일어났으니,신통한 노승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이후 눈앞에 놓인 비극의 매듭을 지어야만 했기에 노승에게만 의지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방울 소리가 두번 정도 울리더니, 산호의 신기(神氣)가 발동했다.처음에는 다리만 부들부들 떨더니, 이내 온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이 정말 괴이했다.발작으로 보일 수도 있었고, 어떤 춤으로 오해 할 수도 있었다.얌전했던 태규도 갑자기 부산한 ‘신내림’같은 것을 보니 경악을 했다.산호는 머리를 좌우로 강하게 흔들어댔다. 세차게 마구 흔들다가 잠시 멈추고,크게 웃다가, 다시 머리를 흔들어댔다. 5분 정도 그것을 반복했다.그리고 떨리던 몸을 멈춘 뒤, 고개를 푹 숙였다.신내림이란 것을 처음 본 태규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산호의 몸을 쿡쿡 찔렀다.산호는 늦잠이라도 자다가 일어난 사람처럼 ‘휙’하고 일어났다. “김형, 그 노승이 있던 곳에 나를 데려다 줄 수 있겠수?” 방울 소리가 울리자 갑자기 눈앞에 맑은 기운을 가진 노인 하나가눈앞에 나타났다고 했다. 분명 태규가 만난 노승임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둘은 당장 밖으로 나와서 김주용이 살던 집터 뒷산으로 향했다.여전히 그곳은 길이 험했고 사람들의 발자취가 닫지 않는 곳이었다. “느껴진다, 느껴져...맑고 영롱(玲瓏)한 기운이 점점 커진다...” 산호는 태규가 노승을 만난 곳에 가까이 가자 혼자 신이 나서 달려갔다.태규의 눈에는 여전히 여기저기 뻗어 있는 우거진 나무들과무성하게 자란 풀 밖에 보이지 않았다.산호는 무당이 아니랄까봐, 산 속에서 좋은 기운이 넘쳐난다며 방방 뛰어댔다.그런 산호를 바라보며 태규는 헛웃음이 나왔다. “허허... 하여튼 무당들은 중간이 없어요. 중간이...” 잠시 후 산호는 산 속의 누군가와 교신을 하는 듯 대화하기 시작했다.반가운 사람을 만난 양,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껄껄 웃어댔다.그리고 이내 오래 된 나무 한 그루에 절을 올렸다.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무방했다.산호가 태규에게 고개를 돌려 ‘씨익’하고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이보슈 김형, 내 예상이 맞았수.김형은 참 운이 좋아... 허허.” 태규는 산호의 말에 당황스러웠다.이런 비극을 겪고도 운이 좋다니, 산호가 실성한 것처럼 느껴졌다.그런 태규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산호는 신이 났다. “김형이 만난 노승은 신선이었수. 산신령 같은 것이란 말이요.그런데 김형이 만난 분이 누군 줄 아시우?이름은 들어보셨나 보르겠네... 고운 최치원 선생이라고..?” 최치원은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비운의 천재로 희대의 문장가이자,다양한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신라를 개혁시킬 인물로 추대 받았다.그러나 진골의 득세에 도적놈들이 발광하는 현실에 질린 나머지모든 것을 버리고 산 속으로 잠적했다.소문으로는 가야산인지, 지리산인지 알 수 없지만 신선이 되어팔도를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산호는 산신이 말하기를 최치원 선생이 태규에게 남겨놓은 선물이 있다고 했다.태규는 산호가 가리키는 오래 된 나무 밑을 파보았다. 기다란 상자 하나가 나왔다.그것을 열어보니 복숭아나무를 깎아 만든 목검 하나가 귀중하게 담겨 있었다.과거에 받았던 목검은 투박하게 깎여 그저 단검의 형태로 대충 만든 것이라면상자 속의 것은 길고 매끄러웠으며 정교하게 범의 무늬까지 새겨져 있었다. “산신께서는 최치원 선생이 자신의 지팡이를 깎아 만든 것이라고 했수다.오래 된 복숭아나무로 만든 지팡이에 선생의 영력까지 더해져서귀신이나 망령이 닫기만 해도 사라질 만큼 위력이 강하다고 하우.그래서 이런 무기들은 갖기도 힘들 뿐 아니라,신선이나 도를 오래 닦은 도인들만 사용한다우.이야, 신선이 직접 깎고 다듬어서 그런지 튼튼하고 참 야무지구만?” 사실 최치원은 오래전부터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태규의 삶이 비극적으로 흘러갈지라도 차마 속세에 개입할 수 없었다.어차피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을,본인들의 힘으로 직접 해결하는 것이 세상의 법도였고 뜻이었다.그러나 이것은 절대 혼자서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일본에서 온 살인귀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인간의 욕망을 이용하여 이곳 사람들의 얼과 정신을 지배했다.그로인해 같은 민족을 의심하고 미워하게 만들뿐 아니라이익 앞에서는 사람의 목숨도 하찮게 마들었다.신선으로서 죄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차마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그래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태규에게자신이 해줄 수 있는 가자 최선의 도움을 주고 싶었다.하지만 태규가 일본에서 온 망령을 물리칠 수 있을지는 확신 할 수 없었다.사실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비극을 품고 태어난 청년이여, 부디... 신(神)이 되려는 망령을 막아주시게.’ 태규가 목검의 손잡이를 잡자, 신선의 깊은 뜻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흐려져 가던 목표가 선명해졌다. 주마등처럼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살인마 구로다의 살아생전 모습부터 죽음... 아버지 김주용의 친일행각...일본인들에게 속아 한낱 지질한 살인귀를 장군이라 받드는 아버지...결국 일본인의 꼭두각시가 된 아버지... 비극적인 결말... 박정웅의 출현...사업을 성공시키는 정웅... 신도들의 결집... 인간을 제물로 받는 살인귀 구로다...무장한 경찰들이 빨갱이라며 시민들을 잡아드리는 모습... “이번에 막지 못하면 더욱 큰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더욱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 망령의 제물이 될 수 없다...” 태규는 한 동안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를 내려다봤다.과거와 비교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거대한 공장들이 돌아갔다.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그러나 이 도시에서 일어난 무서운 일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대한민국경제영웅이라 떠받들던 박정웅이 실은 자신의 이익에 사람 목숨을파리 목숨으로 여기는지 아는지 의문이었다. “이보게, 산호. 나는 말이야... 결심했다네.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구로다 때문인 줄 알았네, 하지만 아니었어.애초에 살인귀에게 영혼을 팔고 이익을 얻으려고 한 자가 잘못이었어.우리 아버지 또한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샘이라고 생각하네.그래서 나는 결심했네...박정웅을 비롯한 그와 결탁한 모든 이들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네.”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마음이 태규를 강하게 자극했다.그러나 산호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박정웅을 없앤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살인을 하겠단 말이요?김형 미쳤수? 애초에 망령만 없애기로 하지 않았수?다시 생각해 보쇼, 김형... 그 망령만 없애면 박정웅도 멀쩡하게 돌아올 거요.그리고 나는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아야만 하우.그 전에는 목숨 걸 수 없수다.” 태규는 이미 단념을 했다.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숙주(宿主)인 박정웅부터 없애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그 동안 복잡하고 많은 생각 때문에 계획이 더뎌 졌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정웅과 술자리에서 그를 죽일 각오로 나왔는데 그러지 못했다.늘 가까이 곁에 있었으면서 오지도 않을 때를 기다렸다.고작 신도들에게 개죽음을 당하기가 무서워서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다가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어쩌면 일을 진행하기가 두려워서 시간을 번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래, 나도 자네를 이런 일에 끼어들게 할 수는 없어서 하는 말이야.하지만 구로다를 없애도 박정웅은 달라지지 않을 걸세.이미 박정웅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어...자네 몫으로 보수는 두둑하게 준비했네. 그 동안 고마웠네.꼭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길 바라지...” 태규는 산호를 뒤로하고 홀로 산을 내려왔다.산호는 신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지배 11부에서 계속...PS : 날씨가 엄청 춥습니다. 건강하신지요. 덕분에 슬럼프를 극복 중입니다. 여러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지만... 좋아지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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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공일기장] 두가지 인생 - 54
Channel 1. 로키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욕설의 한 가운데에 서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주설이었다. 처음에는 뜻 밖의 인물을 발견한 것에 대한 놀라움으로 말문이 턱 막혔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광경을 계속 보노라니 그녀가 열차에서 내리기 전에 우리에게 ‘나와 아는 척을 하지 말아라.’라고 말했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이 도시에서 엄청난 미움을 받고 있는 인물인 터인데, 그 인물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저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다가는 우리의 신변 역시 위태로워 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역시 라스알하게를 발판으로, 프로하기온을 넘어 라스알게티까지 노리는 이답게,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노골적인 증오에 대처하는 그녀의 태도는 범인이 보일 수 있는 그것과는 확연이 달랐다. 그녀는 욕설과 폭언에 귀를 막지 않았고, 오히려 고개를 치켜들고 당당하게 맞서나갔다. 아니...... 고개를 당당하게 치켜들었다는 것으로는 지금 저 여자가 보여주는 태도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래! 내 머릿속의 수다쟁이가 간만에 한 건을 해냈군, 녀석이 내가 알고 있는 어휘의 무더기 속에서, 지금의 주설을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냈다. 그것은 ‘오만’이었다. 주설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 오만하게 내려 보는 태도를 시종일관 견지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녀를 둘러싼 그 어느 것도 그녀의 오만한 콧대를 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주설씨라고요? 대관절 무슨 일인데요? 왜 사람들이 주설씨에게 욕을......” 단상 아래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답답이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래, 하마터면 녀석을 잊어버릴 뻔 했군, 나는 재빠르게 단상에서 내려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대고, ‘이젠 주설이란 이름을 입에 올리면 안될 것 같다.’라고 속삭였다. 내 말에 답답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왜요?”“정확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그 녀석은 라스알하게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런 이와 관련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우리로서도 꽤나 곤란해지겠지.”“대체 그녀가 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걸까요?” 답답이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생각보다 빨리 얻을 수 있었다. “물러서 부복하시오! 총독각하 행차요!” 크고 우렁찬 이 외침은, 욕설과 인신공격으로 왁자했던 라스알하게 역 앞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얼마나 순식간에 소음이 사그라들었던지, 이곳에 엄청난 양의 폭약이 한꺼번에 터지는 바람에 이 일대가 순간적으로 진공상태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만들 정도였지. 나와 답답이는 급작스러운 상황변화에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우리의 눈앞에 그 수많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오와 열을 지어 바싹 엎드리고 있는 풍경이 들어왔다. 세상에, 지금 우리 주변에 엎드리고 있는 이 사람들이 아까만 해도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들끓던 무리가 맞는 것인가? 누군가가 여기에 있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바꿔치기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리를 지르던 이는 말을 타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살피며 혹여나 엎드리지 않은 이가 있는지 살피고 있었다. 답답이도 이때만큼은 눈치껏 바싹 엎드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심지어 그녀가 내 팔을 잡아끌며 ‘얼른 엎드리자고요.’라고 속삭였다는 것이다. 세상에 답답이에게 눈치로 질 줄이야. 나도 이젠 지옥에서 한잔 할 때가 다 된 모양이군. 바싹 엎드리는 와중에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넉넉잡아 대 여섯명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우산이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드리워졌고, 그 뒤를 깃털로 만든 거대한 부채 두 개가 한 사람을 위한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그 뒤로는 남자와 여자가 반반 섞인 행렬이 그 사람의 뒤를 따르고 있었고...... 아마 우산의 그늘아래 있는 이가 바로 총독이지 싶었다. “삼민 상단의 주설, 라스알하게 총독님을 만나 뵙것습니다.”“고개를 들어라.” 총독 앞에 그녀는 무릎을 꿇고 인사를 했고, 총독은 그런 주설에게 일어서라고 명령을 했다. 그가 주설에게 손짓을 하자, 그녀는 허리를 숙여 다시 한 번 예를 갖추었다. “프로하기온에서 소식은 들었다. 마피아 놈들과 한 딱가리 했다고?”“지 불찰입니다. 시장 조사를 확실히 혔어야 혔는디. 그게 모질랐던 모양입니다.”“그거야 다음부터 잘 하믄 되는 것이고.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네. 관저에 식사를 준비해놨으니 한술 뜨고 원기를 회복 하시게나.” 총독은 그녀의 어께에 손을 올렸고, 그 모션이 주설에게는 퍽 감동으로 다가왔는지, 그녀의 어께가 가늘게 떨렸다. “각하의 은혜가 하늘과 같사옵니다.” Channel 2. 아이리스 주설씨와 총독님은 하나의 행렬을 이루어 총독부로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부복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들 수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알려주진 않았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주요한 인사들을 보좌하던 행렬들까지 모두 이 장소를 떠나야지만 부복을 풀 수 있는 모양이에요. 저와 로키군은 그렇게 한참동안 고개를 땅에 쳐 박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상당히 권위적인 동네로군.” 저와 로키군은 서로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부복을 풀자마자 자신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퍼포먼스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만큼이나, 뒷말의 농도는 상당히 짙고 노골적이었습니다. “구신은 뭐하는지 몰것네. 저런 오살 맞을 년을 안델고 가구 말여.” 자신의 분노를 채 온전히 식히지 못한 교복입은 학생이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저희 옆을 지나갔습니다. 청년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형식적으로 말리는 시늉만 할 뿐, 그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어요. 주설....., 그녀는 확실히 도시 전체적으로 미움을 받고 있는 인물이 분명했습니다. 저희는 그들과 쓸데없는 마찰을 피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역사의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일단 커피 한잔 하자고.”“아마 여긴 커피보단 차를 많이 마실거에요.”“응? 커피를 안 마시는 동네도 있단 말이야?”“아무래도, 여기는 기후조건상 커피보단 차를 재배하니까요. 라스알하게 그린티는 들어 봤죠? 산지에서 직접 먹어보는 경험도 할 만하지 않겠어요?” 저는 로키군에게 역전 앞 찻집을 가리켰고, 로키군은 커피하우스를 찾기 위해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가 결국 제 의견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여기 주문할게요.”“어......음......저는...... 중.....앙 어를 할......지 몰릅니.......다.” 제 말에 찻집 주인은 난감한 얼굴로 더듬더듬 대답을 했습니다. 억양도 억양이지만, 그의 말은 정말로 서툴러서, 그의 말을 알아듣는 데는 꽤나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했어요. 그렇게 고생 끝에 들린 말이 중앙어를 할 줄 모른다라 저희 둘은 맥이 탁 풀렸지 뭡니까. 그래도 찻집 주인도 엄청난 인내심의 소유자이어서, 저희에게 손짓 발짓을 해가면서 메뉴판의 차에 대해서 성심성의껏 설명해 주었습니다. 노력을 한 주인의 성의도 있고 해서, 저희는 ‘작설차’라는 걸 주문해보았습니다. “주설 정도면 중앙어에 꽤 능통한 편이었군.” 로키군은 주인이 내온 작설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주설씨에 대한 평을 내렸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가 말하는 중앙어에는 라스알하게 특유의 억양이 섞여, 프로하기온 만큼이나 특색이 있구나 했는데, 여기 현지인들은 거의 중앙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로키군은 ‘이곳 신문도 마찬가지일까?’라면서, 찻집주인에게 가서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신문을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주인은 고개를 끄덕하더니, 로키군에게 신문더미를 가져다 주었지요. “익숙한 신문도 있지만, 라스알하게의 지역신문도 있구먼. 그런 점에선 프로하기온보단 낫네.” 저는 로키군이 읽다가 포기해버린 라스알하게 지역신문을 살펴보았어요. 정말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뿐이었지요. 곡선미를 자랑하는 보편문자와 달리, 라스알하게의 문자는 직선적인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네모반듯하고, 선과 선이 수직으로 만나는 경향이 있더군요. 그런 문자들을 보노라니, 뭔가 ‘외국에 온 것 같은’기분이 들었습니다. 분명 하나의 나라인데...... 생활환경이나 사용하는 언어가 영판 다르니까,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데서 오는 동질감 보다는 이질감이....... “아, 로키군.”“응?”“주설씨 말이에요. 무슨 이유로 미움을 받는지 알 것 같아요.”“......?” Channel 1. 로키 답답이는 자신이 깨달은 바에 대해서 내게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정치적인 내용이 많아, 그녀가 말한 내용을 온전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IATP연수 '대륙사' 강의에서 학습했던 내용 덕분에 어느 정도는 지레짐작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주설의 처지는 ‘라스알하게의 역사’와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하고 있었다. 라스알하게는 이전에 ‘삼국’으로 불리던 곳으로써, 라스알게티를 중심으로 하는 대륙과는 별개의 문화권에 속한 ‘독립적인’나라였다. 여담이지만 삼국은 그곳의 문자로 ‘세개의 나라’라는 뜻으로써, 활에 능한 ‘이’, 창을 능숙하게 다루는 ‘한’, 칼을 가진 ‘왜’라는 세 민족이 각각의 영역을 가진 별개의 나라였다. 그런데 이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대륙은 이 세 나라를 한데 묶어 ‘삼국’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삼국’은 몇 백년 전부터 존재가 알려졌고, 프로하기온을 통해 대륙과도 통교했다. 물론, 각각의 나라였기 때문에, 통일된 하나의 채널이 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이곳은 독립된 문화권으로서 대륙과 상대했다. 그런데, 그곳에 정치적인 지형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1592년 4월 14일 ‘왜’와 ‘이’가 다툼을 벌였고, 거기에 ‘한’이 개입함으로써, 셋은 내전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대륙은 ‘불간섭주의’ 다시 말하자면 어차피 남의나라 싸움이니 개입은 하지 않되, 물건 팔아먹으면서 이득이나 챙기자는 포지션을 취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싸움에 라스알게티 출신 상인들이 희생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라스알게티 측에서는 ‘삼국’에 사건의 진상을 소명할 것과,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었지만...... 앞서도 말했다시피 이전에도 그랬겠지만 당시의 ‘삼국’은 대륙과 통교하는 통일된 채널이 없었다. 이를 외교당국은 알고 있었고, 진상소명과 피해보상은 요원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외교당국의 인식과, 일반 시민들의 인식 사이에 간극이 컸다는 것에 있었다. 당시 라스알게티 시민들은 ‘삼국’이 하나의 나라라고 인식했던 모양이다. 시민들은 ‘진상소명’과 ‘피해보상’에 대한 소식이 없자, 그들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이 라고 생각했고, 이런 ‘불량한 이웃’에 따끔한 맛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연일 전쟁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그것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지속되자 라스알게티의 위정자는 슬슬 생각을 달리 먹기 시작했다. ‘프로하기온도 먹었던 우리가 저길 못 먹을 이유도 없지 않냐?’라는 쪽으로 말이다. 라스알게티는 ‘삼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삼국에는 통일된 채널이 없었다. 그걸 알고서도 ‘삼국’이라는 가상의 개념에 선전포고를 하고, 병력을 보낸 것이다. 라스알게티 지역 사람들로서는 어이가 없겠지,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힘든 판국에 갑자기 외국 군대가 밀고 들어오니 말이다. 하지만 전란중인 나라가 갑자기 외국군대가 들어온다고 뭉쳐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라스알게티는 이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듭했고, 지금의 라스알하게 역이 있는 이곳에 ‘라스알하르게타’라는 식민지를 만들어버리고 그곳에 총독을 두었다. 부연하자면, 이 사건 전까지만 해도 ‘라스알하게’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즉 라스알하게라는 지역의 명칭은 바로 ‘라스알하르게타’라는 식민지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사태가 심각해짐을 깨달은 삼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휴전을 하고, 라스알게티에 맞서 싸웠지만, 지도자들의 정치적인 화해가 병사들의 화해로 이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라스알게티가 적국이 결속하는 시간을 줄 정도로 군기 빠진 이들인 것도 아니었다. 라스알게티는 심적으로 통합이 되지 않은 오합지졸을 상대로 승리를 이어나갔고, 라스알하르게타는 물밀듯이 ‘삼국’을 잠식해나갔다. 그리고 1610년 8월 29일 마지막 저항세력을 무너뜨림으로써, ‘삼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이로서 하루아침에 ‘삼국’은 ‘라스알하게’로, ‘이’, ‘한’, ‘왜’로 이루어진 ‘삼민’은 ‘라스알하게인’이 된 것이다. 몇 백년간 독립을 유지하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속국으로 전락해버렸고, 그로부터 고작 14년밖에 지나질 않은 것이다...... 이런걸 미루어 볼 때, 라스알하게인에게는 라스알게티에 대해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만무하지. 하지만 내 말이 모든 라스알하게인들이 라스알게티인과 부정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저녁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자신의 빛을 내듯이, 수많은 사람도 자신의 색채를 가지는 법이다. 라스알하게인들 중에는 라스알게티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개인적인 부와 영달을 취하는 이도 생겨났다. 예전에는 ‘겨레’로서 구분되던 라스알하게 인들이 ‘라스알게티와의 친소여부’로 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라스알게티와 적대적인 관계를 가진 이들을 ‘부정파’, 라스알게티와 친화적인 관계를 가진 이들을 ‘긍정파’로 이들은 빠른 속도로 분화되었다. 그러한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주설은 그러니까 ‘긍정파’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매국노’ 즉, 나라를 팔아먹은 놈인 것이다. “주설의 부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군.”“그리고 그녀가 받는 미움에도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구요.” 답답이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하긴 그럴법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즉,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이질적인 성, 경험, 재능, 관점을 가진 동물들이 화합을 하는 데는 자신의 집단에 대한 애착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애착의 대상이 가족이라면 ‘가족애’, 지역사회라면 ‘향토애’로 다양하게 변주되어왔지. 인간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고장에 대한 애착이 있게 마련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고향인 라스알게티가 타인의 고향에 했던 몹쓸 짓을 알게 된다면...... 그건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에휴..... 사는 게 뭔지 참.”“살아서 추악한 것인지, 추악하니까 살아남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진 않는 게 사실이군.”“그래서 주설씨가 자신을 피하라고 했나 봐요. 자신이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 테니, 우리가 자신과 가까워 보인다는 걸 라스알게티인들이 알게 되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요.”“그래......그런 것 같군” Channel 2. 아이리스 로키군은 입맛을 다시며 차를 마시곤 기지개를 쭉 폈습니다. “그래, 그건 그거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될 뿐이야. 얼른 ‘내 유품’을 돌려받고 여길 뜨자고. 유품 소지자의 이름이 뭐랬지? 레딕......뭐였더라?”“로트 클라우드에요.”“아 맞아. 내가 라스알게티에 오래 살긴 했나봐. 로트를 레딕이라고 발음하는걸 보면 말이지.” 로키군의 너스레에 핀잔 섞인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한편으론 로키군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스알하게의 역사와 주설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는데, 로키군이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시켜준 거잖아요. 티를 안내서 그렇지 그는 참 다정한 면모를 가진 사람임이 분명해요. “차 잘 마셨습니다.”“네...... 아니, 예라고 대답해야 하는곤가? 담에도 또......응? 뭔 말인지 알았쥬?” 찻집 사장님은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또 오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저희를 배웅해주었습니다. 참으로 친절한 사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낯선 여행자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것도 라스알게티인에게 호의적일 수 없는 고장에서 말이에요. 저희는 찻집에서 나와 라스알하게 역 앞을 둘러보았습니다. 이제 보니 이곳은 정말로 나무가 많은 곳입니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 즐비한 라스알게티, 진흙집 사이로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프로하기온과는 정말 대비가 되는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 결코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로 있다는 건 참 슬픈 일이에요. “일단 사람이 많은 곳부터 찾아가자고. 사람이 많은 곳에는 정보가 모이기 마련이니까.” 로키군의 손은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집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짚단으로 지붕을 이은 라스알하게 특유의 양식으로 만들어진 저 집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었습니다. 음...... 라스알하게 문자로 뭐라고 써 있기는 한데, 그걸 알아들을 수 없는 저희로서는 싸리문 너머로 음식을 들고 이리저리 내달리는 종업원과, 연기에 섞인 구수한 냄새가 저곳은 식당이라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분명 특실칸에서 만찬을 즐기긴 했지만, 이 구수한 냄새를 맡다보니, 라스알하게 고유의 음식은 어떤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피어올랐습니다. 물론...... 호기심은 배고픔이라는 동료를 함께 데리고 오기도 했고요. “어서 오세유. 몇 명이셔유?”“둘입니다.”“음......어..... 쩌기 고향이 어찌 되셔유?”“.....고향?” 손님이 들어오자 라스알하게 특유의 그릇에 음식을 나르던 종업원이 반갑게 인사를 하려다가...... 저희를 보고는 멈칫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시선은 로키군이 아닌, 제게 멈춰있었지요. 그녀의 눈은 ‘혹시나’하는 의구심으로 잔주름이 자글자글하게 꼬여있었습니다. “내 고향은 프로하기온이고, 이 아가씨 고향은......”“아따 아주마, 요래 딱 보면 모르겄슈? 눈깔 퍼런게 딱 봐도 라스알게티 것이구먼.”“아니...... 전 라스알게티인이 아니구요.” 저도 모르게 거짓말이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저를 보는 종업원과, 그녀 옆에 선 사내의 눈에는 의구심이 지워질 기미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깔 퍼러면 라스알게티 놈년이지 그럼 뭐랴?”“이 여자는 라스타반에서 왔다. 이곳 사람들은 눈이 파란 색이면 다 라스알게티인이라고 생각하나보지?”“아니 뭐 꼭 말이 그렇다는건 아니구......”“라스알하게 사람들 인심 좋은 건 대륙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는데, 그 푸근한 인심이라는 게 먼 타지에서 온 여행자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모양이군.”“아이구 뭔 말을 그렇게 딱딱하게 하신대유? 우리가 뭐 사람 쫒아낼라고 물어본 것두 아니구, 그냥 눈 퍼런게 신기해서 그런거여유. 그쥬? 신기하잖아유.”“그류 그류. 처자 눈이 참말로 이뻐서 물어본 거여.” 로키군은 사내와 종업원을 가로막으며 일갈을 했고, 로키군의 말에 그 둘은 더는 말을 못하고 저희에게 자리로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휴...... 로키군 덕분에 한 고비를 넘겨서 다행입니다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라스알게티 인에 대한 그들의 증오의 민낯과 마주한 것 같아 지독하게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여긴 어떤 요리가 유명한가?”“라스알하게야 에지간하면 음식 맛없다는 소리 못듣쥬. 혹시 괴기 좋아하시나? 삼국에는 사람들이 먼질 갔다가 오면 괴깃국에 막걸리 한 잔 시원하게 찌끌이는디.” Channel 1. 로키 종업원들은 한때나마 우리를 의심했던 것이 미안했는지 유난스러울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다른 손님들은 ‘수저’라고 불리는 식기도구를 알아서 가지고 올 동안, 우리에게 직접 가져다주었고, 반상이라고 부르는 앉은뱅이 탁자를 몇 번이고 행주로 훔쳐내었지. 그들의 태도를 보니, 그들의 가슴속에 있던 의구심이 이젠 호기심으로 그 양태가 변한 것 같았다. 아마, 답답이와 같은 인상착의를 가진 사람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는데....... 어쨌거나, 이런 친절을 받다 문득 답답이 쪽을 보니 녀석은 풀이 죽어 있었다. 아마 녀석의 성정상,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속인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여게 국밥이구, 요기 호리병에 담긴거는 막걸리유. 수저 쓸 줄 알쥬?”“네. 그럼요. 감사합니다.” 녀석의 마음에 자리한 ‘가책’이라는 감정은 국밥을 가져다주는 종업원의 영업용 미소를 만나자 다시 한 번 날카롭게 그녀의 가슴을 찔러대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이....... 영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지식하게 다 말할 필요는 없어. 사실대로 이야기한다고 저들이 널 칭찬해줄 리도 없고.”“.......알았어요.” 나는 국밥을 먹으며 녀석을 쳐다봤다. 분명 특실칸에서 진수성찬을 즐기긴 했지만 일곱 시간이나 지난 과거였으니 분명 허기가 질법도 했지만, 송송 썰린 파가 올려진 국밥을 녀석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한번 걱정 해줬으면 됐지 두 번이나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짐짓 모르는 척 하고 먹고 있는데, 답답이는 한참동안 국밥을 께작거린 끝에 무언가를 결심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저기 로키군.”“응? 뭐? 말해.”“혹시 프로하기온 사람들도 라스알게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건가요?”“.......” 녀석의 질문을 받자마자 든 생각은, ‘이 녀석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는 것이었다. ‘우리’야,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사람들의 질시 혹은 두려움어린 시선을 받는게 익숙해져서 타인의 시선에 둔감하곤 했는데,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타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건 매우 생경한 경험이었겠지. 그래 그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곱씹고, 스스로의 마음을 괴롭힌다고 해서 타인이 그걸 알아줄 것도, 자신의 ‘부정적인 시선’을 거둘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비 효율적인 생각에 매몰되어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이해하고 말고의 여부를 떠나 내가 이제까지 지켜본 녀석은...... 아마 내가 브레이크를 걸어주지 않는다면, 그 생각을 멈추지 않을 아주 멍청하다 싶을 정도로 여린 녀석이다. “아니 뭐 이런 질문을 하는게 제가 주눅이 들어서 그런게 아니라요. 그냥....... 라스알하게에서 딱히 좋은 취급을 받은게 아니니, 프로하기온이라면 어쩐지 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딱히 좋진 않아. 프로하기온 사람들은 라스알게티 사람들을 일러 ‘정없고, 계산적인 사람......’깍쟁이로 보곤 하지. 뭐 딱 거기까지야. 어느 나라든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깍쟁이 소릴 듣는건 피할 수 없지 않겠어? 그거 외엔....... 딱히? 라스알하게야 최근에 정복 됐지만 프로하기온은 엄청 오래됐잖아? 천년왕국 수립 즈음에 합쳐졌으니까.”“.......” 내 말에 녀석의 얼굴에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한 근육의 궤적이 그려졌다. 아마 내 말에 조금은 마음이 홀가분해진 모양이었다. 독심술 같은 잔재주는 없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눈 맥락을 고려했을 때 녀석의 머릿속에는 ‘그래도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을 것 같았다. “내가 아는 한 모든 사람들에게 고루 좋은 평과 사랑을 받으며 존경받는 사람은 없어. 라스알하게의 성인중 하나가 그런 말을 하더군 ‘양고기가 아무리 맛이 있어도,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건 아니다.’라고 말이야. 사람마다 경험과 그걸 통해 얻은 지식, 그리고 수립된 가치관이 다를 텐데 그걸 다 만족시킬 수가 있겠냐? 그건 아마 네가 믿는 신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더라도 불가능 할거다.”“그런 말 해 줘서...... 고마워요.”“고맙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 한 건데 뭘. 아 맞다. 저기 물어볼게 하나 있는데.” 이른바 ‘좋은 말’을 더 하면 내 손이 오그라들다 못해 완전히 소멸될 것 같은 생각에 나는 답답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근처에 있던 종업원을 불렀다. 내 부름에 우리 둘을 지켜보며 ‘언제쯤 끼어들어 말을 한 번 섞어볼까’ 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종업원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잉. 뭐 시킬거라도 있어유? 육수 더 줄까?”“아니 육수는 됐고, 질문 하나만 하자고. 혹시 이 고장에 ‘로트 클라우드.’라는 사람이 있는가?”“잉? 로트....... 뭐시라고?”“로트 클라우드. 이곳에 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흠...... 보자. 로트 클라우드라. 이름 보면 여게 토백이는 아닌거 같구. 이보 미리네. 혹시 여그 근처에 클라우드라는 외국인이 산다는디 알고 있남?”“글씨요? 난 생판 첨 들어보는디?” Channel 2. 아이리스 예상외의 대답에, 로키군은 종업원들에게 몇 마디 더 물어보았지만, 그들의 대답은 우리가 기대한 것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가 계속되자 식사를 하던 다른 손님들도 호기심을 느끼고 우리에게 와서 몇 마디 말을 섞으려 들었고, 우리는 그들에게도 ‘로트 클라우드’에 대해 물었지만, 그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결국 이 식당에서는 큰 소득을 얻을 수 없었지요. “우리들도 더 알아볼라니께 적정들 마시구 살펴가셔유.”“예. 감사합니다. 그럼 많이 파세요.” 종업원의 인사를 받으며 저희는 빈손으로 식당을 나섰습니다. “후아, 예상은 했지만 녹록치는 않네요.”“그럴법하지. 퇴역이어도 한때 ‘우리’에 적을 두면서 알게모르게 척을 지고 있었을 거야. 신분세탁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에서 보복을 당할지 모르니 철저히 감추며 살고 있을테지.”“그럼 클라우드씨가 가명을 쓰고 있을거란 말인가요?”“뭐......” 로키군은 대답대신 하늘을 올려다보기에, 저도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푸른 녹음 사이로 파란 하늘과 구름이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그것도 가능성 중에 하나로 상정을 해 놔야하지 않을까?”“.......” 로키군의 한숨 섞인 말에 저도 가슴이 답답해져왔습니다. ‘라스알게티에서 요한 찾기’와 뭐가 다를까 싶잖아요. ‘암살자의 주인’은 아케르날에서 금제가 언제 닥쳐올지 모른다고 잔뜩 겁을 줘놓구선, 이렇게 첫 관문부터 막막한 과제를 주다니...... 성격이 고약해도 보통 고약한게 아닙니다. 하다못해 인상착의라도 알려주었다면 그나마 찾기 쉬웠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건 ‘로트 클라우드’라는 이름 그 뿐이잖아요. 과연 그는 우리가 금제를 막아내기를 바라는게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 지경입니다. “야옹!” 가슴이 답답해도 너무 답답해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제 가슴팍에서 냥사장이 빠꼼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아차, 그러고 보니 라스알하게 열차에서부터 냥사장을 옷 안에 집어넣고 있었네요. 아무래도 반려동물을 열차에 데리고 가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힐난어린 눈총을 받을 것 같아서, 냥사장을 옷 속에 숨겼었는데, 그걸 여태까지 깜빡하고 있었던 거에요. 냥사장은 자신이 쫄쫄 굶는 동안 제가 자기를 외면한 것에 퍽 골이 났었는지 발톱을 세워가며 제 가슴에서 빠져나오고는, 그대로 훌쩍 뛰어 가버렸습니다. “완전 제 멋대로구먼.”“그래도 여태껏 땡깡 한 번 안 부리고 잘 있었는걸요.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쐬라고 해야죠.”“그래 니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일곱 시간동안 기척도 없길래 나도 완전히 잊어버렸어.” 저희 둘은 잠시 머릿속을 텅 비우고 냥사장이 저희 주위를 쏘다니는걸 지켜보았습니다. 냥사장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어요. 하긴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당연해요. 불과 몇 시간 만에 모래먼지가 풀풀 날리는 곳에서 푸른 녹음이 짙게 우거진 곳으로 풍경이 훼까닥 바뀌었으니까요. 아마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마술처럼 느껴졌을게 분명합니다. 강아지풀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앞발로 톡톡 두드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저는 로키군의 옆구리를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마 인간을 내려다보는 ‘아버님’이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인간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아버님’으로써는 불과 몇 시간 뒤에 일도 내다보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정말 귀엽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어어, 저거 봐. 저 녀석 사냥감을 찾은 모양이야.”“아아, 그러게요?” 냥사장의 시야에 까치 한 마리가 들어온 모양이에요. 방금 전까지는 강아지풀을 가지고 놀며 날뛰던 냥사장이 잔뜩 웅크리며 풀숲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까치는 자신의 등 뒤에 야성을 가진 맹수가 다가오는 걸 꿈에도 몰랐는지 속편하게 깡총거리며 흙속의 지렁이를 파먹고 있었고, 그런 까치의 모습을 냥사장은 호시탐탐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오오, 냥사장. 자칭 맹수답게 낮은 포복으로 조용히 까치에게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까치가 지렁이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냥사장은 소리죽여 까치에게 다가갔고 이 둘의 거리는 시나브로 좁혀져 갔습니다. 그 진풍경에 우리 둘은 ‘클라우드’고 뭐고 완전히 잊어버리고 이 모든걸 숨죽여 지켜보았습니다. 어느덧 냥사장은 점프만 하면 바로 까치를 낚아챌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고, 그리고 “깍깍깍!” 냥사장은 비호와 같은 점프로 까치를 덮쳤습니다만, 불의의 습격에 놀란 까치가 허둥지둥 대다가 엉겁결에 냥사장을 날개로 쳤고, 예상치 못하게 뺨을 맞은 냥사장은 그대로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그 사이에 까치는 재빠르게 하늘로 날아가 버렸지요. “오구구. 냥사장 까치한테 얻어맞았어요? 이리 와요. 여기 참치 한 캔해요.” 냥사장은 위로를 갈구하는 듯이 터덜터덜 걸어와 제 다리에 자신의 몸을 부벼댔습니다. 이럴 때 보면 정말 영락없는 아이 같다니까요. 저는 냥사장의 등을 어루만져주며 가방에서 참치캔을 꺼내 냥사장에게 주었습니다. 냥사장은 캔이 열리자마자 허겁지겁 다가가 참치를 퍼먹어댔어요. “야, 이거 봐봐. 아까 까치가 있던 곳에서 떨어져 있었는데.”“네?”“너 혹시 이런 브로치 가지고 있지 않나?” 로키군은 제게 브로치를 내밀었습니다. 조금은 특이하게 생긴 브로치였어요. 포인트가 되는 큼지막한 보석이 달려있는 일반적인 디자인과는 달리, 그 브로치에는 수많은 나뭇잎이 달려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장식되어있었거든요. 디자인이 특이하다고 해서 그 브로치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 브로치에 장식된 나뭇잎 하나하나가 에메랄드로 이루어져 있었거든요. 어쨌거나 그에게서 물건을 받아들어 자세하게 살펴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생판 처음 보는 물건이었어요. “에이 제가 가지고 있는 거라면 당신이 모를 리가 없죠.”“까치가 훔친 것인가 보군. 녀석은 반짝이는 물건을 모으는 습성이 있다고 하잖아.”“하하 새치고는 물욕이 많은데요? 근데...... 어라?” 로키군에게 브로치를 받아드는데, 브로치의 나무장식을 제가 엉겁결에 눌렀는지, 브로치에서 딸깍 소리가 나면서 브로치가 열리며 그 안이 드러났습니다. 그 안에는......
갑과을작성일
2017-11-0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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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중년여자 상,하
여름에 쓴건데 오그라든다 딱히 대상이 있는건 아니고초등학생 무렵, 학교 뒷산 깊숙한 곳에 우리들은 비밀기지를 만들어두었다.비밀기지라 해도 상당히 노력을 들였기에 제법 훌륭했다. 몇개를 판자를 못으로 고정해서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다다미 3장 정도 넓이의 오두막.방과후엔 그곳에서 간식을 먹거나 야한책을 읽는 등 마치 우리들의 집처럼 이용하곤 했다.그곳을 아는 것은 나와 진, 쥰. 그리고 2마리의 개 정도였다.초등학교 5학년 여름날, 우리는 비밀기지에서 하루밤 자고 오기로 결정했다. 부모님에겐 각자 다른 친구집에서 자고 온다고 속여두고, 용돈을 모아서 간식, 불꽃놀이 로켓, 쥬스 같은 걸 샀다.수학여행때보다 두근 두근 거렸다.오후 5시쯤 학교 정문에서 집합, 뒷산으로 향했다. 산길을 걸어 1시간 정도 거리에 우리들의 비밀기지가 있었다.기지 주변은 2마리 들개 (해피♂, 터치♂)의 세력권이기에 기지 근처에 다가가면, 언제나 어디에선가 튀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마중나와줬다.우리들은 개 2마리를 향해 [마중 나와서 고마워~] 라고 말하며 맛봉을 하나씩 줬다.기지에 도착했을 한뒤 가지고 온 짐을 오두막에 넣었다. 그리고 아직 해가 떠있었기에 근처에 있는 커다란 연못에서 낚시를 했다. 그래봤자 잡히는 건 식용 개구리 뿐이지만.낚시를 하는 중 해가 떨어졌기에 우리는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상당히 많이 샀던 것 같은데, 30분도 지나지 않아 불꽃놀이 화약도 다 떨어졌기에 우리들은 일단 오두막에 돌아갔다. 한밤중의 비밀기지는 우리 모두 처음이었다. 깊은 산중이기에 가로등도 없고 바깥의 불빛이라곤 오로지 달빛뿐. 들리는 소리는 벌레 울음 소리밖에 없었다.준비해간 캠핑용 전등을 킨 우리는 처음엔 과자를 먹으며 좋아하는 애에 대한 이야기나 선생님에 대한 험담 같은 걸 했다, 그러던 중 조용하던 바깥에서 때때로 [첨벙] 하는 소리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우리들은 그 소리가 점차 무섭게느껴졌다. [잠깐, 지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곰...인 건가?]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무서웠다.시간은 9시, 오두막안은 너무나 더웠고, 모기도 있었기에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거기에 한밤중의 산이 가진 분위기에 압도된 우리는 점차 이곳에 남은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우리는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그 결과, 곰이 나올 수도 있고, 오두막안이 너무 더워 잘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달빛이 나오는 지금, 산에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회중전등 빛에 의지해서 우리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출발하고 5분 정도는 해피와 터치가 우리를 따라와줬기에 내심 든든했지만, 오두막에서 일정거리를 벗어나자 그 2마리는 돌아가버렸다.평상시 몇번이나 다녔던 길임에도 한밤중의 산길은 전혀 모르는 곳을 걷는 느낌을 주었다. 서로 30CM 정도의 거리로 밀착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그 때 였다. 진이 내 어깨를 꽉 붙잡더니, [저기 누가 있어!]작은 소리로 말했다.우리들은 순간적으로 제자리에 드러누우며 전등을 껐다.귀를 기울여 보니 확실히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부스럭, 부스럭]두 다리로 수풀을 헤쳐나가는 소리.그 소리가 흘러 나오는 곳을 찬찬히 살펴보았다.우리들 있는 곳에서 2, 30m 정도 떨어진 수풀 속에서 누군가 나왔다.전등을 한손에 들고, 다른 한손에는 긴 봉같은 걸 들고선 그 봉으로 수풀을 밀어 헤치며산을 오르고 있었다.우리들은 처음엔 별로 무섭지 않았다. 되려 소리의 정체가 사람이라는 것에 지금까지 느꼈던 공포가 사라진 것에 안도했다.안도감 때문일까, 우리들의 어린 마음에 호기심이 채워지기 시작했다.[저거 누구지? 따라가볼까?]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두 친구는 [물론.]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어보였다. 우리는 이미 희미하게 보이는 회전 전등 빛과 수풀을 헤쳐나가는 소리를 의지하며,그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뒤를 따라갔다.정체모를 사람은 20분 정도 산을 오르다 한 장소에서 멈춰섰다.우리는 뒤쪽으로 30 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성별은 커녕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희미하게 보이는 사람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그 사람은 발을 멈추더니 등에 짊어진 가방을 내려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저 사람 혼자 뭐하려고 온 거지? 하늘 가재라도 잡으러 왔나?]이에 진은 [좀 더 가까이 가보자.]라고 말했다.우리는 낙엽이나 나뭇가지를 밟지 않도록 발을 땅에 스치듯 걸으며 근처로 천천히 다가갔다.우리들은 실실 웃고 있었다.머릿속으론 누군지 모를 저 사람을 어떻게 골려줄까, 이런 생각 뿐이었다.그 때,[쾅!!]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심장이 멈출 듯 놀랐다. [쾅!!]또 들렸다. 순간 진과 쥰을 쳐다보니, 쥰이 손을 들어 앞을 가리키며,[저 사람이야! 저 사람이 뭔가를 하고 있어!]나는 그쪽을 쳐다봤다.[쾅!! 쾅!! 쾅!!]뭔가를 나무에 내리치고 있었다.손에 든 게 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이 [저주의 의식] 이라는 건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이 산은 옛날부터 [저주를 거는 인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그저 뜬 소문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게 될 줄은.나는 너무나 무서워서,[도망치자.]라고 말했지만, 진이[저 사람, 여자 같은데?]그 말에 쥰은,[어떤 사람인지 보는 거 어때? 좀 더 근처로 가보자구.]그러면서 두 사람은 다시 움직였다.나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겁쟁이 취급 당하는 것도 싫었기에 마지못해 두 사람 뒤를 쫓았다.여자와의 거리가 줄어들 때마다 [쾅!! 쾅!!]이외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여자는 불경 같은 걸 암송하고 있었다.조금 우회해서 우리는 그 여자한테서 8m 정도 떨어진 나무 그늘 밑에 몸을 숨겼다.그 여자는 어깨에 걸릴 정도로 머리카락이 길었고, 마른 체형이었다. 발밑에는 짊어지고 온 배낭과 전등을 두고, 사진 같은 것에 차례차례 못을 박고 있었다. 못은 벌써 6~7개 정도가 박혀 있었다.그때였다.[멍!!]우리들이 놀라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해피와 터치가 꼬리를 흔들며 서있었다.다음 순간 진이,[우와아아악!!]비명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뒤돌아보니, 무서운 얼굴을 한 여자가 한 손에 쇠망치를 들고[캬아아아아아아!!]괴성을 지르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나와 쥰은 곧바로 일어서 도망치려 했다.갑자기 내 어깨를 잡혔단 느낌이 들더니 그대로 뒤로 쓰러져버렸다.쓰러진 내 가슴위로 퍽 하고 뭔가 내리찍힌 바람에 나는 먹은 걸 게워냈다. 일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몰랐지만, 내 가슴위에 놓여진 여자의 다리에 상황을 파악했다.여자는 이빨을 으깨는 것 처럼 갈아대며 [그으....그윽....]뭐라 형언할 수 없는 소리를 냈다. 고통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공포로 인해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된 것 같았다.나는 여자한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선을 떼어놓는 순간 저 손에 들린 쇠망치를 내리칠 것만 같았다.그런 상황에서도, 아니 그런 상황이기 때문일까. 그 여자의 얼굴은 아직도 생각난다.연령은 마흔살 정도일까, 조금 야윈 얼굴에 흰자위를 희번뜩 내보이며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이빨은 악물고 있었고, 흥분해서인지 몸을 조금씩 떨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걸까,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여자가 내 얼굴을 확인하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숙인 순간, 터치가 여자의 등에 달려 들었다.순간적으로 여자의 몸이 비틀거리며 내 가슴을 짓밟던 다리가 떨어졌다.거기에 해피도 여자에게 달라붙었다.그 2마리는 평상시 우리와 자주 놀았기에, 이 여자도 자신들과 놀아줄 거라 생각한듯 했다. 나는 찬스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일어서 달리기 시작했다.[빨리! 빨리!]조금 떨어진 곳에서 진과 쥰이 손전등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나는 빛이 보이는 곳으로 달렸다.[퍽]뒤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나한테는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다.우리 셋이 산을 내려왔을 때는 벌써 12시가 지나있었다.발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여자가 쫓아올 수 있다 생각해서 진의 집까지 달려서 도망쳤다.진의 집에 도착하자, 나는 울컥하고 웃음이 터뜨렸다.극도의 긴장감에서 풀려났기 때문일까?나와 달리 쥰은 엉엉하고 울었다.나는[비밀기지는 이제 갈 수 없겠어. 그 여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쥰은 울면서,[바보! 날이 밝으면 다시 가봐야 해!]라고 말했다. 내가 어째서? 라고 생각하고 있자니, 진이 말해줬다.[네가 그 여자한테 도망쳤을 때, 해피랑 터치가 당한 것 같아.][그 여자가...터치를...터치를....]쥰은 통곡했다.이야기는 이랬다.달려가는 나를 뒤에서 때리려 했기에 해피가 여자에게 덤벼들었고, 쇠망치에 맞았다.여자는 한번 더 나를 쫓으려 했지만 터치가 발밑에서 방해했고 결국 쇠망치에 맞아 죽었다.그리고 여자는 우리쪽을 한번 돌아본 뒤, 널부러진 개들을 계속 때렸다고 했다.결국 우리는 낮이 밝으면 다시 한번 더 산에 오르기로 했다.흥분해서인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선잠 때문에 피로가 제대로 풀리진 않았지만 날이 밝자 일단 산으로 향했다.우리는 그 [중년 여자] 에 대한 대책으로 BB탄 총과 야구 배트를 준비했다.산 초입에 도착했을 때, 진이[중간에 아직 그 여자가 있을지도 몰라.]그래서 평상시와는 다른 루트로 산을 올랐다.한낮의 산은 밝은데다 매미울음소리도 울려퍼지는 게, 흡사 어젯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거짓말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중년 여자]에게 당했던 지점에 다가가자 긴장감이 퍼진 우리는 조금씩 발걸음이 무거워졌다.어제 그 장소에 도착했다. 배트를 든 손에 식은땀이 가득찼다.여자가 못을 박고 있던 나무가 보였다.조금씩 가까이 다가가 전모를 확인한 우리는 말을 잊었다.나무에는 꼬마애 (3~4살된 여자애)의 사진에 무수한 못이 박혀 있었다.아니 놀란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무 뿌리 부근에 해피의 시체가 있었다.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해피는 이마에 못이 하나 박힌 채 누워있었다.우리는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나는 해피의 시체를 보곤 다음에 중년 여자를 만나면 나도 해피처럼.....이런 생각이 들어 바로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 때 쥰이 [터치....터치의 시체가 없어! 터치는 살아 있을지도 몰라!]그러자 진도,[분명 터치는 도망친 걸거야. 혹시 기지에 있지 않을까?]나도 터치만은 살아 있어주길 바랬기에, 우리 셋은 비밀 기지를 향해 달렸다.비밀 기지가 보이는 곳에 달려왔을 때, 진이 갑자기 멈췄다.나와 쥰은 [중년 여자?!] 라고 생각해서 바로 몸을 숙였지만, 진은 망연히 손을 들어[....뭐야....저거?]기지쪽을 보며 중얼거렸다.나와 쥰은 천천히 일어서서 기지쪽을 보았다.뭔가 기지의 모습에 위화감이 느껴졌다.처음엔 몰랐으나, 곧바로 기지 지붕에 뭔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근처에 다가가서야 그것이 쥰이 기지에 두고왔던 가방이란 걸 알 수 있었다.헌데 기지 지붕 전체에 못이 빼곳히 박혀 있는 게 아닌가!!우리는 경악했다.[이 비밀기지! 중년 여자한테 들켰어!!]진이 손에 든 배트를 꽉 쥐고 천천히 기지로 다가갔다.나와 쥰은 뒤쪽에서 BB총을 겨냥했다. 중년 여자가 기지 안에 있을 지도 모르니까.진은 천천히 움직여 문 근처로 이동했다. 그리고 문에 손이 닿자 마자 재빨리 열어 제쳤다.「우왓! 」뭔가를 본 진이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찣었다.우리는 대체 뭔가 진을 놀라게 한 건지 확인하려 천천히 기지안을 확인했다. 거기엔 피투성이가 된 터치의 시체가 있었다.[우왓!]우리는 진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터치의 이마에는 역시나 못이 박혀 있었다.이걸 보고 나는 생각했다.그 여자는 터무니 없는 미치광이다.어젯밤, 이 산에 남아 있었던 걸 진심으로 후회했다.터치의 시체를 보며 멍해 있는 동안, 무언가를 발견한 진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이!! 저거.....]나와 쥰은 아무 말 없이 그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기지안에는....벽이나 마루 바닥에 이상한 위화감이....뭔가가 새겨져 있었다.가까이서 확인해보니,[쥰 죽어, 쥰 죽어, 쥰 죽어, 쥰 죽어, 쥰 죽어, 쥰 죽어, 쥰 죽어, 쥰 죽어, 쥰 죽어, ....]못으로 새겨놓은 듯한 글자가 무수하게 적혀 있었다. 쥰은 아무 소리도 못한 채 굳어졌다.우리들도 놀랐다. 어째서 이름을 들킨걸까[쥰의 가방에 이름이 쓰여져 있잖아!!]진의 말에 나는 바깥에 있던 가방을 확인해보았다.못이 무수하게 박힌 가방에는 확실히[5학년 3반, 쥰]이라고 쓰여 있었다.쥰은 울기 시작했다.나랑 진도 울고 싶었다. 학년과 반, 거기에 이름까지 들켜버린 것이다. 이제 도망갈 수 없다. 나랑 진도 들킬 거야.머릿속이 새하애졌다.우리 모두 터치나 해피처럼 이마에 못이 박힌 채 살해당한다....진이 말했다.[경찰에 말하자! 이제 안돼! 도망갈 수 없어!]나는 패닉 상태로,[경찰에 말하면 비밀기지에 대한 거나 어젯밤 거짓말했던 걸 들켜서 엄마, 아빠한테 혼나!]이런 바보같은 소리를 했다.당시에는 부모님에게 혼나는 게 가장 무섭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쥰은 계속 울고만 있었다.뭐라 할 말이 없었다.우리들은 아무 말 없이 산을 내려갔다. 쥰은 계속해서 울었다.나는 중년 여자가 보고 있지 않을까 해서 계속 두근 두근 거렸다.산을 내려가는 중 진이 말했다.[이제 이 산에 오는 건 그만두자. 한동안 얼씬도 안하면 그 여자도 우리를 잊을 거야.][그래, 대신 이 일은 우리만의 비밀인 거야. 알겠지? 여긴 절대 오지 말자.]나는 그렇게 동의했다.진은 내말에 수긍했지만, 쥰은 아직도 울기만 했다.그 날 각자 집에 돌아간 이후, 우리는 여름방학 동안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2주일 뒤 신학기, 학교에서 쥰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진은 등교했기 때문에, 우리 둘은 설마 쥰이 그 여자에게 당한 건 아닐까.이런 걱정이 들어, 방과후 쥰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쥰의 집에 가니 쥰의 어머니가 우리를 반겨주었다.쥰의 어머니는 일부러 병문안 와줘서 고맙다며 우리를 쥰의 방으로 안내해줬다.방에 들어가보니 쥰은 침대에 누워 만화를 보고 있었다.그 모습에 우리 둘은 안도했다.진 [어째서 오늘 학교 안 온 거야?]나 [걱정했잖아. 감기인 거야?]쥰 [.....]쥰은 아무 말 없이 만화책을 덮었다.그러고 있자니 쥰의 어머니가 과일과 쥬스를 가져왔다.[며칠전 부터 두드러기가 돋았거든. 그런데 계속 낫질 않는 구나][과자 같은 거 먹다가 체해서 그런가 아닐까 하는데....]아줌마는 이렇게 말하곤 웃으며 방에서 나갔다.나와 진은 마침내 안심한 얼굴로,[뭐야~ 두드러기인 거야? 그런 걸로 학교 쉬다니 너무 꾀병이 심하잖아~]놀려대는 어투로 말했지만, 쥰은 반응하지 않았다.[어이? 왜 그래?]진이 묻자, 쥰은 아무 말없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었다.몸에 돋아 있는 붉은 반점.분명 두드러기였다. [두드러기 같은 건 약바르면 나아.]내가 그리 말하자 쥰은 낮은 목소리로.[이거....그 여자의 저주야.]그러면서 등을 보여줬다. 등에도 무수한 두드러기가 나있었다.진 [두드러기가 많긴 하지만, 이런 걸로 저주라니. 그건 이제 잊으라구.]쥰 [옆구리를 봐!]오른쪽 옆구리, 두드러기 가장 심한 곳이었지만 저주와 연관된 만한 건 없었다.쥰 [잘봐!! 그거 사람 얼굴이잖아!]나와 진이 깜짝 놀라 다시 보자니 직경 5cm 정도, 피부가 심하게 진무러진 게 보였다.어떻게 보면 사람 얼굴 처럼 보이기도 했다.나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냐? 사람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쥰 [어떻게 봐도 얼굴이잖아! 나만 저주 받은 거야!]나와 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쥰의 분위기에 압도되었기 때문에. 언제나 상냥하고 온후하던 쥰이.....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창백한 얼굴에 생기가 없는 눈, 정신적으로 쫓기고 있는 듯 했다.우리는 이 자리에 있는 게 괴로워졌기에 바로 쥰의 집을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나[....저거....[이 세상에 저주 같은 건 없어!!]]내 말에 진이 끼어들며 외쳤다. 그 말에 나는 조금이지만 용기를 얻었다.그리고 3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쥰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나나 진, 둘다 전화 통화를 길게할만한 입장이 못됐기에 쥰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지 못했다.다만 담임 선생님을 통해,[쥰은 피부병으로 잠시 못나온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뿐.그러던 중, 학교안에서 기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학교 통학로에서 트렌치 코트를 입은 여자가 학생들의 얼굴을 주시하고 다닌다.]라는 소문이었다.나는 그 소문을 듣고 엄청나게 동요했다. 왜냐면 나는 중년 여자에게 얼굴을 보였을 가능성이 있었으니까.그래서 진에게 상담했다.진 [괜찮아. 어두운 밤이라서 못봤을 꺼야. 신경 쓰지마.] 진은 패닉 상태인 나를 진정시키려 한 것인가, 상당히 냉정하게 답했다.하지만 나랑 진은 통학로가 완전히 반대 방향. 쥰의 경우엔 비슷한 방향이지만, 학교를 쉬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집에 가야만 한다.나 [한동안은 나랑 같이 가줘. 나 무서워.]진은 조금 기막히단 얼굴을 했지만, 이내 알았다고 답했다.이 날부터, 방과후 집에 갈 때는 진과 함꼐 가게 되었다.첫날엔 소문으로 들은 트렌치 코트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만나지 않았다.하지만 학교에선 변함없이 트렌치 코트 여자에 대한 소문이 돌아다녔다.진과 같이 하교하게 된 지 5일 째 되던 날, 우리는 쥰네 집에 문병을 가보기로 했다.선물로는 급식에 나왔던 디저트인 오렌지 젤리를 들고 가기로 했다.쥰에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평소처럼 쥰네 엄마가 밝은 얼굴로 나와서 우리를 집안으로 들여주었다.쥰은 이전처럼 낙담한 상태였다. 두드러기 자체는 많이 나았지만,쥰 [옆구리의 그것은 계속 커지고 있어.]이렇게 말했지만 나랑 진이 보기엔 이전보다 호전된 상태로 보였다.쥰은 그만큼 정신적 쇼크가 심했던 것일까.그래서 우리는 쥰에게 트렌치 코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돌아가기 직전 쥰의 어머니가 문앞에서, 어머니 [우리애, 반에서 괴롭힘이라도 당하고 있는 거니?]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바로 부정했지만 진짜 이유를 말할 순 없었다. 3일 뒤,그 날은 드물게 나와 진 그리고 나이토와 사사키 4명이서 함께 하교했다.나이토는 몸집이 크고 사사키는 꼬맹이. 흡사 실사판 자이안과 스네오 같은 녀석들이었다.이때쯤 나랑 진의 머릿속에서 중년 여자에 대한 경계심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트렌치 코트 여자가 실제 있다해도 완전 다른 사람일꺼라 생각할 정도였다.그날은 모여서 놀러가려고 평소랑 다른 길로 가던 중이었다.이게 실수였다.4명이 즐겁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던 중,사사키 [어라, 저거 트렌치 코트 여자 맞지?]나이토 [우왓! 진짜 있었던 거야? 기분 나빠!!]나는 천천히 그쪽을 쳐다봤다. 마음속으로 제발 딴 사람이길 빌면서.우리가 가는 길 앞쪽에 트렌치 코트를 입은 여자가 동네 슈퍼의 비닐봉투를 한손에 들고 아직 늦더위가 남는 아스팔트 길가에 우뚝 서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진은 우리들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진 [눈 마주치지 마.]여자와의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어간다.긴장해서 목이 탔다. 여자는 아무 미동보이지 않을 채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서있었다.여자와의 거리가 5m 정도 남았을 때, 여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우리 얼굴을 쳐다봤다.그리고 바로 우리 가슴팍으로 시선을 내렸다.명찰을 확인하고 있어!!나는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그 때의 그 얼굴이 플래시백해서 심장이 입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틀림없이 그 여자는 [중년 여자] 였다.나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걷기만 했다.언제 덤벼들지 몰라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몇초가 영원처럼 느껴졌다.나이토 [뭐야, 저 눈초리! 저 아줌마 분명 정신이 이상해 ww]사사키 [이렇게 쪄죽을 듯이 더운데, 저 모습은 대체 뭐야? www]그들은 중년 여자를 바보취급하며 웃었지만, 나와 진은 웃을 수 없었다.계속해서 사사키가 말했다.사사키 [에...들렸나? 이쪽 계속 보고 있네.]나는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중년 여자]와 시선이 마주쳤다...납인형 처럼 무표정했던 [중년 여자]의 얼굴에 씨익하고 기분 나쁜 미소가 번졌다.등골이 얼어붙는 다는 건 이런 것인가.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지에 소변을 지렸다.들킨건가? 내 얼굴을 생각해낸 거야? 들켰다면 어째서 덮치지 않는거지?내 머릿속은 그것에 대한 생각들로 꽉 찼다.이제 놀러갈 상황이 아니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 여자가 안보이게 되자 나는 진의 팔을 잡으며,나 [돌아가자!!]진은 내눈을 한동안 쳐다본 뒤,진 [아, 오늘 학원 가야 하는 날인데. 먼저 돌아갈께]나이토, 사사키와 헤어진 우리는 달리기 시작했다.집이랑 반대 방향으로 달리면서 진에게 말했다. 나 [그 여자야. 그 눈초리, 분명 우리를 찾으러 온 거야!]진 [명찰로 이름을 알려고 한 건가. 학년이랑 반은 쥰의 가방 때문에 알고 있었을 테니.]나는 아직도 냉정하게 생각하는 진의 태도에 화가 났다.나 [끝났어!! 이제 도망칠 수 없어!! 분명 이제 곧 집 주소도 알아낼 거야!]진 [역시 경찰에 말하자. 이대로는 안돼. 도움을 받자구.]나 [.....]나는 그저 침묵했다. 분명 그외에 수단은 없다고 생각했다.나 [하지만 경찰한테는 뭐라고 말해?]진 [산이야. 그 산에 남겨진 사진이나, 터치의 시체.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그 여자가 위험인물이란 증거를 보여주면 경찰이 체포할 거야!]나는 진의 말에 납득했지만, 그 산은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내일 방과후, 우리는 산에 돌아가 보기로 약속했다.내일 산에 가보기로 약속한 나는 바로 귀가하려 했지만,[중년 여자] 가 어디에 잠복해있을지 몰랐기에 빙 돌아서 가야 했다.평상시라면 20분만에 갈 수 있는 거리를 2시간이나 걸려 돌아갔다.집에 도착한 나는 바로 진에게 전화했다.나 [집 위치를 들키거나 하진 않았겠지? 오늘 밤 무서워서 못잘 거 같아.]나는 스스로가 이정도로 겁쟁이일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오두막 한가득 새겨져있던 저주의 문구를 본 쥰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게 이해됐다.진 [괜찮아. 그렇게 바로 들키진 않을 거야.]이 떄 나는 진이 내 형 같다고 생각했다.물론 그 날밤에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 깜짝 놀라면서 밤을 지샜다. 씨익하고 웃는 중년 여자의 얼굴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다음날 방과 후. 우리는 그 산을 오르기로 했다.나는 산에 들어가는 걸 주저했다.[중년 여자][시체가 된 터치와 해피][무수하게 박힌 대못]머리속에서 그 날밤의 사건이 꿈틀거리며 되살아난다.나는 진쪽을 쳐다봤다. 진은 아무 말없이 산을 올려다 보았다.진도 분명 부서울 테지.역시 들어가는 건 무섭다...나는 그가 이런 말을 해주길 기대했다.진은 바지주머니에서 1회용 카메라를 꺼내 들더니,진 [좋아.]그렇게 말한 뒤, 산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나는 그 뒷모습에 끌려가듯 따라 달렸다.진은 되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나는 필사적으로 진을 쫓았다.혼자 남는 것은 무서웠으니까.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진도 무서워한 것 같다.무서우니까 더욱 더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달린 것이리라.점점 그 장소가 가까워졌다.생각해내고 싶지 않았지만 저절로 그 때 광경이 되새겨졌다.마음속 가득 공포가 몸을 폈다.두려움에 다리를 놀리기 힘들어졌을 쯤 그 장소에 도착했다. [중년 여자가 나무에 못을 박던 곳][중년 여자가 터치와 해피를 죽은 곳][중년 여자가 나를 땅바닥에 내팽겨 쳤던 곳][중년 여자와 만나버린 곳]나는 누군가가 보고 있단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아니, 누군가가 아닌 [중년 여자]가 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산속의 정적과 내 마음속 공포가 만나 싱크로했다.멈춰 선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진은 그 나무에 가까이 다가갔다.그러다 진은 뭔가를 찾아낸 듯 바닥에 주저 앉았다.진 [해피....]그 말에 나는 몸의 떨림도 잊고 진 옆으로 다가갔다.해피는 이미 흙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썩어서 드러난 두개골 중심에는 조금 녹슨 못이 여전히 박혀 있었다.보고 있기 불쌍해 못을 뽑아 주려 했지만, 진이 나를 제지하곤 사진을 한장 찍었다.나는 냉정한 진의 태도에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못을 뽑으려 했다.두개골에 꽂혀있는 못을 잡은 순간, 두개골 안에서 엄청나게 많은 벌레가 쏟아져 나왔다.나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물처럼 솟아오르는 작은 벌레들이 무서워, 더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그 뿐만 아니라 속이 메쓰꺼워진 나는 그 자리에서 토해버렸다.진은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두드려줬다.나는 그 날밤 해피와 터치를 죽게 내버려둔 주제에, 또 다시 해피를 방치해버렸다.나는 너무나 약하고 최악인 인간이다.진은 카메라를 들고 그 나무를 찍으려 했다.진 [응? 어이~ 잠깐만 와봐.]뭔가를 발견하곤 나를 부르는 진. 나는 조심스레 진 근처로 갔다.진 [이거....전에는 없었지?]그가 가리킨 곳은 무수한 사진들이 박혀 있는 근처.이건 전에도 있었....아니....사진이 달랐다.이전에 봤던 4~5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애 사진 옆에 사진이 또 붙어있었다.사진 상태로 봐서 며칠 정도 전에 박아 놓은 듯 했다.예전에 봤던 사진은 이미 비바람에 닳아 간신히 사람 사진인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새로운 사진 역시 4~5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애였다.이 떄 진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새 사진이 나라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에 가슴을 졸였다.진은 사진이 박힌 나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진 [이제 남은 건 비밀 기지에 있는 그 글자들인가.]그러면서 또 다시 달렸다.나는 근처에 중년 여자가 있을 것만 같았기에, 당황하면서도 바로 진을 쫓았다.비밀 기지에 가까이 갔을 쯤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나 [진!! 잠깐만!]평상시라면 비밀 기지의 지붕이 보이는 위치에 왔으나 지붕이 안보인다.진도 그걸 깨달은 듯 했다. 머리속으로 [중년 여자]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가슴의 고동이 격렬해졌다.진 [뒷길로 가자.]나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뒷길은 평상시 다니던 길과는 다른 뒤쪽 수풀로 진입하는 길이었다.이 길은 비밀 기지에 적이 습격해왔을 때를 위해 만들어둔 길.만들 때는 놀이로 만들었지만, 설마 이런 형태로 도움이 될 줄은...이 길이라면 비밀 기지에 [중년 여자]가 있다 해도 발견될 확률이 낮다.나와 진은 바닥을 기어서 비밀기지 뒤쪽 수풀 속 터널을 통과했다.그리고 비밀 기지 근처에 도착했을 쯤, 이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비밀 기지는 산산조각나있었다.한동안 제자리에서 주위 상황을 살폈지만 중년 여자는 근처에 없는 듯 했다.우리는 수풀 속에서 빠져나와 비밀 기지가 있었던 장소로 다가갔다.산산조각난 비밀 기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고 싶어졌다.비밀 기지는 나와 진, 쥰 그리고 해피와 터치의 집이었으니까.산산조각난 잔해 옆에 큰 돌이 떨어져 있었다.아마 누군가가 이걸 비밀 기지로 던진 것 같았다.누군가? 아니....분명 [중년 여자] 일테지...진은 아무 말 없이 사진을 찍었다.잔해를 파헤쳐 발견한 나무에 새져진 글자들도 찍었다.그러던 중 잔해 틈새에서 터치의 시체를 발견했다.해피와 터치.우리는 그 날 무엇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두마리의 친구를 잃었다. 진 [좋아. 이 카메라, 빨리 현상해서 경찰한테 가자.]그리고 우리는 산을 내려와 근처 파출소를 향해 달렸다.카메라에 찍힌 사진만 보여주면 그 여자는 체포될 거고 우리는 살 수 있다.이 생각만 하며 달렸다.가는 도중 사진관에 들려 사진을 현상했다.완성은 30분 뒤라고 했기에 가게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그 동안 진과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그저 사진이 나오기만 기다렸다.30분 뒤.기다리던 사진이 나왔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재빨리 움직였다.가게 점원은 조금 이상하단 표정을 하면서,사진이 들어간 봉투를 내밀었다. 개 시체나 못에 박힌 여자애 사진이 내용물이니까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하지만.우리는 그 자리에서 봉투안의 사진을 전부 확인한 뒤 대금을 지불하고 나왔다.그리고 바로 파출소로 발을 옮겼다.이걸로 모두 끝이야.우리는 파출소 안으로 뛰어들었다.경관 [응? 무슨 일이지?]안에 있던 젊은 경관은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우리 [[도와주세요!!]우리는 그 날 밤 있었던 이야기를 경관에게 들려주었다.증명사진도 한 장 한 장 꺼내보이면서.그리고, 지금도 [중년 여자]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대충 이야기가 끝나자 경관은 온화한 표정으로 부모님에겐 이야기 했냐고 물었다.아직 말하지 못했다고 말하니,경관 [그러면 집 전화 번호 가르쳐줄래?]진 [어째서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는 거에요. 그 여자가 노리는 건 우리라구요!]그러면서 절박하게 외쳤다.덧붙여 진네 부모님은 의사랑 간호사. 고등학생인 형은 근처 유명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우리 세사람 중 가장 유복한 집이었만 동시에 가장 엄격하기도 했다. 그 날밤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놀러갔다가 이런 일에 말려든 게 밝혀지면나랑 쥰도 문제지만 신이 가장 크게 벌을 받을 건 분명했다.진 [제발 도와줘요! 경찰이잖아요!]그 말에 경관은 조금 쓴 웃음을 지으며,경관 [너희들, 초등학생이지? 이런 일은 부모님과 상의해야만 해.]그렇게 당분간 실랑이를 벌이던 중 경관이 말했다.경관 [그럼 너희들 담임 선생님 성함은 뭐야?]우리에게 있어서 부모님 못지 않은 위협이었다.경관은 우리들의 부모님이나 책임자에게 이야기를 들어야 된단 입장이었지만.우리에게 있어서 부모님이나 담인은 벌을 주는 존재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그러던 중 우리 마음속에 눈앞에 있는 경관에 대한 불신감이 싹트기 시작했다.이대로 있으면 결국 부모님에게 들킨다...라는.이 경관은 우리 이야기를 믿지 않은 거 같다.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우리들이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구하고 있는 부모님이니 담임이니 하며 말만 돌리고.[중년 여자] 에 대한 증거로 사진까지 가져왔건만...나는 경관에게 한번 더 사진을 꺼내보이며 말했다.나 [개를 이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여자라구요!]그러자 경관은 잠시 침묵하더니 뜻밖의 한마디를 꺼냈다.경관 [뭐? 이게 개라구?]우리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냐 싶어서.경관은 계속해서,경관 [아니, 너희를 못믿는 게 아니야. 좀 더 자세히 알려줘. 여기가 머리?]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몰랐던 것 같다.나는 해피의 사진을 가리키면서나 [그러니까....]설명을 하려 했지만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확실히 이 사진은 객관적으로 보자면 개 시체로는 안보일지도...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갈색으로 변색된 뼈와 듬성 듬성 남아 있는 털.우리는 해피가 죽은 다음 날 모습을 봤기 때문에, 부패가 진행되었어도원래 모습을 알 수 있지만.모르는 사람이 보면 너덜거리는 수건 정도로 보일 것이다.나는 다른 사진도 냉정하게 살펴봤다.나뭇판에 새겨진 저주의 글자, 여자애 사진에 박힌 못.어떤 것도 [중년 여자]와 연결시키긴 어려웠다.혹시 경관은 어린애 장난으로 생각해서 부모님이나 담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가?나는 이대로 여기 있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나 [분명히 부모님한테 연락할 거야.]나는 진에게 작게 속삭였다.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턱으로 바깥을 가리켰다.그리고 다음 순간 진은 갑자기 바깥을 향해 달려나갔다.나 역시 그를 따라 파출소를 빠져나갔다.뒤에서 경관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렸다.경관은 결국 뒤쫓아오지 않았다.아마도 장난을 치러온 꼬마애들이 거짓말을 들통날 것 같아서 도망친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 같다.우리는 경관이 뒤쫓아 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 골목길에 앉아 향후에 대한 일을 논의했다.나 [지금부터 어떻게 하지?]진 [...그게....]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마지막 비장의 카드였던 경찰의 도움은 소득도 없이 사라졌다. 이걸로 전부 해결된다.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충격도 컸다.나 [이대로 가면 그 여자한테 집주소도 들킬 거야...]나는 무서웠다.진 [....당분간은 그 여자랑 마주치지 않게 주의해야 해...]나 [이제 무리야! 쥰의 학년이랑 반까지 알고 있으니까 우리도 들키는 건 시간문제라구!]진 [하지만 그 여자,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 생각이 진짜 있을까?]나 [뭐?]진 [일전에 우리들 그 여자랑 만났잖아. 만약 뭔가 할 생각이라면 그 때 했을 거야.]나 [......]진 [거기다...산에는 우리들을 저주하는 건 안 보였잖아?]나 [......]분명 산에 갔을 때 우리들에 대한 저주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비밀 기지는 부셔버렸지만.여자애에 대한 사진이 늘어나긴 했지만... 우리들...특히 이름까지 들통난 쥰에 대한 저주도 안보였다.나는 내심 반론하고 싶었지만, 그와 동시에 진의 말처럼 [중년 여자]는 분명 우리에 대해 잊어버린 게 아닐까....제발 그래줬으면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진 [우리를 진짜 원망하고 있다면 뭔가 반응이 있어야 되잖아.]그렇게 말하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진 [학교 근처에 돌아다니는 것도 우리가 아닌 사진의 여자애를 찾는 걸수도 있어.]나 [...그럴까...]나는 진의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그렇다고 할까, 진의 말을 토대로 나 자신을 납득시키려 했다.그것은 현실 도피에 가까웠다.진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중년 여자]에게서 도망칠 방법은 없다고.하지만 우리들은...[그래! 분명 우리들을 잊어 버렸을 거야!][잊었어. 분명 잊었어.][아, 제길. 쫄아서 손해봤다!!][진짜 그 여자 짜증나네.]그렇게 서로 강한 척 했다. 어떤 의미 자포 자기 상태였다.한동안 그 자리에서 [중년 여자]에 대한 험담을 나눴다.그러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쯤,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진과 헤어지기 전,진 [내일은 쥰네 집에 가보자구.]나 [응! 그럼 내일 봐!]서로 밝은 표정에 손까지 흔들며 헤어졌다.내 마음은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나 [그래...분명 그 여자는 우리들에 대한 건 까맣게 잊었을 거야. 분명...]자기 암시라도 걸듯이 나는 그 말만을 반복하며 집으로 향했다.위를 올려다 보니 구름도 없고 별들이 반짝이는 매우 맑은 밤하늘이 보였다.그걸 보고있자니 지금까지 [중년 여자]에 대한 고민에 가슴 졸이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집에 가까워졌을 쯤,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이 할 시간이 됐단 생각에발걸음을 보다 빨리 했다.탁탁탁탁탁....골목 사이로 내 발소리가 울려 퍼진다.탁탁탁탁탁.조용한 밤이었다.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응?내 발소리 말고 다른 발소리가 겹쳐 들렸다.뒤를 돌아보았다.어두워서 잘 안보이지만 아무도 없다.난 정말 겁쟁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달렸다.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누가 따라오고 있다.한번 더 멈춰 서서 뒤쪽을 쳐다봤다....역시나 아무도 없었다.내 발소리에 섞여 누군가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는데도...나도 쥰처럼 존재하지 않은 [중년 여자]의 저주에 쫓기고 있는 것 인가?너무 겁을 먹고 있는 건가?그렇게 한동안 계속 뒤쪽을 쳐다보았다.터질 듯 두근거리던 심장이 잠시 멈췄다.나한테 좀 멀리 떨어진 뒤쪽, 집 근처에 세워진 오토바이 옆에 누군가 주저 앉아있었다.아니 숨어 있었다.달빛만으론 누군지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코트를 입고 있다!!나는 그걸 확인하고 몸이 굳었다.숨어 있는 사람은 나한테 발견되지 않았다 생각하는 듯 한데, 실루엣만은 확실히 보였다.나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그 여자다! 그 여자! 그 여자! 그 여자! 그 여자! 그 여자!]넋을 잃을 것 같았지만 본능적으로 달렸다. 정말 필사적으로. 숨도 쉬지 않고 달렸다.나 자신을 잊고 달렸다.집까지는 이제 몇 미터.좋아. 이제 도망칠 수 있어!그러다 머리속으로 한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이대로 집안에 들어가면 우리집이 어딘지 들키잖아.그 생각이 든 순간, 집을 무시하고 집 옆으로 난 골목길 사이로 달려나갔다.분명 내 뒤를 쫓아올 [중년 여자]를 떨궈내기 위해.5분 정도, 지그재그로 골목길을 마구 달렸다.그러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나는 천천히 몸을 세워 뒤를 돌아보았다.[중년 여자] 로 보이는 그림자도 안보였고 발자국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나는 주위를 경계하면서 집으로 발을 옮겼다.집근처에 도착한 나는 다시 주위를 경계하다 빠른 동작으로 집안으로 뛰어들었다.부모님이 맞벌이로 집을 비운 터라 문이 잠겨 있었지만 재빨리 가지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의 자물쇠를 잠그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니 [후우.....]우선 진한테 알려줘야 겠단 생각에 신발을 벗으려던 찰라, 현관앞에서 소리가 났다.나는 신발을 벗으려다 몸을 굳히고 현관을 응시했다.우리집 현관은 미닫이로 불투명 유리가 끼워진 알루미늄 샤시로 되있었다. 바로 그 불투명 유리 저편에 누군가 서있는 그림자가 비쳐보였다.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1m도 안되는 거리에 [중년 여자]가 있다!나는 숨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몸을 딱 고정시켰다.아니, 아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가위에 눌릴 것 처럼.뱀의 시선 아래 놓인 개구리라는 게 이런 심경인 건가.불투명 유리 너머로 보이는 [중년 여자]의 그림자를 그저 올려다 보았다.[중년 여자]는 아무 미동도 없이 그저 서있었다.이쪽에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걸까?그 때였다. 유리 너머에 있던 여자의 왼팔이 천천히 움직었다.그리고 천천히 문 손잡이 부분으로 뻗어 가더니덜컹문이 흔들렸다.내 심장은 다시는 없을 정도로 새차게 뛰기 시작했다.[중년 여자]는 문이 잠겨 있는 걸 확인한 뒤 천천히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나는 여전히 움직일 수 없는 상황,[중년 여자] 현관문에 더욱 바짝 다가오더니 제자리에 주저 앉았다.그리고 유리 너머로 귀를 살짝 대었다.안쪽 소리를 들으려 하고 있어!눈앞에 있는 불퉁명 유리 너머로 여자의 귀가 선명하게 보였다.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토할 것 같았다.심장 고동은 이미 절정에 달해 폭발할 듯 했다.심장 뛰는 소리를 들킬지도 모른다 생각이 들 만큼.[중년 여자[는 2~3분 정도 유리에 귀를 대고 있다 일어섰다.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 걸어갔다.조금씩 조금씩 여자의 그림자가 희미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나 [...갔나....?]나는 조금도 안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중년 여자]는 정말로 떠난 걸까?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을까.아직도 집 근처에 있다면?만약, 내가 집에 들어오는 걸 [중년 여자]가 봤다면?내가 있다는 걸 확신한 다음 아까 같은 행동을 한 것 이라면?그렇다면 그 여자는 분명히 집 근처에 있을 것이다.나는 천천히 주의를 기울여 신발을 벗은 다음 거실로 이동했다.전등은 절대 켜지 않았다. 내 존재를 알릴 수 있으니까.거실로 간 나는 바로 전화기를 들어 진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발신음이 3번 정도 울린 뒤 진 본인이 전화를 받았다.나 [진이야? 위험해. 왔어. 그 여자가 왔어. 들켰어. 들켰다구.]나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진에게 말했다.진 [뭐? 어떻게 됐다구? 무슨 일이야?]나 [우리 집에 그 여자가 왔어. 빨리 어떻게든 해줘.]나는 진에게 매달렸다.진 [진정해. 집에 아무도 없는 거야?]나 [없어! 빨리 도우러 와줘!]진 [우선 문단속 먼저 확인해봐. 그 여자는 어디 있는데?]나 [몰라! 하지만 방금 전까지 집앞에 있었어]진 [당황하지마! 우선 문단속이야. 알겠지?]나 [알았어. 확인해볼테니까 빨리 와줘.]나는 전화를 끊은 뒤 문단속을 하러 우선 화장실로 갔다.화장실까지 가는 건 전등은 하나도 켜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오감에 의지해야 했다.우선 화장실 창문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게 주의하며 닫았다.다음은 욕실.욕실 창문을 천천히 닫고 잠궜다.욕실에서 나온 나는 거실 뒤쪽 문을 잠그려 이동했다.복도벽을 더듬으며 이동하던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근처 창문을 쳐다봤다.평상시와 다름 없이 얇은 레이스 커텐이 쳐져 있는 창문 뒤로 사람 그림자가 비쳐보였다.누군가 창밖에 얼굴을 딱 붙인 채 실내를 들여다 보려 하고 있었다.집안은 전등을 켜지 않았기에 안의 모습은 안보일테지만 가로등 불빛으로 인해밝은 바깥쪽 모습은 확연히 보였다.창문 밖에 [중년 여자]가 흡사 도마뱀마냥 찰싹 달라 붙어 있다.나는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나는 육식동물을 찾아낸 초식 동물 마냥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온몸이 마구 떨렸다.저쪽에서 이쪽이 보이는 걸까?[중년 여자]는 안쪽을 탐색하는 듯 싶더니 그 자세로 그대로 창문 중심으로 이동했다.창문에서 끼긱 끼긱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렸다.[중년 여자]가 오른손으로 창문을 긁고 있었다.끼긱 끼긱 끼긱끔찍한 소리는 계속됐고, 내 공포심은 절정을 치달았다.어째선지 모르지만 [중년 여자]의 기이한 행동에 공포를 느낀 나는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쪼그려 앉아만 있었다.그러던 중 [중년 여자]는 갑자기 고개를 획 돌리더니 어딘가를 달려 갔다.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몰라서 그냥 창문만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다 창문 너머 도로로 붉은 빛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경찰이다!!나는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우연히 지나가던 경찰차를 보고 [중년 여자]가 도망친 거라고.나는 당분간 제자리에 주저 앉아 떨고만 있었다.그러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었다.너무 갑작스러워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진의 전화였다.진 [괜찮아?]나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지금은 어딘가로 갔어.]진 [부모님이 돌아오신거야?]나 [아니 우연히 경찰차가 지나간 덕분에 도망친거라 생각해.]진 [그래? 다행이다. 안 그래도 너희집 근처에 의심스런 사람이 돌아다닌 다고 신고했어.하지만... 슬슬 위험해. 그 여자한테 집도 들켰고.....부모님한테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아.]나 [.....]진 [나도 오늘 부모님한테 말할테니까. 너도 말해. 진짜 위험하니까.]나 [....응.]그리고 전화를 끊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왔다.나는 집안의 불도 켜지 않은 채 현관으로 달려나갔다.어머니 얼굴을 본 순간 안도감에 눈물이 흘러나왔다.어머니는 무슨 일인지 몰라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나는 한동안 계속 울다가, 그 날밤 있었던 일과 오늘 있었던 일은 말해줬다.설명하던 중 아버지도 귀가했다.아버지에겐 어머니가 설명해줬다.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 여자가 서있던 창문 근처를 둘러보았다.창문 유리에는 예리한 뭔가로 긁힌 자국이 잔뜩 나있었다.예리한 뭔가라는 말에 나는 퍼뜩 대못을 떠올렸다.부모님은 나를 꾸짖지 않았다.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아 주었고, 아버지는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10분 정도 지나 경찰이 왔다.경찰에겐 아버지가 사정을 설명했다.그동안 나는 어머니와 함께 거실에 있었는데, 잠시 뒤 경찰이 내게 그날 있었던 일은 물었다.해피와 터치에 대한 것, 나무에 못박힌 사진, 비밀기지에 새겨진 쥰을 저주하는 글자,그리고 방과 후에 만난 것 까지.[중년 여자[에 관계된 모든 이야기를 했다.....방금 전에 있었던 일도...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다른 경찰관이 창문에서 지문을 채취했다.내가 이야기한 것중 경찰이 가장 자세하게 물었던 건 여자애 사진에 대한 것이었다.그 여자애의 용모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뒷산의 지도를 내가 그려주고 경찰이 조사해보기로 했다.당분간 우리 집 근처 순찰을 강화하겠단 약속을 한 뒤 경찰은 돌아갔다.결국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잠시 뒤 진과 쥰네 부모님한테서 전화가 왔다.부모님끼리 뭔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지만 [중년 여자]에 대한 것 보단학교에 어떻게 설명할 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그 날 밤, 나는 몇년만에 처음으로 부모님이랑 같이 잤다.부끄러움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중년 여자]가 그 만큼 무서웠으니까.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8시가 넘었다.지각한다고 당황해 일어났지만, 어머니가 오늘은 학교에 안가도 된다고 말했다.학교에는 이미 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아버지는 벌써 출근했지만, 어머니는 하루 쉰다고 했다.아마 쥰이나 진도 학교를 쉴 거라 생각했지만, 굳이 전화는 하지 않았다.나는 내 방에 틀어 박혀서 [중년 여자]가 한시라도 빨리 체포되기 기다렸다.제발 이 공포에서 빠져나갈 수 있길 빌었다.어머니는 어째선지 [중년 여자]에 대해서 하나도 묻지 않았다.아마도 나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점심 식사를 하고 또 다시 내방에 박혀 있던 중,쿵하고 집 벽에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나는 순간적으로 진이라고 생각했다.진은 나를 불러낼 때 현관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창문에 돌을 던지곤 했으니까.나는 창밖을 내다봤다.집앞 골목길에 있는 전신주 근처에 진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보이지 않았다.어디 숨어 있는 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 중내 방 아래 마당에서 꺄악! 하는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놀라서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봤다.어머니는 아래쪽의 뭐가를 보고 놀란 듯 했다.나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어머니는 나를 올려다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담장쪽을 가리켰다.나는 어머니가 가리킨 방향을 봤다.거기에는 뭔가 끈적 끈적한 보라색 액체가 흩어져 있었다.그게 방금 전 쿵 하는 소리를 낸 흔적인가?그리고 시선을 내려 어머니가 바라보고 있었 곳을 봤다.거기에는 내장이 삐져나온 커다란 황소 개구리 시체가 놓여져 있었다.어머니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나는 바로 [중년 여자]의 짓이라 생각했다.그리고 바로 근처를 둘러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멍하니 있던 어머니는 이내 거실에 뛰어들어 경찰에 연락을 했다.어머니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있었다.아마 이때 처음으로 [중년 여자]의 이상함 알게 된 거라 생각한다.그렇다. 그 여자는 이상했다.분명 개구리를 던져 넣은 다음 놀라는 우리 모습을 보고 웃고 있었을 것이다.근처에서 지켜봤을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이제 이 집은 우리 집이 아니라 [중년 여자]의 새장.마치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 처럼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잠시 뒤 경찰이 왔다. 어제와는 다른 경찰 두명이었다.경관 한명이 도로 바깥을 조사하는 동안 남은 한명은 나와 어머니에게 질문을 했다.뭔가를 보지 못했나? 그 때 상황은? 같은 질문이었다.마지막으로 경관은 불안을 부채질하는 듯한 이야기를 했다.경관 [분명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범인은 또 다시 이런 일을 할지 모릅니다.]이에 나는 참지 못하고,나 [그 여자에요! 코트를 입은 40살 정도의 여자에요! 빨리 잡아줘요!]반쯤 울먹이며 간청했다.그러자 경관은,경관 [방금 전에 산에 가보고 왔단다. 개 시체랑 여자애 사진도 찾았어.지금부터 그걸 조사해 범인을 잡을테니, 안심하거라.]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그리고 어머니한테 가서 말하길경관 [남편분에게 연락을...]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개구리를 던졌던 흔적을 사진을 으로 담은 경관들은 1시간 뒤 돌아갔다.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왔다. 아직 5시도 안됐는데.어제랑 오늘 일 때문에 걱정이 되서 일찍 돌아온 듯 했다.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어머니도, 신문을 읽는 아버지도 아무 말 없었지만.왠지 모르게 불안해하는 것만은 알았다.나 자신도 언제 [중년 여자]가 올지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그 날 저녁 식사는 가족들 모두 아무 말없이, TV 소리만이 가득했다.11시쯤 지나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만일을 위해 1층 거실 전등은 켜놓기로 했다.그 날밤도 부모님과 함께 잠을 잤다.물론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갑자기 현관밖에서,[어이! 뭐하는 거야!]커다란 남자 목소리와 함께[끼야아아아아아~]들어본 적 있는 비명이 들렸다.[중년 여자]의 비명 소리였다.우리 가족은 모두 일어났다.당황한 아버지는 밖으로 나갔고,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았다.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와 함께,[끼이...끼야아아아!! 젠자아아아앙!!]다시 [중년 여자]의 절규가 들려왔다.[얌전히 있어!!][날뛰지 마라!!]이런 남자 목소리도 들렸다.이때 나는 그 여자가 경찰에 잡혔다는 걸 직감했다.[중년 여자]는 계속해서 괴성을 질렀다.나는 어머니의 팔안에서 계속 떨고만 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왔다.아버지는 나한테,아버지 [범인이 잡혔다. 산에서 본 사람이랑 동일인물인지 확인하고 싶다는데...괜찮겠니?]물론 전혀 괜찮지 않지만, 이걸로 끝날 수 있단 생각에나 [...응...]이러헥 대답했다.그리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밖에선 아직도[젠장!! 너까지!! 너까지 나를 괴롭히는 거냐아아!!][중년 여자]가 굉장히 큰 소리로 들려서 온몸이 부들 부들 떨렸다.그러자 아버지가 나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밖에는 두 명의 경관에게 붙잡힌 [중년 여자]가 있었다.나는 처음엔 너무 무서워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내등을 살짝 밀어줘서비로소 고개를 들어 여자를 바라볼 수 있었다.경관 두 사람에게 어깨를 잡힌 중년 여자는 땅바닥에 얼굴을 댄 채 나를 노려보고 봤다.험하게 날뛴 듯 머리카락이 흩어진데다 눈에는 핏발이 섰고 들개마냥 침을 흘리고 있었다.중년 여자 [너...!! 너는 대체 얼마나 나를 괴롭힐 생각인 거냐아아아!]여자는 나를 향해 영문 모를 소리를 늘어놓았다.중년 여자를 붙잡고 있던 경관이,경관 [산에서 본 사람이 이 아줌마 맞지?] 나는 중년 여자의 광기에 밀려 말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경관은 바로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경관 [당신을 방화 미수 혐의 체포합니다.]수갑이 채워진 다음에도 중년 여자는 괴성을 지르며 저항했지만,경관 두 사람에게 떠밀려 경찰차로 연행됐다.그리고 경관 중 한명이 우리에게 사정을 설명해줬다.경관[댁 근처를 순찰하던 중 현관 앞에서 사람 그림자를 발견했는데방금 저 여자였습니다. 현관 앞에 앉아서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 하고 있더군요.현관앞에 헌신문 놔두셨죠?]어머니 [예...? 아니...그런 건 안 놔두는데요.]경관 [그럼 이것도 저 여자가 준비한 건가.]경관이 바라본 곳에는 두꺼운 신문지 다발이 있었다.분명 우리집에서 보는 신문사의 것은 아니었다.경관 [응?]경관이 신문 틈에서 뭔가를 찾아냈다.그건 나무판이었다.거기에는 [xxx 화재로 사망] 이라고 내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나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내 이름도 알고 있었어.만약 경찰이 순찰을 안했다면....그 생각에 조금 정신이 몽롱해졌다.어머니는 나를 껴안으면서 울었다.경찰은 잠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사실은 저 여자... 정신적으로 조금 이상이 있어서........○○에 살고 있는데 동네에서도 문제가 꽤 있어서.... 뭐 동정하는 얘기들도 들리긴 합니다만...』라며 중년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경찰『저 여자, 1년 전에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들을 잃었어요.그 이후로 정서불안이랑 정신분열증에 걸려서... 동네 사람들이랑 다투는 일도 많아서요...산에서 발견된【여자 아이의 사진】은 2년 전 교통사고에서.. 사진 속의 여자 아이가도로로 뛰어드는 바람에 급하게 핸들을 돌렸는데 벽에 차가 부딪혀서 남편이랑 아들이 동시에 세상을 떠났거든요...뛰어든 여자 아이는 다행히도 상처 하나 안 입고 살아 남았는데... 그 후로 계속 그 여자 아이 집에도 찾아가고 있어요.하지만 사고가 사고였던만큼 여자 아이 측에서는 경찰에 신고는 안 하고 있고요...그 여자 아이를 상당히 원망하고 있는 것 같아요.』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동정심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오히려【중년 여자】의 강한 집념이 오싹하게 전해져 왔다.무엇보다도 경찰도 인정하고 있는『정서불안 정신분열증』그렇다면 바로 석방되는 것은 아닌가 ?석방된 후, 나는 또『중년 여자』의 존재에 무서워 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인가 ?경찰의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는『안도감』보다『절망감』이 마음 속에 퍼져갔다.그 후로부터 5년.......나, 진, 쥰은 각자 다른 고등학교에 들어갔다.우리들은 그 후로 만나는 일도 없어졌고,각자 다른 인생을 걷고 있었다.물론『중년 여자』사건을 전부 잊어버리지는 못 했지만,그 사건에 대한『공포심』은 그 때보다 없어졌다.그러던 고1 겨울방학, 오랜만에 『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야 ! 오랜만이야 !』라며 인사를 하고난 쥰은,쥰『사실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발이랑 허리뼈가 부러져서 입원해 있어.』나『뭐?! 어디 병원인데 ? 혼자 있으면 심심하니까 병문안이라도 갈까 ?』쥰『뭐, 그건 고마운데 말이야... 너,【중년 여자】일 기억하지 ? 그 사건 얘기는 아닌데... 얼굴 기억하고 있어 ?』나『......왜 ? 뭐야 갑자기』쥰『.......병원에서 매일밤 면회시간이 끝나면... 이상한 아줌마가 날 보러 와...... 기분 나쁘게 웃으면서...』나는 쥰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잊어버리고 있던『중년 여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 났다.처음 만났던 그 날 밤의『이를 악 문 얼굴』하교 때 보았던『기분 나쁜 웃는 얼굴』집 앞 현관에서 본『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던 얼굴』그 때 이후로 계속 잊어버리려고 노력을 했지만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트라우마』였던 것이다.나는 쥰에게『무슨 소릴 하는 거야 ? 이제 잊어버려 ! 아직도 떨고 있다니 너 진짜 소심하다 ?』라고 대답했다. 마치 내 자신에게도 들려주듯이...쥰『그렇지 ?.... 이런 곳에 있으면 은근 소심해지는 거 같아 !』나『그렇게 소심하게 구는 건 아직도 안 변했네』라고 여유를 보였다. 결국 나도 그 때 이후로 성장하지 않은 건가...그리고 나서『며칠 후에 야한 책 들고 병문안 갈게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순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중년 여자』쥰이 했던 말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전화를 끊은 후, 잠시 생각을 했다.설마 이제와서『중년 여자』가 나타날 리 없어.........그리고 그 사람은 이미 잡혔는데....... 혹시 석방된건가 ?? 그나저나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중년 여자』에게 해코지를 하지도 않았다.단지『중년 여자』가 저주 거는 것을 본 것 뿐인데, 우리가 입은 상처가 너무 크다.우연히 밤에 산 속에서 만나서 당했고... 우리들은『중년 여자』에게 빼앗은 것도 없고 상처를 입히지도 않았다.『중년 여자』는 우리들에게서 해피와 터치를 빼앗고, 비밀기지를 부시고.....무엇보다도 우리들 세 명에게『공포』를 심었다.『중년 여자』가 아무리 집념이 강하다고 해도 우리들에게 관여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이런 걸 생각하는 것도 그렇지만, 원망하고 있다면『사진 속의 소녀』를 원망해야 할 것이고 !나는 억지로 내 자신을 납득시켰다.이틀 후, 나는 아르바이트를 쉬고 서점에서 야한 책 3권을 사서 쥰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오랜만에 쥰과 만난다는 두근두근함, 쥰이 전화로 했던 이야기에 대한 두근두근함으로 마음이 복잡해졌다.병원에 도착한 것은 낮이 조금 지나서였다.쥰이 있는 병실은 3층. 나는 쥰의 이름표를 찾기 시작했다.303호실, 6인실에 쥰의 이름이 있었다.왼편 창가 제일 안 쪽에 쥰의 모습이 보였다.『쥰, 오랜만이야 !』『오 ! 진짜 오랜만이네 !』생각한 것보다 많이 건강한 쥰을 보고 조금 안심했다.약속한 대로 야한 책을 건네니 쥰은 새 장난감을 받아든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다.그리고 쥰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쥰과 있으니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마음에 즐겁게 웃었다.이야기를 하니 눈 깜짝할 새에 시간이 지나고, 면회 종료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나『그럼, 슬슬 돌아갈..............』쥰『사실, 전화로 말했던 건데........』쥰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나『중년 여자 얘기지 ?』쥰『기분 탓일 수도 있는데..... 이 시간만 되면 오는 아줌마가 있는데...... 뭔가, 좀.... 그렇다고 해야하나......』나『기분탓이야 ! 괜히 무섭게 하지마 !』쥰『그러니까 내가 착각하는 거일 수도 있다니까 ? 겁 줘서 미안하다 !』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나는 바로 분위기를 알아채고 쥰에게 사과를 하려고 했다. 그 때,『덜덜덜덜......』복도에서 타이어 바퀴소리가 들렸다.쥰이 『왔다...』라며 속삭인다.나는 시선을 병실 입구에 돌렸다.『덜덜덜.』바퀴소리가 문 앞에서 멈춘 것 같다.그리고 문이 열렸다.입구에는 위아래로 남색 작업복을 갖춰 입은 아주머니가 있었다.나는『뭐야 ! 겁 주지마 ! 그냥 쓰레기 걷는 아줌마잖아』 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그 아주머니는 환자들의 쓰레기통 속에 쓰레기들을 걷었고, 마지막으로 쥰의 침대에 다가오기 시작했다.쥰이『봐봐 !』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그 아주머니의 얼굴을 살짝 보았다.『!』나는 숨을 삼켰다.닮았어... 아냐,『중년 여자』? 인건가 ?나는 눈동자가 작아졌고, 잠시동안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는 병실을 나갔다. 쥰은『어때 ? 아닌 거 같아 ? 내가 괜히 겁낸 거야 ?』라며 묻기 시작했다.나는『아냐 ! 그냥 청소부 아줌마잖아 !』라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확실히 닮았다. 다른 사람이랑 닮은 건가...?나『......그럼 슬슬 돌아가볼게 !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빨리 퇴원이나 해 !』쥰『그렇지...? 그 여자가 여기 있을 리가 없지. 니가 아니라고 해서 안심했다. 또 놀러와 ! 심심하니까 !』나는 인사를 하고는 병실을 나와서 재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머리 속에서 조금 전의 아주머니의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는다.『중년 여자』의 얼굴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하지만 중년 여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정신 나간 느낌』이다.조금 전의 아주머니는 평온한 표정이었다.만약 조금 전의 아주머니가『중년 여자』라면, 내 얼굴을 본 순간 이상한 소리를 내며 덮쳐올 것이다.'그래, 그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이랑 닮은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도왠지 그 병원에 있는 것이 무서워져서 재빨리 집으로 향했다.집에 돌아와서도『중년 여자』=『청소부 아주머니』라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역시나 신경 쓰여........그 날은 잠들기 전까지 종일 그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청소부 아주머니』가 신경 쓰여서 아르바이트도 빨리 끝마치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자전거로 30분.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면회시간도 훨씬 지난, 밤 8시가 지난 시각이었다.지금쯤이라면『청소부 아주머니』도 당연히 돌아갔을테지만,일단 임시입구로 병원에 들어가서 쥰의 병실로 향했다.조용히 쥰의 병실로 들어가니 쥰이 누워있는 침대는 커텐으로 막혀있었다.『자나?』 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커텐을 열어 사이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으악 !』쥰이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더니『깜짝 놀랬잖아 !』라며 무언가를 배게 밑에 숨겼다.쥰은 야한 책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일부러 야한 책 이야기는 하지 않고,『심심할 거 같아서 와 준 거야 !』라고 말하면서 쥰의 어깨를 쳤다.그러자 쥰은 조금 어색하게『아 ! 이 시각엔 좀 심심해 ! 로비에 가서 차라도 한 잔 할래 ?』라며 일어났다.나는 휠체어를 침대 옆으로 가져와서 쥰을 태웠다.『로비는 1층이니까 간호사들한테 안 들키게 내려가야 돼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들은 마치 도둑이 걸어가듯이 조용히 1층 로비까지 내려갔다.로비는 낮과는 다르게 깜깜햇고, 환한 곳이라고는 자판기와 비상등의 불빛 밖에 없었다.쥰『이렇게 깜깜한 데서 살금살금 걸어오니까 그 날 밤 생각난다』나『응. 왜 우리는 그 때 그 사람을 미행한 걸까......』내 말에 쥰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나는 오늘 병원에 온 이유,『청소부 아주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할 생각이었지만 주저하고 있었다.쥰은 앞으로도 1개월 가까이 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건데 그런 얘기 하는 건... 이라는 생각에.그리고 그 당시처럼『원인 불명의 두드러기』가 생길 지도 모른다.쥰『너 그 아줌마 때문에 온 거 아냐 ?』나『응 ? 뭐가 ?』쥰의 이야기에 나는 모르는 척 대답을 했다.쥰『아줌마 때문에 온 거지 ? 역시 닮은 거였어... 아니다, 확실히 그【중년 여자】일 수도 있잖아 ?』라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나는 쥰의 분위기에 눌려 대답했다.나『확실히 닮았어... 분위기는 다른데... 닮았어』쥰『역시... 저번에 전화에서도 말했는데...』쥰은 목소리를 한 톤 낮게 조용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쥰『내가 입원하고 이틀 지난 밤에 발이랑 허리가 너무 아파서 계속 잠이 못 들었어.뒤척거리지도 못 하고... 소등시간이라서 어쩔 수 없으니까 눈 감고 자보려고 하고 있었거든.그리고 나서 조금 잠이 오기 시작해서 꾸벅꾸벅 대고 있는데【시선】이 느껴졌어.순찰하는 간호사인 줄 알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하..하..거리면서 숨소리가 들려서.......뭐지 ? 옆 사람 자는 소리인가 ? 하고 실눈을 떠서 봤거든.그랬더니 내 침대 커텐이 3센치 정도 열려있고 그 사이로 어떤 사람이 나를 보고 있는 거야..잘은 안 보였는데 그 눈이 확실히 날 보면서 웃고 있었어.그래서 무서워서 자는 척을 했는데 그대로 잠들어서 눈 떠보니까 아침이었어.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그【웃고 있는 눈】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는데.....『청소부 아줌마』눈이랑 똑같았어 !』【웃고 있는 눈】나는 그 눈을 알고 있었다.『중년 여자』가 날 그 웃고 있는 눈으로 보고 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쥰이 말하는 광경이 떠올랐다.쥰은 이어서,『그리고 그 아줌마, 쓰레기 걷으러 올 때 살짝 보면 왠지 모르게 자꾸 눈이 마주쳐.내가 시선이 느껴져서 쳐다보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날 계속 보고 있어... 반은 웃고 있는 얼굴로......』그 말을 들은 나는 의문을 품고 있던【중년 여자=청소부 아주머니】에 대한 확신이 바뀌었다.역시 그랬어...석방된 거였어 !캔커피를 들고 있던 내 손이 떨렸다.『그 때의 공포』를 아직도 몸이 기억하고 있구나......그 때, 내 뒤에서 갑자기 빛이 비춰졌다.『야 !』뒤를 돌아보니 순찰을 돌고 있던 간호사였다.『쥰 ! 소등시간 지나서는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지 !그리고 친구는 면회시간도 지났는데 어떻게 들어온 거야 !』간호사는 꽤나 화를 내고 있었다.쥰『알았어요.. 그럼 또 놀러 와 !』쥰은 간호사에게 휠체어를 끌려 병실로 돌아갔다.나『알았어 ! 몸 조심히 하고 !』나도 일단 돌아가자는 생각에 들어왔던 임시입구로 향했다.그건 그렇지만서도 밤의 병원은 기분 나쁘다.아까 전까지『그 여자』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런가 ? 라고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응 ?복도 끝에 누군가가 있다.저건...........청소부 아주머니..?아니다,『중년 여자』......인가...........?『중년 여자』로 보이는 여자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틀림없다 !『중년 여자』다 !입구 쪽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나는 조용히 몸을 숨기고,『중년 여자』의 행동을 보았다.다행히도 나를 눈치채지 못한 듯,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허리를 숙이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나는 잠시동안 눈을 집중 시키고 그 모습을 관찰했다.큰 봉투를 뒤적거리면서... 무언가를 나누고 있다 ?『중년 여자』는 이곳은 신경도 쓰지 않고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혹시 병원에서 걷은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는 건가 ?(우리 동네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규칙으로 하고 있다)그 때, 뒤에서『아직도 있었니 ? 장난 하는 거 아니니까 정도껏 해라 !』라며, 아까 쥰을 끌고 갔던 간호사가.나는 깜짝 놀래서,『아, 이제 돌아갈게요 !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하고, 입구 쪽으로 눈을 돌리니 『중년 여자』가 나를 눈치채고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간호사는 이미 다시 순찰을 돌기 위해 어디론가 사라졌고...어떻게 해야하지 ?도망가야하나 ?조금 전의 간호사를 찾아서 도와달라고 해야하나 ?내 머리 속은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고,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내가『중년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자,『중년 여자』는 나에게서 눈을 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쓰레기를 다시 나누기 시작했다.『응 ?』나는 주저했다. 예상 외의 행동에...내 머리속에는,『덮쳐온다』『나를 계속 쳐다본다』『나를 보고 미소 짓는다』라는, 저 사람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나는 잠시동안 서서『중년 여자』를 보았지만, 쓰레기 분리만 하고 있고 나는 신경 쓰고 있지도 않는 것 같았다.『작전인가 ?』라고 의심했지만, 내 머리 속은 또 하나의 사고를 떠올렸다.【중년 여자≠청소부 아주머니】?역시 닮기만 했지, 다른 사람인가...........?!나와 쥰이 너무 의심하고 있었나 ?!역시『중년 여자』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저 여자』는 묵묵히 일을 하고 있다.나는 마음을 다 잡고 입구로 걷기 시작했다.『저 여자』의 근처로.......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하지만 상대방은 이 곳을 볼 생각도 않는다.그래도 나는『저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않고 걸었다.눈 깜짝할 새에 아무 일도 없이 나는『저 여자』의 등 뒤까지 걸어왔다.여자는 열심히 쓰레기 분리를 하고 있다.손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대량의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다.그 모습을 본 나는『역시 다른 사람인가...』라고 생각을 했는데『그 여자』가 갑자기 나를 보더니,『많이 컸네 ~』라며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나는 머릿 속이 하얘졌다.【많이 컸네 ?】저 사람은 내 과거를 알고 있다 ??저 사람은 누구 ?저 사람이『중년 여자』?저 사람, 역시......『중년 여자』였다 !!그 여자는 작업을 멈추고 고무장갑을 벗으며 나에게 다가온다.그 표정은 웃고 있었다.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거지 ??분명히, 지금 나는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겠지...여자는 내 눈 앞에까지 걸어와서는『몰라보게 컸네... 몇 살이야 ? 고등학생인가 ?』라고 묻기 시작했다.나는『그 여자』의 발언에 대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뭐야 ?날 모자란 취급 하는 건가 ?공포에 질린 날 바보 취급하는 건가 ?뭐지 ?내 반응을 즐기는 건가 ?내가 계속 묵묵히 듣고만 있자『친구도 많이 컸네.... 쥰군... 안타깝게도 다쳐서는.... 너도 조심해야 돼 !』라고 말했다.이젠 의미를 완전히 모르겠다.몇 년 전, 우리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 지 벌써 잊어버린건가 ?우리들한테『공포의 트라우마』를 심어준 장본인이 말하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여자』는 계속해서 웃으며『또 한 명 더 있었지.... 그 애는 건강하니 ? 까만 애 있었잖아』!!진의 얘기다 !뭐야 이 녀석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예전 친구 같이...정상이 아니야.......일부러 저러는 건가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가 ?나는『중년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 하고, 여자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였다.【이 여자, 뭘 생각하고 있는 지 알고 있는 건가 ?】『그 때는 미안했어... 용서해줄래 ?』라고 중년 여자는 나에게 다가오며 말을 했다.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몰랐고,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원래 같았으면... 좀 더 빨리 사과 했어야 하는 건데......』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 진심으로 사죄하는 건가.......?아니면 무언가 꾸미고 있는 건가 ?『중년 여자』는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졌다.『3명한테 제대로 사과할 생각이었어...... 정말이야.....』라고 말하면서 계속 다가온다 !이젠 숨이 느껴질만한 거리까지 가까워졌다.하지만『그 때』와는 달리, 내 키가 20센치 정도 컸으니 체격적으로도 내가 이기고 있다.그래서 나는『중년 여자』가 내 손가락이라도 건드리면 두들겨 패야지 !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중년 여자』는 나를 올려다 보는 식으로 내 눈을 주시하고 있다.하지만 그 눈에서는『원망』, 『배신』,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똑바로 내 눈만 보고 있다.『그 때는 내가 어떻게 되서 나쁜 짓을 했지....』라고『중년 여자』는 계속해서 사죄를 했다.나는 그 곳의『긴장감』에 참지 못하고 그 곳을 뛰쳐 나왔다.달리는 도중에도『만약에 쫒아 오면.......』이라는 생각에 뒤를 돌아봤지만『중년 여자』의 모습은 없었고,내 모습은 어떻게 보면 맥이 빠져 있었다. 뛰던 걸 멈추고 서서 생각했다.아까 그 말은 정말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는 건가 ?나는 중년 여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뭐,『그 사건』이 있었으니까 당연한 것이지만.나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조금 전 병원 입구 쪽으로 돌아가 봤다.그 곳에는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대량의 쓰레기를 분별하는『중년 여자』가 있었다.저 녀석, 진짜로 뉘우친건가 ?필사적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보니 예전의『중년 여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일단 그 날은 그렇게 집에 돌아갔다.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서 다시 생각했다.인간이 그 정도로 변할 수 있는 건가......?옛날에는 귀신 같은 모습으로 해피와 터치를 죽이고,나를, 진을, 쥰을 쫒아와서 방화까지 저지르려던 녀석이.......미안하다면서 마음 속으로 사죄할 수 있는 건가........아냐, 어쩌면【그 사건】을 계기로 내가 변해버린건가.......?남을 의심하고 타인을 못 믿는『차가운 사람』이 되어버린건가......?『중년 여자』의 사죄를 믿으면【그 사건】에 대한 정신적인 속박에서 해방되는 건가......?다시 한 번『중년 여자』를 만나서 직접 얘기해 볼 일이다.......나는『중년 여자』를 다시 한 번 만나는 일, 그리고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기 ! 로 결심하고 잠들었다.그리고 다음 날, 나는 아르바이트를 쉬고 병원으로 향했다.일단은 쥰의 병실에 가서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그리고 오늘은『중년 여자』를 만나서 직접 이야기 해볼 생각이라고 전했다.쥰은 처음에『중년 여자』는 변하지 않았어 ! 라고 내 의견에 반대했지만,『이대로 평생 그 중년 여자한테 떨면서, 트라우마 안고 살아갈 거야 ?』라고 말하자,『........ 중년 여자를 만나서 이야기 한다면 나도 갈래......』라고 말했다.그 후 잠시동안 침묵히 흘렀다.시간은 흐르고, 면회시간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림과 동시에『덜덜덜덜......』복도에서부터 쓰레기 운반수레 소리가 들려왔다.『........왔군.......』쥰이 중얼거렸다.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문에 시선을 돌렸다.『덜덜덜.』수레 소리가 방 앞에서 멈췄다.방문이 열렸다.작업복 차림의『중년 여자』가 방안에 들어왔다.나와 쥰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중년 여자』는 안쪽의 침대부터 순서대로 쓰레기를 걷기 시작했다.『수고하세요』환자들의 인사에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중년 여자...........옛날의 그『중년 여자』와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도 안 든다.그리고 드디어 중년 여자가 쓰레기를 걷으러 쥰의 침대로 다가왔다.『중년 여자』는 우리에게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가볍게 목을 숙이고는 쓰레기를 걷기 시작했다.나는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 지 몰라 중년 여자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쥰이『아줌마 ! 어쩔 생각이야 ?!』라고 화를 내며 말을 꺼냈다.중년 여자는 갑자기 작업을 멈추고는 허리를 숙인 그대로 정지해 있었다.쥰은 계속해서『당신 나 기억하지 ? 나한테는 사과도 없어 ?』나는 두근두근했다.쥰이 갑자기 화를 낼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중년 여자는 허리를 숙인 채로 『.......미안해.......』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쥰은 그런 대답에 놀랐는 지, 어안이 벙벙해져서 날 쳐다봤다.나는 『...... 아줌마, 진짜 반성하고 있는 거지 ?』 라고 물었다.그러자 중년 여자는 내 쪽을 향해『정말 미안합니다. 내가 그런 짓을 해서 쥰군... 이런 사고를 당해서.... 내가 그런 짓을 해서..... 정말 미안 !』나와 쥰은 조금 전보더 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우리가 지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나 ?그래서 내가『아니, 옛날에 강아지한테 심한 짓 하고, 우리 집에 와서... 그런 거 전부 합쳐서 !』라고 하자 중년 여자는,『정말 미안해요 ! 내가, 내가 그런 짓만 안 했어도....... 이런 사고는........ 미안 ! 정말 미안해 !』라며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그런 태도와 말을 듣고 있던 병실 안의 다른 환자들의 시선은 일제히 이 곳에 주목하고 있었다.조용해진 병실에는『미안해 ! 미안합니다 ! 정말 미안합니다 !』라고 중년 여자의 목소리만 울려퍼졌다.쥰은 조금 쑥쓰러워하며『뭐 됐어 ! 그리고 내가 사고난 거 당신이랑은 관계 없어 !』라고 말을 했다.중년 여자는 굽실굽실 머리를 숙이며 쥰의 침대의 쓰레기들을 걷고는 마지막으로,『미안합니다.......』라며 허둥지둥 병실을 나섰다.그 광경을 주변의 환자들이 보고 있어서 잠시동안 병실 안은 이상한 분위기가 흘렀다.쥰은『뭐야 ! 저 아줌마 ! 나는 그냥 사고난 것 뿐이라고. 대체 뭘 착각하고 있는 거야 !』 라고 말했다.나는『중년 여자』의 행동, 언동을 듣고 생각이 들었다.역시『중년 여자』는 좀 이상하다.아니, 사죄는 진심으로 하고 있는 것인가,저 녀석은 『저주를 거는 의식』을 사과하고 있었다.『저주』를 정말로 믿고 있는 것 같았다.쥰『그 때는 정말로 무서운 존재였으니까 지금까지도 트라우마 때문에 떨고 있었는데... 아까 말하는 거보니까 그냥 사이비 신자 같은 아줌마라는 거잖아 ?』라고 어딘가 씌어져 있던 악령을 떨쳐냈다고 해야하나, 상쾌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나『그러니까, 그 때와는 다르게 우리들 몸도 많이 컸고 말이야 !』라며 쥰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일단 오늘은 일단락 지어졌으니까 난 돌아갈게 !』『응 ! 또 한가하면 놀러와 !』라며 대화를 하고 나는 병실을 나와서 집으로 향했다.집에 돌아가는 도중, 갑자기 나는 진이 생각났다.그 녀석에게도 이 일을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에,그 녀석도 오늘 있었던 일을 들으면 분명 『그 날의 트라우마』를 덜 수 있지 않을까 하고.집에 돌아오자마자 진과 같은 축구부였던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진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그리고 진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오 ! 오랜만이야 !』나는 잠시 진에게 안부를 묻고난 후,쥰이 사고로 입원해 있는 일,그 병원에『중년 여자』가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일,중년 여자가 옛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마음을 고쳤다는 이야기를 했다.진은『중년 여자』가 사죄를 한 것에 대해서 많이 놀란 것 같았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은『쥰이 퇴원하면 쾌유 축하 기념으로 셋이 모이자.』라고 말했다.물론 나는 찬성했고, 쥰의 퇴원 날짜가 나오면 연락을 한다고 전했다.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병원에 가서 쥰에게『진이 너 퇴원하면 쾌유 축하 기념으로 만나재 !』라고 전했다. 쥰은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그로 부터 1주일 정도 병원에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새학기가 시작됐기 때문에 바빠서 갈 시간이 생기지 않은 것도 있었다.거기에다가 『중년 여자』가 올바른 사람(?)으로 변했기 때문에, 걱정도 예전만큼은 하지 않게 되었다.무슨 일이 있으면 쥰이 전화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은,『다음 주에 퇴원해!』라는 이야기였다.나는『다행이네!』라며 축하의 말과 함께 『중년 여자』의 행동에 대해 물었지만,쥰은『그냥 평소처럼 쓰레기 걷고 있어. 그거 말고는 별 다른 일 없어.』라고 했다.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고, 쥰이 퇴원했다.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쥰의 집을 향했다.벨을 누르니 쥰이 목발을 짚으며 나왔다.『오!들어와!』발에는 깁스를 했지만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쥰의 방에서 잠시동안 잡담을 나눴다.해가 저물 때 쯤에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저녁을 먹은 후 진에게 전화를 했다.『쥰 퇴원했어 !』『진짜!그래, 그럼 쾌유 축하를 해야지 ! 바로 보고는 싶은데 축구부 활동이 바쁘니까 이번 달 말에 보자 !』라는 말을 했다.그리고 이번 달 말의 토요일.나, 진, 쥰.......초등학교 이래, 오랜만에 세 명이서 만났다.낮에 역 앞의 맥도날드에서 만났다.오랜만에 만난 진은 겨울인데도 피부가 조금 검게 타서 남자 갸루 같았다.뭐, 그건 그렇다 치고, 해가 저물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각자 고등학교의 이야기.사랑 이야기.옛날 추억 이야기....물론『중년 여자』 이야기도 나왔다.그 때 모두가 무엇보다도 무서움을 느낀『중년 여자』도, 지금에와서는 그저 쓰레기를 회수하는 아줌마.나와 쥰이 진에게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해주니 진은,『옛날과는 다르게, 지금은 그 녀석이 닥쳐와도 패주면 그만이니까 !』라며 웃어넘겼다.이제 우리들에게 있어서『중년 여자』는 과거의 인물, 먼 옛날 이야기이고, 트라우마도 아니게 되었다.저녁이 되고, 우리들은 노래방으로 향했다.오랜만의 『세 명』이서의 재회이기도 해서 우리들은 재회를 기념해 『술』을 주문했다.뭐 술이라고 해도 츄하이지만........당시의 우리들은 충분히 취할 수 있었다.결국엔 각자 4~5잔 정도를 마셔서 모두가 만취해 있었다.기분 좋게 노래를 부르고, 기분이 꽤 올라 있었다.그리고 2시간이 지나고, 노래도 질려오기 시작했을 때, 진이 제안을 했다.『좋아~, 지금부터 비밀기지에 가 보자 ! 그 때는 못 했으니까 해피랑 터치에게 공양을 해주러 가자 !』라고.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쥰과 나는 말을 잃었다.설마, 『그 장소』에 가자는 말이 나올 줄이야........예상도 못한 일이니까.진은 그런 우리들을 약올리듯이『니들 아직도 애냐 ? 진짜 겁먹고 있어 ? 하하 !』라며 조금 술주정(?)을 부렸다.그 말에 술에 취한 쥰이,『뭐? 누가 겁을 내 ! 지금 싸우자는 거냐, 진 ?』이라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나는 술에 취했지만 분위기를 알아채고『야야, 그만둬 ! 쥰 아직 목발 짚고 있잖아 !』라고 말하자, 진이『아, 그렇지.. 목발 짚고 있으면 도망도 못 가지 ? 하하하♪』라며 꽤나 심하게 술주정을 하고 있었다.쥰은 더욱 더 화가 치밀어서,『시끄러워 ! 가고 싶으면 가자고 ! 너야말로 도중에 겁이나 먹지 마라 ?』라며 마치 어린애들의 싸움처럼 되어서결국 『해피와 터치의 명복을 빌러』라는 명목으로 가게 되었다.당시 진, 쥰은 두 사람 모두 꽤 술에 취해 있어서 말리고 싶어도 못 말렸을 거라고 생각한다.뭐, 『해피와 터치의 공양』은 언젠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좋은 기회일 지도..... 라고 생각했다. 세 명이서라면 무서움도 줄어들 거고............노래방을 나와서 편의점에 들러 해피와 터치가 좋아했던『우마이봉』과『콜라』를 사서 택시를 타고 일단 우리집에 가서 손전등을 가지고『초등학생의 뒷산』으로 향했다.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택시 운전수를 뒤로 하고 세 명은 산 입구에 내렸다.나는 세 명이서 잘 놀았던 뒷산이라는 반가움과 함께 『그 날』의 일을 생각해냈다.이런 밤 중에....... 또 뒷산에 가게 될 줄이야.........그런 내 마음도 모른 채 쥰은 의기양양하게『자, 들어가자 !』라며 목발을 짚으면서 척척 들어간다.그 뒤를 싱글벙글대며 진이 손전등을 비추며 따라갔다.나는『쥰, 발에 뭐 안 걸리게 조심해 !』라고 말하며 진의 뒤를 따랐다.산에 들어가니 옛날과 꽤 달라져 있는 풍경에 놀랐다.아니, 풍경이 변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컸으니까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건가.......?등산 도중, 진이 쥰을 놀리듯이『중년 여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 ? 나 니 두고 도망갈건데~』라는 등, 계속 농담만 하고 있었다. (나도 도망가겠지만)우리는 처음 생각보다는 빠른 30분 정도에 『그 장소』에 도달했다.『그 장소』『처음으로 중년 여자』와 만났던 장소......우리들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손전등을 비추며 『그 나무』에 다가갔다.『그 날』 중년 여자가 저주의 의식을 치루던 나무........바로 가까이에 다가가서 손전등을 비췄다.지금은 아무것도 박혀 있지 않은, 그냥 보통 나무였다.그러나 오래된 『못자국』은 남아있었다.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었다.아마도 경찰이 전부 못을 뺀 거겠지...잠시동안 3명은 못자국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진이『이 쯤에서 해피가 죽었었지........』라며, 땅바닥을 비추었다.역시 시간이 지나서 해피의 시체는 없었지만, 죽은 장소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나는 그 장소에 『우마이봉』과『콜라』를 뿌렸다.그리고 셋이서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다음으로 『터치』가 죽은 곳으로......『비밀기지』가 있던 장소로 향했다.비밀기지에 향하던 도중, 쥰이『여러가지 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진이,『응... 그 날 밤, 비밀기지에 묵지만 않았어도........ 안 좋은 기억 같은 것도 없었고 말이야.』라고 했다.그렇지....이 산에서『중년 여자』만 안 만났어도 여기는 우리에게 있어서 성지였겠지.『여기 쯤이었지......?』진이 걸음을 멈췄다.『비밀기지가 있던 곳』이젠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 날 너덜너덜하게 부서졌던 판자 한 장도 남아있지 않았다.쥰은 아무 말 없이 『우마이봉 콜라』를 두고 기도를 했다. 나와 진도 기도를 했다.잠시 침묵이 흐르고 진이 말했다.『해피랑 터치가 없었으면... 지금 여기에 우리들은 없었을 거야.』쥰 『아............』나『그렇지.. 결국엔 중년 여자도 마음을 고쳤고... 뭔가, 드디어 악몽에서 벗어난 기분이야.....』다시 또 침묵이 흘렀다.갑자기 진이 주변과 눈 앞의 작은 연못을 비추며,『여기, 그 때는 우리들만의 아지트였는데, 지금은 오는 애들이 많나보네...』라고 말을 했다.진이 비추는 장소들을 보니 과자 봉지와 빈 캔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나는,『진짜, 그 때는 쓰레기 같은 거 하나도 없었는데... 요즘 초등학생들 여기 알고 있는 건가 ?』라고 말했다.쥰이 이어서,『우리는 그 때 쓰레기 전부 가지고 돌아갔는데 말이야....』라고 했다.그 때, 쥰이『으악 ! 뭐야 이거 !』라고 소리쳤다.나와 쥰은 그 목소리에 놀라서 진이 비추는 곳에 시선을 돌렸다.나무 한 그루에 잔뜩 쓰레기가 붙어있다.잘 보니 수많은 과자 봉지와 빈 캔, 잡지가 못으로 박혀있었다.『뭐야 이거?!』진이 빛을 비추며 가까이 다가갔다.나와 쥰도 뒤를 따라 다가갔다.『누가 장난치는 거야 ?』나는 물끄러미 박혀있는 쓰레기들을 봤다.그 때,『아아...............이거...............내..............쓰레기................야.............』라고 몸이 경직된 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뭐?!』나와 진은 다시 물었다.쥰은,『아아아아..............내가.............병원에서.............버린................』이라고 말하며 뒤로 쓰러졌다.진이『야!쥰!정신차려!그럴 리가 없잖아!』라고 소리를 치며 못에 박힌 과자봉지를 잡아 떼냈다.그것을 본 쥰은『아...............아아아................』라며 기묘한 목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그 모습에 나와 진은 놀랐고, 그 순간 진이『으악!』이라고 소리를 치며 들고있던 과자봉지를 던졌다.『응?!』이라며 내가 진이 들고 있던 봉지를 보니 봉지 뒤에는『쥰죽어』라는 글이 매직으로 쓰여져 있었다.나는 『설마?』라는 생각에, 나무에 박힌 쓰레기를 들춰 뒤를 보았다.『쥰죽어』 『쥰죽어』 『쥰죽어』 『쥰죽어』모든 쓰레기에 쓰여져 있었다.쥰은 입을 뻐끔거리며 뒤로 물러난 상태 그대로 굳어있었다.진이 아무렇지 않게 주변에 있는 쓰레기들을 주워서『 ! ! 야!이거!』라며 나에게 내밀었다.『쥰죽어』무려 주변에 떨어져 있던 쓰레기에도 전부 쓰여있던 것이다.나는 그 때 처음 깨달았다.『중년 여자』는 처음부터 마음을 고칠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는 걸.계속 우리들을 원망하고 있던 것이다.내가 병원에서 본, 고무장갑을 하고 쓰레기를 분별하고 있던 것도, 쥰의 쓰레기만을 골라내고 있던 것이다 !우리들에게 『미안해』라고 말한 것도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이다.나는 갑자기 서늘한 한기를 느꼈고,【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라고 본능적으로 생각이 들어 쥰에게『야! 정신차려! 얼른 내려가자!』라고 했지만『내............쓰레기.........내 쓰레기..............』라며 쥰은 이미 미쳐있었다.일단 진과 나는 쥰을 부축하고 산을 내려왔다.그 때부터 8년,그 날 이후, 물론 산에는 가지 않는다.『중년 여자』도 만나고 있지 않다.아직도 우리들을 원망하고 있을까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까 ?하지만, 우리들은 무사히 살아있다.단지,아직도, 쥰은 걷지 못하고 있다. 상ㅊㅊ: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humorbest&no=676977&page=26 하ㅊㅊ: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humorbest&no=676921&page=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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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알기 쉬운 초끈 이론
1920년대엔 가장 작은 물질이 양성자, 중성자, 전자라고 생각했음1970년대에 '쿼크'라는 더 작은 물질이 발견됨근데 지금에는 쿼크만 해도 6종류나 됨 근데 또 전자와 비슷하면서 질량이 훨씬 큰 입자인 뮤온, 타우도 발견함중성미자인 세 종류의 뉴트리노까지 12종류의 입자들이 발견됨.. 이 입자들을 만드는 더 작은게 있다는 이론이 나옴그건 점이 아니라 끈이라는 이야기 이 세상이 끈으로 이루어져있다물리학자들에게 그 끈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려보라고 함??!?!?!? 본인도 민망한지 웃는 과학자분 이렇게 닫힌 끈 (O형태), 열린 끈 (- 형태) 하나씩을 그림 바이올린이 네 개의 줄이지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듯이 끈도 진동해서 우주를 만들어낸다는게 끈이론 이분이 끈이론을 만드신분강력에 관한 방정식을 찾다가 끈이론을 만듬(강력:자연계의 네 가지 기본 힘인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 하나이다.) 강력에 관한 방정식이 이유는 알 수 없게 실험 결과와 잘 맞음 그 방정식을 본 레너드 서스킨드.. 레너드는 거기서 끈을 발견함하지만 이 끈 이론에서 강력과 상관없는 입자가 발견됨원래는 끈 이론을 전개하려면 강력 안에 입자가 발견되면 안됨이로인해 끈 이론이 시들해질 무렵 단 한사람만이 이 끈을 붙잡음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가 무슨소리일까? 힘에는 4가지의 종류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가 있음.근데 이 힘들은 미세한 입자들에 의해 전달됨 빨간쪽이 중성자 안에있는 쿼크, 주황색이 양성자 안에있는 쿼크라고 해보자그럼 이 두 쿼크 사이에 힘을 전달해주는 입자가 있다는 소리임강력을 전달해주는 물질은 글루온.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힘은 광자 양력은 위크 게이지 보존 (weak gauge bosons)이 세 종류 (강력 글루온, 전자기력 광자, 양력 위크 게이지 보존) 는 완전히 규명됨하지만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는 아직 규명되지 않음 외로운 중력..근데 이미 과학자들이 중력도 입자 형태로 전달된다고 가정하고 '중력자' 라는 이름도 붙여둠 하지만 실험에서 발견되지 않아서 중력자를 이론에 반영시키지 않으려함... 그래서 중력자 얘기를 하는것임..강력을 설명하는 입자에서 걸림돌이 됐던 중력자, 이 때 끈 이론을 적용시켜보자 하고 적용시킴그러자 끈 이론은 만물 이론으로 변했습니다 (실제로 나레이터가 한 말) 그렇다면 이 끈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고리형끈의 길이는 위와 같다고함..원자를 태양계처럼 키워도 끈은 나무 한그루정도임 = 이 자막을 백억광년정도 떨어진 곳에서 읽는 크기안보인다는 뜻입니다..이 세상을 자르고 잘라서 나오는 가장 작은 물질이 점이 아니라 끈이라는 것! 그 끈은 길이를 갖는다! 길이는 공간을 차지함 그게 바로 끈이론원래는 점으로 자연을 설명하는게 제일 간단하고 쉬웠음점이라면 무한히 자를 수 있어서 양자가 요동치는 이 공간 (위 사진)에 적용을 시켜야하지만 끈은 길이가 있어서 이보다는 크고 조용한 이 공간(위 사진)에 적용됨여기서는 아까 문제였던 중력도 해결할 수 있음 ->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통일할 수 있음기타를 칠 때를 생각해보자기타 줄은 전체 길이가 반 파장의 정수배가 된다는 조건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진동함마찬가지로 끈 이론의 줄도 진동하는데 진동 패턴이 달라지면서 입자가 됨모든 물질과 힘은 이 끈이 진동하면서 만들어짐.. => 초끈이론찰흙으로 여러가지 모습을 만들듯이 기본으로 끈이 있는데 이 끈이 어떻게 진동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입자로 보인다는게 끈이론임 힞;민 끈 이론이 5개나 됨... 우주를 설명하는 법칙은 간단해야하는데 다섯개나 된다니요..끈이 어디있는지 찾기 위해유명한 물리학자를 만나서 끈이론의 위기를 알아보기로함물리학자면서 필즈상도 수상하신 초끈이론의 1인자Q. 끈은 어디에있나요?3차원멀리서보면 그냥 선으로 보이는 호스여분의 차원은 모든 점에 존재함너무 작아서 관측도 안되는 초 미세영역.. 여기에도 숨어있는 차원이 있을 수 있음숨어있는 차원까지 총 차원의 개수는 10개게다가 10차원의 끈이론을 5개나 됨..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어떻게 다섯개나 됨...더 간단한 방법이있을걸? 이라고 물리학자들도 ~당연히~ 생각함 11차원의 눈으로 10차원을 내려다보니 다섯개의 끈 이론들은 한 이론의 다섯개의 단면이었던것 참 쉽죠?
岳飛작성일
2017-05-1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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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공일기장] 두가지 인생 - 42
아주 오랫만에 올리는거 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 어떤 변명을 가져다 대도 소용이 없는 제 게으름의 소치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모바일에서는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관리자님께 여쭤봤더니 해결을 해주셨더라고요.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Channel 1. 로키 생각지도 않았던 인물의 난데없는 행동에, 나는 한동안 얼이 완전히 빠져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 사람은 인지적인 부조화를 겪는데, 지금 나의 경우는 그것이 강하게 찾아왔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겪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양태의 저변에는......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화가 났다. 왜 내가 토라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거든, 대체 저 녀석에게 내가 왜......? 하지만 이런 나의 자기 기만적인 생각과 감정과는 별개로 내 육체는 답답할 정도로 정직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관자놀이는 그 피부 밑에 흐르는 혈류 탓에 펄떡거리다 못해 터져버리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정신없이 맥동해댔다. “바보 같은 짓이라고 했냐?”“그래.”“닥치고 그거 내놔.”“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같지도 않은 말장난은 그만두는 게 좋을 텐데?”“오빠, 지금 오빠가 어떤 모습인지 알아? 거울이 있었다면 참 좋을 텐데, 지금 오빠는 정상이 아니야.”“정상이 아니라고? 내가?”“그래. 오빠가 하려는 게 뭔지 알아? 하극상이라고. 그건 어떤 이유를 들이대도 정당화가 될 수 없는 일이야. 말 그대로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녀석의 말을 듣다보니, 문득 ‘내가 지금 같은 언어권의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분명 동전을 돌려달라고 말을 했는데, 저런 잔말을 무슨 이유로 들어야 하는 것인가. 심지어 그 말들의 대부분은 나로서는 납득은커녕 알아듣기도 어려운 개 소리들 뿐이다.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인가? 그걸 “왜 니가 판단하는데?” 나는 녀석에게서 동전을 빼앗으려 들었지만, 토라는 손을 팩하고 쳐 올리는 바람에 내 손은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허공을 휘저었다. 나는 녀석의 부당한 행동에 항의의 표시로 녀석을 쳐다보았지만, 토라의 얼굴은 어떠한 변화도 보이질 않았다. 나름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나를 더욱 약 올리는 것 같았다. “지금 오빠는 정상적인 사고나 행동이 불가능한 것 같아. 이건 곧 돌려줄 테니까, 차분하게 머리 좀 식히고......” 나는 녀석이 잘난 듯이 말을 지껄이는 틈에 녀석의 오른쪽 팔목을 낚아챘다. 하지만, 내가 잡아챈 녀석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이봐, 타인에게 자신의 의도를 들키지 않아야 한다고 누가 말했더라?”“너..... 적잖이 이 손목에 미련이 없는 모양이다?”“손목쯤이야....... 대신 절대 합의 같은 건 안 해 줄 거야. 그리고 이건 깽값이니까 잘 받고.”“뭐?” 녀석의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무언가가 내 이마로 날아 들어왔다. 평소라면 피하거나 아니면 내 머리에 꽂히기 전에 잡아챘을 터였지만, 토라의 말마따나 내가 너무 흥분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은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이마를 때렸고, 그 순간 내 눈앞에는 번쩍하고 별이 보였다. 갑작스럽게 방문한 통증이 너무나도 강렬한 바람에,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우왁!”“거봐. 평소 오빠였다면 이런 같잖은 장난에 놀아날 리가 없다고.” 나는 얼얼하게 달아오르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토라는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다가...... 내게 동전을 돌려주었다. 어차피 돌려줄 거 곱게나 줄 것이지...... 하지만, 나의 불만과 별개로 토라의 말은 부스러기 하나도 태클 걸 것이 없는 명명백백히 옳은 말 뿐이었다. 지금의 나는...... 내 자신이 보더라도 뭔가 이상한 것이 사실이었다. “아이리스 언니를 ‘우리’에 끌어 들이는 게 뭐가 그리 불만이야? 오빠로서도 좋은 거 아니야? 신경 쓰이는 여자를 자기 곁에 둘 수도 있는 거고.”“누가 누구를 신경 쓴다는 거야?”“오빠가. 언니를.”“참나, 요즘 개소리가 제철인가 보지? 내가 저런 답답이를 왜?”“그럼 왜 반대를 하는데?”“그야...... 녀석이 ‘우리’에 발을 들이게 되면, 다시는 녀석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니까 그렇지.”“그럼 뭐 안 될 거 있어? 언제부터 오빠가 그런 걸 신경 썼다고?”“너 임마. 답답이랑 이제 친하게 지내려는 거 같은데, 니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거 아니야? 사람 등에 칼을 꽂는 것도 유분수지.”“언니가 좋아졌지. 그건 오빠 말이 맞아. 그러니까 ‘우리’랑 같이 살면 좋은 거 아니야?”“그건 니 본위의 이기적인 생각이고......”“지금 그 말, 오빠가 평소 하던 생각하고 완전 정 반대인거 알고는 있어?”“......” 토라의 말에 완전히 의표가 찔려버리는 바람에,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말을 하면 할수록, 뭔가 이상해져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 토라가 굳이 쐐기를 박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의 모순됨을 느끼고 말을 이어가는 걸 그만두었을 지도...... “그런걸 바로 신경 쓴다고 하는 거야.”“......그만하자.”“참 신기한 일이구먼, 오빠 같은 사람이 감정을 느끼다니.”“지부장님한테...... 보고 할 거냐?”“반반이야. ‘우리’ 전체를 놓고 보자면 보고를 해야 하는 게 맞겠지. 불량이 발생했으면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해야 앞으로 발생할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테지......만, ‘나’ 개인의 입장에서는 오빠는 나한테 꼭 필요한 사람이니까, 오빠를”“...... 에바포레이터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뭐 사실 그거야 오빠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긴 해. 오빠는 어때? 에바포레이터에게 순순히 끌려가고 싶어?” 나는 녀석의 질문에, 눈을 마주치지 않고......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은’게 아니라 눈을 마주치지 ‘못한’ 것이다. 녀석은 내게 대답이 뻔한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 뻔한 대답을 해야 하니까...... 그건 녀석에게 잔인한 승리감을 맛보게 만드는 행위라서....... 도저히 녀석의 눈을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어쨋거나 나는 녀석이 원하는 대답을 해 주었고, 토라는 상인에게 값을 치르는 바이어와 같은 표정으로 내게 통보의 말을 던졌다. 그리고 그 말을 듣노라니 “오빠, 나 약속 같은 건 잘 안하는 거 알지? 근데 오빠가 이렇게 성의를 보여주었으니 나도 도의상 약속이란 걸 해줄게. 나는 절대 오빠를 에바포레이터에게 넘기지 않을 거야. 오빠는 아직까진 내게 중요한 사람이니까.” 기분이 더없이 더러웠다. Channel 2. 아이리스 지부장님은 손을 흔들며 취사장 밖으로 나가버리셨고, 저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주전자와 함께 오도카니 그곳에 앉아있었습니다. 주변은 고요하고,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습니다. 제 의식의 상태를 뭐라는 말로 묘사해야 할까요? 아담의 첫 일이 그러했듯이, 세상의 만물을 묘사하고 설명하라고 ‘아버님’께서 사람에게 ‘언어’라는 것을 주었을 텐데....... 제가 아는 언어의 영역은 복잡하게 엉겨가는 제 머릿속을 설명하기에 가난하고 하잘 것 없어, 그 소임을 다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결국 제 머릿속의 생각을 정의내리고 묘사하는 걸 포기하고, 제 옆에 놓여있는 주전자를 보았습니다. 주전자의 주둥이에서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어요. 약간 다른 소리 같지만, 연기란 녀석은 관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재미있는 녀석이에요. 주둥이를 나올 때에는 밀려올라오듯이 힘차게 나왔지만, 주둥이와는 비교할 수 없이 넓은 세상밖에 나와서는 그 광활함에 주눅이 들었는지 점차점차 그 힘을 잃고 부유하더군요. 그들은 그렇게 제자리에서 미적미적거리는 선배들을 만나, 함께 미적거리다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을 맞이했습니다. 함께 뭉그적 거리면서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궤적을 만들던 그들은 결국...... 자신보다 더 거대한 차원인 공기 속으로 흩어지더라고요. 흔적도 없이 말이에요. 저는...... 지금 저 연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로키군에 대해 알고 싶다.라고 기세 좋게 이곳에 들어왔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이곳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지만...... 그러는 중에 어느덧 애초에 제가 생각했던 ‘로키군에 대해 알고 싶다.’라는 걸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곳에 뭉그적거리게 되었고...... 지금 이곳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말까지 듣게 된 것이 아닐까. 처음에 날카로웠던 이상은 무뎌지고 이가 빠져 날카로움을 잃어버리고 이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뭉게구름처럼 되어버린 현실...... ‘적응’이라는 가면을 쓰고 찾아와 제 온몸을 뒤덮어버린 타성....... 지부장님의 제안을 듣지 않았다면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을 그 덫, 제 스스로가 많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덫에 빠져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면, 저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살을 찢는 고통을 무릅쓰고 덫에게서 빠져나올 것인가, 아니면 사냥꾼이 나를 꺼내줄 때 까지 기다릴 것인가. 고통스러운 삶과 편안한 죽음 중에 저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누나!” 아무래도 저를 부르는 소리였겠죠? 뒤를 돌아보니, 칠성이가 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녀석을 보면 괜시리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딱 페터 나이 또래잖아요. 그래서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가 하면...... 저 지푸라기로 만든 신을 신고 있는 조막 발을 보면 마음이 저려오기도 하거든요. “오지마! 내가 그쪽으로 갈게!”“아니에요. 제가 얼른......”“안 돼, 눈밭을 그런 신발로 가면 신발 젖는다구. 거기 서 있어. 누나가 금방 갈게.” 역시나..... 칠성이는 보기에 딱할 정도로 푹 젖어서는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그대로 안아 올려서 세탁실로 데리고 들어갔어요. ‘어차피 이리된 거, 생각도 좀 할 겸, 세탁기가 끝나는 거나 지켜보자’라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세탁실은 세탁기가 내뿜는 김으로 후끈후끈했어요. 참......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기술이 많이 발전하긴 한거 같습니다. “갈아입을 옷 없니?”“괜찮아요.”“괜찮기는, 그러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한참 앓는다? 잠깐만 기다려봐...... 내가 이럴 줄 알고, 짜잔!”“어......이거?”“여기 단만 마무리하면 되니까 여기에 있어봐. 금방 마무리 짓고 줄게. 이걸로 몸 닦고 있어.” 저는 칠성이가 수건으로 제 몸을 닦는 동안, 이제까지 녀석에게 주려고 조금씩 만들어둔 솜옷의 끝부분을 공그르기로 마무리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바느질이라 조금 삐뚤삐뚤하긴 했지만, 그래도 제가 바느질하는 걸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보는 칠성이를 보니 조금은 어께가 으쓱하더라고요. “고맙습니다.”“네가 열심히 일하니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하렴.” 칠성이는 솜옷을 입지도 않은 채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 얼굴이 너무 기뻐보여서, 약간 눈시울이 뜨뜻해지려고 했어요. 칠성이에게 옷을 입혀주고, 저는 그 아이에게 수건을 받아, 머리며 발이며를 닦아주었지요. “칠성이 너는 이곳생활이 할 만하니?”“처음엔 무서웠는데, 지금은 좋아요.”“그래?”“누나는 어때요?”“음...... 나도 비슷한 거 같아. 처음엔 많이 무서웠는데, 지금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구나싶어.”“그죠? 전요, 누나가 정말 좋아요.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착하잖아요.”“에이, 얼굴은 토라누나가 진짜 예쁘지.”“그건 맞긴 한데, 누나가 더 착할걸요?”“그거......칭찬 맞지?” 칠성이는 코를 쓱 하고 닦으면서 웃어보였습니다. 정말 가슴에 폭 안아주고 싶은 아이에요. 이 아이를 보니 문득 궁금한 게 하나 떠올랐습니다. “칠성이 너는 학교는 다니고 있니?”“아뇨. 못 다니게 해요. 학교를 가게 되면,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고......”“허어......”“어차피 이곳에 오면서 호적도 말소해버렸대요. 전 잘 모르겠는데, 저는 있어도 있는 애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비극적인 이야기를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이 아이를 보면서, 저는 새삼 세상의 비정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가 제 손으로 자식을 버리게 만드는 가난함, 집단의 존속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개인...... 어쩌면 토라가 말했던 이면은 바로 이렇게 무심결에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고발당해 잡혀갈 걸 알면서도, 기도로 보행 장애인을 일으킨 중견 수녀님이 어떤 마음에서 그런 일을 하셨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칠성아.”“네 누나.”“누나가 너랑 얼마나 함께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그래도, 누나랑 함께한 시간은 기억해 줄 거지?”“그럼요.”“그럼, 어차피 누나를 기억할 김에, 하나만 더 기억해줄래?”“음...... 길지 않으면요?”“하하, 별로 길지는 않을 거야. 자, 이제 시작할게 잘 들어. 이 세상은 네가 경험해온 것처럼 많이 부조리하단다. 거기에 순응하고 살 수도 있겠지만...... 난 네가 꼭 공부를 해서...... 이 세상의 정체를 알고, 그걸 극복했으면 좋겠어.”“......”“길어?”“음...... 그러니까 누나는 제가 학교를 다녔으면 좋겠다는 거죠?”“그렇지.”“저도 사실은......”“답답이!” 칠성이는 제 말에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는데, 로키군이 저를 부르는 소리에 녀석은 겁먹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어버렸습니다. 순간이었지만, 그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저는 내색을 하지 않고 로키군을 보려고 했지만, “뭘 그런 식으로 보고 있어?”“아무것도......”“지부장이 널 찾는다. 얼른 가자.”“.......네?” Channel 1. 로키 뻔한 거짓말인걸 알면서도 답답이는 사환을 놓고 나를 따라왔다. 둘 만의 이야기를 나누기엔 이곳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녀석도 어느 정도는 인지를 하고 있었고, 나의 의견에 동의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은 우중충한데 땅은 유난이 희었다. 그 우중충한 곳에서 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하얀 눈이 온 땅을 덮어버렸거든. 우리는 걸음을 옮기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방문객을 즈려밟았고, 그것은 내 발아래에 깔려 ‘뽀드득’하는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나와 답답이는 그렇게 천객을 짓밟았다. 천객을 짓밟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보려 했지만, 나는 답답이에게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화두 자체를 꺼내는 것에서부터 벽에 가로막혔다. 덮어두고 ‘이곳에서 도망쳐.’라던가, ‘그냥 나랑 여기서 살래?’라고 해야 할 지, 아니면 짐짓 다른 소리를 빙빙 해가면서 점점 핵심으로 다가오는 말을 해야 할지....... 하기사 요지는 앞에서 말한 ‘여기서 도망쳐’ 혹은 ‘나랑 살자’ 둘 중 하나일 것이니, 일단 거기서부터 내 의견을 정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사박.” 녀석과 어떻게 되고 싶은 걸까? 자체로만 보면 간단해 보일지 몰라도, 대답을 이끌어내는 데는 제법 머리가 지끈거리는 질문이다. 나로서는 어느 쪽의 말이든 하고 싶었고, 반대로 어느 쪽의 말이든 하고 싶지 않았거든. “사박.” 이렇게 공존할 수 없는 선택지를 동시에 포용하고 싶기도, 반대로 버리고 싶기도 한걸 보면, 감정이란 것은 정말 비이성적이며 비합리적이기 그지없는 것 같다. 나는 이런 모순됨을 혐오해왔고, 내겐 그런 쌍비적인 측면이 나타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실제로 그렇게 됐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지부장을 보며 치를 떨었고, 토라를 보며 화를 냈으며, 지금 녀석과 이 눈밭을 걷는 등 일련의 사건을 겪고나니, 그것은 내 자만과 착각이었다는걸 절절이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을 혐오했고, ‘인간적’인 것에 거리를 두어왔지만, 나는 결국 ‘인간’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눈발이 제법 굵네요.”“그러게.”“왁! 깜짝이야. 말도 없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면........ 으응?” 적당한 장소에 왔으니, 이젠 그만 걷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걸 암시하는 답답이의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녀석의 말 대로, 이곳은 우리의 말을 엿듣고자 하는 이들에겐 퍽 불리한 장소임이 분명해 보였다. 몸을 숨길만한 나무는 한그루도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탁 트인 장소였거든 이 정도라면 둘이서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른이에게 새어나갈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뭐든지 “눈밭을 걸을 때는 평소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 눈이 온갖 데를 다 덮어서 어디가 푹 파여 있는지 알아차리기가 힘들거든.”“아 진짜 놀랐다고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나는 녀석이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손을 잡았고, 손가락으로 답답이의 손바닥에 진짜 메시지를 전했다. 녀석의 눈이 크게 떠졌다. “특히 지금처럼 눈이 내리는 날은 멀리 나가면 안 돼. 잘못하면 네가 온 길마저 눈에 파묻혀버리기 때문에 길을 잃을 수 있거든.”「지부장이 네게 우리에 합류해달라는 말을 했었나?」“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로키군.” 답답이도 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표면적인 대답을 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이면적인 질문에 답을 했다. 어쩌면...... 녀석을 답답하다고 생각한건 지부장의 말대로 나의 편견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빈데미아트릭스 만큼은 아니지만, 눈발이 센 곳이야. 그래서 풋내기 심마니들이 겨울에 무턱대고 산행을 나섰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곤란을 겪은 일이 많다고 하더군.”「너는 뭐라고 대답했지?」“아 정말요? 그러면 그분들은 다들 안전하게 돌아오셨나요?”「거절 했어요.」“모두가 잘 돌아오면 다행이었을 것이고, 내가 네게 이런 말을 했을 리가 없겠지.”「잘 했......」 나는 차마 마지막 말을 더 이을 수 없었다. 그 이상의 표현은 내 입장상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지. 내겐 녀석의 행동에 가치판단을 내릴 자격이 없다. 하지만, 마음은 그것과 달리 잘했다고 말을 하고 싶었고, 나는 또다시 딜레마 속에서 머뭇거렸다. 답답이는 나의 이런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칭찬받은 거 맞죠?”“음......뭐.” Channel 2. 아이리스 로키군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마음속이 한결 정리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는 ‘거절했다.’라는 나의 말에 잘했다고 칭찬을 했었죠. 그러고보면 지부장님도 참 보통내기가 아닌게, 정말 교묘하게 이야기를 하셨더라고요. 지부장님의 말은 달콤하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열었잖아요. 거기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제 마음 한 켠에 불편함이라는 흔적을 남기려고 애를 쓰셨어요. ‘우리’라는 곳이 요즘 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로 말이죠. 그런 뒤에 제게 ‘우리’에 일원으로 들어올 수 없냐는 제안을 하시면서...... 로키군을 언급했죠. 그가 위태위태하니 지켜달라고. ...... 뱀이 어떻게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일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이란건 참 무서운 것 같아요. 만일 제가 로키군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저는 좀 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을 것이고, 그리고 제 신념에 반하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말은 감정을 자극하고, 그 감정은 행동을 결정할 수 있으니까...... 참 무섭지요. “어? 다됐네.”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 세탁기가 그 움직임을 멈추고 배수구를 통해 물을 뱉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페이즈 2네요. 다 빨았으니, 말려야겠지만, 날씨가 날씨이기도 하고, 물먹은 상태에서 곧바로 말리면 더 늦게 걸릴테니, 빨래에서 물을 빼야하거든요.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탁기 옆에 놓여있는 탈수기를 돌리기 위해, 수압밸브를 열었습니다......만, 아이고 수압밸브에선 대답이 없네요. 아무래도 추운 날씨다보니, 배관이 얼어버린 모양이에요. 하지만, 다행이도...... 탈수기의 제작자는 이런 사정까지 생각을 했는지, 밸브가 얼어버리는 상황이 생겨도 탈수기를 사용할 수 있게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장치를 해놓았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래버를 수동으로 돌리면 이렇게....... 페달이 나오거든요. 조금은 번거롭고 힘이 들겠지만, 이거면 충분히 돌릴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그것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가면서 탈수기에 넣었습니다. 물을 먹어서인지 많이 무겁긴 했지만, 힘 좀 덜 들이자고 급하게 하다가는 빨래를 또 다시 해야하는 번거로운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특히 조심해야 해요. 모든 사고는 끝이 다가왔을 때 오게 마련이거든요. “끙......차!” 저는 페달 위에 매달려있는 줄을 잡고, 힘을 주어 페달을 밟았습니다. 처음에는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줄에 매달려서 몇 번 발을 구르니 조금씩 조금씩 페달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그 움직임에 따라 탈수기의 통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갔지요. 시작이 반이라는 이야기 있죠? 저는 그걸 탈수기를 돌리면서 그 실 례를 알 수 있었답니다. 처음에는 잘 돌아가지 않지만, 한번 돌아가기 시작하면, 탈수기가 돌아가려는 관성 때문에 쉽게 페달을 밟을 수 있거든요. 탈수기가 돌아가기까지의 시작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막상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 이후로는 간단해집니다. 페달을 밟으며, 저는 아까 했던 생각을 더 이어갔습니다. 일단 로키군의 생각은 잘 알았어요. 그 역시, 제가 이곳에서 계속 있는 걸 원하진 않았어요. 로키군에 대해 언급한 지부장님의 말씀은 교묘하게 짜여진 거짓말이었던 셈이지요. 그렇다면 지부장님의 말씀에 다시 한 번 거절의 의사를 밝혀야 할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거절을 과연 지부장님은 순순히 받아들이실 것인가.’라는 것이지요. 수많은 가능성을 생각해보았지만, 답은 부정적이었어요. 지부장님의 말씀도 잘 생각해보면 ‘더 이상 묻지 않겠다.’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말이 또 무섭다는 게, 말하는 이의 의도와 해석하는 이의 의도가 마냥 같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지부장님의 말씀을 정말 부정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네가 거절을 하면, 더는 묻지 않고 너를 강제로 우리와 함께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다.’라는 것 까지 닿을 수 있단 말이에요. 거기까지 생각한다면 정말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고, 제가 이제까지 봐온 지부장님의 모습과는 큰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직업이 ‘암살자’라는 걸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겁니다. “끙.......” 페달을 밟느라 나온 것인지, 아니면, 생각이 벽에 부딪쳐서 였는 지, 제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쉽다고 하더라도, 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페달을 밟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저는 잠깐 쉴 겸하여 페달을 지긋이 밟은 채, 빙빙 돌아가는 탈수기 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빨래들이 벽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지요. 그 모습을 보니, 제가 저 탈수통 속의 빨랫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리저리 돌아가느라 정신이 없는 빨래, 저 안에서 탈출을 해야겠지만, 저것을 짓누르는 원심력과, 그리고 함께 얽혀있는 다른 빨래들 탓에 저기를 탈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어요. 하지만 탈출을 포기하고 저 안에 안주하다보면, 물이 쥐어짜여지겠지요. 조금씩...... 인간성을 상실하게 될 거에요. 저는 힘을 주어 페달을 한 번 더 힘차게 밟은 다음, 줄에서 내려와 탈수통을 바라보았습니다. 어, 저기 조그만 흰 빨래가 빙글빙글 돌고있네요, 저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보려고 하는데....... 아야! 역시나 그 엄청난 속도탓에 빨래에 호되게 손을 얻어맞을 뿐, 그것을 잡기란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저는 얼얼해진 손을 한참동안이나 어루만져야만 했습니다. 사실상......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이곳을 나가야 하고, 그건...... 조력자에게도 피해가 끼치는 일이란걸 어느정도 감수해야 하는 제 상황과 너무나도 닮아있었습니다. 모두에게 착한 사람은 될 수 없어요. 나의 행동이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영향을, 다른 사람에게는 악영향을 준다고 하지만, 이건...... 제가 볼때는 악영향밖에 보이질 않네요. 그렇다면, 누구를 조력자로 해야 할까요. 어차피 피해를 줄 수 밖에 없다면....... 최대한 피해가 덜 가는 사람, 그리고 제가 죄책감을 덜 느낄만한 사람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누구일까요?
갑과을작성일
2017-01-2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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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그 다음날 조중동은...' 패러디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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