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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간단하기를 포기한) 북유럽 국가의 허와 실 - 7 (북유럽의 왕자 스웨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게 마지막이 되어야 할 텐데 워낙 할 이야기가 많다보니 그러기에는 어렵다는 슬픈 예감이 드네요.
나도 작가 게시판에도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끝없이 질질 끌려버리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도 중간에 그만두는 것 보다는 끝을 내고 연재를 이어가야겠단 생각에 키보드를 잡았지만.....
슬프게도 제 머릿속에는 “다음엔 어느 나라를 다뤄야 되지?”라는 얄미운 생각이 스멀스멀 들더라구요 ㅠㅠ
어쨋건 “북유럽의 왕자”, “전국민의 월급쟁이화를 바라는 나라” 스웨덴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보겠습니다.
이 글은 삼프로 tv의 코너, “투자는 책과 함께”의 내용을 토대로 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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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리나라가 의도치 않게 후드러 패 버린 뒤에 이 나라에 벌어진 일
말뫼의 눈물을 낸 범인이 우리나라라는 이야기를 끝으로 저번화를 마쳤는데요. 사실 그 이후에 뒷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출근을 해야해서 빼먹었는데, 여기서 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우리나라한테 한방 맞고 조선업이 몰락해버린 스웨덴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빌빌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업이란 산업은 고용효과가 엄청난 지라, 반대로 조선업이 몰락한다면 그로인해 엄청난 강도의 대량 실업이 발생해 버리거든요.
특히 완전고용을 전제로 “너도 뜯고 나도 뜯고 모두에게 뜯어간다”라는 컨셉을 가진 스웨덴에겐 그야말로 치명타였을 겁니다.
국가 부채도 늘어날 것이고 연금 부채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을 겁니다.
그것이 하루 이틀...... 그렇게 10년을 적립해 오다가 80년대 중반에 들어서 “와 이제 더는 못버티겠는데?” 하는 임계점이 와버렸지요.
나라의 기간산업이 무너지고, 그에 따라서 재정에 위기가 오고, 복지 시스템이 망가지는 등,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 까요?
스웨덴은 그 해결점을 “민영화”로 잡았습니다.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다시 항문검사를 받아야 할 상황에 놓인 그분이 떠오르는데요, 스웨덴이 바로, 그분께서 추구하던 바를 먼저 하던 선배격이었습니다.
공기업을 민간에 팔아치우고
그간 꽉꽉 틀어막아왔던 “민간에 대한 대출”을 활성화 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대충 이해는 되죠.
대출을 늘린다 => 시장에 돈이 풀린다 => 투자가 활성화 된다 => 취업이 늘어난다 => Welfare home comming (복지의 귀환)
이런 메커니즘....어디서 많이 본 거 같죠?
지금은 구치소인가? 교도소인가에 있을, 십팔대 대통령 최순실 각하 치하에 경제 부총리를 역임한..... 감옥에 가기 전 “내가 뇌물을 받았다면 동대구역에서 할복을 하겠다” 했던 모장관은
이 메커니즘의 본질을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했던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빚내서 집사세요.”
물론 그 시기에 전국민을 좌파로 몰던 1베충들은 (정말 빚내서 집을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정책을 윤색하기 위해 이런 논리를 이야기 했습니다.
“이거슨...... 마중물이다 이기야.”
네 뭐......그렇게 말 할 수 있죠. 선의로 해석하자면
어쨋거나 사족이 너무 길었는데요.
이렇게 밑밥을 한가득 뿌려댔으니 대충 짐작하셨겠지만
“내수경기 진작을 위한 마중물이다”라고 생각하고 던진 “민간 대출 완화!”는......스웨덴 역대 최대 수준의 부동산 버블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짠하긴 해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뜯기고 나도 뜯기고” “자산의 불평등은 어쩔 수 없지만, 소득만은 평등하자.”라는 모토 아래 자산이란 것을 일 평생 가져볼 일이 없었던 스웨덴 사람들로선
민간에 대출해줄게라는건 “빚내서 집사쇼.”라는 말로 들릴 수 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스위덴 사람들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서
“집집집 지이이이리리리이이이이이이입!!!!”을 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정도로 버블이 끼었냐..... 1년에 50%상승이 일어났다고 해요.
평생 자산을 가져본 적이 없던 사람들에겐 문자 그대로 “눈돌아가는 일”이었을 겁니다.
거기에 스웨덴은 “재산세”도 안내는 나라니까.....
경제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대목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 몇개를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시간순으로 해볼까요? 잃어버린 20년을 만든 “일본의 부동산 버블” 그리고
제가 쓴 게시글 “미국 주식이 ㅈ된 이유”에서 언급한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키워낸 “모기지론”
역사는 돌고 도는 모양입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민간에 대출 규제를 풀었더니 너도나도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하고
버블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가 결국 버블이 붕괴하고 다 망하고....
어쨋건, 80년대 중반에 시작해서 덩치를 키운 스웨덴 부동산 버블은 90년대를 맞아 대 폭발을 하면서
이 나라를 우리나라로 치면 “IMF사태”급으로 조져놓아버렸습니다.
“얏호! 집값이 뛴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스웨덴 사람들은
”얏호! 북극곰 먹이주러 가즈아!” 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환율은 녹아내리고, 금융 이자는 “몇백%”단위로 솟아오르..... 응? 우리나란 법정 이자가 최대 24%인데
여긴 몇백%라니..... 우리나라 제3금융권 사람들이 들으면 “야 씨 스웨덴 비행기값 얼마냐?” 할 사태가 벌어져버린 셈이죠.
제가 이 시리즈를 처음 다루면서, 했던 이야기 한 토막 기억나세요? 스웨덴 국회의원이 배우자 앞에서 가장 어께를 으쓱하는 날이, 우리나라 대사관 관저에서 대사랑 식사하는 날이라고..... 그 정도로 “주 스웨덴 한국 대사관저”가 으리으리 하다고.....
다 그게, 스웨덴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시장에 쏟아져 나온 고급 건물들을 스웨덴 정부가 우리나라에 “제발 사주세요 ㅠㅠㅠㅠ”라고 빌다시피 해서 매우 헐값에 구입한 건물들이었던거죠.
정주영 회장의 500원짜리 지폐 한장이 조선업으로 말뫼에서 흘린 눈물이 되었다가..... 우리나라의 삐까 번쩍한 대사관저로 돌아온 셈이죠.
제가 만약 스웨덴 사람이었다면..... 한국인을 ㄹㅇ 싫어하지 않을까 싶네요. 어쩜 이리 얄미울 수 있을까 싶을 겁니다.
결국 스웨덴 정부는 패배를 시인하고, 새로운 개혁을 내놓았습니다.
‘저기..... 여러분들 연금준다고 이리저리 뜯어갔잖아요?’
듣기만 해도 벌써 ㅈ같은 냄새가 물큰물큰 솟아오르는 도입부입니다.
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죠. 스웨덴은 “국민연금”을 개편합니다....어떻게?
우리나라식으로 “예금 쌓아놓고, 그걸 종자돈 삼아서 사업을 하면, 그 수익으로 연금을 드립니다”에서
아예 망하지 않을 정도로 4년치 자금을 “완충장치”로 걸어두고 “그해 걷은건 그 해 다 텁니다”라는 식의.... 자동조정장치 방식으로 변경합니다.
이게 어떤 것 까지 연결이 되냐면요, “그 해 나라가 잘 되서, 세금이 많이 걷히면 연금 수령 액수가 늘어나지만, 반대로 나라가 잘 안풀려서 세금이 덜 걷히면, 그만큼 깎아서 지급합니다.”라는 걸로도 연결이 되는거에요.
허허..... 이러니 나라에 사람 한명 한명이 소중할 수 밖에 없겠죠?
합리적이라 생각되긴 하나..... 기존에 연금을 받던 사람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겠습니다. 국가가 보증한 국민연금이 이런 식으로 약속을 깨버린 셈이니까.......
그걸로 한 숨 돌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충장치마저 점점 고갈이 되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스웨덴 정부가 만지작거리는 카드가 하나 남아있습니다.
세금의 신설이죠. ‘대체 무슨 세금을 신설하려고.....?’하실텐데요.
‘연금이 고갈날 수 있으면..... 연금에다가 세금 붙이면 되잖아?’라는 다소 신박한 이야기입니다. 아마 신설 된다면 그 세금의 명칭은.... ‘연금 소득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허허.... 조금 준다는 것도 빡칠 일인데 그마저도 일부를(스웨덴의 세율을 생극하면 정말 일부일진 모르겠으나) 뜯어간다니.....
참고로, 우리나라도 연금 소득세가 있긴 하다고 합니다. 물론 그 액수는 거의 개미 눈알만 하긴 하지만......
이쯤되면 스웨덴에서 “시민들 시위 났나?”하고 구글링을 해보실 텐데요, 스웨덴에선 이 모든 개혁을 극렬한 저항 없이 해결이 했다고 합니다. 모든 가능성을 테이블로 올려놓고 합의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고 해요.
2)너무 까기만 했으니 이젠 좋은 이야기 좀 해 줍시다
앞서 공론화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요.
공론화 과정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영 좋지 않은 사례들이 떠오르실 거에요.
공청회에서의 드잡이, 고성이 오가고 폭력이 난무하는.....
스웨덴은 공론화 과정을 거칠 때 단 하나의 원칙을 고수합니다. 영어로 하면 “라운드 테이블” 익숙한 말로 하면 “원탁” 방식입니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라는 옛 이야기를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원탁에는 “상석”이 없습니다. 철저히 동등한 관계인거죠.
전문가든 비 전문가든, 일개 시민이든 상관없이 공청회장에선 모두가 계급장 떼고 동등한 입장이고
“만장일치”가 될 때 까지 느긋하게 시간을 들여 논의를 거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공청회, 협상장을 소환해 볼까요?
삼프로 티비의 호스트 중 하나인 김프로의 노조 임금 합의장에 참석한 경험을 들자면
임금 협상에 대해, 사측은 무조건 동결
노측은 무조건 50%인상을 들고 나온다는 거에요
사실 뭐, 양측 모두 자신들이 요구할 수 있는 최대치를 들고 오는 거겠죠. 물론 그 요구가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걸 알고 있겠지만요.
이런 방식에는 몇가지 전제를 깔고 있을 겁니다.
“어쨋든 처음부터 세게 나와야 내가 덜 양보한다.”
“내가 살려면 쟤를 죽여야 돼. 이건 제로섬 게임이야.”
그럼 대체 왜 스웨덴과 우리나라가 이런 차이를 보이는 걸까요?
우리나라야 스스로를 워낙 잘 알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스웨덴을 언급해 보자면, 스웨덴은 역사적으로 두 가지 사안이 있습니다.
1. 옛날부터 인구가 적었다.
2. 땅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넓었다.
인구에 비해 땅이 넓다..... 중세시대에 이걸 적용해 본다면 어떨까요?
중세시대 스웨덴에서 농노를 하는 김농노와, 영주를 하고 있는 최영주가 있다고 쳐 봅시다.
최영주가 급하게 돈이 필요해져서 마을 한 가운데에 세금을 올린다는 벽보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걸 김농노가 봤습니다.
이때 김농노는 어떤 행동을 할까요?
에휴 이번에도 또 올렸네, 뼈빠지게 일을 해야 되잖아? 라고 할까요 아니면
그럼 뭐 옆동네나 갈까? 거긴 여기보단 세금이 더 낮겠지 뭐.
땅 덩어리에 비해 사람이 적은데, 옆동네에서 농노가 도망쳐 온다면..... 그걸 마다하고 원래 있던 영지로 돌려보낼 멍청한 영주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스웨덴은 중세를 주름잡던 농노제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고 해요.
즉, 스웨덴의 농민 상당수는 농노가 아닌, 자영농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땅에서 내가 농사 짓는데, 윗사람이 조금만 띠껍게 굴면
뭐 농사지을 땅이야 많지 ㅋ 하고 째면 되는게 사회적으로 자리잡다보니
스웨덴 사람들은 대대로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다들 죄다 고집불통이다보니 뭔가를 결정 할 때, 누군가 하나라도 수틀리면
아 몰라, ㄲㅈ 안해 하고 드러누워버리는 일이 발생해 버리는거죠.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협의 = 만장일치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웨덴의 합의 문화는 그런데서 비롯되었던 거지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 고집 하는데, 스웨덴 처럼 사람에 비해 땅마저 넓었다면...... 아마 그들과 비슷한 만장일치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겠지요?
이런 만장일치 문화는 예상하셨겠지만 부작용이 있는데요....
의사결정 속도가 더럽게 느립니다. 예컨대 회사 사장이 로비에 걸린 그림을 보고
“야 좀 깔쌈한 걸로 바꿔볼까?”라고 한다면 그날로 “그림 교체 대책위원회”가 열립니다.
첫번째 안건은? 당연히, “로비에 걸린 그림을 바꿔야 하나?” 겠지요.
거기에서 통과를 하면? 그림 후보들이 나올것이고, 그 후보들 중에서 만장일치가 나올 때 까지..... 끝까지 회의에 회의에 회의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면 속 터질 일이지만, 스웨덴은 그게 디폴트 값이니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합의를 해서 만장일치로 결정이 되면..... 그걸 회까닥 뒤집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스웨덴은 국가의 중대 고비마다 협의를 통해 대책을 결정하고, 그것은 정당이 바뀌든 아니든, 일관성을 가지고 쭉 이어나간다고 합니다.
5년마다 정책이 180도 바뀌는 우리나라와는 이런 점에서 차이가 있겠습니다.
뭐 그것도 일장일단이 있겠죠. 특히 변화무쌍한 지금 같은 국제정세엔......
그래서 국민의 합의로 결정된 스웨덴식 “집단 면역 실험”이 온 국가를 난장판을 만들고 나서야 “야 이거 아닌거 같은데?”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쨋건 이런 문화는 스웨덴 회사에도 당연이 되기 때문에, 다른나라 출신의 CEO들이 적응하는데 문제가 많다고 합니다.
직원들에게 “A를 하자”라고 지시를 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대답이 “예 알겠습니다.”가 아니라
“제 생각은 안그런데요?”
“이건 합의를 봐야 하는 부분인거 같은데요?” 라는거죠.
말단 직원들까지도요.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렇게 세세한 것 까지도 합의를 하고, 만장일치로 결정을 하는 문화가 자리잡는다면, 어떤 국민성을 보일까요?
분야가 워낙 다양하니 다 언급하긴 어렵겠으나, 가장 눈에 띄는 것 두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철저한 시간감각과 철두철미한 준법의식이겠지요.
스웨덴 사람들은 시간약속에 철두철미하다고 해요. 늦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히 실례겠지만, 약속시간에 일찍 나타나는 것도 실례되는 행동이라 여긴대요. 정확히 그 시간에 나타나는 것이 스웨덴의 시간약속 규범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 준법의식도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뉴스를 보면, “야 이거 결국 또 돈 많은 놈만 빠져나가네?”라는 사례가 많으니, 당연히 법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낮다면
스웨덴은 “법? 그거 우리가 다 만장일치로 합의 본 약속이야.”라는 인식이 있어서, 조금 과장 보태면 “신호등이 고장났든 안 났든, 빨간불엔 절대 건너지 않는다.”라는 것이 디폴트라고 합니다.
그래서, 같은 자전거를 타도, 덴마크같이 “어떤 애는 쓰고, 어떤 애는 안쓰고”나, “적당히 무단횡단도 해주고”나, “적당히 거리도 지저분해 주고”같은건 통용이 안된대요.
음...... 거의 기계인간들의 사회가 아닐까 싶어지는 부분입니다.
이런 인식은 다른 북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라서
스웨덴 사람 하면
재미없는 놈들
규칙 정하는데 쾌감을 느끼는 놈들
이라고 합니다.
3)스웨덴은 뭐하느라 저렇게 잘 살게 됐지?
어쩌다보니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로 부터 “지상낙원”취급을 받는 나라지만, 스웨덴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잘 사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스웨덴은 “그냥 추운데서 땅 파먹는 촌동네”정도였죠.
그런데 얘들이 어쩌다가 지상낙원이 됐느냐......운칠기삼 아시죠?
스웨덴은 여러모로 운이 좋은 나라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거치고도 나라에 포탄 한 발 안 떨어졌다고 해요.
저번에 핀란드 이야기 하면서 스웨덴 사람들에 대한 핀란드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이야기 해 드린 것 기억 나시죠?
“우리를 피바다에 던져놓고, 베란다에서 손수건 흔드는 놈들”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스웨덴은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북유럽 치곤 공업이 발달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론 농업의 비중이 큰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1차, 2차 세계 대전에서 중립국을 선포하면서 전쟁을 피해간게 스웨덴에게 천운이었습니다.
일단 핀란드도 중립을 천명했으면 좋겠지만.... 러시아와 워낙 가까웠던 탓에, 2차 세계대전 전에 스태종과 피터지는 싸움을 하고..... 소련을 노리던 독일 입장에서도 “뭐 굳이 스웨덴 건드리느니, 소련 바로 옆동네인 핀란드하고 짝짜쿵 하는게 더 낫지.” 싶었던 거에요.
그래서 핀란드 사람들이 소련하고 물고 뜯어, 나치 놈들 등뒤에 빵야빵야 하다 나라가 짓밟혀 할 동안
소련과는 거리가 애매했던 (핀란드라는 에어백이 있던) 스웨덴은 이 모든 전쟁을 “미끈하게 잘 빠질 수” 있었던 거지요.
어쨋건 이런 애매한 지정학적 위치 덕에 스웨덴은 2차 세계대전 중에 포탄 한발 안맞고 꿀을 빨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게 기회가 되었지요.
2차 세계대전으로 온 유럽이 초토화 된 마당에, 이제 전쟁도 끝났겠다. 재건을 해야 할 텐데
벽돌 한 장, 망치 하나 만들 나라가 몇이나 되었을까요?
스웨덴과 스페인 딱 두 나라가 있었지만 스페인은 그 시기 프랑코의 독재도 있었고, 남미 식민지가 들여오는 막대한 은 덕분에 “실버 타임~~~크..... 은뽕에 취한다 취해.” 하다가 자국 산업 기반이 죄다 무너져서 사실상 농업국가였기 때문에.....
그 유럽시장에서 벽돌 한 장, 망치 하나 댈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스웨덴 뿐이었습니다.
물건만 만들면 다가 아니죠. 물건을 사줄 “구매력”이 필요할 텐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물주가 나타났죠.
미국이 “마셜플랜”을 들고 뙇하고 나타난 겁니다.
그래서, 엄청난 양의 미국 달러가 스웨덴에 문자 그대로 “쏟아져 들어온”거지요.
사실..... 스웨덴은 전 후에만 꿀을 빤 건 아니었습니다.
짱공인 분들 중에 주식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저번 3월 주식 시장은 주식쟁이들에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이자 기회”였을 겁니다.
다들 거기서 꿀 잘 빠셨죠?ㅋ
스웨덴도, 2차세계 대전 중에..... 아찔한 배팅을 건 겁니다.
자국에서 철광석 나겠다..... 물건도 만들 수 있겠다......
자국에서 만든 물건을 연합국(영, 프, 미, 러)측에 팔지만, 또 한편으론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측에도 판거에요.
뭐..... 전쟁에서 누가 이길진 모르겠지만 둘다 내 물건을 원하는데, 둘 다한테 팔지 뭐 ㅋ
한거지요.
이때 스웨덴이 주판알을 어떻게 튕겼느냐.....
독일이 영국을 압박하기 위해선, 해안가 나라들이 자기 세력권 안에 있어야 했단 말이죠. 특히, 영국과 맞닿은 나라면 더욱 좋겠죠.
북유럽에서 그런 나라가 어디일까요?
노르웨이였습니다.
나치가 한창 잘 나갈때, 스웨덴에게 이런 쪽지를 보냈습니다.
“영국을 치려면 노르웨이가 필요하니, 길을 내어 달라.”
임진왜란의 동래성 전투가 떠오르는 부분이죠?
이때 우리나라는 “응 ㅈ까”를 시전했다면
주판알을 튕기던 스웨덴은
“ㅇㅇ 내줄게. 근데 비.무.장으로 가셈.”
그럼...... 으응? 하실거에요.
비무장인데 노르웨이는 어떻게 침략함?
여기에서 희대의 눈가리고 아웅이 벌어집니다.
열차가 열칸이라면, 아홉칸에는 군인과 무기를 가득 싣고, 딱 한 칸에 관광객을 태우는 거죠.
그리고 스웨덴쪽 공무원들은 관광객만 타고있는 열차 딱 한 칸만 검사 하는 거고요.
허허..... 그런 기가막힌 방법이 있을 줄이야.
핀란드가 왜 스웨덴 하면 치를 떠는지 알겠죠?
이런 와중에, 스웨덴은 여러 물건을 만들어 파는데...... 그중엔 “미국이 저작권을 가진” 것도 있겠죠?
전쟁중이니 “저작권? ㅈ까는 소리하네” 하며 마구잡이로 카피해서 팔아넘겼습니다만......
마침 미국이 전쟁에서 이겨버렸으니.....
스웨덴은 미국 성님에게 줄을 대기 위해 이걸 이용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스웨덴 : 어.... 미국형님 전쟁 승리 축하드립니다.
미국 : 고맙긴 한데, 너네 그러고 보니까 독일....
스웨덴 : 아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제가 전쟁중에 물건 만들어 판다고 여러 물건 만들었는데 아이고 저런..... 자그마치 미국 형님께서 특허권을 가진 것 까지 카피해서 만들어버렸지 뭡니까 ㅈㅅㅈㅅ.
미국 : 아 그거야 뭐 전쟁중에 종종 생기는 일인데 뭐. 근데 너네 전쟁중에 독.....
스웨덴 :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그동안 밀렸던 로.열.티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 ......어?
기가 막히는 위치 선정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을 틀어막을 수 있는데는, 그동안 미국과 스웨덴이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도 컸다고 해요. 미국이 독립한 직후에 해외와 맺은 첫 수호통상 조약의 파트너가 스웨덴이었거든요.
4)기왕 미국 이야기를 꺼냈으니.....
우리가 스웨덴을 천국이라 여기는 덴, 의외로 미국의 “펌프질”이 큰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루즈벨트 대통령(4선을 한)의 선거 캠페인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왜 굳이 프랭클린 을 붙이냐면, 이 전에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있었거든요.)
참고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테디베어”의 아버지격 인물입니다. (아실 분들은 다 아실것 같고, 스웨덴과는 상관 없으니 생략하겠습니다.)
어쨋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통령을 할 때는 미국이 “경제 대 공황”시기였어요.
이때 미국에선 케인즈를 위시한 “수정 자본주의” 이론이 득세를 할 때였죠.
지금은 정부의 시장개입이 자연스러웠지만, 1930년대 미국인에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 이거 빨갱이 논리 아녀?”라고 할 때였어요.
지금 21세기 한국은 여전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빨갱이 딱지가 붙으면 사회적인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어요.
또 여담을 붙이자면, 헬렌켈러 위인전도 보면 헬렌켈러가 말을 할 수 있게 된 부분만 나오고 뒷부분은 뭉텅이로 짤리는데, 그 이유가...... 헬렌켈러가 공산주의 활동을 하게 되어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되었거든요. (설리번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 4선을 노리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빨갱이 딱지가 붙는다?!?
그래서 루즈벨트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그리고
“내가 하려는 정책은 빨갱이 놀음이 아니에요”를
강하게 어필해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좋은 소재가 바로 스웨덴이었죠.
그래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노변담화” (난로 옆에서 라디오로 국민에게 했던 대국민 연설)에서 스웨덴이 걸어온 국가 정책에 대한 책인 “제3의 길” 이야기 하면서
스웨덴은 지상낙원 이래요.
이건 빨갱이 정책이 아니에요.
우리도 지상낙원처럼 갑시다.
이렇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스웨덴은 지상낙원”이라고 하니..... 미국 사람들에게 “스웨덴은 지상낙원이래”라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고
당연이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스웨덴? 지상낙원이지.
하는 생각이 퍼지게 된 것이죠.
허허..... 어느정도 사실에 기반하긴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인식이 1930년대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영향일 줄은...... 저도 적으면서도 놀라게 되는 대목입니다.
5)감정을 왜 드러냅니까 휴먼?
스웨덴 사람들은..... 핀란드 사람들 만큼이나 과묵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과묵하다보니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적겠죠?
우리나라사람들은 “솔직히 말해서” 라는 말만 하면 자신의 온갖 감정을 드러내는 반면, 스웨덴 사람들은 그런게 없다고 합니다.
저자가 이에 대해서 몇가지 예를 들었는데요.
스웨덴에서 임산부가 아이를 출산할 때는 정말 몸부림을 친다고 해요.
아니 서양인은 골반도 넓은데 왜?
아파서도 그렇겠지만..... “비명을 안 지르려고”그렇다고 합니다.
산모가 출산할 때 비명을 지르는 걸 “부끄러운 일”로 여긴다고 하네요.
그리고 또 하나의 예는..... 스웨덴에서 장례식을 할때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선, 찾아온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상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한다고 합니다.
저도 몇번 장례식을 치러봤지만, 입관 전에 고인을 마주하는 마지막 시간..... 정말 처연하죠. 고인 앞에서 울고 눈물 흘리고, 때론 몸을 던지고..... 하지만
스웨덴에선 그런거 없습니다.
그냥 무덤덤 하대요.
장례식에서 우는 것 만큼 속된 말로 “쪽팔린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문화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 사람들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 돼죠?
어떻게 보면, 저번에 언급했던 핀란드 사람 이상으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의 마인드는
나의 감정은 소중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너의 감정도 소중해
그럼, 나의 감정 때문에 너의 감정이 상하게 할 순 없어...... 라는게 되겠죠.
이런 마인드가 보편화 되다보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요.
이 감정적 배려에 우선순위가 매겨지는 거지요.
모두를 배려하기엔 사회가 복잡해지니 우선순위를 매겠다는 건데요.
스웨덴 사람들은 시간약속을 칼같이 지킨다고 했는데요. 그걸 위해선 다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고 합니다.
근데 스웨덴 사람들은 법을 잘 지킨다며? 그러면서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거지? 라는 의문이 드실텐데요.
우리나라는 지하철이 역에서 멈추면 어떻게 되나요?
나갈 사람 부터 나가고, 다 나간다음에 들어가야 할 사람이 열차 안으로 들어가잖아요.
스웨덴에선 그딴거 없다고 합니다.
나가려는 사람과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바람에 열차 입구가 난장판이 된다고 해요.
약속시간에 늦어서 약속상대의 기분 상하게 하는 것과,
열차에서 만난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것
이 사이에서 주판알을 튕겨보니, 첫 번째를 택하게 된 거지요.
역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으로....
어쨋거나,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일단 잘 들어준대요.
아무리 말같지 않은 소리 같아도, 그걸 지적하면 기분이 상할테니 최대한 듣는 겁니다.
그럼 내가 이렇게 잘 들어줬으니, 나도 한 마디 하면 남이 잘 들어주겠죠?
이러니, 아까 언급했던 “라운드 테이블” 즉, 원탁형 의사소통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을 뿐 만 아니라......
말하는 입장에서도, “상대가 내 말을 잘 들어줄텐데 여기서 헛소리 하면 안되겠지?” 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최대한 논리적으로 말하려고 노력을 하고...... 그러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하고 하다보니......
말이 느릴 뿐 만 아니라, 말 수 자체가 적어지는 거지요.
그리고 말 수가 적어지니...... 자연스럽게 감정 표현도 줄어드는 것이고요.
어째 물고 물리는 쳇바퀴 같은 흐름이 된 것 같습니다.
이런 배려는..... 사람간의 거리두기에도 적용이 되어서,
유튜브에 “스웨덴의 지하철 풍경”을 검색해 보시면
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띄엄띄엄 서 있습니다.
절대 둘 셋 끼리 있지 않아요.
그런데 역에서 사람들이 들어와서 간격을 유지하기가 어려우면?!?
거리를 벌린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옮겨서 새로운 거리를 만든다고 합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 같은..... 뭐 그런 풍경인거지요.
그리고 또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하다보면, 누군가 다가와서
“거기 제 자린데요? 어제부터 거기서 공부했는데요?” 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같으면 “뭐래? 번호표 뽑았냐?” 할텐데
스웨덴은 “아 그래요? 비켜드릴게요”가 자연스럽다고 합니다.
대신에 내가 똑같은 주장을 하면 너도 들어줘야돼 라는 전제가 깔려있겠죠.
이 점은 우리나라와는 정 반대인 것 같습니다.
최준영 박사가 “이건 유럽 전체적인 풍토인것 같아요.”라면서 이와 유사한 경험을 이야기 한 게 있는데요.
최준영 박사가 독일로 갈 일이 있었는데,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열차표를 예매하려고 역에 갔는데
줄이 30분이 넘도록 줄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뭔 일있나? 하고 앞쪽을 쓱 보니, 웬 할머니가 역무원을 붙잡고 한참을 이야기 하고 있었대요.
내가 몇월 몇일에 어디로 갈건데 어떻게 가야돼요? 한거랍니다.
역무원도 웃긴게, 열차 시간표를 프린터로 20장을 뽑아놓고 일일이 설명하더란 거지요.
그때 역무원의 이야기를 듣던 할머니가 “야 이건 너무 돌아가는데? 일정을 일주일 정도 앞당기면 어떻게 돼요?”라고 하니까
역무원은 그와중에 일주일 전 열차 시간표를 또 뽑아서 설명을 이어갔다고 합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게 무슨..... 해서 같이 간 선배에게 “이게 뭔 상황이래요?”라고 물으니..... 선배는
“너도 필요하면 저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워...... 이런 배려가 디폴트 값이라면...... 전 그냥 한국에 사는게 더 나은 것 같습니다.
6)마냥 차이만 이야기 했으니 비슷한걸 이야기 하지면
우리나라에선 술자리를 가지면 건배사를 하는데요. 그건 스웨덴도 마찬가지라고 해요.
근데 여기서 차이를 언급하자면
우리나라는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한다면..... 스웨덴은 “주최자 오른쪽” 혹은 “주최자 왼쪽”에 건배사 전담마커가 자리한다고 합니다.
이때 건배사를 이상하게 하면? 개망신 당하는 거죠.
스웨덴 사람 집에 놀러갈 일 있으면
눈치껏 잘 앉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서양 사람들 하면, 으레껏 집에서 신발을 신고 다닌다고 하실텐데요.
스웨덴은 가정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합니다.
근데, 이걸 절대 알려주지 않는대요.
그럼 손님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눈치껏 해야 된다고 하네요.
여기서 다들 신발 벗는데, 나 혼자 서양인 집에 왔으니 신발을 신는다?
이번에도 함정카드 뽑고, 몇달치 놀림감 되는 겁니다.
그냥 전 한국에 살렵니다.
7)마치며
세금 이야기도 있고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 하지만....
사실 제가 이 글을 아홉시 반부터 녹취를 하기 시작했는데
해도 해도 끝이 안나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심지어 한 편이 더 남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더 다루는건 인간적으로 무리다 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나름 연재 게시글도 되서
“유종의 미를 거둬야겠다” 하고 각을 잡아봤지만
역시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에휴...... 이래저래 아쉬운 마무리네요 ㅠㅠ
사실 제가 다루고 싶었던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지간 하면 갈 일이 없는 나라
(남미, 아프리카)들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전에 가볍게 언급해 볼까?” 하던게
이렇게 감당이 안될 정도로 스케일이 커져버릴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용두사미식 결말을 짓게 되어. 짱공인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좀 더 추스르는 시간을 가지고
살면서 갈 일이 없는 나라, 혹은
이름은 들어봤는데 잘 모르겠는데? 하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끝내기 전에 다시한번 언급을 하자면
이 게시글은 유튜브 “삼프로 tv”속 코너 “투자는 책과 함께”를 토대로 하였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갑과을작성일
2020-05-28추천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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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간단했으면 좋겠는) 미국 주식 시장이 ㅈ된 이유
코로나로 미국 주식 시장이 ㅈ됐다고 하죠.
게시글 보니까 서킷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하고.
저도 해외 시장 상황 보니까 애플을 위시해서
폭탄을 맞고 있는게
딱 우리나라 저번주 금요일 상황같습니다.
본론으로 가기에 앞서, 전제를 하자면
경제는 수많은 변수들이 영향을 미치는 사회과학적 현상이기 때문에
제가 다루는 원인이 The only one이 아니리
One of them임을 밝힙니다.
아마 댓글로 다른 원인을 제시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그분들이 제시하는 것도 분명 지금 미국 주식 시장이 ㅈ된 원인의 하나일 겁니다.
/://:/:/:/:/:/
미국이 이지경이 된 데, 코로나는 트리거, 즉 방아쇠 정도의 역할을 했을 뿐, 근본적인 원인은 되지 않습니다.
좀 더 영향이 있는 변수로 저는 만성적인 이슈 두 가지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하나는 미국 래포시장의 뻘짓 그리고 사우디와 러시아의 다죽어보자 게임입니다.
래포시장의 뻘짓을 언급하려면 시간을 12년 전으로 돌려야 합니다.
미국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난리가 났었죠.
그때는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흥하다 못해 불타올랐습니다.
오죽하면, 미국 사회에서 신용이 불량한 사람들에게도 돈을 빌려줬죠.
방만이 몸에 얼마나 배었냐 하면말이죠
9억짜리 집을 사려고 은행을 가면, 은행에서 10억을 빌려줬습니다. 집값이 그보다 더 오를거라고 예상해서요.
은행들은 돈을 빌려주고 싶은데, 신용등급에 따라 빌려줄 수 있는 폭이 달라지니, 얘들이 머리를 굴립니다. 신용 등급을 조오오오오온나 잘게 나눠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돈일 빌려주는거에요.
집값이 오르면 모두가 해피할 테고, 실제로 집값이 올랐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것엔 끝이 있게 마련이고, 미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터져서 우리가 아는 “모기지론”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에 나라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난리가 났습니다. 이때 뙇 등장한게 연준(연방준비위원회) 였습니다. 거기에서 양적인 완화 (시장에 돈 쏟아붓기) + 금리 대폭인하 (0.5%)로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연준은 위기를 극복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시장을 위해 열심히 돈을 뿌렸습니다......... 작년 말까지요.
장장 11년간 돈을 뿌렸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같은 일이 반복되다보니, 돈을 받는 입장에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1. 연준은 우리가 찡찡 대면 돈을 준다.
2. 이자가 낮으니..... 굳이 갚아야 하나?
1.과 2.의 혼종이 바로 경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흘려라도 들었을 래포 시장이라는 겁니다.
래포시장은 초단기로 회사채(회사 빚)을 파는 시장입니다.
어느정도면..... 일주일짜리? 하루짜리? 3년, 3개월은 양반이겠죠. 이 대부분은 연준에서 구매를 해주었지요.
자 여기서 상황을 봅시다.
김사장과 최사장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둘 다 월요일에 일주일 짜리 빚을 냈습니다.
쫄보인 김사장은 수요일쯤 되니 슬슬 심장이 쿵쾅대면서, 돈 갚을 준비를 했습니다.
반면 최사장은 월요일에 빌린 돈을 그대로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김사장이 최사장과 수요일에 식사를 하면서 상환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사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해?”라고 물었습니다.
뭔가 이상하죠? 김사장이 “회사 말아먹을 일 있어? 이번주에 갚아야지” 라고 말하니, 최사장은 “자 잘봐” 하며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전화기에 대고 “제가 이번에 돈을 갚기가 힘들거 같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거, 좀 더 빌려주실래요?”
그리고 최사장이 폰을 보여줍니다. 으응? 오히려 계좌에 돈이 더 들어왔습니다.
이런 일이 당시 미국의 상황이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미국 주식.... 몇년째 날아다녔죠.
그리고 연준은..... “미국 무너지면 안돼.”하며 돈은 돌려받지도 못하고 계~~~~~~~~속 퍼줬습니다.
이런 일이 장장 10년동안 벌어지면 사람들은 연준은 그냥 돈 주는 데 입니다. 약간 찡찡거리기만 하면 말이죠.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랑 비슷하죠?
가계가 기업이 되고
주택가격이 주가가 되었을 뿐
정말 똑같이 돌아가는 것이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라는 인터넷 명언이 기가막히게 들어맞는 순간입니다.
여기에 석유를 들이부은 뒤에 불을 댕긴건 트럼프입니다.
트럼프는 당시 중국과 무역전쟁 중이었죠.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과 재선을 위해서요.
그래서 트럼프는 연준을 향해 “야 중국 조져야돼. 그럴려면 우리나라 총알이 많이 필요하다고. 연준 임마들아 금리 더 낮춰!!!”라고 윽박질렀지요.
불쌍하고 딱한 연준은 밥달라고 찡찡대는 토끼같은 자식들과 돈 내놓으라고 바가지 긁는 여우같은 마누라 사이에 끼어 돈 뱉는 기계 꼴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더는 안되겠다 이러다 “again 2008” // “파산은 이루어진다” 꼴이 나겠다는걸 느꼈습니다.
당시 연준 총재는 작년 말에 “그래 옛다.” 하고 금리를 낮추고 지금 이 사태의 나비효과가 되는 말을 슬며시 꺼냈습니다.
쉽게 요약하면 “야 이제 니들한테 10년간 퍼준 돈 있잖아, 슬슬 회수할까 해. 그래도 4월까진 천~천이 줄일거야. 그니까 경끼 일으키지 말......”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국 증시가 한번 휘청했습니다.
래포시장도 눈치를 챈거죠. 파티의 끝이 다가온다. 폭탄 돌리기 시간이 시작됐다.
이제 두 번째 화두 사우디와 러시아의 다 죽어보자 게임으로 넘어갈텐데요.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요 몇년 사이에 미국발로 에너지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셰일 가스 혁명.”이죠.
셰일(진흙이 굳은 퇴적암)에는 천연가스층이 고여있는데요. 얘들은 쉽게 말하면 유전이 되기 전에 지하수 처럼 넓게 천연가스가 퍼져있는 겁니다. 얘들이 적당한 지형을 만나 고이면 유전, 천연가스전이 되는 거에요.
그동안은 그냥 그런갑다만 했대요. 왜냐면 캐는데 돈이 많이 들거든요.
캐는 방법은..... 포항 지진의 원인이던 지열 발전 아시죠? 그거처럼 지층에 파이프 넣고 물을 겁나게 쏘면, 지층이 갈라지면서 셰일 가스가 나오고, 그걸 채집하는 방식이라고 해요.
짱공유 엽게 짤에서 택사스 수돗물 근황 사진 아시죠? 수돗물 틀었더니 탄산수 같이 나오는거. 그게 셰일가스가 수돗물에 스며들어서 그래요.
어쨋건, 유전처럼 구멍 뚫고 뽑아내는 거랑은 딱 봐도 비용이 비싸게 먹히겠죠.
미국이 참 운이 좋은게, 전 세계에 셰일 가스는 넓게 분포해 있지만 (우리나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화강암 지대가 기반암이거든요...... 단군 할아버지.... 기획 부동산에 당하셨어요 ㅠㅠㅠ) 미국은 특히.... 하필 셰일 가스 층이 대도시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거에요. 그럼 캐다가 바로 도시에 보내면 땡인 겁니다.
이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국은 사우디에게 내줬던 세계 제 1의 산유국이라는 지위를 되찾았습니다.
미국은 자신감이 넘쳤어요. 이젠 사우디한테 굳이 잘 해줄 필요 있냐?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지요.
트럼프가 “이젠 중동에 슬슬 발 빼려구”라는 소릴 한 덴 셰일 가스가 한 몫을 한 겁니다.
하지만 셰일 가스는 앞서 언급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비용이 비싸요.
그래서 셰일가스 회사가 이윤이 나려면 상황이 어떻게 돼야 하냐..... 고유가가 유지되야 합니다.
마침 미국 입장에서 호재가 터졌죠.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 보관 시설이 예멘 발 테러로 홀라당 불탄겁니다.
트럼프는 모르긴 몰라도 만세를 불렀을 겁니다.
셰일 가스 회사들도 만세를 불렀겠죠.
셰일 가스 회사들은 돈을 더 벌 것이고, 그러면 기술 개발을 할 것이고, 채굴비는 더 싸질 거고, 그럼 돈을 더 벌겠다는 장밋빛 뇌피셜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가 전세계로 확산 되면서, OPEC+ (오펙 국가 +러시아) 회의가 열렸습니다. 의제는 “코로나로 글로벌 석유 수요가 감소할 텐데, 석유 생산량을 조절해야 하지 않을까?” 였습니다.
오펙의 대표 사우디, 천연가스 1위 생산량의 러시아는 OPEC+의 주도권을 두고 으르렁 거리는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일이 터졌습니다.
협상이 결렬되면서, 사우디가 폭탄 선언을 해요.
요약하자면, “에이 씨 다 죽어보자. 우린 이제부터 석유 생산량을 조오오오오오온나게 늘릴거다. 쫄리면 디지시던지”
불곰국도 “그래 다 죽어보자. 이긴놈이 다 먹는데 사쿠란지 장인지 까 봐!” 하며 채굴량을 조오오오온나 늘렸습니다.
그래서 배럴당 30불 언저리에서 놀던 유가가
20불 대로 훅 떨어졌습니다.
그럼 트럼프와 어께동무하던 셰일가스 업체들은 장밋빛 뇌피셜 속 세상들이 산산조각 나는걸 눈앞에서 목격해야 했지요.
그리고 그 셰일가스 회사들은........
미국 래포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하던 회사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트럼프가 연준에게 “금리낮춰 새키들아!” 하며 금리를 계~~~~~~속 낮추지 않았더라면
연준이 저번주에 “0.5% 인하!” 했을 때 이 공황이 끝날 수 있었을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10년을 그리고 그중에서 4년을 저금리의 꿀을 빨아온 회사들에게 0.5%인하에 이은, 오늘 아침에 발표한 1%인하 카드는......
“오예 돈빌리자!!” .......가 아니라
“야 이거 확실히 ㅈ됐다“는 시그널로 밖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
아마 이 외에도 여러 원인이 있을 겁니다.
제가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원인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제가 급하게 쓰느라 팩트에 어긋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점도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갑과을작성일
2020-03-1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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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언론에 절대 안나오는 미국의 실체
TENT CITY 텐트 촌, 텐트 도시 2018년 미국의 인구 3억 2767만명, 현재 미국은 250만명에서 350만명의 시민들이 텐트촌에 살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20%의 미국인들이 매일 끼니 걱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게 됐을까? 1775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200만명 정도의 미국인들은, 영국의 조세제도에 반발하여 독립전쟁을 일으킨다. 독립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의 지도자들이 모여, 미국의 화폐를 발행할 은행을 개인 소유의 은행으로 결정을 하게 된다. 그 결과 현재 JP모건 일가와 월가의 재벌들이 미국 중앙은행 FRB의 대주주다. (한국으로 생각하면, 8.15 독립을 하면서 이승만의 개인은행이 생기고, 이완용과 친일파 일가들이 한국은행의 대주주가 된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래서, 미국은 소득의 30%를 세금으로 내게 된다. 미국의 자본을 움직이는 세력들은, 주기적으로 공황을 일으켜, 수많은 소도시 은행 파산, 수많은 중소기업 부도, 수십만명이 실직하게 된다. 빚내서 집을 샀던 수십만명의 시민들은 은행에 빚을 갚을 수 없게 되고 거리로 나오게 된다. 2007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역시 그 중 한 사례이다. 게다가 미국은 이미 의료민영화, 전기,수도 민영화가 이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텐트촌에 살아도 돈을 모으기 어려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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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오늘자 주요 뉴스 모음 2018/08/29
오랜만에 뵙습니다.
뉴스 선정 기준이나 요약 내용 선정 기준은 제 자의적입니다. 뉴스 배열 순서는 네이트 기준입니다.
[정치분야]
1. 강경화 "9월 남북정상회담, 美동의사항 아냐…충분히 이해할 것"
http://news.nate.com/view/20180829n25950?mid=n0200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9일 9월로 예정된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미국의 동의 사항이라기보다는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치인 만큼 미국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밝혔다.
- 강 장관은 "비핵화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 부담도 크다"면서도 "북미 관계의 진전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한국 대통령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오히려 더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목표로 하는 비핵화를 위해 남북정상회담이 할 역할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2. 통계청장 경질 놓고 '소득조사 신뢰문제' vs '압박성 인사' 논쟁 http://news.nate.com/view/20180828n22781?mid=n0200
-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 유효 표본이 절반가량 바뀌었음에도 무리하게 과거 조사 결과와 비교해 논란을 자초한 것에 대한 문책 인사라는
분석과, 정부 정책기조에 맞지 않는 통계조사 결과가 나오자 통계청에 대한 압박성 인사를 단행했다는 해석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통계청장 교체에 관해 "국가 경제에 불이 났는데 불낸 사람이
아니라 불이 났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을 나무란 꼴"이라며 "통계 설계가 잘못됐다고 해도 분배 지표가 악화된 현실이 조작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이와 관련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8일 정례브리핑에서 "(황수경 전 청장의 재임 기간에) 통계청의 독립성을 훼손할 만한
지시를 내린 적도 결코 없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통계청의 독립성에 개입하거나 간섭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까지는 5천500가구였던 분기별 소득조사의 표본을 올해 8천 가구로 확대했는데 유효 표본 중 새로 표본이 된
가구의 비중(가중치 적용 시)이 1분기에는 48.6%, 2분기에는 57.5%에 달하는 등 표본의 질적 구성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 정준희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새로운 표본 중에서 유독 1분위 표본이 과다로 추가됐다"며
"이번 통계와 관련해서 신뢰도 문제가 있고 또 시계열적으로 이것을 분석한 것은 오류"라고 의견을 밝혔다.
3. 법원에 막힌 '사법농단' 수사…압수수색 영장 90% 기각 http://news.nate.com/view/20180829n40983?mid=n0200
-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재판거래 의혹 등을 밝히기 위한 사법농단 수사가 시작된 것이 지난 6월입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적극
협조하겠다는 선언이 있었지만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에 대한 압수수색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검찰이 법원에 대한 강제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의 90% 정도가 기각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법농단 수사가 잇단 영장 기각 앞에 가로 막혔다는 지적입니다.
4. 中군용기, KADIZ 진입·이탈 반복…국방무관 등 불러 엄중항의(종합3보)
http://news.nate.com/view/20180829n38758?mid=n0200
- 중국 군용기 1대가 29일 오전 7시 37분께 이어도 서남방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 후 4시간여 비행했다. 이에
우리 공군 전투기들이 긴급 출격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중국 군용기의 KADIZ 진입은 올해 들어 1월, 2월, 4월,
7월에 이어 이번이 5번째다.
- 국방부와 외교부는 이날 오후 주한 중국대사관의 국방무관과 공사참사관을 각각 초치해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다만 상식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이 아니다"며 중국 군용기의 KADIZ 진입에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이 한반도 주변 정찰 능력과 정찰기의 장거리 비행 능력을 과시할 목적으로 KADIZ 진입 행위를 반복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5. 송영무, "물러난다" 언급···후임 정경두 합참의장 유력
http://news.nate.com/view/20180829n10845?mid=n0200
- 그간 송 장관 거취를 두고 유임과 교체 등 등 여러 얘기가 나왔었다. 송 장관 교체에는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검토 문건 방치 논란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또 송 장관이 지난 7월 민병삼 당시 100기무부대장(대령)과 국회에서 진실 공방을 벌이면서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것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 차기 국방장관에는 정경두 합참의장이 지명될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의장은 공군 출신이다. 후임에 임명될 경우 송 장관에 이어 비육군 출신이다. 육군 출신이 국방장관이 되면 현재 추진 중인
국방개혁이 순탄하지 못할 것이란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
1. 文정부 '부동산투기와 전쟁' 선포…친인척계좌도 조사(종합)
http://news.nate.com/view/20180829n26269?mid=n0300
- 투기과열지구 내 유입되는 모든 자금흐름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부모 자식간 편법증여에 대해서는 부모뿐 아니라 친인척의 금융계좌까지 조사대상에 포함해 철저히 검증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 국세청은 29일 부동산자금 편법증여 혐의자 360명에 대한 세무조사 착수와 함께 이 같은 내용의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 우선 국세청은 부동산거래조사팀에 국세청 직원을 상주시켜 투기과열지구로 유입되는 모든 자금흐름을 실시간으로 검증하기로 했다.
- 국세청은 또 부동산시장 가격 급등지역 등 주요 과열지역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차원에서 부동산정보수집 전담반의 상시 분석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 국세청은 과열지역 내 부동산거래자금 중 자금 출처가 불투명하거나 편법 증여자, 다주택 취득자에 대해서는 주택뿐만 아니라 해당 조사대상자의 자산 전반에 대해 조사를 벌여 자금흐름을 끝까지 추적한다는 계획이다.
- 특히 부모자식뿐 아니라 특수관계인을 통한 편법증여를 뿌리뽑기 위해 친인척 등의 자금변동 내역까지 검증대상에 포함해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2. 들쭉날쭉 공시가격 '어떤 기준?'…'시세반영률 공개' 법안 발의
http://news.nate.com/view/20180829n41463?mid=n0300
- 부동산 문제 이야기할 때 계속 나오는 게 주택 공시가격입니다. 공시가격은 각종 부동산 세금 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정부는 공시가격에 시세를 반영한다고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시세 반영률이 들쭉날쭉합니다. 특히 집값이 낮은 지역은 시세와
비슷하고 반면 비싼 집은 시세의 절반인 경우도 있어서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실거래가 반영률을 주기적으로 조사해 공개하고 지역마다 편차가 크지 않도록 어느 정도 시세를 반영할지 목표를 정하자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이와 함께 실거주 목적의 1주택자 재산세는 10년 이상 보유했을 때 30%까지 감면해주고 종합 부동산세 세율을 최고 2%에서 3%까지 올려서 90억 원 이상 초고가 주택자들의 세 부담을 늘리자는 법안도 함께 발의됐습니다.
3. [대출규제] 10월부터 DSR 전면 도입…부동산 대출 옥죈다 http://news.nate.com/view/20180829n03184?mid=n0300
- 정부가 1천5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총량과 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해 오는 10월부터 시중은행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관리지표로 본격 도입한다.
- DSR가 관리지표로 도입되면 지금처럼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 때 금융당국이 고(高) DSR 기준이나 고 DSR 허용 비중을 조정하면서 전반적인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설 수 있다.
- 금융당국은 내달 중 고 DSR 기준을 정하고 은행마다 신규 가계대출 취급액에서 고 DSR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정할 계획이다.
- 요즘처럼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면 고 DSR 기준을 낮추거나 고 DSR가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는 방식으로 대출 조이기를 하는 것이다.
4. 다주택자·고소득자 갭투자 차단…10월부터 전세대출 어려워진다
http://news.nate.com/view/20180829n32365?mid=n0300
- 오는 10월부터 다주택자나 부부합산 소득이 7000만원을 넘는 고소득자는 주택금융공사(주금공)의 전세보증상품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또 주금공의 정책모기지 상품인 적격대출과 보금자리론 상품에서도 다주택자는 배제된다.
- 2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주택금융공사는 이르면 9월 말, 늦어도 10월 초부터 전세보증 자격제한을 강화하기로 했다. 기존에 소득요건을
두지 않아 전세대출이 갭투자 등 부동산 투기 요인이 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판단, 고액자산가의 이용을 제한하고 실수요자 위주로
상품을 재편한 것이다. 이에 따라 10월부터는 전세보증 이용대상을 부부합산 연소득 7000만원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단 신혼
맞벌이부부는 8500만원, 1자녀 가구는 8000만원, 2자녀 가구는 9000만원, 3자녀 가구는 1억원 이하로 소득기준이
차별화된다.
- 주택보유 여부에 대한 기준도 추가돼 다주택자는 전세자금 보증을 받기 어려워진다.
5. 中, 사드 보복 해제 가속…장쑤성도 한국 단체관광 허용
(종합2보) http://news.nate.com/view/20180829n30895?mid=n0300
6. 자영업으로 쏠리는 대출…도소매·숙박음식 역대 최대 증가
http://news.nate.com/view/20180829n16895?mid=n0300
7. 화웨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 2위…삼성과의 격차 단 6%p
http://news.nate.com/view/20180829n10493?mid=n0600
8. 미중 무역전쟁 의식했나…시진핑, '지재권 보호' 강조 http://news.nate.com/view/20180829n08841?mid=n0500
[사회]
1. 대법 이어 헌재 수장에도 우리법연구회…진보성향 유남석
http://news.nate.com/view/20180829n38198?mid=n0400
2. 신동빈 "어디에 문제 있는지 모르겠다"…검찰, 징역14년 구형(종합2보)
http://news.nate.com/view/20180829n36460?mid=n0400
3. 초·중·고교생 1년새 16만명 줄어…다문화학생은 11.7%↑
http://news.nate.com/view/20180829n17040?mid=n0400
4. '구내식당 의무휴일제' '주차단속유예'…서울시, 소상공인 지원 대책 강화
http://news.nate.com/view/20180829n13496?mid=n0400
- 서울시가 구내식당 의무휴일제, 주차단속유예 등의 내용을 담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대책을 내놨다. 지난 22일 정부가 발표한 대책을 적극 뒷받침 하고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게 실질적인 보탬을 주고자 마련한 시 차원의 대책이다.
- 시는 29일 서울 중구 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설명회를 열어 구내식당 의무휴일제, 사회안전망 강화, 금융비용 완화, 주정차 단속유예, 영업거리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5대 정책’을 발표했다.
@@..뉴스를 간단히라도 읽어보고 올리는거라 오래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일이 바쁠 때는 당연히 못올립니다.
블루헤드작성일
2018-08-2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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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상담] 이혼 - 아래글이 핸드폰으로 써서 읽기 불편하시다는 분들을 위해 다시 작성했습니다.
아래 글이 읽기 불편하시다고 하셔서 고치려 했으나, 고쳐지질 않아 다시 적습니다. 이혼 소송을 당하는 입장 입니다. 저. 47세 처. 44세 자녀 중,1.2 남아 2명 짱공엔 현명한 분 들이 계셔서...부디 한 말씀씩 부탁 드립니다.욕하셔도 됩니다. 사실 정해진거 같긴한데....혼란합니다일기나 전기는 이런데 쓰는게 아니데, 죄송하고요부디 조언 부탁드립니다 어느게 현명한지요.. 이건 수정이 가능해서 오늘 변호사 사무실 근무하시는 사무장님께 쓴 글을 올립니다. [ 내용증명 내용]1.귀하와의 이혼을 결심
본인은 귀하와 1998년 12월
경 처음 통신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귀하와 연애 및 동거 도중, 귀하와의 성격과 가치관이 맞지 않아
귀하와 헤어지자고 말씀 드리고, 헤어지려 하였지만, 귀하께서
저에게 결혼 후, 며느리 생활이며, 아내로써도 제대로 잘
하겠다고 하여, 그 말에 믿음을 갖고 결혼을 결심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전 귀하의 댁에 인사 드리러 간 저에게 귀하의
부친께서 상당한 모멸감을 주셔서 파혼을 말씀 드렸으나, 기거하고 있는 여관까지 찾아오셔서 같이 살고
싶다고, 귀하의 부모님을 설득 시켜 달라고 했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여하간,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아래에 기재한 내용과 같이 귀하는 결혼 생활에 있어서 저희 가족과 저에게 과도한 거리감과 육아에 너무도 무관심하므로
저는 설득과 이해를 시키며 무지 애를 썼지만, 이를 무시하여 잦은 부부싸움이 있었습니다.
저의 계속되는 설득과 이해를 무시하고, 계속되는 저희 가족과의
과도한 거리감 및 무시, 육아에 대한 유기 등이 있었지만, 한
번 맺은 가정 꼭 지키고 남 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기 위해 인해하고 설득을 시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귀하는 아래 기재한 결혼 1기, 2기, 3기 초반기까지 유기에 가까운 육아와 본인 가족과 저에 대한
무시, 집안 경제에 대한 일방적 통제 및 배임 등이 극에 달 하였습니다.
결국, 저는 공황장애, 우울증, 홧병 증세를 보이기까지 하여, 결코 저질러서는 안되는 가정 폭력이라는
행위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귀하가 내용 증명으로 보낸, 사안 중 2007년 부터 2009년 경 사이에 거짓말을 자꾸하고 외출이 잦아졌다는
것은 하등의 대꾸할 가치가 없는 사안입니다.
오히려 귀하는 00 어학원 원장으로 제직 시, 외국인 강사와의
은밀한 카톡이 저에게 발각되자, 프라이버시라는 이유로 핸드폰에 잠금 장치와 보지 못 하게 하였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또한, 과도(칼)의 사건은 제가 너무 힘들어서 도와 달라고 하였으나, 계속된
저희 가족에 대한 거리감과 방임에 가까운 육아를 참다 못하여, 차라리 이렇게 나를 피 말려 죽일 거면, 이걸로 나를 찌르라고 과도를 준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2018년 2월 9일 23시경 다툼은
아래에 기재한 내용과 같이 귀하의 무시를 참다 못해 찾아가 따지던 저에게 귀하가 한 언행에 화를 이기지 못해서 그러한 것이며, 2018년 4월 26일 23시경 발생한 가정 폭력은 변론한 가치도 없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귀하의 폭력에
대한 사항은 제가 모두 잘 못하였으므로, 법원이 판결하는 데로 따르려 합니다.
하지만, 제가 큰 아이를 침대에 눞혀서 때려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제가 큰 아들과 이야기하기 전부터 큰 아들이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겁니다.
다음 날 출근을 뒤로 하고, 아이들에게 사과하기 위해서 작은
아이를 기다리던 중 귀하가 저에게 오려던 작은 아이를 귀하가 근무하는 학원으로 오라하고, 저에게 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학원으로 오라던 큰 아들은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저에게 “어제는 제가 잘 못 했다. 시험을 망쳐서 맘이 너무 아픈데, 아빠가 장난을 쳐서 화가 났었다”고 용서를 빌었고, 저는 큰 아이에게 “아빠가 나빴다. 큰 아들이 나를 용서해줘..”라고 사과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믿음도 사라지고, 더 이상 귀하에게 믿음이 가지 않아, 귀하가 준비 중인 이혼 소송에
변호사를 선임하여 맞소송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2. 귀하에게 요구하는 사항
가. 귀하와 원만한 이혼이 조만간 진행 될 수 있도록, 현재 시세에 맞게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하고 싶습니다.
귀하는 4억 9천에 내어 놨지만, 현재
시세는 4억 1천 정도 입니다.
나. 부모의 갈등으로 인해 죄 없는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협조하여 주십시오.
다. 장기 출장 중 아이에게 출장기간을 설명 할 터이니, 그 동안만이라도
아이를 보살펴 줄 것
라. 귀하가 법률 사무소 브라이트를 통하여 요청한 내용은 모두 수용 합니다.
3. 결론
조속한 이혼이 원만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협조 부탁 드립니다.
부첨. 만남부터 이혼 결심까지의 과정 ? 1 부
만남부터 이혼 결심까지의 과정
너무 긴 여정이므로 결혼 1,2,3기 로 나누고, 각 결혼 회기 별로 육아, 부부유착, 친가와 처가, 경제 순으로 그간 있었던 일 들을 나열 합니다.
1.만남과 연애
1998년 경 PC 통신 시절 천리안에서 만나서 연애를 하게 되었습니다.
연애 도중 처는 경기지역, 저는 부산이라 거의 만나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처는 캐나다에 어학 연수 차 약 10개월 가량
다녀오면서 서로 약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처가 한국에 와서 사귀는 중, 가치관이 너무 맞지 않아 고민
끝에 “마음은 아프지만, 우리는 맞지 않다. 미안하다. 헤어지자”고 하였습니다.
처는 자기가 잘 할 자신 있다고, 잘하겠다고 계속 해서 저에게
구애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나와 결혼하기 위해서 캐나다 생활도 접고, 서울 생활도 접었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끝까지 밀어내던 저는 정도 들었고, 처의 잘하겠다는 약속도 있고, 혼기가 차서 결혼을 결심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2002년 4월 7일 혼인을 하였습니다.
2.결혼 생활
2-1결혼초기.2002. ~ 2010
[신혼집]
본인 사업처에 가까운 곳인 영도에 기거를 원하였으나, 처가 해운대 신시가지에 살고 싶다 하여 장거리 출.퇴근 임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원하니 아내가 원하는 신시가지로 정하였습니다.
당시 출, 퇴근 시간이 각각
40분에서 1시간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신혼여행선물]
본인은 편모 슬하에 육 남매 중 막내이고, 처는 부모슬하에 오누이
입니다.
신혼여행지에서 처가 및 본가의 선물을 구입할 때 처는 시댁 식구가 많고,
처가 식구는 적으므로 형평성에 맞지 않으므로 모두 하지 말자 하였으나, 그건 도리가 아니라고
하여, 결국 옥신각신 끝에 가격에 맞춰서 본가 형제들
미화 US100에 선물 다섯 개. 처가 미화 US100에 한 개로
하기로 하여 진행 하였습니다.
[육아]
큰 아이가 생겼을 때(2003년), 출근 길 제일 먼저 장모에게 전화 해서 고맙다고 전화 드리고, 차
안에서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육아는 본인이 90 프로 이상하였습니다. 세탁,
식사, 청소, 설거지, 아이들 목욕 및 돌보기가 모두 저의 몫 이였습니다.
첫 아이가 태어나 산후 조리원에서 퇴원하여 집에서 육아를 시작하는데, 제가
아이를 침대에 눕히자, 처는 아이와 같이 자는 거 아니라고, 아이를
바닥에 혼자 재우려 하였습니다. 저는 아이는 부모 심장소리 듣고 스킨쉽이 있어야 된다고 설득 하였으나, 처의
완강한 거부로 제가 혼자 애와 함께 바닥에서 잠을 청하였고, 둘째가 태어나 우유를 떼기까지 아이 둘을
데리고 약 4여년간 새벽수유를 하였습니다.
[처가 및 친가]
용돈;
처가는 부모 모두 생존해 계시고, 본가는 늙으신 모친 혼자입니다.
당시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 저는 처가와 본가에 각각 십 만원씩
용돈 드리자고 이야기 하였으나, 처는 처가는 두 분이니 “이십만원”이고 본가는 편모이니 “십만원”이
타당하다고 이야기 하기에 이건 사람 숫자가 아니라, 집안에 드리는 거라 설명하며 옥신각신하다가 그래도
장인 장모에게 가는 돈이니 집사람이 원하는 데로 진행 하였습니다.
부양;
결혼 전부터 처에게 이야기 한데로 저희가 사는 곳과 저의 어머니가 사는 곳이 머니, 두 달간만 모친을 모시자 했다가, 단칼에 거절 당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서운하여 처에게 한 달 넘게 설득했으나 요지부동인 처에 더 이상 설득할 힘이 없어 포기 하였습니다. 그 모친은 2005년 경 치매 판정을 받으시고, 현재까지 요양원에 계셔서 이제는
모시려고 해도 모실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죽기 직전까지 한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본가 가족 방문
또한, 막내 아들 장가 갔다고 신혼 집 구경 오신 본가 가족들에게
불손한 태도로 일관하여 2박 3일을 계획한 형제들은 1박만 하신 채, '처남, 다시는
너희 집 안 온다'는 말씀과 함께 각자 집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처가 여행
처남이 캐나다 밀입국하여 장모가 십 년 넘게 아들을 못 만났다 하여. 그간
모아 논 사업 자금의 일부를 사용하여 장인, 장모, 처 이모, 처와두 아이를 캐나다에 보내 드렸습니다. 당시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여행 전 통신비를 아껴야 하니, 전화는 너무
비싸니, 문자나, 전자우편 혹은 천리안 채팅으로 연락하자고
하였으나,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없어, 제가 먼저 전화하여
도착을 확인 하였습니다. 또한, 제가 보낸 메일에 답장이 딱 한 통만 왔습니다.
장모님의 대처
결혼 전 장모님께서 말씀 하시길 “만약, 처와
저 둘 사이의 문제가 있으면, 장인 장모가 이야기 하라” 하셨습니다.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집사람과 아이 육아 문제 및 살림 문제로 다툰 후 장모님에게 상의 드렸으나, 장모님
왈 "우리 딸이 뭐 잘 못 했는데, 이 따위로 이야기하냐, 너희 가정 교육이 잘 못 되었다"고 호되게 꾸지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다시는 장인, 장모님에게 이야기 저희 집안 일에 대해서는 일절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처 이모와의 동거
일본에 살고 계시던 처 이모 방한 후. 약 한 달여간 같이 저희 집에서 기숙하였습니다. 저는 처 이모이기에 별 꺼리낌 없이
잘 해드렸습니다. 처 이모는 떠나실 때, 신세 잘
지내고 간다고 고맙다고 하시면서, 용돈을 주셔서 뿌리치고, 오히려
제가 얼마 안되지만, 차비 챙겨 드려서 보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처 이모와 장모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이제는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부부유착]
본인.
위 상황과 같이 지내다 보니, 자꾸 지침. 혼자 자취를 오래해서 결혼 전부터. 조식은 꼭 같이 함께
먹기를 약속하고, 원 하였으나, 결혼 후, 밥 아침 식사는 차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차려서 불러도 침대에서 나오질 않고, 쟁반에 아침밥을
차려서 침대에 가져다 줘도 귀찮다고 안 먹습니다.
그럼 제발 부탁이니, 나 밥 먹을 때 식탁에 앉아서 같이 얼굴 보면서 커피나 차라도 마시라고
부탁했으나 이마저 거절 당하였습니다. 그 이후, 결국 아침 저녁
모두 혼자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매년 봄, 가을 2차례에 걸쳐 여자는 옷 잘 입어야 된다고 용돈 모아 각 분기 백 만원 상당의 의복을 구매하게 해주었습니다.
처.
계속 사회생활 핑계로 애 들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늦은 시각 집에 들어오지
않아, 연락을 하여도 답이 없습니다.
또한, 저의 십년지기 친구 중 몇몇을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만나지 못 하게 하였습니다.
처와 처가 집 근처 스키장에서 스키 타다가 처가 무릎 미세골절 발생 하였습니다. 입원 후 병간호 도중, 십여 년 만에 오는 친구를 만나러
잠시 나갔다고 온다고 이야기 했다가. "넌
부인보다 친구가 더 중하냐"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경제]
사업 자금 이외에 제가 벌어들인 돈은 모두 처의 통장으로 송금 하였습니다.
저의 용돈은 제가 알아서 사용 하였습니다.
+ 첫번째 부부 싸움 ++++++++++++++++++++++++++++
아이가 없을 때, 사업초기에 거래처 확보를 위하여 저녁 접대가 길어 지다 보니, 처가 외로움을 호소하여 어떠한 접대자리라도 24시 이전 귀가를 약속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사업상 중요한 손님과 접대 약속이 있어 제 사정을 이야기하고, 저희 집과 가까운 곳에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아내와 약속을 지킬 시간이 되어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간신히23시 57분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지만 처는 “시간 딱 맞춰서 오는 당신 같은 사람 어쩌고 저쩌고…” 바가지를 약
한 시간 정도 긁었고, 저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러 저러한 상황 이였다. 사업상 중요 손님이다. 등등 설명하던 중 처는 내 이야기는 전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빈정거렸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설명하던 도중 책상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다가 실수로 장모가 사준 스캐너 커버가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처의 말이 "우리 엄마가 해줄 걸 부순다"고 더 공격적으로
저를 대하였고, "그게
아니라 답답해서 탁자를 친다는 게 실수로 스캐너를 쳤다. 의도 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과 백배 사과하여도 막무가내로 "넌 폭력적이고, 우리
집에서 해준 건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 두번째 부부 싸움 ++++++++++++++++++++++++++++++
손님과 저녁. 약속이 있어 처에게 아이(당시 1,2살로 기억)놀이방 픽업을 부탁 하였습니다. 손님과 한 참 술자리와 업무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놀이방 원장님께서 전화 하셔서 애 엄마가 연락이 안 된다고 어서 아이 데려가라 하셨습니다. 우선 처에게 전화를 해 봤으나, 연락은
되지 않아,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놀이방 이동 중 처에게 계속 전화 했으나 역시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 픽업 후 집에 도착하여 분유를
찾았는데 집에 분유는 없었고, 놀이방 원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놀이방에도 역시 분유가 없었습니다. 당시 본인에게 분유 살 돈이 없어 보리차 끓여 먹이게 되었습니다.
약 새벽 한 시쯤 작은 애 포데기로
업어 재우기 시도 중 처는 술 냄새와 함께 귀가 하였습니다.
너무 심하지 않냐고 이야기 하면서 목소리
커졌고, 결국 큰 아이 깨서 나와서 울게 되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도대체 정신이 있냐 이게 무슨 꼴이냐, 집에 분유는 없고 엄마는 연락도
안되고, 술 마시고 새벽 한시 넘어서 들어오는거 너무하지 않느냐” 하니까
처는 대꾸도 없이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습니다.
얼굴보고 이야기 하자로 문 열라고 소리치다가, 열지 않아서 소화기로 문 손잡이 내려쳤으나, 분말형 소화기
터지고 말았습니다. 정신 없는
와중에 분말을 치우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열어보니, 경찰이
와있었습니다. 처는 현관문 열리자마자
바깥으로 나가서 그날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상황도 설명하지 않은 채 그렇게 부부싸움은 끝 났습니다.
아마도 이 때부터 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거 같습니다.
+ 세번째 부부 싸움 ++++++++++++++++++++++++++
싸움의 윈인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마도 이번에도 아이 문제였던 걸로 생각 됩니다.
부부싸움 도중에 첫 번째 싸움에 처가 했던 말이 생각 났습니다.
“우리 엄마가 해 준 것만 부순다.”
그래서, "그럼, 내가 산 건 부숴도
되지?" 하고, 내가 구매한 어항, 냉장고, 티비 다 박살 손괴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때부터 부부싸움 시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하게 된 거 같음
2.결혼중기. 2011 ~ 2014
[육아]
본인이 여전히 70 ~ 90프로
여전 수행 하였습니다.
계속되는 사업과 육아에 지쳐 처에게 휴직을 하고 양육을 부탁 하였으나, 커리어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 당하였습니다.
그러면, 내가 사업 접고 애를
돌볼 테니, 당신이 돈 벌어 오라고 했으나, 처는 거절하였습니다.
특히, 처의 지인인 처의 사수
에게 사주하여 처의 휴직을 적극 말리고, 집요한 설득 끝에 사수가 경리 이사로 전직한 회사(00 어학원)에 5시 퇴근 조건으로 취업에 동의 하였으나, 9시 전, 후 퇴근은 여전 하였고,
당연히 아이들 돌보는 것과 가사는 제 몫 이였습니다.
맞벌이의 특성상 아이를 낮에 돌보는
것이 불가능 하여 아내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로테이션 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금 이 시기(아이 나이 7~8세)에 가정의 따스함이 중요하니, 그러지 말고 육아에 전념해주면 안되겠나.”라고 부탁 하였으나, 처는 일방적으로 학원들을 등록 시킨 후 아이들이 저녁 늦게(약 7~8시) 귀가 하도록 하였습니다.
큰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던 끝에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걸 눈치 채고, 큰 아이와 이야기 해 본 결과, 학원 때문에 너무 지쳐있고, 부모 사랑에 너무 굶주린 것을
알게 되어, 집사람의 만류에도 본인이 일방적으로 학원 모두 퇴원 시킨 후, 아이가 원하는 것 위주로 방과 후 수업진행 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고 계속 이상하고,
본인도 심리 상태가 이상해서 가족 모두 정신과 진료 받았고, 정신과 진단 결과 아이들은 ADHD증후군 초기 증상이 발견 되었고, 본인은 화병에 우울증, 처는 우울증 초기로 진단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덕망 있고, 진료를 잘 할 수 있는 병원을
선택하려 하였으나, 처는 집과 가까우니, “남들 눈이 무섭다”며 반대를 하였습니다. 저는 “현재 남의 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가 가장 중요하다. 남들은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우선은 명망 있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자”고
설득하여, 집 근처 명망 있는 병원에서 정신분석 진료를 받았습니다.
처는 의사가 권고하는 약을 아이에게 투여하길 원하였으나, 본인은 정신과 약물은 아이에게 매우 좋지 아니하니, 우선은
처의 휴직은 권고하고, 본인도 아이에게 유대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이야기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그 때 약물에 의존하자고 하였습니다.
처.
처는 정신과 진료 이후, 울면서 퇴직하고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약속 하였습니다.
본인.
본인은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부모와의 바람직한 유착관계
형성을 위하여, 자전거 여행. 농구, 축구, 직소퍼즐, 레고, 크레시오브 클래, 크래쉬 로얄 등 매주 같이 하며 돌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시기 아이들 담임 면담은 제가 진행 하였습니다. 4학년 둘째가 담임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던 시기. 처는 담임을 만나지 않고, “다른
언니들 이야기 들어보니, 자기 성격에 그 여자하고 말하면 폭발 할 거 같다”고 해서 제가 상담 하였습니다. 그 후, 둘째 아이 담임은
더 이상 둘째를 편향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고, 학교 생활에 현재까지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 처가 및 친가 ]
처가.
왕래 업슴.
처와 장인과 사이가 좋지 않아 “그러지
마라 부모 병 나시고 돌아가시면, 다 헛 거다. 부모자식간에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장인과 처의 관계가
회복되길 바라며, 이야기 하였습니다. 또한, 장모님 가끔
생활이 힘들다고 금전 요청 시 처 모르게
도와 드렸습니다. 그리고 장인이 특정한 직업 없이 브로커 생활을 하시는데,
어느 날, 좋은 땅이 나왔으니 땅을 구매하라고 하시였습니다.
처음에 경제적 사정이 넉넉하지 않거니와 땅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 거절했지만, 장인 장모의 집요한 설득으로 빚내어 처의 명의로
구매 하였습니다.
본가. 왕래 없슴
[ 부부유대 ]
여전히 늦은 시각까지 오지 않아 걱정되어
전화해도 반응 없었습니다.
주로 결혼 초반기 사수인 사람
만난다며, 늦기 일수였습니다.
처의 사수는 여자인데, 남편과 별거하는 사람 이였습니다. 처의 사수는 어느 날 저에게 “우진이 아빠 내가 외롭고 한데, 진이하고 나 다른 남자 만나도 이해
해줄 거죠?” 라는 질문을 저에게
하였습니다. 나는 당황도 하고, 어이가 없어 대답을 못 하였습니다. 제 맘에 들진 않지만, 처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처형'이란 호칭과
함께 잘 대해줬던 게 착각이라 생각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하여도 아무래도 처가 이 처형이라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감정이 전이 된 걸로
생각하여, 만나지 않았음 했으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 왜 못 만나게 하냐"는 핀잔을 듣게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이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밖에 나가면, 연락이 되지 않아, "사람이 연락이 안되면 얼마나 걱정되는 줄 아느냐, 제발
죽었는지 살았는지 좀 알게 해달라"고 통 사정을 해도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결국 처가 하는 말은 '전화기를 핸드백에 넣어놨네, 전화기를 신경 쓰지 않았네, 주변이 시끄러워 몰랐네'가 주요 답변 입니다.
한 날 집에서 울부짖으며,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네가
현장에 와서 보면, 나한테 이러지 못 할건데... 내가
너한테 바라는 게 큰 것도 아니고, 그냥 따스한 밥 한끼 먹고, 애들
잘 키우고 하는 건데, 너무 서운하다." 통
사정하였는데도 별 반응도 하지 않고 완전히 돌 부처처럼 사람을 내려 보더군요. 저는 이때 "집사람에게는
아예 미련을 접어야지. 아이들이나 신경 쓰자"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부관계]
세 차례 거부 당하여 그 뒤로 없습니다.
본인 만나는 여자나, 성 매매 경험 없습니다.
성욕은 자위행위로 해결합니다.
이런 생활 도저히 견디지 못 할거 같아서 이혼서류 작성 후 처에게 내밀었다가 결국은 잘해 보자고 화해를 하였습니다.
본인.
2010년경 발생한 전세계적인 리먼 사태로 사업에 큰. 타격을
입어씁니다.
직원은 2억대 횡령 후 자살을 하였고, 거래처의 부도로 약 8억대의 금액을 손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혼란한 시기에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고, 대인 기피증까지 생겨, 처에게 너무 힘들다 괴롭다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돈 만들어
오라는 게 아니라, 나 좀 따뜻하게 대해달라 요청하였으나, 애정결핍이라고 무시 당하였습니다.
그 당시, 친하게 지내는 후배에게 아내와의 사이의 고민을 털어
놓으며, 연락 닿지 않는 부인에 대해 고민 이야기
하던 중. 후배는 “형수 생각에 형님이 형수 걱정에 시간
불문하고 연락하는 거 자체를 구속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하지만, 같이 사는 사람인데. 그것도 아닌가? 처의 입장에서는 그도 그렇겠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처에게도 “그거 마저도 구속이라고 당신이 느끼면, 연락하지
않으마” 하고 그 뒤로는 신경 안 쓰기로 하였습니다.
본인 치질 수술 후, 병원에 입원 중 처는 병원에 단, 한 차례도 들르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꾸 피가 나와 생리대
착용법을 알려 달라 했으나 무시 하여, 엉덩이에 붙이는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친 누나에게 물어보고서야
착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생각을 하면서 나중에 혼자 킥킥거리기도 하였습니다.
처.
집에 있으니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직장 갖기를 원 하였습니다. 직장을 갖는 이유는 "집에 기여하는 것과 자기 만족"임을 이야기해주고 격려해 주고, 그래도 아이들과 가정은 돌봐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흔쾌히 처의 공부(아동 심리 자격 및 외국인을 상대로하는 국어 강사 자격증)를 도왔고, 처도 방과후 교사로 재직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전세(당시 39평)로 거주하였으나, 이제 이사가 싫다며, 집을 갖고 싶다고, 아파트를 사자고 하여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처는 50평형을
원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나이나 형편으로는 너무 벅차다.”며 누차 만류 하였으나, 처의 "젊었을 때 살아보지 늙으면, 이런데 살지도 못한 다고, 우리 집 갖게 되면, 더 잘하겠다"고. 집요하게 요청하여 모기지론을 이용해서 현재 거주지를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거주지 구매 전에 저는 처에게 “이사
갈 집에 가장 작은 방으로 내 서재 겸 방이 있었으면, 그걸로 만족 한다. 단, 이사를
가면, 모기지론 할부에 돈이 많이 들어가니, 생활비 아껴서
알뜰하게 살자”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사 후 두 달도
안되어 결국 저의 조그마한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저의 공간은 안방에서 화장실 가는 사이 전실의
일부(옷장)가 되었고, 처는
새 집에 새로운 가구를 들여 놔야 한다며, 사전 협의 없이 가구를 몽땅 맞춤하여 새 걸로 바꿨습니다.
[경제]
회사 운영비 빼고, 벌이는 모두 처의 통장에 입금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도 미래에 대해서 설계를 해야 하니, 급여 통장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 했으나, “나를 못 믿냐”는 답을. 듣고, “너 믿지만, 그래도 세세한
거 보다는 전반적인 걸 알고 싶다”고 이야기 했지만, 끝내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도표 만들어서 처가 가입한 보험 금액만 적어 달라 해도 무시 당하였습니다.
3.결혼후기. 2015 ~ 2018
[육아]
본인이 40프로 정도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여전히 냉장고는 비어 있고, 밥솥은
일주에 두 번 정도는 밥 한지72시간이 넘었다는 표시가 들어 오기 일쑤였습니다.
큰 아이 사춘기가 도래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춘기의 에너지를 폭발 시키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이와 상담한 후에 드럼을 하도록 유도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축구부에 입단하여, 체육 선생님(김경석)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아이가 삐뚤어지지 않도록 지도를 부탁
드렸습니다.
큰 아이 중학교 때, 축구 선수 하고 싶다고 해서 겨울방학 내내
제가 개인 트레이닝 시킨 후, 00 FC의 입단 TEST를 통과 시켰습니다.
큰 아이 중 1학년 주말 연습 경기에 저는 거의 관람가서 응원하고
처는 3회 정도 참가하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주말
리그 선수인데, 일 없으면 무조건 제가 경기장까지 가서 돌보았고, 집사람
단 한 차례도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출장 중 한 겨울에 보일러 소리가 너무 크다며, 보일러를
다 꺼 놓았다고 하기에, 아이들 방에 전기 장판도 없으니, 안방으로
불러 같이 자라고 하였는데, “지들이 아쉬오면, 오겠지”라는 답장이 왔습니다.
[부부유착]
여전히 공허한 메아리로 늦은 시각 들어오지
않아 연락해도 반응이 없거나, 연락 후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 “어, 지금 가고 있어.”라는 식의 답이 옵니다.
결국 12시 이전까지 집에 못 온다면 서로 미리 안전만 확인하기로
연락하기로 하였습니다.
살아 있다는 거만 아는 걸로...
한 날 이렇게 나를 피 말리게 할 거 같으면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과도를 던져 줬습니다. 이건 사는 게 아니라 죽자는 건데, 그러려면 차라리 니 손에 죽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 이혼 소송 예정 내용증명을 봤는데,
이걸 내가 칼로 위협한 걸로 기재하였습니다.
[ 본인 ]
경기가 힘들지만 열심히 해서 전세지만 건물을 통째로 빌려 공장을 제대로 꾸미고 새로운 마음으로 힘차게 출발 하였습니다. 처에게 공장 옮겼으니, 같이 가주면 안되냐고, 응원해달라고 했으나, 두 달간 응답이 없어 결국, 가족에게 응원 받기 위해 외식을 핑계로 공장에 데려가 구경 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공장 견학 감상을 부탁한 저에게 처는 “공장이 좀 낡았네” 라는 답만 왔습니다.
정신과 상담.
한 날 너무 답답하고 기분이 우울하여 정신과에 진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진단 결과는 공황장애. 우울증. 화병 이였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처에게 이야기하고 도움요청 하였으나, 역시, 무시 당하였습니다.
또한, 한 달에 70만원
정도하는 아파트 관리비 문제로 관리사무소와 다툰 후, 관리실 통하여 자재만 구입한 후 제가 직접 수리하였습니다. 자재비가 좀 많이 나와서 처에게 현금
영수증 받아 두라고 부탁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관리 사무실에서 현금 영수증은 불가하고, 세금 계산서 발행만 가능하다고 하여 처와 협의 후 저의 회사로 세금 계산서를 끊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처는 저에게
"내가 당신 회사 여직원이야?"라고 따지더군요. 정말 이해하기 힘 들었습니다.
결국, 별거를 하는 게 어떤지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집에만 가면 죽을 거 같다고, 숨이 턱턱 막힌다고. 처는 나도 죽을 거 같으니 그러라고 하였습니다.
[ 처.]
학원을 해야겠다 하여, 좋은 생각이다 격려하고 학원이름 로고 같이 고민하고, 대출 받아서 차려주고 대출금은 다 갚았습니다.
학원에 행사 있을 때 마다(영어 학원이므로 크리스마스 데코, 할로윈 데코, 수업 교재 준비 등)
적극 도와 주었습니다.
[본가와 처가]
본가. 왕래 거의 업슴.
유일하게 모친 생신 날, 저희 가족과 형제들끼리 전라북도 진안에 모여
놀았습니다
처가. 왕래 거의 업슴
처가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던 중, 동네 크린토피아에서 옷을 찾아 오던 중 운영권을 내 놓아야겠다. 는 운영자 말에 그거 다른 사람에게 말씀 마시고, 저에게 주시라고
빨리 결정하겠다고 하고 처와 상의하여 장인 장모님 내려오셔서 저거 운영하시게 하면, 노동의 강도도 크지
않고, 양쪽 모두 편안할 거 같다고 하고 돈은 어떻게든 마련해 보자고 했으나, 장인 장모님의 의견을 존중하여 포기 하였습니다.
[ 경제.]
통장 카드 계산해보니, 2015 년 부터 집에 정식으로 가져다
준 게 세 후 연봉 개념으로 약 칠천~팔천이고, 본인이 회식이나 아이들 의복, 아이 선수 장비, 여행 경비 등등 합하면, 약 9 천
언저리 연봉으로 계산 되었습니다.
저는 처에게 이정도 연봉이면 우리는 대한 민국에서 상위 5% 이내의 삶이데, 내 생각엔 가정 경제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발 통장 좀 보고 같이 머리 맞대고 상의 하자고 하였으나, 처는 여전히 집안 통장 열람 거부 하였습니다.
결혼 생활 중기에 이야기한 내용 데로 빈칸 채워달라 통사정 하였으나, 여전히 무시하여 본인이 보험 약관 통 다 뒤져서 보험사 알아내고 보험사 전화해서 도표를 완성 하였습니다.
도표 보내면서 집에 너무 많은 금액이 들어가니 조금 아끼자고 검토 부탁했으나, 식대와 외식대가
작게 책정 되었다고 답이 왔습니다.
나도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부탁했으나, 관념적이 이야기로든 어떠한 형태로의 회신 없었습니다.
큰 아들 훈련 중 다쳐서 병원 응급실 치료 후, 제가 직접 보험금
청구해 보니, 그간, 아이들 보험만 들었지, 보험금으로 지급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보험금 청구에 신경을 써서 잘 청구하라 하였더니, 알아서 잘 챙기겠다고 하더니, 이런 경우가 생겼습니다.
[처가.]
장모의 금전요구 한 차례 도와 드렸으나, 두 번째는 회사 사정
말씀 드리고 거절 하였습니다.
장모가 처에게 재차 요청 하였고, 처가 속상했던지 울며불며 난리를 쳤습니다.
오빠는 캐나다에 있어서 자기가 다 해야 하는데, 미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 그래도,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고 달랬습니다.”
+ 네번째 부부싸움 +++++++++++++++++++++++++++++++++
발단,
2월 6일 23시경 접대 후 귀가 하였습니다.
과음에 너무 피곤하여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물 한 잔만 달라고 하였으나, 아무도... 아무도 물 한 잔 안 주더군요. 물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역시
난 이 집에서 이런 대접이군.’ 하며, 한 숨을 뒤고 있는데, 너무 조용한 집 화장대에서 처가 크림 바르는 소리만 들리더군요. '톡, 톡, 톡......'
그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처에게 가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서운하다 했더니, 니가 떠다 먹음 되지 왜 나한테 그러냐...
말문이 막혀서 우이씨~~ 소리와 함께 문을 화장대쪽으로 팍 밀쳐서 화장대와 문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처가 말하기를
"그래 다 때려 부셔라! 너는 내가 이혼 해주길 바라잖아! 지금 꼬투리 잡으려는 거잖아. 니가 잘하는 것처럼 다 부셔!"
그래서 문짝 잡아 뜯고 화장대를 드라이기로 쳐서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처는 이불 가지고 안방에서 나가서 거실 소파 기거하였습니다.
계속되는 휴전 상태
본인은 2월 10일에 타 지역 장기출장 (약 25일반)으로 명절에
집에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처와 아이는 미리 예약한데로 구정 연후 기간 중 처의 사수, 사수 아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하였습니다..
여행 경비 중 항공 숙박은 본인이 부담 하였습니다..
여행지에서 아이들이나 처에게서 단 한 통의 문자나 카톡도 없었습니다.
겸언적은 마음에 처에게 “잘 지내냐”라고 톡을 날렸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추후, 가족 톡방에서 서운하다고 이야기하니, 큰
아들만 '할라고 했는데.. '라는 답장 왔습니다.
별거(여건이
되질 않아 5월 경) 하겠다고 이야기 하였고. 집사람도 동의 하였습니다.
4월 26일경
지인과 음주 후 귀가 하였습니다.
큰 아들과 이야기하던 중 버릇 없는 행위에 훈계하다가 아이의 행위에 화가 돋아 손찌검 하였습니다. 처는
큰 아이 방에 들어와 말리다가 저에게 손찌검 당 하였습니다.
처는 경찰에 신고 후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 갔습니다.
혼자 있는 집에서 에어컨. 거실 대리석. 티비
손괴 하였습니다..
중국출장 후 귀국하니, 장모 와 계셨습니다.
장모에게 그간 사정 다 말씀 드렸습니다.
장모는 딸과 이야기 하겠다고 처와 함께 나가셨습니다.
이야기하고 들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 딸은 하나도 잘못 없다 하십니다.
5월 5일 찬거리가 없어 찬을 만들던 도중 00경찰서에서 출두명령 조서 쓰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5월 6일 집사람 간단한 카톡 왔습니다.
"당신도 알겠으나, 제 짐을 다 빼서 나왔어요."
저는 모두 포기 하였습니다.
현재 ++++++++++++++
처 폭행으로 고소장 접수. 전치 2주 : 6월 27일 가정법원에 소환 됨.
폭행으로 의한 이혼 소송 준비 중(등기 받아 봄)
[ 본인 생각 ]
폭행
무조건 잘 못함. 생각할 가치도 없슴 모두 인정하고 법이 시키는 데로 할 생각.
이혼
지쳐서 더 이상 혼인 생활 못 하겠슴.
가장 공포스러운 게 처가 미워졌음
가끔 얼굴만 봐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옴.
양육권 친권 포기
사유.
장기출장 중 아이에게 만일 일이 생기면 출장 시 돌보기가
불가능 함.아이들은 도우미를 원하지 않음.
본가 형제는 너무 멀리 살고 있슴. 출장 후 저녁 열시 경, 둘째아이 저녁 밥.... 및 집 냉장고이게 계속 이럽니다. 카톡 내용중국 출장 중 한겨울에 방안 보일러 꺼놓고 대처하는 자세 정말 힘들다고 도와 달라고 했을 때 이마트 장보러 갔는데.. 큰 아들 신발이 찢어진거 발견하고....신발 사줌
쉽짱작성일
2018-05-1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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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상담] (도움) 이혼
이혼 소송을 당하는 입장 입니다. 저. 47세 처. 44세 자녀 중,1.2 남아 2명 짱공엔 현명한 분 들이 계셔서...부디 한 말씀씩 부탁 드립니다.욕하셔도 됩니다. 사실 정해진거 같긴한데....혼란합니다일기나 전기는 이런데 쓰는게 아니데, 죄송하고요부디 조언 부탁드립니다 어느게 현명한지요.. 너무 길어서 3 부작, 음씀. 채로. 씀니다. 연애부터 결혼 생활까지 간략하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애시절1998년 경 PC 통신 시절 천리안에서 만나서 연애를 하게 됨.연애 도중 처는 경기지역, 저는 부산이라 거의 만나지 못 함.연애 도중 처는 캐나다에 어학연수차 약 10개월 가량 다녀옴.처가 한국에 와서 사귀는 중, 가치관이 너무 맞지 않아.'우리는 맞지 않다. 미안하다. 헤어지자고 함.'처는 자기가 잘 할 자신 있다고, 잘하겠다고 계속 메달림.그러면서 나와 결혼하기 위해서 캐나다 생활도 접고,서울 생활도 접었다고 함. 끝까지 밀어내던 저는 정도 들었고, 혼기가 차서 결혼을 하기로 함2002년 혼인 결혼 생활
결혼 후 1기 2기 3기
내 입장에서 비참한 결혼 생활
1.결혼초기.2002. ~ 2010[신혼집] 본인 사업처에 가까운 곳에 기거를 원하였으나, 처가 신시가지에 살고싶다하여 장거리 출.퇴근 임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원하니 아내가 원하는 신시가지로 정함. 제 직장하고 약 35Km 떨어져 있슴.[신혼여행선물] 본인- 육남매. 처 - 처남혼자 인데 캐나다 생활 신혼여행 선물은 시댁 식구가 많고, 처가 식구는 적으므로 형평서에 맞지 않으므로 모두하지 말자 함. 신혼여행 선물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결국 옥신각신 끝에 가격에 맞춰서 본가 형제들 백불선에 선물 다섯개. 처가 백불에 한개로 협의 함
[육아] 큰 아이가 생겼을 때(2003년), 출근 길 제일 먼저 장모에게 전화 해서 알리는데 눈물이 나드라.. 고마워서 본인이 90 프로 이상함. 세탁,식사,청소, 설거지, 아이들 돌보기 본인이 90 프로 책임짐 아이와 같이 자는거 아니라고, 아이를 바닥에 혼자 재우려함. 아이는 부모 심장소리 듣고 스킨시쉽이 있어야 된다고 설득 하였으나, 실패. 내가 혼자 애 둘 끼고 약 4년여 정도 새벽 수유까지 함
[처가 및 친가] 용돈; 처가는 양모 생존. 본가 편모임 각자 십만원씩 용돈 드리자 하다가, 처가는 두분이니 이십만원이고 본가는 편모이니 십만원이라고 해서 옥신 각신하다가 집사람이 하자는데로 함. 모친.2005년경 치매 판정.요양원 입원하여 더이상 모실수도 없음. 부양; 친가,거절 당함 처가.같이는 몬 살아도 근처 빌라 얻어줄 수 있다 함 본가. 결혼 전부터 이야기한데로 사는곳이 머니, 두달간만 모친을 모시자 했다가, 단칼에 거절 당함. 한 달 넘게 설득했으나 실패.
당시 첫 본가 가족 방문시 현재는 요양병원에 기거하시는 모친(37년생)과 형제들의 방문에 깽판쳐서 모친, 매형, 형제 들로 부터 '다시는 너희집 안 온다'는 말까지 들음. 처가. 처남이 캐나다 밀입국하여 장모가 십년 넘게 아들을 못 만났다하여. 장인, 장모, 처이모, 처 두 아이 캐나다에 경비(약 천오맥만원) 마련 후 보내드림. 당시 카톡도 없는 시절이라, 문자로 서로 통신비 아껴야 하니, 이메일로 연락하자고 함. 약 한달여 있었으나, 잘 도착했다. 잘 만났다, 재미지다. 이 메일 문자 한 통 없슴
만약, 처와 저 둘 사이의 문제가 있음 장인 장모가 이야기 하라 하심. 그말을 철썩 같이 믿고, 집사람과 아이 육아 문제로 다툰 후 장모님에게 상의 드렸으나, 장모님 왈 "우리 딸이 뭐 잘 못 했는데, 이 따위로 이야기하냐, 너희 가정 교육이 잘 못 되었다"고 호되게 꾸지람 듣고. 이후, 다시는 장인, 장모에게 이야기 안 함
일본에 사시던 처이모 방한 후 한 달여 같이 기숙하였음. 처 이모이기에 별 꺼리낌 없이 잘 해드림. 처이모는 떠나실 때, 신세 잘 지내고 간다고 고맙다고 하시면서, 용돈을 주셔서 뿌리치고, 오히려 제가 얼마 안되지만, 차비 챙겨 드려서 보냈음. 이유는 모르겠지만, 처이모와 장모님 사이가 매우 않좋아, 현재는 연락 안됨.[부부유착] 본인. 위 상황과 같이 지내다 보니, 자꾸 지침. 혼자 자취를 오래해서 결혼전부터. 조식은 꼭 같이 함께 먹기를 약속하고, 원하였으나.. 결혼 후, 밥 안차림. 제가 차려서 불러도 침대에서 안나옴. 제가 쟁반에 차려서 침대에 가져다 줘도 귀찮다고 안 먹음. 그럼 제발 부탁이니, 나 밥먹을 때 식탁에 앉아서 같이 얼굴보게 커피나 차라도 마시라고 부탁했으나. 이마저 거절. 결국 아침 저녁 모두 혼자 식사하게 됨.
매년 봄, 가을 2차례에 걸쳐 여자는 옷 잘 입어야 된다고 용돈 모아 각 분기 백만원어치 옷 사줌. 처. 계속 사회생활 핑계로 애 들보지 않음. 전화 잘 안받음. 문자. 카톡 잘 반응이 없음 저녁 늦게 까지 들어오지 않아 어디냐고 문자를 보내면, 열에 한 둘 답할 뿐 나머지는 반응 업슴. 저의 십년지기 친구중 몇몇을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만나지 못 하게 함. --> 이런 문제로 소소한 다툼이 이어짐.
스키타다가 집사람 무릎 미세골절 발생. 입원 후 병간호 도중, 십여년 만에 오는 친구 만나러 잠시 나갔다고, 온다고 이야기 했다가. "넌 부인보다 친구가 더 중하냐"는 핀잔을 들음.
[경제] 버는 족족 부인 가져다 줌. 용돈은 제가 알아서
+ 첫번째 부부 싸움 ++++++++++++++++++++++++++++
아이가 없을 때, 사업하는 관계로 저녁 술이 길어지다보니, 처와 협의 후 24시 이전 귀가를 약속 함.
23시 57분 집에 들어간 날(늦을까봐 거래처 손님을 본인집 근처로 모셔. 접대하던 중 양해를 구하고 뛰어감)
시간 딱 맞춰서 오는 당신 같은 사람 어쩌고 저쩌고 바가지를 약 한시간 정도 긁음...... 저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러저러 했고, 사업상 중요 손님이다. 등등 설명하던 중 내 이야기는 전혀 들을 생각도
하지않고 빈정거림. 하도 답답해서 설명하던 도중 책상을 손바닥으로 탁탁치다가 장모가 사준 스캐너 커버가 망가짐
처의 말이 "우리 엄마가 해줄 걸 부순다"고 더 성질을 냄. "그게 아니라 답답해서 탁자를 친다는게 실수로 스캐너를 쳤다." 의도한게 아니리 백배 설명 및 사과하여도 막무가내로 "넌 폭력적이고, 우리 집에서 해준 건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낙인을 찍음
(처가가 상황이넉넉치 않인 혼수는 컴터.프린터.스캐너)
이 부분은 처가 본가 모두 협의한 것으로 전혀 불평불만 없슴. 컴퓨터 세트도 무지하게 감사하게 생각했슴.
+ 두번째 부부 싸움 ++++++++++++++++++++++++++++++
손님과 저녁. 약속이 있어 처에게 아이(당시 1,2살로 기억)놀이방 픽업을 부탁함
놀이방 원장님 전화하셔서 애 엄마가 연락이 안된다고 어서 아이 데려가라 함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놀이방 이동중 처에게 전화 했으나, 안 받음..
아이 픽업 후 집에 도착. 분유를 찾았는데 없음. 놀이방 원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놀이방에도 분유 없슴.
당시 본인에게 분유 살 돈이 없어 보리차 끓여 먹임.
약 새벽 한시쯤 작은 애 포데기로 업어 재우기 시도 중 처 술 냄새와 함께 귀가.
너무 심하지 않냐고 이야기 하면서 목소리 커짐. 큰 아이 깸. 목소리가 커지자 처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대꾸도 없이 문잠금... 얼굴보고 이야기 하고로 문열라고 소리침. 열지 않아서 소화기로 문 손잡이 내려쳤으나, 분말형 소화기 터짐. 분말을 치우고 있는데, 경찰이 옴.
현관문 열리자마자 바깥으로 튐...
이때부터 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거 같음.
+ 세번째 부부 싸움 ++++++++++++++++++++++++++
싸움의 윈인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음
아마도 이번에도 아이 문제 였던 걸로 생각 되어짐.
싸움 도중에 첫번째 싸움에 처가 했던말이 생각 남.
우리 엄마가 해 준 것만 부순다..
그래서, "그럼, 내가 산 건 부숴도 되지?" 하고, 내가 구매한 어항, 냉장고, 티비 다 박살 냄.
아마도 이 때부터 부부싸움 시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하게 된 거 같음
2.결혼중기. 2011 ~ 2014[육아] 본인이. 70 ~ 90프로 여전 함 육아를 위하여 휴직을 요청 하였으나, 커리어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 당함. 그려면, 내가 사업 접고 애를 볼테니, 당신이 돈 벌어 오라고 했으나, 거절 당함. 특히, 처의 지인인 처의 사수 에게 사주하여 휴직 적극 말리게하고, 집요한 설득 끝에 사수가 경리 이사로 전직한 회사에 5시 퇴근 조건으로 취업에 동의 하였으나, 9시 전, 후 퇴근은 여전 함. 당연히 아이들 케어는 제 몫 임.
아이를 낮에 돌보는게 불가능 하여 아내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로테이션 시키고자 함. 반대하였으나, 아이들은 학원 로테이션 후 저녁 늦게(약 7~8시) 귀가 시킴.
큰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걸 눈치 채고, 큰 아이와 이야기 해 본 결과, 학원 때문에 너무 지쳐있고, 부모 사랑에 너무 굶주린 것을 알게 되어, 집사람의 만류에도 본인이 일방적으로 학원 모두 퇴원 후 아이가 원하는 것 위주로 방과 후 수업진행.
하지만, 아이들도 상태가 이상하고, 본인도 상태가 이상해서 가족 모두 정신과 진료 받음. 정신과 판정. 아이들. ADHD증후군 초기 증상 발견, 본인. 홧병 우울증 처. 우울증 초기 처는 의사가 권고하는 약을 아이에게 투여하길 원하였으나, 본인은 정신과 약물은 아이에게 매우 좋지 아니하니, 우선은 처의 휴직은 권고하고, 본인도 아이에게 유대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설득 함.
처. 퇴직 후 아이 돌 봄 본인. 아이들과 자전거 여행. 농구, 축구, 직소퍼즐, 레고, 크레시오브 클래, 크래쉬 로얄 등 매주 돌 봄. 아이들 담임면담 제가 함. 4학년 둘째가 담임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함. 처는 그 여자하고 말하면 폭발 할 거 같다고 해서. 그러면, 내가 상담을 할 께.... 상담 후, 더 이상 둘째를 편향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고, 학교 생활 잘 적응 함.
[ 처가 및 친가]
처가. 왕래 업슴. 처 장인과 사이가 좋지않아
그러지 말라고 부모자식간에 그러면 안된다고
이야기 해 줌
장모님 가끔 생활이 힘들다고 금전 요청시
처 모르게 도와드림
장인이 특정한 직업 없이 브로커 생활을 함
좋은 땅이 나왔으니 사라고 함.
처음에 경제적 사정과 땅의 위치 등, 어려움이 있어
거절했지만, 처가 장인 장모의 집요한 설득?으로
빚내어 구매. 명의는 처
본가. 왕래 없슴
부부유대
여전히 늦은시각까지 오지 않아 걱정되어 전화해도
반응없슴. 주로 결혼 초반기 사수인 사람 만난다며,
늦기 일수. 사수는 여자인데 별거하는 사람임
(ㅇㅇ 이 아빠 내가 당신 처 만나는데, 나도 외롭고 한데,
나 다른 남자 만나도 이해 해줄기죠? 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짐.. 나는 어이 없음....
내 맘에 들진 않지만, 처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처형'이란.
호칭과 함께 잘 대하줬던게 착각이라 생각 됨, 아무래도
처가 이 처형이라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감정이 전이 된
걸로 생각하여, 만나지 않았음 했으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
왜 못 만나게하냐는 핀잔을 들음)
사람이 나가서 연락이 안되면 얼마나 걱정되는
줄 아냐고 제발 죽었는지 살았는지 좀 알게 해달라고
부탁해도 잘 안 됨.
걍 쌩깜... '전화기를 핸드백에 넣어놨네, 전화기를 신경쓰지
않았네 주변이 시끄러워 몰랐네'가 주요 답변 임
부부관계. 세차례 거부 당함. 그 뒤로 없슴.
본인 만나는 여자나 성매매 경험 없슴.
자위행위로 해결
이 생활 도저히 견디지 못 할거 같아서 이혼서류 작성 후
내밀었다가 화해 함.
본인.
2010년경 발생한 리먼사태로 사업에 큰. 타격을 입음
직원 . 2억대 횡령 후 자살 / 부도. 8억대
술을 혼자 마시기 시작. 처에게 너무 힘들다 괴롭다.
도움을 요청함(돈 만들어 오라는게 아니라, 나좀 따뜻하게
대해달라 요청) 무시 당함.
친하게 지내는 후배에게 연락 닿지 않는 부인에 대해 고민
이야기 하던 중. 형수는 그거 자체를 구속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이야기해서 그 뒤로는 신경 안쓰기로 함.
치질 수술 후, 입원중 병원에 들르지 않음.
생리대 착용법 알려 달라 했으나 무시 함.
처음 착용하다 보니, 엉덩이에 붙이는 실수를 하게 됨
뭔가 이상해서 누나에게 물어보고 나중에 혼자 킥키 댐..
처.
집에 있으니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직장 갖기를 원함
직장을 갖는 이유는 집에 기여하는 것과 자기 만족임을
이야기해주고 격려해 줌. 방과 후 교사로 근무
계속 전세(39평)로 거주하였으나, 이제 이사가 싫다며
자가 주택을 희망하는데 50평형을 선택.
우리 나이나 형편으로는 너무 벅차다 누차 만류하였으나,
처의 집요한 요청으로 모기지를 이용해서 구매.
자가로 이사할 경우 내 방 조그만하게 있으면. 그걸로 족
하다고 했으나...
결국, 전실의 일부가 내 공간의 전부임.. 솔찍히 엄청
서운했슴
주택 구매시 베란다 확장을 두고 옥신각신하다가 예산을
초과하여 확장.
경제.버는 족족 부인에게 줌.
우리도 미래에 대해서 설계를 해야하니 통장 오픈 요청
했으나, 나를 못 믿냐는 답을. 듣고, 너 믿지만, 그래도
세세한거 보다는 전반적인 걸 알고 싶다고. 이야기했지만,
무시당함
결국 도표 만들어서 아이들 처가 든 보험 금액만 적어달라
해도 무시...
3.결혼후기. 2015 ~ 2018
육아. 본인이 40프로 함.
잔소리 안하면 여전히....
냉장고 비어 있고, 밥솥은 일주에 두번 정도는 밥한지
72시간이 넘었다는 표시가 들어 옴.
큰 아이 사춘기에 많은 이야기 함.
큰 아이 주말 리그 선수인데 일 없으면 무조건
내가 케어 함. 집사람 한 차례도 안 나감.
아이 다쳤을 때도 손님 만나다가 내가 나감..
부부유착
여전히 공허한 메아리. 늦은시각 들어오지 않아 연락해도 반음
없음.
한 날 이렇게 나를 피말리게 할 거 같으면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과도를 줌. 이건 사는게 아니라 죽자는 건데 차라리 니 손에 죽고 싶다고 함.
결국 12시 이전까지 못온다면 서로 미리 연락하기로 함.
살아 있다는 거만 아는 걸로....
본인.
경기가 힘들지만 열심히 해서 전세지만 건물을 통째로
빌려 공장을 제대로 만듬.
처에게 공장 옮겼으니, 같이 가주면 안되냐고 응원해달라고
했으나, 두 달간 무반응...
가족에게 응원 받기 위해 외식을 핑계로 공장에 데려감.
..... 공장이 좀 낡았네 라는 답이 옴....
정신과 상담..
공황장애. 우울증. 홧병....진단 받음
처에게 이야기하고 도움요청. 무시당함.
별거를 하는게 어떤지 이야기함. 죽을 거 같다고.
숨이 턱턱 막힌다고. 집사람 나도 죽을 거 같으니 그러라고
함
처. 학원을 해야겠다 하여, 좋은 생각이다 격려하고 학원이름
로고 같이 고민하고, 대출 받아서 차려 줌.
학원에 행사 있을 때나, 수업 준비물 준비시 적극 도와 줌
경제.
통장 카드 계산해보니,
2015 년 부터 집에 정식으로 가져다 준게
세후 년봉 개념으로 약 칠천~팔천이고
본인이 회식이나 아이들 의복, 선수 장비, 장비등등 여행 경비 등등 합하면, 약 9 천 언저리 연봉으로 계산 됨
여전히 집안 통장 열람 거부 함.
결혼 생활 중기에 이야기한 내용데로 빈칸 채워달라 통사정.
여전히 무시. 본인이 보험사 전화해서 도표 완성
도표 보내면서 너무 많은 금액이니 조금 아끼자고 검토 부탁했으나, 식대와 외식대가 작게 책정 되었다고 답이 옴..
나도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부탁했으나.. 어떠한 형태로의 회신 없음.
처가.
장모의 금전요구 한 차례 도와 드렸으나, 두 번째는 회사 사정 말씀 드리고 거절.
장모 처에게 요청 했으나, 처가 속상했던지 울며불며 난리침.
오빠는 캐나다에 있어서 자기가 다 해야하는데, 미치겠다고...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고 달램
네번째 부부싸움
발단,
2월 6일 23시경 접대 후 귀가.
과음에 너무 피곤하여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물 한 잔만 달라고 함. 아무도... 아무도 물 한 잔 안줌.
너무 조용한 집 화장대에서 처가 크림 바르는 소리만 들림
'톡, 톡, 톡'
그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처에게 가서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 서운하다 했더니, 니가 떠다 먹음 되지 왜 나한테 그러냐...
말문이 막혀서 우이씨 소리와 함께 문을 화장대쪽으로 팍 밀침.
처왈 그래 다 때려부셔라! 너는 내가 이혼 해주길 바라잖아! 지금 꼬투리 잡으려고 하잖아. 니가 잘하는 것 처럼 다 부셔!
그래서 문짝 잡아 뜯고 화장대 주먹으로 쳐서 상하게 함
그후 처는 이불가지고 나가서 거실 소파 기거.
계속되는 휴전 상태
본인은 타지역 장기출장 (약 25일반)
처와 아이는 처의 사수, 사수 아들과 일본 여행.
여행경비중 항공 숙박은 본인이 부담함.
여행지에서 아이들이나 처에게서 단 한통의 문자나 카톡도 없음.
서운하다고 이야기하니, 큰 아들만 '할라고 했는데.. '라는 답장 옴.
별거(여건이 되질 않아 5월 경) 하겠다고 이야기 함. 집사람 동의.
4월 26일경
지인과 음주 후 귀가.
큰 아들과 이야기하던 중 버릇없는 행위에 훈계하다가 아이의 행위에 화가 돋아 손찌검 함. 마누라 큰 아이 방에 들어와 말리다가 나에게 손찌검 당함.
경찰에 신고 후 집 나감.
혼자 있는 집에서 에어컨. 거실 대리석. 티비 손괴.
중국출장 후 귀국하니 장모 와계심.
장모에게 그간 사정 다 이야기 함
딸과 이야기 하겠다고 나감.
이야기하고 들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 딸은 하나도 잘못없다 하심.
나는 모두 포기 함.
처 폭행으로 고소. 전치 2주
폭행으로 의한 이혼 소송 준비 중(등기 받아 봄)
6월 27일 가정법원에 소환 됨.
마지막 입니다.
.... ,.,..
본인 생각.
폭행
무조건 잘 못함. 생각할 가치도 없슴
모두 인정하고 법이 시키는데로 할 생각.
이혼
지쳐서 더 이상 못 하겠슴
가장 공포스러운게 처가 미워졌음
가끔 얼굴만 봐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옴.
양육권 친권 포기
사유. 장기출장 중 아이에게 만일 일이 생기면 출장시
케어하기 힘듬.
님들은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거 같습니까?
이혼은 정해진 거 같고, 친권 양육권 등..
쉽짱작성일
2018-05-1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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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어떤 딸의 구 새누리당 지지자 아빠에게 보낸 편지
아빠, 보세요.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드리기로 했습니다. 좀 길지만 끝까지 봐주셨음 해요. 아빠... 한동안 잠잠하던 아빠와 나 사이가 노무현 대통령으로 인해 다시금 말을 섞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빠도 지치셨을 테고, 저도 이제 지쳤습니다. 작년 말에도 제가 한나라당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개인적인 이유를 편지로 말씀드렸죠? 12월 마지막 날을 밤을 새면서... 울면서 그 편지를 썼었드랬죠... 오늘은 다른 이유를 추가로 말씀드리지요. 제 마지막 설득 시도입니다. 다 읽고도 한나라당을 좋아하시겠다면, 포기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 노사모 회원인 적도 없었고, 노무현 대통령 생전에 그가 만든 홈피나 그를 지지하는 홈피, 카페 등등 어느 곳에도 가본 적도 가입한 적도 없습니다. 절대 '노빠'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해서 나라 망신시켰다고 하셨죠? 수치스럽다고 하셨죠?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한 게 국가적 수치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국가적 수치입니다. 지금 해외 언론에서는, "그 정도로 죽다니, 대단하다. 우리나라라면 죽어야 할 사람들 엄청 많을 텐데... 한국은 깨끗한 나라인가보다"라고 합니다. 물론 그런 반응을 아빠가 보시는 신문에서는 제대로 보도 안 해줍니다. 명색이 선진국클럽 OECD에 가입한 '선진국'이면서도 부패 순위가 40위씩이나 되는 우리나라가 깨끗한 나라로 오해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정도에 자살했다고. 돈을 받은 건 받은 거니 잘못된 거 아니냐 하고 싶으시죠?네. 받았죠. 부인이, 자식이 받았죠. 남자가 비겁하게 부인 탓 하냐 하고 싶으시죠?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평범한 남편이, 가장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이거든요.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을 했던 정치인이기 때문에 자기를 믿어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한 겁니다. 집안 단속을 하지 못한 게 죄라면 죄겠죠. 그런데 말이죠... 그 돈을 받은 게 죄라고 쳐도, 그렇게 큰 죄입니까? 박연차는 한나라당 재정위원이었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는 얼마나 많이 뿌렸을까요?현직 부장검사도 박연차 돈을 받았는데 대가성이 없다고 검찰이 말했죠? 네, 맞습니다. 처벌의 기준은 '대가성 여부'입니다. 그게 대한민국 법입니다.퇴임을 목전에 둔 이빨 다 빠진 대통령에게 머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어떤 미.친.놈이 '뇌물'을 줄까요? 그리고 제가 예전부터 계속 말했듯, 노무현 대통령은 모든 것을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야 일이 추진되는 시스템을, 웬만한 건 장관이 책임지고 할 수 있는 체제로 바꾸어 놓았었습니다. 이걸 'empowerment'라고 합니다. 권한을 아래로 나누어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탄핵 사태 때도 국정이 마비되지는 않았었습니다. 보수 기득권층에서는 고건이 대행하니 잘 돌아갔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집권 초기부터 대통령이 제왕적으로 모든 걸 결정하던 체제를 바꾸어 놓았었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돌아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기업가가 사업 봐달라고 뇌물을 줍니까? 그게 목적이라면 국회의원한테 주면 주었지 대통령한테는 줄 실익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기업들이 노무현 싫어했지만, 그가 재임하던 시절만큼은 대통령한테 돈을 안 바쳐도 되어서 그건 좋았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법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돈은 받았지만 죄지은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검찰은 언론에 슬슬 흘리면서, 물적 증거가 없는데도 계속 주변을 옥죄어 들어가면서 압박한 것입니다. 가족에게만 수사의 칼날을 들이댄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지인들의 6개월 치 식당 영수증까지 다 가져갈 정도로 훑었지만 딱히 증거가 안 나왔다고 합니다. 지금 도청 의혹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빠도 검찰에 가보셨잖아요. 엄마도 아빠 땜에 검찰에 가보셨잖아요. 나 그때 고3이었잖아요. 그때 시험기간 이었잖아요. 가족까지 당하는 고통이 어떤 건지 정녕 모르세요? 그때 억울한 마음 안 드셨어요? 드셨잖아요. 지금까지도 억울하잖아요. 그런 아빠가 어찌 노무현 대통령한테 그리 가혹한 말씀을 하실 수가 있으세요. 노무현 불쌍하다는 엄마한테 뭐가 불쌍하냐고 하실 수가 있으세요... 자살한 지 탓이라고 하실 수가 있어요... 그리고 이건 저도 며칠 전 알게 된 사실인데, 대통령특별교부금... 대통령 재량으로 교부금으로 줄 수 있는.. 쉽게 말해 판공비죠.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국가사업이 필요한 행정기관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2003~4년엔 1조2천억씩이었는데, 그마저도 “특별교부금은 원칙 없이 정치적 선심사업에 사용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배분기준을 재검토해 자의적으로 사용될 여지가 없도록 개선하라”고 지시하고 7천억 정도로 줄였다고 해요. 그럼 재임기간 5년 동안 판공비 4조5천억 정도를 반납한 거죠. 그런 돈은 태풍 매미로 엄청난 피해가 났을 때 복구사업비로 사용되는 등 긴급한 용도에 긴요하게 쓰였다고 합니다. 올해 우리나라 중앙정부 1년 예산이 280조 정도예요. 대통령 1인이 판공비로 쓸 수 있는 돈이 1조 이상이라면 엄청난 수준입니다. 이런 사람이 박연차에게 10억인지 몇 억인지 모를 그 돈을 받고, 얼마짜린지 모르지만 '좋아 보이는' 시계를 받고 뭔놈의 선심성 대가를 주었을까요? (그나마 그것도 죽음 후에는, 노대통령 부부가 본 적도 없는 시계라고 돌려주라고 했다고 기사가 나오데요. 사람 죽인 후에. 노통이 "논두렁에 버리든지" 라고 한 걸 언론은 "논두렁에 버렸다"로 왜곡한 거데요) 네, 아빠가 한나라당은 좋아해도 이명박 대통령은 그닥 좋아서 찍은 건 아니라는 건 알아요. 박근혜 전 대표를 좋아하죠. 저도 박 전 대표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지도 않아요. 극도로 싫어하는 건 아니니 그를 찍을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해요. 제가 그분이 자질이 부족하다 생각하게 된 계기가 뭔지 아세요? 대구에 가서는 육영수 여사의 영정사진을 앞세우고 유세합니다.전라도에 가서는 아버지와 자신을 연결 짓지 말라고 말합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선거 유세 중에 분명히 나온 말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고 그건 본인이 벗어날 수가 없는 후광이자 굴레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 많은 공적을 이루어내셨죠.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게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해내신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희생한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1960년대 통틀어 평균 경제성장률이 9.6%였는데 임금상승률은 3%였어요. 이 땅의 많은 '공순이' '공돌이'들이 독가스를 들이마시면서, 먼지를 마시면서도,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하루 15시간씩 열심히 일했지요. 근데 그 열매는 누가 가져갔나요? 절대적 빈곤은 벗어났지만, 정작 사회를 병들게 하는 건 상대적 빈곤이랍니다. 한 가지 사례만 들게요. 상 대적 박탈감은 박정희 시대에 서서히 커지다가 전두환 시절을 거치면서 극에 달합니다. 1987년 6ㆍ10항쟁 이후 터져 나온 이러한 불만은 급격한 임금 상승 요구로 이어졌고, 우리나라 제조업들이 갑자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혜택을 받은 대기업들은 심한 타격을 받지 않았지만 대다수 조그마한 중소기업들은 제조업에서 손을 뗀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라의 돈들이 건설업과 유흥업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근데 한 나라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2차산업.. 제조업이 망해선 안 됩니다. 아무리 첨단IT 시대라 해도 여전히 제조업은 포기하면 안 되는 중요한 분야입니다. 근데 하물며 80년대 후반입니다. 물론 유흥도 필요하죠.. 근데 나라의 돈이 제조업을 떠나 그런 쪽으로 도는 것이 좋은 현상은 아니죠. 지금도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독자기술 별로 없는, 대기업의 하청업체 수준에 불과하죠. 그리고 갑자기 건설 붐이 일어나 많은 업자들이 당시에 기준치를 밑도는 두께의 철근과 물을 과도하게 탄 시멘트를 사용하게 됩니다.. 90년대 들어 갈라지고 무너지고 기울어진 많은 건축물들은 80년대 후반에 지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나비효과 아시죠? 상대적 박탈감은 이렇게 무서운 결과의 단초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신헌법 이후 독재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었잖아요. 이 얘길 하려면 아빠가 싫어하시는 '빨갱이'도 짚고 넘어가야겠군요. 당시 많은 이들이 빨갱이로 몰렸으니까요.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전쟁 전에 남로당 전력으로 군에서 쫓겨났었습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군을 지휘할 장교가 부족해지자 복귀된 것입니다. 이런 자신의 전력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은 '반공'을 국시로 하여 이전 정권보다 더욱 더 적극적으로 '빨갱이'를 색출하게 되죠. 저도 어릴 때 학교에서 '공산당이 싫어요' 하면서 입이 찢겨 죽어간 이승복 반공 영화를 1년에 한번씩 보고, 반공 독후감을 써서 상도 많이 탔고, 반공 표어 대회 하면 늘 1등상 타온 거 아시죠? 아빠가 맨날 칭찬했잖아요. 실제로 우리 동네에 기웃거리는 수상한 낯선 아저씨를 간첩으로 신고한 적도 있습니다. 온 나라가 '반공'이었고 저는 반공정신 투철한 어린이였죠. 그런데요.. 그 과정에서 정말 간첩을 잡기도 했겠지만 무고한 사람들도 분명히 희생되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에 토 달면 '빨갱이'였으니까요. 그럼 박근혜 전 대표는 아버지의 공만 업고 갈 것이 아니라, 과도 같이 지고 가야 합니다. 주홍글씨가 천형처럼 따라다녀야 한다는 게 아니라, 딱 한 번만 진심으로 머리 숙여, 희생하면서 열심히 일해준 분들에게는 여러분 덕분에 아버지도 빛났다 고맙다,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고통을 당한 분들께는 미안하다 사죄해주시면 됩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독하거나 악하지 않습니다. 용서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반드시 금전적 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한 번만 사과해주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박 전 대표를 만나본 분들은 거의 다 그 분을 칭찬합니다. 정치하면서 돈을 많이 쓰지도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면 그 분은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딱 한 번은 진심으로 사죄해주셔야 합니다. 왜 박 대표가 해야 하냐구요? 그 아버지는 갑작스런 암살로 그럴 기회조차 없었고, 그 따님이 아버지의 후광을 어떤 식으로든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과 중에 공만을 선택적으로 취해서는 역사의 매듭을 제대로 짓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아빠의 소원을 고려하여 그 분을 찍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분이 그렇지는 않은 것 같군요. 위에 경제성장 얘기가 나온 김에, 우리나라를 망쳤다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을 한번 짚어 볼까요?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몇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한나라당은 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죠? 언론을 통해 세뇌를 시켜서 정말 우리나라가 지난 10년 동안 많이 망한 줄 아셨죠? 노무현 대통령 시절 평균 경제성장률이 4.7%예요(4.8~5.0%라는 통계도 있음).우리가 7~8% 성장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낮은 수준이죠. 근데요, 그 정도면 지금의 중국이나 인도 수준이예요. 다시 말해, 성장 여력이 큰 경제성장 초창기에는 그 정도 성장이 가능해요. 우리의 60~70년대가 그랬던 것처럼요.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그런 고도성장이 어렵습니다. 선진국들은 2~3% 성장도 어려워요. 이미 많이 성장했다는 반증이죠. (클린턴 시절의 미국은 예외. 경제학자들도 '신경제: New Economy'라고 부를 정도로 예외적인 현상이었습니다. 70년대부터 투자에 들어간 IT 분야가 엄청나게 발전해서 생산성이 매우 높아진 덕분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집권2기에 나타난 것이고요)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던 당시는 김대중 정권 말기에 터진 카드 대란, 신용불량자 문제로 어지러울 때였고, 2000년 주식시장 활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투자했다가 2001년 대폭락하면서 그야말로 주식시장이 초토화된 상태였어요. 한마디로 거지 같은 상태의 경제를 건네받은 겁니다. 그 상황에서 저 정도 경제성장률 달성이라면 선방 수준이 아니라 잘 한 겁니다. 근데 언론에서는 맨날 불황이라고 난리를 쳤죠. 제가 당시에 늘 그랬죠. "엄마 아빠 개인적으로 5년 전이 살기 좋아요 지금이 살기 좋아요? 백화점엔 지금 사람이 늘 넘쳐요. 세일 기간 아니어도 넘쳐" 그럼 엄마 아빠는 늘 "야, 그래도 교회 가면 사람들이 다 노무현 욕하고 경제 안 좋다고 해. 시장 상인들도 죽겠대"라고 했죠. 제가 그랬죠. "그러는 엄마는 왜 재래시장 안 가고 이마트 가? 그럼 엄마 같은 사람들 땜에 상인들이 어려운 거 아냐?" 엄마는, 생각해보니 그렇네...라고 하셨고, 그 이후로 조금씩 제 말에 귀를 기울여주셨던 것 같아요. 네.. 상인들은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 땜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고, 그들을 살리려면 재래시장 자체의 경쟁력도 높여 주어야 하지만 그런 대형 마트나 백화점의 운영 시간 등을 규제해야 합니다. 근데 그럼 재벌들이 참 좋아하겠죠? 노무현 대통령한테 규제하지 말라고 청원했을까요? 아니죠. 만약 로비를 했다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한테 더 했겠죠. 재래시장 상인들이 죽겠는 건 노무현 대통령 탓이 아니었습니다. 이용 안 하는 우리 탓이죠. 경제에 돈이 안 돈 게 아니라 백화점과 대형 마트로 들어간 거죠. (온라인 쇼핑몰 이용으로 인한 부분은 IT 발전이라는 시대 변화 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강합니다. 안타깝지만, 사회의 산업구조 자체가 변하면 항상 사양업종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같은 오프라인 상으로 비교하자면 백화점과 대형 마트 이용 탓이 큰 거죠.) 주변인들이 다 경제 안 좋다고 노무현 욕한다... 정말 안 좋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신문에서 '본' 겁니다. 방송에서 '들은' 겁니다. 자기들이 겪은 것이라기보다는 '본' 거, '들은' 거예요. 초딩들까지도 노무현 대통령을 옆집 개처럼 불러대는 세상에서, 쉽게 씹을 수 있고, 씹어야 하는 대상으로 어느새 각인된 거예요. (물론 저도 노무현 대통령이 그냥 입을 닫아주었으면 할 때도 많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말을 하든 안 하든 어차피 까일 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나라당이 초래한 IMF 구제금융 사태로 경제성장률은 -7%대로 곤두박질치고, 하위 20% 계층의 재산은 5% 정도 감소하는데 상위 20% 계층의 재산은 15% 정도 증가합니다. 그만큼 빈부격차가 심화된 거죠. (참고로 말씀드리면 현재 우리나라 지니계수는 0.3 초반대 정도 됩니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우면 빈부격차가 작아지는 거고, 미국이 0.4에 근접해있고 브라질 같은 나라는 0.5가 넘으니 수치상으로는 우리나라가 그리 심한 나라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엔 허점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위 1% 부자들이 전국 땅의 51.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위 5%로 확대하면 83% 차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부동산에 대한 집착이 심합니다. 집도 전세나 월세보다는 내 집을 갖고 싶어 합니다. 부동산을 고려하면 지니계수는 0.78 정도로 상승합니다. 그렇다면 실제 빈부격차는, 드러난 통계치보다 심각한 상태라는 말입니다.) IMF는 돈을 꿔주면서 몇 가지 정책을 강요합니다. 대표적인 게 강력한 구조조정, 고금리 정책입니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됩니다. 당시 아빠가 잠시 몸담았던 회사도 부도났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그리고 고금리 정책... 이건 남의 돈으로 장사하는 부실 기업을 빨리 망하게 하는, 즉 빨리 확실히 구조조정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현금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었고,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았던 많은 서민들은 빚이 더욱 늘고 고금리 부담을 이기지 못해 손해만 보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속출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집이 있었으니 그걸 피해갔지만, 집 없는 사람들은 정말 그때 힘들었을 겁니다. 게다가 고환율로 물가가 엄청 뛰었죠? 우리나라는 원자재의 98% 정도를 수입하는 나라입니다.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이 잘 되는 측면도 있지만 수입 부담이 너무 커져서 수출효과를 상쇄하고 오히려 악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물가는 한 번 오르면 잡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는 물가상승률이 3%대였어요. 매우 잘한 겁니다. 만약 엄마 아빠 주변인들이 노무현 때문에 살기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면 그들은 저소득층에 속하는 이들이었겠군요. 그럼 더더욱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엄청난 모순이죠. 그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더 그지 같이 되지 않도록 해준 노무현 정부를 까다니요. ㅋㅋ 아니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부자들이나 중산층이든가요. 그래도 역시 한나라당을 까야지요. IMF 탓에 그리 된 거니. 노무현 정부 때 나라 빚이 사상 최대, 300조원으로 늘어났다는 보도 보고도 많이 욕하셨죠? "참여정부 경제운영 나라빚 300조···4년간 배로 늘었다" 이게 2007년 2월 23일자 각 신문들의 제목이네요. 노무현 정부 들어 4년간 150조원 늘어난 거 맞아요. 그 전 것까지 쌓여서 300조. 그런데 말이죠.. 반은 외환평형기금채권으로 마련해둔 거예요. 외환위기 대비하여 언제든 달러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 거고 사실상 그건 빚이 아닙니다. 나머지 반의 반은 IMF 사태 때 투입했던 공적자금을 국채로 전환한 거예요. 그 나머지는 IMF 이후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늘린 복지 관련 지출예요. 이래도 노무현 정부가 잘못해서 사상 최대 빚이 발생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되려, 모든 원인을 제공한 한나라당을 비판해야 합리적인 거죠. 아빠가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언론에서 늘 그렇게 말했는데... 하지만 명색이 행정학도인 딸의 말엔 귀 기울여 주셨으면 좋았을 것을요.. 지금 전 세계가 불황인데도 우리나라가 그나마 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지난 정권 때 상당히 탄탄하게 경제를 일구어 놓았다는 뜻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아빠 작년에 대장암 수술하셨잖아요. 민영보험이 하나도 없어서 병원비 어떻게 하나 걱정하셨잖아요.. 근데 아빠 퇴원하실 때 엄마가 했던 말 기억하세요? "병원비 얼마 나왔어?" 라는 제 물음에 엄마가 웃으시면서 "큰 병원에서 한 건데 생각보다 얼마 안 나왔어"라고 하셨죠. 그게 노무현 대통령이 해 놓은 거예요. 제가 그 때도 말씀드렸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빠는 노무현 대통령 적어도 씹으면 안 된다고. 암환자 개인 부담 비율을 대폭 낮춰 주었다고... 다시 말해 국가 부담을 대폭 높였다는 말예요. 물론 우리도 건강보험료 내고 있지만, 낸 돈에 비해 혜택 많이 받은 거 아시죠? 우리 집은 세금 환급받을 때도 많잖아요. 그러니 낸 돈 고대로 받은 건 아니라는 말이죠. 근데 그런 건강보험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민영화하려고 한 거 아시죠? 작년에 여러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해서 관철 못 시킨 거 아시죠? 다시 말해, 한나라당의 많은 정책들은 아빠와 우리를 더 못 살게 하는 정책이라는 말입니다. 미국은 맹장수술 하려면 3천만원이 든대요. 그 정도까진 안 가더라도 지금과 같은 돈으로는 어림없겠죠. 아빠가 몇 년 후면 받게 될 노인연금.. 8만원씩 나오는 것도 한나라당이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노통 정부 당시 유시민장관이 밀어붙여서 된 거였어요. 근데 노인들, 그걸 이명박 대통령이 주는 건줄 알고 고마워하는 사람들 많은 어이없는 현실.. 투표 꼬박꼬박 잘 하러 가는 노인들이 고마워할 수 있는 그런 건 노통 재임 중에 언론에서 보도도 안 했다는 거죠. 집값이 뛰어서 서민들이 살기 힘들었다는 비판도 있죠. 근데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 과잉 상태였고(돈이 많이 풀려 물가가 상승한다는 말) 그나마 그 상태에서 집값 상승률을 oecd회원국 중 가장 낮게 묶었어요. 안정시킬 만 하면 이명박 서울시장이 재건축해주겠다고 설레발쳐서 다시 강남 집값 오르고 그게 반복되면서 강북으로 확산... 온 동네가 재건축에 미쳐서 거지 발싸개 같은 넘들도 많이 당선됐죠. 즉, 그말은 집값이 더 오르기 바랬던 부자들(그러면서 세금은 내기 싫었던), 왜 내 집은 안 오르는 건지 불만 가진 사람들, 집값이 올라서 집을 못 사게 된 서민들 모두에게 욕을 먹으면서 지지율이 급전직하....-_-;; 하지만 그나마 그 정도라도 부동산 규제를 했기 때문에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 땜에 전 세계가 들썩일 때도 우리나라는 피해갔지요. 그거 아녔음 우리나라도 완전 집값 거품 터져서 쫄딱 망했을지도 몰라요. (일본이 15년간의 장기불황에 들어가던 1992년, 부동산 가격 거품이 꺼지면서 그렇게 된 거예요) 하나만 더 해드릴까요?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랑 협상해서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를 확보하는 외교 성공한 거, 말씀드렸었죠? 아빠는 콧방귀 뀌시고, 엄마는 제 얘기에 상당히 귀기울여주셨고 결국 지난 대선 때 제 선택을 지지해 주셨지만 아빠 성향을 아니까 아빠한텐 그냥 조용히 계셨죠. 당시 러시아에서는 어떻게 대한민국에 이렇게 당했냐고 언론이 난리가 났었는데 한국 언론은 잠잠했죠. 노무현 대통령이 잘 했다고 인정해주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OO이 2학기에 복학하면 등록금이 500만원 정도 된다죠? 물론 아빠가 유공자시니 성적만 좋다면 그 다음 학기는 공짜로 다닐 수 있겠지만 첫 학기엔 그렇지 않죠. 지난 노무현 정부 때 사립학교법 개정 했어야 합니다. 전에 그러셨죠? 기독교 재단들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서 학교 운영도 못 하게 하는 사립학교법을 왜 만드냐구요. 그건 오해십니다. 당시 사립학교법은 사립학교가 설립 이념도 펴지 못하도록 하려는 게 아니라 사립학교가 투명한 경영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립학교 이사장들, 5%도 안 되는 재단 전입금으로 사립학교를 제왕적으로 지배합니다. 각종 비리의 온상인 사립학교들 천지 빼까리로 깔렸습니다. 대학들만 해도 4조원이 넘는 돈이 적립금으로 쌓여있는데 학생들 등록금은 계속 올라갑니다. 원래 재단법인이라는 건, 출연자가 출연한 재산에 대해서는 출연자의 손을 떠나야 하는 겁니다. 근데 어디 현실이 그렇습니까? 노무현 정부가 사립학교법 개정하려고 하니까 한나라당이 반대했습니다. 결국 로스쿨법안과 빅딜을 했지요. 이명박 정부는 학자금 정부 대출 이자도 많이 올렸습니다. 대출받기도 어렵게 된 거죠. 이 지경인데도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서민 이하 사람들은 무지해서 그런다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죠? 북한에 쌀 퍼주기, 금강산 관광으로 돈 퍼주기 등등 북한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가 맘에 안 드시죠? 네. 그럴 겁니다. 더구나 아빠는 한국전쟁 때 남으로 내려오셨고,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하셨으니 공산당을 싫어하시는 건 당연하죠. 근데요, 그게 북한에 호의적이어서가 아니라면요? 북한 정권은요, 남한에서 북한에 강경한 정부가 들어서든, 온건한 정부가 들어서든 상관없이 지들이 핵실험을 하려면 하고 미사일 발사하려면 합니다. 어차피 북한은 우리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미국과 일본을 상대하거든요? 김대중 정부건, 노무현 정부건, 이명박 정부건, 상관없습니다. 지들이 필요할 땐 터뜨립니다. 북한 때문에 강경 보수 정권을 굳이 택해야 할 이유는 그닥 없다는 거죠. 오히려, 우리보다는 미국 정부가 어떠냐에 더 관련이 됩니다. 클린턴 때는 그닥 시끄럽지 않았는데 부시 때 엄청 시끄러웠죠.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 보수 정권 들어서면 우리도 보수 정권, 진보 정권이면 우리도 진보 정권 들어설 필요도 없어요) 아무튼, 그럼 우리가 지들 멋대로인 그런 놈들을 위해 왜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가!! 독일의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독일은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에 통일되었습니다. 저 96년에 독일에 갔었던 거 기억하시죠? 그 당시, 동독의 마지막 수상이었던 드 메지에르를 만나 통독과정과 그 후 진행상황을 들을 수 있었어요(최고 권력자인 서기장은 호네커였고, 이 사람은 수상). 통일 전 서독은 경제 순위 세계 3~4위 정도였고, 동독은 당연히 못 살았지만 그래도 공산권 국가 중에서는 나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통일 후 어떻게 되었죠? 통일한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은 그나마 다시 유럽의 중심국가로 올라서고 있지만 구동독 주민들과 구서독 주민들 간의 반목과 갈등은 엄청나게 심하고, 구동독 지역 실업률이 구서독 지역 실업률의 두 배 가까이 됩니다. 서로 미워하고 힘들어합니다. 독일은 서독 빌리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으로 인해 1960년대 후반부터 이미 동서독 교류가 시작되었고 정상 회담도 29회 정도 하고 통일이 되었습니다(28회던가? 암튼 그 정도). 베를린 장벽은 1989년 갑자기 무너졌지만 그래도 20년 이상 준비가 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달리 독일은 서로 싸워서 동서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 패전으로 인해 연합국에 의해 강제로 갈라진 것이었죠. 서로 교류도 많고 이해도 많이 된 상태였어요. 그런 독일도 통일 후 서로 너무 미워하게 됐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나빠진 경제 상황 때문입니다. 통일 후 동독의 노동자들이 서독으로 대거 넘어왔습니다. 동독 지역의 산업은 노동자가 없어서 공황상태가 되었고, 서독 지역에서는 싼 임금의 동독 출신 노동자 때문에 대량 실업이 발생합니다. 전체 통일비용 중 그들을 위한 실업급여로 들어간 것이 60%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동독 지역의 낙후된 산업 시설을 새로 짓고 경제를 재건하는 데에도 엄청난 돈이 들어갔습니다. 세금은 당연히 더 많이 낼 수밖에 없었고 구서독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구동독 거지들 때문에 희생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금도 구동독 지역 출신은 '2등국민'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서독은 당시 부자 나라였습니다. 우리와 북한의 경제력 차이는 어떻습니까? 북한이 정확한 통계를 공개하지 않아서 확실히는 모르지만 수십 배의 차이가 날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만약 갑자기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퇴직한 아버지 세대도 고통스러우시겠지만, 돈을 벌고 있는 저의 세대와, 제 다음 세대는 초인적인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독일이 통일 수습에 20년 걸렸다면 우리는 30년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 세대는 잘 살아보자, 열심히 하면 내 자식들은 잘 사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열심히 일했다면, 저와 제 뒷 세대는 어떨까요? 저 북한 거지들을 위해 내가 이렇게 희생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겠죠? 당연 통일 독일에서보다 더한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할까요? 기냥 망하는 겁니다. 지금 북한을 도와주자고 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라서 도와주자는 게 아닙니다. 물론, 개중에 진짜 빨갱이가 있을 수도 있죠. 그치만 아빠 딸도, 빨갱이 아니거든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도 않고, 부자들을 무조건 미워하지도 않습니다(다만,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천박한 부자를 경멸할 뿐. 부유함 자체를 미워하지 않고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저도 북한에 어느 정도 지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OC(사회간접자본) 시설도 어느 정도는 깔아 놔야 합니다. 갑자기 통일이 되어도 북한 주민들이 대대로 산 정든 고향을 등지고 남쪽으로 물밀듯이 내려오지는 않을 정도로는 살려 놓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지원품이 북한의 군수물자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일부 그럴 수 있어요. 제 동기가 통일부에서 근무합니다. 물자 지원하면서 북한에 가보면 주민들이 남한에서 준 걸 다 알고 고맙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통제해도 북한 주민들도 진실을 알아가고 있는 겁니다. 군수물자에 일부 쓰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지원을 중단하면 그들은 굶어 죽을 것이고, 살아남는다 해도 통일이 된 후에는 남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우리가 먹여 살려야 하는 '거지떼'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후 상황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건 인도적인 차원, 민족적인 차원을 넘어서, 경제적으로도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일입니다. 물론 장기적인 차원에서요. (금강산 관광 대가가 군비증강에 쓰인다는 비판은 어느 정도 수용한다 해도, 그럼 그건 김대중 대통령 탓이지 노무현 대통령을 미워할 근거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은 우리가 지원을 하든 안 하든 일본을 향해 미사일 실험 하고 싶음 하고, 핵실험 하고 싶음 합니다. 어차피 그들에게 우리는 '아웃 오브 안중'입니다.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려고 합니다. (솔직히 미국과 일본도 우리가 6자회담에 끼는 거 안 좋아합니다. 우리나 애닳아 하죠) 아, 그러고보니 또 생각나는 게 있네요. 노무현이 미국을 싫어해서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하려고 한다고 한때 많이 욕하셨죠? 그거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 아녜요. 미국은 우리나라에서 어차피 점차 군사를 줄이려고 하고 있었어요. 현대전은 군인 많이 투입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미국에서 버튼 하나 누르면 대륙간탄도미사일 얼마든지 발사할 수 있고, 여차하면 바로 옆에 있는 주일미군을 끌어올 수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미군을 이 정도 규모로 유지할 실익이 미국에 그닥 크지 않습니다. 요 몇 년 새 미국이 미ㆍ일동맹과 미ㆍ일ㆍ호주 동맹은 강화한 거 아세요? 일본과 호주는 미국의 안보정책에서 중요한 파트너고, 우리는 솔직히 미국 입장에서 그리 중요한 나라가 아녜요. 다만, 상징적인 의미, 그리고 우리와의 경제관계나 무기거래 관계 등 군사문제 이외의 문제들 때문에 완전 철수는 어렵겠죠. 줄이는 건 노무현이 반미여서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어차피 미국의 계획에 따라 되는 거였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노빠가 아니예요. 그런데 저는 노무현 대통령 죽음 이후로 너무나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 1달간 계속 악몽을 꿨지만... 서거 이후에는 더 잠도 안 옵니다. 인간적인 연민도 연민이고. 치졸한 이명박 대통령이나 그 졸개 검찰, 경찰, 국민의 눈을 가린 언론에 대한 분노도 분노지만... 더 큰 건 뭔지 아세요? 우리 사회에서, 든든한 배경을 가지지 않은 자가 순수하게 자신의 노력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에요.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63세.. 만 나이겠죠? 그럼 아빠랑 동갑이잖아요. 가난해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 나왔다잖아요. 돈 없어 대학 못 갔다잖아요. 그럼 아빠랑 나이도 같고, 가난해서 대학 못 간 것도 같잖아요. 할머니는 생전에, 아빠가 대학 붙었는데도 돈 없어 못 보낸 게 너무 미안하다고 두고두고 말씀하셨어요. 눈물을 훔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죽어라 싫어하는 대부분의 나이 비슷한 어른들도 대학 거의 안 나오셨을 거잖아요. 말이라도 좀 더 품위 있게, 좀 더 온건한 방식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런 사람의 생존 방식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죠. 어떻게 해도 무시하니까 투쟁할 밖에요. 주류 사회에서 대학도 안 나온 놈이라고 무시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을 대다수 어른들은 그를 무시하면 안 되는 거였죠. 오히려 그를 독려해야 하는 거였죠... 그런 사람이 성공해야 아빠의 자식인,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저 같은 사람도 출세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건데요.. 물론 천재적인 머리와 노력으로 가난을 딛고 출세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죠. 근데 그런 사람들은 만나보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비범한 인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빠 눈엔 저도 잘난 딸이겠지만, 저희 학교 입학생들 중 부모가 변호사, 의사, 교수, 기업가 등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인 비율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40% 가까이 된다는 말도 있더군요. 그럼 울 학교에서, 제 위아래 5년씩 경쟁자로만 잡아도 제 앞에 도대체 몇 명이 있는 겁니까? 더구나, 잘난 애들이 울 학교에만 있습니까? 저는 아빠를 미워하는 게 아닙니다. 안타까운 겁니다.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의 삶을 더욱 비통하게 만드는 집단을 지지하시는 건지... 우리나라 현재 상황에서 주류 사회에 진입하는 건 상당히 어려울뿐더러 진입해도 핵심부엔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조상이 친일한 대가로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빠는 제가 한나라당 욕하면, 너나 잘 하라고, 그 사람들이 너보다 못났냐고, 잘났으니 그런 일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하시는데... 그런 말 들으면 굉장히 화가 납니다. 몇몇 뛰어난 사람들이나 민주화 시위로 구속된 경력 등으로 진입한 사람들 제외하고, 그 사람들 대부분이 저보다 잘나서 국회의원 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걸려서 짤리긴 했지만 양정례 같은 어처구니없는 애도 해먹는걸요. 심하게 말하면, 그들 중 상당수는 좋은(=돈 많은) 부모를 만난 덕을 봤습니다. 본인이 똑똑하고 열심히 한 경우도 있겠지만 본인들이 잘났기 때문만이 아니란 말입니다. 친일의 대가로 일제시대에 잘 먹고 잘 살다가,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체해주고 다시 관직도 주어서 권력을 유지하게 되고, 그래서 자식들 미국 유학에 뭐에 공부도 많이 시키고, 높은 관직에도 올라가고, 다시 그들끼리 혼맥을 유지해서 권력을 공고히 하고.. 그런 거잖아요. 학계는 안 그런 줄 아세요? 울 총장도 악질 친일파 손자예요. 정계, 재계, 학계, 문화계 할 거 없이 다 포진해 있습니다. 저는 울 집에 돈 없다고 아빠를 비난하거나 무시해본 적 없습니다. 친일의 대가로, 비리를 서슴없이 저질러서 축재한 아버지라면 되려 부끄러울 겁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을 묻지마 지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솔직히 아빠를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치밀어 오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아빠가 그렇다는 사실에 정말 저는 비통한 심정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런 놈들한테 당했던 아빠가 그런다는 사실이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당 찍으라는 거 아닙니다. 제가 봐도 민주당에도 꼴통들 많습니다. 민노당 찍어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한나라당에 대한 묻지마 지지는 하지 말아달라는, 그래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고 따져달란 말입니다. 한나라당으로 나왔지만 합리적인 보수라면 그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런 인물은 뭐 거의 없더군요 ㅋㅋ (사회를 위해 당연히 건전 보수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이 나라 주류는 꼴통 보수죠. 건전 보수도 핵심부에 진입하기 상당히 어렵습니다). 도덕성을 제1의 조건으로 따져 주세요. 현재 아빠의 낮은 유공자 등급을 올려준다고 공언하신 그 분을 다음 대선에서 찍으시는 것까지는 뭐라 하지 않겠습니다. 그것까지 말릴 힘은 없어요. 하지만 제발, 국회의원 선거, 시의회 선거 그런 선거라도... 아빠가 던진 표가 사표가 될지언정 제발 합리적인 잣대로 평가하고 투표해주세요. 똑똑한 놈들은 많아요. 하지만 똑똑한 데다 비도덕적인 놈에게 권력을 주게 되면 이 나라는 망합니다. 조금 덜 똑똑하더라도 도덕적인 사람은 자기의 완벽하지 않음을 알아서 참모를 똑똑한 사람들 둡니다. 유비가 왜 제갈량에게 삼고초려 했겠습니까? 쥐뿔도 능력이라곤 없으면서 도덕성까지 없는 그들과 제발 이유 없이 한 배를 타지 말아 주세요. 그들이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 생활에 독이란 말입니다. 정치란 생각보다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친단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사회 분열과 갈등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그게 소위 '좌파들' 때문입니까? 아빠도 저를 좌파로 아시겠지만 저는 중도우파예요(저소득층에 대해선 좌파,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중도우파, 북한에 대해서도 중도우파 등등. 옛 열린우리당은 좌파가 절대 아닙니다. 그게 정책으로 따지면 중도우파였어요),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부끄러운 역사 앞에 사과하지 않고 그들만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불의한 일도 서슴지 않는 꼴통 보수들 때문이라고 봅니다. 가해자가 사죄하지 않는데 피해자가 합의해주는 거 보셨어요? 아빤 늘 저더러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라고, 대나무가 너무 곧으면 부러진다고 걱정하시지만 현재의 한나라당을 관대하게 보는 것이 균형 잡힌 시각은 아닙니다. 중용이란 무조건 중간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말하면, 비겁과 만용 사이의 용기, 나태와 탐욕 사이의 야망, 자기비하와 자만 사이의 자존, 아첨과 무뚝뚝함 사이의 친근함, 수줍음과 뻔뻔함 사이의 겸손, 허풍과 자기경시 사이의 진실함, 우유부단과 충동 사이의 자제가 중용입니다. 제가 싸우는 상대는 아빠랑, 택시기사분들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ㅋㅋ (특정 직업 언급해 좀 그렇지만.. 전부 그런 것도 아니지만 택시 탔을 때 노무현 비하하지 않는 기사를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적당한 부패가 있어야 사회에 돈이 도는데 노무현이 때문에 돈이 안 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_-; 부패 있는 나라치고 경제성장률 높은 나라 없습니다. 그거 다 무지해서 하는 말이라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제게 지금의 한나라당은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근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아빠가 그 런다는 사실 때문에 아빠랑 많이 싸운 겁니다. 맨날 저렇게 대가 세서 어떡하냐고 걱정하시지만, 밖에 나가면 저 용기를 내지 만용을 부리진 않아요. 야망이 있지 탐욕이 있지도 않구요. 자기비하가 좀 심해서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지, 사람들하고 정말 잘 지냅니다. 제가 일전에 남자친구 사귈 때도 왜케 싸우냐고 그러셨죠? 발단은 늘 한나라당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ㅎㅎ 그 정도로 저는 한나라당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한나라당이 바뀐다면 저도 언젠가는 그 당을 지지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게 과연 가능할까요? 한 번도 말한 적 없지만 제 꿈은 궁극적으로는 제갈량입니다. 유비보다는 제갈량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주군으로 모시고 싶은 사람이 없었지요. 지금은 한 분 마음에 담아 두었습니다. 근데 제가 아직 제갈량이 되기에는 많이 모자랍니다. 저는 5년 이후로 잡고 있습니다. 좌절할 수도 있겠죠.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정치인 주변에 모여들었다 타 죽는 불나방이 될 수도 있겠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처럼 평범한... 중산층도 안 되는 집에서(중산층이려면 적어도 10억 이상의 자산은 있어야 한다니^^;) 출세하는 사람은 나오기 힘들 거예요... 만약 아빠가 바라는 대로, 제가 권력의 중심권으로 진입하지 못해도 너무 뭐라고는 하지 않으셨음 좋겠어요. 인간 노무현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너무나 분명해졌으니까요. 이래도 아빠가 한나라당을 좋아하신다면, 저는 더 이상 설득할 힘이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포기하고, 저는 제 길을 그냥 가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 땜에 속 끓이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빠도 저를 그냥 포기해주세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요. 아빠 생각이 바뀌든, 우리가 서로를 포기하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로 싸우게 되지 않기를 정말 정말 바래요.... 그리고, 아빠가 한나라당 좋아하는 발언 할 때마다 아빠가 정말 미워지지만, 그래도 저는 아빠를 좋아한다는 사실, 알고 계시리라 믿어요. 어쩌니저쩌니 해도 저는 아빠를 많이 닮았거든요.... 기독교 자료실 게시판에 올라 있던 자료를 보다 감동적이어서 공유합니다.원글 출처 : http://pann.nate.com/b4147935 "한나라당 지지자 아빠를 설득한 딸의 편지"2009.06.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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