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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동춘동 살인사건 공판 본 사람의 후기
일시: 2017년 6월 15일 목요일 오전 10:30분?
장소: 인천지방법원
사건명: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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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인천이기도하고 또 출퇴근길에 늘 지나는 길이기도하고~
또한 한창 조카녀석이랑 나들이를 다닐때 단체버스 타던 곳 바로 근처라서
유난히도 이사건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계속 기사를 검색하다가 중*일보 기자님 기사를 접하고 오늘이 1심재판이 열리는 날인걸 알게되서
공판을 볼수 있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법정앞에 서고~~
기대(?)했던것과 달리 가해자,피해자쪽 가족은 제가 얼굴을 알수 없지만...
비슷한 분들도 안계셨던거 같아요. 한여자분이 계셨는데 긴가민가? 잘모르겠습니다.
기자분들하고 법무사쪽 관계자분들만 계셨던거 같구요...15~17명정도 였던거 같아요.
10시 30분 판사님이 입장하시고~~
후에 나온 피고(가해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드라마 대사가 생각났어요...
살인범들은 대게 호감형이라는~~~ 그 대사가~~
150cm정도 되는 작달만한키에 조막만한 얼굴에 유난히 흰듯한 얼굴
뿔테 안경낀 아이는 나이보다도 더 어려보였어요.
왜 피해 초등생 아이가 그여학생을 따라갔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였어요 ㅠㅠ
헌데 이 어린 여자아이는 죄책감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얼굴이였어요.
전에 포천 유진이 사건때 봤던 피고인들은 고개를 있는데로 조아리고 나오던데
이아이는 너무도 멀건 얼굴을 하고 눈을 똑바로 들고 들어오더라구요.
그리고 판사님이 묻는 주소지에 모른다고 답하는 저 맹랑함?!
판사님이 읇어주는 주소지에는 맞다고 대답하고
본적에는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냐는 질문에는 변호인이 아니요라고 답했어요.
그후내용은 생각나는대로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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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측 공소사실내용
1. 피고인은 고1때 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 준비하면 무직인 상태
평소 엽기적인 사건에 심취.
공범 박 모양(대입준비생)과 범행을 공모
인터넷으로 가혹범죄, 완전범죄등을 검색했다고함
공범 박 모양이 죽인 하얗고 예쁜 새끼손가락이 가지고 싶다고해서
피해자 살인후 새끼손가락,팔,허벅지살은 전달했다고 함
2. 계획적인 범죄
피고인이 사는 아파트는 1,2라인, 3,4라인, 5,6라인 각각 엘리베이터와 cctv가 설치되어있고
비상계단에는 cctv가 없는것을 사전에 파악
학생신분을 감추려고 엄마 모자와 선글라스 그리고 여행용 가방을 가지고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이동 5,6라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피해자를 유인후에 1,2라인으로 올라감.
이때 피고인이 공범 박**양에서 사냥나간다고 했다고 함...(이런 쳐죽일년들)
거주지인 15층에서 내리지 않고 13층에서 내려 비상계단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다고 함
피해자를 평소 기르던 고양이와 놀게 한후 아이가 고양이에 빠져 있는 틈을 타
테블릿pc 케이블선을 이용해 뒤에서 목을 졸랐다고 합니다.
여기서 제가 정말 기가 막혔던건...아이를 한번에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
공범인 박모양에서 전화인지 카톡인지로 사냥감이라고 표현을 했답니다.
피고: 잡았어. 쉽게 사냥감을 잡았다고~
공범: 살아있어?
피고: 여자애야
공범: 손가락 예뻐?
피고: 예쁘다고.
공범: 그럼 실행하라고~~?
그런후에 피고인이 아이를 마저 죽였다고 함...미친것들 어린것들이~ 못된것만 어디서 배워가지고 ㅠㅠ
아이를 살해후 주방에서 칼을 이용해서
상반신 2, 하반신 1 그리고 장기는 빼서 세숫대야에 담가둠
후에 잠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장기는 1,2호라인을 통해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리고
변장후에 옥상에 상반신,하반신을 올려뒀답니다.
(초동 수사때 피고인이 늦게 일어나 잠자던 옷 그대로 음식물 버린것밖에 없다고 말한것과?
일치해서 잠깐 혼돈이 있었던듯합니다. 그만큼 치밀하게 준비했음을 알수 있어요)
그리고 전철을 이용해서 홍대입구에서 공범을 만나서 그년이 원하는 새끼손가락,팔, 허벅지살을 건넸다네요.?
이것들이 정녕코 사람새끼들인지...
피고 핸펀은 약정통화시간 오버로 발신이 안되는 상태였고 오히려 배터리는 충분했다고 함.
공범하고 카톡, 다이렉트 메시지는 모두 삭제해서 현재 복원이 되는지 해당 기관에 요청한 상태고
공범 박모양 조사시에 시인했다고 검사가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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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측(변호인)
공소사실은 인정하나....
검사측에서 말하는 계획적인 범죄는 사실이 아니고
우발적인 범죄였다고 우기기 작전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나 뭐라나~~
피해 아이가 자기가 아끼던 고양이를 괴롭히던거 같아서
우발적으로 그런거지 계획적 범죄가 아니였고
심신미약상태를 계속 주장했습니다.
다른걸 주장하기도 변호인측도 답답했을듯합니다.
근데 엄마 모자,선글라스, 캐리어는 왜 들고 나가?
환청이 들려서 그랬다나? 어쨌다나?
평소 역할극에 심취해 있어서 그랬다나? 어쨌다나?
그리고 왜 다른 라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가?
국립정신감정원에서 심신미약상태가 아니였다고 나오니까 저걸로 밀어붙이려고 한듯~~
피고측에서 다음재판 증인으로 신청한 이**감정사는
살인을 할때는 심신미약이 아니였는데
살인후 사체유기때는 심신미약상태였다고 판정을 내렸다는데~
검사측에서 같은 장소,동일 시간대에 있었는데 상식적으로 말이되냐고? 물어보셨어요
정말 들으면서도 강하게 공감했어요.
증인4명을 변호인측에서 신청하셨는데
1명은 감정사 이**, 1년반동안 치료를 했다는 정신과 차**, 고1 담임 남**
그리고 공범 박** 이렇게 4명을 증인신청했고 다음재판때 볼수 있을듯 합니다.
이렇게 30분정도 소요된 첫공판을 보고 제가 느낀점은.
피고는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단한번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고
검사님이 이야기 할때는 검사 얼굴을
판사님이 이야기 할때는 판사 얼굴을
변호인이 이야기 할때는 변호사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라구요. 저는 그아이를 빤히 쳐다보있었구요.
다음 재판은 2017년 6월 29이 어떠냐는 판사님 물음에
피고 변호인측에서 시간을 일주일만 더달라고...
피해자측 만나서 사과도 하고 합의도 보고라고 말하다가
( 이때 판사님 실소하셨고 그건 나중 문제고라고 하시니)
고1때 담임 주소지 파악이 어려워서 그렇다나 어쨌다나.
판사님은 이번 사건은 결심까지 빨리 진행하려고 하신다고 하시면서
열흘후 공범 박모양 사건도 결심을 함께 진행하려고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재판은 2017년 7월 4일 오후 2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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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조선족 최악의 선상 반란, 페스카마호 사건
한국인 7명, 조선족 1명, 인도네시아인 3명 살해
한국인 7명, 조선족 7명, 인도네시아인 10명이 승선해 참치 잡으러 남태평양으로 떠난 페스카마호
조선족들은 처음 배를 탔기 때문에 일에 매우 서툴러,
선장을 비롯한 한국인들한테 많은 폭언을 받자, 단합해 지시 불이행을 일으켰다.
결국, 선장은 인근 항구로 가서 배에서 내리게 하겠다고 발언
조선족들은 한국 어선에 일하기 위해
빚을 내서 수수료를 내고 온 상태라, 돈을 꼭 벌어야 하는 상황,
한밤중에 모의해 한국인을 포함해 전원 죽이고 배를 팔아서 중국으로 갈 계획을 세움
항해에 필요한 1등 항해사는 우선 살해 대상에서 제외됐고 첫 대상은 선장이었다.
조선족 선원들은 한국 선원들이 잠든 틈을 타 선장부터 시작해 한 명씩 죽여나가기로 하고 일단 잠을 청했다.
2일 새벽 3시 경. 선장의 침실의 문을 열고 『선장님 타선박에서 호출이 왔습니다』고 말했다.
선장이 조타실로 들어가자,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재빨리 밖에서 조타실 문을 잠갔다.
조타실 내부. 조타실 안은 어두웠다.
선장이 들어서는 순간 숨어있던 조선족이 들고 있던 참치처리용 칼로 선장의 복부를 찔렀다.
서툰 동작이었지만 칼은 복부 깊숙이 박혔다. 선장이 맥을 못추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쓰러지는 선장의 목 뒤를 재차 찔렀다.
조타실 안에 있던 나머지 조선족들도 참치처리용 칼로 선장의 무릎과 복부를 잇따라 찔렀다.
선장이 죽으며 남긴 말은 『악』하는 외마디 비명뿐이었다.
피해자를 살해하고 즉시 그곳에서 피해자의 전신을 잡고 조타실 우측 출입문으로 끌고 나가
조타실 우현 방현대 밖 해상으로 던져서 사체를 유기했다.
새벽 3시30분. 두 번째 살해 대상자로 지목된 한국 선원은 갑판장 강인호씨였다.
선장 유인에서 살해 그리고 사체유기 후 2차 살해 준비까지 30여 분 정도 걸린 셈이다.
잠든 갑판장을, 『선장이 조타실에서 부른다』며 깨웠다.
강인호 갑판장이 『알았다』며 일어서며 조타실로 갔는데,
침실을 나온 강인호 갑판장은 내부 중앙통로를 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우측 통로를 통해 조타실로 향했다.
조타실 우측 출입문으로 들어오기 위해 문을 열었다.
문이 채 열리기 전에 어둠 속에서 갑판장의 머리를 향해 도끼 날이 날아왔다.
갑판장은 재빨리 문을 다시 닫았다. 도끼날이 미처 닫히지 못한 문틈에 끼었다.
갑판장은 몸으로 문이 더 이상 열리지 않도록 문을 밀면서 도끼의 날 부분을 손으로 잡았다.
조타실 안에 있던 조선족중 한명이 반대편으로 나가서 우측 통로로 가서
도끼날을 잡고 버티고 있는 강인호 갑판장의 뒤에서 칼을 찔렀다.
몸으로 출입문이 열리지 못하도록 버티면서 도끼 날을 잡고 온 신경을 조타실 안에 집중시키고 있던 갑판장은 뒤로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차례차례로 한국인 선원들 살해
안타까운 죽음.. 19살 실습생
맹장염 걸린 19세 실습 선원도 산 채로 바다에 던져
실습생인 최동호(당시 19세)군은 원양어선 실습을 위해 다른 어선인 동원212호에 승선했다가
맹장염 때문에 조선족 선원을 항구에 내려놓기 위해 사모아항으로 회항하는 페스카마호로 옮겨 탔다.
조선족 한명이 최동호군의 침실로 가서 『조타실에 주사를 맞으러 가자』고 깨운 다음
아파하던 19살 소년은 아무런 저항도 없고 말도 없이 번쩍 들어올려 바다로 던져졌다.
한국인과 친하게 일했던 조선족 1명과, 인도네시아 3명은 냉동창고에 가둬 얼려 죽여
중국內 조선족들은 한국 정부 등 관계자들에 지속적으로 범인들의 감형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이들은 한국 선장의 폭언과 폭행이 일으킨 비극임을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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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일본 호텔에서의 끔찍한 심령현상
이 경험담은,
지금으로부터 딱 8년전인 2001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솔직히 지금 네이트 톡에 판을 올리는 바로 전까지는
그때 일을 완전히 잊으려 했었다....ㅜㅜ
이유인 즉슨, 그 당시 너무 괴로웠고 지금도 가끔 악몽에 시달릴 정도였으니까...
(뭐 잊으려고 해도 가끔씩 혼자있을때 생각나곤 하지만..)
아무튼 당시 20살이었던 내가 일본으로 가게 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여름이 되고 다니던 학교가 방학이 되었다. 알바도 해 볼 생각에
어디 좋은 자리 없나 하고 알아보던 중, 아는 지인의 소개로 후쿠오카
쪽 호텔에서 한달만 일해줄 수 없냐는 헬프가 들어왔다..
"아니 무슨 오오사카도 아니고, 미친.. 후쿠오카여...ㅜㅜㅜ"
솔직히 쥰내 멀었지만 고심 끝에 가기로 결심했다. (본인은 동경 거주)
* 참고로 동경에서 후쿠오카까지의 거리는 서울가는 것보다 멉니다
젊을때니 여러 군데 돌아다녀봐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이런 저런 경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였다.
(사실 당시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머리도 식힐겸..)
아무튼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간단히 짐을 챙기고 목적지로 향하게
되었다. 무슨 혼자 여행가는 기분이 들어 약간 들떠있었던 내 자신에게
지금은 미안한 마음만 들 뿐....ㅜㅜ
후쿠오카에는 후쿠오카 시와 후쿠오카 현이 있는데,
일단은 후쿠오카 시에 도착하게 되었다. 내가 가야할 곳은 후쿠오카
근처에 있는 미야와카시(宮若市)라는 곳 이었는데,
내가 사는 동경과는 또 다른 느낌의 동네였다.
아무튼 그렇게 목적지로 향하고 일할 곳은 후쿠오카 중심지쪽이 아니라는
소개인 아저씨의 말에 솔직히 약간 풀이 죽었다. 그렇게 나는 후쿠오카에서
약속한 소개인(일본인 아저씨)과 역 쪽에서 만난 후 아저씨의 차를 타고
미야와카시에 있는 호텔로 향하게 되었다.
차를 타고 향하는 도중 아저씨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는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적음>
"일본에 오니 어때? 한국이랑 많이 다르지?"
"아뇨, 크게 다를건 없고 나름대로 괜찮네요.
비슷한 점도 있고, 일본 특유의 느낌도 있고..맘에 들어용^^"
"그래, 아저씨도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 말이다. 여긴 토쿄랑 다르게
너무 시골이라 너같이 젊은 애들은 많이 불편하겠지, 안그래?"
"아녜요 전 시골도 좋아해염"
"여기와서 관광지는 별로 안가봤지?"
"네, 토쿄외엔.."
"유명한데 있는데 한번 가볼래?"
* 물론 대화는 일본어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그냥 말그대로 단순히 유명한 관광지(자연 휴양림 같은 곳)에
데려가시려는 건줄 알았다. 속으로는 '아.. 귀찮은데..'라고 생각하며
나는 문제의 장소로 아저씨와 둘이서 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한 40분쯤 이동했을까..
왠 터널이 하나 나오더라.
이상하게 그 터널 부근에 왔을땐 우리 둘 다 고요한 정적이 새어나왔다.
기분도 약간 찝찝했고.. 그냥 피곤해서 그러려니..했다. 좀 졸립기도 하고
아무튼 빨리 어딘가에 내려 좀 쉬고 싶었다. 대충 그때 생각으론 그랬다.
터널을 나온 후, 아저씨의 얼굴을 보니 아저씨도 좀 피곤한 표정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말도 없이 우리는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생각보다 컸다.
그냥 이름없는 작은 호텔일거라 생각했는데, 꽤 깨끗하고 컸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 기모노입은 여자애들도 있었는데,
도시 여자와는 다른 묘하게 청순한 매력이 있었다. 피곤했던
찰나 같은 또래 여자아이들을 보고 피곤이 좀 가시는듯 하기도 했다.ㅋ
아무튼 도착 후, 앞으로 한달간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간단히 숙지받은 후
그 날 하루는 호텔 방에서 하루 묶기로 했다. 아니, 앞으로 한달간 묶을 방이었다.
(근데 하필이면 이딴 방을 받게 될 줄이야...ㅅㅂ... )
일단 그 날 하루는 짐을 풀고, 방에서 혼자 TV를 보다가 피곤에 쏠려
잠이 들어버렸다.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다............ㅜㅜ
갑자기 온몸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하더니 가위에 눌리기 시작하는 그 기분 아시려나..
근데 가위는 전에도 몇번 눌려봐서 별로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그 가위는 지금도 잊을 수 없더라..
갑자기 '기기기기...'와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소름이 돋더니...
낮인데 갑자기 방안이 새까맣게 변하더라..
휴.. 글을 쓰는 지금도 소름끼친다..ㅜㅜ .
그때 갑자기 아까 그 '기기기기...'소리가 템포가 빨라진달까..?
암튼 그런식으로..그 템포에 맞춰서 내가 누워있던 곳의 정면에 있던 거울만
어둠 속에서 점점 하얗게 보이던거라..... 뭔지 이해가 가시려나..?
템포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거울이 점점 빠르게 하얗게 변하는..
ㅜㅜㅜㅜㅜㅜㅜ
워메... 참고로 본인은 그 날 이후로 방안에 거울 들여놓기 싫어한다..
아.. 여기서 진짜 하일라이트...ㅜㅜ
갑자기 거울 속에서 새까만 사람이 한명 보이는거라..
짠! 하고 나타나는게 아니라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흰우유에 까만 잉크가 번지는 것처럼??????
* 이런 식으로..
본인은 진짜 그때 오줌 똥 다 지릴뻔했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고 하는데
닥치고 난 귀신이 킹왕짱으로 무섭단걸 그 때 처음으로 느꼈다..
근데 거울 속 그 분이
그냥 외모때문인지 느낌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자도 아니신거 같고
남자도 아니신거 같은... 여자이시기도 하고 남자이시기도 한 그런 느낌이었다...ㄷㄷ
더 웃긴건 거울이 꽤나 멀리 있는데도 그 거울속 사람의 얼굴이 마치
가까이에 있는것 같이 뚜렷히 보였다는 거다. 이것도 설명하기 애매한데
얼굴이 가까이 왔다는게 아니라 마치 내 시력이 갑자기 쥬낸 좋아져서
뚜렷하게 보이는 느낌? 아무튼 실생활에서는 절대 있을수 없는 감각이었는데
그 깜둥이 귀신 얼굴이 지짜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대략 표현은 좀 어려운데
기억나는대로 그려보자면..
대략 이런 식???? ㅜㅜㅜㅜㅜㅜㅜㅜ 눈이 무슨 화산 분화구같이 생겼는데
눈알이 있을 곳엔 눈까리가 없고 그냥 까맣게 파여 있는 느낌..???
아 진짜 막 기분 더럽게 생긴....===
정말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냥 그대로 저 세상으로 가는줄 알았다....
그때부터 얼굴이 계속 선명하게 보이면서 확대됐는데 입에는
점점 미소가 번져가는 듯이 보였다..
이렇게................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이빨이 진짜 그림대로 누랬는데 머랄까 일본식 전통 가면에 등장하는 하얀 얼굴 가면
이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진짜 죽을둥 살둥 발버둥치다 갑자기 전화벨에 마치 마술처럼 가위에서 확!
풀렸다.. 진짜 그때 전화를 매너모드 안해둔걸 너무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아직까지도 잘때는 꼭 전화를 매너모드 풀고 자는 습관이 생겼다...
아저씨에게서 전화였다.
방문 두드려도 대답이 없길래 전화를 걸었단다.
한 10분 정도 잔것 같은데 벌써 저녁 6시였다.
호텔 직원들은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제 시간에 맞춰 먹지 않으면
문을 닫아 먹을수 없으니 저녁먹고 자란다.
그래서 얼른 그 방을 나와 직원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군대식 짬이랑 비슷해서 배식되어지는 음식으로 식판에 직접
퍼서 먹는 식이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별로 맛있지는 않았던.....
아무튼 방금 있었던 기분 나쁜 기억때문에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이 일을 이야기 하고픈데 곁에 이야기 할 사람도 없고..
토쿄로 미친듯이 돌아가고 싶었다...........................
밥을 먹는둥 마는둥 식사를 마치고,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근데 그때 갑자기 팍! 하고 생각난것이,
"여기와서 관광지는 별로 안가봤지?"
"네, 토쿄외엔.."
"유명한데 있는데 한번 가볼래?"
라는 낮에 있었던 대화 내용이었다.
아까 낮에 유명 관광지에 데려간다던건 그냥 잊으신거냐고 물어보니
"ㅎㅎ 아까 갔잖아? "
"?? 어딜요?? 기억에 없는데;;"
"이누나키 터널이라고 안들어봤나?"
"이누나키 터널이요..???"
"그래 일본에선 꽤 유명한 심령 스폿트인데 모르나보구나"
"심령 스폿트여?? 아, 터널이었구나...
아저씨가 아무말도 안해주셔서 몰랐어요;;"
"너 터널 들어가기전부터 잠에 곯아 떨어졌잖니"
엥?
잤다니, 난 터널 입구부터 출구까지 주욱 깨어있었는데..
무표정인 아저씨 얼굴까지 봤는데 무슨 소리인지 나 자는걸 확인이나
하고 말하는건지..그냥 거짓말 하는건지... 그건 아직까지도 모르겠다..ㅡㅡ;
근데 가만있어보자....
아까 갔던곳이 유명 심령 스폿트였다면 아까 내가 가위 눌린건 다
그 터널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무튼 그 날은 무서워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방에 불이란 불은 다 켜고, TV까지 켜놓은 채 이불 뒤집어 쓰고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원래 본인이 겁이 많은 타입은 아닌데 그땐 이상하게 기분이 x같앴다)
아무튼 그렇게 일을 하며 날짜가 하루 이틀 지났다.
그 후로 가위는 눌리지 않았다. 그냥 그날은 먼길 오느라 피곤해서
가위에 눌린거겠지 하고 잊으려 하고 있었다. ...................
................
근데.................
근데........
.........
...............
ㅆㅂ...............
한 3주 쯤 됐나.....
그날따라 너무 피곤해서 뜨거운 물을 욕조에 받고 몸을 눕혔다...
조용한 음악 틀어두고 술 한병 사서 혼자 욕조에 들어가
한잔 하며 온천 기분을 대리만족하며 눈을 감았는데..
너무 피곤했는지 조금씩 잠이 들려는거다..
진짜 기분이 좋아서 얼굴만 쏙 내민채로 눈을 반쯤 감는데
갑자기 첫날 가위 눌린 느낌이 또...!
기기기기.........
아%$^%$^ㅛ&%^&%^&^*^** ㅆㅂ!!!!!!!!!!
진짜 그 얼굴을 또 보긴 싫었다..
갑자기 기기기기 소리가 들리면서 이번엔
듣고 있던 음악이 머랄까 점점 더 크게 들리는데
스피커가 크게 울려서 크게 들리는 느낌이 아니라
귀에 점점 확대되는 느낌????
근데 그냥 음악이 들리는거면 상관없는데
음악이 소리가 변하면서 알수없는 웅얼거림이 들리는거였다 ㅜㅜㅜㅜㅜㅜㅜㅜㅜ
무슨말을 하는건지 잘 들리진 않았지만 분명 일본어로 들렸는데
마치
"十一にかぶった & #12539; & #12539; & #12539; & #12539; & #12539;十一にかぶった & #12539; & #12539; & #12539; & #12539; & #12539;"
쥬우이치니 카붓타..... 쥬우이치니 카붓타........
그냥 발음대로 해석하자면...
11에 겹쳤다?? "11에 뒤집어 썼다??
카붓타는 겹치다와 뒤집어 쓴다는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뭔 소리를 하는건지는 아직도 알수가 없다..
근데 암튼 막 저런 개 의미도 알수없는 씹지랄소리를 내면서 ㅜㅜㅜ
점점 소리가 커져갔다... 뭘 11을 나더러 어쩌라고오요오오오 #$%#$^^ㅜㅜㅜ
그 소리가 들리면서 갑자기 첫날과는 다르게 기기기기 소리가
갑자기 뚝뚝 소리가 끊어지면서 템포가 느려지는거다.
그러더니 내가 그때 얼굴을 욕실 천장을 향한상태로 가위에 눌렸는데........
천장에서 그 거울속 씨밤바가 얼굴만 동동
떠있는거 아닌가!!!!
게다가 기기기 소리에 맞춰 각기처럼 각도가 바뀌어 갔다
ㅇ으르ㅏ아아아아#$%^^^$$#@!~^&ㅇㅇㅇㅇㅇㅇㅇ
소리는 못지르고 진짜 그땐 다 때려치고
집으로 가고싶단 생각뿐이었다 ㅜㅜㅜ
지금이야 이렇게 여유롭게 그림 부연설명에....
그냥 우는 형식의 이모티콘으로 재미나게 글을 쓰고 있지만
그땐 진짜 심각했다.........
나 진짜 이 글 언젠간 넷상에 써보겠다고 했는데
오늘 처음 써본다...
친구에게도 얘기한적 없다.. 너무 무서워서........
아무튼 그 상태로 또 다시 가위가 풀렸는데 이번엔 진짜
가만 있을수는 없어서 아저씨한테로 가서 저 방에 뭐 있는거 아니냐고
방 좀 바꿔달라고 부탁에 부탁을 했는데 아저씨는 다른방은 지금 성수기라
다 찼다고 줄수 있는 방이 없다고 했다. 방에 뭐 있는거 아니냐고 그것만
가르쳐달라고 했는데도 절대 얘기 안해주더라..
그냥 내가 피곤해서 그런거라고 ........
근데 진자 기분탓이 아니라 거긴 뭐가 있었다.
근데 진짜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귀신이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싫어하는건가 하고도 생각해봤다.. 나 일 열심히 했는데 ...ㅜㅜㅜ
아 진짜 방을 바꾸고 싶었지만 이미 날짜도 3주나 지나고
앞으로 1주일 조금만 더 하면 집에 가겠다 싶어서 그 날 이후로도
무서웠지만 그냥 닥치고 그 방을 썼다. 최대한 방에 있을때는
보지도 않지만 TV를 켜두고 방송은 최대한 밝은 느낌의
저녁 시간엔 꼬마애들 애니메이션(당시 아마 포켓 몬스터였나 그랬음;)
틀어두고 좀 저녁되면 버라이어티 쇼나 개그 프로를 틀어두곤 했다..
아무튼 그렇게 덜덜 떨며 그 의문의 귀신과의 만남은 욕실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약속대로 한달이 지나고 일당을 받은 다음 나는 준비됐단듯이 얼른 짐을 싸고
집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마지막에 나 집으로 간다고 수고했다고 아침에 직원들
끼리 모여 식사를 했는데, 처음 온날 봤던 기모노의 귀여운 소녀가 옆에 앉았던
것이다!! 그 아이를 보곤 괜시리 집에 가는게 안타까워 졌다..좀 더 친해졌으면
좋았건만..ㅜㅜ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이 내가 한국인이며 도시인 동경에서 왔다는 사실을 듣고
한국인인 내게 일본인들이 토쿄에 대해 물어보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
토쿄는 어때? 진짜 사람 많다며? 다들 멋쟁이지? 가보고 싶다
그런 순진한 모습을 보며 난 토쿄에 대해 별거 없다며 거드름까지 피웠다 .
근데 갑자기 오카미(마마)님께서 진짜 무슨 드라마나 만화에 나오는 캐릭같은 이미지
였는데 뭐랄까.. 차가울것 같으면서 사람을 대할때 자신을 아래에 두듯 하는 이미지?
사실 나한테 토쿄이야기물어보며 직원들이 하나하나 질문할때 그 오카미님만
내게 아무 관심없었다. 기모노 입은 차림으로 그냥 조용히 식사하시면서
우리쪽은 쳐다보지도 않은채,
" & #20869;地の子なんかに何そんな聞く事が多いんだ。みんな & #40665;ってお食べ。"
(도시애한테 무슨 관심이 그리 많은게야. 모두 조용하고 식사나 해라.)
괜시리 내가 얼굴이 다 붉어지더라..///////
다들 조용해졌다.. -_-;
에이~ 오늘부로 집에 가는데 뭐~~!!!
하고 그냥 얼른 밥먹고 집에 갈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또래 여자애들이 오더니
나더러 그 방에서 묶었냐고.. 묻는거다.
엇!!!
혹시 뭔가 알고 있냐고. 알고 있는거 있음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거기 예전에 이 곳 호텔 관리하는 야쿠자가 자기 애인이랑 같이
놀러왔는데 그 야쿠자가 여자를 죽이고 그 방에서 몸 다 분해해서 여행용
가방에 넣고 도망갔다고 한다. 거의 10년이 넘은 사건인데 그 후 그 방에
묶는 손님들이 항상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직원용 방으로 비워둔
방이라고 했다. 그 소릴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좌~~~~르르륵 돋는데
내가 본 그 귀신이 그럼 야쿠자의 애인이었던건지는 확실친 않지만
아무튼 그 방에 무슨 일이 있었단 사실은 확실해졌단 뜻이다.
그리고 그 방에 이 곳 직원들도 몇몇 묶었었는데, 아무일 없이 그냥 잘 지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 한명이 방에서 발작을 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냥 그 호텔을 그만뒀다고 한다.
아무튼 너무너무 무서워서 그 아이들에게 절대 그 방에 묶지 말라고
나 두번이나 봤다고 절대 묶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하고 호텔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후쿠오카시내로 향하는데 아저씨차를 타고 올때 지나왔던
그 이누나키 터널을 지나오는데 또 막 기분이 이상한거다.
그냥 막 답답한 기분?
기분탓인거 같기도 했고.. 암튼 그 당시 그 미야와카시에서의 기억이
너무나도 ㅈ같아서 지금도 미야와카시 다시 가라면 가기 싫을것 같다.
아참.
위에 두번이나 지나왔던 이누나키 터널....
뭐가 그리 유명한가 하고 토쿄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진짜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심령 스폿트였다........
이건 들은 이야기지만, 이누나키(犬鳴)터널에서는 상당수 살인사건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젊은 양아치 오토바이 폭주족들이 터널에서 사람을 산채로 가솔린에 태워
죽인 사건도 있었고(꽤 유명한 사건), 2000년에는 사체 유기 사건, 그외에도 다수의
교통사고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한다...(아저씬 왜 이딴델 데려간거야....ㅜㅜㅜㅜㅜ)
암튼 이 이누나키 터널은 현재 [구 이누나키 터널]은 여러가지 사건 사고로
정부에서 폐쇄시켜버리고 현재는 [신 이누나키 터널]로 사용되어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내가 지나갔던 터널도 신 이누나키 였음;)
구 이누나키 터널은 입구쪽이 아예 콘크리트 바위로 봉쇄된 상태이며,
안으로 들어가면 누군가의 이상한 낙서들로 가득차 있다(영상으로 본적 있음).
이 곳에서 밤에 울음소리나 비명소리를 들은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하며
심령 방송 취재진들도 이 곳을 대표적으로 자주 찾곤 한단다..
암튼 난 두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무서운 추억의 장소였다.
그 기억만 뺀다면 정말 사람들도 모두 좋고, 너무 즐거운 여름이었던 것 같다.
이후로도 나는 가끔식 저 의문의 귀신을 꿈속에서 만나곤 한다..ㅜㅜㅜㅜ
남자가 귀신 무서워 하면 안되는데...휴우....
아직까지도 꿈에 나타나는거보면 아직도 나한테 붙은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삶에 큰 지장은 없으니 그러려니 하며 살아가고 있다.
참, 한가지.
이누나키 터널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한국말로 들린다는 소문이 많다고 한다..
예전 일제시대때 강제로 잡혀온 한국인들이 당시 이누나키 터널에서
자살했다는 역사적인 기록도 있다고 한다..
라쿠우미작성일
2013-08-22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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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페스카마호 사건과 문재인..(펌)
11명 살해범 변호 문재인 "따뜻하게 품어줘야”
1996년 한국인, 인도네시아인, 같은 조선족까지 계획 세워 살해한 사건범인들 ‘무기징역’ 받고 수감 중…주범은 2007년 말 노무현의사면으로 ‘감형’
최종편집 2012.04.10 18:28:40
문재인 민통당 사상을 후보에 대한 각종 ‘악재’들이 뒤늦게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일 발생한 수원 토막살인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15년 전 조선족들이 저지른 ‘선상반란 사건’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당시 범인의 변호를 문재인 후보가 했기 때문이다.
페스카마 15호 선상반란 사건
1996년 6월 7일 부산 남항에서 온두라스 국적 294톤급 원양어선 ‘페스카마 15호(이하 페스카마호)’가 남태평양을 향해 출발했다. 배에는 선장 최기택 씨, 갑판장 강인호 씨, 기관사 박종승 씨, 조기장(기관실 책임자) 김창열 씨, 조리장 서장주 씨, 기관장 김신일 씨, 기관사 이인석 씨 등 한국인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10명이 타고 있었다.
당시 한국인 선원은 조리장과 기관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30대 초중반의 혈기왕성한 청년들이었다. 90년대는 한국 어선에 탈 선원이 크게 부족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태울 때였다. 선장 최 씨에게는 첫 출항이어서 의욕이 넘쳤다고 한다.
페스카마호는 한국을 출발한 지 1주일 만에 티니안 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조선족 선원 7명을 태웠다. 이등항해사 전재천 씨와 박군남, 최금호, 최일규, 이춘승, 백충범, 최만봉 씨 등이 그들이다.
이 배에 조선족이 타게 된 건 인도네시아 인들을 선원으로 채용한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여기다 한국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은 위험한 참치잡이 조업을 할 때나 항해 중에도 상당히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도 작용했다.
페스카마호는 남태평양에서 본격적인 조업을 하기 전에 마지막 휴식을 취한 뒤 7월 16일 출항했다. 목적지인 미국령 피닉스섬 인근에 다다른 페스카마호는 6월 27일 첫 조업을 시작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됐다. 조선족 선원들은 배를 타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족 선원들이 일을 서투르게 하자 선장 최 씨가 조선족 선원들을 불러 모으고, 그 중 이춘승 씨를 쇠파이프로 구타하려 했다. 이 씨는 최 씨가 휘두른 쇠파이프를 피하다 어깨에 한 대를 맞자 그대로 선장의 뺨을 친 뒤 갑판에 있던 참치 처리용 칼을 들고 대치했다.
이에 한국인 선원과 조선족 선원들은 서로 칼과 몽둥이, 도끼 등을 든 상태로 대치했다고 한다. 당시 조선족 선원들은 조업을 거부한 채 “육지에 내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주범으로 알려진 전재천 씨가 양 측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맡았고, 조선족 선원들은 폭행과 폭언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선장 최 씨가 사과하고 조선족 선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대치 상황은 끝났다.
하지만 한국인 선원들의 폭언은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생존자 이인석 씨도 “선원들의 생리, 작업 특성상 폭언은 있었지만, 폭력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 대치로 감정의 골이 생긴 한국인 선원과 조선족 선원 간의 갈등은 아물지 않았다. 90년대 소형 원양어선의 특성상 강도 높은 근로조건에 대해서도 조선족 선원들은 불만이 컸다고 한다. 이에 조선족 선원들은 매일 1~2명 씩 ‘몸이 아프다’며 조업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월급을 받는 조선족 선원, 인도네시아인 선원과 달리 한국인 선원들은 어획량에 따라 돈을 받기에 양측의 갈등은 점점 더 심해졌다고 한다.
결국 조선족 선원들 중 5명이 “배에서 내리겠다”고 요구했다. 한국인 선원들은 7월 30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들 모두 배에서 내릴 것을 명령했다.
이때 선장 최 씨가 조선족 선원들을 불러 하선을 위한 ‘징계 명령서’에 지장을 찍게 했는데, 그 내용은 ‘선상 반란 및 조업거부 등으로 하선한다. 사모아 항까지 가서 하선하는데 드는 비용은 조선족 선원들이 부담한다’고 돼 있었다고 한다.
이 내용을 본 조선족 선원들은 그렇지 않아도 한국 원양어선을 타기 위해 엄청난 거액을 지불한 상황인데 돈을 벌기는커녕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자 “다시 일을 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배는 이미 사모아 항을 향해 가고 있었다. 조선족 선원을 대신할 선원들도 사모아 항에 대기 중이었다.
이에 조선족 선원들은 한국인 선원들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수원토막살인사건’ 같은 잔혹 연쇄살인
조선족 선원들은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빚더미에 앉게 됐다며 신세한탄을 하다 모든 책임이 한국인 선원들 탓이라는 데로 모아졌다고 한다. 이들은 배가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기관사 이인석 씨를 제외한 모든 선원을 살해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어 조선족 선원들은 각자 숨겨놓았거나 갑판에 있던 흉기를 꺼내 들었다. 전 씨는 한국인 선원들이 모두 잠들기를 기다렸다 한 명씩 조타실로 불러 살해했다. 첫 대상은 선장 최 씨였다. 조타실에 대기하고 있던 3명의 조선족 선원들은 최 씨의 배, 목 뒤, 무릎 등을 번갈아가며 찔렀다. 조선족 선원들은 숨진 최 씨의 시신을 바다로 던졌다.
조선족 선원들은 이런 식으로 갑판장, 기관사, 항해사, 조기장 등 한국인 선원 6명을 살해했다. 그 중 기관사는 산 채로 상어들이 득시글거리는 태평양에 던져졌고, 떨어지면서 배에 매달린 조기장도 흉기로 손 등을 쳐서 바다에 빠뜨렸다.
이들은 살해 장면을 목격한 인도네시아인 선원을 살인에 가담시키기도 했다. 당시 19살이었던 실습생 최동호 씨의 경우 몸이 아파 누워 있었다. 조선족 선원들은 흉기로 인도네시아인 선원들을 협박해 최동호 씨를 산 채로 바다에 던졌다.
다음날 ‘선상반란’을 일으킨 조선족 선원들은 인도네시아 선원 3명과 같은 조선족 선원으로 조업에 참여하기로 한 최만봉 씨를 유인해 참치보관용 냉동창고에 가둔다. 하지만 급속냉동기가 가동되지 않아 이들은 살아 있었다. 조선족 선원들은 가둔 4명의 선원이 힘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이들 모두를 산 채로 바다에 내던졌다.
이렇게 11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선상반란’에 성공했다고 판단한 조선족 선원들은 처음에는 한국으로 밀항하려다 남태평양 인근에서 배를 팔고, 일본으로 밀항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6명이 탈 뗏목까지 만들었다. 이인석 씨와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조선족 선원들이 뗏목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결국 자신들도 그들 손에 죽을 것임을 짐작했다고 한다.
20여일 뒤 이인석 씨는 같은 편에 선 인도네시아인 선원들과 함께 조선족 선원들을 유인, 참치 창고에 가두는 데 성공한다. 다음 날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이들을 발견, ‘페스카마호 선상반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다
문재인 “운명처럼 변호를 맡았다”
한국 해경에 넘겨진 조선족 선원들은 재판에 넘겨졌다. 우리 사회는 무려 11명이나 살해하고 시신까지 바다에 버린 조선족 선원들에 대해 극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부산지법은 1996년 12월 24일 1심 판결에서 6명의 조선족 선원들에 대해 해상강도살인과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모두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조선족 선원들 측에서 항소, 항고를 계속해 사건 판결은 대법원까지 갔다. 대법원은 주범인 전 씨에게 사형을, 나머지 5명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이들을 변호한 사람은 부산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이자 민변 부산?경남 대표였던 문재인 변호사와 조선족 중국인 권덕원 변호사였다.
문재인 변호사는 2011년 11월 15일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족 동포들은 조국에서 도움을 받고자 하는데 우리는 이들에 대해 은연중에 멸시나 깔보는 심리가 있다. ‘페스카마15호’ 사건 가해자들도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하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밝혔다.
문재인 변호사는 이 인터뷰에서 “법정에서 사형이 확정됐지만 우리나라가 10년 넘게 사형집행을 안 해 실질적으로 사형 폐지국이고 전 씨가 2008년 특별감형으로 무기징역을 살게 돼 결과적으로 변론이 결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변호사는 인터뷰를 통해 “페스카마15호 사건은 수사기관의 발표처럼 조선족 선원들이 치밀하게 모의한 것이 아니고 우발적 부분이 있었다. 이때 조선족 선원들이 어로 경험이 없어 일이 서툴렀고 당시 일반화돼 있던 선상 폭력은 ‘평등주의’가 강한 중국 사회주의 문화와 달라 멸시와 모욕으로 받아들이면서 사건이 우발적으로 발생했다”고 변론했다고 한다.
문재인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에도 조선족 선원들을 돕는 데 앞장섰다고 한다.
문재인 변호사는 “죄는 무겁지만 사정이 딱하고 그들을 도와줄 사람이나 가족도 없었기 때문에 부산의 인권단체들이 나섰다. 영치금도 조금씩 넣어주고 중국에 있는 가족을 초청해 교도소에서 만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조선족 중국인들 “한국의 부당한 처우 때문”이라며 최근까지 감형 요구
그렇다면 당시 중국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수원 토막살인사건’을 버지니아텍에서 총기난사를 한 ‘조승희 사건’에 비유하는 사람들처럼 ‘반성’했을까. 실은 정반대였다.
당시 조선족 사회는 조선족 선원들이 제대로 된 변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높았다고 한다. 문재인 변호사가 범인들의 변호를 맡은 것도 한국에서 활동하던 조선족 사회의 부탁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부산변호사회 인권위원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의 부산?경남 대표를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문재인 변호사는 이후에도 조선족들에 대해 ‘동정적인 시각’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족 사회는 최근까지도 수감된 조선족 선원의 감형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우리 정부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부산지역의 ‘인권단체’들까지 나서면서 15년이 지난 지금에는 ‘살인범’들도 살해당한 피해자와 함께 ‘잘못된 어로문화 때문에 희생된 피해자’라는 식으로 왜곡된 상태다.
조선족 중국인들의 ‘요구’는 갈수록 심해졌다. 특히 문재인 변호사와 ‘코드’가 일치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대놓고 “한국인과 평등하게 대우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故노 대통령은 2003년 11월 29일 서울 구로구 조선족 교회를 방문, 한국 국적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던 조선족들을 만나 20여 분 동안 면담을 갖고 ‘격려문’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 노무현 정권은 조선족 중국인들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폈다. 2007년부터는 ‘동포 방문취업제’를 실시해 조선족 중국인들이 한국에 마음 놓고 들어와 살 수 있도록 했다.
‘페스카마호’ 살인범들에게도 ‘은사’가 있었다. 2007년 12월 31일 정권 말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전재천 씨는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았다.
“‘페스카마15호’ 사건 가해자들도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하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문재인 변호사의 말은 '측은지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피해자 가족들과 일반 시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다.
노마74작성일
2012-09-24추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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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LA폭동
LA폭동의 시발점이 된 로드니 킹 과 약탈 당하는 한인 상점
LA폭동은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일주일간 로스앤젤레스 일대가 무법천지가 되어서 약탈과 살인,폭력이 난무한 흑인 폭동 이었다. PCP라는 마약을 복용한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고속도로에서 경찰의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자신의 집인 사우스캐롤라인 까지 추격전을 벌였고 집앞에서 경찰들은 로드니 킹을 검거 했고 검거과정에서 백인 경찰들이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현장이 촬영 되면서 촬영본을 입수한 방송사에서 인종차별을 내세우면서 TV로 공개하면서 폭력을 행사한 경찰들이 피소된 사건이다. 하지만 1992년 4월 29일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4명의 백인경찰관이 무죄 판결을 받자, 인종차별에 분노를 터트린 흑인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폭력, 방화, 약탈, 살인을 자행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메이져 방송사들은 LA흑인폭동이 일어나자 91년도 한국인 슈퍼마켓 정당방위 사건인 '두순자'씨 사건을 방송하면서 흑백갈등인 아닌 한인과 흑인간의 분쟁으로 몰아가기 시작을 했다. 분명 로드니 킹 사건은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사건 이었는데 미국의 메이져 방송사들은 '두순자'씨 사건이 LA폭동이 일어난것 처럼 계속적으로 내보내면서 흑인들은 한국인 상점들만을 골라서 폭력, 방화, 약탈, 살인을 자행하였다. LA 흑인 거주지 사우스 센트럴 지역을 포함해 LA에서 피해를 본 업소가 1만여개였으며 이중 2천800개가 한인업소였다.
한인들은 더 이상 흑인 폭도들에게 이민1세대,2세대인 자신들의 전재산을 날리고 싶지 않았다. 한인들은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그리고 한국 유학생들 그리고 인근 지역 그리고 원거리에 살고 있는 해병전우회 한인들은 12~24시간 운전을 하여 중무장하고 코리아 타운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슬픔도 있었다. 코리아 타운이 폭도의 공격을 받았던 둘째날(4월30일) 밤 한 한인상점을 지키기 위하여 중무장하고 한인타운으로 가던 한인학생이 약탈꾼으로 오인돼 코리아타운을 지키고 있던 방어대의 총을 맞고 숨진 이재승(당시 19세)군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기도 했다."우리의 재산은 우리가 지킨다. 미국 경찰도 그리고 미국 방송사는 더더욱 믿을수 없다"
한인들은 자신들의 모든 재산이 잿더미로 변하는 모습 그리고 약탈 당하여 텅텅빈 매장을 보면서도 아직 까지 약탈을 당하지 않은 한인가게들을 구하기 위하여 중무장하고 코리아타운으로 모여 방어대를 만들어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한인 해병전우회는 한인들에 대해서 총기사용에 대하여 집중 훈련 시켰고 옥상에는 모래자루를 쌓아서 진지를 구축하여 저격병들을 배치하였고 한인 코리아 타운 각 매장 앞에도 모래자루를 쌓아서 진지를 구축하고 바리게이트를 설치하고 폭도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한인 코리아타운에는 어느덧 해병전우회,특전사전우회,코리아타운 매장주, 그리고 유학생들 그리고 한인1세대인 할아버지들 까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모여들기 시작을 했고 이들은 해병전우회,특전사전우회들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을 했고 한인라디오방송 그리고 무전기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차량을 개조하여 흑인폭도들이 약탈을 하려고 하면 즉시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흑인폭도들에 대하여 대응사격을 하면서 한인상점들을 구하기 시작했다.그리고 할머니,아주머니들은 총탄이 날라다니는 과정에서도 방어대들의 식사를 위하여 음식 광주리를 머리에 올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김밥과 주먹밥 이었지만 할머니,아줌머니들에게는 총탄이 무섭지 않았다. 한인 매장은 그들의 모든것이었고 그것이 약탈과 방화에 사라지는것은 죽음 보다 싫었다.그리고 이민1세대인 할아버지들 에게도 흑인폭도들의 총탄은 무섭지 않았다.할아버지 그들에게는 한인매장 그것이 전부였다.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 같은 상황은 내 재산을 지키야 하기에 두려움이 없었다.
LA 폭동당시 코리아타운내 옥상의 중무장 방송 사진
LA 폭동이 끝난후 경찰들이 무기회수 과정에서 비비탄용으로 확인LA폭동 3일째 미국 메이져 방송사들은 한인 코리아타운의 총격전을 집중 보도하면서 한인상가의 지붕에 설치된 M3자동화기,머신건들을 집중보도했다.메이져방송사들의 집중보도를 통해 한인코리아 타운에 잘못 들어 갔다가는 죽을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인타운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LA폭동 당시 가장 중추적 역활을 했던 LA해병전우회는 가장 존경받을만한 해병전우회 라고 할수 있다.흑인폭동으로 한인 코리아타운이 미국경찰 그리고 대사관의 아무런 도움을 받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상연락망을 통해 스스로 총탄이 날라다니는 현장에 한인들을 돕기 위하여 12~24시간씩 자동차를 몰고 자발적으로 모인 그들이었다.
LA해병대 전우회는 전세계 해병대 전우회중 가장 존경받는 전우회물론 LA특전사전우회 그리고 유학생들 또한 중무장하고 생계를 포기하고 학업을 포기하고 한인들을 돕기위해 모인사람들이다. 분명 그들에게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고 동포들을 위하여 목숨도 아까워 하지않은 한국인이다.다시 한번 지면을 통해 LA해병대전우회,LA특전사전우회,유학생들, 한국인1~3세대의 한국인 동포를 위하여 목숨을 던진 모든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그리고 한인상가를 위하여 중무장하고 한인매장을 지키려다가 숨을 거둔 이재승군의 명복을 빈다. LA코리아타운은 LA폭동이후 흑인들과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한국문화를 알리고 서로간에 돕고 살아가는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증언]
김창준 전 미 연방 하원의원이 미국 LA 폭동의 당시 해병대의 활약상에 대해 밝혔다.김창준은 4월 22일 방송된 SBS '배기완 최영아 조형기의 좋은아침'(이하, 좋은아침)에서 지난 1992년 시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일어난 LA 폭동에 대해 털어놨다. LA 폭동은 1992년 4월 29일 시작돼 5월 4일까지 이어졌으며 흑인 청년들 상당수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약탈, 방화, 살인 등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의 90%가 파괴됐다.김창준은 "당시 시장으로 있을 때 경찰은 아웃소싱으로 하청을 줬다"며 "경찰서장은 1년씩 계약을 맺고 문제가 있으며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김창준은 "경찰서장에게 폭동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현장에 도착했다"며 "한국사람들이 대한민국 해병대 모자를 쓰고 공기총을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고 당시 현장 상황을 떠올렸다.김창준은 "그 사람들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흑인들이 한국상점들을 털어간다'고 했다. 당시 LA 경찰은 백인들이 거주하는 타운에 있었다"며 "한인타운이 흑인과 백인을 갈라놓는 가운에 있어 샌드위치 상황으로 피해가 컸다"고 언급했다.김창준은 해병대 출신의 한인들의 활약에 대해 "당시 감격했다. 자신의 동네를 지키겠다고 해병대 모자를 쓰고 다녔다"며 "미국 시장이었지만 한인들의 활약이 자랑스러웠다. 추후에 그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김창준은 한인타운이 LA폭동으로 계속 뉴스에 나오는 것에 대해 "앞으로 정치 활동에 대해 걱정했다"면서 "오히려 한인타운을 지키려는 한국 사람들이 활약이 도움이 됐다. 당시 LA폭동에 관련된 질문의 답변으로 '우리도 한국사람처럼 우리 타운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오히려 몇 표 더 얻을 수 있었다"고 위기가 기회로 바뀐 순간에 대해 회상했다.
면죄자작성일
2012-09-16추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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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후쿠오카 미용사 토막 살인사건
1994년 3월 3일
큐슈 구마모토현 도로변의 타마나 주차장 쓰레기 처리소에
뭔가 수상한 검은 비닐 봉투가 버려진
것을 환경 미화원이 발견했다. 내용물은 사람의
왼팔.
같은 날 후쿠오카현의 야마카와 주차장에서는
동일 인물의 것으로 보이는 오른팔이 발견되었다.그리고 다음날인 4일,
야마카와 주차장에서 회수한 쓰레기중
광고지에 싸여진 왼손목이 발견되었고,구마모토역의 구내 사물함에서복부가 도려내진 가슴과
허리가 발견되었다.그리고 14일, 구마모토현 아소마치의 별장 근처에서 왼다리가
발견되는데...,후쿠오카ㆍ구마모토의 공동수사 결과 피해자는
후쿠오카시 츄오구 텐진쵸의 미용사 이와사키 마유미(당시 30세)로
판명되었다.수사 본부는 일단 4일에 발견된 왼손목을 싸고 있던
광고지에
초점을 맞추고 조사하여 이 광고지의 발행 부수가 불과 1200부이며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 주변에만 배포되었다는 것을
밝혀냈다.이 지역을 철저하게 탐문수사하자 피해자 마유미와 같은 미용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에다 후미코(당시 38세)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후미코는
마유미가 근무하고 있던 미용실의 경리 담당이었다.후미코는
3월 2일부터 4일까지 후쿠오카시에서 렌트카를 빌려
큐슈 도로를 주행하던 모습이 CCTV에 녹화되었고
수거된 통행권에서 후미코의 지문이 발견되어 3월 15일 사체유기 용의자로 체포되었다.처음에 후미코는 계속해서 범행을 부인했지만
후미코의 핸드백에서 마유미의 수첩, 시계가 나오자 수사본부는 이 점을 집중 추구하였다.결국 3월 28일, 후미코는 「마유미의 살해를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혼자서 옮기기 위해서 사체를 절단」한 것을
자백했다.4월 5일, 후미코는 살인 용의로
재체포되었다.후미코는 1978년에 결혼, 1989년에는 미용실 경리 담당으로 근무하다가
이 미용실를 자주 이용하던 세무사 A씨와 친해져 불륜 관계를 유지했다.피해자
마유미는 1990년에 같은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미인이면서도 성격이 싹싹해 손님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명해졌다.후미코는
아름다운 마유미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A씨와 마유미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근거없이 일방적으로 의심을 하게
된다.심부름 센터에 뒷조사 의뢰를 했지만 A씨와 마유미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하지만 의혹과 질투심은 점점 더 자라나서 마유미를 죽이려는 생각까지
발전했다.1994년 2월 27일 오전 11시 마유미는 다니던 미용실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기 위해 후미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하지만 사소한 시비가 이윽고 거친 말다툼이 되었고 결국 후미코는 식칼로 마유미를 살해했다.사체의 처리가 곤란해진 후미코는
톱과 식칼로 시체를 토막내고 렌트카를 빌려 큐슈의 주차장, 별장등에
유기했다.후미코는 범행 후 『다음은 네 차례다』라고 쓰인 협박장을
만들어
그것을 A에게 보이고 자신도 표적이 된 것을 가장하는 등 용의주도한 모습을 보였다.1999년 11년 9월 3일, 최고재판소는
후미코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6년』을 확정
판결했다.그러나 이 사건에는 세간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공범'의 존재이다.공범의 존재가 덮여버린 첫번째 이유는
범인인 후미코가 체포되자마자 이 공범이 자살해버렸기 때문이고 두번째 이유는 이 공범의 아버지가 후쿠오카에서
아주 유명한 S외과 병원의 원장으로서 조상대대로 이 지역의 정치와 경제에 크게 영향을
끼쳐온 집안이었기 때문이다.사건은 이미 종결되었고, 기왕에 죽은 사람이니 더
들춰봤자 뭘 하겠냐 이런식.
공범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부친에게서
S외과 병원을 이어받고 원장으로 취임하여 슬하에 첫째 아들(장남), 둘째 딸(장녀), 셋째 아들(차남) 이렇게 셋을
두었다.어려서부터 부친에게서 의술을 배운 장남과 차남은 의사가 되어
S외과 병원으로 들어가 가업을 계승하였고 장녀는 교사가 되었다.하지만
차남은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 심리적인 불안 때문에 병원을 그만두고
근처에서 화원을 열었다.
흔히 화원이라고 하면 꽃, 꽃이라고 하면 장미, 장미라고 하면
남성 동성애자를 떠올리는데 이 차남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차남은 평소
자주 다니던 미용실의 남자 점장과 사이가 가까워지다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에다
후미코는 같은 미용실에서 일하던 미용사 이와사키 마유미(女)와 연인 관계였는데
후미코와 차남은 같은 성적소수자라는 점 때문에
쉽게 친해져서 속마음을 털어놓는 친구로 지냈다.
어느날 후미코는 연인인 마유미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어 크게 화를 낸다.상대는 미용실의
점장이며 차남의 연인인 바로 그 남자.결국 후미코는 마유미와 언쟁을 벌이다 식칼로
마유미를 살해하게 된다.범행 장소는 차남의 아파트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 때문에 차남과 후미코가 사전에 공모를 하여 살해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논란이 많다.어쨌든 차남과 후미코가 함께 마유미의 사체를 절단하고 각지에 유기한 것은 확실한 사실로
보인다.그리고 앞에서는 복부가 도려내어졌다고 완곡하게 표현하였지만
실제로는 임신한 마유미에 대한 후미코의 분노 때문에 자궁이 도려내어지고
성기부위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경찰이 후미코를 체포하자 차남은 곧바로 미국으로 도주하였다가
그곳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아버지는 이 일로 크게 충격을 받았으나 곧 냉정을 되찾고
친분이 있는 지역유지, 언론관계자, 국회의원들에게 로비를 벌여
차남의 관련 사실을 파묻어 버렸다.이 사건이 있은 후에도 아버지와 장남은
변함없이 병원 운영을 계속하였으나
심리적으로 크게 충격을 받은 장녀는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린다.그리고 3년후 그 가족의 장녀의 아들 S는 고베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되고
(이부분이 소름 돋아야 할 파트입니다. 사카키바라 살인사건 기억나시죠??-)
장남의 아들(초등학생)은 여동생(유아)을 아파트 베란다밖으로 던져버려서
여동생이 사망하게 된다.사카키바라 살인사건 범인 S는 원래 『초등학교 5학년 때 S를 가장 귀여워 해주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비정상인 행동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하였으나
실제 할머니는 그 이전에 돌아가셨으며 할머니 운운하는 것은 자살한 삼촌을 은폐하기 위한 엉터리 보도로 생각된다.
'사카키바라' 살인사건을 보면 S군이 과연 진범인가에 대한 몇가지
의혹들이 나와 있는데
S군과 함께 범행을 저지른 공범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대부분의 의문이
해소된다.이 공범의 정체와 관련하여 다양한 가정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그 공범이 바로 S외과 병원 원장의 차남, 즉 S군의 삼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살로 죽어버린 차남이 어떻게 3년 뒤 사건의 공범이 될 수
있을까?차남의 죽음과 연관된 것들이 대부분 비밀과 의혹에 싸여 있는 등
여러가지 정황 증거가 있긴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다음의
사실이다.
차남의 사망 증명서 서명란에는 다름아닌
아버지 S원장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
이얘쁜작성일
2012-08-2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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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日 충격 소녀살인사건
친구 살해 암매장 범인들의 사건 재연 현장
지난 18일 또래 여자 친구를 둔기로 마구 때려 숨지게 한 뒤 사체를 유기했다가 암매장한 청소년들이 구속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구속된 이들은 17~19세 남자 4명, 여자 5명으로 7명이 전과를 갖고 있었으며 남매 2쌍과 커플 2쌍도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여자 친구 A(18세)가 범행이 벌어진 집에 놀러온 후, 험담을 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야구방망이 등으로 마구 때렸다. 때리는 사이 같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또 계속 폭행했다고 한다. 폭행에 가담한 또래 중에는 임신부와 출산한지 얼마 안 된 산모도 있었다고 한다. 폭행 당하던 도중에 놀러온 다른 여자 친구에게 숨진 A가 “죽을 것 같아, 신고 좀 해 줘”라고 문자를 보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로부터 몇 시간 후 A는 사망했다.
비정상적인 폭행도 그렇지만 A가 사망한 후 청테이프로 입을 막고 옷장에 시신을 하루 이상 보관하고 암매장하는 등, 믿기 힘든 범행을 청소년들이 저지렀다는 사실에 대다수 국민이 경악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믿기 힘든, 세상에서 가장 진인하고 끔찍한 청소년 범죄가 일본에서 발생한 적이 있다. ‘엽혹진’ 등에 당시 범죄를 근거로 만든 만화도 돌아 다니고, 수년 후 해당 사건을 영화로 만든다는 당시 기사도 있었던 세계적인 충격 실화다. 시간대 별로 정리한 자료가 있으나 워낙 잔인한 사건이라서 위키백과 글을 간추려 싣는다.
[콘크리트 살인사건]
범행 청소년의 실명을 공개했던 당시 ‘주간문춘’ 기사.
피해 여고생 후루타 준코
이 사건은 일본 열도를 경악에 빠트린 전대미문의 충격실화다.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女子高生コンクリ?ト詰め殺人事件 조시코세이 콘크리토츠메 사츠진지켄)은 1988년 11월 26일부터 1989년 1월 4일에 걸쳐, 일본 도쿄 도 아다치 구 아야세에서 일어난 유괴·약취, 감금, 강 간, 폭행, 살인, 사체 유기 사건의 통칭이다. 사건번호는 ‘헤이세이 21058′. 범행에 가담한 소년들은 하교 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귀가 중이던 여고생을 납치, 감금한 뒤 약 40여 일간 폭행했다. 인분과 토사물 등 배설물, 쓰레기, 곤충을 강제로 먹게 했다. 다수의 청소년이 성 폭행과 폭행에 가담했다. 무수한 폭행으로 소녀는 사망에 이르렀다. 소년들은 소녀의 사체를 이불에 말아 드럼통에 넣은 뒤 콘크리트를 부어 인근 공원에 암매장했다. 이 사건은 가해자가 모두 소년이면서도 범죄 내용이 중대하고 고의적이고 악질적이며, 범죄 기간도 장기간이며, 처벌이 미약하다는 점, 여고생 소녀가 감금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던 주위의 목격자들도 피해자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 등으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는 사건이다. [주요 범인]리더격인 미야노 히로시(宮野裕史, ‘소년 A’로 통칭, 당시 18세), 부 리더 격인 오구라 유즈루(小倉?, ‘소년 B’, 당시 17세)를 비롯, 미나토 노부하루(湊伸治, ‘소년 C’, 당시 16), 와타나베 야스시(渡邊恭史, ‘소년 D’, 당시 17) 등을 위시한 여러 명의 소년들. [사건의 배경]소년들이 범행을 벌인 집은 맞벌이 부모 가정. 생업 때문에 부모가 집을 자주 비우는 점, 가정불화가 있어 부모에 의한 가정 내 폭력이 잦았다는 점, 이를 보고 배운 자녀도 폭행청소년으로 자라 부모가 자식들의 폭행을 무서워 하는 지경이 되어 주택의 2층 전체가 불량 청소년 집단의 아지트로 변질, 잔인한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범행 수사기록]평소 여고생 후루타 준코(古田順子, 사진 속 여고생, 당시 16세)를 눈 여겨 보았던 소년 A, B, C가 소녀를 납치하기로 작정하고 1988년 11월 25일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보통 때처럼 수업이 끝난 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 중이던 소녀는 소년들의 이유 없는 시비에 자전거에서 내려 항의하다가 가격을 당한 후 주범 미나토 노부하루의 집 2층에 감금 당한다. 이들은 40일 이상에 걸쳐 강 간 행위나 가혹한 폭행을 반복했다. 소녀에게는 가족이나 경찰에 신고하면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시킬 거라고 위협해 겁을 주었다. 소녀를 공중전화로 끌고 가 “친구 집에 있으니, 걱정말고 신고같은 것을 하지 말라”고 소녀의 부모를 안심시킨 후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악행이 벌어졌다. 소녀는 범인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기계에 불과했다. 매일마다 18시간 이상의 폭행과 성적 고문 등을 당했다. 집으로 제발 돌려 보내달라고 요구하면 그 폭행강도는 더욱 세졌다. 소녀는 한 번 신고를 시도한 적이 있으나 곧바로 이 사실이 발각되어 전화가 강제로 끊겼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추적해 역탐지로 미나토 노부하루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소년들은 장난 전화였다고 둘러대고 무마시켰다. 이후 이들은 여학생에게 엄청나고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이들이 여학생에게 가했던 짓들은 인간으로서 실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물과 음식을 전혀 주지 않았다. 굶주림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즐기다가 우유와 건포도를 먹였다. 오랜 동안 굶주린 소녀의 몸이 음식물을 거부해 토해내면 더럽다고 구타햇다. 또 술을 억지로 다량 먹여 고통스러워하며 토해내는 모습을 즐긴 후 더럽다고 폭행했다. 손, 발, 정강이, 무릎 등에 라이터의 기름을 발라 불을 붙였다. 여학생이 몸에 불이 붙자 고통스러워하며 발버둥치는 모습을 즐기며, 불을 끄기 위해 몸부림치지 말라고 폭행하고 불이 꺼지면 다시 불을 붙였다. 불 폭행으로 인한 화상이 심해 무릎 연골이 파괴돼 소녀는 자력으로 일어서지 못하게 됐다. 진술서에 따르면 폭행은 여기가 다가 아니다. 소녀의 안면을 얼마나 구터했는지 코 높이까지 부어오른 볼과 눈에 촛농을 떨어뜨려 양초를 고정시키고 뜨거워서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구타했다. 성폭행은 더욱 심각했다. 강 간 폭행은 약과였다. 성경험이 없던 소녀의 억지로 다리를 벌리게 만든 뒤 항문과 성 기 등에 온갖 이물질을 강제 삽입했다. 심지어 페트병까지 넣었다고 한다. 이들은 폭죽도 넣었다고 진술했다. 폭죽이 인체에서 발화하도록 거꾸로 꽂은 후 심지를 터뜨렸다. 불꽃놀이 성폭행의 상처는 차마 글로 옮길 수 없을 정도. 부검의에 따르면 당시 소녀는 대장과 자궁및 질벽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부검 당시 안면부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손상되어 있었다고 한다. 너무 끔찍한 사실은 이 모든 폭행에 고통스러워하는 여학생에게 웃으라고 강요하며 웃지 않으면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고 진술서에 기록된 사실이다. 여학생에게 알 몸으로 춤과 노래를 하라고 지시했고, 미 친 짓을 해보라는 등 엽기적인 행위를 요했다. 혹한기에 알 몸으로 베란다로 쫓아내 여러 개피의 담배를 한꺼번에 피우게 하였으며, 모든 행위 후에 웃지 않으면 폭행을 가했다. 소녀는 자신이 배설한 소변 ,대변 심지어 맞아서 나온 피까지 먹어야 했다. 이런 폭행 때는 소년들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손과 발에 비닐봉지를 씌우고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폭행을 당하다가 넘어진 소녀가 카세트에 머리를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자 이를 꾀병이라며 6kg짜리 철아령을 복부에 던졌다. 아령에 맞고도 반응을 하지 않으니 몸에 기름을 발라 불을 붙였다고 한다. 불로 인해 뜨거움을 느끼고 소녀가 반응을 보이자 불을 끈 뒤 2시간 가까이 폭행을 가했다. 더 경악할 사실은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 주위에 이 사실을 아는 주변사람이 100명이 넘었다는 것. 소년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자신의 집에 재 있는 것이 있다”며, 주변인들에게 자랑하며 다녔고 이중 10여 명은 직접 폭행, 강간에 관여하였다. 소년 C의 부모도 여학생이 2층에 있는것은 알았지만, 평소 못된 행동을 일삼는 아들의 반응이 두려워 이런 사실을 묵과했다고 한다. 범행 전모가 드러난 후 C의 부모는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참회했다고 한다. -’17세, 악의 이력서’에 나오는 그들이 저지른 범행의 일부 [범행 후 사건일지]극악무도한 범행 결과 후루타는 사망했다. 소년들은 후루타의 사망사실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1989년 1월 5일 사망을 눈치챈 이들은 시체 처리를 궁리하다가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채워 도쿄 도 고토 구 와카스의 한 매립지에 유기했다. 이후 주변에서 이상한 부패한 냄새가 난다는 행인들의 제보가 경찰서에 접수되어 본격 수사가 진행됐다. 그 해 3월 29일,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다른 사건으로 인한 강 간, 절도 등의 혐의에 의해 소년감호소에 보내진 소년A의 진술로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의 실체가 공개되었다. 네리마 소년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소년A를 조사하던 중 담당형사가 무심코 “너 사람을 죽이면 안되잖아?”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에 일행 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 모든 사건내용을 자백했던 것이다. 소녀가 죽고 4개월 만에야 범행 전모가 드러난 것이다. 경찰 조사가 끝난 후 소년 C의 부모는 여학생이 2층에 있는것은 알았지만, 평소 못된 행동을 일삼는 아들의 반응이 두려워 이런 사실을 묵과한 이유로 “차마 이 정도일 줄 몰랐다”며 참회했다고 한다. 소년 A의부모는 이사실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고 집과 전재산을 팔아 5000만 엔을 피해자 부모에게 건넸다. 하지만 억울하게 사망한 소녀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소녀의 부모는 정신과에 입원하는 등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사건 후 사회 반응]언론 등 이 사건의 주범이 모두 미 성년자라는 사실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 법에 따르면 미성년 범죄자의 경우 실명보도를 금지했으나 “사건이 너무나 흉악하였으며, 짐승의 인권은 존중 받을 수 없다”며 실명으로 사건 보도를 했던 <주간문춘>은 출간 후 책이 전량 매진되기도 했다. 2003년,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 소설 ’17세, 악의 이력서’가 출판되었다. 다음 해인 2004년에는 이 책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콘크리트’가 제작됐다. 영화의 개봉을 둘러싸고, 사건의 잔혹성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급속히 퍼져 불과 1주일 개봉하고 막을 내렸다. 영화의 등급은 ‘R-15’로 15세 관람가였다고 하니 제작자가 수위 조절을 충분히 했음에도, 비디오나 기타 방법으로 판매를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주범들의 이후 생활]범행 당시 미성년자인 점을 감안, 징역형이 구형되었고 형기를 채우고 출소한 이들은 현재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국화와 칼’로 비유하는 나라, 미소와 상냥함 뒤에 징그러운 군국 패권주의를 감추고 있는 나라, 벚꽃(사꾸라)의 찰라성을 희구하며 축제마다 불꽃놀이로 욕망을 사르는 이면에 변태적 욕망이 뒤범벅된 나라… G7 국가지만 유독 성과 관련한 엽기적인 범죄가 빈발하는 ‘성진국’ 일본은 여전히 이해불가한 나라다.
단홍비작성일
2012-04-25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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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유승준 노래를 듣다가..
문제의 2001년.
대선 시즌이었는데, 막강한 대통령후보 이회창씨 아들의 병역문제가 정치이슈가 되면서,
정치인 아들, 연예인 병역비리가 잇따라 터졌고, 온 국민이 병역으로 분노하던 차였죠.
관심은 또다시 유승준에게로 향했죠. 군대 언제 갈꺼냐?
영주권자는 한국에서 일정기간 이상 머물면 신검통지가 나오는데,
유승준은 늘 그 기간 전에 출국을 해서 신검을 피해왔었죠. (대부분 영주권자들이 그랬고)
근데, 그해에 유승준은 스스로 기간 이상 체류하면서 신검을 받은 겁니다.
(하도 기자들이 군대로 몰아세우니까 지칠만도 했었죠.)
이게 또 엄청난 이슈! 신검받는 것부터 연일 뉴스에서 대서특필!
당시 정치권에 향했던 국민의 분노를 유승준 군대 보내는 걸로 잠재우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던듯.
그후, 입대를 3개월 남겨두고 원래 출국이 안되는데,
정부에서 특별히 보증을 서서, 일본콘서트 차 출국을 하게 되었죠.
근데, 공연 끝나고 한국으로 안오고 미국 가서 시민권을 취득한 거죠.
평소 껄렁한 이미지의 연예인이라면, 그럴줄 알았다면서 욕하고 말았을텐데..
당시 유승준은 뭐랄까...국민들이 한마디로 패닉+분노 상태에 빠졌다고나 할까?
권력과 돈으로 군대 안가는 정치인, 대기업총수들에 대한 분노들이 유승준 사건으로 한꺼번에 터진거죠.
정부로써는 어떻게든 이 분노를 잠재워야 하는 상황이었죠.
결과는 입국금지!!
유승준의 시민권 취득도 충격이었지만, 정부의 입국금지도 충격이었죠.
국민들도 입국금지는 상상도 못했기에, 국민들의 분노를 많이 잠재우긴 했습니다.
당시 터진 911테러사건으로, 시민권이 없는 한인들은 매우 불안해하긴 했었죠.
그 문제도 영향을 미친 것 같고...부모님들이 시민권을 따도록 계속 설득했었다고도 하고,
하여튼, 결과는 배신감 느낄 만한 행동을 했고, 국민청년에서 하루아침에 국민매국노가 되었죠.
정치인 병역비리에 연예인 병역비리까지 유승준이 죄다 안고 간듯..(그놈의 군대..)
지금 나오는 연예인들 중에도 간통,마약,사체유기,뺑소니,등 공개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얼마나 범법자들이 많습니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도않고 매몰차게 우리나라에서 버려지고 국민들한테 버려지고
암튼 지금 다시 보니 짠해서 글올려봅니다.
P.S 4급 판정 받아서 공익이였음..
아깝다이작성일
2012-03-16추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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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추억의 가수 기억나시나요?
저도 기억나는가수가 몇명있네여..이글쓰신분 정말 대단.... 또 다른 가수 기억나시는 분? -------------------------------------------------------------------- ★색종이★ "사랑이란건 싫증나서 버리는 장난감이 아냐~" 명문대생 팀이어서 좀 화제가 되었는데..2집때 망했더만요... "미성년자 관람불가"란 타이틀의 노래였는데...내용은...지 앤이랑 18금영화 첨보러갔을때 떨리는 심정...-.-;;; 자켓도 시커멓더만...끝까지 시커매질줄이야.. 나중에는 여성멤버도 영입하고 그랬는데...역시 꽝!!! ★인공위성★ 사랑이라 부를수 있을까...라는 노래로 약간 스타덤에 오른..서울대생 6명 팀... 구냥 생긴거는 전형적인 범생스타일이었구요...-.-;;; 요약하면..철수형...-.-;;; 가사가 상당히 은유법을 많이 구사했다고 볼수 있는...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문장이 마구 나와서..이해하기 힘들었슴니다...95년이후로 소식불명. ★히포★ 이사람들 아시는분....대부로 모시겠습니다..... 락그룹이라던데..그것도 고대 의대생 5명이서...만든건데.... 들어보니.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인 어쿠스틱위주의 포크음악이었습니다... 프로듀스가 개판이었다는것도 문제가 있긴했지만...-_- ★ZAM★ 5명...조진수,윤현숙,김현중..나머지 기타등등 두명.... 나는 멈추지 않는다부터 표절 시비에 휘말리더니..나중에는 콩가루 되어서 윤현숙 나가버리고...조진수랑 김현중둘이서 2집을 만들었는데... 내일은 늦으리 94에도 나오고 그랬답니다..나중에는 조진수 혼자서 솔로 냈는데 더 망해버렸구요....-.- ★뮤★ 잼2..라는 별칭이 있었던....6명의 멤버..남자넷..여자 둘.... 여자멤버중 하나는 김준희라고...마운틴에서 좀 놀다가 깨지고 짱..에서... 칠공주파 두목으로 나왔던...이쁘장한 스타일..... 기억도 안나는 노래를 타이틀로 들고 와서 여기저기 들어가다가... 나중에는 인기없는 가수들 구제해주는 프로그램 "일요큰잔치"에도 불려가고..-.-박상규가 사회봤던..그 컬컬한 목소리로..참 짜증났었는데.. 그당시 한물간 가수들이나 인기없는 가수들 구제해주는 프로그램이.. 일요큰잔치랑..가족오락관이랑...가요무대...-.-;;;;;; 앗..삼천포로 샜구만요..암튼..1집활동 좀 하다가 두명 나가고... 2집에서 좀 하다가..망해서...김준희는 마운틴에서 놀다가 망하고..-.- 뮤...의 어원이....무 대륙에서 따왔다던데...헛헛헛.... ★모자이크★ 1집 "너의사고방식"이 좀 맘에 들었었는데... 2집."자유시대"...."댄대기 대기기 대기대기 대이야~~댄대기 대기기 다다디다단~" 이걸로 빅히트...3집때 새 보컬 이상협을 데려와서..."왕자와 병사들"이라는... 왕자병과는 아무 상관없는...걍 지 친구들한테 "얘 내깔이야"하는 내용... 나중에 이팀은 와해되고...이상협은 솔로로 독립했는데...영...반응이... ★박남정★ 1988년과 1989년은...박남정의 해였다고 할만큼....기역니은 땐쑤 열풍... 본인은 그당시 미국에서 엄청 떴던 틴에이저 가수 티파니의 땐쑤를 참고했다고 했는데..정말 이었음..-.-;;; 널그리며..가...대박인기를 터트리며.... 소방차와 서울시스터즈..(-_-;;;;;;;;)를 제치고 각종 상을 휩쓸었습니다. 이후에 "비에스친날들" "스물하나의 포도송이" 요런걸로 간간히 인기를 끌다가.. 잠적...그리고 몇해뒤...97년에 컴백...마이클 잭슨 판박이인 춤으로 좀 나오다가 인제는...이대 줄리아나 나이트 맞은편에 있는 캔디랜드 전속출연...-_-;;;; 아..인기도 한순간이어라..... ★이범학★ 내사랑 굿바이 굿바이~~~~ 이걸로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 그러나..자살미수 소동 이런거때문에...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전형적인 반짝가수...앨범 자켓이 상당히 재미잇었습니다... 선그라스 끼고 마이 손뒤에 걸쳐놓고 뒤를 살짝 째려보는 사진.. ★심신★ 1991년은 심신의 해였다...라고 말할 만큼... 언제나 가요톱텐에서 노래부르면.."그대여!!(꺄아아~~) 이아름다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그대~~~~" 아...인기 만빵이로소이다.. 나중에 "욕심쟁이" 로 뜨더니...대마초때매 잡혀갔는데.... 몇해전에 잡지 보니깐...7살 연하의 팬이랑 결혼했다고 봤습니다.. ★미스터 투★ 이민규,박종석이 만든...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하얀겨울"... 이민규랑 코미디언 김정식씨랑 상당히 닮았습니다... 2집이 말이죠...신해철님께서 도와주셨다던데...망했어요...-_- 1집 방금 받아서 들어보는데...여전히 신선하네요..핫핫... ★쿨 1집때★ 지금은 감히 넘볼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쿨이지만..1집때는 좀...-.- 최준명,김성수,이재훈,유채영...요렇게 넷..... 참고로 1집 속지에는 유채영 상반신 누드도 있습니다... 너이길 원했던 이유..이걸로 좀 뜰려나가 활동중지... 최준명은 프로듀서로 사라지고..유채영은 어스에서 놀다가.. 잠적...이후로 감감 무소식.....2집 이후부터는 탄탄대로...지금은...최강... ★벗헤드★ 아야아야이~이야아야오~ 너무너무나 아파~ 이거 아시나요..? -.- 멤버들이름도 모르고..구냥..1996년에 잠시 등장했던... 제 기억에는 재즈 피아니스트 이영경씨가 결성했다고 알고있는데... 냠...박광현씨가 리더였던 데이지 멤버였었는데...박광현씨가 대마초로 잡혀가면서 이거 만들은듯...-.- 안어울리게....힙합이라.. ★유비스★ 별의전설....다들 얼굴반반하고 한춤하는 네명이었는데...어디론가 사라졌음.. 나우에 유비스 팬클이 아직도 살아있다는걸 기억함.... ★우노★ -- 강성민..요새 머하나..군대갔나..-.-;;;;의 팀.... 디스켓의 비밀..요게 좀 떴는데..머..별로 말할것도 없네요.. ★베티★ 우노하면 베티도 질질 끌려 옴...이의정의 화려한 경력에 오점을 남길만한..-.- 머..이의정의 당시 인터뷰에 의하면..이의정외 두명은..나중에 팀짠다고 하더니.. 진짜 짠건지...아님 구냥 공중분해된건지....흠냐리.... ★S.O.S★ SES가 아닙니다....유진동국님덕분에 얘네덜이 생각났습니다...감사~ㅋㅋㅋ 93년에..여자 네명..(한나,사현진..나머지는 이름모름) CF모델이랑 잡지 모델들 모아서..만들었는데...당시 SBS 쇼서울서울 에 첨으로 출연했다가...관객들로부터 욕 바가지로 먹었씁니다.."우~~물러가라~~빨랑 사라져라~~~" 잡지에는 요렇게 실려있더만요...2집 냈는지..기억도 안나고...구냥 지금쯤 결혼했겠져? ★E.O.S★ SOS랑 전혀 관련 없는...테크노 그룹.... 보컬이었던 김형중이 상당히 맘에 들었습니다..목소리도 좋고.... 라디오 프로그램 가위바위보의 진행도 맡았었져.... 이팀은 신해철님께서 도와주셨었는데..."꿈환상 그리고 착각" "각자의길" 같은 좋은 곡들을 만들고....2집 낸다 낸다 낸다...이걸 1년 이상끌다가.."넌남이아냐"로 재등장했는데...이게 샤란큐의 "상경물어" 를 베끼는바람에...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린..... 김형중의 능력이 아깝다고 생각합니다....노래하나는 진짜 잘불렀는데... 내일은늦으리 93에 오프닝으로 나와서 인기 짱이어써요.... ★ST.ROOKIE★ 이사람들을 아시나요...? 진짜로 아시나요...? 아신다면...최고로 모시겠습니다...혼자만의 사랑..으로..나왔었는데.. 여자멤버의 야한 차림새로 잠깐 떴었던 팀이었습니다.... 2집때는 어디서 꺽다리 같은 특징 별로 없는 여자를 덱구와서 망했지만. ★팝콘★ 여자 멤버 : 신시아 (키 176CM) 남자 멤버 : 석우준 (키 160CM) 상당히 언밸런스한 듀엣. 그리고 자켓에 보면 신시아의 품에 석우준이 안겨있는.... 무슨 염문설이라도 퍼트릴라고 작정을 했는지..기획사의 꿍꿍이속이 궁금했던... "쇼팽과 신데렐라"라는 쇼팽의 야상곡을 아주 망칠라고 작정했었져... 참고로...석우준은..동생 고등학교(경성고) 나왔습니다... ★펌프★ 건강미 넘쳐보이는 여자 한명이랑 남자 셋.... 1996~7년에 활동하다가 사라진 팀..2년후 펌프게임이 나오고...-_-;;;;; 시기를 잘못맞춰서 데뷔한 팀...어차피 노래는 거기서 거기였지만... ★자자★ 버스안에서...빠라바라 빰빠 빰빠빰 빰빰*4 샵이나 스페이스 에이는 이들의 발전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자멤버 유영,김주현 만 알고..나머지는 모름...-_- 2집때 "왔어"로 1집때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해보지만...땡~~~ ★최성빈★ 사랑하는 어머님께....내용인즉슨...고아인 여자친구를 반대하는 어머니에 반기를 들고 야반도주하는 내용...노래는 참말로 슬프져...-.- 이노래 때문에 찬반론이 제기 되었습니다....찬성론은 당연히... 집안의 반대로 가슴앓이하던 커플들.....그리고 반대론은.... "애들 다 망치겠소!!!" 라는 부모님들...... 근데 정작 최성빈이란 가수는 1집이후로 감감 무소식 ★윌★ shine410님의 글에 덧붙이자면....보이쉬한 여자한명..나머지 남자 셋 제2의 소방차를 취지로...(도건우의 공중제비..요런거...) 나왔는데... 머...구냥 사라지더만요...전국노래자랑 게스트로 나왔던가..-.-;;; 아...주택복권 당첨 막간 게스트로 나왔었습니다... ★고구려★ 멤버 이름이 가관입니다...광개토,온달,평강,동명...요렇게 다섯명.... 요렇게 이름을 달고 나온걸로 보아서...얘네덜이 최근에 나와서 허준이란 그룹을 만들었다면 얼마나 가관이었을라나...-.- 준,예진,다희,오근,어의영감..머 요렇게 지었을지도 몰겠군요...-_-;;;;;; A형C형...제목의 뜻은..나름대로 심오합니다...서로 성격이 안맞는 두명 갖고 다룬거....머..볼것도 없죠머.... ★덩크★ 구냥 딱 봐도 허접하게 생긴 네명...쇼프로그램에서 잘난척 무쟈게 해대더만.. 모델모델이 란 노래로...내앞으로 한쌍이 걸어갈때에~여자쪽이조금더 나아보이면~~-.-;; 암튼...데뷔초부터 맘에 안들었던 팀중에 하나였음..... ★쾌남호걸....그리고 글램★ 왜 얘네덜을 묶었냐면...타이틀곡이 똑같았다는겁니다... 제목은 생각안나는데.."그래그래 그래서 그렇게도 널찾았던거야~~~" 저거때매 기억에 오래 남아서리....어차피 묶어서 말해봤자 별다른 특징은 없구.. 아..이거 주영훈이 작곡한거에요.....대중성은 나름대로 있는건데... 무슨 점쟁이가 대박예감을 했다는 팀이었는데.... 쇼프로에는 보이지도 않더만요..그점쟁이 주가 폭삭 떨어졌겠져머.... 기억력의 한계가 보이지 않는 이상....이 짓은 계속 됩니다...ㅋㅋㅋ 뱀다리 : 윤도현 첫 데뷔가 가요톱텐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혼자서 통기타들고 나와서 라이브로 타잔을 불렀었는데..... 별로 호응이 없으니깐..노래하다가 중간에 "거 박수좀 쳐주세요!!!" 초반부터 엄청난 배짱을 보여줬었는데......^^ ★킵식스★ 태지보이스가 해체되고...서태지는 미국으로 가버리고...나머지 두멤버들... 이주노는 영턱스클럽을 키워서 나름대로 성공을 했지만...양현석은....이 킵식스를 만들어서 키웠는데...리드보컬이 이름이 이새영이었던가..암튼 이상한 이름에... 생긴것도 기생오라비 저리가라 할수준의 느끼한 외모를 간직하고 있었음... 나를 용서해...의 타이틀이었는데...망해버렸음....나중에 지누션 1집앨범에 참여했는데....이후로는 소식 불명. ★조!형!기!★ 95년을 히트시킨 유행어..."좌우지 장~지지지~~좌우지~장~~지지지지" 탑오브더 월드의 타이틀로...히트팝송 메들리를...콩글리쉬 버전으로... 아주아주...재미있게..부른...조형기 아저씨....지금은 탈렌트만 하고 있겠져.^^ ★플러스 알파★ 불행끝 행복시작이란 노래를 아십니까? "너와 사랑을 할수만 있다면~~~불행끝 행복시작!!! 그래 언제나 혼자는 아니야~~~불행끝 행복시작!!!" 가사가 이렇습니다....가사중에서 "방바닥만 긁고있어~" 이부분에서는 진짜로 방바닥긁는 땐쑤를 하는 엽기적인 자세도 보여줬는데.... 예전에 넥스트멤버였던 정기송씨가 키운 팀입니다...-.-;;;; 정기송씨...아버지와나 기타솔로가 정말 맘에 들었었는데....츄흑.... ★휘파람새★ 소방차랑 같은 시기에 나온...여성 3인조 브라스 팀..... 관악기를 들고나와서 간주할때 연주도 하더만요.... 열전 달리는 일요일이나..행운의 스튜디오..이런데서 자주 보았습니다.. 노래 제목은 "이상해" 말그대로 이상한 노래입니다. ★조르디★ 조르디에 대한 게 앞에 있었는데말이져..프랑스 네살꼬마가... "오레레 베베 찌쮸쮸와 꼬떼떼~~오레레 베베 찌쮸쮸와 꼬떼뗴 미어 지랄 꼬뗴떼~미어지랄 꼬떼떼~쪼끔씩 쪼끔싸 쪼끔찔끔싸~~" 이렇게 들리던데요....-_-;;;;;; 집에 테이프 있습니다... 미쳤죠..한마디로...내가...중학교때 사고방식이...좀...-_-;;; ★모노★ 이쁘장한 외모의 남자보컬 김보희...넌언제나..이노래가 떴습니다.... 김보희는 솔로앨범 애니..를 내고..(이노래도 진짜 좋았었는데...) 사라졌지만...나머지 두멤버...박정원과 이홍래는....... 그 유명한....가을동화앨범 제작에 참여....... 로망스 피아노 연주는 이홍래씨가 한겁니다..... 박정원씨는....이상우씨의 슬픈그림같은 사랑을 작곡한 사람이져.... ★GQ★ 젠틀맨스 퀄리티라는 거창한 이름...근데 그 퀄리티 의 20프로도 발휘못한듯. 노래제목이...무슨무슨 남자였는데...-_- ★김진우★ 지누션의 김진우의 아픈 과거..... 나는 캡이었어~그냥 시킨대로~하지만 그건 난 아냐~~~ 머..할말없습니다..-_- 그래도..그때 금홍아금홍아의 이지은이랑 초콜렛 CF찍으면서 질리도록 초콜렛 먹어봤대요...-_- ★소방차..........의 지카페에 나왔던 색소폰맨....★ 소방차는 컴백을 했으니 됐고..-_- 지카페를 불렀을때.....앞에 나와서 색소폰 불면서 오버했던 그사람...이름은 김경수.....당시나이 36세....... 지금은 머하고 살까요.....첨에 봤을때...소방차가 멤버 하나 추가해서 컴백한줄 알았습니다..... ★세또래★ 前 베이비복스의 이가이 가 있었던 팀...10여년전..소방차와 성대결을 펼쳤었던 팀....그거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는것이 없습니다..-_- ★오복★ 불의춤...이란 노래로..."파이어댄스~~우~우~우~우~ 파이어댄스~~~~" 나이좀 들어보이는 여자 한명이랑 남자 두명이었는데..... 남자멤버였는지...아님 백댄서였는지는 몰라도....... 이주노가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쓰게 되는군요...헤헷... 인순이 백댄서 한건 다들 아시겠져...^^ ★OPPA★ 쟤네덜 나오고나서 생각하는게..."패싸움도 가능하겠네...-_-" 핸디캡 매치도 가능하겠고...흠냐리... "나의 꿈속엔 아름다운세상이 있어~~" 하면서 애국심을 고취시켰던... "애국심" 그러나..역시...1집이후로 콩가루가 되어서... OPPA007로 "와요"를 냈지만...이후로...더 콩가루로 되었음.. ◆바바란 팀이 전 가물가물 했었는데....6명이었다는거밖에는 기억이...-.-;;;; SBS의 천인공노할 프로그램 충전100퍼센트 쇼에 많이 출연했었다니..ㅋㅋㅋ.. ◆A.R.T란 4인조 발라드 그룹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가창력도 있었고... 노래도 좋아서 팬이 많았었는데...이들중 한명이 여자를 엄청 패버리는 바람에 폭행죄로 기소되어서...이들 기획사 사장인 태진아씨가 매장시켜버렸습니다. 생긴거는 말짱하게 생겨갖고...-.- 여자나 패다니...흘흘... ◆해커...라고..들어보셨는지...? 이들의 타이틀곡 "SAY를 날려봐"는... 이들이 하이텔 사용자였음을 증명해주는것이었으며..암암리에 하이텔 광고도 함을 보여주는 것임니다..아마도..이들이 천리안 사용자였으면..... "TALK를 날려봐" 나우 사용자였으면..."TO를 날려봐" 였겠져.... 세명이었는데..생긴건다 양아치 같이 생겨갖고는.... - ◆그러고보니깐 몇달전에 데뷔한 ZEN이란 팀이 있군요...추억의 팀은 아니지만.. 구냥 남자 둘에 여자셋...근데 남자나 여자나 동네 양아치 티가 팍팍 나더만요.. 춤도 런투유의 양팔돌리기 춤을 따라했더만...-.-;;;; 얘네들도...몇해후에.. 누군가에 의해서 추억의 반짝가수로 써짐을 확신합니다. ◆디보이스 (데인저러스 보이스의 준말) 등장은 상당히 멋지게 했었는데.... 나중에는 열전 달리는 일요일에나 출연하고...-_-;;;;2집내고 어디론가 잠적. ◆홍진경도 가수를 했었습니다...믿어지십니까......-_-;;;;; 그것도 슈퍼모델의 인기를 업고...양현석과의 염문설을 뒤로하고.... 에다호라는...(저거 인디언 언어래요.)남자셋에 홍진경 하나의 팀을 만들었는데. 머...뒷얘기는 저도 몰라요..헤헤..라디오에서 들어봤는데...이건 무슨..-_-;;; ◆팜팜...이라고...뽀뽀뽀에서 뽀미 언니를 했었던 김혜영이 만든 팀이었는데... "사랑이 처음은 아니야~~" 이러면서...귀여운척을 많이 해대더만.... 지금으로 따지자면...파파야라고 해야하나요...ㅋㅋㅋ...... 때를 잘못타고 데뷔한 팀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서경석과 이윤석...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명콤비로 활약했던 두명.... 이들도..앨범을 냈답니다...삼성 나이세스 뮤직에서 낸건데..... 제목도모르고...노래도 안들어봤으니 더 모르고....앨범출시에 의의를 둔듯. ◆지니...그 유명한 공일오비의 장호일...신성우...그리고 넥스트 멤버였던 이동규 뭐야이건...이노래는 요새도 노래방 애창곡으로 빠지지 않는 노래입니돠.... 1,2집때 정말 좋았었는데....프로젝트그룹이어서 그런건지..오래 못가더군요.. ◆언타이틀...."책임져" (니가 떠나서 나 폐인됐으니 책임져) 라는 단순한 문구를 내걸고 꽤 인기를 끌었는데...3집이후로 감감 무소식....3집은 개인적으로 괜찮았었는데말이에요..."꽃"이나.."자살"이나....유건형과 서정환이었습니다. ◆오룡비무방....얘네들 팬클럽이 나우누리에 아직도 있다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춤도..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춤으로 춰대더만..-_-;;;; 남자 네명에.... 보이쉬한 여자 한명....이름도 김민수..보이쉬~~ 김완선이 키운 그룹이었는데.. 1집만 내고 소식불명...아는애가 명동이랑 이대에서 남자멤버 몇명 봤다는 제보가 날라왔었습니다....몇달전에...-.-;;; ◆스머프..아십니까? -.-;;;;역시나 남자 넷에 여자하나(스머페티였겠죠) 이상한 복장으로 하구 나와서 티비에서 놀던데...구냥..그런가보다 생각하세요~~ ◆CHUCK...척....얘네들의 노래 별땅...... "기쁠때 함께해야아 슬플때 함께해야해~" 남자셋에 여자 둘이었는데... 노래는 여자 둘이서 다부르고... ◆BIG...이었던가...멀쩡한 남자한명이랑...뚱땡이 한명이 나와서... "연상의여자"를 불러대던데...뚱땡이가...쿨 백댄서로도 목격되었었고... 유승준"사랑해누나"뮤비 백댄서로도 목격되었었고.... 선그라스 끼면 다 똑같아 보여서 누가누군지 모르겠군요...-.-;;; ◆진짜 희한한 듀엣이 있었습니다...가키...라고... 왜 가키냐면요...장재각,장재희 형제가 만든거거덩요... 뒤글자 각..과 희..를 합친....가키..-_-;;;;; 뮤직비됴만 보고... 티비에 나온건 한번도 못봤습니다..... ◆육...각.....수.... 은 --> 이사람들을 빼먹었으면 정말 통탄할뻔했습니다..강변가요제 은상받았져.. "흥보가 기가막혀"로 1995년에...대상먹은 김우진은 "가제트의 비명"인가 앨범 냈지만 영 시원찮은 결말을 맺어버렸는데....이 두명은...나름대로 열심히 라이브로 나갑니다...나중에는 식상해졌지만요...춤도...첨에 흥보가 기가막혀할때 동서 방향으로 손 휘젓고..."겨울들녘 스며든 바람에~" 할때 남북방향으로 팔 휘젓고...이거 밖에 없었습니다..-_- "다시"라는 아주 좋은 곡으로 1집을 냈는데 나중에는 소식이 영 안들리더군요.... ◆수 --> 여자두명....첨에 자켓이 아주 야시시 해서...^^ 엇..저게머야!!!! 나중에 은장도로 나올때도 여전히 야시시...^^ 지금은 머하고 있을라나요... ◆후퍼 --> 최장신 멤버가 들어있었던..."오마이달링"을 불렀던 3인조 그룹.... 당시 가요톱텐이나 티비가요20에도 나와서 홍보 열라 했는데도..영...-.-;;; ◆지금 조진수씨의 행방에 대한 제보가 엇갈리고 잇습니다.... 한분은 부산 카페 주인장이라고 하고...-.-;;; 방금 들어온 제보는.... 압구정에서 리틀 조란 이름으로 헤어디자이너 하고 잇다는..악귀강림님의 제보였습니다...^^ 어떤게 진실인지...-.-;;;; ◆언타이틀은...공식 해체 했습니다...저가 좀 흐지부지하게 결론을 맺었군요 가수 하기 싫다고.... ◆김부용 --> 풍요속 빈곤을 들고 나왔을때 관객들은 전부 염불에는 관심없고...젯밥.. 그러니깐 초 글래머 댄서 이선정에게만 관심집중....-_-;;;; 나중에 댄서 교체.. 서유정으로 교체 했습니다...근데 2집때 들고나온 비트..란 노래가... 일본 그룹 딘의 노래 붕어빵이어서...구냥 사라졌더만요...^^ ◆사준 --> 메모리스..이노래...가 좋았었는데..가끔 노래방에서도 들을수 있엇구.... ◆박진호 --> 심리테스트..란 좀 허접한 노래를 들고나왔었져...얼굴은 반반했는데...^^ ◆이글 파이브 멤버중에서 심재원이....현 SES 남자 래퍼로 활동중이라는... 세라천사님의 제보가 있었습니다....감사드리며...^^ ◆그냥걸었어...의 임종환씨....94년 짜가 레게 붐이 일어날때..상당히 인기 폭발이었는데....헤헷...요새는 머하는지 모르겠네요...그냥 걸었어가..3집.. 4집까지 낸걸로 알고있는데.... ◆컬러..라고 아시는지..강변가요제 1등한걸로 알고 있거든요...여성 4인조그룹 "후회하고 있는거야"를 제목으로 한....^^ 여자중 한명이 동남아여자 분위기나는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헤헷... 하이틴 1993년 10월호에 기사 나왔거덩요..^^ ◆"너의마음을 내게준다면" "너를 잊을수없어"의 최연제씨..... 정말 키가 컷었는데.....미국으로 날라간건지..소식이 없네요..^^ "내게 전해줘~그대의 사랑을~마음 가득히 느낄수 있도록~~" 이노래 참 좋았는데.. ◆공일오비 객원가수들중에서...김돈규는 이번에 앨범 냈더군요.... "나만의슬픔"이 엄청나게 떴었는데...^^ 이장우는 어디 프로그램 세션맨하고 있고. 단발머리를 부른 조성민은.."3분55초간의 고백"을 낸담에..레드플러스로 가서.. "그녀는 야야야~~슬픔에 빠져있어~~~" 이노래를 냈었는데....요새는..글쎄요..--+ ◆데믹스...라고 하는 2인조가 있었습니다...제2의 듀스를 표방하더니...-.- ◆피아노 라고 혼성 3인조 그룹...."오렌지 향기속으로" 라는 분위기 좋은 노래를 들고 나왔었는데..반응이영...리더 안성준은 솔로로 나가고...남자멤버 한명은 군대가버리고...남은 여자멤버 장성희는 어디서 네명을 모아서...댄스그룹으로 변신...그러나..복권프로그램에서만 보다가...-.-;;;;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를 부른 이원진이란 가수...지금은 이세상에 없지만.. 왜 죽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고인이 된 가수들의 노래를 모은 "추억"이란 앨범에 이노래가 있길래...지금도 가끔씩 애창되는 노래인데.. ◆앗...방금 가키 앨범 광고를 찾았습니다... 출처 : 1996년 8월 31일 뮤직박스(길거리에서 뽑아가는 종이쪼가리) 실력있는 댄스그룹 가키.작사,곡은 물론 앨범 프로듀서까지 맡은 이들은 보기드문 실력파들.음악성과 춤을 겸비한 장재각,장재희 타이틀곡은 "남자의 이름으로" "열받는 내게" 요렇게 나와있네요...^^ ◆이덕진..."내가 아는한가지"로 대박 뜬다음..."굿바이 엑스트라"가 망하고.. 잠적했다가..."기다릴줄 아는 지혜"로 인기몰이를 할라다가.... 복권프로그램에 나오더만요...-_-;;;;; 전형적인 락커 이미지였는데.... ◆제이앤 제이라는 팀이 있습니다...SM초창기때의 실패작..... 그때 당시만 해도..현진영이 SM의 대박가수엿는데...-_-;;; 얘네덜 노래가...에쵸티 1집에 실려있습니다..ABOUT 여자 란 노래...
별봉이작성일
2012-02-27추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