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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조선일보, 이명박과 왜 싸우나
조선일보, 이명박과 왜 싸우나
이명박 대통령과 조선일보가 보이지 않는 헤게모니 싸움을 벌인다. ‘장자연 리스트’와 ‘박연차 리스트’로 촉발된 양측 갈등이 한나라당 재·보선 참패 이후 본격화되었다.
[시사IN 87호] 2009년 05월 11일 (월) 15:05:19
고재열 기자
ⓒ캐리돌 제작:시사IN 양한모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4·29 재·보선은 올해 상반기 벌어진 정치 이벤트 중 가장 큰 것이었다. 여권이 처음 생각한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4·29 재·보선의 함수관계는,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상이 가해졌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재·보선에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사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역풍’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수사가 ‘정치적 실익 없는 정치 보복’이 되고 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4·29 재·보선에 참패하자, 여권 지도부는 다시 수사에 눈을 돌렸다. 청와대와 당 지도부는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소환에 가려지기를 기대했다. 물론 야당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여권의 실정을 몰아붙였다. 여당 소장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쇄신론을 들고 일어섰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실정에 대한 심판 선거였다며 ‘골을 질렀다’. 그러나 애초의 기대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진짜 방해자가 나타났다. 바로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박연차 리스트’ 중 여권 인물에 대한 수사와 근본적인 쇄신을 촉구하며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재·보선 참패와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거세게 몰아붙였다. 재·보선 참패와 관련해서는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을 끌어들이고 근본적인 쇄신을 하라고 요구했고,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서는 여권 관련자도 수사하라고 주장했다. 재·보선 패배 직후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 관련 기사로 도배하며 재·보선 결과를 형식적으로 다룬 중앙일보·동아일보와는 달랐다. 5월4일 조선일보가 ‘참패하고도 나 몰라라, 여권 ‘신종 민심불감증’ 걸렸다’(5면)라는 기사를 내보내자 한나라당 내 개혁적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 소속 의원들이 당·정·청 쇄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조선일보는 ‘마이크 든 여 초선들, 패기도 감동도 없었다’라고 기자회견 내용이 약한 것을 질책하며 계속 군불을 지폈다. 머뭇거리던 소장 개혁파 의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연차 리스트’의 여권 인물 수사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목소리를 높였다. 4월21일, MBC <뉴스 데스크>에서 이 대통령 측근인 기업인 C씨가 연루되어 있다고 언급한 이후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실명을 언급하기 시작한 곳은 조선일보였다. 4월23일자에서 조선일보는 천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와 검찰 고발을 막기 위한 대책회의를 수시로 열었다고 보도했다. 여권 쇄신과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조선일보의 요구는 형식적인 수준에서는 김무성 원내대표론과 천신일 회장 수사에 머무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조선일보의 탄착점은 그 너머에 있다. 두 사안과 관련해 조선일보가 이상득 의원의 퇴진을 조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밤의 대통령’과 ‘또 하나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대통령의 형이 맞선 것이다. 재·보선 참패 이후, 여권 맹공한나라당 쇄신과 관련해 조선일보는 김무성 원내대표론에 힘을 실어줬다. 5월6일 ‘친박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되나’(1면), 5월7일 ‘김무성 원내대표 만들기 시동’(1면), 5월8일 ‘여권 주류, 냉랭한 박에 당혹… 김무성 카드 죽지 않았다’(4면) 등 김무성 카드를 밀며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운영에 개입할 길을 적극 열었다. 이는 소장파와 친박을 부추겨 이상득 의원의 퇴진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해석되었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서도 조선일보는 천신일 회장 수사를 넘어서 이상득 의원까지 수사할 것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4월11일 사설에서 ‘추씨는 이상득 의원에게 전화했다고 하지 않는가’라며 이 의원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월20일 “천신일은 조사 대상이지만 이상득 의원은 아니다”라고 말한 홍준표 원내대표를 비난한 조선일보는 이 의원이 청탁한 대상으로 알려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소환 수사하라고 압박했다.
사진은 방우영 명예회장(왼쪽)의 팔순 잔치 모습.조선일보가 주장하는 ‘박근혜 전 대표 포용’과 ‘이상득 의원 퇴진’은 바로 큰 틀의 ‘권력구조 개편’이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을 극도로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조선일보의 이런 주장을 이명박 대통령은 받아들일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변수를 살펴야 한다. 먼저 조선일보가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견제 세력으로 나선 이유다. 일단 상업적 판단을 들 수 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 편집국 종례식에서 한 편집국 간부가 기자들에게 “지난 10년간 좌파 정권 하에서 조선일보가 고생을 많이 했다. 정권 교체를 이뤄냈지만 앞으로 더 조심해야 한다. 위치를 잘 잡아야 한다.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독자에게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의 곁불만 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기조는 이명박 정부 집권 1년을 넘어서면서 더욱 강화된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집권 1년의 성과를 조명하는 기사를 주로 내보낼 때 조선일보는 “지난 1년간 대통령이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없다’ 또는 ‘모르겠다’고 답한 국민이 75%에 이른다”라며 비판적으로 다뤘다. 사설에서도 “국민의 이런 메시지를 바로 들으려면 대통령, 그리고 이 정권의 실세라는 사람들은 거울을 달고 그 속에 비친 자신들의 얼굴이 집권 1년 만에 얼마나 어떻게 변했나부터 냉철하게 살필 줄 알아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정부 비판은 전략적 선택지난 3월5일, 방상훈 사장은 창간 89주년 기념식에서 “조선일보는 우리 사회의 중심축이고 기둥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우리의 조선일보를 굳건히 지켜나가겠다”라고 말하며, 조선일보의 방향과 관련해 “우리는 독립적이고 탈권력적으로 가야 한다. 과거 정치권력에 편승한 어떤 집단도 결국 부나방이 되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한 조선일보 기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낮아지면서 비판적 기조가 사장부터 편집국 간부를 거쳐 기자들에게까지 두루 공유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 기조는 어디까지나 원칙론일 뿐이었다. 현실적으로 조선일보는 ‘방송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뤄야 했기 때문에 정권에 대해 비판적 태도만 견지할 수 없었다. 올해 신년사에서 방 사장은 “이제 실험은 끝났다. 시행에 옮겨야 할 때다”라며 방송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조선일보는 다른 보수 신문과 마찬가지로 신문사의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미디어법 개정에 집착했다. 이때 조선일보의 기준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미디어법 개정에 도움이 되면 선이고 방해가 되면 악이었다. 정기국회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고 버티자 “시종일관 입법부 수장답지 못했다”라고 비판했다가 3월 임시국회에서 직권상정으로 야당을 압박해 여당 주장을 수용한 수정안을 받아들이게 만들자 ‘김형오의 고도전략’이라고 칭찬했다. 이상득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태도도 지금과는 정반대였다. 미디어법 개정을 뒤에서 지휘한 이 의원에게는 호의적이었던 반면 이를 방관한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종교 지도자냐’며 비판하기도 했다. 1월12일 김대중 고문은 칼럼에서 “당이 진통할 때는 딴전 보고 있다가 막판에 나타나 스스로 정치권의 대모인 양 ‘재판’을 한다. 야당이 ‘MB 악법’이라며 폭력으로 저지하고 있는 여당의 법안들을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는 법’이라며 단칼에 매도했다”라고 비판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오른쪽 사진 오른쪽)은 방일영·방우영 등 선대 사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권과 관계를 맺고 있다. 권력과의 야합을 넘어선 ‘권력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그런데 이런 태도가 왜 바뀌었을까? 그 답은 ‘장자연 리스트’ 수사와 관련이 깊다. 조선일보는 이 수사와 관련해 사주 일가가 연루되어 있는 것을 매우 큰 문제로 받아들였다. 사주 일가가 연관되었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이 사건을 잘 다루지 않았을 것이라는 선입관과 달리,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가장 적극 보도한 언론사였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사실 관계를 규명해 사주의 누명을 벗기려고 애썼다. 한 일간지 편집국장은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조선일보 홍준호 편집국장으로부터 두 번이나 전화가 걸려왔다. 이전에는 사적으로 통화한 적이 없는 사이였다. 조선일보가 이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루머만 범람했다. 경찰 수사 결과 발표가 연기되면서 연루설이 기정사실이 되고 있었다. 당시 김대중 고문은 칼럼에서 “조선일보 입장에서 보면 경찰도, 어느 의미에서는 정권도 이 ‘장자연 사건’의 진행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당국의 무능과 무력 또는 관음증(?)이 사태의 ‘주연’ 같고, 일부 ‘안티 조선’의 조바심이 ‘조연’처럼 보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4월13일자). 이명박 정부와 조선일보 사이에 틈새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균열의 양상을 묘사하는 말이 바로 ‘뿔난 시어머니’와 ‘못된 며느리’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집권 초반의 혼란도 극복하고, 촛불집회도 가라앉은 상황에서 계속 시어머니 구실을 하려 드는 조선일보에 이명박 정부가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 해석되었다. ‘장자연 리스트’ 수사를 계기로 조선일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기조를 강화한다. 조선일보를 흔든 정권에 대해 조선일보 역시 흔들기로 답한 것이다. ‘주류 흔들기’에 나선 조선일보가 공략한 대상은 대선 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였다. 4월11일 ‘노 정권선 노사모, 이 정권선 선진국민연대?’라는 1면 기사를 통해 포문을 연 조선일보는 다음 날 ‘선진국민연대를 둘러싼 후진적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서 거푸 비판의 화살을 퍼부었다. 소장파 부추기며 주류 흔들기조선일보와 이명박 정부의 긴장이 읽힌 대목은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의 축으로 삼는 자전거 관련 보도 태도였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대한민국 자전거 축전’을 기점으로 자전거 관련 기획기사를 여러 날에 걸쳐 여러 지면을 털어 집중 조명했다. 오직 조선일보만 이를 뜨뜻미지근하게 다뤘다. 조선일보는 비판 목소리를 적극 담아냈다. 이때부터 조선일보 지면에는 청와대와 당을 아울러 소장 개혁파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4월24일, ‘사교육과의 전쟁’을 하겠다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인터뷰를 내보내고 정두언 의원과 이주호 교육과학부 차관을 엮어서 개혁 그룹에 대한 그림을 그려준다. 이 대통령이 곽 위원장을 나무란 뒤에도 조선일보는 지속적으로 곽 위원장의 주장을 반영한 기사를 내보냈다. 한나라당의 재·보선 참패 이후에는 권력 주류에서 밀린 정두언 의원을 비롯해 민본21 등 소장파 의원을 전면에 내세우며 당 쇄신론에 불을 지폈다. 조선일보 보도 태도가 거칠어지자 한 한나라당 중진 의원은 “조선 박자와 중앙·동아의 박자가 다르다. 누구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중진은 이후 조선일보 박자에 춤을 추는 행보를 선택했는데, 재·보선 참패 이후에는 조선일보와 함께 비판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조선일보의 ‘주류 흔들기’는 재·보선 참패를 기점으로 탄력을 받았다. 대체로 이명박 정부 주류와 보조를 맞춰가는 양태로 기사를 내보냈던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천 회장 수사를 적극 보도하는 등 조선일보 보도와 톤을 맞추기 시작했다. 당 개혁과 검찰 수사도 사실상 ‘조선일보 프레임’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조선일보 프레임’의 골자는 이상득 배제와 박근혜 복귀로 집약된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2월 말 비밀회동을 한 사실을 보도하며 이에 대한 군불을 지폈다. ‘김무성 원내대표’라는 절충안을 박 전 대표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상황이 꼬였지만 조선일보는 계속 이에 집착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다음 수를 어떻게 둘지 주목된다. 조선일보와 이명박 정부의 기 싸움과 관련해서는 올해 초 개각 논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조선일보가 설 연휴를 기점으로 부분 개각이 단행될 것이라고 보도하며 흔들었지만 청와대는 이를 부인하며 맞섰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보도한 대로 경제 부처 장관이 교체되고 국정원장·경찰청장 등 사정기관장 역시 교체되었다. 특히 조선일보가 강력히 교체를 주장했던 강만수 경제팀 경질이 이뤄지면서 이 싸움은 조선일보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되었다. 박근혜 전 대표 포용과 함께 관심을 모으는 지점은 청와대 참모진 개편 여부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수석 보좌진을 교체한 지 1년이 되는 6월을 기점으로 본다. 참모진 교체까지 이뤄진다면 ‘조선일보 프레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절대 권력의 싸움이 본격화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친형을 버리고 ‘뿔난 시어머니’ 조선일보를 달래고 갈지, 관심을 모은다.
가자서작성일
2009-05-1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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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이명박 - 국민들이 뭐라고 해도 나의 길을 갈것 -
[중앙일보] 2009년 02월 01일(일) 오전 05:23 [중앙일보 윤창희.구희령] 이명박 대통령이 '1박2일'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장·차관급 98명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집권 2년차 국정철학을 공유하기 위한 국정워크숍을 연 것이다. 바로 전날 tv토론을 통해 '내 스타일'대로 국정을 이끌어갈 것임을 천명한 이 대통령은 이날 워크숍에서도 강력한 국정 드라이브를 예고했다.중앙*day가 'mb식 마이웨이 2.0 버전'의 이면을 취재했다.#1=지난 설 연휴를 전후해 전국 13개 고속도로 요금소와 서울역, 김포공항 청사에는 정부 정책 홍보책자 50만 부가 뿌려졌다. 청와대 홍보기획관실과 정부 부처들이 만든 ‘2009 설 고향 가는 길’이란 제목의 60여 쪽짜리 책자에는 몇 가지 생활정보와 함께 주요 국정과제인 4대 강 살리기와 미디어법안의 정당성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설 민심을 여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청와대가 직접 대국민 홍보전에 나선 것이다. #2=당초 설 직전으로 예정됐던 ‘대통령과의 원탁대화’는 용산 재개발 농성자 사망 사건이 터지면서 취임 1주년(2월 25일) 때까지 미뤄지는 분위기였다. 1월 말에 할 경우 ‘취임 ○○○일’ 하는 식의 계기를 찾기 어렵고 신년 연설을 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다소 뜬금없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과 며칠 전에 행사가 전격 결정된 데는 2일 시작하는 임시국회에서의 ‘2차 입법전쟁’과 주말 반(反)정부 집회를 앞두고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내용도 자성과 반성이 중심이었던 지난해 국민과의 대화와 달리 ‘용산 참사’ ‘미디어법’ 같은 민감한 현안에 대해 자신감 있고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며 강력한 국정 드라이브를 예고하는 것이었다.“말로만 희망, 희망 하면 믿어 주겠나”31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검은색 관용차 수십 대가 잇따라 모습을 보였다. 1박2일 일정으로 열린 ‘경제위기 극복과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장·차관급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위원 및 후보자 18명, 장관급 인사 5명, 수석비서관 이상 청와대 비서진 13명과 차관급 53명, 대통령 특보 4명, 대통령자문위원장 6명 등 98명이 차례로 도착했다. 전날 자정 무렵까지 생방송을 한 이 대통령과 곁에서 지켜본 일부 청와대 참모는 불과 5시간 남짓 눈만 붙이고 나온 셈이다.워크숍이 시작될 무렵 이 대통령이 전날 인선이 발표된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에게 “최신 내정자”라고 농담을 던지며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토론이 본격화하면서 이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대통령은 “국민이 올해는 인내해 주겠지만 내년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우리를) 믿지 않을 것”이라며 분발을 촉구했다. 청와대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집권 2년차 국정운영’)과 박형준 홍보기획관(‘국정운영 철학과 방향’)의 발제 후 곧바로 분임토론이 이어지면서 워크숍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첫 주제인 ‘경제위기 극복과 성공적인 국정운영 전략’을 놓고 참석자들은 4개조로 나뉘어 토론을 한 뒤 오후 3시 다시 모여 각 조의 분임토론 결과를 놓고 집중 토론을 했다. 이날 오후에 시작된 두 번째 주제 ‘일자리 안정과 창출을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밤늦게까지 분임토론이 진행됐다.이날 토론에서는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 방안와 4대 강 정비사업의 구체적 내용을 놓고 참석자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도 토론을 독려하면서 발상의 전환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주문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최근 경제위기 상황을 언급하면서 “현재 우리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과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며 “이제는 우리가 튼튼한 신발을 신고 가시밭길을 헤치며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말로만 희망, 희망 하면 국민이 믿어주겠느냐”며 “먼 훗날 오늘을 돌아볼 때 ‘100년에 한 번 있을지 모를 위기를 이렇게 극복했노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몸을 던지는 열정과 긍지로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행사에 참석했던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3월 국정워크숍의 경우 새 정부 출범을 맞아 국정 철학을 교감하는 자리였다면 이번 워크숍은 ‘마지막 승부’를 앞둔 긴급 작전타임 같은 분위기였다”며 “올해 어떻게든 정권의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는 대통령의 결의와 의지가 충분히 공유되는 자리였다”고 전했다.‘내 방식대로 간다’ mb식 마이웨이“(인사 문제를 두고) 미국 정치를 보라고 하는데, 말하는 사람이 미국 수준이 됐으면 좋겠다.”→“용산 문제를 갖고 정치적 이슈를 만들어 다른 문제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책임 있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정부가 언론) 눈치를 보는 시대인데 미디어법을 놓고 야당이 방송 장악이라고 몰아치며 있을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지난달 30일 tv토론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예상보다 다소 공격적이었다. 지난해 9월 국민과의 대화가 ‘조각 실패 논란’ ‘미국산 쇠고기 파동’ ‘불교계와의 갈등’ 등에 대해 자성하는 톤이었다면 이날은 시종일관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정부 정책을 정치 이슈화하려는 시도에 대한 거부감도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반대 여론이 심한 수도권 규제 완화나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 행정인턴제 등 청년실업 대책에 대해서는 강한 어조로 반박하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집권 첫해의 국정 난맥상에서 벗어나 나름의 자신감을 찾은 듯한 모습이었다.행사를 지켜본 한나라당 의원들은 집권 2년차 ‘mb 드라이브’의 핵심을 ‘탈(脫)정치, 경제 최우선주의’로 요약했다. ‘여의도’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정책을 통해 직접 국민의 평가를 받아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얘기다. 경제위기 극복에 집권 2년차 승부수를 띄우면서 4대 강 정비 사업 등 정치적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거리가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음에도 ‘그리 서먹서먹한 관계는 아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mb 발언을 들으면서 여의도 정치에 대한 이해 부족과 무관심·반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평했다. 정치 이슈나 역학관계에 초연하면서 ‘내 방식대로 간다’는 mb식 마이웨이가 본격화될 것이란 분석이다.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최근 모습은 집권 초와 비교할 때 포장만 약간 바꿨을 뿐 ‘내 식대로 정책에서 승부를 본다’는 ‘mb식 마이웨이의 2.0 버전’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30%에 가까운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해 온 데다 최근에는 인기가 급락한 한나라당 지지율을 앞지른 외부적 여건도 자신감 회복의 또 다른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지난달 30일 발표된 이달곤 행안부 장관 카드도 당에서 추천하고 발표까지 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한 꺼풀만 들춰 보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힘들다.한나라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비례대표 의원이긴 하지만 이달곤 후보자는 누가 봐도 교수로 보는 게 옳다”며 “당이 함께 추천한 안상수·김무성·허태열 의원이 아닌 이 후보자가 낙점을 받은 것은 mb의 ‘정치인 디스카운트’가 여전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번 개각을 통해 집권 2년차 권력의 무게중심을 여의도에서 청와대와 정부로 옮겨 국정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이 대통령의 생각이 확고히 드러났다는 얘기다.이 대통령은 원탁대화에서 자신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도 강하게 받아쳤다. “인사에 대한 많은 지적을 다 감안하면 배가 산으로 간다”거나 “옛날에는 장관이 잘못했다고 신문에 나면 그 사람을 내보냈다는데, 옳은 게 아니다”며 자신의 스타일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여야에 입법 마지노선 제시정치권은 이 대통령이 올해 전방위적 경기부양과 함께 미디어 산업 발전과 교육 개혁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교육 문제에 강한 개혁 드라이브가 걸릴 것이란 예상이다. 이 대통령은 “한국이 다시 한번 성장하려면 교육제도를 바꿔야 한다. 여러 개혁 중 교육을 개혁하겠다는 원칙이 있다. 반드시 하겠다”고 강조했다.최근 개각에서 ‘교육 개혁 전도사’로 불리는 이주호 전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을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에 임명한 것도 이 같은 해석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교과부는 다음달 초 시·도 교육청과 지역 교육청 단위로 전국 초·중·고생의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초·중·고생의 학력평가 결과가 지역 교육청 단위로까지 공개되는 것은 처음으로 기존 평준화 체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자율형 사립고와 기숙형 공립고 확대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2월 국회의 최대 현안이 될 미디어법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은 “이 문제는 여야가 합의해 산업적 입장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의 과정에서 법안 내용의 미세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법안 통과 자체는 양보할 수 없다는 마지노선을 제시한 것이다.중앙*day 윤창희·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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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2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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