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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안재욱 미국 1달 입원비 5억
배우 안재욱이 5억원의 병원비를 낼 뻔한 사연을 공개했다.안재욱은 27일 방송된 tvN '현장토크쇼-택시'에 출연해 지난해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한달 간 병원에 입원했던 이야기를 꺼냈다.안재욱은 "미국 도착 후 식사하는 도중 속이 좋지 않았다. 피로가 누적됐구나 싶어 숙소로 올라갔다. 그런데 명치가 너무 답답했다. 구토를 하려고 하던 중 목 뒤부터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이어 그는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한 달 동안 누워있었다. 병원비가 45만달러(약 5억원)가 나왔다"고 밝혀 MC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안재욱은 "미국 병원에는 흥정문화가 있다. 생명과 맞바꾼 금액이라 싸다 비싸다를 논할 수는 없지만 현지 법조계에 자문을 구한 결과 그 액수를 다 내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해서 현재 협상 중"이라고 말했다.지주막하출혈은 뇌압이 상승해 뇌를 감싸고 있는 지주막 아래 공간에서 출혈이 일어나는 질환으로 발병 전 갑작스러운 두통과 심한 구토증상을 동반한다.안재욱 지주막하출혈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안재욱 지주막하출혈, 수술비가 5억? 장난 아니네", "안재욱 지주막하출혈, 안재욱씨 쾌유하세요", "안재욱 지주막하출혈, 건강이 제일 중요해", "안재욱, 지주막하출혈, 다행히 병원비를 조정할 수 있구나", "안재욱 지주막하출혈, 무서운 병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http://news1.kr/articles/?1606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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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이명박을 위해 뛴 연예인들
이명박을 위해 뛴 연예인들
이 사람들 티비에 나오면 바로 꺼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연예인 혐오증 이랄까.
당시 어떠한 심정으로 충성을 다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일등공신 유인촌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선봉에 섰던 연예인
윗줄 왼쪽부터 이덕화, 유인촌, 이종원, 백일섭
아랫줄 왼쪽부터 김상희, 이의정, 정흥채, 배도환
이덕화.
과거 1990년대초 당시 김영삼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가 수년간 고초를 당했고,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나서 고배를 마셨던 그는 선거캠프의 얼굴로 나섰다. .당초 자의반 타의반 나섰던 이덕화는 물불 안가리고 뛰었다.
지원단 발대식에서는 '각하 힘내십시오'란 과장발언을 했다가 일부 언론에서 '심하게 아부했다',
'독재시대에나 쓰는 충성 발언'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온몸으로 이명박 후보를 위해 총대를 멨다.
서인석
서울 잠실 합동연설회 유세지원서
이덕화와 함께 쌍두마차로 전면에 나서 이명박 후보를 위해 세몰이 구호를 외쳤다.
백일섭
대구 유세에서 잘먹고 잘사는게 최고라면서 이명박 심하게 드립쳤슴.
백일섭은 지원유세 중 이회창 후보에 대한 발언으로 설화를 겪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오작교 사람들" 이런 막장 드라마가 탄생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정흥채
문화예술지원단 발족식때부터 참가해 한나라당 합동연설회 13곳에서 가장 많은 10군데를 참여했다.
이영후
광주 합동연설회때 MB캠프에 참가했으며 열혈 한나라당 지지.
이의정
이명박 후보의 유세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 담당.
김건모
이명박 지지뿐만 아니라 18대 총선 때 서울 노원병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 지지 유세를 했다.
이종원
SBS 드라마 '날아오르다' 제작발표회장에서
'이명박이 2천여 표차로 이겼다'고 기자들앞에 속보를 전해 예기치 않은 '충성심'을 보이기도 했다.
김보성
이명박이 춘천 유세에 참여, 이명박 후보의 유세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했다.
이정길
이명박의 서울, 대전, 춘천 유세에 참여, 이명박의 유세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 18대 총선 한나라당 은평구 이재오 후보의 불광역 사거리 유세 지원 18대 총선 한나라당 대전 서구 을 나경수 후보의 거리 유세 지원18대 총선 한나라당 대구 달서구 을 권용범 후보의 거리 유세 지원 한나라당 골수파
이훈
이명박의 춘천 유세에 참여,
당시 이명박 후보가 연예인 복지책에 대해 손들어준 유일한 후보였기에 지지했다.
서세원, 현석
총선 당시 선거법 위반을 각오하고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 지지연설을 한 연예인 2명이다.
이명박 당선 후 서울 신길동에 모 식당에서는
이덕화,서인석,이영후,신충식,김상희,정흥채,이종원,박세준,서현선 등 연예인들이 축하모임에 참석했다.
진주시 대안동에서 열린 한나라당 이명박 거리유세에서 탤런트 길용우(왼쪽부터), 현석, 유인촌
유명 연예인 38명의 '이명박 지지 기자회견과 지지선언'
이명박 지지선언 연예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유인촌, 이덕화, 이순재,백일섭, 이휘재
김건모, 김민종, 김보성, 김유미, 김응석, 김재원, 박상규, 박선영, 배한성,
변우민, 신동엽, 안지환(성우), 유진, 윤다훈, 이경규, 이지훈, 이창훈, 이훈, 전혜빈, 정선경,최불암,
이경호(예술인복지회 이사장)
이 중에서 안재욱, 차태연, 소유진, 최수종, 김선아, 김원희, 박선영, 성현아, 한재석, 정준호, 에릭,
김정은, 박진희, 홍경민 은 지지 철회 를 하였다.
김건모 등 연예인 16명, 이명박 지지 선언 동영상
그밖의 기타등등 연예인들.
독고영재 - 2008.05.10 <프리존뉴스> 인터뷰를 통해 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 연예인들을 비판함.엄앵란 - 이명박 후보의 유세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 이상용 - 뽀빠이, 이명박 후보의 춘천 유세에 참여
이정용 - 개그맨 출신 연기자, 이명박 후보의 유세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
김영배 - 탤런트, 이명박 후보의 춘천 유세에 참여
이은하 - 가수, 본명 이효순, 한반도 대운하 정책을 옹호하는 노래를 발표했다.이상인 - 이명박 후보의 유세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
정진수 - 개그맨, <한반도 대운하>란 곡이 실린 앨범작업에 참여.
강남영 - 개그우먼, MB연예인지원단 소속. <한반도 대운하>란 곡이 실린 앨범작업에 참여.김한국 - 개그맨, 이명박 후보의 서울 대전 유세에 참여, 이명박 후보의 유세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 이자연 - 가수, 이명박 후보의 유세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
여운계 - 탤런트, 이명박 후보의 유세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 사미자 - 이명박 후보의 유세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 선우재덕 - 이명박 후보의 춘천 유세에 참여
안해숙 - 탤런트, 유세현장에서 직접 지지를 호소함. 이경호 - 탤런트, 이명박 후보의 춘천 유세에 참여
오은정 - <한반도 대운하>란 곡이 실린 앨범작업에 참여. 김응석 - 이명박 후보의 춘천 유세에 참여
김보성 - 이명박 후보의 춘천 유세에 참여, 이명박 후보의 유세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
김흥국 - 보수 골수분자로서 한나라당 정몽준의 멘토이며 열혈 이명박 지지.
유리 - 가수, <한반도 대운하>란 곡이 실린 앨범작업에 참여.(소녀시대 유리 아님)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L0si&fldid=Cia1&datanum=97250&sns=twitter&q=%EC%9D%B4%EB%AA%85%EB%B0%95%EC%9D%84%20%EC%9C%84%ED%95%B4%20%EB%9B%B4%20%EC%97%B0%EC%98%88%EC%9D%B8%EB%93%A4퍼온글.....그냥 재미로 보시길...개취존.....공감해서 퍼온것은 아님니다..하지만 연예인들은 공인이기에 결과에 대한 남다른 책임은 잇어야겟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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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펌][실화] 미아리 사건(나름재미있게읽어서퍼옴)
몇일전 케이블 tv에서 몇년전 영화였던 "나쁜 남자" 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조재현 씨가 출연했고 꽤 재미 있게 보았던 영화 사창가를 배경으로 다소 충격적 이였던 그 영화 하지만 나에게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영화 이기도 했다 남들에게는 그저 돈 몇만원으로 욕정을 해소하는 ,,, 가장 밑바닥 천한 여자들이 모여드는 사창가 나에게는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가장 잊을수 없었던 내 기억속에 어느 여름 항상 머리속에 마음속에 그때의 일들이 있었지만 그저 가끔 주위 몇몇 사람들에게 술자리 안주 삼아 이야기로만 들려주었던 그때의 기억 "나쁜 남자" 영화속의 사창가 풍경을 보며 나는 영화 보다는 나의 경험담을 글로 옮겨 써보아야 겠다는 생각과 귀찮다는 생각의 갈등을 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혹시라도 그날 그때 나와 함께 였던 그녀들이 이 글을 보고 서로 안부나 전할수 있도록 연락이 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새삼 그때가 그리워져 이렇게 나에 블로그에 적어 놓기로 했다 힘든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를 코앞에 두고 여느 친구들처럼 이젠 뭘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때에 동네 선배로부터 미아리에서 장사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내가 살던 곳이 미아리 에서 두세 정거장 거리인 정릉 이란 곳이였기에 동네 노는 선배들중 일부는 미아리 사창가에서 돈벌이를 찿곤 했다 그때만 해도 나에게 미아리 라는곳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은 꽤나 두렵고 망설여 지는 일이였다 아니, 더 솔직히 쫌 찝찝하기도 하고 매우 꺼려 졌다 하지만 아무 자본도 없이 일할수 있고 돈벌이도 괞찮았으며 누구 간섭 받지 않고 혼자 일 할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제대를 몇일 앞두고 그 장사를 하기로 결정 했다 드디어 그렇게도 기다리던 병장 전역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미아리 에서의 마차 장사를 시작 했다 장사 내용은 이렇다 미아리 사창가는 매우 좁은 골목으로 미로 처럼 연결된 꽤나 넓은 지역이다 그 골목 곳곳에 [마차] 라고 해서 커피나 꿀차를 파는 리어카들이 있다 사창가 영업집 과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곳에 일하는 여자분들이 한껏 치장을 하고 유리로 된 문 밖을 바라보고 앉아 있고 나는 그녀들을 서로 바라보고 앉아 있는 형태이다 그녀들과 나 사이에 사람 두명도 나란히 걷기 힘든 골목길이 있고 그녀들은 쉴새 없이 호객 행위를 한다 내가 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 하다 예를 들어, 꿀차 라는것은 30개 1박스에 2천원에 들여온다 꿀차 는 그저 뚜껑을 따고 뜨거운 물만 부어 휘휘 저어 주면 되는 방식이라 매우 간단 하다 가격은 1잔에 2천원을 받는다 꿀차 한잔을 팔면 대략 1900 원씩이 거의 내 마진인 셈이다 내가 관리 (?) 하는 가계는 6개 였다 관리라고 해서 거창한것은 아니고 나는 그 가계에 콘돔,휴지,물수건 등을 매일 공급해 준다 그리고 그 가계들은 나의 장사를 도와준다 도와주는 방식은 이렇다 그런곳에 오는 남자들은 대부분 2~3명씩 함께 온다 ,들어 갈때는 함께 들어가지만 그중 먼저 일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먼저 나온 사람은 나머지 친구들을 기다리며 함께 했던 파트너와 대화를 한다 대화 내용은 맨날 뻔하다 아가씨가 그 남자의 정력에 대해 오바하면서 치켜 세워주면 그 손님은 의기 양양해서 허풍을 떠벌려 대는 그저그런... 그럼 그 아가씨는 목이 마르다며 저기 저 꿀차 한잔 사달라고 아양을 떤다 기고 만장해진 남자는 쉽게 응한다 그때 아가씨가 응석을 부리며 "아~이 나만 먹으라고?? 우리 언니들도 한잔씩 사줘~" 하며 아직 대기(?)중인 언니들을 가리킨다 대략 4~5명 ,남자는 흔쾌히 ok~한다 이렇게 팔리는 꿀차수가 엄청 나다 장사를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하는데 이것 저것 다빼고 매일 아침 나에 순수익이 대략 30~50 만원 정도 됐었으니까.. 물론 그녀들은 그렇게 받은 꿀차를 먹지는 않는다.. 처음 일을 시작 했을때에는 일하는 내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기가 서로 내색 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민망했다 그녀들이나 나나 서로 젊은 사람들 이고 서로 무슨 직업인지 뻔히 아는데 안 민망 할수가 없다 그것도 잠시 매일 저녁 8시 오픈 할때 그녀들 가계에서 함께 밥을 차려 먹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서로 쉽게 친해졌다 하지만 각 가계들마다 이모 라고 불리는 포주들이 무섭게 관리 하고 있어서 뭐 사적인 대화를 한다거나 그러지는 못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날수록 그녀들은 나를 삼촌 이라고 부르며 서로 보이지 않는 위안이 되어갔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가지 이야기가 있다 아침 7시 정도 되면 장사를 마무리 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 나는 내 마차를 정리 하고 나서 그 골목의 일정 구간을 빗자루 로 청소를 한다 여섯 가계 수십명의 여자들이 거의 반 나체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앉아 있고 바로 코앞에서 빗자루 질을 한다는게 여간 어려운일이 아닐수 없다..(매우 민망하다,,) 그렇게 빗자루질 하고 있을때면 그녀들은 내게 짖굿은 농담을 건네며 자기들끼리 깔깔대고 웃곤 했다 그리고 나에게 응원가(?)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때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드라마가 최진실,안재욱,차인표가 출연한 "별은 내가슴에"였다 그 주제가 또한 선풍적이였다 "사랑했던~너를 잊지 못해~부디~너를 다시 볼수 있다면~" 이 노래 그 노래에 약간 개사를 해서 "사랑했던~xx삼촌~~ 잊지 못해~부디~xx삼촌 다시 볼수 있다면~" 이런식으로 그 주변 가계 수십명의 아가씨들이 짖굿게 큰소리로 청소하는 나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매우 민망하고 얼굴 빨게 지는 일이다 ㅎㅎ 그리고 또 여자들만 모여 있는곳이다 보니 못을 박거나 형광등을 갈아끼우는 등의 일도 내몫이였다 하루는 골목길을 비추어지는 형광등이 나가버렸다 작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형광등을 갈아끼우는데 또 아가씨들이 짖굿게 놀려대기 시작했다 "xx삼촌~배꼽보여요~"깔깔깔~~~ 멋적게 웃으며 형광등을 갈고 사다리에서 뛰어내리는순간 못에 걸렸는지 바지 옆 이 부욱 찟겨 나갔고 팔꿈치와 허벅지에서 피가 났다 지켜보던 이모들과 아가씨들이 놀라 뛰쳐나왔지만 아픔 보다는 민망함과 챙피함에...ㅠㅠ 그녀들은 진정 나를 걱정해 주었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여러명이 뛰쳐나와 나를 가계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빨리 바지 벗으라고 성화였다 너무 챙피해 하는 나를 보고 짖굿게 장난 치며 괞찮다고 벗으라고 했다 상처난곳에 약을 발라주고 자기들 츄리닝 바지를 건네어줬다 그리고 찢어진 바지를 꼬메어 주겠다고 서로 장난 스레~"내가 꼬맬꺼야~" "웃기지마 내가 꼬매드릴꺼야~"하며 깔깔대기도 했다 그랬다 항상 인형 처럼 꾸미고 앉아 무료하게 문밖을 내다 보고 있어야 하는 그녀들에게는 그런 소소한 일들이 재미였고 현실을 잠시라고 잊게 해주는 헤프닝 이였다 또 어느날은 내가 몸살이 너무 심하게 걸려서 이모에게 전화를 했다 너무 아파서 오늘은 쉬겠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전화를 끊자마자 전화가 빗발치듯 걸려왔다 그녀들 이였다 많이 아프냐고 병원 가보라고 그리고 자기들이 어디서 주워들은 민간 처방 까지.. 이렇게 하고 있어라 저렇게 하고 있어라 그녀들은 정말 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다음날 출근해 보면 내 마차 서랍에는 몸살 감기약 몇봉지와 아프지 말라는 메모가 들어 있기도 했다 그렇게 대략 몇 개월 정도를 그곳 미아리 에서 생활을 했고 그녀들과 나 사이에 미묘한 친밀감은 이제 가족 그 이상 이였다 여기서 잠시 그곳의 생리를 얘기 하자면 그녀들은 오후 5시에 이모 라는 사람의 인솔하에 목욕탕과 미용실을 간다 그리고 저녁 8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아침8시에 가계 문을 닫고 이모들은 퇴근을 하는데 퇴근 할때면 밖에서 문을 자물쇠로 꼭꼭 걸어 잠구고 퇴근을 한다 그래 그녀들은 그렇게 갇혀서 일하고 있는것 이다 감금이라고 보는게 맞다 나중에 알게 된일이지만 그녀들 대부분은 빚에 묶여서 도망갈 생각도 못했고 또 대부분은 중 고등학교 중퇴자들이라 언어구사 라던가 생각 자체가 일반인들보다는 매우 떨어지는것을 느낀적이 매우 많다 모두 개개인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어쩔수 없이 할수 있는 일은 몸을 팔고 웃음을 파는 일뿐이였다 하지만 장담 하건데 그 수십명의 여자들 중에 내가 느끼기에 참 못됐다 라고 느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모두 가슴 따뜻하고 정에 굶주려 있고 따뜻한 정이 있는 여자들이였다 그 이후로 이곳 저곳에서 많은 여자들을 대해왔지만 대부분 약싹빠르고 계산적이고 자기 잘난맛에 살아가는 일반 여자들을 봤을때 매우 심리적으로 혐오감을 느낀적이 많다 그래서 내 주위에 누군가가 사창가 또는 몸을 파는 여자들을 아주 비하 하는듯한 얘기를 하면 괜히 화가나서 열변을 토했던 적이 많다 나 또한 그곳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그런식의 시선으로 보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그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모르듯이 나또한 그런 그녀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마음이 향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런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분들을 비하하는 생각 일절 없다 그러던 어느날 이 이야기의 핵심인 대 사건(?) 이 벌어졌다 여느때와 같이 그날도 서로 마주보고 장사를 하고 있을때쯤 내 바로앞 가계 안에서 심상치 않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뛰어 들어가려 했으나 앉아 있는 아가씨들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말렸다 무슨 일인지 매우 궁금했다 아가씨들도 매우 곤란하고 당황 하는듯했다 잠시후 그 고함 소리가 가까워졌는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가계 이모였다 뭔가 매우 화가나서 아가씨중 한명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가씨의 머리채를 끌고나와 발로 밟고 때리고 구타를 했다 이거 안되겠다 싶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모이기에 껴안고 웃으면서 말렸다 "에~이 이모 왜그래~참아요 참아~" 하면서 무서움에 눈치만 보고 있는 아가씨들에게 눈치로 싸인을 줬다 벌거벗은채로 매맞고 있던 그녀를 몇몇 아가씨들이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나와 다른 아가씨들 몇명이 괜한 아양으로 이모 화를 풀어주려고 이모를 데리고 나왔다 커피 한잔을 타주고 담배를 건네며 이모의 마음을 진정 시키려 노력했다 그렇게 때린 이유는 한쪽다리가 없는 손님이 와서 그녀를 초이스 했는데 그녀가 인상을쓰며 손님을 거부 했다는 그 이유였다.. 그래서 버릇을 고쳐놓기 위해 그렇게 그녀를 두들겨 팼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속이 매우 복잡해졌다 평소에 아가씨들에게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며 마치 그녀들의 어머니 처럼 따뜻하던 그 이모 라는사람이,, 그 속 생각은 그녀들을 사람이 아닌 장사 하는 도구쯤으로 여기고 있다는것에 정말이지 너무 화가 났고 역겨웠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아까 매를 맞았던 그녀는 다시 화장을 고치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채 자기 자리에 앉아 멍하니 문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아니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꼬옥 깨물고 문밖을 바라보고있었다 나와 마주보고 앉아 있는데 정말 내가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나와 눈이 마주친다면 그녀는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모멸감을 느낄지... 평소에 삼촌 삼촌 하며 장난치던 사람에게 ... 자신이 발가벗은채 방바닥에서 얻어맞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는게.. 매우 난감했고 또한 머리속도 복잡해졌다 그날은 평소의 그녀들이 아니였다 아까 있었던 일들에 대해 그녀들은 매우 화가 나있고 억울해 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난 그녀들 을 도와주고 싶었다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줄수 있을까?? 한가지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에는 매우 망설여지는 위험한 일이였다 그날 장사를 하는둥 마는둥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아침이 왔고 나는 그녀들 에게 평소 보다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작별 인사를 한후 퇴근(?)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택시를 타고 집에가서 잠을 잤겠지만 그날은 미아리 근처 어딘가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웠다 아침 10시 작은 철근 쇠 막대기를 하나 구해서 품속에 넣고 다시 사창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평소와 다름없이 모든 가계는 커튼이 쳐져있고 밖에서 걸어잠군 자물쇠들이 걸려져있고 인적 없이 조용했다 아까 그 가계 앞에 도착했다 이모들은 모두 퇴근을 한것 같았다 담배를 한대 피우며 주변 동태를 살핀후 철근을 꺼내어 자물쇠 사이에 끼워넣고 힘을 줘서 비트니까 쉽게 자물쇠가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내가 관리(?) 하던 가계 6개의 자물쇠를 모두 뜯어냈다 소리에 놀라 무슨일인가 내다보던 그녀들에게 얘기했다 도망갈사람은 지금 빨리 도망 가라고 그녀들은 매우 곤란하며 또한 고민하는듯하더니 이내 모두 안으로 들어가서 각자 짐을 챙겨 나왔다 그리고 서로 짧은 인사들을 나누고 각자 흩어졌다 나도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일단 상계동 쪽으로 도망 쳤다 정말 손발이 벌벌벌 떨리고 내가 무슨일을 저질렀나 싶기도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걷거나 서있을수가 없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완전 다리가 풀려버렸다 어딘가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휴대폰을 받을까 말까..혹시 벌써 들켜버린걸까... 지금처럼 발신번호 표시가 되지도 않는 때였기에 내 휴대폰이 울릴때마다 다리에 힘은 점점더 빠져 갔다 사람이 극도로 두려우면 숨을 쉬기도 힘들다 ,손도 발도 왜그렇게 떨리던지... 공중 전화를 통해 내 휴대폰 음성 사서함 을 들어보았다 아까 도망갔던 그녀들이 각자 고맙다고 언제 한번 꼭 보자는 내용의 메세지들이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침에 어느 공원에서 젊은놈이 펑펑 울어대니 산책 나와있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정말 무섭고 두려웠다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다가와서 나를 잡아갈것 같았다 하지만 이모들은 오후 5시쯤 출근을 하니까 아직 은 이 사실을 모를것 같았다 잠시후 다시 음성 메세지를 확인했더니 아까 도망 갔던 아가씨들중 한명이 자기들 지금 돈암동에 있으니까 만나자고 했다 나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약속했던 여관으로 들어가니 5명이 모여있었다 그때 잊을수 없던 기억이... 나는 매일 그녀들을 진한 화장을 한 얼굴들만 보아왔었다 하지만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다시 보니 너무도 어린아이들이였다 그때 처음으로 서로에 대해 사적인 이야기 들을 나누었는데 모두 17~19살 정도 나이어린 아이들이였다 가슴이 막막해졌다 그리고 내가 잘한짓을 했다고 여겨졌다 그 아이들은 나에게 너무 고맙다고도 했고 앞으로 어떻게 도망쳐 다닐꺼냐고 걱정도 해주었다 그러던중 한 아이가 자기집이 강원도 인데 모두 함께 내려가자고 했다 어차피 갈곳도 없는 우리였고 또한 최대한 멀리 도망 가야 했기에 모두 기뻐했다 그렇게 강릉에 도착했다 그 아이에 집은 매우 허름했고 어머니라는분이 한분 계셨는데 간만에 보는 딸과 우리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녀 또한 그런 어머니에게 별반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그녀 집 에서의 도피(?)생활이 시작되었다 물론 내 휴대폰은 계속 울려댔고 받지는 않았다 혼자 밖으로 나와 음성메세지를 확인해 봤는데 이미 음성메세지에는 그곳 이모들과 무서운 남자들의 목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좋게 말할때 빨리 연락해라 너 죽여버린다 등의 내용들.." 정말 다리가 후들거리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 강릉에서 우리 6명은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함께 요리도 하고 바닷가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술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협박 메세지는 계속 쌓여만 갔다 정말 두렵고 무서워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괜히 이곳 강원도에 있어도 쉽게 잡힐것 같다는 두려움도 들고,,, 그때큰 결심을 했다 경찰서에 신변 보호를 요청 하기로,, 일단 미아리를 관할 하는 경찰서가 종암 경찰서 이다 사실 쫌 두렵기도 했다 경찰과 그런 업소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사이란걸 어디서 많이 줏어들었기에.... 그래도 그때 내가 믿을수 있는곳은 경찰 뿐이였다 어느 형사와 통화 연결이 되었을때 그간의 일을 상세히 설명을 했다 형사가 차분히 듣더니 직접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직접 만나기는 쫌 꺼려진다고 죄송하지만 사실 꺼려진다고.. 그랬더니 걱정하지 말고 자기들이 강릉으로 내려올테니 강릉 경찰서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같이 내려온 5명의 여자 아이들도 함께 나오라고 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일단은 나혼자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고 여자 애들에게 그 일을 얘기하고 일단은 경찰서 근처까지 함께 갔다가 여차 하면 모두 흩어져서 도망가라고 당부를 했다 나도 아이들도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다음날 아이들과 강릉 경찰서로 갔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신호를 보내기로 하고 나혼자 경찰서로 들어섰다 방금전 아이들이 눈물흘리며 걱정하는 모습이 잊혀 지지가 않았다 서울에서 내려온 형사 두명과 인사를 나눈후 그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행히 두분 모두 친절했다 그런데 형사분들 에게서 뜻밖의 얘기를 들을수 있었다 "사실은 종암경찰서에서 미아리 텍사스에 관한 아주큰 수사가 진행 되고있는데 관련자들의 증언과 진술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극비로 진행 되는 일이기에 자기들도 매우 조심스러운 상태라고도 했다 그리고 우리의 신변보호는 자신들이 책임져 주겠다고도 했다" 또 하나 충격 적이였던건 사건이 벌어진지 대략 3~4일 정도밖에 안되어 있는데도 형사들은 나에 사건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 충격이였다 하지만 다소 황당한 이야기가 "내가 청량리 588의 똘마니인데 미아리로 위장 취업해서 여자들을 꼬셔서 청량리 사창가로 빼돌렸다는 식으로 엉뚱한 소문이 퍼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사실 자기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이제 사실을 알고 보니 젊은 사람이 참 용기 있는 일을 해주었다고도 했다 나는 고민 끝에 밖에 기다리고 있는 동생 들을 모두 들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각자 종이 에 빽빽히 진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도 몰랐던 많은 얘기들이 있었다 각자 선불로 빚을지게 만들고 그 선불에 말도 안되는 이자들이 쌓여서 도망도 못가게 자물쇠로 걸어잠그고 일을 시켰으며 임신할경우 병원도 아닌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이상한 약을 먹여서 애를 지우게 하고 매일 구타가 이루어졌으며 등등... 그때 마음이 찡했다 .. 자기들은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내가 다치거나 아프면 나를 먼저 걱정해주고 조금은 호들갑스럽다 할정도로 나를 챙겨주던 모습들이 떠올라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형사들은 돌아갔고 나도 동네 친구들과 연락하며 미아리의 동태를 살펴보기도 했다 결과는 내가 예상했던 그 이상 이였다 이미 그곳 이모들과 건달들은 나를 찿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그들의 분노는 상상 그 이상 이였다 일단 강릉에서 그렇게 계속 지낼수만은 없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제 각자 흩어져서 자기 삶을 살아가자고 제안을 했다 아직 어리고 철없는 아이들이 울고 불고 하며 이렇게 함께 살자고 했다 자기들이 돈벌어 올테니 모두 이렇게 함께 살자고.. 그날 우리는 펑펑 울었다 정말 서로 서로 불쌍 하고 가엽어서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다시는 그런일에 발들이지 말고 학교 중단한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가고 제대로된 직장에 취직을 해서 서로 다시 만나자고 굳게 약속을 했다 다음날 막상 떠나왔으나 갈곳이 없었다 삼척에 혼자 살고 있던 친구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삼척에서 별달리 하는일도 없이 지내고 있을때쯤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 사건이 있은지 한달이 조금더 지난 때였다 뉴스에 믿지 못할 일이 보도 되고 있었다 종암경찰서에 우리나라 최초로 여자 경찰 서장이 부임을 했는데 가장 먼저 선언한것이 미아리 사창가를 뿌리 뽑겠다는.. 한마디로 미아리 사창가를 초토화 시키겠다는... 그것이 지금 있는 성매매 특별법의 시초였다 아~그때 그 형사분들이 비밀리에 진행중 이였다는 것이 이거였구나 싶었다 다른 그 어떤 누구보다도 더욱 관심을 갖고 그 사건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에 종암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사건 진술을 해달라고.. 몇일 망설임 끝에 명동에서 형사들을 만나 함께 차를 타고 종암경찰서로 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미 경찰서 앞은 미아리 사창가 업주들과 포주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차안에서 최대한 얼굴을 가리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섰고 신변보호 와 익명성 보장을 요구한후 그간에 내가 보았던 사실들을 모두 진술했다 나머지 여자 아이들과 연락은 하고 있었지만 형사들 에게는 그녀들 의 연락처를 모른다고 했다 그 아이들에게 다시 이런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종암경찰서 여 서장의 미아리 초토화 작전은 거세어졌고 매일 뉴스에서는 미아리에 대한 보도들이 계속 흘러 나왔다 몇몇 연락하는 형 들에게 전해 듣기로는 이번 종암 경찰서 수사 자체가 내가 밀고를 해서 이렇게 된것이라고 까지 확대 되어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고 넌 이제 잡히면 인생 종치는거라고 도대체 어쩔라고 이런일을 저질렀냐고.. 이젠 숨어서 살아 가라고 그런 두려운 걱정 섞인 말들을 전해 들었다 미아리 업주들 사이에 내 이름은 이미 유명해져 있다고 했다 전국구 건달들이 나를 찿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도 했고 그날 도망 갔던 몇몇 여자애들이 다시 붙들려 와서 그 사실이 맞다고 업주들에게 증언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이제는 23살 청년이 혼자 견뎌내기에는 이미 너무나도 큰 사건이 되어버렸다 정말 자살을 하고 싶을 정도로 두렵고 무서웠다 솔직히 제 아무리 건달들 이라도 내가 어디 있는지 날 찿아내겠나 싶겠지만 그때는 정말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에는 나설수가 없을정도로 공포에 나날들 이였다 일단 숨을곳이 필요했기에 경기도 이천에 있는 어느 방직공장에 취직을 했다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쉬는날에는 밖에도 나가지 못했고 한곳에 오래 머무를수 있는입장이 아니였기에 숙식이 제공되고 서울만 아니면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미아리 사창가는 없어져 갔고 그 2년 사이에 그곳에서 화재 사건이 일어나 윤락녀 몇명이 사망 하는등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정신과에 가서 심리 치료도 받고 점점 안정을 되 찿아 갔다 그러고 3년정도 지나서 마음에 안정도 되 찿았고 내 자신이 떳떳 하기에 다시 미아리로 찿아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내가 떳떳하다는것을 입증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 마음에 짐을 덜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생활을 찿고 싶었다 그리고, 겁도 없이 찿아갔다 이미 많은 가계들은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고 몇몇 가계들만 불이 켜진채 손님들 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도 나를 알아 보는 사람은 없었다 가계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포주 아줌마들에게 예전 그 가계의 이모 이름을 대며 수소문하며 찿아 다녔다 모두 나를 무슨 형사쯤으로 아는지 대답을 피했다 메모지에 연락처를 적어주고 내이름을 말해줬다 그들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태도가 돌변하더니 뺨 을 때리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발길질을 해댔다 "너 때문에 미아리가 이지경이 됐다고 죽여버리겠다고" "다 너때문이라고....." 하지만 대응하지도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 한참후에 그곳 미아리에 있는 해병대 초소 앞에서 예전의 그 이모들중 두명을 만날수 있었다 나를 원망스런 눈초리로 처다보며 온갖 욕을 퍼부어 댔다 하지만 나는 떳떳했다 나는 3년전 그날 내가 왜 그랬는지 ,또한 그 일이 잘못한일이 아니였다고 나름 조리있게 대꾸했다 그러나 서로 말이 통할리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뭔가 결론을 짓고 내 생활을 찿고 싶었다 이모들은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나는 어떤 아저씨들에게 끌려가 얼음 창고에서 정말 죽지 않을 만큼 얻어 맞았다 나는 그 종암경찰서 여서장의 사건과 내가 저지른 사건이 관련 없음을 그리고, 다른 이익을 위해서 저지른 일이 아님을 주장했고 그들은 주먹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 다음날 풀려나와 다시 미아리 근처에서 나를 보면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만 받고 그 일은 그렇게 일단락 되었다 그날 눈과 입술이 퉁퉁부었고 온몸이 쑤시고 다리를 절름 거리며 걸어나와서 피우던 그 담배 한모금이 그렇게 맛이 좋을수가 없었다 이 글의 첫 시작이였던 군 제대날 보다도 나에게는 그날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내 3년동안의 도피 생활은 끝이 났고 내 마음속의 짐도 그때서야 내려놓았다 그이후로도 가끔씩 그녀들이 생각나곤 한다 이미 10 여년이 지나서 얼굴도 이름도 전혀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녀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때 그날 있었던 일이 그녀들의 삶에 도움이 되었을까?? 내가 옳은 일을 했던 것일까?? 만약 이글을 읽게 되어 연락이 닿을수 있다면 서로에게 매우 부끄러운 과거 였지만 소주 한잔 하며 지난 일들을 추억해 보고 싶다 내가 사는곳이 미아리 근처 이기에 가끔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미아리를 지나갈 일이 있다 그럴때면 버릇처럼 그곳에 내려 그 골목길을 걷곤 한다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해서 거의 흔적이 사라지긴 했지만 별볼일 없이 살아온 내 자신에게는 가장 뿌듯하고 용기 있는 일들이였기에 그때를 추억해보기도 한다...... 그곳에서 흘려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눈물과 한이 느껴 지는것같아 마음이 저려오기도 한다 남들에게 몸파는년 이라 손가락질을 받지만 각자 가슴속에 품고 있을 아픔들을 내색도 못하고 다만 몇만원에 아무 남자 품에 안길수 밖에 없었던 그 뼈저리게 아픈 기억들을 그녀들이 모두 잊고 10년이 지난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기도해 본다.. 펌 : 공포베스트 ( 생각해보니 공포물은 아닌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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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진정한 용자
몇일전 케이블 tv에서 몇년전 영화였던 "나쁜 남자" 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조제현 씨가 출연했고 꽤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사창가를 배경으로 다소 충격적 이였던 그 영화
하지만 나에게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영화 이기도 했다
남들에게는 그저 돈 몇만원으로 욕정을 해소하는 ,,,가장 밑바닥 천한 여자들이 모여드는 사창가
나에게는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가장 잊을수 없었던 내 기억속에 어느 여름
항상 머리속에 마음속에 그때의 일들이 있었지만
그리고 주위 몇몇 사람들에게 그저 술자리 안주 삼아 이야기로만 들려주었던 그때의 기억
"나쁜 남자" 영화속의 사창가 풍경을 보며 나는 영화 보다는
나의 경험담을 글로 옮겨 써보아야 겠다는 생각과 귀찮다는 생각의 갈등을 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혹시라도 그날 그때 나와 함께 였던 그녀들이 이 글을 보고 서로 안부나 전할수 있도록 연락이
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새삼 그때가 그리워져 이렇게 나에 블로그에 적어 놓기로 했다
힘든 군생활을 마치고
거의 제대 할때쯤 여느 친구들처럼 이젠 뭘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때에
동네 선배로부터 미아리에서 장사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내가 살던 곳이 미아리에서 두세 정거장 거리인 정릉 이란 곳이였기에
동네 노는 선배들은 거의 미아리 사창가에서 돈벌이를 찿곤 했다
그때만 해도 나에게 미아리 라는곳에서 장사를 한다는게 꽤나 두렵고 망설여 졌다
아니 더 솔직히 쫌 찝찝하기도 하고 매우 꺼려 졌다
하지만 아무 자본도 없이 일할수 있고 돈벌이도 괞찮았으며 누구 간섭 받지 않고 혼자 일 할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제대를 몇일 앞두고 그 장사를 하기로 결정 했다
드디어 병장 전역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미아리 에서의 마차 장사를 시작 했다
장사 내용은 이렇다
미아리 사창가는 매우 좁은 골목으로 미로 처럼 연결된 꽤나 넓은 지역이다
그 골목 곳곳에 [마차] 라고 해서 커피나 꿀차를 파는 리어카들이 있다
사창가 영업집 과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곳에 일하는 여자분들이 한껏 치장을 하고 유리로 된 문 밖을 바라보고 앉아 있고
나는 그녀들을 서로 바라보고 앉아 있는 형태이다
그녀들과 나 사이에 사람 두명도 나란히 걷기 힘든 골목길이 있고
그녀들은 쉴새 없이 호객 행위를 한다
내가 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 하다
예를 들어 꿀차 라는것은 30개 1박스에 2천원에 들여온다
꿀차 는 그저 뚜껑을 따고 뜨거운 물만 부어 휘휘 저어 주면 되는 방식이라 매우 간단 하다
하지만 1잔에 2천원을 받는다
꿀차 한잔을 팔면 대략 1900 원씩이 거의 내 마진인 셈이다
내가 관리 (?) 하는 가계는 6개 였다
관리라고 해서 거창한것은 아니고 나는 그 가계에 콘돔,휴지,물수건 등을 매일 공급해 준다
그리고 그 가계들은 나의 장사를 도와준다
도와주는 방식은 이렇다
그런곳에 오는 남자들은 대부분 2~3명씩 함께 온다 물론 함께 들어가지만
그중 먼저 나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먼저 나온 사람은 나머지 친구들을 기다리며 함께 했던 파트너와 대화를 한다
대화 내용은 맨날 뻔하다
아가씨가 그 남자의 정력에 대해 오바하면서 치켜 세워주면 그 손님은 의기 양양해서 허풍을 떠벌려 대는 그저그런...
그럼 그 아가씨는 목이 마르다며 저기 저 꿀차 한잔 사달라고 아양을 떤다
기고 만장해진 남자는 쉽게 응한다
그때 아가씨가 응석을 부리며 "아~이 나만 먹으라고?? 우리 언니들도 한잔씩 사줘~"
하며 아직 대기(?)중인 언니들을 가리킨다
대략 4~5명 ,남자는 흔쾌히 ok~한다
이렇게 팔리는 꿀차수가 엄청 나다
장사를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하는데 이것 저것 다빼고 매일 아침 나에 순수익이 대략 30~50 만원 정도 됐었으니까..
물론 그녀들은 그렇게 받은 꿀차를 먹지는 않는다..
일하는 내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기가
처음에는 서로 내색 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민망했다
그녀들이나 나나 서로 젊은 사람들인데 서로 무슨 직업인지 아는데 안 민망 할수가 없다
저녁 8시 오픈 할때 그녀들 가계에서 함께 밥을 먹기 때문에 쉽게 친해졌다
하지만 각 가계들마다 이모 라고 불리는 포주들이 무섭게 관리 하고 있어서 뭐 사적인 대화를 한다거나
그러지는 못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날수록 그녀들은 나를 삼촌 이라고 부르며 서로 보이지 않는 위안이 되어갔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가지 이야기가 있다
아침 7시 정도 되면 장사를 마무리 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
나는 내 마차를 정리 하고 나면 그 골목의 일정 구간을 빗자루로 청소를 한다
여섯 가계 수십명의 여자들이 거의 반 나체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앉아 있고
바로 코앞에서 빗자루 질을 한다는게 여간 어려운일이 아닐수 없다..(매우 민망하다,,)
그렇게 빗자루질 하고 있을때면 그녀들은 내게 짖굿은 농담을 건네며 자기들끼리 깔깔대고 웃곤 했다
그리고 나에게 응원가(?)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때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드라마가 최진실,안재욱,차인표가 출연한 "별은 내가슴에"였다
그 주제가 또한 선풍적이였다
"사랑했던~너를 잊지 못해~부디~너를 다시 볼수 있다면~" 이 노래
그 노래에 약간 개사를 해서
"사랑했던~xx삼촌~~ 잊지 못해~부디~xx삼촌 다시 볼수 있다면~" 이런식으로
그 주변 가계 수십명의 아가씨들이 짖굿게 큰소리로 청소하는 나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매우 민망하고 얼굴 빨게 지는 일이다 ㅎㅎ
그리고 또 여자들만 모여 있는곳이다 보니 못을 박거나 형광등을 갈아끼는 등의 일도 내몫이였다
하루는 골목길을 비추어지는 형광등이 나가버렸다
작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형광등을 갈아끼우는데
또 아가씨들이 짖굿게 놀려대기 시작했다
"xx삼촌~배꼽보여요~"깔깔깔~~~
멋적게 웃으며 형광등을 갈고 사다리에서 뛰어내리는순간 못에 걸렸는지 바지 옆 이 부욱 찟겨 나갔고
팔꿈치와 허벅지에서 피가 났다
지켜보던 이모들과 아가씨들이 놀라 뛰쳐나왔지만
아픔 보다는 민망함과 챙피함에...ㅠㅠ
그녀들은 진정 나를 걱정해 주었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여러명이 뛰쳐나와 나를 가계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빨리 바지 벗으라고 성화였다
너무 챙피해 하는 나를 보고 짖굿게 장난 치며 괞찮다고 벗으라고 했다
상처난곳에 약을 발라주고 자기들 츄리닝 바지를 건네어줬다
그리고 찢어진 바지를 꼬메어 주겠다고 서로 장난 스레~"내가 꼬맬꺼야~""웃기지마 내가 꼬매드릴꺼야~"하며
깔깔대기도 했다
항상 인형 처럼 꾸미고 앉아 무료하게 문밖을 내다 보고 있어야 하는 그녀들에게는 그런 소소한 일들이
재미였고 현실을 잠시라고 잊게 해주는 헤프닝 이였다
또 어느날은 내가 몸살이 너무 심하게 걸려서
이모에게 전화를 했다 너무 아파서 오늘은 쉬겠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전화를 끊자마자 전화가 빗발치듯 걸려왔다
그녀들 이였다
많이 아프냐고 병원가보라고 그리고 자기들이 어디서 주워들은 민간 처방 까지..
이렇게 하고 있어라 저렇게 하고 있어라
그녀들은 정말 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그때 너무 감동도 받았고 불쌍한 그녀들 생각에 혼자 꽤나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대략 3개월 정도를 그곳 미아리 에서 생활을 했고
그녀들과 나 사이에 미묘한 친밀감은 이제 가족 그 이상 이였다
여기서 잠시 그곳의 생리를 얘기 하자면
그녀들은 오후 5시에 이모 라는 사람의 인솔하에 목욕탕과 미용실을 간다
그리고 저녁 8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아침8시에 가계 문을 닫고 이모들은 퇴근을 하는데
퇴근 할때면 밖에서 문을 자물쇠로 꼭꼭 걸어 잠구고 퇴근을 한다
그래 그녀들은 그렇게 갇혀서 일하고 있는것 이다
감금이라고 보는게 맞다
나중에 알게 된일이지만 그녀들 대부분은 빚에 묶여서 도망갈 생각도 못했고
또 대부분은 중 고등학교 중퇴자들이라 언어구사 라던가 생각 자체가 일반인들보다는 매우 떨어지는것을
느낀적이 매우 많다
모두 개개인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어쩔수 없이 할수 있는 일은 몸을 팔고 웃음을 파는 일뿐이였다
하지만 장담 하건데 그 수십명의 여자들 중에 내가 느끼기에 참 못됐다 라고 느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모두 가슴 따뜻하고 정에 굶주려 있고 따뜻한 정이 있는 여자들이였다
그 이후로 이곳 저곳에서 많은 여자들을 대해왔지만
거의 약싹빠르고 계산적이고 잘난맛에 살아가는 일반 여자들을 봤을때
매우 심리적으로 혐오감을 느낀적이 많다
그래서 내 주위에 누군가가 사창가 또는 몸을 파는 여자들을 아주 비하 하는듯한 얘기를 하면
괜히 화가나서 열변을 토했던 적이 많다
나 또한 그곳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그런식의 시선으로 보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가 자기가 그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모르듯이
나또한 그런 그녀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마음이 향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런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분들을 비하하는 생각 일절 없다
그러던 어느날
이 이야기의 핵심인 대 사건(?) 이 벌어졌다
----------------- 2부
여느때와 같이 그날도 서로 마주보고 장사를 하고 있을때쯤
내 바로앞 가계 안에서 심상치 않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뛰어 들어가려 했으나 앉아 있는 아가씨들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말렸다
무슨 일인지 매우 궁금했다
아가씨들도 매우 곤란하고 당황 하는듯했다
잠시후 그 고함 소리가 가까워졌는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가계 이모였다
뭔가 매우 화가나서 아가씨중 한명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가씨의
머리채를 끌고나와 발로 밟고 때리고 구타를 했다
이거 안되겠다 싶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모이기에
껴안고 웃으면서 말렸다
"에~이 이모 왜그래~참아요 참아~"
하면서 무서움에 눈치만 보고 있는 아가씨들에게 눈치로 싸인을 줬다
벌거벗은채로 매맞고 있던 그녀를 몇몇 아가씨들이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나와 다른 아가씨들 몇명이 괜한 아양으로 이모 화를 풀어주려고
이모를 데리고 나왔다
커피 한잔을 타주고 담배를 건네며 이모의 마음을 진정 시키려 노력했다
그렇게 때린 이유는
한쪽다리가 없는 손님이 와서 그녀를 초이스 했는데
그녀가 인상을쓰며 손님을 거부 했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버릇을 고쳐놓기 위해 그렇게 그녀를 두들겨 팼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속이 매우 복잡해졌다
평소에 아가씨들에게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며 마치 그녀들의 어머니 처럼 따뜻하던 그 이모 라는사람이,,
그 속 생각은 그녀들을 사람이 아닌 장사 하는 도구쯤으로 여기고 있다는것에 정말이지 너무 화가 났고 역겨웠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아까 매를 맞았던 그녀는 다시 화장을 고치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채
자기 자리에 앉아 멍하니 문밖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녀는 울고 있었다
아니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꼬옥 깨물고 문밖을 바라보고있었다나와 마주보고 앉아 있는데 정말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나와 눈이 마주친다면 그녀는 얼마나 자존심이 상할까...평소에 삼촌 삼촌 하며 장난치던 사람이..자신이 발가벗은채 방바닥에서 얻어맞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는게..매우 난감했고 또한 머리속도 복잡해졌다
그날은 평소의 그녀들이 아니였다
아까 있었던 일들에 대해 그녀들은 매우 화가 나있고 억울해 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난 그녀들 을 도와주고 싶었다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줄수 있을까??
한가지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에는 매우 망설여지는 위험한 일이였다
그날 장사를 하는둥 마는둥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아침이 왔고 나는 그녀들에게 평소 보다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작별 인사를 한후
퇴근(?)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택시를 타고 집에가서 잠을 잤겠지만
그날은 미아리 근처 어딘가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웠다
아침 10시
작은 철근 쇠 막대기를 하나 구해서 품속에 넣고 다시 사창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평소와 다름없이 모든 가계는 커튼이 쳐져있고 밖에서 걸어잠군 자물쇠들이 걸려져있고
조용했다
아까 그 가계 앞에 도착했다
이모들은 모두 퇴근을 한것 같았다
담배를 한대 피우며 주변 동태를 살핀후
철근을 꺼내어 자물쇠 사이에 끼워넣고 힘을줘서 비트니까 쉽게 자물쇠가 떨어져 나왔다
그렇게 내가 관리(?) 하던 가계 6개의 자물쇠를 모두 뜯어냈다
소리에 놀라 무슨일인가 내다보던 그녀들에게 얘기했다
도망갈사람은 지금 빨리 도망 가라고
그녀들은 매우 곤란하며 또한 고민하는듯하더니 이내 모두 안으로 들어가서 각자 짐을 챙겨 나왔다
그리고 서로 짧은 인사들을 나누고 각자 흩어졌다
나도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일단 상계동 쪽으로 도망 쳤다
정말 손발이 벌벌 떨리고 내가 무슨일을 저질렀나 싶기도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걷거나 서있을수가 없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완전 다리가 풀려버렸다
어딘가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휴대폰을 받을까 말까..혹시 벌써 들켜버린걸까...
지금처럼 발신번호 표시가 되지도 않는 때였기에
내 휴대폰이 울릴때마다 다리에 힘은 점점더 빠져 갔다
공중 전화를 통해 내 음성 사서함 을 들어보았다
아까 도망갔던 그녀들이 각자 고맙다고 언제 한번 꼭 보자는 내용의 메세지들이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침에 어느 공원에서 젊은놈이 펑펑 울어대니 산책 나와있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정말 무섭고 두려웠다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다가와서 나를 잡아갈것 같았다
이모들은 오후 5시쯤 출근을 하니까 아직 은 이 사실을 모를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음성 메세지를 확인했더니
아까 도망 갔던 아가씨들중 한명이
자기들 지금 돈암동에 있으니까 만나자고 했다
나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약속했던 여관으로 들어가니 5명이 모여있었다
그때 잊을수 없던 기억이...
나는 매일 그녀들을 진한 화장을 한 얼굴들만 보아왔었다
하지만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다시 보니 너무도 어린아이들이였다
그때 처음으로 서로에 대해 사적이 이야기 들을 나누었는데
모두 17~19살 정도 나이어린 아이들이였다
가슴이 막막해졌다 그리고 내가 잘한짓을 했다고 여겨졌다
그 아이들은 나에게 너무 고맙다고도 했고 앞으로 어떻게 도망쳐 다닐꺼냐고 걱정도 해주었다
그러던중 한 아이가 자기집이 강원도 인데 모두 함께 내려가자고 했다
어차피 갈곳도 없는 우리였고 또한 최대한 멀리 도망 가야 했기에 모두 기뻐했다
그렇게 강릉에 도착했다
그 아이에 집은 매우 허름했고 어머니라는분이 한분 계셨는데
간만에 보는 딸과 우리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녀또한 어머니에게 별반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그녀집에서의 도피(?)생활이 시작되었다
물론 내 휴대폰은 계속 울려댔고 받지는 않았다
혼자 밖으로 나와 음성메세지를 확인해 봤는데
이미 음성메세지에는 그곳 이모들과 무서운 남자들의 목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좋게 말할때 빨리 연락해라 너 죽여버린다 등의 내용들.."
정말 다리가 후들거리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 강릉에서 우리 6명은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함께 요리도 하고 바닷가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술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협박 메세지는 계속 쌓여만 갔다
정말 두렵고 무서워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괜히 이곳 강원도에 있어도 쉽게 잡힐것 같다는 두려움도 들고,,,
그때큰 결심을 했다
경찰서에 신변 보호를 요청 하기로,,
일단 미아리를 관할 하는 경찰서가 종암 경찰서 이다
사실 쫌 두렵기도 했다 경찰과 그런 업소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사이란걸 어디서 많이 줏어들었기에..
그래도 그때 믿을수 있는곳은 경찰 뿐이였다
어느 형사와 통화 연결이 되었을때
그간의 일을 상세히 설명을 했다
형사가 차분히 듣더니 직접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직접 만나기는 쫌 꺼려진다고 죄송하지만 사실 꺼려진다고..
그랬더니 걱정하지 말고 자기들이 강릉으로 내려올테니 강릉 경찰서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같이 내려온 5명의 여자 아이들도 함께 나오라고 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일단은 나혼자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고 여자 애들에게 그 일을 얘기하고 일단은 경찰서 근처까지 함께 갔다가 여차 하면 모두 흩어져서 도망가라고
당부를 했다
나도 아이들도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다음날 아이들과 강릉 경찰서로 갔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신호를 보내기로 하고 나혼자 경찰서로 들어섰다
방금전 아이들이 눈물흘리며 걱정하는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서울에서 내려온 형사 두명과 인사를 나눈후 그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행이도 두분 모두 친절했다
그런데 형사분들 에게서 뜻밖의 얘기를 들을수 있었다
"사실은 종암경찰서에서 미아리 텍사스에 관한 아주큰 수사가 진행 되고있는데 관련자들의 증언과 진술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극비로 진행 되는 일이기에 자기들도 매우 조심스러운 상태라고도 했다
그리고 우리의 신변보호는 자신들이 책임져 주겠다고도 했다"
또 하나 충격 적이였던건 사건이 벌어진지 대략 3~4일 정도밖에 안되어 있는데도
형사들은 나에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 충격이였다
하지만 다소 황당한 이야기가 "내가 청량리 588의 똘마니인데 미아리로 위장 취업해서 여자들을 꼬셔서 청량리
사창가로 빼돌렸다는 식으로 소문이 퍼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이제 사실을 알고 보니 젊은 사람이 참 용기 있는 일을 해주었다고도 했다
나는 고민 끝에 밖에 기다리고 있는 동생들을 모두 들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각자 종이 에 빽빽히 진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도 몰랐던 많은 얘기들이 있었다
각자 선불로 빚을지게 만들고 그 선불에 말도 안되는 이자들이 쌓여서 도망도 못가게
자물쇠로 걸어잠그고 일을 시켰으며 임신할경우 병원도 아닌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이상한 약을
먹여서 애를 지우게 하고 매일 구타가 이루어졌으며 등등...
그렇게 형사들은 돌아갔고
나도 동네 친구들과 연락하며 미아리의 동태를 살펴보기도 했다
결과는 내가 예상했던 그 이상 이였다
이미 그곳 이모들과 건달들은 나를 찿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그들의 분노는 상상 그 이상 이였다
나는 일단 강릉에서 그렇게 지낼수 만은 없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제 각자 흩어져서 자기 삶을 살아가자고 제안을 했다
아직 어리고 철없는 아이들이 울고 불고 하며 이렇게 함께 살자고 했다
자기들이 돈벌어 올테니 모두 이렇게 함께 살자고..
그날 우리는 펑펑 울었다 정말 서로 서로 불쌍 하고 가엽어서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다시는 그런일에 발들이지 말고 학교 중단한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가고
재대로된 직장에 취직을 해서 서로 다시 만나자고 굳게 약속을 했다
다음날 막상 떠나왔으나 갈곳이 없었다
삼척에 혼자 살고 있던 친구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삼척에서 별달리 하는일도 없이 지내고 있을때쯤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 사건이 있은지 한달이 조금더 지난 때였다
뉴스에 믿지 못할 일이 보도 되고 있었다
종암경찰서에 우리나라 최초로 여자 경찰 서장이 부임을 했는데
가장 먼저 선언한것이 미아리 사창가를 뿌리 뽑겠다는..
한마디로 미아리 사창가를 초토화 시키겠다는...
그것이 지금 있는 성매매 특별법의 시초였다
아~그때 그 형사분들이 비밀리에 진행중이였다는 것이 이거였구나 싶었다
다른 그 어떤 누구보다도 더욱 관심을 갖고 그 사건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에 종암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사건 진술을 해달라고..
몇일 망설임 끝에 명동에서 형사들을 만나 함께 차를 타고 종암경찰서로 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미 경찰서 앞은 미아리 사창가 업주들과 포주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차안에서 최대한 얼굴을 가리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섰고
신변보호 와 익명성 보장을 요구한후 그간에 내가 보았던 사실들을 모두 진술했다
나머지 여자 아이들과 연락은 하고 있었지만 경찰에게는 연락처는 모른다고 했다
그 아이들에게 다시 이런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종암경찰서 여 서장의 미아리 초토화 작전은 거세어졌고 매일 뉴스에서는
그 일들뿐이였다
몇몇 연락하는 형 들에게 전해 듣기로는
이번 종암 경찰서 수사 자체가 내가 꼰질러서 이렇게 된것이라고 까지 확대 되어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고
넌 이제 잡히면 인생 종치는거라고 도대체 어쩔라고 이런일을 저질렀냐고..
이젠 숨어서 살아 가라고 그런 두려운 걱정 섞인 말들을 전해 들었다
미아리 업주들 사이에 내 이름은 이미 유명해져 있다고 했다
전국구 건달들이 나를 찿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도 했고
그날 도망 갔던 몇몇 여자애들이 다시 붙들려 와서 그 사실이 맞다고 업주들에게 증언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23살 청년이 혼자 견뎌내기에는 이미 너무나도 큰 사건이 되어버렸다
정말 자살을 하고 싶을 정도로 두렵고 무서웠다
솔직히 제 아무리 건달들이라도 내가 어디 있는지 날 찿아내겠나 싶겠지만
그때는 정말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에는 나설수가 없을정도로 공포에 나날들 이였다
일단 숨을곳이 필요했기에
경기도 이천에 있는 어느 방직공장에 취직을 했다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쉬는날에는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대략 2년여를 숨어 지냈다
그렇게 미아리 사창가는 없어져 갔고 그 2년 사이에 그곳에서 화재 사건이 일어나 윤락녀 몇명이 사망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정신과에 가서 심리치료도 받고 점점 안정을 되찿아 갔다
그러고 3년정도 지나서 마음에 안정도 되찿고
내 자신이 떳떳 하기에
다시 미아리로 찿아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내가 떳떳하다는것을 입증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겁도 없이 찿아갔다 이미 많은 가계들은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고 몇몇 가계들만 불이 켜진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도 나를 알아 보는 사람은 없었다
가계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포주 아줌마들에게
예전 그 가계의 이모 이름을 대며 수소문하며 찿아 다녔다
모두 나를 무슨 형사쯤으로 아는지 대답을 피했다
메모지에 연락처를 적어주고 내이름을 말해줬다
그들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태도가 돌변하더니 뺨 을 때리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발길질을 해댔다 "너 때문에 미아리가 이지경이 됐다고 죽여버리겠다고" "다 너때문이라고....."
하지만 대응하지도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
한참후에 그곳 미아리에 있는 해병대 초소 앞에서 예전의 그 이모들중 두명을 만날수 있었다
나를 원망스런 눈초리로 처다보며 온갖 욕을 퍼부어 댔다
하지만 나는 떳떳했다
나는 3년전 그날 내가 왜 그랬는지 또한 그 일이 잘못한일이 아니라고 나름 조리있게 대꾸했다
서로 말이 통할리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뭔가 결론을 짓고 내 생활을 찿고 싶었다이모들은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나는어떤 아저씨들에게 끌려가 얼음 창고에서 정말 죽지 않을 만큼 얻어 맞았다
나는 그 종암경찰서 여서장의 사건과 내가 저지른 사건이 관련 없음을 그리고 다른 이익을 위해서 저지른 일이 아님을
주장했고 그들은 주먹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 다음날 풀려나와
다시 미아리 근처에서 나를 보면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만 받고 그 일은 그렇게 일단락 되었다그렇게 내 3년동안의 도피 생활은 끝이 났고
내 마음속의 짐도 내려놓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끔씩 그녀들이 생각나곤 한다
이미 10 여년이 지나서 얼굴도 이름도 전혀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녀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때 그날 있었던 일이 그녀들의 삶에 도움이 되었을까??
내가 옳은 일을 했던 것일까??
만약 이글을 읽게 되어 연락이 닿을수 있다면
서로에게 매우 부끄러운 과거 였지만 소주 한잔 하며 지난 일들을 추억해 보고 싶다
내가 사는곳이 미아리 근처 이기에 가끔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미아리를 지나갈 일이 있다 그럴때면 버릇처럼 그곳에 내려 그 골목길을 걷곤 한다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해서 거의 흔적이 사라지긴 했지만
별볼일 없이 살아온 내 자신에게는
가장 뿌듯하고 용기 있는 일들이였기에
그때를 추억해보기도 한다......
그곳에서 흘려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눈물과 한이 느껴 지는것같아 마음이 저려오기도 한다
남들에게 몸파는년 이라 손가락질을 받지만
각자 가슴속에 품고 있을 아픔들을 내색도 못하고 다만 몇만원에 아무 남자 품에 안길수 밖에 없었던
그 뼈저리게 아픈 기억들을 그녀들이 모두 잊고
10년이 지난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기도해 본다..
출처
http://blog.naver.com/neo1119/40093739062
후기글
***
오늘 많이 당황 스럽네요...
이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며서 써놓은 글이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일기 형식으로 담아두고 있다가..
제 블로그 보시면 아시겠지만 왕래 하는 사람도 없던 곳입니다..
그저 제 개인적인 추억 용도로 제 블로그에 담아 놓은 글이였는데
제가 자주 가는 계시판에 그냥 한번 올려놓은것이....
퍼지고 퍼져서..이렇게 많은 분들이 찿아 주시네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어떤 이익을 위해서 작성해 놓은 글이 아니기에
남의 추억을 거짓이네 소설이네 폄하 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거짓말로 일기를 쓰는 사람은 없겠죠??
이 글이 이렇게 퍼져 있다는것도 어느분의 네이버 쪽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한다는건 참 좋습니다
잠깐 떠돌다가 조용해 지겠지만 상처를 입고 싶지는 않네요
단지 바램이 있다면 그때 함께 있던 동생들 몇명이 이 글을 읽고 그때를 기억하고
서로 연락이라도 하게 된다면 더 바랄것 없겠지요
갑작스런 소란에 많이 당황스럽지만
누구나 살아오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는 있기에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봐주시면 정말 감사 합니다^^
그리고 퍼가실때는 출처 는 꼭 밝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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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MBC 예능프로 추락, 김재철 '때문인가 아닌가'
MBC 예능프로 추락, 김재철 '때문인가 아닌가' [황무지님 글]
개그맨 박미선은 MBC 연예대상 '최우수상' 소감에서 파업 중에도 방송을 하게된 것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그럼에도 저라도 방송을 유지하기위해 해야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미선씨가 시트콤 폐지에 대한 아쉬움의 지적처럼 MBC가 시청률 저조 이유로 시트콤 프로를 폐지하는 모습에서 MBC가 파업 사태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MBC의 시트콤 등 예능 프로의 시청률 저조는 노조의 파업이 아니라 MBC의 콘텐츠 부족을 부를 수 밖에 없던 김재철 사장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쓴소리, 자유분방한 사회적 발언을 할라치면 '좌파편향'이라는 인식으로 출연자 하차 및 방송금지 조치를 내리는 김재철 체제의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과 낙하산 파문들이 MBC의 콘텐츠 개발에 마이너스가 됨을 알 수 있다. 새누리당 정권 유불리에 급급한 방송 내용에 따라 파업을 할 수 밖에 없는 MBC가 예능프로마저 추락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무한도전의 박명수가 대상을 받은데 대한 논란이 있지만 받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MBC에 오랫동안 기여한 바도 있고 '유재석 독주' 속의 박명수 대상은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김재철 낙하산의 MBC 문제만 아니었다면 더욱 빛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박명수가 받을 대상이라면 레슬링 특집에서 투혼을 발휘했던 정준하,정형돈도 못지 않다고 본다. 더구나 박명수는 MBC 파업 와중에도 종편방송 할 것 없이 출연하는 등 개인적으로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정준하 정형돈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나 국민MC 유재석은 이들과 달라 비교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연예인들이라 모를 일이다.
차라리 박명수의 대상은 2011년 재작년이 적절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보편적 기준으로 볼때 올해 MBC 대상은 유재석이 적절했으며 SBS가 오히려 김병만에게 대상을 주어야 했다.
어찌했든 MBC는 무한도전 맴버들이 대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김태호 PD의 파업 참여로 인해 6개월 결방에도 불구 무한도전 때문에 간신히 유지될 만큼 MBC의 예능 추락은 눈에 띄었다.
물론 MBC 예능 프로의 추락을 시청률 수치로서 설명해서는 안된다. 그런 잣대라면 '놀러와 폐지'도 찬성해야하는 논리로 귀결될 뿐이다. 놀러와 프로는 시청률 수치와 관계 없이 스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존 프로에서 볼 수 없는 과거의 음악인이나 연기자, 유명인들의 삶을 그리는 유익한 프로였다.
그런데도 김재철 경영진들은 시청률 수치를 들어 놀러와 프로를 갑작스례 폐지시켰고, 시트콤 프로마저 없애는 천박함을 보여주었다. 혹시나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유홍준, 전인권 출연 이유로 폐지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기다려 주면 얼마든지 잘될 수 있고 그러다 안될 수도 있는 것이 방송인데도 일방적 기준으로 폐지결정을 내린 MBC, 그러다보니 '하이킥 시리즈'의 김병훈 PD마저 SBS로 떠난다는 소식까지 들리기도 한다.
MBC 예능은 지금 SBS가 '런닝맨' '정글의 법칙' '짝' '강심장' '힐링캠프'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에 비해 끝 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놀러와나 시트콤 프로를 폐지시켜 다른 프로로 대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김재철 사장 체제의 천박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시청률 상승이 쉽지 않음은 SBS '힐링캠프'와 대비해봐도 알 수 있다.
그나마 무한도전 프로로 명맥을 유지한 것은 큰 다행이다. 김재철과 확연히 다른 김태호 PD 덕분이다. 그러나 무한도전도 언제 어디서 외부의 압력에 의해 위기를 맞을지 모를 일이다. 박명수가 진행하는 '이것이 마술이다' 오락프로도 프로그램 특성의 한계에 따라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부활한 강호동의 '무릎팍도사'도 예전보다 못하다.
김재철 MBC 사장 체제의 황당했던 예능 프로는 SBS의 '정글의 법칙'과 '짝'을 혼합해 모방한 프로였다. 어쩜 저렇게 눈에 보일 정도의 유치한 모방력을 보여주는 지 민망하기까지 했다.
MBC가 재작년 유일하게 사회적 이슈로 성공하게된 '나는 가수다'를 KBS가 그대로 모방한 유치함에 대한 반면교사라도 삼아야할 텐데 '좌파 사냥'하는 방송 사장들 치고 천박하지 않거나 내실을 가지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MBC는 또 연기대상에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2012년 MBC가 가장 많은 시청률을 기록한 '빛과 그림자' 드라마 팀이 손담비를 제외하고 수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안재욱 대상을 예측한 수 많은 시청자들이 어리둥절한 것이다.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의 잔악상이 배경이 된 드라마였고 김재철 사장의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PD수첩도 김재철 사장의 입맞에 맞는 작가들로 채워 변질되고 있다. 박근혜 5년의 MBC도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가자서작성일
2013-01-2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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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빛과 그림자, 제대로 물먹었네
64부작이라는 대작 드라마가, 평균 시청률 1위 찍어주면 뭐하나 ...생방송 연말 시상식에서 공개적으로 국민들 앞에서 뒷통수나 맞는게 현실인데.사람들이 mbc보고 엠ㅄ거릴때 무슨말인지 잘몰랐다만, 이번 시상식 결과를 보고 왜 그런지 확실히 이해가 됬음.음모론이니, 좌빨이니, 문재인 빠돌이가 개소리를 하니 이런 소리 할 아저씨들 분명히 있을거야.근데, 이건 내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결론은 하나 밖에 없다.빛과 그림자, 시대상이 박통 시절이었고,전반적인 스토리 흐름도 박통 시절 까는 드라마였음.박근혜 및 새누리 빠돌이인 mbc 사장 재철이는 이게 걸렸겠지.새 정권인 박근혜 정권한테 더 잘보여야겠고, 나중에 빛과 그림자 대상 줬다간 이걸로 불똥이라도 튀면 어쩌나하고.그래서 드라마의 수치상 결과가 매우 좋았음에도, 이번 2012년 시상식에서 작품 자체가 물 먹은거임.주기 싫은거 겨우 손담비 한명 주고 끝낸거지.이게 아니라면, 나한테 설명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나도 음모론 이런거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이건 여러번 생각을 해봐도, 결론이 이거 밖에 안나온다.누가봐도 대상 받아도 손색없는 웰메이드 드라마였고,안재욱 자체 연기도 쩔어줘서, mbc 대상은 안재욱이 받을거라고 까지 대부분 확언을 하고 다녔음.근데, 그런 작품이, 그런 배우가 상하나 받지 못했고, 심지어 후보 명단에도 없더군. 재철이랑 mbc 윗대가리분들의 정치적 입김이 없이는 절대 설명이 되지 않음.조승우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 받아서, 안재욱한테 정말 미안해 하더만.
절묘님작성일
2012-12-3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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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엽기영상] 가요톱텐 1997년 1위곡들
H.O.T - 캔디, 쿨 - 운명, 이지훈 - 왜 하늘은, 룰라 - 연인, 양파 - 애송이의 사랑, 언타이틀 - 날개, 엄정화 - 배반의 장미, 안재욱 - Forever, UP - 뿌요뿌요, 박진영 - 그녀는 예뻤다, 임창정 - 그때 또 다시, 쿨 - 해변의 연인, 유승준 - 가위, DJ DOC - DOC 와 춤을, H.O.T - 행복, 임창정 - 결혼해줘, 지누션 - 말해줘, 터보 - Good bye Yesterday
생수머신작성일
2012-10-05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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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더위탈출~! 올여름 스릴러 기대작 베스트 6!!
흐아~ 느므
덥다 ㅠ 햇빛 쨍쨍! 7월도 안되었는데 벌써 한여름인 이 기분은.. 흑- ㅠ
요즘 문화생활도 바빠서 제대로 못하고 꼬질꼬질
ㅠ
여름이 일찍 오니 뭔가 공포나 스릴러 한
편 쯤은 봐줘야 할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오랜만에 인터넷 좀 했더니 ㅋㅎㅎ
역쉬 빨리 더워져서 그런가 벌써 영화관과
공연장에는 스릴러와 공포 열풍이!!!!!
영화는 정말 계절을 빨리 타는 것 같다
ㅎㅎ
벌써 공포영화들이… 후덜덜-
<캐빈
인 더 우즈>
이 영화,
뭔가 포스터부터 간지난다 ㅋㅋㅋ
공포영화인데 피가 없어 ㅋㅋㅋ 그래도 뭔가
엄청 센스있어 보이는 느낌!
내용은 숲으로 여행 떠나서는 ‘돌아가라’는 경고 무시하고 들어갔다가 벌어지는
전형적인 미국 공포영화 같지만, 무언가 더 있단다 ㅎ 뭔지 엄청 궁금하네- ㅎㅎ
역시 공포영화는 외딴 곳, 밀실 이런 게 스릴감은 짱인 듯!!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어벤져스>
제작군단이라니!!!!!!!!!
꼭 봐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닼 ㅋㅋㅋ
<더?레이븐>존 쿠삭!!!!
<아이덴티티> 진짜 재밌게 봤는데! 이번에도
그런 연기 보여주실라나?
아니아니 근데 이거이거 제목 보고 설마설마
했는데 정보를 찾아보니,
정말로 에드가 앨런 포를 둘러싼 수많은
의문의 사건 중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그의 죽기 전 5일간을 담은 걸로, 추리 소설을 모방한 살인사건을 에드가 앨런 포 자신이 파헤치는 이야기란다.
추리소설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에드가
앨런 포의 이야기라니!!!!
존 쿠삭에 에드가 앨런 포 라면 이건 두
말 없이 꼭 봐야 할 작품!
이런 영화가 개봉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요즘 내 삶이 정말 말이 아니었구나. 훌쩍 ㅠ
어느 나라껀지 모르겠지만 ㅋㅋㅋㅋ
개인적으로 국내 포스터보다는 이 악마 같은
해외 포스터가 더 맘에 듬 ㅎ
국내 포스터는 뭔가 밋밋한 느낌 -ㅅ-
한국영화도 벌써 공포영화 시작되넹-
여름 시작되면 꼭 나오는 한국형 공포영화
ㅎㅎ
<두개의달>제일 먼저 개봉되는 한국영화는 <두 개의 달>.
밤이면 죽은 자들이 깨어나는 집에 갇힌
세 남녀의 이야기 ㅋ
여기까지는 흔하디 흔한 소재에나 여기에
기억상실증이 더해졌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야만 벗어날 수 있다니- 뭔가
새로운 느낌.
영화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일단 박한별 나오니까 한 표!
박한별 하면 여고괴담 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 ㅋㅋ
청순한 듯하면서도 공포영화에 잘 어울리는
듯!
그때까지만 해도 여고괴담 시리즈 쫌 괜찮았었는데. 쩝-
<무서운 이야기>7월
개봉되는 영화 중 기대작 ㅎㅎㅎ
포스터에 나와 있는 귀신 무서워 ㅠ
4편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보니 옴니버스인 것 같은데,
이 영화가 기대되는 건 참여한 감독들이다- 완전 공포영화 신들이 다 모인 것 같음!
<기담> 정범식, <스승의 은혜>
임대웅>, <키친> 홍지영, <화이트:저주의 멜로디>
김곡, 김선!!!
이 감독들 작품 다 재밌게 봤었는데! 특히 김곡 김선 감독인 느므 조음! 어떤 이야기들 들려줄 지 오나전
기대 중!!!
7월
말까지 언제 기다리냐 ㅠ
영화 만이 아니라 요즘 공연 쪽도 쏠쏠하게
괜츈한 스릴러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대학로 가본지 어언 ㅜ
스릴러 작품들 찾아봤더니 요즘 제일 화제작은 <블랙메리포핀스>인 듯!
뭔가 포스터부터 음산한 분위기 물씬~이다
뮤지컬<블랙메리포핀스>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메리 포핀스의 스릴러
버전쯤??
인물 컷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뭔가 유럽 느낌의 고급스럽고 스산한 이미지가 맘에 듬
대형 화제 사건에서 살아 남은 네 명의
아이들과 보모 메리가 감추고 있는 비밀에 관한 이야기라는데, 찾아보니 김수로 프로젝트란다.
요즘 신품 임태산으로 완전 인기몰이 중이신
김수로.
뮤지컬 프로듀서로도 성공이라니 완전 요즘
대세가 확실하구나-!!
얼마 전에 영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도 그렇고, 요즘 동화 원작으로 해서 살짝 비틀어 꼬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듯!
제목과 달리 국내 창작 초연극이라는데- 관객평이 뭔가 엄청나다-!
뭔가 리뷰들을 찾으면서 읽어보니 꼭 봐야
할 것 같은 기분-! 별표 표시 해둬야겠다 ㅎㅎ
<우먼인블랙>
사실 얼마 전에 TV에서 <블랙메리포핀스>랑
같이 나온 거 보고
<블랙메리포핀스>랑 <우먼인블랙> 보고
싶어서 찾아보게 된 스릴러/공포 시리즈 ㅋㅋㅋㅋㅋ
젊은 시절 겪었던 사건으로 인해 악몽과
불안에 시달리는 중년의 남자가 끔찍한 기억을 잊기 위해서 주변인들에게 그 사건을 들려주는 이야기.
사실 이건 이미 인정받은 유명한 연극이기도
하지만,
올해 초인가? 해리포터(본명 보다 이게 익숙함.
우리의 해리포터 ㅋㅋ)가 나온 영화로 봤었는데, 이
공포를 무대 위에서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됨!
특히
<우먼인블랙>은 특이하게도 심장마비석, 샹들리에석
등 자리마다 포인트 있다는데…
좌석 골라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나는 어디에서 볼까나… 아무래도 역시 심장마비석…?! ㅎㅎ
<잭더리퍼>간단히 말하면, 근세시대 유럽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전부터 느꼈지만, <잭더리퍼> 포스터는 뭔가 나를 잡아 삼킬 것 같음 ㅋㅋㅋㅋㅋㅋ
엄기준,
안재욱, 신성우, 김법래, 유준상, 민영기, 이건명, 이정열, FT알일랜드 송승현까지…
헉헉..
캐스팅부터 화려한 <잭더리퍼>이야 머… 지킬과
함께 스릴러 뮤지컬의 쌍두마차이니, 더 말할 필요 없을 듯.
통장잔고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는데 ㅠ
봐야 할게 너무 많구나.. 훌쩍 ㅠ
그래도 포기할 순 없지!!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설레는구나~
뭐부터 봐야 할지 고민되네 ㅋㅋㅋ
우선 공연 기간이 얼마 안 남은 <블랙메리포핀스>부터 고고씽~~??!
리스테린작성일
2012-06-2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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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먹방] 자전거여행]실크로드4
공안들 만났을때 먹었던 양꼬치야 그날 다합쳐서 300개 정도 먹었음.. 근데 난 물갈이떔에 ㅈㅈ..
그다음날 공안들하고 공안친구(기사) 차타고 청해호랑 딴거얼구청?이라고 무슨 고성을 가기로했지
아침에 먹었던 음식들이야. 뭐 다른건 팔지도않아 만두, 죽, 삶은 계란, 또우장 요우티오정도?
가장 왼쪽에 있는건 또우장이라고 하는데
묽은 두유정도로 생각하면되 오른쪽에있는 요우티아오라는 긴 튀긴 빵을 찍어 먹거나 하는거지..
나름 고소해서 초반엔 맛나게 먹었는데 맨날 먹으니깐 미치겠더라구.. 나중엔 계란이랑 죽만 먹었어
그리고 갔던 딴구얼청이야 근데 난 이때 ㅍㅍㅅㅅ 하면서 근성으로 자전거 달렸더니 몸이 안좋아져서 제정신이아니였어
자세한 설명은 생략.. 미안..
중간중간 있는 사람들이 공안아저씨들이야 근데 아저씨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게 20대 후반도있고 그렇더라구 ㅋㅋㅋ
사회생활을 일찍시작해서 그런가 여행하면서 만났던 중국인들이 대부분 나이보다 삭아보였어..
까치발은 뭐 새삼스럽지도않네.
갔다오면서 공안들이 외국에서 온 손님인데 고생한다면서 병원에 데리구 갔어. 제법 큰 병원이었는데
거짓말 안하고 진짜 병원 입구에 막 핏자국이 있는거야.. 꽤 많이..-_-
뭐때문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병원에서 진찰 받진 못하고 근처 약국에가서 약을 샀어.
약값도 공안들이 막 내주더라구.. 약을 좀먹고 청해호로갔어
청해호로 가는길이야 대관령같은 같은 분위기지? 저기 흰색 석상이 문성공준데 당나라가 토번하고 화친하려고 보내졌데
가면서 울었던 눈물이 강이되고 청해호로 흘러갔다는 그런전설.. 가는 중간에 잡상인들이 엄청 많았어 옥조각, 뼈로만든
빗, 늑대이빨이라고 주장하는 개이빨인지 뭔지 모를걸 줄에다 꿰서 팔고있구 전통의상 빌려주고 돈받고 하더라구
요런 소 타는데 10원 전통 복장빌려주는데 10원 그런식이지
도착하니깐 전통 복장입고 관광객들 앞에서 춤추고 있더라구..
한족들이 쫄아서 공주까지 보내던 토번의 후예들이 먹고살려고 춤추고 관광객들한테 기념품 팔구..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곳답게 한글도 적혀있었음..
청해호야..
날씨가 안좋아서 좀 그런데 잠깐잠깐씩 구름이 걷히고 햇빛 비치면 정말 이쁘더라구 거리가 멀어질수록 옥색,보라색으로
색도다르구 반대쪽 산위로 구름이 깔려있는데 망할 사진이 부족해..ㅠㅠ
여기서 조금 보이네 먼쪽에 물색이 달라지는거 보이지?
청해호 주변 돌아다니구 사진찍고 있는데 할머니랑 손녀가 전통 복장 입구 있더라구..
가까이 다가가서 같이 사진찍으려구하니깐 돈달라구함..
청해호 보구선 숙소로 돌아가는데 공안들이 노래를 불러주겠데 그러면서 붕우라고.. 안재욱이 불렀던 친구있자너?
그걸 불러주더라구 들으면서 계속 고민했지..우린 뭐 불러줘야하나.. rt출신 횽이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해서 부르는데
오글거리면서도 먼가 나쁘지않은 묘한느낌이 ㅋㅋ 노래 끝나고선 운전하는 양반이 테이프 틀었는데 원더걸스 텔미..
원더걸스 빠였는지 원더걸스 노래를 계속 틀더라.
그렇게 가다가 공안들한테 밥 사줬어 돼지갈비, 족발, 칭하주 신나게 먹었는데
난 그떄도 좀 안좋은 상태라 입도 못댓지..ㅠㅠㅠㅠㅠ어흐흥허아ㅣ허읗어엉
저녁에 팀이 나눠졌어 평균해발 4000m정도 되는 치리엔 산맥을 자전거로 넘는 팀하고 차를 타고 먼저 장예에 가서
실크로드 관련 장소를 촬영하고 하는팀으로.. 난 그때 몸상태가 안좋아서 먼저 장예에 가기로했지.
저기가 치리엔 산맥이야.. 다음날 장예로 가려고 차타고 산넘는데 도로 곳곳에 낙석, 눈+비.. 위험하지 않을까해서
치리엔 팀한테 전화를 하니깐 알겠다고 하면서 끊었는데.. 장비도 제대로 안갖추고 갈수있을까 좀 걱정되더라구
하룻밤 자구 장예로 먼저간 사람들은 마티쓰에 갔어 실크로드로 떠나기전 상인들이 안녕을 기원하러 갔던 곳이래
벽에 구멍 뚫고 저렇게 만들었어 1층?이라고 해야하나 거기엔 석굴안으로 부처상들이 줄줄이있는데 대부분 목이 잘리거나
눈알이 파졌더라구 문화대혁명때 그렇게 된거래 컴컴한 동굴속에 목잘린 부처상들이 있는게 좀 기괴했음..
올라가는길은 꽤 가파른 돌계단들이더라구 기어서 올라간 꼭대기에 중국인들 엄청 많더라 줄서서
향피우고 절하고있었음..
꼭대기에서 바라본 풍경. 보구 있으니깐 김밥 먹고싶어지더라
내려가서 근처 산에 올라갔어. 거기서 중국인 여자 두명을 만났는데 우리가 마티쓰 갈때 버스 알려준 사람들ㅋㅋ
시간나는대로 종종 찾아온데.. 좀 친해져서 같이 산을 내려갔어. 내려가면서 자기들이 맛잇는곳 안다면서
밥먹으러 갔는데 밥나오는데 1시간 넘게 걸리는거야.. 그렇게 기다려서인진 모르겠는데 맛은 괜찮았어 마파두부랑
매운닭볶음? 그렇게 먹구 가는데 치리엔팀에서 공안들이 자전거로 못넘게해서 차타고 이쪽으로 온다는 전화가 왔어
다시만난 그아이들은 상태가 영.. 고산병걸려서 제대로 숨못쉬는 아이도있구 약한 동상걸린애도있구..
대장,부대장이 무리하게 밀어 붙여서 다들 불만이 장난아니였어..
갔다와서 다큐 제작하면서 만든 2분정도되는티저영상이야.. 사진보단 생생한 영상이 낫지않겄어? ㅋ
동영상 올리려니깐 이상하게html이 안먹히네..미리보기하면 나오는데 머지.. 링크만 올렸어..볼형들은 새창열어서 봐
http://www.youtube.com/embed/M74RuW-Fs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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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일본 기부금 천억원 돌파
<한국의對일본 無償원조 금액>한국정부 340억원, 붕소 52Ton-자선단체-세이브더칠드런 56억원(모금중)공동모금회 85억 3950만원대한적십자 200억원(모금중)네이버 해피빈 2억원(모금중)한국월드비전 4억 5000만원(모금중)+5600만원구세군 2억 5000만원 -기업-SAMSUNG 14억원+생활용품 포함 구호세트 2000개+3119구조대 10명 의료봉사단 11명LG 14억원NC SOFT 70억원NEXON 14억원신한 14억원POSCO 14억원현대중공업 이동식 발전설비(PPS) 4대 지원DAUM 1억원(모금중)네이트 1000만원(모금중)이랜드 담요 6천점+의류 15만점+4인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긴급 구호키트 2만3천개한국TOYOTA 6207만원-방송국-KBS 48억원-금융계-KB금융 10억원우리금융 10억원하나은행 7억원산은금융그룹 2억원외한은행 5억원-항공사-ASIANA항공 8억 4천만원(6천만円), 기내 담요, 생수, 컵라면, 구호물품-연예인-페욘쥰 10억원이병헌 7억원장동건 2억원원빈 2억원JYJ 6억원최지우 2억원송승헌 2억원류시원 2억원+복구현장 봉사활동장근석 1억 4000만원김현중 1억원안재욱 1억원서도영 가시나무새 출연료 전액제국의아이들 아시아투어 수익 일부KARA 앨범 수익 전액구하라(Ku Hara) 1억원-연예사무소-SM Ent. 10억원YG Ent. 5억원JYP Ent. 3억원-스포츠人-박찬호 1억 4000만원최홍만 1억 4000만원박지성 1억원-------------------------------------------------합계 = 약 98,190,000,000원 (7,224,793,424円)
일본의 보답=방사능,독도 영유권 주장,조선학교 학비 무상화 제외ㅗ^^ㅗ한국의 불우이웃은 울고 있습니다ㅗ^^ㅗ
출처 :이종격투기 글쓴이 : 슈마허
새터데이작성일
2011-03-30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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