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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현재 일본 상황
절망의 신인류, '마쿠도 난민'"희망이 없어서 행복해요"…'포기'를 택한 일본 청년들벼랑 끝에 몰린 청년, 왜 '붕괴'를 택했나?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12 지난달 9일 KAIST 미래전략대학원 주최로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서 발제를 맡은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는 20~34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바라는 미래상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고 응답한 청년은 23%에 불과한 반면, '붕괴, 새로운 시작'이라는 응답이 무려 42%나 나와서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청중의 상당수였던 60대 이상 세대들은 이러한 청년들의 생각에 대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붕괴를 바라는 우리 청년들. 그 충격적인 대답을 접하는 기성세대들은 너무나 참담하고 우리의 미래가 걱정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 청년들이 여전히 '새로운 시작'을 바라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진취적인 도전정신이 아직은 식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비록 지금은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과 열악한 비정규직의 현실에 시달리고 있지만,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만일 우리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미래의 희망을 포기하게 되면, 우리 경제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20여 년간의 장기 불황에 길들여진 일본의 청년들이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절망의 신인류, '마쿠도 난민' 지난 연말 일본 청년들의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새벽 1시에 도쿄에 있는 한 맥도널드 매장을 찾아갔다. 밤이 깊었는데도 청년들이 매장 가득 빼곡히 앉아 있었다. 대부분 혼자 매장을 찾은 이들은 100엔(약 930원)짜리 커피 한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엎드려 자거나 휴대전화를 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바로 이들이 오랜 불황이 낳은 일본의 신인류 '마쿠도 난민(マクド難民)'이다. 마쿠도는 맥도널드의 일본식 발음인 마쿠도나루도(マクドナルド)를 줄인 말이다. 도대체 왜 청년들이 새벽 시간에 집에도 가지 않고 맥도널드로 몰려들고 있는 것일까?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는 일본 청년들이 임대료가 비싼 도쿄23구(東京23?)에 집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교외에 집을 얻거나 아예 집을 구하지 못한 청년들은 하룻밤에 1,000엔(약 9,3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PC방을 잠자리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마저도 부담스러운 청년들은 100엔짜리 커피 하나로 밤을 지새울 수 있는 맥도널드를 찾는 것이다. 이 때문에 24시간 운영하던 맥도널드 지점들 중에서 새벽 2시 이후 청소를 한다며 잠시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새벽 2시가 되어 매장 문을 닫는다는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면 청년들은 조용히 일어나 다른 쉴 곳을 찾아 떠난다. 일본의 오랜 경기 불황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바로 청년들이었다. 1990년에 3.1%였던 청년실업률이 2008년에는 9.1%까지 치솟았다. 일본 국세청이 발표한 '민간급여실태 통계조사'에 따르면 30~34세까지의 평균 연봉은 1997년 449만 엔(약 4,200만 원)에서 2010년에는 384만 엔(약 3,600만 원)으로 크게 떨어졌다. 일본 기업들이 경기 불황을 핑계로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고 단기 계약직 고용을 늘린 탓에 일본 청년들의 임금이 오히려 하락한 것이다.더구나 일본 청년들은 정부의 사회안전망에서도 철저히 소외되어 왔다. 일본의 고령화가 점점 가속화되면서, 1990년부터 2010년 사이 노인들의 복지비용에 투입되는 예산이 해마다 평균 5.9%나 늘어났다. 그 결과 2007년 기준 고령화 관련 복지지출이 전체 사회보장 지출의 70%를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고령자를 위한 복지 지출액은 육아 등 가족복지를 위한 지출액의 10배나 된다. 복지강국 스웨덴의 경우 고령자 복지지출이 가족복지의 3배 정도에 불과하고, 독일이 4배 정도인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희망이 없어서 행복해요"…'포기'를 택한 일본 청년들 이처럼 기업에 외면당하고 정부에게 버림받은 일본 청년들은 풍요로웠던 이전 세대에 비해 얼마나 불행할까?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뒤집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2011년 일본 내각부(?閣府)에서 '일본 국민 생활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는데,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한 20대 비율이 무려 70%를 넘은 것이다. 일본의 황금기였던 1970년대에 20대 청년들의 만족도가 50%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오히려 지금의 청년들이 훨씬 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일본 청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일본 청년들은 "희망이 없기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일본의 청년들은 더 이상 아무 것도 탐을 내지 않는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로 진화하고 있다. '사토리 세대'란 마치 득도(得道)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일본의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많은 청년들이 절망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희망고문'을 그만두고 모든 것을 체념한 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 사토리 세대는 성공하겠다는 욕망은 물론, 더 좋은 물건을 갖고 싶다는 사소한 욕구까지 모두 버리고 말았다. 사토리 세대의 등장으로 청년들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시작했지만, 당장 비상이 걸린 것은 기업들이었다. 청년들이 해외여행은 커녕 음주까지 줄이면서 내수시장이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당장 비상이 걸린 것은 바로 자동차 산업이다. 일본 자동차공업회의 조사 결과, 일본의 전체 운전 빈도 중 20대 청년들의 운전 비중이 1999년 16%에서 2011년에는 8%로 반토막이 났다. 심지어 청년들이 운전면허조차 잘 따려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의 자동차 기업들은 운전면허를 따라는 캠페인성 광고까지 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조차 아예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제 계약직을 전전하는 일본의 청년들은 돈이 없어서 이성을 못 만나는 단계를 넘어 아예 해탈(解脫)의 경지로 넘어가고 있다. 실제로 일본 남성의 경우 50세가 될 때까지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는 인구 비율인 '생애 미혼율'이 1980년 2.6%에서 2010년에는 20.1%로 무려 8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 결과 출산율까지 낮아지면서 일본 경제의 활력은 점점 더 약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청년의 가치를 깨달은 나라만이 살아 남는다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고 다양한 경기 부양책을 써도 청년이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버린 나라에서 경제가 되살아나기를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제야 일본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이미 20여 년 동안 철저하게 무너진 청년 정책을 단번에 되돌리기란 쉽지가 않다. 일본은 전례가 없었기에 청년의 몰락을 앞두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지만, 가까이에서 그 공포스러운 모습들을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우리가 그 전철을 그대로 밟아간다면 얼마나 한심한 일이겠는가?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낙망(落望)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며 나라의 미래를 위해 우리 청년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청년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고, 가장 소중한 자산이며, 가장 확실한 성장 동력이다. 청년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나라는 자멸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제발 더 늦기 전에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중원표국작성일
2015-02-13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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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소복농성 3일째... 고영진 후보는 아무 연락도 없어
소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도로 위에서 내내 머리를 떨구고만 있었다. 간혹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놓인 피켓을 읽어보기도 했다.어떤 사람은 음료수를 사들고 오기도 했다. 손을 꼭 잡고 어깨를 다독여주며 "힘 내세요"라고 말을 건네는 시민도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인사만 건네고 있었다.30일 오후 경남 창원 정우상가 앞 상황이다. 한 어머니가 사흘째 이곳에서 농성하고 있다. 펼침막에는 "고영진 교육감님, 진주외고 폭행사고로 죽은 내 아이는 왜! 돌보지 않으셨나요"라고 써놓았다.지난 4월 11일 진주외국어고등학교(사립) 기숙사에서 학교폭력으로 사망했던 아들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지난 28일 오전부터 이곳에서 '농성'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의 49재(5월 29일)를 맞아 시민들한테 호소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것이다.<오마이뉴스>는 지난 28일 오후 어머니의 농성을 보도했다.(관련기사 : "고영진 교육감님, 죽은 내 아이 왜 돌보지 않으셨나요") 당시 이곳을 지나가던 한 시민이 제보했던 것이다. 그 뒤 몇몇 언론들이 보도하면서, 어머니의 '소복농성'은 알려졌다. 어머니는 언론에도 알리지 않고 거리에 나섰던 것이다.진주외고에서는 3월 31일과 4월 11일 학교폭력으로 학생 2명이 사망했다. 이 학교는 고영진 경남도교육감의 선친이 설립했고, 고 교육감의 부인이 1993년부터 이사장으로 있다가 2차 학교폭력 사망사건 뒤 사퇴했다.고영진 교육감이 이번 경남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하자 진주여성회 등 여성단체들은 후보 사퇴와 함께 사과를 요구했다. 진주여성회는 기자회견 때 고영진 교육감 부인의 선거운동 장면이 담긴 사진을 사용했는데, 고 교육감 부인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던 것이다. 2차 학교폭력 사망학생의 어머니와 작은아버지는 지난 23일 경남도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영진 경남도교육감과 부인은 우리 아들을 두 번 죽이지 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28일부터 이곳에서 '소복농성'을 시작한 것이다.학교폭력으로 사망한 학생은 집안에서 막내였다. 아버지(52), 어머니(43), 누나 둘과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진주에 살다가 고성으로 이사해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어머니가 '소복 농성'하는 옆에는 아버지가 지키고 있다. 다음은 아버지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인데 어떻게 해서 하게 되었는지?"아들이 죽은 것은 경찰 수사나 언론 보도와 다른 점들이 있다. 아들이 죽고 나자 처음에는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할 것이라 믿었고, 언론에도 어떻게 보도가 나갔는지 몰랐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보니까 잘못된 게 있어, 기자회견을 열어 호소하고 거리로 나왔다. 아들은 분명히 학교폭력으로 죽었는데 '사고사'로 다루는 것 같아 진실을 밝혀야겠다."- 진주외고 학교폭력 사망사건 뒤 교육부에서도 특별조사를 했는데."특별조사를 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에 교육부에 전화를 해서, 왜 발표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6월 초에 한다고 하더라. 선거 때문에 발표를 미룬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부가 유가족들을 조사한 적이 있는지."없다. 피해자 유족의 말을 한마디도 들어보지 않았다. 연락조차 없었다."- 유가족들은 학교 관계자들의 처벌을 바라는 것 같던데."분명히 아들은 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으로 사망했다. 그렇다면 학교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지금은 학생들만 죄를 물어 처벌을 한 것이다. 이사장과 교장, 교감 등 학교 관계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사장은 사퇴하면 그만이고, 교장은 직무정지 되면 그만인가."- 학교 책임이라면?"학교는 학생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사망했다면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아이가 고통 속에 죽어가는데, 학교 관계자들은 정당한 조치를 했는지도 의문이다. 먼저 이사장에 대해 책임을 물어 고발해 놓았다."- 거리에서 농성할 때 시민 반응은?"안타깝게 여기는 것 같다. 사건의 진실을 모르고 있다가 이제는 알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진주외고 학교폭력 사망사건이 터지고 나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가 워낙 큰 사건이다 보니 학교폭력 사건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본다."- 가해 학생들의 재판이 있었다고 하던데."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첫 재판이 29일에 있었다. 아이의 작은아버지가 가서 지켜보았다. 가해자 측은 국선변호사가 선임된 모양인데, 부모들은 사설 변호사를 통해 재판을 할 모양이다. 그래서 재판은 6월로 연기된 것으로 안다.""아들은 분명 학교폭력으로 사망... 학교 관계자는 처벌 안 받아"- 고영진 교육감 후보 측에서는 펼침막에 고 후보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 주장하던데."고영진 후보 측에서 그런 주장을 펴고 있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고 있다. 28일부터 이곳에 있는데 고영진 교육감 측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다. 우리는 선거에 영향을 주려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 아이가 죽은 것에 대해 고영진 교육감이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그리고 고영진 후보의 부인이 여성단체를 고소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 고소는 우리 아이한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을 수 없었고, 그래서 집사람과 함께 여기로 가자고 했던 것이다."- 사망한 뒤 장례식장에 고영진 교육감이 조문을 갔다고 하던데."조문을 왔다.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때는 형식적으로 조문을 왔다 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나는 '아이 일로 인해 누구 한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알았다'고 하더라. 잠깐 앉아 있다가 갔다."- 아들의 학교폭력 사망에 있어 잘못 알려졌다는 말은?"아이의 스마트폰 카톡 내용을 보았는데, 그 일이 있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폭력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괴롭힘을 계속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학교 측은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아이는 '사고사'가 아니라 학교폭력을 당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는 말도 하는데."선거에 영향 준다는 말은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우리는 선거에는 관심이 없다."- 진주외고 교사와 학교운영위원회, 동문들은 학교 정상화를 호소하고 있는데."그런 주장을 하는 동문들은 일부라 본다. 동창회 사람도 만나보았는데, 우리가 만나본 동문들은 가만두면 안 된다고 하더라.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고, 학교 관계자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때 또 다른 학교폭력을 방지할 수 있다고 본다."- 교육감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다녀갔는지."권정호, 박종훈 후보가 다녀갔다. 교육감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와서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갔다. 선거와 관계 없이 순수한 마음에서 온 것이라 본다."아버지는 "학교폭력에 대해 제대로 밝혀내고 관계자들이 책임질 때 또 다른 학교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31일까지 이곳에서 '소복농성'을 하고, 그 뒤에는 김해 등 다른 지역으로 옮겨 계속한다.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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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참나 이게 말이되나
수정 : 2011.07.21 22:53
▲ 신임장교 6명이 이등병으로 위장해 병사들과 함께 내무반에서 생활한 '소대장 이등병 체험'을 마치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형·박종훈·김지수·이상혁·김민규·정필조 소위./출처=육군 제공
‘대한민국 이등병’은 요사이 관심의 최전선에 서 있다. 잇따른 병영 사고 탓에 ‘소위가 몰래 이등병으로 잠입해보자’는 실험에서, ‘이등병이 병장 앞에서 눕도록 놔둬 보자’는 시도까지 결코 평범할 수 없다. ‘이등병의 두 얼굴’은, 모두가 ‘군인 가족’일 수밖에 대한민국에게 시리게 다가온다. #1 6월말 경기도 양평군 20사단에 배치돼 교육을 받고 있던 이재형(24) 소위 등 신임 장교 6명은 교육이 끝나갈 때쯤 사단본부로 불려갔다. 사단장 나상웅 소장은 이들에게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부대 진단’을 하라고 지시했다. 장교 교육만 받았던 이 소위는 갑자기 이등병 계급장이 달린 전투모를 쓴 자신을 보자 낯설었다. 하지만 ‘이참에 병영 문화를 직접 느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매주 금요일 20사단 신병 교육대에서 신병이 배출되는 것에 맞춰, 지난 15일 이들 6명도 다른 이등병과 똑같이 물품을 지급받고 사단 내 여러 부대로 배치됐다. 작전은 비밀스럽게 진행됐다. 이들 6명은 다른 사단 신병 교육대 출신으로 위장됐고, 이 사실은 사단장, 사단 인사참모, 그리고 이들 6명의 소위만 알고 있었다. 일선 부대 지휘관들도 이 사실을 몰랐다.
▲ 3박4일 동안 이등병 생활을 했던 이재형 소위(24·앞줄 왼쪽)가 전역병과 함께 내무실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출처=육군 제공 자대에 배치되자 멘토 선임병이 이 소위를 반갑게 맞았다. 이 소위를 매점(PX)에 데려간 멘토는 음료수 등을 사주면서 “식사할 때 선임보다 빨리 먹어야 한다” 등의 부대 문화를 하나 하나 설명했다. 이 소위는 내무반에서 전역하는 선임과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이 소위보다 나이가 어렸던 전역병은 “형, 잘 지내요”라고 이별 인사를 했다. 이 소위는 “이등병인 것처럼 보이려고 사진 찍을 때 더 ‘각’을 잡았다”고 말했다. 나흘간의 사병 체험을 한 이들은 지난 20일 20사단 대대장 이상 지휘관 50여명 앞에서 체험담을 발표했다. 사단 관계자에 따르면 6명 모두 “처음 자대에 배치받았을 때 이등병으로서 긴장되고 두려웠다”면서 “선임들이 세세한 것을 챙겨줄 때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서 힐끔힐끔 쳐다보는 상병·병장 선임도 있었다고 한다. 선임병이 담배를 피우면 비흡연자인 후임병도 선임을 따라 나가야 했다. 이 소위는 “선임을 보면 경례를 하기 위해, 담배를 피울 때는 왼손만 허용됐다”고 말했다. 다른 소위는 “내무실에서 새로 온 이등병 환영 ‘과자 파티’가 열렸는데, 남은 과자는 이등병이 모두 먹어야 했다”면서 “지금까지 먹었던 과자보다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억지로 먹으려니 힘들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위는 “이번 경험을 통해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병사들과 최대한 많이 접촉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사단 관계자는 “최근 부대 내 구타·가혹행위가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병사의 입장에서 부대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동안(童顔)의 신임 장교 6명을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사단 관계자는 “이번 실태 조사 결과, 생각지도 못한 병영 문화들이 아직 상당히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부대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 병영 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출·퇴근 개념을 도입해 병영 생활을 개선한 강한석 육군 9715부대장(소장). 그는“출 ·퇴근제 도입 후 1년 만에 각종 사고가 40%나 줄었다”고 말했다. /육군 제공
#2 강한석 육군 9715부대장(육사 34기·소장)은 군내에서 '병영 문화 개선 전도사'로 불린다. 일과 후에도 긴장의 연속인 병영에 출·퇴근 개념을 도입하는 등 파격적인 병영 생활 개선책을 실행에 옮겨 부대 내 사건·사고를 크게 줄이고 강한 부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해병대 2사단 총기 난사 사건 등 잇단 사건·사고로 군내 구타·가혹 행위가 문제가 되면서 그의 '병영 실험'이 주목을 받고 있다. 강 소장은 20일 본지(本紙)와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훈련이 강해서 힘든 군대가 아니라 (내무) 생활이 힘든 군대라는 점과 악습(惡習)을 군기로 착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의 병영 출·퇴근제 도입 실험은 2007~2009년 백두산부대장(사단장) 시절과 1년 전 9715부대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출·퇴근제는 훈련 등 하루 일과가 끝난 뒤 내무반(생활관)에 돌아오는 것을 직장 퇴근과 같은 개념을 적용,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작업이나 잔심부름을 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병장이 이등병에게 PX에서 음식물을 사오라고 시키거나 이등병이 집에 전화하러 갈 때 선임병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강 소장은 "출·퇴근제 도입 후 이등병도 병장 앞에서 누워서 책을 볼 수도 있게 됐다"며 "이 제도를 도입한 뒤 1년 만에 9715부대는 전에 비해 폭행·폭언 등 각종 사고가 4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부대 사정상 일과 후에 부득이 작업을 시켜야 할 경우 '마일리지제'를 적용, 작업을 한 만큼 외출·외박 등으로 보상했다. 병장 등 기득권층의 반발 때문에 진통도 컸다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후임들에게 폭언·구타 등을 한 선임병 등 병사 280여명을 징계했다. 새 제도 도입에 대해 "군대 망친다"고 반발하며 부하들을 강압적으로 대한 부사관 20명을 징계했고, 이 중 문제가 심각했던 5명은 전역까지 시켰다. 강 소장은 "과거엔 단순 징계로 넘어갔던 것도 강하게 조치했다"며 "이제는 정착 단계에 들어가 징계보다 상을 많이 준다"고 말했다. 병장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당근'도 제시됐다. 새 제도에 잘 따르는 모범 병장은 주말에 부대 밖에 있는 PC방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외출·외박을 내보내 스트레스를 풀도록 한 것이다. 강 소장은 출·퇴근제 등이 군 기강을 흐트러뜨리고 약한 군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관련해선 "백두산부대장 시절 새 제도를 도입한 뒤 이등병 62명이 천리 행군에 자원해 완주(完走)하는 등 장병들이 오히려 더 강해졌다"며 "병영 내 악습은 일제시대의 잔재인데 일본 군대에서는 없어지고 우리에게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세대 장병은 간섭을 싫어하는데 군의 잘못된 서열 문화는 모두 간섭하는 것이고 신세대 장병은 여기에 적응을 못 한다"며 "우리는 훈련장에서 군기를 찾아야 하는데 내무생활에서 군기 찾는 게 문제다. 생활에선 에티켓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랄라작성일
2011-07-2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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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전시성 사업에 마구잡이 지방채 발행...빚내서 빚 갚아
재정 파탄 부르는 단체장들 행보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의 모라토리엄 선언을 계기로 그동안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지방재정의 불건전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정치적 성향이 강한 단체장들이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불요불급한 호화 청사 신축과 전시성 축제, 마구잡이 교량·도로 건설 등 ‘광내기 행정’에 필요한 재정 확보를 위해 지방채를 마구 발행하다 보니 지방 재정의 건전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15일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인천시는 2014년 아시안게임 경기장 부지 매입 등에 예산 투입이 늘면서 올해 4968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올해 연말 총 부채 규모가 2조7526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해마다 1000억~2800억원가량을 상환해야 하는 실정이다.
인천시는 전체예산 규모를 고려하면 상환에 별로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지만, 3000억원대의 아시안게임 기반시설 건설비용과 인천지하철 2호선 건설 시기를 2018년에서 2014년으로 앞당기기 위한 추가 지방채 발행이 겹치면 앞으로 3~4년간 부채 규모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일부 사업의 시기와 규모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지난해 부채규모가 2조6000억원으로, 예산 대비 채무비율이 38%대에 달하는 대구시는 올해도 재정 부족분을 3160억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해 메운다는 계획이다. 부채 상당 부분은 지하철 및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따른 지방채 발행 때문으로, 2012년까지 채무 규모를 2조1910억원 정도로 줄인다는 계획이지만 재정운용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호화 청사 논란을 빚은 전북도는 도가 4254억원, 14개 시·군이 5922억원으로 지방채 규모가 모두 1조175억원으로, 2008년에 비해 2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여기에 올해 일선 시군이 755억원 규모의 지방채를 추가로 발행하기로 해 경기악화에 따른 지방세 징수율 저하 등을 고려하면 지방채 발행 남발이 자칫 재정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나오고 있다.대전 동구는 지난달 14일 신청사 건립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4차 계약이 무산되면서 골조공사만 마무리하고 공정 47%에서 신청사 건립이 전면 중단됐다. 동구는 707억원이 소요되는 신청사를 지으려고 그동안 166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현재 채무는 298억원에 달한다. 동구는 예산 부족으로 올해 10~12월분 인건비나 청소사업비 등의 필수 경상비를 예산안에 반영하지 못해 추경예산을 통해 편성할 예정이다.부산 남구도 지난해 예산난으로 2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직원 인건비를 지급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2007년 400억6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1만6034㎡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신청사를 건립한 데 따른 재정난이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올해 예산 부족분이 2000억원이 넘는 광주시는 도시철도 2호선(1조9000억원) 건설사업과 남구 양과동 시립 수목원(294억원) 조성 사업, 조경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에 들어가는 등 대형사업의 중단이나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수요 예측이 빗나간 건설공사로 지자체의 예산을 축내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경남도의 경우 15일자로 개통 2주년을 맞은 민자유치 다리 마창대교 교통량이 건설 당시 협약서상의 예측통행량을 여전히 50% 정도 밑돌고 있어 도민 세금으로 적자분을 보전해주고 있다. 경남도는 민자사업자인 마창대교㈜ 측에 적자보전비로 첫해 5개월 동안 58억원을, 지난해에는 108억원을 도비로 메워줬으며, 올해도 100억원 안팎을 보전해줘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적자보전 도비 지원이 앞으로 남은 위탁운영 기간인 28년간 더 지속되면 엄청난 재정 부담이 고스란히 도민 혈세로 빠져나가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지원선 기자, 창원·인천·전주=안원준·이돈성·박종훈 기자
> 오늘도 애꿎은 보도블럭 걷어내고 다시까는 공사는 계속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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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영상] 한국야구의 전설 장효조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말은 지난해까지 16년 동안 13번의 3할 시즌을 만들어낸 양준혁에 대한 찬사다.
하지만 원래 주인은 단일시즌 타율 순위에서 3위(.387) 4위(.373) 6위(.369)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장효조였다.
지난해까지 통산 3000타석 이상을 나선 역대 99명의 타자 중 통산 타율이 3할대인 타자는 단 10명.
그 중에서 3할2푼 이상은 오직 장효조뿐이다.
장효조(.331) 양준혁(.317) 김동주(.313) 데이비스(.313) 이병규(.312)
김태균(.308) 장성호(.306) 이승엽(.305) 이진영(.302) 이종범(.301)
이정훈(.299) 김종모(.298) 이만수(.296) 박정태(.296) 이영우(.295) 김기태(.294)
마해영(.294) 김응국-김재현-이대호(.293)
메이저리그에서 역대 1위 타이 콥(.366)과 2위 로저스 혼스비(.359)의 차이는 7리.
하지만 장효조와 양준혁의 차이는 1푼4리
다. 4차례 타격왕은 양준혁과 함께 공동 최다. 시즌 대비 숫자로는 양준혁을 앞선다.
장효조는 10시즌 동안 8차례 3할 타율을
기록했다. 또한 5위 내에 든 것이 7번, 10위 내에 든 것이 8번이었다.
가장 아쉬운 시즌은 1991년이었다.
그 해 .347를 기록한 장효조는 .348의 이정훈에 1리가 모자라 5번째 타격왕을 놓쳤다.
'비난은 순간이지막 기록은 영원하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김영덕 감독의 지시를 받은 빙그레 이글스 투수들이 시즌 막
판 장효조와의 승부를 피한 영향이 컸다(공교롭게도 양준혁은 장효조와 마찬가지로, 2007년 1리 차이로 5번째 타격왕을 놓쳤다).
홈런이나 타점과 달리 타격왕은 2년 연속 수상이 대단히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장효조는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유일한 3
연패에 성공했다. 2연패에 성공한 타자도 1991-1992년 이정훈뿐이다. 1984년 2년차 부진(.324 4위)만 아니었다면 역사적인 5
연패도 달성할 수 있었다. '5년 연속 5위 이내'도 장효조 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으로, 양준혁의 최고 기록은 4년 연속이다.
1987년 장효조는 리그 평균(.265)보다 1할2푼2리가 높은 역대 3위 타율(.387)로 타격왕에 올랐다. 역사상 그보다 더 큰 차이
를 보인 타격왕은 1982년 역대 1위 타율(.412)을 만들어낸 백인천(차이 .147)과 1994년 역대 2위 타율(.393)을 기록한 이종범
(차이 .136)뿐이다. 지금까지 리그 평균과 1할 이상 차이를 낸 타격왕이 나온 것은 5번. 그 중 3번을 장효조가 만들어냈다.
장효조에 대해 가장 아쉬운 점은 다른 초창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늦게 데뷔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장효조는 1982년 세계야
구선수권대회 대표선수에 묶여 프로 진출이 보류됐고, 이듬해 만 27세의 나이로 프로 데뷔를 이뤘다.
1983년 장효조는 타율(.369) 출루율(.469) 장타율(.618) OPS(1.087) 최다안타 장타 볼넷에서 1위를 휩쓸었고, 홈런(18)과 타점
(62)에서는 3위에 올랐다. 하지만 너무 뛰어나다는 이유로 신인왕 투표에서 배제됐다(신인왕 박종훈 .312-377-419). MVP 역
시 홈런(27) 타점(74) 1위 이만수(.294-377-555)가 차지했다. 하지만 그 해 장효조는 RC(92.23)에서 이만수(69.56)를 크게 추
월했다.
1991년 만 35세의 나이에도 .347를 기록했던 장효조가 20대 초반에 데뷔할 수 있었다면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는 훨씬 더 풍성
해졌을 것이다.
장효조에 대해 쉽게 오해하는 부분은 그가 타율만 높은 타자라는 것. 하지만 장효조의 진정한 가치는 타율보다는 출루율이었
다. 장효조는 6차례 출루율 1위에 올랐는데, 이는 타격왕 숫자보다 2개가 더 많은 것이다. 장효조를 제외하면 4번 성공한 선수
도 없다(양준혁 3회, 한대화-장성호-김기태 2회). 장효조는 1983년부터 1987년까지는 5연패에게 성공하기도 했는데, 2연패에
성공한 선수도 1989-1999년 한대화뿐이다. 장효조는 10시즌 중 8시즌에서 출루율 3위 이내에 들었다.
A : 타율 .331 출루율 .427 장타율 .459 OPS .886
B : 타율 .338 출루율 .388 장타율 .459 OPS .847
A는 장효조, B는 토니 그윈의 통산 성적이다. 공교롭게도 장효조는 1983년, 그윈은 1982년으로 거의 같은 시기에 데뷔했다.
물론 장효조보다 5살 어린 나이에 데뷔한 그윈은 장효조보다 10시즌을 더 뛰었고 4번의 타격왕을 더 차지했다.
타율이 거의 비슷하며 장타율은 아예 똑같은 두 선수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출루율이다. 둘은 똑같은 타격왕이었지만 '메이
저리그에서의 그윈'에 비하면 출루율이 4푼 가까이 높은 '한국 프로야구에서의 장효조'가 더 가치 있는 타자였다.
이만수가 1983년부터 1987년까지 5년간 4차례 타점왕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앞에서 밥먹 듯이 출루해준 장효조가 있었
기에 가능했다. 팀의 득점에 대한 기여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로 평가받고 있는 RC/27에서 장효조(7.66)보다 더 좋은 통
산 성적을 기록한 타자는 2명. 이승엽(8.90)과 양준혁(8.05)뿐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타격왕 계보는 장효조로부터 출발, 양준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그 다음 계승자가 될 만한 선수
가 등장했다. 장효조가 4번째이자 마지막 타격왕을 따내고 6년 후인 1993년, 양준혁은 첫번째 타격왕을 따냈다. 양준혁이 4번
째 타격왕을 따내고 7년이 지난 지난해, 김현수는 첫번째 타격왕이 됐다.
네이버 기사내용 펌
단군조선작성일
2009-06-0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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