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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엽기영상] 한국에서 대마초가 금지된 이유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은 대마초의 연방 합법화 수순을 밟게 되었는데 다른 마약들은 사형까지 거론하면서도 대마초는 허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외국에서 대마초의 인식이 술 담배 같은 기호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카멀라 해리스, 일론 머스크 같은 정재계 거물들도 대마초를 즐겨 피운다고 한다. 위 그래프를 보면 대마초의 중독성 유독성 모두 합법 마약인 알코올 니코틴 보다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아편전쟁을 겪은 중국도 마약은 선처없이 사형이지만 대마흡연은 최대 2000위안(30만원)의 과태료나 열흘 정도의 구류만 부과한다 게다가 중국은 전세계 합법화 바람에 대마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한국에선 엄청난 규제 때문에 산업 경쟁력에서 뒤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NT8Zo_sfwo 보다시피 지체장애인이 대마초를 피우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이러면 제약회사들이 비싼 약을 팔 수 없기에 의사협회와 약사협회에서 로비를 해서 불법화했다는 설 대마나무 줄기로 만드는 삼베의 천연섬유가 듀퐁사가 개발한 합성섬유 나일론과 레이온의 시장 진출을 가로막아 로비를 했다는 설 등이 있으나 공식적으로 밝혀진 일은 없다. 미국에선 청탁이 합법이기에 충분한 재력만 있다면 가능한 일..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선 범죄가 아니었는데 담배가 부족할 경우 대마잎으로 흡연을 했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 들어와서 해외여행 및 장발 미니스커트와 함께 금지되었다. 사유는 외국의 불량한 히피문화가 들어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키기 위해서였다는데 당시 셈법으로는 산업화를 위해 노동시장에 인력을 갈아넣어야하는데 대마초 피우고 늘어져서 일을 안하면 안되니까… 근데 이런 논리면 술도 팔면 안되지 않나? 애초에 일하면서 술을 마실 수가 없는데… 흡연하는 방식때메 담배와 혼동하는 건 같은데, 담배 흡연은 에너지드링크 마시는 것과 비슷하고 대마 흡연은 술을 마시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한국에서 일반인의 해외여행이 가능해진건 80년대 이후부터다… 이후 출국 두발 치마 규제는 풀렸지만.. 대마초는 아무도 총대매는 정치인이 없어 정계에선 언급조차 되고 있지 않다 사실 그럴만도 한게, 한국에선 외국인들처럼 대마초 합법화 요구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외국인들이 대마초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유는, 우울한 마음을 기쁘게 바꿔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정에 따르면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는 20~29세 남성의 자살률이 9.2~10.8% 감소하고, 30~39세 남성의 자살률이 9.4~13.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료용 마리화나는 우울증 치료제로 한국의 의료용 대마초 헴프와 다른데, 한국에선 THC성분은 의료용으로도 불법이라 CBD만 의료용으로 사용한다. 약 이름은 ‘에피디올렉스’ 뇌전증(간질) 발작 억제용으로만 쓰인다. 정리하자면 한국 의료용 대마초 : CBD 간질 만 치료 외국 의료용 대마초 : THC 치매 암 우울증 등 치료 즉, 한국에서는 사실상 의료용으로도 대마초는 전면 금지된 상태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대마초는 행복감을 고취시켜 우울증을 낫게하고 자살율을 줄인다 경제성장 시기에는 노동력 향상을 위해 각성제인 담배는 권하고 진정제인 대마는 금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어떤가? 전세계 실업율 자살율 1위다. 이런 나라가 정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하나? 이를 바꿔 말하면, 일을 해서 경제를 성장시켜야 할 청년들이 일도 안하고 자살을 하여 국가의 노동력을 손실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대마 금지가 국가를 위해 필요했다. 그러나 이젠 대마가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쇄국정책 당시의 조선과 같다. [시리즈] 대마초 합법화 · 마약마약 대마초의 효능과 선진국에서 합법화 시키는 이유 · 싱글벙글 대마초 합법화 시 세금수익을 계산해보자 https://gall.dcinside.com/board/poll/vote?no=1267884 출처: 의학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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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계 여자축구 발전을 이끌어낸 용감한 노르웨이 전사들
“나는 매우 화가 나서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1986년, 엘렌 빌레가 분노한 대상은 세계 축구 관리 기관 국제축구연맹(FIFA)이었다. 당시 노르웨이축구연맹(NFF) 집행 위원인 그는 “FIFA 보고서에는 여성 축구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다”며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BBC는 1일 이 연설이 이후 여성 축구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며 “1970년대 초 비로소 잉글랜드축구연맹은 여성 축구에 대한 50년 간 금지령을 해제했다”고 회고했다.1970년 이탈리아에서 첫 번째 비공식 여자 월드컵이 열렸다. 이듬해에는 멕시코에서 다른 비공식 세계 대회가 개최됐다. 대회는 관중 10만 명을 끌어들였지만, FIFA 지원은 전혀 없었다. 아마추어 축구 선수이기도 했던 빌레는 1976년 NFF에 합류했고 그 해 노르웨이에서도 여성 축구가 승인됐다.빌레는 당시 멕시코 시티에서 열리는 FIFA 총회에서 연설했다. 빌레는 BBC에게 “내가 도착했을 때, 여자 통역사들 외에는 모두 남자들뿐이었다”며 “FIFA 총회에서 여성이 발언한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그는 키가 147㎝에 불과했다. 무대에 올라갔지만, 얼굴이 마이크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연설을 시작했다. BBC는 “연설의 정확한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고, 연설 기록이나 녹음본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연설을 직접 목격한 이들 중에는 당시 FIFA 회장인 주앙 아벨란제와 사무총장 제프 블래터가 있었다”고 전했다. 빌레는 이들에게 “심판과 국제 토너먼트에서 여성 축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요청했다.1986년 총회 공식 FIFA 보고서에 따르면 아벨란제는 빌레에게 직접 감사를 표하며, FIFA가 해당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1988년에 여성들을 위한 첫 번째 세계 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빌레에 따르면, 아벨란제 발언 후 모든 시선은 그의 오른팔인 블래터에게로 쏠렸다. 블래터는 아벨란제의 뒤를 이어 1998년부터 2015년까지 회장직을 맡은 인물이다. 빌레는 “블래터가 연단에 올라와서 내 의견에 동의하는 발언을 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라고 말했다.여성 축구 발전에 10년 넘게 힘써온 또 다른 노르웨이 인물은 페르 라브느 옴달이다. 전 축구 선수였던 그는 1987년에 NFF 회장이 됐다. 그는 “FIFA는 매우 빠르게 반응했고, 중국에서 시범 월드컵을 개최했다”며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오랜 로비 활동 끝에 FIFA는 월드컵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1991년 첫 번째 토너먼트는 ‘제1회 FIFA 여성 축구 월드 챔피언십’이라는 긴 이름을 받았으나, 이후 월드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5년 스웨덴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90분 경기가 치러졌고 당시 노르웨이가 우승했다.이후 NFF 최초 여성 회장이자 노르웨이 대표팀 출신인 리세 클라베네스가 바통을 이었다. 클라베네스는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기 몇 달 전, 도하에서 열린 2022년 총회에서 거의 모든 남성 청중을 향해 연설했다. 클라베네스는 “엘렌이 1986년 FIFA 무대에 올랐을 때부터 우리는 아주 멀리 왔다”며 “여성 축구에 아무것도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가 여러분을 위해 싸워줘야 했고, 우리는 여전히 그 싸움을 하고 있다”며 “여전히 대부분 국가에는 여성 회장이 없고, 이사회 여성 대표, 여성 코치가 적으며 최상위 리그가 프로 선수들이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2023년 여자 월드컵이 관중 약 200만 명을 끌어들였다. 수백만 명이 TV로 월드컵을 시청했다. 여자축구가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끌기 시작한 증거다. 클라베네스는 “여자 축구를 활성화하는 것은 여성의 싸움이 아니라, 인류의 싸움”이라며 “여성 축구가 가진 힘을 반영하는 프로 환경이 될 때까지는 아직 갈 길이멀다”고 말했다.
도지페페작성일
2024-11-0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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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2015-2024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 모음 입니다
안녕하세요. 대략 2007-08 시즌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 로비 킨 콤비 때부터 스퍼스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이영표 전 선수 때문이기도 했고요. 사정상 00-10년대 초까지의 저지들은 팔게 됐고, 2015-16 시즌 저지부터 띄엄띄엄 스퍼스 저지들을 모아놓고 있습니다. 거두절미 하고, 쭉 업로드 해보겠습니다. 저는 토트넘을 거쳐간 감독들이 다 하나 같이 ‘네임드’ 들이라서 그 다양함에도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각 시즌 별로 그 당시 감독 이름들도 같이 올렸습니다. 2015-16 토트넘 홋스퍼 홈 반팔 셔츠 (크리스티안 에릭센)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아르헨티나, 2014-2019) 2016-17 토트넘 홋스퍼 홈 반팔 셔츠 (해리 케인) 2017-18 토트넘 홋스퍼 홈 반팔 셔츠 (크리스티안 에릭센) 2018-19 토트넘 홋스퍼 홈 UCL 결승 반팔 셔츠 (손흥민) 2018-19 토트넘 홋스퍼 어웨이 반팔 셔츠 (크리스티안 에릭센) 2018-19 토트넘 홋스퍼 3rd UCL 반팔 셔츠 (손흥민) 2019-20 토트넘 홋스퍼 홈 반팔 셔츠 (크리스티안 에릭센) 2019-20 토트넘 홋스퍼 어웨이 반팔 셔츠 (크리스티안 에릭센) 2019-20 토트넘 홋스퍼 3rd UCL 반팔 셔츠 (손흥민) 주제 무리뉴 (포르투갈, 2019-2021) 2020-21 토트넘 홋스퍼 홈 반팔 셔츠 (손흥민) 2020-21 토트넘 홋스퍼 어웨이 반팔 셔츠 (손흥민) 2020-21 토트넘 홋스퍼 3rd 유로파리그 반팔 셔츠 (손흥민) 라이언 메이슨 (잉글랜드, 2021) 2021-22 토트넘 홋스퍼 홈 반팔 셔츠 (손흥민) 2021-22 토트넘 홋스퍼 어웨이 반팔 셔츠 (손흥민) 2021-22 토트넘 홋스퍼 3rd 반팔 셔츠 (손흥민) 누누 산투 (포르투갈, 2021) 안토니오 콘테 (이탈리아, 2021-2023) 2022-23 토트넘 홋스퍼 어웨이 반팔 셔츠 (손흥민) 크리스티안 스텔리니 (이탈리아, 2023) 라이언 메이슨 2기 (잉글랜드, 2023) 2023-24 토트넘 홋스퍼 홈 반팔 셔츠 (손흥민) 2023-24 토트넘 홋스퍼 어웨이 반팔 셔츠 (손흥민) 2023-24 토트넘 홋스퍼 3rd 반팔 셔츠 (손흥민) 엔제 포스테코글루 (호주, 2023-현재) . 2024-25 시즌 토트넘 저지들도 모을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토트넘 핫스퍼 갤러리 [원본 보기]
벽수비작성일
2024-11-0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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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네덜란드 대표팀 소집 명단 (vs 헝가리, 독일)
GK : 마르크 플레컨, 닉 올라이, 바트 페르브뤼헌DF : 버질 판 다이크, 덴젤 둠프리스, 제레미 프림퐁, 뤼츠하럴 헤이르트라위다, 요렐 하토, 마타이스 더 리흐트, 이안 마트센, 미키 판 더 벤, 스테판 더 브레이MF : 라이언 흐라벤버르흐, 퇸 코프메이너르스, 티자니 라인데르스, 퀸텐 팀버, 마츠 비퍼FW : 브라이언 브로비, 코디 학포, 저스틴 클라위버르트, 도니얼 말런, 사비 시몬스, 조슈아 지르크지
로보트카작성일
2024-10-05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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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엘링 홀란드, 맨시티에서 100골을 넣은 19번째 선수가 되다.
엘링 홀란드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100골을 넣은 19번째 선수가 되었으며, 이 획기적인 기록을 달성하는 데 불과 105경기가 필요했습니다.노르웨이 스트라이커는 일요일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9분 만에 골을 넣으며 세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습니다.그는 에티하드에서의 세 번째 시즌을 시작하면서 단 5경기에서 10골을 넣었습니다.이는 영국에서 첫 두 시즌 동안 프리미어 리그 골든 부트를 수상한 그의 세대 최고의 골잡이에 대한 최신 주목할 만한 기록입니다.그는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첫 시즌에 52골을 넣었습니다. 이는 프리미어 리그 선수가 한 시즌 동안 넣은 골 중 가장 많은 골이며, 시티 역사상 가장 많은 골입니다.여기에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36골을 넣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2골을 넣는 등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운 것이 포함되었으며, 우리는 빅이어 트로피를 처음으로 들어올렸습니다.그가 도착한 이래로 그는 우리의 7개 주요 영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24세인 그는 이번 시즌 상대팀에게 무서운 존재였고 , 프리미어리그 첫 5경기에서 10골을 넣었습니다.그는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한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 총 73골, 챔피언스리그에서 18골, FA컵에서 8골, 카라바오 컵에서 1골을 기록했습니다.그는 현재 프리미어 리그에서 경기당 1골 이상을 넣고 있으며, 이 대회에 71번 출전했습니다.이 기록은 앨런 시어러, 해리 케인, 웨인 루니, 앤드류 콜, 세르히오 아구에로 등 해당 리그의 역대 최고 득점자들의 기록을 훨씬 앞지르고 있습니다.100개의 득점 중 73개가 왼발로 이루어졌고, 14개가 오른발, 12개가 머리로 이루어졌습니다.울버햄튼은 홀란드의 위력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팀이었고, 우리 선수는 울브스 팀을 상대로 8골을 넣었습니다.그를 상대로 안전한 팀은 없었습니다. 홀란드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맞붙은 모든 팀을 상대로 골을 넣었습니다.그는 2022년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한 이후 총 11번의 해트트릭을 달성했으며, 그 중 8번은 프리미어리그에서, 2번은 FA컵에서, 1번은 챔피언스리그에서 기록했습니다.프리미어 리그 시대에 홀란드보다 더 많은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는 세르히오 아게로(12), 앨런 시어러(11), 로비 파울러(9)뿐이며, 현재 9번인 그는 8개를 달성하는 데 프리미어 리그 경기 70경기만 필요했습니다.홀란드는 케빈 더 브라위너 와 함께 펩 과르디올라 의 현재 선수단 멤버로 맨시티에서 100골 이상 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으며, 더 브라위너는 4월에 이 기록을 달성했고 현재 102골을 기록 중입니다.더 브라위너는 홀란드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2022년 여름 이후 잉글랜드에서 가장 유익한 파트너십을 이루며 스트라이커를 총 20번이나 도왔습니다.아구에로는 에티하드에서 10시즌 동안 390경기에서 260골을 넣으며 맨시티 역사상 최다 득점자가 되었습니다.1927년부터 1940년까지 493경기에서 177골을 넣은 에릭 브룩, 1920년부터 1930년까지 355경기에서 166골을 넣은 토미 존슨, 1966년부터 1979년까지 501경기에 출전하여 153골을 넣은 콜린 벨이 다음입니다.맨체스터 시티의 모든 구성원은 엘링의 시티에서의 놀라운 경력에 있어 이 새로운 기록를 세운 것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https://www.mancity.com/news/mens/erling-haaland-100-city-goals-63861576
로보트카작성일
2024-09-23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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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역시 1560억 스타' 美 매체 "SF, 이정후 부상→공격 정체성 확립 난관"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존재감이 이 정도였나 싶다. 현지에서도 이정후의 빈자리를 조명하고 있다.미국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16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의 전반기 시사점: 올스타 브레이크에서 정체성이 없는 팀이라는 평가"라는 글을 게재했다.샌프란시스코는 47승 50패로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4위로 전반기를 마쳤다. 지구 우승이 쉽지 않아 가을야구에 나서기 위해선 와일드카드 3위 안에 진입해야 하는데 현재 3경기로 벌어져 있는 상황이다. 후반기 성적에 따라 충분히 가을야구도 노려볼 수 있지만 배걸리는 단순한 성적을 넘어 샌프란시스코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했다.배걸리는 "그들은 어린 선수들에게 의지하고 있다. 투수 뎁스에 깊은 우물을 갖추고 있다. 이닝을 커버하기 위해 나섰던 모든 주를 제외하고 그들은 블레이크 스넬, 맷 채프먼, 호르헤 솔레어, 조던 힉스, 로비 레이, 이정후를 데려오면서 시즌 전 4억 달러(5525억원) 이상의 계약을 맺었고 사치세 기준점을 넘어섰다"고 전했다.문제는 자이언츠가 영입한 많은 선수들이 기대치를 밑돌거나 부상으로 팀 전력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대리그 사이영상 수상자로 큰 기대를 모은 스넬은 우려대로 다시 한 번 부상에 신음했다. 자이언츠가 장기 계약 대신 2년 6200만 달러()만 투자했던 이유이기도 하지만 8경기 등판,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ERA) 6.31은 충격적인 수준이었다.각각 3년 5400만 달러(745억원), 3년 4200만 달러(579억원)에 영입한 채프먼과 솔레어도 기대를 밑돌았다. 채프먼은 타율 0.235 13홈런 4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730, 솔레어는 타율 0.225 10홈런 33타점 OPS 0.702에 그치고 있다.그나마 선발로 영입한 조던 힉스가 19경기에서 95이닝을 책임지며 4승 6패 ERA 3.79로 버텨주고 있다. 그마저도 6월엔 승리 없이 2패 ERA 5.24, 7월엔 2연패 ERA 7.71로 흐름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이적생들 뿐아니라 선발진에선 키튼 윈과 카일 해리슨 등이 연이어 부상을 당했고 그렇기에 1선발 로건 웹과 올 시즌 선발로 변신한 힉스가 예상보다 많은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배걸리는 샌프란시스코가 그렇다고 득점력이 좋은 팀도 아니라고 꼬집었다. 그는 "자이언츠 공격은 경기당 4.42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리그 평균(4.40)에 수렴한다. 실점 방지에서 최고 수준이어야 적절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평균을 밑도는 홈런수도 지적했다. 두산 헨리 라모스의 동생인 엘리엇 라모스(14홈런)의 반등이 아니었다면 신뢰할 수 있을 만큼 타점을 올려줄 타자가 없었을 것이라고도 전했다.결국 이정후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매체는 "아마도 선두 타자이자 전 KBO 스타였던 이정후가 단 37경기 만에 어깨 탈구로 시즌 아웃되면서 공격적 정체성을 확립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라며 "하지만 전반에 걸쳐 공격적으로 극심한 변비에 시달린 전반기였다. 너무 많은 경기에서 상대 선발 투수들에 제지당했다. 결과적으로 승리를 거두더라도 경기 후반에 점수를 내며 뒤집은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이정후는 단 37경기만 뛰며 타율 0.262 2홈런 8타점, 출루율 0.310, 장타율 0.331, OPS 0.641로 기대이하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뛰어난 수비력을 보여줬고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와 주루, 타격에선 리그 최정상급 컨택트 능력과 극도로 낮은 삼진 비율 등으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물론 성적만으로 보면 몸값이 아까운 수준의 수치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전반기를 마친 상황에서 이정후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게 샌프란시스코의 현실이라는 것이다.어깨 탈구로 인해 수술을 받은 이정후는 내년 시즌 복귀를 목표로 재활에 전념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전망할 요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당분간은 자리를 비운 이정후가 종종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옽하니작성일
2024-07-1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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