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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엄청 특이한 가정교육 받고 자란 아이돌
인물영업글 아니라 진짜 신기해서 올린글이고 개인적으론 도움많이됨해당아이돌 관심없더라도 주제에 관심있거나 시간나는 사람들 읽어봐 막 도배 끝낸 벽에다가 밥먹으라고 준 마가린 칠했는데 안혼내고 더 하라고 전지 깔아주심어릴적 부모님께 “뭔가를 가지고 싶다”라고 얘기를 하면간단한물건이라도 사주시는 대신 ‘그걸 만들수있는 재료비’를 주셨다고 함아이가 직접 구하기 힘든 재료라면 멀리서 나무를 찾아와주거나, 예쁜돌을 구해주거나. 직접 발품뛰어서 찾아다줌만약 만들수없는 물건일때는 다른방법으로 교육했는데중학생때 god팬이던 김재경은 CD를 너무 사고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뒤자기가 만들수있는 물건에 대한 구입계획과 그에맞는 재료비를 받아강아지 목줄을 만들고 동네동물병원에 팔아서, 직접 번 용돈으로 앨범을 샀었다고 함배(물건사는돈)보다 배꼽(만드는돈)이 몇배이상 큰 경우라해도재경이 뭔가를 만드는것에 흥미를 느끼는것을 알기때문에 무조건 지원해주셨다고*참고 기사---------------재경은 “중학교 때 디자이너 제시카 김이었다”며 “주요 무대는 양천구에 국한돼 있었고, 동물병원에 일일이 납품했는데, 어린 애가 하니까 거부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재경은 특유의 적극성과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애견 액세서리계를 주름잡게돼따고. 재경은 “첫날 매출이 15만원이었고, 첫달 150만원 정도를 벌었다”고 말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재경은 “god 앨범을 사기 위해서 했다”며 웃었다---------------부모님이 직접 인터뷰하신거 이 남매를 모두 다재다능한 아이돌로 키워낸 엄마는 바로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은진씨.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그녀가 들려준 결정적 한 마디는 “인생은 나의 것! 행복도 나의 것!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기분 좋게 살 권리 역시 오롯이 나의 것!”이다. “새벽 4시 통금이 끝나면 학교로 튀어가서 밤 11시 반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어요. 내 몸이 꼭 네모가 된 것만 같았죠. 그런데 그때 죽자고 한 공부가 인생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행복하기 위한 방법은 별게 아니에요. 좋아하는 걸 하고, 그걸 직업으로 삼으면 더 좋고, 매일매일 충만한 시간을 만끽하면 돼요. 그게 몸에 좋은 음식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일까? 김재경의 하루하루는 즐거운 일들로 꽉 차 있다. 어떤 날은 한복을 만들고 어떤 날은 반려견 마카롱을 위한 타르트를 굽고 또 어떤 날은 빈티지한 가죽 소파를 멋지게 만들어 낸다. 심심할 겨를 없이 ‘제조’의 행복을 누리는 김재경의 뒤엔 모이를 나르듯 나뭇가지와 돌멩이를 주워다준 어미새, 김은진씨가 있다.Q: 어릴 때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나요A: 사실 재경이는 음악보다 미술에 재능이 뛰어났어요. 그것도 그림보다는 창의적으로 새로운 걸 만드는 일에 관심을 보였죠. 방에서 몇 시간씩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문 열고 나올 때면 뭐든 한 가지씩 손에 들고 나왔어요.Q: 이를테면 어떤 것이었나요A: 재경이가 5살 때였는데, 한 번은 유치원 선생님이 저를 부르더라고요. 그 나이의 아이가 만들기 쉽지 않은 걸 만들었다고요. 가보니까 종이 두 장을 오리고 붙여서 치약을 만들었는데, 가운데 부분에 분홍색 수수깡을 넣어서 쭉 밀어 올리면 치약이 올라오도록 한 거예요. 또 얇은 종이로 실물 크기의 청소기도 만들고요. 선생님이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자극을 많이 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때부터 길을 가다가도 특이하게 생긴 나뭇가지나, 돌멩이 같은 게 보이면 주워다 주고, 헌옷도 버리지 않고 방에다 갖다뒀어요. 우유팩도 매일 씻어 말려서 놔뒀는데 그게 쌓이니까 어느 날은 커다란 집을 짓더라고요.Q: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물밑 지원이었네요. 어머님만의 교육관이었나요A: 지금도 엄마들끼리 그룹을 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하잖아요. 저 역시 재경이 땐 첫째라 멋모르고 이것저것 시키고 쫓아다녔는데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한순간에 다 끊고 아이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했죠. 두 아이 모두 연세대학교 어린이 생활지도연구원을 다닌 건 지금 생각해도 행운이었어요. 개방형 교육을 하는 곳인데 유치원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사실 제가 아동학과 출신인데 그곳에서 실습을 했거든요. 실습을 하면서 참 좋은 교육을 한다고 생각했고 제 아이들도 경험하게 하고 싶었어요. 유치원이 놀이공간, 미술공간, 독서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등원을 하면 아이들 스스로 어디서 무엇을 하며 놀지 결정하고 신나게 놀아요. 선생님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아이가 주도적으로 자신의 하루를 채워나가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Q: 미술 쪽 사교육은 전혀 하지 않았나요A: 어릴 땐 전혀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재미를 놓치고 틀에 박히게 될까봐서요. 그런데 재경이가 원하는 미대에 가려면 아무래도 예원, 예고를 가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예원 전문 학원을 보냈어요. 처음엔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 신나게 다니더라고요. 그런데 하루는 영 기운이 없어 보여서 어디 아픈가 하고 방문을 열어보니 무심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주전자를 그리는데 앞에 주전자도 놓지 않고요. 그래서 “주전자도 없이 어떻게 그리는 거야?”라고 물으니까 선생님이 여기는 명암 1번, 여기는 2번, 3번 이렇게 알려주었다는 거예요. 물건이 늘 같은 모습으로 있는 게 아닌데 순전히 외워서 그리고 있는 거예요. 그 순간 지금 아이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수채화 그리는 날 마음을 굳혔어요. 재경이는 원래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야기를 만드는데 그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선생님이 구도가 맞지 않는다며 완전히 바꿨다는 거예요. 재경이가 울면서 그 이야기를 하기에 그날로 학원을 그만두게 했어요. 예원, 예고는 포기하고 일반고 다니다가 때 되면 입시준비만 하기로 했죠.Q: 아이를 믿고 존중해준 거군요A: 제 역할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관찰하는 거였어요. 무엇에 집중하는지, 무엇에 재능을 보이는지 알고나면 그때부턴 방향만 잡아서 은근슬쩍 지원해주고요. 너무 간섭하고 강요하면 잘하던 것도 하기 싫어지니까요. 뭘 선택해서 하다가도 싫증을 내거나 하기 싫다는 이유를 말하면 그대로 존중해줬어요.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고 그게 또 직업이 되면 평생 재미있게 살겠구나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기를 바랐어요.Q: 음악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A: 두 아이 모두에게 악기는 조금씩 시켜봤어요. 흥미를 보이면 취미 삼아서라도 할 수 있게 하려고요. 재경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선 특기로 악기 하나씩 다루게 했는데 재경인 리코더를 했어요. 매달 챔피언을 뽑았는데 승부욕이 있어서 학교에 갈 때도 불면서 가고 올 때도 불면서 오더라고요. 덕분에 챔피언도 여러 번 되고 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았죠. 그러다 어느 날 플루트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피아노와는 달리 들고 다니면서 연주도 하고 취미로 할 수 있겠다 싶어 배우게 했는데 학교에 오케스트라단이 있어서 자연스레 들어갔어요.Q: 평소에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나요A: 전혀 몰랐어요. 청소년 가요제에 나간다고 했을 때도 의아했으니까요. 그때도 재경이는 아는 가수라곤 god밖에 없어서 제가 좋아하던 이은미와 자우림 음반만 슬쩍 사다줬어요. 나중에 보니까 자우림의 노래를 불러서 은상을 받았더군요. 어쨌든 재경이는 모든 면에서 수월했어요. 재능을 일찍 발견한 데다 쭉 그 길로만 걸어가서 저는 중간중간 방향만 잡아주면 됐거든요.Q: 재경씨는 배우고 도전하는 데 전혀 두려움이 없어 보여요A: 어릴 때부터 심심할 겨를이 없었어요. 레인보우 시절에도 활동을 쉬는 시간은 또 다른 기회였죠. 아이돌들이 활동을 쉬면 여러 면에서 생각이 많아지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그러는데 재경인 오히려 황금시간이라고 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어요. 가방, 한복도 만들고 가죽공예 같은 것도 배우고요. 레인보우 멤버들하고는 쉴 때마다 같이 취미활동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팀이 해체되고 나서도 자매들처럼 끈끈해요.Q: 성격이 굉장히 긍정적이네요.A: 어머니를 닮았나요 제가 좀 긍정적이긴 해요. 전 집안의 맏며느리인데 새댁 시절부터 명절이 돌아오면 할 일이 많아서 즐거웠어요. 워낙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손님 초대해서 테이블을 꾸미고 차리는 게 즐거웠거든요. 명절이면 요리책을 뒤져가며 특별한 요리를 두세 가지 더 보탰죠. 또 제 성격이 모 아니면 도예요. 100인분은 기본이고 가장 많게는 1000인분이 넘는 음식도 해봤는데 크게 걱정을 안 해요. 계산해서 할 수 있겠다 싶으면 전력을 다해 추진하고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덮어요. 그런 면에서 재경인 저랑 비슷하긴 한데 어떨 땐 저보다 더한 것 같아요.Q: 밝고 다재다능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엄마들에게 선배맘으로서 한 마디A: 전 아이들한테 공부하란 소리를 단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매를 들어본 적도 없어요. 스스로 선택한 삶을 지켜봐주는 게 다예요. 물론 선택을 하기까지 잘 관찰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은 해야겠죠. 하지만 그것도 아이가 정말 원할 때 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하는 거지 억지로는 안 돼요.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저는 제 인생을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하루 알차게 살고 저녁에 마무리하는 거죠. 일이 많으면 열심히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없으면 없는 대로 행복을 만끽해요. 그 기운이 아이들에게 전해졌으면 다행이고요. 얼마 전엔 재경이가 그러더라고요. 나도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엄마처럼 교육시키겠다고요.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저한테는 그 어떤 상보다 기쁘고 고마운 말이었어요. 출처: 더쿠 무명의 더쿠 존나 특이한 가정교육 받고 자란 아이돌.jpg - 스퀘어 카테고리인물영업글 아니라 진짜 신기해서 올린글이고 개인적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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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축의금 내고 피로연장 직행,충격”.韓결혼식에 탄식한 그리스 출신 대주교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그리스 출신으로 26년간 한국에서 사목활동을 해 온 조성암(64·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대주교가 한국의 결혼식에서 하객이 축의금을 낸 뒤 피로연장으로 직행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조 대주교는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한국 정교회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달라진 한국의 결혼식 풍격을 언급하며 “한국에는 가족 간 유대, 사람들 사이의 정, 훌륭한 음악적 전통, 춤과 노래가 많다. 왜 이런 아름다운 것을 버리고 미국과 같은 스타일을 모방하는지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조 대주교는 부임 초기 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결혼식 모습에 놀라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더니 함께 갔던 한국 지인들이 “이게 코리안 스타일”이라고 반응했다고 한다.이에 그는 “예전에는 결혼식장 가면 다 같이 인사를 나누고, 하객도 풍성했는데 지금은 형식적으로 의례를 치른다”며 “사랑의 부재, 소통의 부재가 어디까지 왔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국내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났던 조 대주교는 요즘엔 학생들 간에도 대면 소통을 잘 하지 않는다며 “우리에게 지금 부족하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짚었다.그는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직접 사랑을 가르쳐 주셨다”며 그리스도교에서 강조하는 사랑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행동·실천을 의미한다. 특히 희생이 있는 실천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조 대주교는 기후 위기에 대해서도 “우리는 바로 재앙, 큰 파국 직전에 서 있다”고 꼬집다.그는 이날 배포한 회견문에서 기후 위기의 고통이 특히 약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가중되고 있다면서 “약자·소수자 편에 섰던 역사를 이어받아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이뤄지는 세상, 모든 생명의 존엄이 지켜지는 세상을 위해 불평등에 도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조 대주교는 1960년 그리스 아이기나섬에서 출생, 1991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98년 아테네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그해 12월부터 한국 정교회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나딤작성일
2024-11-2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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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엽기영상] 지식을 레고처럼 갖고 노는 제텔카스텐 메모법
여러분은 메모를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가요? 메모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지식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저는 15년 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메모를 해왔습니다. 손으로 몰스킨이나 스마트펜을 사용해 적기도 하고, 원노트, 에버노트, 워크플로위 등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하루의 업무와 일상을 기록해왔습니다. 하지만 메모를 다시 보는 빈도는 적었고, 이런 메모들이 제가 추구하는 지적인 삶의 성장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계속해서 고민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메모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아 유의미한 통찰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저 시간을 들여 메모를 다시 보고 추가하는 것이 해결책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습니다. 메모에 관한 다양한 책을 읽고 인터넷을 통해 공부해도 메모하는 방식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메모를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가끔씩이라도 메모를 다시 볼 기회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발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메모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지식의 네트워크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를 느꼈습니다. 메모를 오래 해오면서 관련된 기록 에세이도 출간하고, 강의도 하고 유튜브 채널도 운영했습니다. 매일 블로그 포스팅으로 일상을 정리하며 지식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그 지식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글을 쓸 때 여전히 내 머리에만 의존하거나 최근에 본 자료에 기대어 적는 저를 발견하면서, 더 나은 메모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가 찾은 것이 바로 제텔카스텐 메모법입니다. 제텔카스텐은 독일어로 ‘노트 상자’라는 뜻으로, 작은 노트에 단일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이를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법은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이 자신의 연구와 저술 활동에서 엄청난 생산성을 발휘하게 해준 비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텔카스텐 메모법의 핵심은 ‘인덱스 메모’와 ‘연결’입니다. 제텔카스텐에서는 하나의 메모에 단일 아이디어를 적고, 그 아이디어를 기존의 다른 메모들과 연결하여 체계적인 지식 네트워크를 만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특정 주제에 대해 새롭게 배운 지식이나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은 후, 그 아이디어와 관련된 기존 메모를 찾아 서로 연결해줍니다. 이렇게 연결된 메모들은 지식 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새로운 통찰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을 줍니다. 기존의 메모 방식과 비교했을 때, 제텔카스텐은 단순한 기록에 그치지 않고, 메모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전통적인 메모 방식은 정보를 기록하는 데 집중하지만, 제텔카스텐은 기록된 정보들이 서로 대화하고 연결되도록 유도합니다. 이를 통해 메모는 단순한 정보의 저장소가 아닌, 지식을 발전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제텔카스텐은 기존 메모 방식과 달리, 정보의 축적에 그치지 않고 그 정보들이 서로 연결되고 대화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를 통해 메모는 단순히 저장된 정보의 집합을 넘어, 지식의 발전과 확장을 돕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예를 들어, 사업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생성하거나,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논리를 구성하는 데 제텔카스텐은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아이디어들이 모여 서로 연결될 때, 그 집합은 단순히 개별적인 아이디어들의 합을 넘어서는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새로운 글을 쓰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제텔카스텐 메모법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지정된 형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각 메모는 단일 아이디어를 담되, 기존의 다른 메모와 연결될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메모는 날짜, 제목, 내용, 메모의 출처, 연결되는 다른 메모의 참조 번호나 링크를 포함해야 합니다. 이러한 통일된 형식은 체계적인 정리와 활용을 용이하게 하며, 메모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실질적인 지식 네트워크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첫째, 모든 메모에는 고유한 넘버링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이 시스템은 각 메모의 위치를 명확히 하며, 다른 메모들과의 연결성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예를 들어, 1.1 카테고리에서 시작해 관련된 1.1a, 1.2b와 같은 서브 카테고리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각각의 메모는 상호 연관된 정보나 하위 주제를 포함하며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인 지식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둘째, 각 메모는 간결하고 단일한 아이디어만을 담아야 합니다. 이는 정보의 명확성을 유지하고, 다른 메모와 연결할 때 쉽게 연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메모 간의 연결은 링크나 참조를 통해 표시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연결은 단순한 정보 축적을 넘어 지식의 맥락을 형성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통찰을 얻는 데 기여합니다. 제텔카스텐의 형식을 따르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런 형식은 안정감을 제공하며, 메모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자료로 만들어줍니다. 특정 주제에 대해 떠오른 아이디어를 기존 메모와 연결하면, 지식 네트워크 내에서 그 아이디어가 새롭게 조명되고 발전할 기회를 얻습니다. 메모의 체계화를 통해 더 쉽게 재활용하고 새로운 통찰을 끌어낼 수 있게 합니다.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사례는 제텔카스텐 형식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는 동일한 양식의 인덱스 카드를 사용해 9만 개에 달하는 메모를 작성하며, 이를 기반으로 사회학의 거대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메모는 일관된 형식 덕분에 연결성과 통합이 용이했으며, 이를 통해 지식을 심화하고 확장하면서 압도적인 지식의 생산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컨테이너가 처음 물류에 도입된 사례는 제텔카스텐 형식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 좋은 비유가 됩니다. 컨테이너의 표준화가 물류 효율성을 높인 것처럼, 제텔카스텐 메모 형식도 지식 관리의 효율성을 높입니다. 표준화된 메모 형식은 작성 과정에 드는 에너지를 줄여주고 체계적인 관리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는 반복적인 작성에서 에너지를 줄일 뿐 아니라, 메모 작성이 익숙해질수록 속도와 효율도 함께 증가합니다. 메모 형식의 표준화는 개인지식관리에서 필수적인 기반을 제공합니다. 각 메모가 동일한 규격을 유지하면, 작성자가 매번 새로 고민할 필요 없이 빠르게 내용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표준화된 형식은 메모로 남겨진 지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합니다. 제텔카스텐 메모법은 컨테이너처럼 지식을 담는 ‘용기’를 표준화하여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식 관리를 가능하게 합니다. 니클라스 루만은 단순히 메모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지식 네트워크로 활용하여 새로운 정보를 기존 지식과 연결하고 지속해서 확장해 나갔습니다. 루만의 제텔카스텐은 단순한 메모 모음이 아니라, 아이디어 간의 유기적인 연결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는 9만 개 이상의 메모를 작성했으며, 각 메모는 독립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다른 메모와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통찰과 독자적인 논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연결성 덕분에 그는 60권 이상의 책과 400편 이상의 논문을 집필하며, 사회학뿐만 아니라 법학, 정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루만은 제텔카스텐을 통해 단순한 정보 저장을 넘어 자신의 과거와 대화하며 끊임없이 지식을 확장했습니다. 그는 메모를 작성하면서도, 필요할 때 기존 메모를 열람하여 아이디어를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와 출판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주제에 대한 논문을 작성할 때, 그는 관련된 메모를 모아보고 즉각적으로 배치하면서 체계적으로 재구성하여 작업을 신속히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제텔카스텐은 지식 창출의 도구이자 루만의 압도적인 생산성의 핵심 비결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텔카스텐이 효율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니클라스 루만은 메모상자를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파트너로 여겼습니다. 그의 메모상자에는 과거의 경험과 통찰이 담겨 있었고, 넘버링과 영구메모의 연결 구조를 통해 자신이 걸어온 지적 성장의 여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의 통찰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제텔카스텐의 효율성은 특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작업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제텔카스텐을 활용하여 제텔카스텐에 대한 글을 썼던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편적인 아이디어들만 적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 메모가 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모인 메모를 사용해서 글을 쓰니, 배치하는 방식으로 글을 빠르게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들어가는 내용이나, 연결하는 문장,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직접 작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글쓰기 자체에 대한 부담이 훨씬 덜했고, 자료 수집과 글을 다듬는 데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글쓰기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제텔카스텐은 상향식 글쓰기를 지원하는 시스템입니다. 하나의 정해진 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메모가 점차 모여가면서 글쓰기의 논리와 구조가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과정을 제공합니다. 글을 쓰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방향 전환이 필요한 순간에도, 제텔카스텐은 메모의 연결을 통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주제에서 파생된 메모들의 흐름을 살펴보면 특정 주제에 대한 우리의 통찰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텔카스텐은 단순한 메모법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찰과 연결을 통해 지식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고, 작업 효율성을 높이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제텔카스텐은 우리의 믿을만한 지원군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돕기 위해서는, 제텔카스텐에서 정한 원칙에 따라 잘 연결된 메모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메모의 구성은 우리가 도전하기 어려운 성취를 가능하게 하고, 하나의 성취는 또 다른 성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한 분야에서의 성공 경험은 다른 분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고, 그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와 배움은 우리를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만듭니다. 제텔카스텐은 지적 성장뿐만 아니라, 창의력 증진에도 기여합니다. 다양한 메모들이 서로 연결될 때,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연결된 지식은 단순한 정보의 집합이 아닌, 창의적인 발상의 토대가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원하는 삶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지적 성장은 우리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꿈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자신에게 맞는 삶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됩니다. 그 성찰이 새로운 지식으로 입력되고, 그 지식이 다시 결과물로 나와 우리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때로는 전진하고, 때로는 물러서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제텔카스텐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도구를 넘어, 우리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 메모법의 원칙을 따라 메모를 축적하고 연결하는 일은 마치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는 여정과도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고, 이는 우리의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지금까지 제텔카스텐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개인의 지적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제텔카스텐의 핵심은 작은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서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지식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예상치 못한 통찰과 해결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니클라스 루만의 사례는 이 메모법이 단순한 정보 저장을 넘어 지식을 유기적으로 확장하고 창의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보여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과 지속적인 실행입니다. 이제 여러분도 제텔카스텐 메모법을 직접 실천해보세요. 작은 아이디어라도 기록하고, 그것들을 연결하면서 자신만의 지식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길 추천합니다. 꾸준한 메모와 연결은 여러분의 지적 성장과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확장할 것입니다. 지적 성장은 끝없는 여정이며, 제텔카스텐은 이 여정에서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입니다. 혼돈 속에서도 스스로의 질서를 만들어가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텔카스텐을 통해 지식을 쌓고 발전시켜, 원하는 삶에 더 가까워지길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생산적생산자였습니다. 출처 : https://youtu.be/4s06pR5NT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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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넷마블·NC, 구글과 인앱결제 담합…7800억 뒷돈받아 ”
결국 터져버린.. 항상 순위권 고정인 이유가 있었음 2018년부터 해왔다는데 이 나라는 하여간 문제있다 사기조작 선동없으면 돌아가질 않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716934?sid=105 게임·시민단체, 공정위 고발 예정 엔씨(NC)소프트·넷마블·펄어비스·컴투스 등 국내 주요 게임사 4곳이 뒷돈을 받고 모바일 게임 매출액의 30%를 ‘통행세’로 떼는 구글의 인앱 결제 강제 행위에 담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민·게임소비자 단체들은 이들 게임사가 구글의 불공정 행위에 협력하고 그 수익을 공유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로 했다.■ “엔씨·넷마블, 소비자 배신하고 약 8천억원 이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한국게임이용자협회, 한국게임소비자협회는 19일 2019년 8월께부터 구글 앱장터 ‘구글플레이’에 모바일 게임 앱을 출시하는 대가로 구글에서 리베이트(수익 배분액)와 앱 피처링(노출) 광고비 등을 지원받은 의혹이 있다며 국내 게임사 4곳과 구글을 21일 공정위에 고발한다고 밝혔다.경실련 등은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의 개발사 에픽게임즈가 구글을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 소송에서 증거로 제출된 구글의 내부 문건과 현지 매체 보도 등을 근거로 이들 4개 게임사가 구글로부터 모두 5억6400만달러(약 7850억원)의 경제적 이윤을 얻었다고 주장한다.실제 2019년 8월 구글이 작성한 문건에는 국내 게임사 4곳을 포함해 글로벌 20개 게임업체가 받은 수익 배분액과 앱 피처링 광고비 등의 액수가 담겨 있다. 국내 게임사 4곳 가운데 구글과의 거래에서 가장 많은 경제적 혜택을 받은 건 엔씨소프트(2억7천만달러)였으며, 넷마블(1억4800만달러), 컴투스(8200만달러), 펄어비스(6400만달러)가 그 뒤를 이었다.자사 모바일 게임 매출액의 30%를 구글에 수수료로 내면서도, 이 가운데 일정 부분을 수익 배분과 광고비 등의 형태로 돌려받은 정황인 셈이다. 경실련 등은 국내 게임사 4곳의 이런 행태가 구글의 과도한 수수료 정책에 대한 게임업계의 부정 여론 확산을 차단하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 2018년 공정위 조사 뒤 ‘불법행위’ 참여앞서 공정위는 구글이 2016년 출시된 국내 토종 앱장터 ‘원스토어’를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미국 본사까지 나서 국내 게임사들이 원스토어에 게임을 출시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고 보고 지난해 4월 과징금 421억원을 부과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 2016년부터 2018년 4월까지 진행된 구글의 ‘갑질’로 원스토어의 국내 앱장터 점유율은 15~20%에서 5~10%까지 하락했다.이들 4개 업체는 2018년 공정위 조사가 시작돼 구글의 행위가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지했음에도, 2019년 구글이 자사 정책에 반기를 들 것 같은 게임사를 포섭하려는 정책인 일명 ‘프로젝트 허그’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구글의 지원을 받으며 경쟁사와 불공정 경쟁을 벌였다는 게 고발 단체들의 주장이다. 미국 아이티(IT) 매체 ‘더 버지’는 푸니마 코치카 구글플레이 파트너십 부사장이 지난해 11월 에픽게임즈와의 소송에서 프로젝트 허그와 관련해 “(구글의 광고 크레디트는) 게임사들이 3달러를 쓸 때마다 1달러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구글이 사실상 특정 게임사에 대한 불공정 지원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정위, 구글 등 별도 제재해야이번 공정위 고발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이 구글의 인앱 결제 강제 행위를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벌어진 반독점법 위반 행위로 판정한 배심 판결에 따라, 지난달 구글에 경쟁사 앱장터 입점을 막기 위한 일체의 수익 제공을 금지하는 ‘영구적 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이뤄지게 됐다. 미 법원은 각국의 주권을 고려해 이 명령을 미국에서만 적용하도록 했는데, 국내에선 공정위가 구글 등에 별도 제재 조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최근 4년간(2020~2023년) 구글과 애플의 과도한 인앱 결제 수수료로 인한 국내 업체들의 피해액이 9조원 이상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이철우 한국게임이용자협회 회장(변호사)은 “특정 대형 게임사들이 문제를 제기해 인앱 결제 수수료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뒷돈을 받고) 구글에 협조하는 식으로 경쟁사들보다 유리한 지위에서 영업을 이어나갔다. 이런 행위는 국내 게임계의 발전은 물론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한편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등은 실제 구글로부터 지원금을 받았는지 여부를 묻는 한겨레 질의에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뭐 이런 새끼들이 다있냐? “NC·넷마블, 구글과 인앱결제 담합…뒷돈 받아 7800억 이윤 챙겨” 엔씨(NC)소프트·넷마블·펄어비스·컴투스 등 국내 주요 게임사 4곳이 뒷돈을 받고 모바일 게임 매출액의 30%를 ‘통행세’로 떼는 구글의 인앱 결제 강제 행위에 담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민·게임소비자 단체들은 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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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WKBL 적응 중인 이시다 유즈키, 해결 과제는 ‘소통’
이시다 유즈키(168cm, G)가 소통으로 팀에 적응 중이다.부천 하나은행는 3일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하나은행 2024~2025시즌 정규리그 경기에서 인천 신한은행을 상대로 70-56으로 승리했다.하나은행은 이날 승리로 청주 KB전 패배 이후 2연승을 기록하며 3위를 유지했다.이날 경기 전 하나은행은 김정은(180cm, F)과 김시온(175cm, G), 박소희(178cm, G)가 부상으로 인해 결장했다. 이처럼 하나은행은 완전한 전력을 갖출 수 없는 상황에서 신한은행을 상대해야 했다.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하나은행은 초반부터 경기를 주도하며 주전들의 공백을 잊게 만들었다. 유즈키와 진안이 내외곽을 넘나들며 신한은행을 공략했다.하나은행은 팀 리바운드(29-39)에서 신한은행에 밀렸지만, 스틸 12개와 속공 7개를 바탕으로 달리는 농구를 보여주며 4쿼터 초반 일찍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이날 하나은행의 승리 요인에는 아시아 쿼터인 유즈키의 역할이 컸다.유즈키는 1쿼터부터 종횡무진 코트를 누비며 공격을 조율했다. 1쿼터 8분여를 남긴 상황에서 과감한 돌파로 레이업을 시도하며 바스켓카운트를 얻으며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내외곽에서 과감한 슈팅시도로 득점을 완성 시키며 하나은행의 리드를 도왔다.1쿼터에만 8점을 기록한 유즈키는 2쿼터에는 속공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쿼터 6분여를 남긴 상황에서 정예림의 패스를 받아 혼자 드리블로 레이업을 만들었고 2쿼터 종료 11초 전 신한은행 구슬을 상대로 스틸을 만드는 등 가드로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3쿼터에는 유즈키가 체력안배를 위해 고서연(171cm, G)과 교체되었다. 3쿼터 2분여를 남기고 다시 투입된 유즈키는 매치업 상대인 신지현(174cm, G)을 상대로 파울 자유투를 얻는 등 꾸준하게 공격에 가담했다.다만 유즈키는 4쿼터 3분여를 남기고 신한은행 신이슬(170cm, F) 을 마크하는 과정에서 5번째 파울을 저지르며 벤치로 물러난 점은 옥의티다.이날 유즈키는 28분 56초를 뛰며 13점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날 유즈키의 13점은 본인의 시즌 최다 득점으로 개막 3경기 만에 본인 커리어를 다시 썼다.경기 수훈 선수로 선정된 유즈키는 “김정은과 김시온이 없는 상황에서 한명 한명 선수들이 맡은 역할을 다했다. 팀이 하나가 되어서 이길 수 있었다”며 경기 소감을 전했다.이어 유즈키는 팀 플레이 적응에 대해 “수비할 때 소통이 중요하다. 아직은 스스로 나서서 말하거나 소통하기에는 어렵다. 그 부분을 감독님이 이야기해서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소통을 강조했다.유즈키는 WKBL 아시아쿼터 드래프트 9순위로 하나은행의 유니폼을 입었다. 유즈키는 박신자컵과 연습경기를 통해 팀원들과 맞춰 나갔고 시즌 개막 이후 출전 시간을 늘려가며 팀에 적응 중이다.유즈키가 한국 농구 적응을 위해 소통을 실천하고 하나은행 팀원들과 융화될 것인지 지켜볼 대목이다.
태무진칸작성일
2024-11-04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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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싱글벙글 일부다처 스시남 근황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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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같은 남자와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요"라고 말했고, 제 옆에서 떨어져 나갔어요. 남은 것은 현재 4명의아내입니다. 3. 현재 2명의 아이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만, 다른 아이를 만난 적은 있습니까? →거의 모든 아내들은 아이를못 만나게 했어요. 아이 10명 중 8명은 엄마가 다르지만,제가 그들과 가까워지면 아이를 간절하게보고 싶습니다. 4. 아이들의 양육권은 어떠한가요? → 생모가양육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5. 어떻게 세 명의 아내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까? →나는 “ヒモ(끈, 속칭 기둥서방백수)의 하렘 가족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백수는 「살림형」과 「출장형」의 두종류가 있어요, 처음에는 「출장형」이었지만, 여성의 집을 돌아다녀야 해서힘들었어요.게다가 여성은 내가 소홀하게 여기면 어느새사라집니다.그래서 지금 4명의 아내와 함께 사는형태로 왔습니다.데이팅 앱에서 만난 여성에게 “동거”나 “결혼하자”고 부탁하고 집에 데려와 아내로 맞았습니다. 저는 앞으로 3명의아내를더 두는 것입니다. 전 사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홀어머니 밑에서자라서그 당시의 외로웠던 기억이 지금도있습니다. 저는 항상 따뜻하고 활기찬 집을 갈망했니다. 6. 평소 집안일을 어떻게 나눠서 하고 계신가요? →우리 모두는 역할을 정해서합니다. 제1부인 요사키는 요리, 제3부인치하루는 빨래, 제2부인 아야카는 아이들의 돌봄과 정리, 청소는 제가 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깨끗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집안일을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7. 옛날부터여성에게 인기가 있었습니까? → 맞아요. 저는 항상 인기가 많았고, 여자가 항상 제 곁에있었어. 설령 헤어져도 다른 여친이 교대로 생겨서 옆구리가 시릴 일은 없었어요. 8. 본인이인기가 있다는 것을 언제 깨달았습니까? →중학교 1학년 때부터요. 사실저는 초등학교를 3학년까지만 학교를 다닌 ‘유졸 (유치원 졸업자)’입니다. 초등학교4학년 이후로 학교를 아예 안 가서그 당시 여자아이들과 교류가 많지 않았습니다.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와 저는 후쿠시마현으로 이사했어요. 그러다 보니 생활 환경이 바뀌어중학교에 가야 했습니다.중학교에서 여자 애들이 제게귀엽다고 말했고, 이때 저는 여자들에게인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9.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까? →감기로 학교를 쉬었을 때,집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학교에 가는 것보다 제가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생활이 매우 매력적으로 여겨졌어요.게다가 한 번 학교를 빠지면 수업 진도를따라갈 수 없었어요. 공부하는 것도 싫고, 왜 수업을 듣는지도 모르겠어요. 한 번은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저를 지목하고반 친구들 앞에서 “넌 이런 것도 이해를 못 하냐, 바보 자식아”라고 비웃었습니다. 그 상황은 매우고통스러웠어요. 10.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저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습니다. 원래부터 뮤지션이 되어 음악을 제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음악 전문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가난했기 때문에 부모님께 가고 싶다고 확실히 말할 수 없었어요.어쨌든 고등학교 입학 시험에 응시하기로 결정하고 일반계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세 번 정도 가다가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11. 고등학교 중퇴 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이삿짐, 호텔 청소, 레스토랑, 주점, 노래방, 호스트 등 약 20 종류를 했지만 한번 아르바이트를 하면 한 달만에 때려치는 게 많았어요.지금 생각해보면 인간 관계가 힘들었나봐요. 아르바이트가 부담스럽고 무엇보다도 제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는 신세가 정말 안 맞았어요. 12. 당신의 천직(天職)은 백수라고 생각하나요……? →어디 한번 봅시다. 나는 내 자신의 일정과 규칙을 정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23살에 포주를 시작했고, 올해로 13년째입니다. 13. 앞으로 일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나는 백수 생활에 재능이 있어서 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14. 와타나베 씨, 당신은 “일부다처제의 백수”라고 떠벌리고 있습니다만, 알고보면 당신이 누군가에 빌붙어 산다는 거 아닌가요? →아니요, 저는 빌붙어 사는 것도 아니며, 아내 누구와도 호적을 만들지 않습니다. 저와 함께 하는 아내 모두 사실혼의 관계입니다. 15. 과거에 호적을 만든 적이 있습니까? → 딱 한번 있어요. 19살 때, 나는 동갑내기 여성과 법적으로 혼인 신고를 하였습니다. 저의 첫 아이가 생겨서 자동으로 호적을 만들고 혼인 신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고등학교 중퇴 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요, 결혼해서 애를 키우려면 아무래도 알바로 입에 풀칠하는 건 힘들잖아요. 무엇보다도 결혼 해서도 정규직이 되지 않으면 안 좋다는 사회 통념이 있었기 때문에, 우선 정규직으로 취직해 1년 반 동안 카메라 제조 공장에서 일을 했어요.19살 때 결혼한 아내와 21살에 이혼했는데요, 왜 그런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제가 바람을 피웠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돈이 없어서 이혼했나봐요. 이혼하고 30살 까지, 「결혼하기 싫고, 애 키우려면 돈이 많아야 하니 육아도 싫다」라고 생각했어요. 16. 다시 호적을 만들고 싶습니까? →아니요, 전혀요. 전 앞으로도 호적, 혼인 신고 이런 거 안 하고 사실혼만 할 겁니다. 17. 앞 서 말했듯 아이를 원치 않은 시절이 있었잖아요, 근데 지금은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요? →이제 아내들이 돈을 벌고 있으니 돈 문제도 해결되었어요. 18. 지금의 부인과 아이를 갖기로 정한 계기는? →아내의 동의하에 피임 없이 잭스를 했어요. 아이를 갖는 것에 논의는 없었구요. 무엇보다도 아내들은 피임을 하지 않는 것에 반대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서로 암묵적인 동의를 한 셈이네요. 19. 임신과 출산의 순간에서 갈등이 있었나요? →없습니다. 나와 아내들은 지금까지 낙태를 쳐다도 안 봤어요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전 정말 기뻤어요. 19. 미디어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정부의복지 혜택을 받지 않게 되니까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어 돈을 벌기로 결심했지요. 저는 일부다처제가 미디어가 좋아하는 어그로 주제가 된 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20. 아내들이 미디어에 부담을 느끼진 않았을까요? →처음에 아내들은 “나는 미디어에 안 나와도 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제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고, ‘우리가 미디어에 나오면 재밌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자 아내들이 미디어 출연을 납득하고 절 응원했어요.도쿄에서 TV 프로그램 인터뷰를 할 때면 아내들은 일을 쉬고 시간을 내서 저를 따라오거나 YouTube 편집을 도와주는 등 많은 지원을 해줍니다. 21. 미디어에 출연했을 때 어떤 반응이었나? →역시나 미디어에 나오니 여러 시청자의 갑론을박이 펼쳐집니다. 답을 찾을 수 없는 논의라고 할까요? 그래서 부정적인 댓글이 많습니다. 가장 흔한 말은 “역겹다”이고 두 번째로 흔한 말은 “너네 아이들이 불쌍하다”입니다. 22. 그런 부정적인 댓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아내도 신경 안 써요. 댓글 하나하나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어요(웃음). 23.「아이가 크면 어떻게 하냐?」라고 댓글을 남긴 사람도 있습니다만, 앞으로 아이들에게는 일부다처를 어떻게 설명해 줍니까? → 아이는 저와 아내들과매일 함께 사니까 일부다처의 가족이 익숙하다고 인식하겠죠. 그래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거나 세상에 나가면 (일부일처인) 주위 가정과 비교해서 (일부다처가) 위화감을 일으켜 주변의 수군거리는 얘기를 들을 수는 있어요.그럴 때는 일부다처가 “새로운 가족 스타일”이라고 설명할 겁니다. “해외에서는 인정되는 곳이 있지만, 일본에서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혼을 하고 있다”고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어요. 24. 아내와 장래에 대해 의논하고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아니에요.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장래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아내에게 “생각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
벽수비작성일
2024-10-24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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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데뷔 3번째 시즌 앞둔 이승훈, 새벽 훈련으로 부족함 채운다
“제가 부족한 만큼 남들보다 노력해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을 노력으로 메우려고 한다.”이승훈(181cm, G)은 2022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0순위(전체 20순위)에 뽑혀 창원 LG 유니폼을 입었다.정규리그에선 2022년 11월 20일 안양 KGC인삼공사와 맞대결에서 12분 17초 뛴 게 유일한 출전 기록이다.이승훈은 D리그에서 주로 활약하며 다시 정규리그 코트를 밟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데뷔 후 3번째 시즌을 앞둔 이승훈은 “제 포지션의 형들이 몸을 만드는 중이라서 연습경기를 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서 더 빨리 팀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며 “감독님을 2년 동안 겪고 이번에 3년 차라서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건 맞지만, 경기 감각이나 센스는 형들이나 경기를 많이 뛰었던 유기상 등을 보고 배우려고 한다”고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들려줬다.이승훈은 LG 선수 중에서 새벽훈련을 열심히 소화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이승훈은 새벽에 어떤 훈련을 하는지 묻자 “노력하면 된다는 말을 믿고 있다. 제가 부족한 만큼 남들보다 노력해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을 노력으로 메우려고 한다”며 “새벽에는 몸을 격하게 쓰기 힘드니까 제가 앞선 포지션에서 부족한 드리블이나 볼 감각 컨트롤 연습을 많이 하고, 몸이 안 좋았던 부분을 재활한다”고 했다.이어 “야간훈련을 할 때는 4분의 코치님께서 나오셔서 선수들을 잘 봐주셔서 코치님들께 여쭤보며 운동한다. 임재현 코치님은 가드에게 필요한 2대2나 드리블로 공격하는 것, 박유진 코치님은 전체적인 부분을 다 봐주시고, 김동우, 강병현 코치님은 슈터의 움직임, 우리 팀의 패턴에 의한 슈팅 기회를 만드는 움직임을 봐주신다”며 “우리가 훈련하고 싶으면 코치님께 도와달라고 말씀 드리고, 또 우리가 훈련을 하고 있으면 코치님께서 이런 걸 하면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조언을 하신다”고 야간 훈련 내용까지 덧붙여 설명했다. 이승훈은 동국대 시절 슈팅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신장을 고려하면 포인트가드를 맡아야 한다.이승훈은 “감독님께서 초반에 1번(포인트가드)을 해보라고 하셨는데 제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포지션이다”며 “신장이 작지만, 초중고대학까지 슈터로 활약을 해서 경기 운영이나 양준석, 한상혁 형, 두경민 형처럼 볼 핸들링, 패턴 지시가 능숙하지 못해서 저도 제 포지션에서 뛰는 게 심리적으로 편하다. (포인트가드) 연습을 하는데 장담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고 했다.이승훈은 포인트가드를 볼 수 있어야 더 기회가 생기지 않겠냐고 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만, 제가 못하는 걸 억지로 잘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제가 잘 하는 걸 보여드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건 추후의 일이다”며 “제 포지션에서 열심히 보여드릴 생각이고, 기회를 잡으려면 제가 잘 하는 것, 감독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걸 실천해야 기회가 생긴다. 그래서 그 기회를 먼저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조상현 LG 감독이 원하는 걸 추가로 묻자 이승훈은 “저에게 큰 걸 바라시지 않고, 팀 수비 이해와 상대 가드 한 명을 잡아줄 수 있는 수비력, 기회가 나면 과감하게 던져서 그걸 성공하는 거다”고 답했다. LG는 오는 11일 필리핀 전지훈련을 떠난다.이승훈은 “필리핀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 모두 몸 싸움이 격하고, 활동량이 많은 편이어서 그 정도에 익숙해진다면, KBL도 하드 콜이 된다고 하니까, 우리가 수비에서 몸 싸움, 활동량이 더 많아진다면 하드 콜에 익숙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태무진칸작성일
2024-08-0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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