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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걱정하던 게...드뎌 현실이 되는군요...
걱정하던 게...드뎌 현실이 되는군요... [산물아이님 글]
한미FTA ...정말 충격적이군요...
아래 글은 지난 19일에 드렸었던 글입니다. FTA졸속 협상에 대해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별다른 이슈화가 못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알고 계셨으면 하는 마음에.....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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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60분 보고 나니.....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욕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더군요...
ㅆㅂㄹ~
많은 국민들의 걱정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년 11월 22일 한나라당의 기습 날치기 강행으로 한미FTA 비준동의안이 우리 국회에서 처리가 됐습니다.
이 한미FTA 협정문에서 대표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여러 독소조항들 중에,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값싼 복제약 생산이 어려워 지면서.. 약값이 오를 것이란 건 쉽게 예견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되면 국민건강보험료를 인상하거나 보험적용 해당항목을 축소하는 게 불가피할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습니다.
이와 함께... 민영의료 보험제도가 필요하다는 검은논리가 슬그머니 그 마각을 드러낼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국민들이 많았었습니다. 이 조항은 ...후진국인 콜롬비아와 파나마도 재협상을 통해 삭제한 조항입니다.
그런데 이런 국민들의 걱정이 절대 기우가 아니었음을.... 지난 18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의약품 한미FTA 미국은 왜 제외되었나?' 편을 통해 낱낱히 그 더러운 치부를 고발해 주더군요.
의약품 분야에선 상대적으로 약자인 우리 쪽이 뭔가 제외되면 돼야지...웬 미국 쪽이 제외됐을까? 하는 의아함이 있으실 겁니다. 아래 내용들을 읽어보시면 그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리실 겁니다.
한미FTA 협정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란?
특허가 끝나가는 약에 대해 특허권을 가진 제약회사가 소송을 걸 경우, 판매 준비 중인 복제약 회사의 복제약 판매가 자동으로 정지되는 제도입니다.
이게 뭔말인가 하면, 특허기간이 완전 끝날때까지 특허약에 대한 어떤 제조판매 준비 활동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값싼 복제약은 한미FTA 발효 이전보다 길게보면 약 4~5년 정도 더 늦게 출시될 수 밖에 없고, 이 늦어진 출시 기간만큼 더 비싼 약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특허약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환자들에게는 약값 부담이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이상의 문제점은 지금까지 어느정도 거론이 되어왔기 때문에 많은 분들께서 알고 계시는 사항일 것이고요. 진짜 어처구니 없는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2004년 미국과 FTA를 체결한 호주 정부당국자와 추척60분 팀이 공식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거절당했고요. 힘들게 호주-미 간의 FTA와 한미FTA에 대해 정확하게 잘 알고있는 어느 호주의료전문가와의 비공식 전화인터뷰가 이뤄졌는데요. 이 분도 역시 공식인터뷰는 거절했고요... 정말로 한국이 걱정되고 돕고 싶어서 비공식적이라도 말씀드리는 거라고 밝히더군요. 이 호주의료전문가의 말씀이...
'한미FTA에는 한국 의료보장시스템에 상당한 피해를 초래할만한 잠재성이 매우 많습니다. 그것은 진심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라며 한국이 왜 호주보다 불리하게 FTA를 체결했는지 그 구체적 조항을 들어주더군요...
'호주FTA의 경우 신약의 보호기간이 5년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일단 5년을 보장하고 추가적으로 새로운 지표(근거자료)가 나올 때 마다 3년씩 연장할 수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호주는 그런 협상조건을 거부했는데, 한국은 그 부분에 동의했습니다. 결국 신약에 대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진짜 더 욕나오게 만드는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추적60분 팀은 미국 취재를 통해 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한미FTA에는 결코 상호공정하지 못한 이중적인 기준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약품가격규제를 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정작 미국은 약품가격규제를 가능하게 하는 미국 주정부의 시스템을 허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미FTA 협정문 각주에서, 미국의 '메디케이드'는 제외라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메디케이드(의약품이 포함되는 전반적인 미국에서 가장 큰 의료제도)'는 미국 주정부 차원에서 시행하는 의료보장제도로 미국 주정부들은 앞으로도 계속 메디케이드를 실시할 수 있다' 라고 각주에 규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즉, 미국은... 주정부 차원에서는 공공성의 개념 하에 서민들을 위해 약품가격을 적정수준까지 낮추도록 제약회사와 계속 협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죠....
결국, 중앙정부가 약값을 정하는 한국에만 의약품 분야 한미FTA가 부당하고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미국인이)매우 걱정해 주더군요.....ㅠ, @%$@@ 이게 당최 뭔 시츄에이션인지....
미 공화당 주의원인 '샤론 트리트' 라는 사람이 추적60분과의 인터뷰에서 뭔 말까지 한 줄 아세요?
우리 주 국민들을 위해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지켜냈지만 한국 국민들도 똑같이.. 보다 저렴하게 누구나 구입할 권리가 있기에, 한미FTA 협정을 조절할 기회가 있다면.... 솔직히 한미FTA에서 약값 관련 내용이 모두 빠졌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피력하시더군요....
더 열받는 건....
우리 정부관계자는 이런 각주의 규정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심각하고 불평등한 오류가 있는지 조차도 인지하지 못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제대로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처럼 인터뷰를 하더란 말씀입니다.
부아도 치밀어 오르고... 정말 답답하네요......휴~
호주의 의료전문가나 미국의 공화당 의원에게 위로와 걱정의 말이나 들어줘야 하는 이 현실 너무도 ..... 너무도... 어처구니 없고 슬퍼지고.... 대한민국 국민임이 초라해 지네요.....
결론은 한국 약값제도는 중앙정부차원이라 건드릴 수 있고, 미국 약값제도는 중앙정부차원이 아니라 건드릴 수 없고......
미국에서는 의약품과 그 값이 공공재화의 성격을 지닌 말 그대로 '의약품'임을 인정받은 것이고, 한국에서는 더 이상...... 의약품은 '의약품'이 아닌 '일반 상품'처럼 취급 당할 수 있는 것이 공정한 무역이고? 한미FTA의 추악한 진짜 얼굴이던가요??
이대로 간다면... 한국은 제약사들에 대한, 특히 다국적 제약사들에 대한 약값 통제프로그램의 그 통제력이 무력화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관련 협정과 제도를 시급히 바꾸고 보완하여 줄 것을 촉구합니다.
한미FTA 우리 정부측 협상자들에 대해 매국노라고 하면... 그분들이 무지 싫어라 하신 다죠, 정말 욱기시네요~
지금 더한 말이라도 뱉어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http://bit.ly/ypCK3D
이번주 홍콩에서는 다섯번째 아시아금융포럼(AFF)이 열렸습니다. 세계 각 국 정부 관료들과 경제학자, 금융기관 수장들이 참석했는데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가 서구 경제모델을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번 포럼 기조연설을 맡은 조셉 스티글리츠 뉴욕대 교수는
한국 경제의 위험 요소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꼽았습니다.
"한국과 같은 이머징 국가에서 FTA 체결로 지적재산권 등이 강화되면 기술 발전이 저해될 수 있다.
자유무역협정이 필요할 경우 양국간 체결이 아닌 다국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조셉 스티글리츠교수)
가자서작성일 2012-01-21추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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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볼리비아 경찰
볼리비아 경찰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볼리비아 경찰은 총31,000명으로 세계 여느 경찰과 같은 사회를 보호하
고 공공질서를 유지하는게 임무를 합니다.볼리비아 국가 경찰 주임무로는 외국 공관 보호,치안유지,폭동 진압,교통정리,마약 퇴치가 주임무 입니다.국가 경찰의 최고 사령관은 대통령이며,비상시에는 대통령이 직접 경찰 부대의 활동을 관리할수 있습니다.다른 중남미 국가와 달리 정부가 담당하지 않고 각주정부에서 담당 합니다.볼리비아 경찰 역사로는 안토니오 호세데 수크레 알카라는 1826년에 6월 24일에 처음으로 볼리비아 경찰을 조직 합니다.하지만 지금과 같은 국립 경찰 조직이 아니라 육군 헌병대소속 이였습니다.1886년에 비로소 국립경찰이 설립 되지만,명칭은 지금의 국립경찰이라는 명칭이 아닌 칠레와 같은 카르비네로스(기총병) 였으며,경찰 학교는 1937년에 설립되었으며 나중에 국립 경찰 사관학교하는 이름으로 개명 합니다.볼리비아,파라과이,아르헨티나 국경 분쟁인 차코 전쟁 당시에는 군대에 합병되어 군단 헌병대,준군사 보안 경찰,육군 기총병 연대에 바뀌었습니다.1950년대에 헌법 311조를 개정하면서 볼리비아 경찰은 비로소 육군에서 독립된 조직이 됩니다.하지만 1952년 혁명까지 볼리비아 경찰은 육군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2000년대에 적어도 3,1000명의 국립 경찰 병력이 있으며,처음에는 5,000명 규모의 준군사 조직인 국가 방위군이였다가 이후에 국가 경찰로 개편되면서 1976년에 볼리비아 국가 경찰은 크게 국립 수사국,국제 경찰(인터폴),세관,교통 경찰,국도 서비스,소방 부대(한국과 달리 소방부대는 경찰에 소속해 있습니다.)로 분할되게 됩니다.볼리비아 경찰에도 경찰 특공대가 조직되어 있는데 총 6,000명 병력이 조직되어 있습니다.볼리비아 국가 경찰은 경찰 항공대가 조직되어 있지 않아서 마약 퇴치 임무시에 공군이 경찰을 지원하게 됩니다.볼리비아 경찰 무장으로는 베레타92fs,m19 리벌버 M4카빈,M-16A2소총,세트메C소총,AUGA1소총,SA80소총,M-60 기관총,M79 유탄 발사기,M203 유탄발사기,AM600 37MM 척탄 발사기.슈타이어 SSG지격총,버스버그M500 산탄총,MP-5A3,Z-62기관단총 등이 있습니다.차량은 치안용 장갑차로 UR-416 병력 수송차량,메르세데츠 벤츠 폭동 진압용 차량,도요타 힐럭스 픽업트럭,도요타 랜드 크루져 픽업 트럭,도요타 랜드크루져 suv 입니다.
볼리비아 순경 구두를 닦고 있는 구두닦이
볼리비아 국가 경찰소속 도요타 힐럭스 픽업 트럭
길거리에 주차되어 있는 볼리비아 경찰 도요타 랜드 크루져2 FJ-70 SUV
볼리비아 경찰기동대가 근래에 도입한 신형 AM-600 37mm 척탄 발사기
볼리비아 경찰기동대가 근래에 도입한 폴리카보네이트 소재 방패
2010년 볼리비아 독립 기념일 퍼레이드에서 시가 행진중인 볼리비아 경찰기동대소속 메르세데츠 벤츠사제 물대포차
페인트볼탄 발사기(co2개스로 작동합니다)를 들고 사열 중인 볼리비아 경찰 기동대원들군복은 시티어반 계열의 위장복 이고,입고 있는 베스트는 방탄복이 아닌 방검복 입니다.
범죄자를 연행하고 있는 볼리비아 경찰 특공대원.전술조끼는 블랙호크제 tac계열 전술조끼.헬멧은 케블라 헬멧이고 총기는 SA-80 소총 입니다.
M-16A1(장착된 유탄발사기는 M203 40mm 유탄발사기),AUG소총,CETMEC소총을 들고 경비 중인 볼리비아 델타 경찰 특공대원들.
볼리비아 경찰 소방부서 소속 볼보제 소방트럭
사열 중인 볼리비아 마약 퇴치 부대원들.군복은 볼리비아군과 같은 우드랜드 군복.군방은 LC-2 군장 입니다.메고 있는 배낭은 엘리스팩 계열 배낭 입니다. 총기는 M-16A2소총으로 볼리비아 마약 퇴치 부대 장비는 미국이 지원을 하고 있으며,미국 정부가 공여한 UH-1H(경찰항공대가 조직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공군소속 입니다.)수송 헬기 타고 이동 합니다.
볼리비아 경찰 치안용 UR-416 보병 수송차량
출처:KJCLUB
샤오웨이작성일 2010-10-09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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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군 복무에 관한 외국인의 시각
김성주 회장의 글을 보고 개인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반응들을 보는데...이런 글이 있더군요..
이화여대생인 손정민이라는 여학생이 코리아헤럴드 '나의의견'란에 군가산점 폐지에 대한 투고를 읽고 어떤 외국인이 투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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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letters to the editor]men`s work to the editor:
recently both your editorial writer and a female contributor to in my view expressed utter dismay and disbelief that korean veterans have gotten so angry over the constitutional court`s decision to strike down a policy to award bonus points to the test scores of former soldiers who apply for low-level government jobs.
최근에 코리아헤럴드지의 사설기자와 코리아 헤럴드지의 `나의 의견`란에 글을 투고한 한 여자는 그들이 쓴 글을 통해, 하위직 국가공무원을 지원하는 제대군인에게 공무원시험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를 폐지하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한국 남성들이 격분하고 있는것에 대해 강한 불신과 경멸을 나타냈다.
the anger of these men makes perfect sense to me. korean men must give 26 months of their young lives to an army that neither pays them for their efforts or offers them anything in the way of comfort or perks. military service in korea, according the hundreds of korean men i have spoken to, is a tedious period of social and physical deprivation. and it is dangerous. every year scores of young korean men are killed while performing tasks such as serving in flood rescue operations and fighting off rabid demonstrators on the streets of seoul. yet these fallen heroes receive no tribute. no monuments are erected in their honor. their deaths are footnotes in the news.
한국남성들(군필자들)의 분노는 나로서는 대단히 일리가 있는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남자들은 그들의 군복무에대한 보상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 군대에 가서 26개월이라는 젊은 청춘의 시기를 바쳐야 한다. 내가 지금껏 이야기 해본 수백명의 한국남자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군복무는 사회생활의 기회는 물론이고 신체의 자유마저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매우 위험하다. 매년 수십명의 젊은 군인들이 수해구조작업이나 서울 시내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데모를 막다가 목숨을 잃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전사한 영웅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다. 그들을 기념해서 기념비가 세워지지도 않는다. 그들의 죽음은 뉴스에서는 각주정도에 불과하다[역주:뉴스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지않는다는 의미]
what makes the front pages of newspapers and the top stories in tv news shows in their stead? feature stories about young women at elite officer training academies and their "bravery" in being women trying to make it in the korean military.
이들의 죽음에 관한 뉴스 대신에 신문의 일면이나 텔레비젼 뉴스의 주요뉴스로 나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사관학교에 다니는 젊은 여자들, 그리고 여자의 몸으로서 한국군대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용기에 관한 것들을 특집으로 다룬 이야기다.
always in these pieces, which seem to dominate the media now every veteran`s day the same way the several dozen american nurses who served in the vietnam war now own that holiday in america, there is some feminist expert holding forth on the natural right of women to get the top prestige jobs in the military. it never ceases to amaze me how the expert never mentions requiring women to share in the hardships of the rank and file. the only conclusion to be drawn from such blatant omissions is that korea`s feminists believe that the dangerous and thankless service of korea`s half a million grunts is "men`s work."
요즘들어 미국에서도 베트남전쟁때 복무했던 수십명의 미국 간호사들이 매년 이와 비슷한방식으로 국군의 날 방송매체를 독차지하는데, 몇몇 여성운동전문가들은 여성들도 군대에서 최고 신망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성운동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어째서 한국남자들만이 지고 있는 군복무의 힘든 부분을 여자들이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여성들이 남자들이 지고있는 군복무의 힘든 짐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 하지 않고있는(당연히 주장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운동가들의 뻔뻔스러움으로부터 도출해 낼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한국의 5백만명이 넘는 예비역과 현역들이 맡고 있는 위험하고 감사의 말조차 듣지 못하는 군복무는 `남자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in her in my view piece, sohn jung-min displayed classic feminist reasoning: men should not be compensated, sohn claimed, for their military service because women have such hard lives already. sohn even went so far as to say that the government should compensate women for doing housework and having babies, but should not give men a single won for their 26 months of military service.
`나의 의견`란에 글을 투고한 손정민이라는 여자는 전형적인 페미니스트식 추론을 보여주고 있다. 손정민은 한국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매우 힘들고 험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때문에 남자들에게 군복무에 대한 보상을 해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손정민은 심지어는 정부에서 여자들의 가사일,출산에 대한 보상까지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남자들의 26개월의 군복무에 대해서는 일체의 보상을 해주어서는 안된다(10원짜리 하나도 줘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does this make sense to anyone with a brain not poisoned by radical feminism? does the government force women to have babies? who benefits more from having a baby, the woman who becomes a mother or the government? yet, how many young men would go through 26-months of unpaid military hell if the law didn`t force them to.
급진적인 페미니즘에 오염되지 않은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손정민의 주장이 말이 된다고 생각할까?
정부에서 여성들로 하여금 출산을 강요하고 있는가? 출산을 하므로써 누가 더 이득을 보는가? 출산을 함으로써 어머니가 되는 여자가 더 이득을 보는가? 아니면 정부가 더 이득을 보는가?
만약에 법에서 강제적으로 한국남자들에게 군복무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월급도 받지 못하는 26개월의 군복무를 할려고 하겠는가?
i am sure sohn`s absurd arguments brought cheers among all those horribly disadvantaged young women at ehwa university who were responsible for initiating the lawsuit that killed the test bonus and subsequently destroyed the morale of the nation`s fighting men.
이번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군가산점 폐지와 더불어 한국 군필자들의 사기를 꺽어버린데 그 책임이 있는, 자칭 자신들이 이사회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화여대생들은 손정민이라는 여자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분명 환호성을 질렀을거라 생각한다.
but how is it that some pampered ewha princess with her cell phone and european vacations has the gall to claim that some working class young man fresh out of getting bottles and rocks thrown at his skull for 26 months of riot police duty is more "privileged" than she in this society? feminism would really be good for some laughs if hadn`t ruined the ability to reason in so many.
그러나, 부유한 집에서 애지중지 자라서 휴대폰을 들고 학교에 다니며 유럽여행이나 다니는 일부 이화여대생들이 어떻게 뻔뻔스럽게도 26개월간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화*과 돌멩이를 피해야하는 힘든 전투경찰로서의 군복무를 마치고 갓 제대한 빈곤계층의 젊은이들보고 이들이 이 사회에서 자신들보다 더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what truly amazes me in this whole affair is that korean men have not been more militant in their response to the court`s decision to strip away the lone benefit of their service. the herald editorial writers were shocked that a website got hacked; i am surprised there hasn`t been a full-scale revolt of the armed forces.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를 정말로 놀라게 한것은 자신들의 군복무에 대한 유일한 혜택마저 뺏아가버린 헌재의 결정에 대한 한국남자들의 반응이 그리 호전적이지 않다는것이었다. 헤럴드 신문의 사설기자가 웹사이트가 해킹당한데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는데, 나는 오히려 대한민국 군대에서 대규모의 반동이 없었다는게 놀랍다.
what are these men risking their lives for? a constitution and a nation that doesn`t forbid the use of young able-bodied men as slave labor (young soldiers are called out to save the land of wealthy farmers in the rainy season), but absolutely forbids the awarding of 3 to 5 percent in extra points for veterans on a test for the lowest possible positions in the government because it offends the sensibilities of ewha princesses? moreover, what is the big deal about an extra three to five percent in points on a test. it seems to me that such a miniscule gap could easily be closed with a little bit of extra study. oh, i forgot, feminism is not about giving women a chance to prove themselves; it is about giving women things because they are women.
한국에서 군복무하는 남자들은 누구를 위해 목숨을 거는가? 헌법을 위해서? 아니면 국가의 말단 하위직 공무원시험에 제대군인들에게 몇점의 가산점을 주던 제도를 이화여대생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폐지시키는 정부를 위해서인가?
시험에서 3에서 5퍼센트의 가산점을 주는게 뭐가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내생각으로는 이러한 작은 차이는 공부에 약간만 더 노력을 투자한다면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참, 내가 깜박했군. 페미니즘이란게 여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할수 있도록 여자들에게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는게 아니지?, 페미니즘은 단지 자신들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기들에게 뭐든지 그냥 달라고 말하는거지.
were feminism worth the paper its manifestos are printed on, korea`s women would be fighting to require that all women be drafted as well as men to serve the nation for 26 months. but don`t anyone hold his or her breath on that one. the ehwa princesses would absolutely die if they had to wear nothing but green for two years, and the korean courts, no doubt, would be sensitive to their pain.
만약 페미니즘이라는게 페미니즘의 강령이 인쇄되어있는 종이만큼의 가치라도 있다면 한국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이 여성들에게도 26개월간 국가를 위해 복무 할수 있도록 모든 여성들 또한 징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싸우고 있어야 할것이다. 하지만 이문제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숨을 죽이지 말라.
이화여대생들은 아마도 만약에 자기들이 군복비스무리한 색깔의 옷이라도 2년동안 입어야 된다면 분명히 모두 자살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역시 이번에도 틀림없이 이들의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ben t. eller dallas, texas
이화여대 학생들이 국방부 외벽에 흰색 페인트를 뿌린 사건.
2005년 총 학생회에서 진행한 "어머니의 자궁을 짓 밟는 군인들"이란 제목의 퍼포먼스퍼포먼스의 주제는 `군인은 예비 *범, 폭력의 씨앗`이었다.
그냥 동아리도 아니고...총 학생회에서 저런 퍼포먼스를 벌였다니...
다른 학생들과의 충돌도 없이? 제지하는 학생들도 없었고?
이쯤되면 이화여대는 병적 페미니스트들의 산실이라고 봐도 무방한가요?
하놔.....
이건 그냥 헛웃음밖에 ...-0-
스탑레드작성일 2010-07-31추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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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협동의 진화론
출처: http://chaos.inje.ac.kr/Alife/prisonerdilemma&cooperation.htm
'선하게' 행동하는 것과 악을 응징하는 것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의 글입니다.
좀 길기는 한데 읽다 보면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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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의 진화론
D.G.Hofstadter
생은 파라독스로 가득차 있다.그래서 때로 생의 진수는 이 파라독스를 이해하는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여러 파라독스들은 어떤 면에서 모두 서로 관련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데 어떤 것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가 하면 어떤 것은 피부에 바로 와 닿는다.생과 직결되는 파라독스에 1950년에 메릴 플러드Merril Flood와 맬빈 드래셔Melvin Drasher가 발견하고 후에 알버트 터커Albert Tucker가 정립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것이 있다.나는 이것을 우선 다음과 같은 비유의 형태로 여러분께 소개하고 난 다음,정식으로 문제를 만들어 풀어가도록 하겠다.
내가 보기에는 죄수를 이용하여 설정한 오리지날이 다음에 제시하는 변형된 형태보다 조금 못한 듯 하다.문제는 아래와 같다.
당신이 어떤 것(예를 들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그리고 이 대신에 다른 것(예컨대 우표,옷 또는 다이아몬드)을 가지고 싶다고 가정하자.그래서 당신은 어느 딱 한사람의 장사꾼과 서로 합당한 조건으로 교환을 하기로 결정한다.서로 주고 받는데,물건의 값어치가 차이난다거나 하는 불만은 없다.그런데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이 교환은 비밀스레 이루어져야만 하게 되어 있다.그래서 당신과 그 상대는 각각 어느 비밀스러운 곳에다 자신의 보따리를 가져다 두고 상대방의 보따리를 다른 비밀지점에서 찾아가기로 계약하게 되었다.그런데 당신들 두 당사자는 이 거래가 끝나면 이후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고,또 거래를 더하지도 않게 되었다.
이 문제에 부닥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자,두사람 모두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인데,상대가 빈보따리를 두고 갈까 하는 것이다.온 보따리를 두고만 가준다면 틀림없이 당신들은 서로 만족할텐데 말이다.그러나 아무것도 안주고 공짜로 온 보따리를 차지하는 것은 더욱 신나는 일이다.그래서 당신은 빈보따리를 두고 오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다시 더 볼 것도 아니니 말이다.
실제 엄격한 논리학으로 다음과 같이 따져 볼 수 있다.
"저쪽이 온 보따리를 가져올 경우를 가정하면 나는 빈 보따리를 두고 오는게 낫다.공짜로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게 될 터이니까.한편,저 쪽이 빈보따리를 두고 가는 경우라도 나는 손해볼 것이 없다.또 속지 않게되니 나쁠 것 없지 않겠는가?어차피 나도 빈보따리를 두고 왔으니까."즉 상대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경우라도 나는 빈보따리를 두고 오는 것이 더 나은 행동임에 틀림없다.그러므로 빈보따리를 두고 오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상대편 장사꾼도 입장만 다를 뿐 동일한 조건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비슷한 생각과 논리로 빈보따리를 두고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똑같이 도달하게 된다.그래서 당신은 완벽한 논리적 사고의 결과 둘 다 빈보따리를 두게 되고 서로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다.그저 처음 약속한 대로 바보처럼 단순히 협조하였더라면 서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터인데 얼마나 슬픈일인가?
"논리가 협동을 방해하는가?" 이것이 죄수의 딜레마가 제시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왜 "죄수"의 딜레마란 이름이 붙었는지 의하해 하는 분들을 위해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당신과 어떤 사람이 우연히 함께 범죄를 저지르게 된 공범들인데 그 때문에 함께 체포되어 재판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둘은 각각 독방에 감금되어 서로 연락을 할 수 없는 형편이다.검사가 두 사람에게 각각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당신들은 둘다 검사가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들이 죄를 저질렀다는 여러 상황증거가 있다.그러니 계속 무죄라고 우겨 보아야 어차피 너희들은 재판에서 2년 징역을 먹게 되어 있다.그러니 자백을 해서 증거를 대라.확실한 증거를 주면 네 동지녀석을 확실하게 기소하고 너는 자유로이 풀어 주겠다.그녀석은 최소 5년은 썩을 테니까 보복을 겁낼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당신은 검사가 똑같은 내용을 동지에게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당신은 의아해 혼란에 빠지며 묻는다.
"나도 자백하고 내 동지도 자백하면 어떻게 되나요?"
"아,유감스럽게도 그러면 둘다 아마 4년씩을 받게 될거야."(증거가 있는데 검사도 어쩔수 없는 것이지)
자 당신은 정말 곤란하게 되었다.당신의 동지가 자백을 한다고 믿는 경우라면,당신은 결백하다고 우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5년이나 살게 될 터이니까 말이다.어차피 같이 당신이 자백을 한다 하더라도 4년을 살게 될 뿐이지 않은가? 한편 그 동지가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주면 당신에게는 자백하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아예 풀려나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그러니까 우선 생각에 당신이 해야할 일은 "부는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헌데 당신에게 자명한 것은 당신 동료에게도 자명할 것이므로,결국 당신 둘은 불고불고 하여 4년을 살게 될 것이다.이것이 논리적 사고의 결과임에 틀림없다.그런데 당신 둘이 좀 비논리적이어서 서로 불지 않고 무죄라고 우겼으면 함께 2년만 살아도 되었을 터인데,좀 우습지 않은가?논리가 또 말썽을 피우는 것일까?
여기서 다시 처음의 비유로 돌아가서 조건을 조금 바꾸어 보겠다.이번에는 당신과 장사꾼은 단 한번의 거래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달에 한번,일생동안 규칙적으로 그러한 거래를 하기로 처음부터 동의하였다고 가정하는 것이다.그래도 당신들은 서로 대면하게 되는 일은 없다.또 서로 상대를 모르기 때문에 상대가 얼마나 늙었는지,언제 거래래 끊길지 모른다.물론 정황증거로 보아 최소 수개월 이상,아마도 수년간은 지속할 것이라고 믿어지기는 하지만..
자 첫 거래에서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가?처음부터 빈보따리를 가져다 두는 것은 첫 거래를 트는 것 치고는 좀 지나치게 야비한 것처럼 생각되고,신용을 쌓는 방법이 아닐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다.그래서 당신도 온 보따리,저쪽도 온 보따리를 각각 가져다 두고 또 가져 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그래서 첫달은 그렇게 지나간다.그 다음 달,당신은 또 생각하게 될 것이다."온 보따리냐,빈 보따리냐"를 말이다.매달 당신은 배반(Defect; 빈 보따리)과 협동(Cooperate;온 보따리)을 결정하게 된다.협동이 계속되면 서로들 만족하게 될 터이지만 어느 달,상대 장사꾼이 갑자기 변절하였다고 하자.자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그 장사꾼을 이제 다시 신용할 수 없으므로 당신도 빈 보따리를 가져다 놓겠는가?그저 모른척하고 계속 온 보따리를 가져다 두는 친절을 계속하겠는가?아니면 몇 번 빈 보따리를 두고 온 보따리만 챙기는 것으로 상대를 혼내줄 터인가?한번?두번?여러번? 저쪽에서 배반하는 수에 따라서?얼마만큼 화를 낼 터인가?
이 형태는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Iterated Prisoner's Dilemma) 문제이다.이것은 아주 어려운 문제인데 게임이론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량적으로 연구되었다.어떻게 정량화했을까?해답은 각 행동에 대하여 점수를 할당함으로써 정량화했는데 이것은 아래 그림1에 나타나 있다.
그림 1 죄수의 딜레마의 점수 할당표.(x,y)에서 x는 당신의 점수,y는 상대의 점수를 나타낸다.
이 표에서 상호협동(서로 온 보따리를 주고 받음)은 2점을 얻게 되며 상호배반(서로 빈 보따리를 주고 받아 손실이나 이득이 없음)은 0점을 얻게 된다.당신이 협동하는데 대하여 상대가 배반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로서,당신은 -1,상대는 4점을 얻게 되는데 이렇게 점수가 많은 것은 공짜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반대로 어느날 당신이 좀도둑 노릇을 하고 상대가 얼간이짓을 하였다면 당신이 4점을 얻고 상대는 -1점을 얻는다.전체적으로 보면 서로 협동하는 것이 최선임이 분명하다.그러나 당신들은 서로 상대에게 눈꼽만큼도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당신들은 고상한 "공동선"(collective good)을 찾고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둘다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이다.
이기주의자란 다음 예를 보면 그 뜻이 분명해진다.예를 들어 수년간 당신과 상대는 서로 신뢰하고 협동관계를 쌓아 왔는데,어느날 어느 믿을 만한 비밀정보통으로부터 상대가 병에 걸려 1-2달안에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그런데 그 상대 장사꾼은 당신이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모른다.
이럴 때 수년간 협동해온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갑자기 배반하고 싶은 유혹을 받지 않겠는가?당신은 이 비정한 세상에서 당신 자신외에 누구 하나 돌본 적이 없다.더구나 이번이 그 장사꾼과 마지막 거래라면,이러한 비밀정보를 이용하여 최대한의 이득을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당신의 배반은 절대 벌받는 일없고,또 죽어가는 상대가 마지막으로 배반한다고 하더라도 손해볼 것은 없게 되니까 말이다.마지막 거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대도 분명히 배반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손해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배반해야 한다.당신들은 서로 거래가 막바지에 왔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그런 유혹을 강하게 받게 될 것이다.이것이 "이기주의"의 뜻이다.즉 당신은 친구,호의,동정이라는 감정을 게임상대에게 느끼지 않으며,양심도 없고,그저 점수를 얻는데에만,그것도 더 많이,더 많이 따는데에만 신경을 쓸 뿐인 그러한 존재로 규정된다.
다시 죄수의 딜레마로 돌아가자.그림 2는 죄수의 딜레마의 점수 할당표이다.이 점수에 +4를 부가하면 앞의 표와 같아진다는 점에서 두 표는 유사하다.
그림 2 죄수의 딜레마에서 실제 죄수에 대한 점수할당표.(-x,-y)는 살게될 징역년수.
사실 이 두표에 어떤 상수를 가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딜레마는 변하지 않는다.그러니까 이 표에 +5하여 -를 모두 없애면 그림3에 나오는 표준 죄수의 딜레마의 점수표가 된다.
그림 3 표준화된 죄수의 딜레마에서의 점수할당표.
상호협동은 약자 R(reward)로 표기하는데 3점,상호배반은 약자 P(punishment)로 표기하는데 1점,유혹은 T(temptation)로 표기하며 5점,배반당한 것은 S로 약기하는데 이것은 sucker's payoff(흡혈귀의 착취)의 의미로 0점이다.
이 점수간의 관계를 일반화하면 다음과 같다.
1) T>R>P>S
2)
첫 공식이 주는 조건은 맨 처음 우리가 논리적으로 도달한 결론,"상대가 무슨 행동을 취하든간에 나에게는 배반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는 조건을 나타내고,둘째의 공식은 당신들이 변덕을 일으켜서 "한달은 내가 배반하고 저쪽이 협조하며,다음달은 내가 협동하고 상대가 배반하는 것" 보다 매달 협동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자 당신은 어떤 정책을 취하겠는가? 정답이 "항상 통하는 최선의 해답은 없다."는 것임은 쉽게 이해되리라 믿는다.다시말하자면 어떤 경우에나 다른 정책보다 우월한 절대우월 전략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예를 들어 상대가 "ALL D"(항상 배반)정책을 쓰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이때 당신이 취할 가장 좋은 방도는 아예 처음부터 그리고 끝까지 매번 당신도 배반하는 것이다.한편 상대가 "철저한 보복 정책"(MASSIVE RETALIATORY STRIKE) 즉 "당신이 변절할 때 까지는 협동하겠지만 당신이 변절하면 영원히 나도 협동하지 않겠다."는 작전으로 나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이 경우 당신이 처음 시작부터 배반하면 한번 T점을 딴 후 게임이 끝날 때 까지 P점으로 죽쓰게 된다.이 경우는 섯불리 배반하지 말고 꾸준히 참고 기다리면 상호협동의 결과 많은 R점을 따게 될 것이고,이것을 서너번만 되풀이 하더라도 한 개의 T점 보다는 더 많은 점수를 딸 수 있을 RJTE이다.요약하면 ALL D에는 ALL D가 최선이고 철저한 보복정책에는 "항상 협동하되 상대가 죽게된다는 것이 분명할 때 그 때 배반하는 정책"이 최선의 대응전략이 된다.이 한두가지 사례로 보아 당신은 상대에 따라서 게임을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책의 질이 제기하는 개념적 중요성은 다음과 같은 경우 더 전략적이고 경험적 의미를 띄게 된다.즉 어떤 바다에 조그마한 생명체들이 헤엄을 치면서 상대와 맞추칠 때 마다 "죄수의 딜레마"게임을 반복하게 된다고 하자.가령 한 개체가 다른 개체를 만날 때 마다 상대의 그 전 행동이 어떠하였나를 기억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기억으로부터 이번의 행동양식을 결정하게 된다고 하자.그리고 이들 개체들이 계속 생존을 위해서 헤엄을 치고 서로 부닥치고 하는 동안,바다안의 모든 개체들이 서로서로 셀 수 없이 많이 만난다고 가정하면,즉 모든 가능한 "정책"들이 동원되어 상호작용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여기서의 상호작용이란 한 개체가 다른 개체를 완전히 죽이는 그러한 것은 아니다.그 뜻은 매번 상호작용을 모든 개체끼리 균등히 일으키고,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어떤 정책을 쓴 개체가 가장 많은 점수를 따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관심사는 어느 개체가 관계되는 "승리"의 숫자가 아니며,개체가 얻는 총점으로써,이 점수가 많은 헤엄치는 바다에서 최종적인 경쟁력을 지니게 된다.이 또한 약간 파라독스처럼 보이지만 개체는 수많은,아니 거의 모든 다른 개체와의 충돌에서 패배하고도 최종적인 우승자로써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생물의 진화론의 주제와 상통하는데가 있다.완전히 이기적이고 무의식적인 개체들이 어떤 공통환경에 생존하면서,믿을만한 협동정책을 발달시킬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그것이다.순수한 이기주의자들의 세계에서 협동이라는 것이 저절로 나타날 수 있을까?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것은 진화론에 혁명적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는데,이 부분이 진화론을 부정적으로 비판하던 여러 사람들에게 이 문제야 말로 진화론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협동의 진화가 나타날 수 있음이 명백히 증명되었는데,이 증명은 미국의 미시간대학의 로버트 악셀로드Robert Axelord교수가 시행한 컴퓨터 토너먼트 실험에 의하여 이루워졌다.좀더 자세히 말한다면 악셀로드는 처음 컴퓨터 토너먼트를 통하여 협동이 진화하는 방식을 연구하였고 이때 발견된 일반적 경향을 분석함으로써 그 기본원리를 찾아낸 다음 무(nothingness)에서 협동이 발생한다는 사실과 이에 필요한 조건에 관한 정리(theorem)를 제시했다.악셀로드는 이 발견을 배경으로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는 책 『협동의 진화론』The Evolution of Cooperation이라는 책을 썼다.더 나아가 악셀로드는 진화생물학자 윌리암 해밀톤William Hamilton과 공동으로 이 발견과 진화론사이의 관련에 관하여 많은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이기주의자들의 세계에서 협동이 발달해 나올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는 실제 3가지 측면이 있다.첫번째는 "어떻게 협동이 시작될 수 있는가?"하는 것이며,둘째는 "협동의 정책들이 비협동적 경쟁자들 보다 더 잘 생존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며,셋째는 "어떤 협동의 정책이 제일 좋은 성적을 얻으며,어떻게 이것이 가장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되는가?"하는 것이다.이것을 좀더 분명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악셀로드의 토너먼트와 그 결과의 놀라움을 바로 설명하는 것이 좋으리라.
1979년 악셀로드는 게임이론을 전공하는 학자들에게 부탁하여 라운드로빈 방식으로 죄수의 딜레마게임에 참가할 각종 정책을 제출하여 여러 정책이 상호작용하는 동안 최고의 점수를 딸 수 있도록 해보라고 청하였다.이 정책들은 컴퓨터프로그램을 만들어 다른 정책들이 C(협동)나 D(배반)를 택할 때 동일한 정책을 쓰는 상대를 다시 만날 때 상대의 과거행위를 기억하도록 하여 그에 대응하는 행동으로 쓸 수 있게 하였다.이 프로그램은 항상 C나 D로 밖에 반응할 수 없으나 어떤 제약도 주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주사위를 던져 C나 D를 골라 반응에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허용하였다.처음 악셀로드의 토너먼트에 14종의 정책이 참가하였는데 악셀로드는 여기에 RANDOM(무작위)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나 더 첨가하였다.이 게임에 출전한 프로그램들은 다양해서 베이직 컴퓨터 언어로 4줄에 불과한 것에서부터 77줄에 이르는 프로그램 까지 있었다.악셀로드는 이 프로그램들 끼리 200회씩 각각 대전하도록 하였는데 이 토너먼트를 5번 반복하여 통계적 오류를 제거하였다.
우승을 따낸 프로그램은 토론토대학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나톨 라포로트Anatol Rappoport가 내어 놓은 것인데 이것은 프로그램중 가장 짧은 것으로 TIT FOR TAT라고 불렀다.이것은 아주 단순한 기법으로 탁포르틱(눈에는 눈)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이 정책은 "첫번째 만남에서 우선 협동하고,그 다음 부터는 상대가 바로 직전에 한 수대로 따라 한다."는 것이다."이게뭐야"할 정도로 단순한 것인데 세상에 이런 것이 내노라하는 쟁쟁한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전략의 프로그램들을 이기게 될 줄은 아무도 몰라었다.
악셀로드는 여기에 대하여 비평하기를 일반적으로 보아 게임이론가들이 깊이 있게 이 게임을 분석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즉 "두 단계의 깊이"(two level deep)만을 보았기 때문이며,"세 단계의 깊이"(three level deep)를 분석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무슨 소리일까?이에 대하여 악셀로드는 다음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JOSS는 스위스의 수학자 요한 요스가 참가시킨 프로그램인데 TIT FOR TAT와 아주 비슷하여,처음에는 협동으로 시작하여 배반에는 배반으로 대응하되,"거의 대부분" 협동에 협동으로 대응하는 프로그램이다.실제 JOSS에서는 협동에 대하여 배반으로 대응할 때 그 결정을 컴퓨터의 무작위수(랜덤수)의 생산에 맡겼는데 약 10%의 확률로 상대의 협동에 대하여 배반으로 대응하도록 되어 있다.
TIT FOR TAT와 만나면 JOSS는 처음에는 잘 해 나간다.그러나 TIT FOR TAT에 대해 JOSS가 갑자기 배반(D)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TIT FOR TAT는 곧 D로 대응하며 이렇게 되면 이 이후는 영원한 상호배반으로 끝나 버리게 된다.TIT FOR TAT에 대한 JOSS의 첫 착취시도가 TIT FOR TAT의 반격에 의해 결국 완전한 불신과 비협동으로 끝나게 하는 불씨가 되는 것이다.이러한 결과는 두 전략에 있어서 모두 결점이 있어서 서로 상대에 피해를 끼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나,실제 손해를 가장 많이 보는 것은 JOSS로서 JOSS는 만나는 상대마다 자꾸 트릭을 걸어 신뢰를 파괴하게 되는데 비하여 TIT FOR TAT는 신뢰에 금이 가게하는 행동을 먼저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악셀로드는 상대가 배반하기 전에 먼저 배반하지 않는다는 전략을 기술적 용어로 "선한"(nice) 전략이라고 부르고 있다.TIT FOR TAT는 선한데 대하여 JOSS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여기서 선하다고 하여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즉 TIT FOR TAT도 도발받으면 배반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선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악셀로드는 첫 토너먼트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이 토너먼트의 교훈은 세심하게 그 결과의 분석을 세단계 까지 깊이 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첫 단계는 어떤 전략의 선택이 가져오는 직접적 영향인데 이것은 쉬운 문제인데 배반이 협동 보다 좋은 점수를 얻게 된다.둘째 단계는 간접적 영향으로 상대가 이 배반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감안하는 것이다.아마 참가자들은 여기까지는 다 고려한 것 같다.문제는 셋째 단계인데 상대의 배반에 대하여 반응함에 있어 잔신이 전에 착취하려했던 나쁜 방법은 증폭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즉 하나의 배반은 직접적,간접적 효과만을 보면 그래도 나은 것처럼 보이는데 셋째 단계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루게 되는데 혼자 배반함으로써 끝없는 수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결국 자신에 의해 자신이 파괴되는 것이다."
"토너먼트의 분석은 상호작용하는 힘의 세계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정치학,사회학,경제학,심리학 및 수학의 전략전문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상대에 대하여 지나치게 경쟁적이며,비관용적이며,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악셀로드는 첫 토너먼트를 분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가상적인 토너먼트를 치르도록 하고는 때로는 참가 전략들을 여러 가지로 바꾸어 보기도 하였다.가령 TIT FOR TATS라는 것이 있다.상대가 2번 연속해서 배반할 때만 응징하는 TIT FOR TAT보다는 약간 관용적인 것이다.이외에 REVISED DOWING,LOOK AHEAD등의 전략들이 있다.
첫 토너먼트의 교훈은 "먼저 배반하지 않는다."는 선한 성질과 "화를 한번 내고 나면 원한을 남기지 않는다."는 관용적 성질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TIT FOR TAT는 이런 특징들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이러한 세밀한 분석후,악셀로드는 상당한 교훈을 얻었고 또 지혜도 쌓였기 때문에 이를 기초로 더 정교한 정책들을 꾸며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그래서 더 큰 컴퓨터 토너먼트를 개최하기로 하였다.여기에 첫 라운드의 참가자들을 모두 초대하고 또 컴퓨터 잡지에 광고를 내어 프로그램하는 것을 중독될 정도로 좋아하는 기찬 프로그램의 개발에 미쳐 있는 사람들에게 이 토너먼트에 참가해 보도록 유도했다.
악셀로드의 초청에 대하여 굉장한 반응이 있었는데 6개국에서,거의 모든 연령층에 걸쳐,또 8개의 다른 전공분야에서의 참가가 접수되었다.라포포트는 또 TIT FOR TAT를 참가시켰다.10세의 소년이 제출한 것도 있고 게임이론과 진화론의 세계적 석학인 존 메이나드 스미스Jone Maynard Smith는 TIT FOR TATS를 참가시켰다.두사람이 각각 따로 REVISED DOWING을 접수시켰다.결국 62개가 접수되었는데 첫 토너먼트 때 보다는 상당히 복잡해진 전략들로 구성되어 있다.이번에도 TIT FOR TAT이 가장 짧은 프로그램이었고,가장 긴 것은 뉴질랜드에서 온 것으로 152줄의 포토란 언어로 된 것이었다.여기에 RANDOM을 추가하여 토너먼트를 출발시켰다.컴퓨터가 돌기 시작하여 여러시간이 지나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그저 놀랄 수 밖에 없었다.TIT FOR TAT,가장 단순한 프로그램이 또 이긴 것이다.더 놀라운 것은 첫 토너먼트에 참가한 프로그램중,가상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두 프로그램이 여기서는 아주 나쁜 성적을 나타낸 것이다.TIT FOR TATS는 24위에 머물렀고 REVISED DOWING은 거의 꼴찌에 가까웠다.이러한 결과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이겠으나 프로그램의 성공여부는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는 환경에 전적으로 달렸음을 알아야 한다.모든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라 할 수 있는 단일 정책은 존재하지 않으며,어떤 환경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다른 환경의 토너먼트에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이다.
TIT FOR TAT는 여러 다양한 전략들과 잘 지내는 장점을 지닌데 대하여 다른 전략들은 협력을 유도함에 있어서 좀 제한된다고 할 수 있다.악셀로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 첫 라운드에서 어떤 교훈을 얻은 사람과 다른 교훈을 얻은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다.첫 교훈은 <선하게 굴고 용서하라>는 것이었고,다른 교훈은 좀 교활해서 <상대가 선하고 용서한다면 그런 사실을 이용하는 것이 득이다>하는 것이었다.첫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이 둘째 교훈을 실천한 사람들에게 당한셈이다."
즉 두 번째 토너먼트에서의 선한 전략들은 첫 토너먼트의 중추적 교훈 즉 "협동을 시작토록 하고,계속 상호협동토록 하는 것"을 충분히 터득하지 못하였던 것이다.협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선한 것만으로는 안되며 제한된 응징이 함께 부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토너먼트에서의 중요한 교훈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선한 전략들이 성공했다.상위 15위안에서 하나(8등)만이 선하지 않는 전략이었다.
몇가지 악성(non-nice) 전략들은 상대가 배반에 대하여 얼마만큼 신경을 써는가에 대해 조심스럽게 탐색하는 수단을 사용하고 있었다.이러한 시험에 가끔 상대가 휘말리기도 했으나 대개는 반발을 초래하여 신뢰를 파괴하는 수가 많았다.요컨대 상대의 약점을 찾기위하여 배반으로 시험해 보는 것은 아주 비싼 값을 치르게 된다는 것이었다.가능한한 협동을 많이 하도록 전략을 가지되,상대가 치고 들어올 때는 재빨리 반격할 의지를 갖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러나 철저한 보복전략은 그 응징의 도가 너무 커서 좋지 않다는 것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관용의 결여로 충돌후 상호협동의 분위기-흔히 쓰이는 외교용어-를 회복시키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TIT FOR TAT는 선함과 관용 이 둘을 절묘하게 갖고 있다.
첫 번째 토너먼트의 전체적 교훈이 "선하게 행동하고,용서하라"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믿을 수 없었으며,더 머리를 쓰고 꾀를 부림으로써 승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두번째 토너먼트를 치르고 나서야 그들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두번째 토너먼트에서 세 번째의 핵심전략이 유도되었는데 배반에 대한 반격은 과감해야 한다는 것이다.이 셋을 종합하면 "선하게 행동하되 배반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응징하고 그 다음 용서하라."는 것이다.
악셀로드는 다양한 환경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수 있는 정책을 "강인한robust 정책"이라고 한다.강인성은 선,응징,용서의 적절한 구사에서 나온다.TIT FOR TAT는 이런 특성을 가진 전략으로서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그러한 전략의 표준이 되고 있다.
아마 가장 생생하게 TIT FOR TAT의 강인성을 보여주는 것은 두 번째 토너먼트 후에 행해진 여러 가지 가상적 재경기에서의 결과일 것이다.악셀로드가 시도한 거의 모든 가상적 재경기에서 TIT FOR TAT가 우승하였는데 가장 의의깊고 중요한 것은 생태적 환경을 모방한 환경속에서 행해진 경기일 것이다.여기서의 토너먼트는 하나의 경기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기의 결과가 다음 경기의 환경을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예를 들어 한 토너먼트에서 어떤 프로그램의 성적을 "적합성"(fitness)을 측정하는 것으로 하고 이 적합성을 그 다음 세대에서의 자손의 수로 나타내고 그 다음 세대가 다음 토너먼트를 진행한다.성공적인 프로그램은 다음 토너먼트에서 더 많은 숫자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것을 생태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이 생태학의 "적응"과 유사하기 때문이다.(어떤 종의 개체수는 적응의 정도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기도 한다.)
생태학적 토너먼트를 세대를 이어 계속하면 환경은 점차 변화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열등한 프로그램과 우수한 프로그램은 동등하게 나타나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열등한 것은 떨어져 나가고 우수한 것들은 번영하게 된다.또 우수한 것들도 순위가 바뀌게 되는데 이 우수성의 대비가 항상 똑같은 경쟁자들 사이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즉 성공은 더 큰 성공을 잉태하는데,단 이 성공이 비슷한 성공적인 프로그램과의 상호작용에 기초할 때만 그러할 수 있다.반대로 어떤 프로그램의 능력이 "바보스러운"프로그램을 착취하는데 의존하고 있으면 이 바보프로그램이 점차 약탈되어 몰락하면 이 프로그램을 착취하던 프로그램도 기반을 잃고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생태학적 멸종의 예는 HARRINGTON에서 아주 뚜렷이 볼 수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두 번째 토너먼트에서 상위 15위내에 든 유일한 악성 프로그램이었다. 생태학적 토너먼트의 첫 200세대 동안 TIT FOR TAT와 아주 유사한 선한 프로그램들이 증가해 갔는데 이것과 함께 이것을 착취하는 HARRINGTON도 그와 함께 증가하였다.그러나 200세대 쯤 되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약한 프로그램들이 점차 멸종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동시에 HARRINGTON이 재미를 보아오던 봉이 점차 줄어든다는 것을 뜻했다.그것은 1000세대가 지나자 다른 선한 프로그램에 대해서 경쟁력을 잃고 멸종하고 말았다.
악셀로드는 "악성의 것은 처음에는 유망해 보이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보아 자신의 성공에 필요한 환경을 파괴하게 된다."는 말로 이 상황을 요약했다.
TIT FOR TAT는 생태토너먼트에서 대단한 성적을 올려 보였는데 세대가 지나면서 그 리드는 커졌다.즉 1000세대가 지나면서 TIT FOR TAT는 선두를 차지 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들 보다 성장의 속도도 빨라졌는데 이런 성공사례에 비견할 만한 것이 없었다.이렇게 단순한 전략이 이와같은 효과를 보여줄수 있다니..모두 놀랐다.
그런데 여기서 깊이 숙고해야 할 점은 TIT FOR TAT의 성공은 경쟁상대를 물리쳐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사실 TIT FOR TAT은 아무것도 격퇴하지 못하는 프로그램으로서 기껏 잘해야 무승부(tie)를 기록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악셀로드는 특히 이점을 꼬집어 지적하고 있다."TIT FOR TAT가 토너먼트에서 승리한 것은 다른 경기자를 물리쳐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다른 경기자로부터 서로 잘하자는 협동행위를 유발한 결과이다.TIT FOR TAT는 상호협동에 의한 태도를 취하였기 때문에 토너먼트의 어떤 프로그램 보다 더 높은 점수를 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영합게임(non zero sum)1)의 세계에서 당신이 자기자신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 오려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잘 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이것은 특히 당신이 여러 다른 경기자들을 상대할 때라면 특히 그러하다.그들 하나하나가 당신 자신과 같거나 조금 더 잘하게 하는 것은 당신에게 별 손해가 없는한 아주 좋은 것이다.다른 경기자가 성공한다고 시샘하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못되는데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에서 보면 장기적으로 타인의 성공은 자기자신의 성공에 꼭 필요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악셀로드는 이런 원칙이 통한다는 것을 일상적 생활에서 예를 찾아 보여주고 있다."부품을 납품받는 업자가 납품하는 업자의 이득을 시샘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납품업자의 이익을 줄이고자 돈을 적기에 주지 않는다고 하면 납품업자로부터의 반격을 촉발할 뿐이다.반격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분명히 직접 손해를 끼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좀 납품이 늦어질지도 모르고 품질관리가 좀 덜해지거나 대량주문에 값을 덜 깍아 준다거나 새로운 시장정보를 안건네준다거나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즉 반발을 초래함으로써 시샘은 비싼 값을 치루게 되는 것이다.납품업자의 이득이 얼마인가에 신경을 쓰기 보다 어떻게 구매하는 것이 더 낳은 정책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절대 상대를 속이지 않는 비즈니스 상대와 같이 TIT FOR TAT는 절대 누구를 때려 누이는 법은 없으며,단지 비슷한 사람들 끼리 잘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RANDOM의 전략은 왜 성공하지 못한 것일까?상대가 그 수를 전혀 알수 없기 때문에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을 법한데 말이다.상대가 그 수를 뻔히 아는 것 예컨대 ALL D와 같은 것이 취약한 전략이듯이 상대로 하여금 다음 전략을 전혀 예측할 수 없게 하는 것도 취약한 전략이다.]
악셀로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TIT FOR TAT의 성공의 일면에는 다른 정책들이 그 존재를 예상해서 TIT FOR TAT와 잘해나가도록 구상된 데에도 있을 것이다.TIT FOR TAT와 잘해나가려면 협동하는 길 뿐인데 이것은 TIT FOR TAT에 득이 되는 것이다.또 어떻게 재미 좀 볼까하고 기웃거리게 만든 정책들도 TIT FOR TAT에는 재빨리 용서를 빌고 만다.어떤 것이 TIT FOR TAT로부터 이득을 취하고자 하면 자신을 해칠 뿐인 것이다."
TIT FOR TAT가 이러한 세를 모을 수 있는 것은 다음 3가지 조건이 만족되기 때문이다.
1.TIT FOR TAT를 만날 가능성이 많다.
2.마주치면 TIT FOR TAT를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3.알게되면 TIT FOR TAT에 "사심이 없다는 것"(nonexploitability)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성공을 위한 중요한 네 번째의 성격적 특성 즉 선,의협성,관용에 덧붙여 직선적 성격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한다.악세로드는 이것을 "투명성"(clarity) 라고 부르는데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해설하고 있다."너무 복잡하면 아예 혼돈된 것으로 여긴다.무작위적 행동이라고 보이는 정책을 사용하면 상대경기자에게는 무반응적인 것으로 비친다.무반응적이면 다른 경기자가 당신과 협동할 유인을 찾지 못함으로 너무 복잡하게 행동하여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극히 위험한 것이다."
악셀로드는 자신의 저서에서 순전히 이기적 세계에서 협동이 진화해오는 과정에 던져지는 3가지 근원적인 의문에 해답을 주느라고 애쓰고 있는데 첫 의문은 초기의 생존력에 관한 것이다.즉 ALL D들의 개체들이 우글거리는 원시의 바다 즉 무조건적 배반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어떻게 협동이 시작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해답은 협동하는 소수의 개체군이 아주 적은 양이라도 우연히 형성되면 협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하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협동적 개체 하나하나는 사멸하겠지만 소수 협동적 개체들의 군집은 적대적인 환경에 처하더라도 증식해 나가게 되는데 이 때 TIT FOR TAT가 가진 철저한 방어력이 전제가 되고 있다.
두 번째의 근원적 의문은 강인성에 관한 것으로서 예측할 수 없고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어떤 전략이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두는가 하는 것이다.이에 대한 해답은 선,의협성,관용 및 투명성의 4가지 기본성격을 가진 전략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의문은 안정성(stability)에 관한 것으로서 협동성이 다른 전략의 제물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악셀로드는 협동이 침입을 쉽게 물리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는데 협동하는 소수의 개체군들은 ALL D전략을 표방하는 이기적 집단들의 세계를 쉽게 뚫고 들어가는 반면 이 이기적 개체들은 협동자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많은 수가 나타나더라도 곧 퇴치됨을 보이고 있다.즉 협동이 한번 시작되고 나면 지속성을 지니는 것이다.악셀로드의 설명으로는 "사회진화의 바퀴에는 거꾸로 도는 것을 막는 미늘 톱늬바퀴의 기어가 장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라는 말은 사고력을 가진 고등동물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4줄 짜리 컴퓨터 프로그램이 생각하는 것은 아닐진대 또 이런 프로그램 개체의 세계에서 협동이 진화해 나가는 것은 분명히 "사고력"하고는 무관한 것이다.TIT FOR TAT에게 유일한 인식능력이란 과거에 접촉한 상대를 구별하고 그 때 그 상대가 어떤 일을 하였는가를 기억하는 것 뿐이다.박테리아에게도 사실 이런 능력이 있는데 다른 개체와 접촉해 보고 그 개체가 바로 전에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알면 되는 것으로 기억이란 실제 자동적이고,또 필요한 기억의 양도 극히 적다.중요한 것은 전략의 주체가 박테리아이건,조그마한 동물이건,고등동물이건,한 국가이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악셀로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TIT FOR TAT의 전략은 첫번째 선택에서 협동으로 부터 출발하며 그 후로 부터는 정확히 상대방의 프로그램이 바로 전번에 했던 대로 선택했다.즉 정의파 전략은 당근과 채찍의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결코 먼저 배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착했다'.좋은 행동에 대해서 다음번에 협조함으로써 보상한다는 점에서,그것은 관대했다.그러나 비협력적 행동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배반함으로써 응징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강력했다'. 더구나 그 전략이 너무도 간단해서 상대프로그램이 쉽게 그 전략을 알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그것은 '투명했다'...
불신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조차 번창하기 위해서는 공진화(co-evolution)의 과정에 TIT FOR TAT형의 협동이 있어야 한다.그런 세계에 돌연변이에 의해 몇개의 TIT FOR TAT의 개체들이 생겨났다고 가정해 보자.그 개체들이 충분히 자주 만나게 되어 미래의 만남에 대한 이해관계가 생긴다면,그들은 작은 협동체계를 형성하기 시작할 것이다.일단 그러한 협동체계가 생기면 그들의 주위에 있는,등뒤에서 칼을 찌르는 식의 비열한 무리들 보다 훨씬 일을 잘 수행할 것이며,따라서 그들의 수는 신속하게 증가할 것이다.정말로 TIT FOR TAT식의 협동이 급기야 전체를 관장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일단 이것이 정착되면,협동하는 개체들은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만일 덜 협동적인 종류가 침략해서 그들의 '착한 점'들을 이용해 먹을려고 하면 TIT FOR TAT의 강인한 정책이 그들을 철저하게 응징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퍼져 나갈수 없다. 이리하여 진화의 톱늬바퀴는 상향톱늬장치를 갖추게 된다."
지금 세계 각처에서 이러한 아이디어가 꼭,또 긴급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참으로 많아 보인다.악셀로드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간세상에서 협동을 증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논하고 난 뒤,정치학자로서 범세계적 현안들에 대하여 몇가지 제안을 조심스럽게 내어 놓고 있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독립적인 국가들 끼리 서로 이기주의적인 태도로 대립되어 일종의 무정부적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문제의 많은 부분들이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의 양식을 나타내고 있는데 군비경쟁,핵무기의 확산,위기시의 협상,군비증가 등이 모두 그 예이다.물론 이러한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려면 단순한 죄수의 딜레마가 아니라 이데올로기,관료주의,선거공약,국가간의 제휴,중재와 지도력 등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총동원하여야 한다."
D.G.Hofstadter,"The Evolution of Cooperation" Matamagical Themes,Scientific American,『딜레마 게임』이홍규,최강원 옮김,(고려의학)
<각주>
1) 이것은 영합게임(zero sum game)과 구분된다.이것은 한쪽의 승리가 다른 쪽의 패배로 된다.장기,바둑,축구와 같은 것은 영합게임이다.그러나 죄수의 딜레마는 비영합게임인데 같이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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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존티토와 타임머신(펌)
존티토에 대해서 이래 저래 알아 본것들을 모아서 이렇게 한번 적어봅니다....ㅋ
일단 한번 집고 넘어갈것이 정말 타임머신이 가능한가입니다.
타임머신이 불가능하다면 존티토의 존재자체가 안되기 때문에 모든것이 거짓말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타임 머신을 만들수 없을까요?
다들 타임머신은 만들수가 없다고하는데 미래는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타임머신을 만들수없다는 이유가 거의 예전 우주이론을 가지고 설명을 하시는데..
현재 우주이론은 다차원적으로 다중우주이론이 요즘 인정을 받고있는 추세입니다..
지구 나열설인데....간단히 이야기하면 지구는 여러개있다는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는 3차원이라는것을 인식한것이 얼마되지않습니다..긴 인류역사를 비하면 정말 짧은 시간에 3차원을 발견하게 됩니다...점이있고..선이있고...선이모여서...도형이 이루어집니다..거기에다가 시간을 대입하게되죠..시간도 이와 비슷하게 설명할수있는데..시간이라는것의 기준이 하나가 아니라는것이 됩니다..
뭐랄까.....음...현재의 나는 직장인이겠지만...다른차원의 나는 대통령일수도 살인자일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내가 인식하고있는 나는 일종의1차원적 점이라는 이야기죠..나라는 존재가 3차원적으로 여럿이 있어.
그것이 진정한 나라는 존재를 표현할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현재 나는 이런생각을 하고있지만 다른차원의 나는 다른생각을 할수도, 일을 할수도,범죄를 저지를수도 있다는이야기입니다...유전적으로 그 범위가 어느정도 잡을 수는있겠지만..그만큼 많은 나가 있다고 생각할수도있습니다.
많이 이야기하는 예를 가지고 설명해보겠습니다..
흔히 타임머신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빠질수없는것이 아버지의 살인 이야기입니다.
내가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가서 실수로 아버지를 차에 치여서 돌아가시게 만들었다.
그런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나는 태어날수가없다..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이루어질수없는 일이기 때문에
타임 머신을 만들수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이론도 오류가 있습니다..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이야기인데..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나는 태어날수가없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죽일수없다고도 됩니다.
그러면 다시 원점이 되죠....이것을 보완하기위해 나온게 다차원이론입니다..
내가 아버지를 죽이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면...아버지는 살아있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죽인 시점에서부터 또 다른 차원이하나 늘어난것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차원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없고 현재로 돌아왔을 시점은 현 차원이라는 이야기죠.
내가 과거로 가서 아무리 사람을 많이 죽이더라도..현재로 오면 현재의 지구와 아무 상관없는 지구에 피해를 준것이 된것이 되는것입니다..요즘 이런 다차원적인 공상만화나 소설들이 존재하니 보시면 이해가 쉬울수도있겠습니다.
여기서 블랙홀 과 화이트 홀까지 이야기하면 너무 길어질것 같고 해서.....
일단 마무리 짓고 타임 머신이 존재할수있다는 이론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요지입니다.
그러면 존티토가 미래인일수도있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해보도록하겠습니다..
물론 타임머신이 없다면 이런 말들이 전부다 아무 쓸모없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반반인데..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있지만...만약 정말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느정도는 마음의 준비는 할수있겠죠..
예방 말입니다...물론 제말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다차원적 이론으로 따진다면 전쟁이 안일어날수도있습니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릴수도 있습니다..당연히 다차원이기 때문에 존티토가 예언한것들을 인식하여 안일어나게 할수있습니다...흔히 이야기하는 나비 이론이죠..
하지만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나라는 존재가 직장인이 되고 대통령이되고,범죄자가 될수도있지만.
유전자라는것이있습니다..제 본성적으로 선택할수있는선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거죠...나의 유전자가 그렇게 만든는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유라는 이름도 아닌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라고 설명될수 있습니다..
나비이론 처럼 과거로 돌아가 다시 선택할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차원의 나도 조금은 틀릴수도 있지만 선택은 무슨일을 하던 무엇을하던 비슷하게 할것이라는이야기입니다.
뭐 철학적으로는 데카르트 말이 또오르네요..^^;; 인간의 마지막 자유??진정한 자유는?? 자살이라고....ㅡ.ㅡ;;;;;
덫붙여 설명하자면 성질입니다...슈레딩거 법칙처럼 말이죠...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죠.
그러니 무시할수도 없습니다..만약에 미래인 아니..타임머신이 있다면 존티토의 가능성도 있기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아니면 말구입니다...하지만 한번쯤은 봐두는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르지 않습니까??
혹시.........ㄷㄷㄷㄷㄷ
그러면 존티토의 예언에 대해서 하나씩 짚어 가며 이야기 해보도록하죠..
먼저 존티토의 대표적인 9대 예언입니다.
1. 04년의 미국대선의 결과는 05년 미국 각주간의 불화를 일으키고, 천천히 미국내의 내전을 빚어낼 것이다. 이 전쟁은 2015년까지 10년동안 지속된다.
1. 08년의 미국대선의 결과는 08년 미국 각주간의 불화를 일으키고, 천천히 미국내의 내전을 빚어낼 것이다. 이 전쟁은 2018년까지 10년동안 지속된다.
뭔가가 좀 바뀌었습니다..04년도 라고햇는데...요즘 떠드는 이야기는 08년도로 바뀌었습니다..
사기성이 많이 느껴집니다..저도 마찬가지로 년도를 바꾸는 예언은 2000년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했다가 36년으로 바뀐거와 똑같은 이유가 됩니다..말도 안되지요...저도 에 이런 사기 라고 생각을했었지만....
조금더 생각하기로했습니다..앞에서도 설명했듯이..유전적 이론을 접목시키면 늦어질수도 있다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존티토의 예언으로 결과적으로 조금은 시간이 바뀔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존티토의 정확히 맞는 예언은 대부분 지리학적 이나 날짜 적인 문제였습니다...인간의 마음이 중간에 거치게되면 불확실해집니다...앞에서 이야기했던 나비이론입니다..근데 성질적으로 우리는 선택의 폭이 작습니다...그래서 늦어 질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08년도 대선입니다....여러분도 감이오시죠...바로 흑인 대통령 문제입니다..오바마가 나옵니다...
현재 민주당의 대선후보 힐러리와 오바마 중에 오바마가 현재 굉장히 유리하고 후보로 나왔을때 대선에서 오바마가 걸릴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만약에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다면....내전이 빚어질수도 있습니다. 힐러리가 나와도 문제가 됩니다만 흑인 대통령은 잦음이 좀 심할꺼라고 봅니다.
흑인이되던 여자가되던 아므튼 큰 사건이 일어나는건 확실합니다. 미국역사상 큰 사건중의 하나로 기록될꺼라고 보여집니다.
여기서 집고 넣어갈 문제는 유태인입니다...
현재 미국의 모든 힘은 유태인한테 나왔다는건 정말 빈 말이 아닙니다...세계의 모든 돈은 달러 라고 불릴정도로 세계통화는 달러고 달러를 좌지우지하는것이 유태인입니다...미국 상위층은 거의 유태인이고 주식을 좀 해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의장은 모두 유태인 출신입니다..
그리고 잘알려 졌듯이 빌게이츠,워렌버핏등 세계갑부들도 상당부분 유태인입니다...
권력층은 유태인이라고 생각하면 될것입니다..사실 이스라엘이 독립을 할수있게 만든것 자체만 봐도 미국인라는 나라는 겉으로는 다인종이지만 실세는 유태인이라고 이야기할수있습니다..부시가 연설에서도 많이 이야기했죠....내가 유태인을 더 잘 대변해줄수있으니 날 밀어달라고....관련된 동영상이 많이 있으니 찾아보시면....웃음이 나올겁니다..그만큼 유태인은 미국의 실세입니다.
그런 유태인들이 흑인 대통령이 나왔을경우...유태인들끼리 대립이 나타날수있다는이야기입니다...호위적인 유태인들도 있겠지만 반대하는 유태인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유태인들이 평화를 외치는 부류도있습니다..그린피스 유명하죠...유엔에 있는 유태인들도 평화를 외치는 부류라고할수도 있겠네요..하지만. 아주 강경적으로 행동하는 부류들도 많이있습니다.
강경파의 예로는 먼저 하루가 멀다하고 아직도 잦은 전쟁이일어나고있는 중동입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을 부추긴 배후에있는 유태인도 강경파라고 할수있겠네요.
말이 나와서 이야기하는것인데 솔찍히 따지고 보면 굴러온돌이 박힌돌 뺀다고..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중동에 갑자기 들어와서 자리잡았습니다.아랍인들에게는 억울하죠...잘살고있는데 갑자기 와서 땅 내나라하고 그것도 종교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곳에 우리땅이라고 들어오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물론 종교적으로 보면 형 아우 집안 싸움이 국가 전이 됐지만 그렇게 무지막지한 면이 있는것도 유태인의 일면입니다.
거기다가 종교적인 문제로 계속해서 전쟁이 나지만 세계의 경찰이라고 떠드는 미국 선의 축이라는 미국
이스라엘만은 아무말도 못하고있습니다..한국은 북한 문제면 맨날 떠들고 무슬림국가들 조금만 이상하면 굉장한 압박을 과하지만 유독 이스라엘에 관련된 전쟁은 아무 말도 안합니다..설사 이스라엘이 잘못했더라도 아무 말도 안하는것을 알수있습니다..
그런 강경파들을 어떻게 터치를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뭐 떠도는 소문에는 미국 핵보다 이스라엘이 가진 핵이 더 많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걸 떠나 실세가 유태인이라서 못한는 가능성이 훨 높다고 할수있습니다.
이런 강경파들이 가만히 있을까??라는 생각이듭니다...케네디 암살이나 존 레논의 암살에 유태인이 관여했다는 소문도 있고....
이것 저걸 떠나서...강경파들은 자기가 원하는데로 되지않을때는 분명히 일을 저지를것 같습니다.
그것이 결국 내전으로 이어질수도 있다는이야기입니다..
지켜봐야 할문제이지만...왠지 신빙성이있습니다.
관련기사는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뭐 오바마 당선되면 저격당할수도 있다는 기사도 있을겁니다.
2. 미국의 내전기간, 중동각국은 핵전쟁을 시작한다.
2. 미국의 내전기간, 중동각국은 핵전쟁을 시작한다.
2번의 내용은 똑같군요...만약에 1번이 2008년도 미국 대선이고 내전이 이루어진다면 종동 각국 문제는 가능성이 굉장히 많습니다...일단 유태인들이 대립이 일어나게되면 이스라엘의 강경파를 그남아 억제할수있는 세력이 약해진다는 이야기가되고 그것이 중동의 내전을 더 크게 부출길수도 있습니다..크게는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까지 변할수도 있게됩니다..
제가 볼때는 내전기간이 아니더라도 언제 불똥이 터질지 모르는게 현재 중동국가입니다..
전 솔찍히 존티토의 예언보다 중동이 사건 크게 낼것 같은 생각이 더듭니다.
한국에서는 잘 접할수가없겠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잦은 전쟁이 이루어지고 있는곳이 현재 중동입니다...
오죽하면 만약에 제3차세계대전이 된다면 중동에서 부터 시작될거라고 많은 미래학자들이 예상하고있습니다..그리고 거기다 작년에 기사를 보신적이 있을겁니다..이란이 핵을 보유하겠다는 강한의지 를 내 비치고있습니다..소형핵을 만들수있는 원자로를 확보해놨다는 기사도 있습니다..미국에서 강경하게 대한다고 이야기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모르죠 현재도 핵을 만들고있는지......이 예언은 1번이 실현이 됐을때라는 전제하에 예언을 했지만 만약 실현이 된다면 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내전기간이라는 말을 뺀다면 전 분명히 이루어질것이라고 생각합니다.전쟁이 크게 한번은 날것입니다.
관련기사는 널렸습니다...
3. 2004 년후, 올림픽은 취소된다. -아마도 하계 올림픽인 듯 함..
3. 2004 년후, 올림픽은 취소된다.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문제이죠....2008년도 베이징올림픽이 시작되니 말이죠..
근데 작년에는 절대 이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을꺼라고 전 생각했습니다...끈떡지가 없지 않습니까?
근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티벳 사건이 터졌습니다...이게 터질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전 상상도 못했습니다....뒷꼴이 확올라오더라고요...설마......
현재 티뱃독립운동은 점점 거세지고있습니다...몇몇 국가들은 티벳을 지지 하며 올림픽 불참을 이야기하고있으면...점점 매스컴에서 떠들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인 문제로 두곽되고있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2000년도에 예언을 하였는데 이렇게 까지 진행이 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니 막말로 작년초만해도 이렇게 크게 붉어질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역시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만....저도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여기서부터...만약에 베이징 올림픽 취소된다면 잠시 아니..많이 생각을 해야겠죠..
관련기사 요즘 들어 쏟아지고있습니다..
4. 2015 년 미국내전은 3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인하여 끝난다.
러시아가 미국에 원폭을 투여하며, 이로 인하여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4. 2018년 미국내전은 3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인하여 끝난다.
러시아가 미국에 원폭을 투여하며, 이로 인하여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이것도 3년이 늘었군요...대선이4년 밀렸으면 4년 밀어적던가..쩝...3년...뭐 앞에서 설명했듯이 조금은 늦어질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년수는 그렇게 신경쓰지 않고 진행하도록하겠습니다.물론 이글은 존티토가 사라지고 나서 여러사람들에게 재해석 되고 시간이 조금씩 틀려지기 시작합니다..앞에서 설명했듯이 이것또한 1번의 예언이 전제가 되야 진행이됩니다..그러면 러시아가 정말 미국에 원폭을 투여할가능성이 있을까??입니다..현재로서는 근미래가 아니 좀 많이 먼 미래라 추론을 아니 예상을 할수가없습니다만...현재 나와있는 자료로는 러시아 미사일에 관한 기사들이 있습니다.현재로서는 왜 그런 일을 벌릴수있을까라는 근거 무지 없어보입니다..
말도 안되 보입니다....제가 보기에는 러시아가 미국에 원폭 투여한다는것이 만약에 정말 만약에 이루어진다면..
불똥은 아무래도 무기 판매에 의해서 이루어질것같습니다...지금도 러시아는 중동에 무기를 판매하여 많은 수익을 얻고있습니다. 만약에 2번예언과 같이 중동에서 잦은 싸움이 커지기 시작하여 핵전쟁 까지 일어난다면 이스라엘을 미국이 지지하게 될것이고 미국은 러시아에게 왜 무기들을 팔았냐고 거세게 나올수도 있습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냉전체제후 많은 권력이 미국에게 빼긴 입장이라 무기를 팔아 국가의 제기반을 쌓기위해 어쩔수 없이 행할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무기가 총 이런게 아니라 미사일 비행기 등등 고가의 무기도 많이 팔수도있습니다.)
그와 대립적으로 중동에 무기를 팔아온 러시아는 아랍인들을 커버하려 들것입니다.여기서 대립이 점점 거세져 저런 시나리오가 나올수도 있다는 생각이드네요..물론 상상의 나래입니다..
이 예언은 현재로서는 극히 이루어지겠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예언입니다..
좀 터무니없죠..
모든 기사자료는 찾아보시길...ㄷㄷㄷ
예상시나리오는 제머리에서 나왔습니다.ㅋ
근데 일리는 있습니다..미래학자들의 전쟁에 관한 책들을 보시면 어느정도는 공감하실수 있을꺼라 생각되어집니다.
5.세계대전중, 미국, 중국, 유럽과 러시아의 전역이 가장 참열하며,
총 사망자는 30억 정도에 다다르게 된다.
5.세계대전중, 미국, 중국, 유럽과 러시아의 전역이 가장 참열하며,
총 사망자는 30억 정도에 다다르게 된다.
이건 결과입니다..예상할수가 없네요...어떻게 될지...이건 앞에 예언들이 실현된다는 전제하이기 때문에..
만약 앞에 예언이 이루어진다면...핵전쟁이 시작된다면....저기의 숫자는 무의미해보입니다...30억이라..........1억만해도 너무너무너무 큰숫자인데...30억이면...전 재수가 좋은면 살겠네요....
6. 2007 년, 타임머신의 기본적 연구가 비밀리로 끝난다.
6. 2007 년, 타임머신의 기본적 연구가 끝난다.
이건 벌써 예언을 했었죠 지나간 이야기입니다..
타임머신의 기본적 연구가 끝난다는거...
기본적연구라는게 어느정도인지 모르겠으나..미니 블랙홀과 웸홀에 관한 이야기라면..미니 블랙홀과 윔홀에 관한 이론은 이미90년대에 나왔었습니다...근데 이게2000년도에 가설이 발표되고 2007년도에 블랙홀의 생성의 관련된 실험을 할수있다는것이 발표됩니다.우주탄생을 알기위한 실험인데...뭐 이것이 기본적 연구라는것인지는 두고 봐야알겠지만...역시 신빙성이 있습니다..아니 맞췄다고 할수있겠죠...존 티토의 타임머신 사진과 타임머신의 구조가 미니 블랙홀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건 제가 존티토를 알고 나서 이 예언을 듣고나서 그후 몇달뒤에 발표됨에해서 한번 놀라게 했던 예언입니다.
이때부터 좀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이에관한 기사는 조금은 오래된 기사라 찾기 힘드실겁니다.그래서 약간....
http://www.gizmag.com/go/7650/ 요건 존티토 사이트 링크..논문에관해서..나온겁니다 영문입니다.ㅡㅡ;
http://public.web.cern.ch/public/welcome.html 요건 실험하는곳 여기서 찾아보시길.. 역시 영문입니다.ㅜㅜ
이건 ...요즘 화재가 되고있는 기사입니다..이번년 5월에 본격적인 실험을 한다고합니다..시간의 축에의해 나비이론에 의해 시간의 축이 조금 비틀려 이것일수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http://www.nownewsnet.com/news/newsview.php?id=20080208601003 기쁜소식입니다..한글입니다.^^;
7.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5개의 국가로 분열된다.
대량 기초건축들이 파괴된 관계로 사람들은 자급자족의 원시부락식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파멸되지 않았으므로 세계는 빠르게 다시 회복된다.7.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5개의 국가로 분열된다.
대량 기초건축들이 파괴된 관계로 사람들은 자급자족의 원시부락식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파멸되지 않았으므로 세계는 빠르게 다시 회복된다.
이건 알바 아님.ㅋ 미국이 5개 국가로 분열되던..ㅋ이 예언은 그때 가봐야 알겠죠.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면 왜 분열될까요??유추할수있는것은 2가지인데 인종 문제와 유태인들의 대립 그리고 현재의 기상변화입니다.
많이들 떠들죠.. 미국이라는 나라가 물에 잠기어 반이 없어져버린다는...이것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할수있는데..사실 미국 기상청 지리를 연구하는곳에는 논문이 수도 없이나옵니다..미국 플로리다 태풍후 기상변화가 심하됨에따라 이 연구는 더욱더 지지를 받고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말이죠..물론 10%도 안되는 확률이라고 말하지만말이죠..만약에 정말 만약에 나오는 지리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게되고. 거기다가 러시아가 미국에 원폭을 가했을경우 지리적으로 나라를 분담할수 밖에없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3차세계대전이 시작됨에 따라 이념적 대립으로 인해 5개국가로 분열될수도있습니다..
현재의 러시아처럼 말입니다.
8. 전쟁 후의 미국에서 사람들은 각 대학부근에 머물며 사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 대학은 university에서 fort로 변하게 되며.
사람들이 그 곳에서 머무는 이유는 대학에는 책(지식)이 있기 때문이다.8. 전쟁 후의 미국에서 사람들은 각 대학부근에 머물며 사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 대학은 university에서 fort로 변하게 되며.
사람들이 그 곳에서 머무는 이유는 대학에는 책(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알바는 아니지만...우리도 대학가 주변에서 숨어 지네야겠네요. 만약.....정말 존티토의 예언이 사실이 된다면 말이죠..
그리고 존 티토가 맞춘 예언들은..
1.타임머신의 원리:미니 블랙홀.2.2003년 미국 광우병 예언3.제2차 이라크 전쟁 예언4.동남아 대 재난 예언
이렇게 있습니다.
뭐 종합하자면 거의 대부분 맞추었습니다..234번은 제가 실지로 존티토에 대해서 알지 못한시기라.
맞췄다고라고는 전 알지 못합니다..제가 경험하지 못했기때문에....하지만 먼저 아신 많은 분들은 확실히 맞다고합니다..물론 존티토에 가면 작성한 날짜와 존티토가 쓴 사이트들을 게제해 놔뒀지만...아무래도 저도 제가 보지않는것은 못믿는 주의라...하하...아므튼 종합해볼때 미래인이라는 주장도 신빙성이 있어보이기 까지합니다.
틀린것도 있습니다만...현재 틀린것은 존티토9대예언의1번의 예언이고 4번의예언의 날짜가 바뀌었습니다.
존티토의 예언 1번이 틀렸을때 좀 반신반의 했었습니다..저는 그런대 2008년이라고 하고 나서는 날짜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너무 와닿기 시작했습니다...내전내전 이야기할때 말도 안된다고하였는데...오바마의 출현은 정말 일어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존티토의 향후 예언들입니다.
이것은 솔찍히 시나리오적으로 볼때...좀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 많습니다만.ㅋㅋㅋㅋㅋ
원래 전쟁 시나리오는 이래저래 많이 나오니 한번 보도록하죠..그리고 제가 찾지 못해서 그런거지 잘안보이던데..이글이..영문 어디서 가져오신거신지 좀 말씀해주시기바랍니다..
2017- 2월 2일- 이스라엘, 핵 2개 미국 la,휴스턴 공격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국에 정말 핵을 공격할수있을까요??
이건 정말 터무니 없는 이야기 들입니다..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미국경제의 실세는 유태인입니다..
과연 유태인들끼를 싸울수가 있을까? 라는 의문입니다...사실 굉장히 희박합니다...0.00001%정도??
굳이 시나리오를 만들자면 뭐랄까???한번 가상을 해볼께요..ㅋㅋ
2008년도 선거후 미국대통령 흑인 당선...당선후 유태인들을 압박.
유태인과의 불하가 계속됨에 따라 미국대통령 유태인들을 몰아냄...기득권세력에서 유태인들이 현저히 줄어들게됨...거기에 화가난 유태인들 미국을 없애기를 결정함....핵발사...
ㅋㅋㅋㅋㅋㅋㅋ좀 웃기네요.ㅋㅋㅋㅋㅋ아므튼 이스라엘이 핵을 미국에 발사할정도가 된다면 기득권세력층에
많은 변화가 있어야된다는 이야기입니다...글쎄요...가능성은.....쩝
2017년 2 월 3 일 이스라엘과 전쟁 선전 포고.
뭐 앞의 이유로 전쟁이 일어났다고 칩시다...자 전쟁 선포 한답니다..
2017년 2월 5일- 미국 [ex-78 ]핵 폭탄 3개 이스라엘.예루살렘,나사렛,베들레햄
공격하고 . 이스라엘 국민 2/3 사망하였습니다. ←방사능 오염도 심각
당연히 미국도 가만히 안 있겠죠....와 이스라엘 국민 2/3가 사망이래요...핵 폭탄3개면....가능하죠..ㄷㄷㄷㄷ
2017년 2월 7일 북한이 핵을 폐개 한지 7년만에 다시 핵을 가동 시켰습니다.
호오라..북한이 나옵니다...북한이 핵을 폐기한시기는 작년인가 제작년 쯤인것 같은데...말도 안됩니다...
7년만에 핵을가동?? 시간적으로 따지면 약10년 내지 11년??그정도?? 뭐 현재도 북한이 핵을 개발할수도있겠죠..
뭐 넉넉히 봐줘서 나비이론을 적용해서...조금은 빨라질수도 있다..라고 생각하고 봐줘봅시다..ㅋㅋㅋㅋ
그런데 어디서 이런 유추가 가능한지가 궁금합니다...존티토가 미래에서 왔을시간이 2000년도 인데..
폐기할꺼라는것은 예상을했나봅니다..뭐 이정도 유추한것많으로도 참 대단합니다...봐줍시다.ㅋ
만약 핵 전쟁이 시작되면 북한은 당연히 핵을 다시 가동시키겠죠....이런건 시나리오상 잘 맞아떨어집니다만.
2017년 2월 11일- 북한이 미국 워싱턴에 핵을 투하 하였슴니다..
핵가동하고4일만에 핵을 투하 하네요...전 핵에 대해서 잘모릅니다...빨리 만들수 있나요??
뭐 그걸 떠나...뜬금없이 왜 북한이 미국에 핵을 투하할까요?? 아무 이유도없이....2월 초만해도 이스라엘하고 싸움인데....갑자기 여기서 북한이..미국을 공격한다???....참....뭐 또 가정을 한번 해봅시다..
왜 갑자기 공격을 했을까?
이스라엘이 미국에 공격을 하고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공격했는데...북한은 연관성이 없는데.....ㅡㅡ;
뭐 만들어 봅시다....ㅋㅋㅋㅋ
북한은 미국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가..이스라엘과 핵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미국이 휘청할때 이때다 싶어 핵을 날렸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중동 국가라고 생각했을때도 연관성은 없습니다만....미국인들은 북한이나 중동애들에게 압박을 가하니....그런 같은 취급으로 해서....2017년정도 되면 동맹국 또는 친밀한 국가가 되지않았을까???전쟁무기를 팔아서???핵 제조법을 가르쳐 줘서???뭐....그런 이유로 친해져서 공격했다??라고 억지로 유추할수있겠네요.
이건 사실상 조금 안맞습니다..ㅋㅋㅋ
2월 17일- 영국 [af-90]핵폭탄 평양에다 투하를 하였습니다
이건 좀 이해가 갑니다..미국은 이스라엘 또는 중동과 전쟁중이기 때문에 이때 미국의 최대 동맹국인 영국이 평양에다가 핵을 쏠수도 있습니다..뭐 보복성이니깐....
2월 22일- 서울이 영국 핵폭탄으로 약10% 피해입고. 방사선물질 서울 까지 접근해서
난리가 났습니다..
평양에다가 핵을 투여했을경우 우리나라에도 핵피해가 오겠죠...ㄷㄷㄷㄷ 서울이 약10%피해를 입네요..
이건 뭐 당연한 결과입니다..
2월 27일- 일본 비밀핵폭탄 중국 북경 공격. 북경이 완전 초토화 됬습니다.
이야...이런 전쟁이 시작 되니깐....일본이 중국에다가 공격을 하네요...좀 의아한게 일본이 핵을???
뭐 좀 먼 미래이니깐...지금 일본은 국수주의에 물든 정치인들이 많이 있으니깐...뭐 비밀리에 핵폭탄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봅시다.......그러면 또 문제인데....중국에 갑자기 왜........쏘았나......굉장히 의문스럽습니다.
아무래도 전쟁은 동맹국끼리는 한편이 되고 싸움다고 볼수도 있기 때문에...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북한의 동맹국이 중국을 공격하였다고 생각해야 될듯 보여집니다..
아니면 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걷잡을수없이 영토를 좀더 가지기 위해서 핵을 가진 국가면 전쟁에 동참할것입니다.그렇게 따지면 한국 부터 할것이지 왜 중국부터???이건 좀 안맞네요...ㅋㅋㅋ
3월 10일- 독일 일본과 전쟁선포함
여기서 왜 독일이 튀어 나오는지.....독일이 왜 일본을 공격하였는지....좀 이부분은 어의가 없습니다..
뭐 전쟁이 나면 이상할걸로 트집잡고 싸움이나지만..중국을 공격했다고..독일이 우리 친구 건드렸다고??
독일하고 중국이....가까운가요???음.....아니면 일본에 제2의 이토히로부미 같은 인물이 텨나와서....
그걸 막기위해서....??? 근데 왜 독일이냐가......
신기합니다..
3월 12일- 독일 비밀 병대 , 2일만에 훗카이도에 상륙 을 했습니다
뭐 전쟁 선포했으니깐 가능하겠네요..
4월 23일- 독일 1군단이 훗카이도 점령, 훗카이도 핵기지 공격.
뭐 이것도 결과니깐...
5월 5일- 다시 un평화의 회의 개최.
당연히 여기저기서 전쟁이 나니깐 un개최하겠죠..
5월 12일- 이스라엘이 un연합본부 중 핵 폭탄투하.
un연합본부 붕괴 , 초토화.
이스라엘이 un연합본부에 핵이라....또 유태인이 걸립니다...un도 거의 유태인입니다..
유태인들끼리 집안 싸움을 하는걸까요??쩝.....
5월 13일- 미국 태평양에서 이스라엘에게 대량 핵폭탄 발사.
인구의2/3가 죽었는데....또 쏜다라...ㄷㄷㄷㄷㄷ 악독하네요...뭐....전시중에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깐?
5월 21일- 한국 비밀리에 핵개발.
듣던중 반가운 소리입니다.....한국 핵개발을 하는군요.....핵보유국으로 진입하는군요..ㅋ
5월 27일- 독일 일본 도쿄와 나라현에 핵투하. 파괴됨
그 전 일본은 미국말을 안듣고 핵을 대량생산 합니다.
2차전때는 유럽
전체, 일본, 북미의 국가들만 참전했지만, 지금은 전쟁의 시작이 공산주의과 자본주의 국
가들의 충돌로 이어졌기 때문에 전세계 국가들이 참전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이 미군말을 안듣고 핵무기를 대량 생산하자 미국은 일본에 경고를 주었지만 일본은
무시했다. 미국은 다시 핵무기를 일본의 핵무기공장에 전격투하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폭격할 순 없었다.
일본은 미국에 반격한다.
아하 여기에 이유가 나오네요....3차전쟁은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 간의 전쟁이라는군요..
앞에서 이야기한것을 정리한다면.
이스라엘이 미국공격->미국 보복 > 북한이 이런 어수선한 시기를 이용해 미국 공격 > 미국 동맹국이기도 하고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에게 요청 > 영국 >북한 공격 >북한 공격 받은 동시에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자 일본에게 중국 공격을 요청함 계약상 중국땅 얼마 줄테니 공격요청 > 일본 승락하여 중국 공격 > 일이 크게 벌어짐에 따라 한국에도 핵을 만들수있게함.. > 핵개발 착수 그사이 유엔본부 폭팔.. > 일본이 이상한 독재자 출현으로 미국 말듣지 않게됨>미국 독일에게 일본 공격 요청 (안으로 일본 땅 주겠다 등..ㄷㄷㄷ) >독일 일본 공격..
뭐이렇게있네...이래 생각해도 제일 이치가 안맞는게...처음시작이네요...이스라엘의 미국공격...왜 이스라엘이...
종동이라고 치면....조금 말이 맞는데....
6월 15일 미국 대규모 핵폭탄 이스라엘 공격,. 이스라엘 반쪽이 방사선에 노출
미국이 이스라엘 에게 항복 요구. -> 실패
이건 당연하죠....핵폭탄 공격에 인구의 2/3가 죽었다는데...항복요구하고....이스라엘은 미쳤다고 항복 하겠습니까...일본하고 비유하신다면 그당시 일본은 핵이 없었습니다만...이스라엘은..핵을 가지고 있다면 보복은 할 생각이 있을겁니다..
7월 2일 한국 핵 개발완료 한국 통일전쟁 선포합니다
뭐 일리가 있습니다...한국 통일전쟁이라는 명칭이겠지만 실지로는 미국동맹국의 힘을 빌어 아마 밀고 올라갈것입니다...북한에게 보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통해서 밖에 설명할수없죠...
7월 16일 한국,중국 핵으로 인해 협상중 한국 &북한 중국과의 국가경계선 공격.
대규모 북한 과 한국 대규모 미사일 중국 공격 - 실패
이 부분 상당히 이상합니다...한국과 중국 핵으로 인해 협상한다고 합니다만...한국 북한이 왜 중국을공격하는지..
앞에서 통일전쟁하고나서 통일이 된건가요??...합쳐졌나요???굉장히 빠른시간에 합쳐졌네요..
합쳐졌다면 뭐 미국을 등에 지고 공격했겠죠..
아쉬운거는 대규모 미사일공격이 실패로 되었다는거...우리 나라 미사일 좀 만들지않나요?? 아니 우주로 보내는 미사일도 만들수있는데...어디서 듣기로는10위 안에든다는데..좀 안습입니다..
7월 29일- 북한이 대규모 미사일을 중국에 재 공격. - 실패
음...뭐 통일이 되었다면.. 북한이라기보다는 앞서서 실패했기때문에...중국과 가까운 북한 지역에서 쏘았겠죠....그런데 또 실패했다닙다....아 부끄럽네요...우리나라 미사일 이렇게 안좋나..ㅋㅋㅋ
8월 18일 미국의 컴퓨터 오류로 많은 문제 발생.
전쟁 나면 오류 여기 저기 나겠죠....거기다 미국도 전쟁중이라 많은 시설이 파괴 되었을겁니다..
8월 25일 최고의 하락 : 전세계의 주가와. 경제력 하락, 계속 사망자 속출, 방사선 물질로 대기권 오염.
핵폭발과 함께 나오는 열로인해 오존층 대다수 파괴갑니다.
이제 전세계 주가가 떨어지는군요..전쟁 시작 된지가 언젠데...뭐...최고의 하락이라니깐....그전에도 떨어지다가..
이때 완전 종이 쪼가리 되었나봅니다.....주식하시는분들이라면...이때 풋옵션좀 질러주세요.ㅋㅋㅋㅋ전시 상황이라 힘들 수도있겠지만...
8월 30일- 러시아 폭탄 미국 공격 .
오 드디어 러시아가 움직입니다...이제 정말 3차세계대전이 돌입하는 구조군요...
9월 8일 미군 - 러시아 재 공격
미국 러시아 계속 전쟁*미러전쟁[4년기] 러시아와 미국, 전역에 초토화. 전세계는 엄청난 피해를 입음
시간은 흘러 흘러
음...뭐 러시아가 움직이면 이제 정말 형들 싸움이 되니깐 양극으로 나누어서 동생들 쪼르미 붙어 싸우겠죠..
전세계에도 엄청난 피해를 받을것이고...
2023년까지 ㅡ 인구중, 13억명 사망. ㅡ
휴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국은 국방비에 거의 나라의 모든 돈을 물쏟듯 퍼부었다.
유럽연합은 국방비는 물론, u.s.e의 단결에 힘썼다
중국과 러시아는 국토에 심각 한 협상을 내놓았지만 중국의 국민소득을 높이게 돈을 대 달라는 조
건을 러시아가 거절하여 협상은 해체되었고, 얼마 후 러시아가 국방비에만 힘써준다는 내
용으로 협상을 했지만 3차 대전때 이미 백성들이 쥐어짜여 있어서 중국이 거절했다
13억명 사망이라...대부분 들어보면 전쟁은 우리나라랑 중국 일본이네요..유럽쪽은 어떻게 돌아가는지..잘 안나와 있고...싸움은 중동에서 시작되서 우리나라쪽이랑 중국....13억명은 다여기서 죽었는건 같은데...ㄷㄷ 이네요..
2023년 12월 말 유럽 연합 재 탄생.
유럽이 아무래도 러시아빼고는 이래 저래갈리겠죠.. 러시아는 이제 유럽에서 왕따가 되는군요.ㅋㅋㅋ
2023년 12월 13일 미국 - 중국 참혹하게 전쟁. 중국 인구 지금까지. 약 반쪽 잃다.
미국 이스라엘이랑 러시아 전쟁이 조금 진정되자...중국을 공격하기 시작하나봅니다..
2023년 12월 30일 독일 , 북한 전쟁 휴전
독일이랑 북한이 전쟁을 했었나요??팡당하네요..앞에서 일본이랑 싸웠다고했는데...
오타인가????이상하네요....뭐 오타라고 치죠....ㅋㅋㅋㅋㅋ 일본과 전쟁 휴전.....
2024 -1-8- 일본군 러시아에 기습 , 러시아 반격
이야 일본군 왜 갑자기 러시아를 기습을했죠??앞에서 휴전하고 이번에는 러시아인가요??진짜 말이안되네요..
미국 말안듣고 있다가 이제 미국 말듣고 러시아 공격인가???
쩝....할말이 없습니다..
2024-1-12- 일본 국민 엄청난 해외 피난 시작
지금까지 일본 인구 3.8/5 가 감소 당했습니다.
아...* 친구들 독일한테 한대 맞고 러시아한테도 맞네요.ㅋㅋㅋ
2024 2월 7일 러일 휴전
결국은 휴전이네요.ㅋㅋ
2024 3달도 되지않는체 5월 14일 러 일 2차 공격 시작
러시아가 일본 공격하는군요..불쌍하네요....독일한테 치이고...러시아한테 완전 눌리고..
2024년 8월 13일 시베리아 비밀장소에 핵무기를 모아 두었다가, 지중해.
많은 지역과 미국의 플로리다 주 , 각지 유럽에 핵 투여
로마와 피렌체,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덴마크 코펜하겐 등 핵세례를 퍼붓고 점령당했다.
러시아 열이 많이 받았나 보네요 핵을 막 쏘네요..
미국 : 27984
유럽연합 : 18924
러시아(패망 후 영토복귀 후) : 421278
중국 : 669837
몽고 : 198
카자흐스탄 : 1498
이라크 : 1578
한반도(3~4차 대전 발발로 긴급 통일) : 117280
동남아 : 2866
그외 등등 : 4986
전체 사망자 수 : 333688만 명 즉 3336880000 = 약 34억명 = 현재 인구 대량 절반 감소.
사망자 숫자인것 같습니다만 어떤숫자인지..다합쳐도 쩝......뭐 맞다고 치고..
한국도 많이 난리났네요...우리 인구가 저리 많았던가...쩝...
아...3~4차 대전으로 긴급 통일이 되었다네요......그러면 북한은 미국한테 한대 톡 때리고 크게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어 놓고 아무것도 못하고..한국한테 무력통일 당하고....끝이네요...ㅋㅋㅋ쩝...
뭐 향후 예상은 제가 존 티토 홈페이지에서 안 찾아보았는데...뭐 많이 떠도니깐...거기서 누군가가 해석해서 이렇게 글을 적었겟죠..그런데 영문 내용에는 이런내용이 없던데...어디서 찾으셨는지...지은신거라면..콱~!!
앞에서는 아....대단한데..라는 생각이였는데 후반부로 갈수록.....시나리오가 왜이렇지 라는 생각을 가지게도됩니다..ㅋㅋㅋ
현재 존티토의 기본예언은 수정이없었습니다..1번예언이랑 세계3차세계대전의 날짜가 바꾸긴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일어나는 형태의 틀은 바꾸지가 않았습니다..만약 정말 만약에 베이징 올림픽이 취소가 된다면...한번 생각 해봐야 될 문제입니다.
아니 베이징 올림픽을 하다가 유혈사태나 중지가 될수도있습니다.
존 티토의 예언이 틀리수도있습니다만..우리는 한번 전쟁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됩니다.미래학자들이 미래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면 전쟁이라는 말이 꼭 나옵니다..특히 중동문제에서 부터 3차세계대전이 일어날수있다는 논문을 수도없이 제출하고있습니다..식량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습니다..존티토의 예언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미래학자들이 미래의 가장 걱정꺼리는 것이 바로 핵 전쟁이였습니다..핵이 이런 추세로 가면 제3국들도 핵을 가질려고할것이고 그것을 제지하기는 힘들다고합니다..점점 핵국가가 늘어나면 아주 위태로워지게되며 특히 중동같이 계속해서 전쟁이 일어나는곳에서는 멀지않아 핵전쟁이 일어날것이고 그것을 제지하기 위해 또 핵을 쓰고 도미노 처럼 3차세계대전이 일어날수있다는 논문이 미래학에서 여기저기에서 나오고있습니다.물론 아닐수도있습니다만...확률적으로 한 국가가 시작하면 70%이상 도미노 현상이 일어난다고합니다..
저는 이 예언에 대해서 많은부분 만약이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가정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존티토라는 인물이 이야기하는것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을하게되고 여기까지 글을적게 되었습니다.물론 전쟁이 일어날수 있는 확률이 0.1%이하 일지라도 한번 쯤은 생각해보는것도 좋을거라고 생각되어집니다..왜 mit에서 존티토를 보고 싶어했을까요??언제 초청했는지 존티토가 미래로 돌아가고 나서인지는 존티토가있을때 초청했는지는 모릅니다..그리고 갔는지 안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그의 예언이라고 할수도 있고 그의 시나리오라고 할수있는 그의 대답들은 굉장히 뻔뻔함을 넘어서 사실처럼 느껴집니다..밑에 원문이 있으니 참고해보시고....정말 이런것도 모르고 이야기했다면 정녕 예언인것이고 이런저런것들을 생각하고 쓴 예상 시나리오라면 그의 미래를 보는 안목도 상당하다고 보여집니다.거기다가 과학,사회적 문제,지리상문제등 굉장히 박식하다고 할수있습니다....정말 천재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됩니다...공부 더해야 겠다는 생각이듭니다..^^;
솔직히 앞에서 맞춘 예언들을 종합하여 이사람이 예언자라고 이야기하는것이 이렇게 박식한 인물이라는것보다 확률적으로 따지면 굉장히 높습니다...만약에 한명이라면 말이죠.미래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언을 맞추고 틀리고를 떠나 그의 시나리오는 정말 대단하고 이제까지 맞출걸 보면 신기할 따름입니다.
또다르게 생각하면 존티토는 미래인이라기보다는 각계통의 학문의 박식한 인물들이 만들어낸 허구성 인물일수도있습니다...존티토라는 명칭아래 각계통에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만나 근미래에는 이런 연구를 하고 있고 언제가는 이런일이 일어나겠지라고 생각하여 글을 적었을것이고. 그 예언들이 조금씩 맞아가게 됨에 따라.마지막은 전쟁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켜 이런일을 예방하자고 이런글을 흘리고 다닐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막말로 이야기하면 예언자이거나 유식한넘들이 모인 집단이거나..돌아이라는..ㅋㅋㅋㅋ
이런저런이유로 많은분들이 귀가 팔랑팔랑 거릴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 기초식품 가격 올라가는것도 굉장히 희한합니다.
존티토의 추정자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윗선에는 분위기를 감지하여..사재기를 하는것일수도 있다고 생각할수도있고 정말 엠아이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수도있고....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죠...현재로서는 공업화 추진으로 인해 쌀이나 밀 용지가 부족하여 이런 폭등이 일어났다고 하는데..전 사재기하는게 더 신빙성있어 보입니다.하지만 이런 예언들 하나하나에 특히 유태인들은 많이 움직입니다...머리가 그렇게 좋다는 유태인인데...우둔한건지..신앙이 너무 깊은지..기가 약한지..;;;;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나돌때 2000년도 멸망이 온다고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도 식료품가격이 두배이상올라간 그래프를 찾을수있습니다..예전에 한번 보았는데..궁금하시면..한번 찾아보시길....자료는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에 보면 자세히 나와있습니다.밀값이나 쌀값 년도별 그래프나 금값그래프 한번 찾아보시면 재밋는 연관성을 찾을수있습니다..연관성은 조금은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그만큼 인간은 밑져야 본전입니다...돈 많은 사람들은 더더욱 그러하겠죠..현재도 밀값이 2배 아니 계속해서 올라가니...뭔가 낌새가 있는것 같기도합니다..뭐랄까 밑져야 본전이니깐????
식량 대란이 시작을 알리는??어느 미래학 책에서도 이런 대란을 예상한 시나리오가 있지요..만약 베이징 올림픽이 취소된다면...밀값이 비싸던 말던...라면 왕창 사시길..ㅋㅋㅋ 쌀도 많이 매섭해놓으시고 일터지면 좀 나눠주시길...이참에 나도 편의점이나 하나 차릴까..ㅋㅋㅋㅋㅋ
밑져야 본전이니깐..
결론적으로 존티토의 예언은 절대 안일어날수도 있고 정말세계대전이 일어난 30억이 아니 40억이 될수도..10억이될수도 있습니다. 나비이론적으로 말이죠..
우리는 무수한 선택을 할수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흔히 역사적인 인물을 가르켜 the man of destiny라고 칭합니다..숙명을 지배하는자..
숙명에 반한는자.. 그런자가 사실상 우리 주변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사는것 자체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갖고있는사람 이 몇이나 될까요??그리고 거기서 뛰어난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제가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인간은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동물이지만 선택지는 그사람이 원하는것을 하게 되어있습니다...무슨일을 하던 무엇을 생각하던..자유라는 이름아래 우리가하는행동들 하나하나가 큰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다차원적으로 생각했을때 다른내가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선택은 거기서 거기라는 이야기입니다..매트릭스 라는 예를 들어 보도록할께요...매트릭스라는 영화가 굉장히 철학적인 영화입니다..
거기서도 보시면 마지막편에 보면 선택지가 나옵니다..the nulle 이라고 칭하는 *의 선택은 사랑을 택하지요..
이전의 *들은 모두 다 시온을 택하게 됩니다..이번의 *는 특별하다고 이야기하죠..
거기에있는 장면을 보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많은 티비들이있고...*가 하는 행동들이 보여지고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을때의 *들의 반응들입니다만 그 많은 행동 들중에 대략 하는행동은 틀이있습니다.
기쁘거나 나쁘거나 이런말을 들었을때 *의 성격적으로 이런틀안에서 행동을 한다는것을 보여주는 일면입니다...그리고 이때까지 만들어졌던 *는 시온을 선택하지만 현재의 *는 사랑을 택하게 되지요..
그만큼 특별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확률적으로 보면 1/7정도가 되겠네요...영화상에서는 말이죠..
왜 제가 이 비유를 하냐면 실제로도 우리가 선택지를 놓고 암만 나비이론이고 우리는 아무거나 결정할수있다고하지만 그렇게 특별하게 결정을 하는경우는 드문다는이야기입니다.
나는 이거 하고싶은데....그러면 이거하자...그런데 여기서 성격적으로 성질적으로 하는 부류가 있을것이고..에이 하지말자는 부류가있습니다..이건 태생이 그렇습니다....그걸 이겨내는 사람은 the man of destiny라고 이야기할수있겠죠....특별한사람 남들과 다른사람..전 복받은넘이라고 이야기합니다만.ㅋ...그런 부류는 적습니다..
어릴때 우리는 특별한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고 배웁니다..하지만 나이가 들고 사회에 들어오게 되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사람이 됩니다....확률적으로 갑부가 되거나 사회를 선전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부류도 극소수입니다...우리는 거기에 이리치이고 저리 치이지요..그런 사람이 되는 걸 꿈꾸며 생활하지만..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실지로 행하는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죠..이번에 베스트셀러가 된 시크릿이라는 책을보면 마음먹은데로 할수있다고 합니다....맞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수가있습니다..하지만 마음만이아니라 실천을해야 그것이 실행이됩니다...유전적으로 마음을 먹고 그것을 실행함에 있어서 얼마나 계속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꺼야?그런 특별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어느분은 우리는 지배당하며 살고 있다고 까지 이야기합니다..너무 극단적인 표현이지만..단순하게생각하면 *넘이라고 이야기하고 깊게생각하면 이렇게 까지 표현할수있구나 라고 할수있습니다.
왜 데카르트는 인간에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수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많은 것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자살이라고 말하고 자살 을 택했을가요..얼마나 고뇌가 따랐을까요...
철학적으로 들어가면 끝도없기때문에...여기서 일단락 하고
우리가 선택하는것이 얼마나 그틀이 정해져있는것을 느낄수있다는것입니다...나비이론이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남겼지만...그 가능성중에 실제로 행해지는 대략적인 루트는 비슷하다는 것입니다...뉴욕에 나비가 뜨면 안으로 미시적으로는 변화가 있겠지요..하지만 거시적으로본다면 나비하나가 뭐...어쨌는데...라고 생각 할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그냥 '어..나비네....'하고 지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존티토의 예언이 어느정도 빗나가더라도 틀이 유지될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차원적으로 현재우리지구랑 존티토가 이야기하는 지구는 다른 시공감일수도있습니다...하지만 그 결과물은 비슷해질수도 있다는 상상을 할수있습니다.무슨 큰 충격이 와서 사람들의 심리가 변하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사실 존티토의 예언의 가능성은 희박합니다.앞의 예언들은 우와..라고 생각드는데 뒤로갈수록....음??이런 기분이듭니다...물론 베이징 올림픽 하지않는다면 저도 약50%정도 믿음이갈것입니다..하지만 실지로 가능성은.0.1%정도??그래서 제가 조금은 경각심을 일으키기위해 정말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취지로 글을 적었습니다...많은 부분 맞는 부분도 있고해서 말입니다..하지만 베이징 올림픽까지 맞춘다면 모든 인간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죠...그에 따른 대비책을 맞이할것입니다...그게 나비이론이지요..
내일이 지구가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난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겟다..
좋은 말인것 같습니다......사는것 까지거 뭐 있나요..
인간은 언제간 죽게 되어있습니다...빠르든...늦든....자기가 꿈꾸는 삶을 사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좀.. 존티토의 예언이 이루어 진다는 말 투 같네요.....전혀 그런 뜻이아닙니다..
예언이 적중하든 안하든....그냥 현재를 즐기고 사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미래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첫째로 그것에 대해서 궁금해하기 때문에 생겨났고..
2번째로 미래에 일어날일을 예방하고 좀더 좋은 미래를 위해 연구를합니다..
거기에 이런 예언자들도 한둘이 나오게되죠.
근거가 없이 이야기하는 예언자들의 말들은 믿을게 못됩니다.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이죠..하지만 실지로 분석해보는것 만으로도 많은 부분을 생각을하게 만듭니다.
거기에 휘둘려서 어떻게 어떻게..하지마시고..
아 이런글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게 좋을듯 보여집니다...
밑에 글은 존티토의 사이트 www.johntitor.com 에서 가져온 원문입니다..해석을 하기가 너무 귀찮고..
그렇게 완벽하게 해석을 해드릴수 없어서 그냥 원본을 올립니다...누군가가 마음을 먹고 하시겠다면 좀 해석을하여 올려주세요..ㅋㅋㅋㅋㅋ
그냥 심심할때 재미로 읽으세효~
이형누작성일 2008-07-15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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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해병 저격수 카를로스 헤스콕 9부
헤스콕은 50구경 기관총저격에서도 사격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미군은 한국전쟁에서도 M2중기관총에 스코프를 장착하여 장거리사격에 사용했었다.
헤스콕은 논길을달려 도망가는 2명의 베트콩에게 기관총사격을가했다.
베트콩은 자신들의 바로앞에 총탄이 떨어졌지만 계속 도주했다.
헤스콕은 위협사격을하여 그들이 멈춰 서도록하려했으나
결국 상관의 명령에따라 격발기 버턴을눌러 제거했다.
쌍안경으로 관측하던 중위하나가 아주 먼 거리에서 중국제 K-44소총을 든 병사를 발견했다.
헤스콕이 말했다.
" 뭘 발견했습니까?"
"한명이 보이는데 너무 멀어."
"내가 잡지요."
"어떻게 저 먼거리를 저격한단 말이오?"
헤스콕은 스코프를 겨냥하여 사격했다. 그 거리는 2250미터였다.
중위는 사람이 총에맞아 죽는 모습을 이날 처음 경험했다.
며칠 후, 헤스콕은 정글루트를따라 물자를운반하는 베트콩행렬을 목격했다.
해병저젹수들의 총격이 가해지자 양동이를 운반하던 할머니가 주저앉았다.
헤스콕은 양동이를 겨냥하여 한발을 발사했고 할머니는 그만 뒤로 넘어져 버렸다.
헤스콕은 낄낄 웃으며 기관총을 해체했다.헤스콕은 베트남을 떠나는 날까지 자신의 임무를 다 하였다.
비행기에서내린 헤스콕은 자신을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아들을 발견했다.
아들의 손을잡은 아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헤스콕은 아내와 아들을 따뜻하게 포옹했다.
그는 수화물을 찾은다음 택시를타고 민간인으로서 새로운 생활을하게될
뉴 베른에 마련한 자신의 집으로향했다.민간인이된 헤스콕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전기회사 직원으로서 일하게되었다.
그러나 8년간 몸담았던 해병대에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주말엔 가까운 캠프 리젼의 사격장을 배회하기도했다.
아내는남편이 전기기사라는직업을 좋아하지 않으며 현장에서
매일매일 고생하는 것도알고 있었다.
그리고 특히 해병대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당신은 이미 해병대에서 제대했어요. 이제 미련을 버려요."
아내의 말에 헤스콕은 신경질적으로 받아쳤다.
"나는 차라리 베트남에 있을 때가 더 안전했소.
동료가 전기에 감전되어 죽는 모습을봤어! 나는 이 직업이싫어."
"무엇이 당신을 힘들게해요? 당신은 다시 해병대로 돌아가려고 하는거예요?"
아내가 물었다.
헤스콕은 아들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아내에게 말했다.
" 여보. 왜 그것이 잘못인가?
다시 복귀하더라도 나는 사격선수이며 교관생활을 하게되는거야.
내가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지 않소.
베트남에 가지 않겠다는 그것만은 꼭 약속하리다."
"카를로스, 나는 당신과 결혼할 때 결코 해병대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였어요.
나는 당신이 행복하길 바래요.
당신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니까."
아내는 헤스콕이 해병대, 사격장이 없이는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재복무 신청서를 제출하여 이를 받아들인 해병대로 다시 돌아간 헤스콕은
해병대 사격팀과함께 국제 라이플 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위해
가족과함께 여름동안 버지니아의 콴티코 기지로 거처를옮겼다.
헤스콕은 1000야드 윈체스트 소총 사격과
400야드 M-14반자동 소총 사격을위해 훈련에 돌입하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1968년 멕시코에서 열리게되는
올림픽 출전권을 따 내기위해 소 구경(22구경)사격경합을 벌이고있었다.1967년 7월의 어느날,
집으로 돌아온 헤스콕은 아내에게서 한통의 편지를 건네받았다.
" 랜드 대위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베트남을 떠난 이후 만나보지 못했던 상관이자 친구인
랜드 대위(현 소령)에게서 편지를 받은 헤스콕은 무척 반가워하였다.
그는 집으로들어가 아들을 껴안아 준 다음 안락의자에앉아 편지봉투를 뜯었다.
그때, TV에서 6시 뉴스가 막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는 편지를 탁자 위에 놓아두었다.
헤스콕은 베트남 전쟁 소식과 제1해병사단, 그리고 자신의 부대에관한 소식을
듣고자하여 매일마다 뉴스시간엔 어김없이 TV를 켜왔던 것이다.
잠시 후 헤스콕은 편지를 집어들었다.
"사랑하는헤스콕. 자네가 살아있음에 난 기쁘다네.
처음엔 해병대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지금은 큰 팀을 이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네.
친구여. 자네는 그럴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네.
나는 자네가 잠시 군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다시 해병대로 돌아와
있어줘서 나는 몹시 기뻐하고 있다네.
그리고 해병대는 자네를 필요로하고있어.
헤스콕,
한가지 나쁜 소식을 자네에게 알려주게되어서 유감스럽네.
얼마전 웨잇 소령으로부터 편지를받았는데
베트남의 저격학교와 저격활동들은 아주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네.
자네 파트너 버크 상병은 제3해병사단 제26해병연대 제1대대 본부중대 소속
스카우트 스나이퍼 소대로 배속되어 저격분대를 맡게되었는데
그는 이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더군.
자넨 버크 상병을 아주 멋지게 교육했었던 모양이야.
그는 자네한테 배운대로 임무를 무척 잘 수행했다하네.
그런데 버크가 케산에서 그만 전사했다는 소식이네.
아주 용맹한 전투끝에 전사했다는 것외에 나는 아는 것이없다네.
버크는 자네만큼 내가좋아했던 해병 중 한사람이었네.
버크가 자네곁에 있어 든든했던 기억이나네.
지금 그를 생각하자니 너무 슬프네.
나보다는 자네의 아픔이 더 클 것이라 생각해.
그는 정말 좋은 해병이었어.
우리는 그를 그리워하게 될거야."편지를읽던 헤스콕은 눈물을흘렸다.
방을나온 그는 뒷 마당을 거닐며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석양을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흘렸다.
한편 케산기지 에서는...
죤 로날드 버크(John Roland Burke)상병
케산은 제1군단 지역의 라오스국경을따라 걸쳐진
비무장 지대의 바로 남쪽에 있었으며
제2의 디엔비엔 푸로 불리우는 전략요충 지역이었다.
죤 로날드 버크상병과 저격수들은 케산 외곽의
외딴 봉우리인 950고지에서 전진기지방어임무를
맡고 있었다.
1967년 6월 6일 밤8시. 병사들은 뜨겁고 불편한
벙커를벗어나 바깥에서 잠을 청했다.
얼마 후 엄폐호에서 야전 전화기의 호출음이들려왔다.
인접한 엄폐호에서 넣은 신호였다.
버크가 야전 전화기를 들었다.
"외곽 철조망에서 소리가났다. 거기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아니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주위를 둘러본 버크가 대답하자
"지금 적이 접근하고 있어. 분명해!" 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적이 부비츄랩의 인계철선을 절단하고 침입해들어오는것이 분명했다.
전화기를놓은 버크는 해병들을 깨우기시작했다.
다시 "따르륵 따르륵" 야전 전화기가 울어대자 버크가 그것을받았다.
"이봐! 지금 적이 철조망을 끊고 있어. 나는 지금 그모습을 보고 있어!"
버크는 다급한 야전 전화기 보고와 함께 친숙한 RPG-7 로켓 추진탄 비행소리도 들었다.
"피해!"
날아온 탄은 캠프의 중앙에서 폭발해 몇 명의 해병에게 부상을입혔다.
버크는 엄폐호에 화재가 발생하자 그것을 끄며
청음초들이 쏘아대는 M60 기관총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더 많은 로켓 추진탄들이 전진기지로 쏟아져들어왔다.
버크는 조명탄 발사를 요청했다.
"버크 상병입니다. 조명탄 발사를 요청합니다! "
근처의 해병이 소리질렀다.
"적이 철조망을 뚫고 공격하고있다!"
버크는 적을 공격하였고 방금 소리를외쳤던 해병이 수류탄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버크는 헤스콕에게 배웠던 그대로 행동했다.
크게 고함을 지르며 조심스럽게, 그리고 빠르게 아픔을 호소하는 해병에게로
달려가 그를 엄폐호 안으로 끌고갔다.
또 다른 추진탄이 터졌고 버커는 유산탄에 맞아 부상당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부상당한 해병의 비명소리를들은 그는
그곳으로 달려가 다른 해병과함께 부상자를 엄폐호로 끌어들였다.
그 때 추진탄이 그의 바로 뒤에서 폭발하여 온몸에 부상을당했다.
청음초의 기관총 소리도 들리지않았다.
그들이 당한 것이 분명했다.
버크는 M-16자동소총과 10여발의 수류탄을 집어들었다.
부상당한 해병이 그 모습을보고는 "어떻게하려고?" 라며 놀라서 물었다.
평소 방어보다 공격적인걸 더 좋아했던 버크는
"여기에 이렇게있는걸 나는 별로 좋아하지않아."
라고 대답하고는 엄폐호를 뛰쳐나갔다.
온몸에 부상을당한 버크는 철조망으로 접근하여
자신들을 공격했던 적들에게 고함을지르며 사격을가했다.
이 공격에 놀란 적은 철조망에서 벗어나려다 버크의 총탄세례를 받았다.
버크의 수류탄이 적에게로 날아가 작렬했다.
살아남은 적은 그대로 도망쳤지만 기지에는 밤새도록
로켓 추진탄의 공격이 계속되었고 중상을입었던 버크는 결국 전사하고말았다.
자신이 부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료해병을 구했던 버크,
격렬한 그의 고함소리는 해병들에게 용기를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리고 두번의 심각한 부상을 무릎쓴 채 적을 공격하여
더 많은 해병의 목숨을구하고 자신은 죽어갔다.
해병대는그의 영웅적 전투를 기리기위해 해군 십자훈장을 추서하였다.
1968년 4월 30일, 린든 죤슨 대통령은 해군장관에게 훈장수여를 명했다
950고지
헤스콕의 가족은 1967년 여름부터 계속된 사격 때문에
거의 일주일에 한두번만 만날 수 있었다.
만약 자주보기를 원한다면 헤스콕과 함께 여행하여야했다.
헤스콕의 아내는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콴티코 기지의 이웃들과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남편을 베트남에보낸 부인들보다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상당하거나 시체가되어 헬리콥터에 실리는 병사들의 모습을
TV뉴스를 통해 자주보았던 그녀였다.
1969년 4월,
헤스콕은 자신의 시보레 승용차로 동부 텍사스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미국 총포협회가 주관하는 각주별 사격대회에 참가하기위하여
샌 안토니오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헤스콕은 샌 안토니오에서의 사격에 큰 기대를걸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성적이좋으면 다음 주에 캠프 페리에서 개최되는
세계사격선수권에 참가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헤스콕은 1965년의 윔블든 컵수상의영광을 1969년도에도 다시 재현하리라 확신하고있었다.
헤스콕의 집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는 시계를 쳐다보며 샌 안토니오에 도착한 남편이 틀림없다 생각했다.
그녀는 전화를받으러 걸어가며 아들에게 말했다."얘야. 아빠한테서 전화가왔구나. 이제 샌 안토니오에 도착한 모양이구나."
그녀는 전화를 들었다.
"여보. 나쁜 소식을 전해야겠어.
이번 주말에 사격에 참가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생겼소."
"무슨 잘못된일이 생겼어요?"
"모르겠소. 바틀렛 상사가 내게 짐을풀지 말라고 하였소.
관티코 기지에서 급한 임무를 전달받으라는거요.
아무튼 나는 내일 바로 기지로 돌아가야하오."
그녀는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헤스콕. 무슨 임무죠?"
"나도 모르겠소. 나도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오.
나는 내일 밤이나 늦어도 일요일 아침엔 집에 있게될거요.
그때 이야기합시다. 사랑하오."
전화는 끊겼다.
헤스콕이 명랑한 목소리로 말하였지만 그녀는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10편으로 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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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John Titor의 예언
John Titor는 자칭 2036년에서 온 미국군인으로, 자신이 군대의 명령을 받들어 6년전 이쪽 세계의 2000년으로 왔다고 합니다." 라는데 이번에 중국 대지진으로 올림픽 취소가 될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하네요 -ㅅ-;;;;;;대충 2000년 11월 2일부터 2001년 3월 24일까지 그가 했던 행동은.. (귀찮다 긁자 -_-;;)그가 처음 인터넷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0년 11월 2일로, 그는 웹 BBS에서 다른 이들과 대화하며, 자신은 2036년에서 온 미국군인이며, 자신의 임무는 타임머신을 타고 1975년으로 돌아가서, IBM 5100 컴퓨터(역사상 첫 휴대식 노트북 컴퓨터)를 갖고 돌아가, 2038년 세계가 맞이할 Unix bug(2000년 세계가 맞이했던 밀리니엄버그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1975년으로 돌아간 그는 컴퓨터를 얻은 후, 즉시 2036년으로 돌아가지 않고,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인류가 밀리니엄 버그를 해결하는 모습을 본 후, 2000년 11월 2일부터 2001년 3월 24일까지 4개월동안 부모의 집에 머물며, 부모의 컴퓨터로 세계각지의 네티즌들과 대화를 하며 많은 예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암튼 그가 했던 말 중에서 대충 맞아 떨어진 것이 아래와 같네요1. 2000년 11월 2일, John Titor는 웹상에서 그들의 시대의 타임머신은 여전히 mini-black holes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이 이야기를 한지 1년도 안 되어서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 Research])은 자신이 말한 이론이 사실임을 공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2001년 말, John Titor가 2001년 떠난 후, CERN은 [mini-black hole]로 타임머신을 제작할 수 있다는 원리를 발표하였다.2. 2000년 11월 25일, 그는 광우병이 미국을 휩쓸 것이라고 단언하였으며, 2003년 12월 광우병이 미국 본토에서 발생하였다.3. 2001년 2월 그는 미국정부가 대형살상무기를 찾는다는 것을 이유로, 이라크를 공격할 것을 예언하였고, 03년 3월, 부시대통령은 확실히 이 이유로 제 2차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4. 그는 2001년 1월 29일에 [너희들에게 미래의 재난과 발생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는 것에 대해 나는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다. 예를 들자면 광우병, 중동전쟁, 머나먼 섬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suffering people in far away islands) 등. 어떤 것으로도 내가 그들에게 10만여명이 죽을 것이란 것을 알려줬을때, 듣는 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유할 순 없다.John Titor의 팬들은 www.johntitor.com 의 사이트를 만들곤 이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였다.그리고 2004년 12월 동남아 대재난이 발생하였을 때, 그들은 suffering people in far away islands와 10만명이 죽을 것 이라는 이야기는 동남아재난의 발생을 예언한 것이라고 단언하였다.---------------------------------------------------------------------------------------그리고 지금 얼추 맞아 떨어져 가는게...중국에서 2008년 올림픽 개최가 확정 되나 질병와 지진, 그리고 티벳에 대한 강압적인 무력 행사로 올림픽 참가가다른 나라에서 보이콧 하여 사상 초유로 올림픽이 사라지게 된다였구요... (덜덜덜)그외 그가 한 예언들을 모으면.....-----------------------------------------------------------------------------------1. 08년의 미국대선의 결과는 08년 미국 각주간의 불화를 일으키고, 천천히 미국내의 내전을 빚어낼 것이다. 이 전쟁은 2018년까지 10년동안 지속된다. 2. 미국의 내전기간, 중동각국은 핵전쟁을 시작한다.3. 2004년 후, 올림픽은 취소된다.4.2018년 미국내전은 3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인하여 끝난다. 러시아가 미국에 원폭을 투여하여, 이로 인하여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5. 세계대전중, 미국, 중국, 유럽과 러시아의 전역이 가장 참열하며, 총 사망자는 30억 정도에 다다르게 된다.6.2007년 , 타임머신의 기본적 연구가 비밀리로 끝난다.7.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5개의 국가로 분열된다. 대량 기초건축들이 파괴된 관계로 사람들은 자급자족의 원시부락식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파멸되지 않았으므로 세계는 빠르게 다시 회복된다.8. 전쟁 후의 미국에서 사람들은 각 대학부근에 머물며 사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 대학은 University에서 Fort로 변하게 되며, 사람들이 그곳에서 머무는 이유는 대학에는 책(지식)이 있기 때문이다.또다른 예언글[일단 한국은 북한, 대만, 일본으로 합쳐집니다. 앞으로 약 10년 남았습니다. 일단 제 예언이 맞아 떨어지리라 믿습니다. 시간은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들이 노력만 하면 이 예언은 바꿀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2017년. 2. 2 이스라엘, 핵 2개 미국 LA, 휴스턴 공격2. 3 이스라엘과 전쟁 선전 포고2. 5 미국[EX-78] 핵 폭탄 3개 이스라엘, 예루살렘, 나사렛, 베들레헴 공격. 이스라엘 국민 2/3 사망 <방사능 오염도 심각2. 7 북한이 핵을 폐개한지 7년만에 다시 핵을 가동2. 11 북한이 미국 워싱턴에 핵을 투하2. 17 영국이 [AF-90] 핵폭탄 평양에다 투하2. 22 서울이 영국 핵폭탄으로 약 10% 피해입고 방사선물질 서울까지 접근해서 난리남.2. 27 일본 비밀핵폭탄 중국 북경 공격, 북경이 완전 초토화3. 10 독일 일본과 전쟁선포3. 12 독일 비밀 병대, 2일만에 훗카이도에 상륙4. 23 독일 1군단이 훗카이도 점령, 훗카이도 핵기지 공격5. 5 다시 UN평화회의 개최5. 12 이스라엘이 UN연합본부 중 핵폭탄 투하. UN연합본부 붕괴, 초토화5. 13 미국 태평양에서 이스라엘에게 대량 핵폭탄 발사5. 21 한국 비밀리에 핵개발5. 27 독일, 일본 도쿄와 나라현에 핵 투하, 파괴됨 (그 전 일본은 미국말을 안듣고 핵을 대량생산)2차전때는 유럽전체, 일본, 북미의 국가들만 참전했지만, 지금은 전쟁의 시작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국가들의 충돌로 이어졌기 때문에 전세계 국가들이 참전할 수 밖에 없었다.일본이 미군말을 안듣고 핵무기를 대량 생산하자 미국은 일본에 경고를 주었지만 일본은 무시, 미국은 다시 핵무기를 일본의 핵무기공장에 전격투하할 것을 명령, 그러나 일본은 이미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폭격할 순 없었다.일본 미국에 반격6. 15 미국 대규모 핵폭탄 이스라엘 공격, 이스라엘 반쪽이 방사선에 노출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항복 요구 - 실패7. 2 한국 핵 개발 완료. 한국 통일전쟁 선포7. 16 한국, 중국 핵으로 인해 협상중 한국&북한 중국과의 국가경계선 공격 대규모 북한과 한국 대규모 미사일 중국 공격 - 실패7. 29 북한이 대규모 미사일을 중국에 재 공격 - 실패8. 18 미국의 컴퓨터 오류로 많은 문제 발생8. 25 최고의 하락: 전세계의 주가와 경제력 하락, 계속 사망자 속출, 방사선 물질로 대기권 오염 핵폭팔과 함께 나오는 열로 인해 오존층 대다수 파괴되어감8. 30 러시아 폭탄 미국 공격9. 8 미군- 러시아 재 공격 미국 러시아 계속 전쟁*미러전쟁[4년기] 러시아와 미국 전역에 초토화. 전세계는 엄청난 피해시간은 흘러 흘러2023년까지 인구중 13억 사망휴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국은 국방비에 거의 나라의 모든 돈을 물쏟듯 퍼부음.유럽연합은 국방비는 물론, U.S.E의 단결에 힘썼다중국과 러시아는 국토에 심각한 협상을 내놓았지만 중국의 국민소득을 높이게 돈을 대달라는 조건을러시아가 거절하여 협상은 해체되었고, 얼마 후 러시아가 국방비에만 힘써준다는 내용으로협상을 했지만 3차 대전 때 이미 백성들이 쥐어짜려 있어서 중국이 거절2023. 12월 말 유럽연합 재 탄생12. 13 미국 - 중국 참혹하게 전쟁, 중국 인구 지금까지 약 반쪽 잃다12. 30 독일, 북한 전쟁 휴전2024. 1. 8 일본군 러시아게 기습, 러시아 반격1. 12 일본 국민 엄청난 해외 피난 시작 (지금까지 일본 인구 68%가 감소)2. 7 러일 휴전3달도 되지않은 채 5. 14 러일 2차 공격 시작8. 13 시베리아 비밀장소에 핵무기를 모아 두었다가, 지중해 많은 지역과 미국의 플로리다주 각지 유럽에 핵 투여.로마와 피렌체,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덴마크 코펜하겐 등 핵세례를 퍼붓고 점령당함<사망자>(단위 천명)미국: 27984유럽연합: 18924중국: 669837몽고: 198카자흐스탄: 1498이라크: 1578한반도(3~4차 대전 발발로 긴급통일): 117280동남아: 2866그 외 등등: 4986전체 사망자 수: 333688만명 즉, 336880000=약 34억명=현재 인구 대량 절반 감소
암튼 이번에 올림픽 취소되면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 간다 ㅆ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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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미래에서 온 인간.. 존티토 사실일까요 ??
존티토 "타임머신 타고 2036년에서 온 미국군인" 존티토의 예언
john titor는 자칭 2036년에서 온 미국군인으로, 자신이 군대의 명령을 받들어 6년전 이쪽 세계의 2000년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0년 11월 2일부터 2001년 3월 24일까지, 그가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웹상의 여러 bbs와 채팅을 통하여 남긴 예언이 하나씩 맞아들고 나서 그는 인터넷상 가장 유명한 예언가가 되었다고 합니다.그가 처음 인터넷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0년 11월 2일로, 그는 웹 bbs에서 다른 이들과 대화하며, 자신은 2036년에서 온 미국군인이며, 자신의 임무는 타임머신을 타고 1975년으로 돌아가서, ibm 5100 컴퓨터(역사상 첫 휴대식 노트북 컴퓨터)를 갖고 돌아가, 2038년 세계가 맞이할 unix bug(2000년 세계가 맞이했던 밀리니엄버그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1975년으로 돌아간 그는 컴퓨터를 얻은 후, 즉시 2036년으로 돌아가지 않고,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인류가 밀리니엄 버그를 해결하는 모습을 본 후, 2000년 11월 2일부터 2001년 3월 24일까지 4개월동안 부모의 집에 머물며, 부모의 컴퓨터로 세계각지의 네티즌들과 대화를 하며 많은 예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이야기들은 거짓이 아니며, 그는 정말 2036년의 미래에서 우리의 시대로 돌아왔으며 예언은 그저 역사의 일부분일 뿐입니다.1. 2000년 11월 2일, john titor는 웹상에서 그들의 시대의 타임머신은 여전히 mini-black holes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이 이야기를 한지 1년도 안 되어서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 [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 research])은 자신이 말한 이론이 사실임을 공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2001년 말, john titor가 2001년을 떠난 후, cern은 [mini-black hole] 로 타임머신을 제작할수 있다는 원리를 발표하였다.2. 2000년 11월 25일, 그는 광우병이 미국을 휩쓸 것이라고 단언하였으며, 2003년 12월 광우병이 미국 본토에서 발생하였다.3. 2001년 2월 그는 미국정부가 대형살상무기를 찾는다는 것을 이유로, 이라크를 공격할 것을 예언하였고, 03년 3월, 부시대통령은 확실히 이 이유로 제 2차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4. 그는 2001년 1월 29일에 [너희들에게 미래의 재난의 발생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는 것에 대해 나는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다. 예를 들자면 광우병 , 중동전쟁, 머나먼 섬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suffering people in far away islands )등. 어떤 것로로도 내가 그들에게 10만여명이 죽을 것이란 것을 알려줬을 때, 듣는 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유할 순 없다. john titor의 팬들은 www.johntitor.com 의 사이트를 만들곤 이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리고 2004년 12월 동남아 대재난이 발생하였을 때, 그들은 suffering people in far away islands 과 10만명이 죽을 것. 이라는 이야기는, 동남아 재난의 발생을 예언한 것이었다고 단언하였다.john titor의 이야기중 가장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은 그가 이야기한 타임머신이다. 마치 영화 백투더 퓨쳐에서의 타임카와 같다. john titor는 2000년 11월 웹 bbs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찍은 타임머신의 사진을 bbs에 올리며 부터이다.john titor의 말에 의하면 2036년에 타임머신은 매우 보편화되어있으며, 자신의 타임머신은 미국 general electric 사가 생산한 것으로 그 타임머신을 자신의 애마인 1966 年産 chevrolet corvette convertible에 장착하는 것으로 타임머신이 작동되면 그는 마치 백투더퓨쳐의 주인공처럼 차에 앉은 채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하였다. 그리고 그는 타임머신을 조작하는 "c204 gravity distortion time displacement unit"의 설명서를 bbs에 올렸고, 지금까지도 많은 네티즌들이 그것을 다운 받아서 연구중에 있다.
-john titor 가 남긴 9대 예언-1. 04년의 미국대선의 결과는 05년 미국 각주간의 불화를 일으키고, 천천히 미국내의 내전을 빚어낼 것이다. 이 전쟁은 2015년까지 10년동안 지속된다.2. 미국의 내전기간, 중동각국은 핵전쟁을 시작한다.3. 2004 년후, 올림픽은 취소된다. -아마도 하계 올림픽인 듯 함..-4. 2015 년 미국내전은 3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인하여 끝난다. 러시아가 미국에 원폭을 투여하며, 이로 인하여 세계대전이 일어난다.5.세계대전중, 미국, 중국, 유럽과 러시아의 전역이 가장 참열하며, 총 사망자는 30억 정도에 다다르게 된다.6. 2007 년, 타임머신의 기본적 연구가 끝난다.7.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5개의 국가로 분열된다. 대량 기초건축들이 파괴된 관계로 사람들은 자급자족의 원시부락식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파멸되지 않았으므로 세계는 빠르게 다시 회복된다.8. 전쟁 후의 미국에서 사람들은 각 대학부근에 머물며 사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 대학은 university에서 fort로 변하게 되며. 사람들이 그 곳에서 머무는 이유는 대학에는 책(지식)이 있기 때문이다.이걸 믿는 사람들도 꽤 되나??mit에서 존 티토 초청회담까지 열었다는데
http://www.johntitor.com/ 이건 사이트 인데 ...
이글중에 남한과 북한 대만 일본이 합쳐진다고 하네요 ..흠
이라크 전쟁하고 광우병은 비슷하게 마췄는데 .. 과연 사실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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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펌] 고대 삼국이 한반도에 없었다
고대사는 광복되었는가? 언젠가 문천님이 자비왕비가 파호라는 사실이 고대사의 핵폭탄이 될 것이라고 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것이 비록 작은 일은 아니지만 다음의 것에 비해선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것은 무엇인가? 언젠가 내가 얘기했던 일본삼서 - 일본서기, 고사기, 신찬성씨록 - 다. 거기에 우리고대사의 7~9할이 들어있다. 진정한 핵폭탄은 그것이다. 그동안 성찰한 성과를 일부나마 공개한다. 과정은 거의 없고 답만 제시할 것이다.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무시해도 좋고 비아냥대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언젠가 그러는 자들의 가슴에 비수로 꽂힐 것이다. 귀 있는 자 듣고 눈 있는 자 보아라. 가슴을 열고 머리를 비워라. 지난 나의 글들을 반추하여 새로운 사실을 응시하라.
이른바 주류학계라는 이병도 이기백류의 반동 식민사관이 아직도 이 나라 고대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눈부시게 발전한 고고학과 삼국사기 기록의 타당성이 계속해서 밝혀지면서 이미 주류의 기반은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 싸이트에서 자칭타칭 논객이라고 하는 몇몇 허섭스레기를 비롯한 많은 역사학자란 자들이 역사를 우스개 거리로 만들고 있다. 윤내현, 이덕일, 이형구, 김종서 등이 연구성과를 내놓고 새로운 견해를 제시해도, 이도학, 이종욱 등이 주류에서도 새로운 의견을 내고, 정형진, 구자일 등이 제도권 밖에서 의미심장한 소리를 내도, 박영미 등이 주변학문에서 놀랄만한 연구를 제공해도, 그 철밥통은 요지부동이다. 이른바 송호정을 비롯한 몇몇 반골들은 더 심한 반동 논리를 내놓고 있다. 그들 주장한 것들은 아무 근거도 없는 억지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위 사람들이 맞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들이 결정적으로 모르는 것은 일본삼서다. 그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 싸이트의 대표적인 주류신봉자 무명의 글을 보자. 1) 윤내현을 비판한 진개의 침입논리 - 고조선이 대동강이라고 강변한다. 2) 왜와 백제의 논리 - 백제가 왜의 속국이었을 뿐이라고 빈정댄다. 3) 박창범 인식에 대한 비판 - 신라의 일식기록이 모두 지나사서에 있다고 한다. 4) 낙랑군의 논리 - 대동강이 낙랑군이라고 생떼를 쓴다. 5) 백제의 논리 - 호남지역은 백제도 아니었다고 한다. 6) 부여의 논리 - 어쩌다 옳은 소리 한 번 했다.
자세한 것은 이 글을 읽다 보면 자연히 드러날 것이고 나중에 종합해서 살피기로 한다. 그 논리가 과연 맞는가? 하나같이 자기모순일 뿐이다. 그가 제도권 안의 인사임이 틀림없는 데 숨어서 아닌 척 하는가? 이들이 바로 식민사학의 나팔수요, 동북공정의 앞잡이다. 그들의 논리가 맞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청 높여 역사가 잘못되었다고 떠들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높고 백화만발의 학설이 떠도는 것도 그만큼 잘못된 역사를 배우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제대로 된 성찰도 없는 것이 무슨 역사학인가? 역사학도 실제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역사학은 담론 위주다. 고구려가 어디서 어떻게 건국되고 몇 년 몇 년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광개토왕 58성이 어디 일대고, 백제가 어디서 건국되고 시조가 누구이며, 위례성과 한성은 어디인지, 삼국사기 초기기록 하나하나 모두 맞는지, 가야시조가 수로인지, 신라김씨의 계통은 어떻게 되는지, 부여씨의 계통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 무슨 백제의 의의, 고구려의 역할, 삼국통일의 의의 등이 중요한가? 신라가 통일했다는 논리는 맞는가? 다시 말하지만 이제 식민사학의 논리를 쳐부수고 주류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려야한다. 그 공격무기는 있는가? 있다. 바로 일본삼서다.
역사를 바꾸는 것은 언제나 아웃사이더다. 결코 주류가 이뤄내지 못한다. 지나간 모든 역사가 그러했다. 징기스칸도 알렉산도도 나폴레옹도 모두 아웃사이더였다. 사마천도, 세익스피어도, 이태백도 그렇다. 갈릴레이도 아인슈타인도 패러데이도 플레밍도 코페르니쿠스도 모두 아웃사이더였다. 어지러운 한, 일 고대사도 결국은 아웃사이더의 손에서 결정 날 것이다. 이미 수많은 아웃사이더들이 그 철옹성을 부수고 있다.
고대사의 핵폭탄이란 제호로 23편을 연재한다. 끝까지 두세 번 읽고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자기의 논리,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격하게 내깔려 질문하지 마라. 질문은 1편당 개인별로 1건씩만 해 달라. 진지하게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사서를 보고, 왜 저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졌는지 생각해 달라. 말로 안 되는 개소리 잡소리는 상대도 않겠다. 시간을 내서 얼마 뒤에 한꺼번에 질문에 응하겠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묻고 각자 의견을 내서 토론도 해보라. - 말이 경어체가 아니지만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한 문서 작성상 그런 것이고 뜻이 그런 것은 아니니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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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의 비밀이란 싸이트를 운영하는 송준희, 오재성의 논리는 맞는가? 한마디로 아니올시다이다. 한마디로 엉뚱한 도그마에 빠져 있다. 뜨거운 가슴만 있고 차가운 머리는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도 왜 그곳을 들락거리는가? 죽어버린 식민사학의 억지논리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소중한 자료들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어째서 일본삼서가 왜 핵폭탄인가? 바로 백제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터지지 않고 알아채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바로 뇌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낙랑군이 대동강 일대라고 주장하는 허황된 주류 이론을 보자. 상식으로 보아 그게 맞는가? 그 일대는 왕릉급 무덤과 유물로 가득하다. 낙랑군은 한나라 때 유주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게 과연 낙랑군일 수 있는가? 그 당시 지나사 어디에 군소재지 중에서 낙랑군만한 유적이 있는가? 수도인 낙양과 장안 일대를 빼고는 없다. 심지어 유주의 치소인 계(북경 서남부)에도 그만한 유적은 없다. 상식으로 보아 그곳은 절대 낙랑군이 될 수 없다. 그곳이 낙랑군이 아니라는 것은 <한서, 후한서, 진서, 삼국지>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여기서 그걸 다 거론하진 않겠다.
그럼 낙랑국인가? 그것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 단 한번 기록에 나온 실체가 그렇게 대단한가? 그곳이 낙랑국이고 고리가 점령했다면 무엇이 부족해서 고리가 통일을 못하고 신라에 망했단 말인가? 자세한 것은 19편에서 논한다.
바로 그곳은 마한의 수도인 위례성이요, 달지국이요, 통합백제의 수도인 한성인 것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고리와 맞짱을 뜰 수가 있다. 한강유역에 무슨 고분다운 고분이 얼마나 있는가? 고작 적석총 몇 기일 뿐이다. 과연 적석총이 백제의 양식인가? 오히려 대가야나 금관가야보다도 못하고 신라에 비해서도 훨씬 떨어진다. 그 정도 영역과 문화로 어떻게 고리를 상대로 싸우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백제는 무엇이고 통합백제는 무엇인가? 근거는 있는가? 있다. 일본삼서다. 화랑세기 상장돈장이다. 그곳에서 나온 수많은 한씨관련 유물은 충분히 증거가 되고도 남는다.
화랑세기, 상장돈장? 그렇다. 바로 그것이 핵폭탄의 뇌관이다.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삼서라는 핵폭탄이 터지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박창화가 지어낸 것이라고? 웃기지 마라! 그것이 박창화가 지어냈다고 하는 소린 유아원 애들보고 우주생성의 원리라는 초끈이론을 이해한다고 하는 편과 같다. 무엇보다 박창화가 그것을 지어낼 이유가 없다. 지어낼 능력도 없다. 박창화의 다른 저작을 종이비행기로 본다면 돈장과 세기는 최첨단 우주왕복선이다. 그것이 위서라면 동양사서(삼국사기, 유사, 일본서기, 고사기, 성씨록, 사기, 한서, 삼국지, 진서, 후한서 등)는 모조리 위서가 된다. 왜? 진실을 담고 전하고 있으니까? 박창화는 그 진정한 가치를 절대 알지 못했다. 그것을 알았다면 그는 상장돈장을 더욱 정성들여 필사했을 것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을 담고 있는가? 고대의 사관은 정직했다. 한, 중, 일 어느 나라를 통틀어서 말이다. 비록 그들이 권력자의 억압으로 왜곡된 역사를 썼어도 반드시 그 증거를 남겨놓았다. 어느 시대 어느 사서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반드시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찾으면 된다. 일본서기는 어떻게 왜곡되었는가? 한마디로 기년조작이다. 물론 일부 계통조작이 가해지긴 했어도 근본적인 틀은 기년이다. 알아낼 수 있는가? 있다. 삼국사기가 있기 때문이다. 알아냈는가? 대충 그렇다. 가장 중요한 신무부터 웅략까지 일목요연하게 뽑아낼 수 있다. 여기서 공개할 수는 없다.
삼국사기는 정확한가? 아니다. 심하게 왜곡되었다. 다만 타당할 뿐이다. 그 실체를 벗겨낼 수 있는가? 있다. 일본삼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 조작의 틀은 한마디로 계통조작이다. 그 계통을 밝히는 것은 일본삼서가 없으면 안 된다. 무엇이 그런 것을 가능케 했는가? 바로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이다. 왜? 김씨들이 조작하고 날조한 역사가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본서기도 삼국사기도 다 김씨들이 썼기 때문이다. - 김씨들이 조작한 역사,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캐내기 위해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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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고대사 최대 비밀은 부여씨와 김씨의 동시 등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타당한가? 타당하다.
바로 김씨와 부여씨의 계통과 연대기를 밝히면 신라와 백제 가야의 역사가 드러나고 왜, 부여, 마한의 역사가 캐내어지며 고리 역사의 실체가 밝혀지고 북부여, 고조선의 역사가 빛을 내게 된다.
이후의 후신라와 발해의 역사 전개를 비롯한 여러 이론에서 부족하고 비밀에 쌓인 수백 수천 가지의 의문이 한꺼번에 풀어진다.
그것이 바로 일본삼서의 위력이요 그 일본삼서를 깨우는 세기와 돈장의 위력인 것이다.
산책과 안사, 탐정 등이 일본서기를 비롯한 일본삼서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내 놓고 있으나 한마디로 인식부족이다.
조작설과 분식론의 산책설, 비류백제론의 김성호, 삼한백제론의 안사, 칠지도에 근거한 왜국 건국론의 탐정, 무녕왕에서 시작된 홍원기와 홍원탁의 대화왜론 등은 허점투성이다.
왜? 그들은 일본서기 자체가 백제의 기록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무부터 응신에 이르는 일본서기 핵심의 기록을 잘못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초기백제와 부활한 부여의 실상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특히, 신무에서 응신까지가 제일 중요하다.
- 그 실상은 누가 지웠는가? 바로 신라다.
신라김씨다. 왜? 백제의 부용국이었기 때문에.
지나사서에서 거짓말 하는 것 같은가?
아니다. 그들은 정확히 적고 있다.
그러면 신라는 언제부터 백제의 부용국이 되었을까?
그렇다가 어떻게 동등해졌을까?
그들은 또한 응신부터 계체에 이르는 백제와 왜의 헤게모니 장악투쟁을 모르고 있다. 왜?
신라김씨들이 조작한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돈장에는 나와 있는가?
그렇다.
그 조작의 논리가 낱낱이 드러나 있다.
신무, 응신, 신공, 숭신이 누구인지 송두리째 드러난다.
고대사의 신대로 포장된 인물들이 누구인지 한꺼번에 드러나고 일본서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과연 어디까지가 중첩인지 무섭도록 밝혀진다.
각설하고 일본에선 어쩌면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을 분석하여 그 위력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 계통을 파악하여 두려워 발표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라도 좋다.
일본이 백제의 주류로 밝혀지는 그 순간은 모든 게 허물어진다.
가히 혁명이 된다. 천하가 뒤집어진다.
그야말로 모든 역사를 새롭게 써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만 새로 써지는 게 아니다.
모든 인문학을 허물고 다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바뀌면 인식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 가치관이 바뀐다.
가치관이 바뀌면 의지가 바뀌고, 의지가 바뀌면 다시 역사가 바뀐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역사학의 가치인 것이다.
그 가치는 바로 박창화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의 붓끝에서 시작되었다.
박창화의 <우리나라 강역고>란 책이 전에 나온 적이 있다.
나도 소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읽으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 정도 역사인식과 지리 인식을 가진 분이 세기와 돈장을 지었다고?
차라리 유아원 애들보고 시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을 풀라고 하는 것이 낫다.
<강역고>가 움막이라면 돈장과 세기는 타지마할이다.
움막이나 지을 정도인 시골농부가 타지마할을 혼자 설계해서 지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지만 세기와 돈장은 절대 위서가 아니다.
그것이 위서라면 고대 동양사서가 모두 위서가 된다.
광개토비와 문무왕비가 모조리 거짓이 된다.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 색공을 바치는 집단이라고? 코미디 하는가?
겉으로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라 그게 무엇인지.
진골은 김씨고 대원은 박씨라고? 신라가 모계라고?
2부 체제의 대표로 왕과 갈문왕이 있었다고?
그런데 어째서 왕은 이사금 마립간 등으로 불리는가?
갈문왕도 갈문이사금 갈문마립간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역사가 무슨 장난거리인가?
어째서 화랑세기에 대원신통 소개하면서 진골정통인 선혜가 대원신통을 잇나?
대원은 박씨라는 이론대로라면 선혜는 김씨이자 박씨겠네!!
그리고 남해왕이 왜 나오는가?
바로 대원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대원? 대원이 무엇이기에? 상장돈장을 보라! 대원신통의 계보가 일목요연하게 나온다. 그런데 어째서 선혜가 대원신통을 이었을까?
박씨의 시조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혁거세라고? 웃기지 마시라. 혁거세는 김씨다.
김씨의 시조다.
신라김씨의 시조다. 알지가 아니었더냐?
알지는 신라김씨의 또 다른 시조일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왜 문무왕비와 후대의 기록이 차이가 나는지 신라김씨들의 음모가 낱낱이 드러난다. 김씨들은 기분 나쁠 필요도 없다.
그대들 대부분이 진정 김씨인지도 의심스럽기 때문에...
4
‘삼국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 정신을....’
맞는가? 통일이란 무엇인가?
역사학적으로 통일이란 무엇인가?
갈라진 문화를 가진 민족이나 나라를 다시 합치는 것이 아닌가?
진시황의 지나 통일,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
베트남의 통일 등이 다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류의 역사학자란 것들과 거기에 넘어간 국민들이 짖어대는 논리가 있다.
신라가 외족을 끌어들여 반역사적인 통일을 했다고 하면 고리와 백제는 외국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웃긴다.
외국을 망하게 한 것이 통일인가?
침략이 아닌가? 점령이 아닌가?
지나에서 고리가 자기 역사라고 주장하고 그 선대인 부여와 고조선도 자연히 자기 것이니 내놓으라면 대응논리는 있는가?
스스로 외국이라 해놓고. 백제의 주류가 일본이라고 밝혀지고 일본이 백제를 다시 찾겠다고 하면 다 내주겠는가?
기가 막힐 뿐이다. 대한민국이 아닌 경상민국 또는 경북민국이 될 것인가?
삼국이 어떤 관계였는지,
부여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길래 고리와 백제로 갈라졌는지,
부여는 조선을 어떻게 대체하였는지,
부여씨와 김씨는 어떤 고리로 역사를 이어왔는지,
왜국은 어떻게 건국되었는지,
일본서기가 직시한 일본열도 왜국의 건국시조는 과연 누구인지,
과연 일본서기의 백제와 삼국사기의 백제가 동일한 지칭인지,
동명은 누구이고 주몽은 누구이며 어떤 관계였고,
온조는 누구인지 비류는 구대는 누구인지,
성한은 누구이고 혁거세는 누구인지,
그런 것들을 밝힐 생각은 않고 희한한 통일논리로 역사를 더럽히고 역사 앞에 죄를 짓고 있다.
주로 주장하는 자들이 대부분 신라주의자 영남패권주의자들이다.
수구반동집단이다.
그들은 역사를 분탕질해놓고도 다시 이 나라를 조각내고 있다.
바로 지역감정이란 논리로.
어찌 지역감정인가?
그야말로 특정지역의 지역패권주의를 교묘하게 얼버무리고 있다.
각설하고 신라는 결코 통일하지도 통일할 의지도 없었다.
그들 김씨들은 단지 자기들의 권력유지에만 급급했을 뿐이다.
역사의식 민본의식은 애초에 없었다.
우리는 단군조선이 갈라진 이래 한 번도 통일되지 못한 불행한 민족이다.
그것은 거의 김씨의 죄다.
이제 그 죄를 낱낱이 밝혀나갈 것이다.
왜? 제대로 된 역사, 올바른 역사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후대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쳤는지 가슴을 치게 되리라.
5
고리가 산적집단인가?
- 산꼭대기에 나라를 세웠다고?
오녀산성이 고리의 졸본이라고?
지하의 주몽이 웃는다.
요즘 한창 고리 드라마 열풍이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 나는 하나도 보지 않는다.
그야말로 식민사학의 나팔수 동북공정의 앞잡이들이 자기들의 논리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다.
그들의 선전장이기 때문이다.
멋대로 놀아나는 지식인 방송인 국민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관구검기공비는 그것을 증명한다.
삼국지는 분명히 기록했다.
그것은 환도를 쳐부수고 고구려왕을 몇 차례 추격하여 옥저의 끝자락에 암석을 새겨 공을 기록했다고
- 그곳은 고리의 중심이 아니었으며 변경이었을 뿐이다.
삼국지 오서 오주전(손권전)을 보라!
고구려에 대해 뭐라고 써 놨는지?
통설대로라면 바다도 없던 고리가 오나라와 배로 통교하는가?
고리는 어디에서 세워졌는가? 바로 요서다.
졸본은 서요하와 노합하가 만나는 일대이고 국내성은 그 약간 남쪽에,
다시 남쪽에 평양성(안시성)이다.
이것은 6편에서 논한다.
그러기에 모본왕 때 지나의 북부인 태원 등을 공격했던 것이 가능한 것이다.
저 멀리 압록강 중류에 쳐박혀 있던 고리라면 가능하겠는가?
고리는 새로 건국되었는가?
아니다. 해모수의 부여를 동명의 부여가 이어받고 다시 주몽이 이어받은 것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여의 계승일 뿐이다.
언제 고씨라 칭하였는가? 바로 6대 태조대왕 때부터다.
그러기에 태조란 칭호를 얻은 것이다.
왜 고씨라 성을 바꾸었는가?
바로 부여가 부활했기 때문이다.
부여를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세우기 위해서다.
부여가 부활했다고? 그렇다. 부여는 분명히 대무신왕 때 멸망당했다.
그런 부여가 부활한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어떤 계기로?
각설하고 부여의 부활은 역사를 바꾸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 한민족의 불행의 서막이었다.
아니 행운이 될 수도 있었다.
김씨만 아니었다면 광개토대왕만 아니었다면(?) 이것은 9편에서 논한다.
첨언하자면 태조란 호칭은 동양사에서 바로 고리의 태조대왕이 처음이다. 이래도 시호법이 오직 지나에서 시작되었는가? 우리가 바로 황제의 나라 천자의 나라가 아니던가? 어찌 지나사에 태조대왕보다 앞선 태조란 칭호가 있었던가?
6
옥저는 어디에 있었는가? 요서에 있었다.
요동만 바다를 끼고 있었다.
그래서 북옥저 정벌기사가 주몽왕 때 나오고 남옥저의 구파해 망명기사가 온조왕 때 나온 것이다.
북옥저가 어디고 남옥저가 어디인가? 그리고 동옥저는 무엇인가?
삼국지는 거기에 대해 답을 주고 있다.
후대인들이 삼국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낙랑을 대동강에 비정하느라 온갖 억측과 곡해를 하고 있을 뿐이다.
허접들! 바로 (본)옥저와 동옥저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본옥저는 어떻게 되었는가?
바로 고리의 소유가 된 것이다.
그것이 잠깐 위나라의 세력권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진나라로 이어졌다.
그 잠깐이 역사를 갈랐다.
바로 새로운 백제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만큼 관구검의 고리 침공은 커다란 역사의 회오리를 몰고 왔다.
애초에 그곳은 한나라 현도군과 임둔, 진번군이 설치되었다.
곧바로 임둔 진번이 폐지되고 현도군은 쫓겨 갔다.
쫓겨 간 곳은 난하와 대릉하 노합하가 삼각으로 만나는 지점이었다.
군이라기보다는 명목상의 군에 불과했다.
바로 그 위에 부여가 있었다.
그러기에 부여의 낙랑침공이 가능했던 것이다.
바로 후한서의 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낙랑군을 대동강에 비정해 놓고 후한서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주류라고 뻐기는 자들이 과연 역사학자냐?
<후한서지리지>에 있다.
낙양에서 동북쪽 한단까지 1100리라고.
지도 놓고 비율로 따져봐라! 죽었다 깨어나도 같은 동북방향 5000리인 낙랑군은 오늘날 요하를 넘어오지 못한다.
공손씨가 요동에서 황해도까지 다스렸다고?
무슨 오지랖 떠시나!!
그런 공손씨가 아무리 사마의가 뛰어나다지만 일거에 요동 양평성 무너졌다고 황해도까지 한꺼번에 무너지나?
그대들 주류 이론대로라면 핵심지역이 그 정도 밖에 안 되었던 고리도 수나라 대군과 당나라대군을 수없이 물리쳤다.
그 정도 세력이라면 촉나라와 버금가는 세력이다.
공손씨는 겨우 천진일대에서 대릉하에 이르는 정도였다.
공손씨가 동이를 통제했다고? 맞는 말이다.
통제의 의미를 모르는 식민사관의 나팔수들이 있을 뿐이다.
연안항로를 이용하던 그 시절에 만주와 한반도, 일본열도의 모든 세력은 반드시 그 지역을 거쳐야 중원으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 훗날 대방군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러기에 통제한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것을 공손씨가 마치 동이를 지배한 것처럼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부여가 현도군 또는 요동군에 속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바로 현도나 요동군을 통해 지나 조정과 접촉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을 속국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는커녕 책도 읽을 줄 모른다.
다시 평양성이 고리의 수도가 되었다.
바로 한나라의 안평현이다.
그래서 옮겨간 현도군에 서안평현이 생긴 것이다.
안평은 바로 <괄지지>에 말한 왕검성이다.
원래 예맥의 땅이다. - 역사에는 한결같이 말갈로 나온다. -
그것은 훗날 안시성이 된다.
바로 고리가 수도를 요동 장안성으로 옮기고 난 다음부터다
장안성이 평양성으로 불리자 기존 평양이 안시성이 된 것이다.
그 남쪽의 옥저 치소 동이현은 비사성이 된다.
바로 요나라의 해주다.
발해의 남경남해부다.
남해부가 북청이라고? 요사가 엉터리라고? 착각하지 마라.
요사는 약간의 착오가 있을 뿐이다.
왜 착오가 생겼을까? 바로 김씨 때문이다.
그래서 안시성을 치던 당나라 병사들이 비사성의 군대를 부른다고 표현한 것이다.
비사성이 요동반도 끝이라고?
<삼국지>와 <삼국사기>가 다르다고? 그렇지 않다.
삼국지와 삼국사기는 똑같다. 똑같은 말을 다르게 썼을 뿐이다.
삼국지가 부분적으로 자세하고 삼국사기가 체계가 있을 뿐이다.
주류학계가 그것을 알 리가 없다.
머리를 열지 않고 가슴을 묶어두기 때문이다
7
언젠가 무명의 왜=일본열도를 한참 나무란 적이 있다.
그가 늘 하는 말로 왜는 해상능력이 있었고 군사력이 뛰어났단다.
무슨 근거로? 삼국지를 보라!
큐슈만 해도 수많은 소국들로 갈라진 섬나라가 무슨 수로 숭신천황대에 가야와 신라의 싸움에 간섭하고(성씨록 참조) 신라왕을 두 번씩이나 죽이고 바꾸며 한결같이 삼국사기에 왜로 쓰여졌는가?(왜 여왕 비미호만 예외다.)
- 어째서 예외였는지 이 글에서 밝히지는 않겠다. -
현대의 고고학을 비롯한 여러 연구도 결코 야마대 정권이 6~7c 전에는 열도를 통일하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다.
무명이나 일부의 말마따나 천 번을 양보해서 삼국지의 비미호의 왜가 혼슈섬 야마대 왜라고 쳐도 저희들 열도도 제대로 통일 못한 자들이 무슨 수로 몇 천리 바다 건너 신라를 대규모로 친단 말인가? 웃기지 마라.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지나사도 세계사 어디를 봐도 내부통일이 먼저고 밖으로 뻗어가는 것이다.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비스마르크의 독일, 징기스칸의 몽골, 알렉산더의 그리스 등 모두 마찬가지다.
더구나 섬에서 자기 주변도 통일도 못한 주제에 무슨 힘이 남아돌고 무슨 이득이 얼마나 있었기에 밖으로 싸돈단 말인가?
결코 왜는 열도가 아니다.
일본서기를 쓴 세력은 바로 부여요 백제인 것이다.
속시원히 밝힐 수 있는가? 있다.
삼국사기가 있고 삼국지가 있고 돈장과 세기가 있다.
거리낄 것이 없다. 아니 일본서기 스스로 백제요 부여임을 말하고 있다.
- 나는 부여요, 백제이니라! 후대의 인간들아, 들어라! -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라. 내가 거짓말하고 있는지.
<문제에 답이 있다.>는 격언이 있다. 마찬가지다.
삼국사기의 비밀은 바로 삼국사기안에 답이 있고 일본서기의 비밀은 바로 일본서기 안에 답이 있다.
고대의 사관은 문제를 내고 답을 모조리 제시해 놓았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후인들이 바보일 뿐이다.
마찬가지다.
한강 유역에 있던(주류학설대로라면) 별로 크지도 않던 백제가 무슨 주변도 통일하지 못하고 산동으로 진출하고 중국 동해안으로 북경지방으로 진출한다는 이론을 펼치는가?
그것은 적어도 백제가 한반도 전체와 남만주 일대를 영유하고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열본열도 경영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이론은 허점투성이다.
고고학으로 이미 호남지방 정도는 6c까지도 백제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기껏 한강유역 뿐이 백제가 무슨 역량이 있어서 백제가 고리와 맞짱을 뜨고(주류이론) 열도를 경영하고 해외로 나간단 말인가?(재야 및 비주류 이론대로라면)
- 그러기에 주류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백제의 실체를 끝없이 부정하고 진보역사이론은 백제를 치켜세우면서도 주류학설 따라 백제가 한강유역이라고 한다. - 바보들!
역으로 요동과 한반도를 전부 백제의 영향권이라고 한다면 위 얘기는 가능한 것이 된다.
즉 백제는 열도를 경영하고 해상능력을 바탕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된다.
충남과 호남으로 갇힌 백제가 고리와 계속 충돌하고 신라를 그토록 밀어붙일 수 있는가?
더구나 한강유역은 신라가 차지하여 고리와는 국경이 단절되었는데도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
주류의 이론대로 하면 그야말로 모순이 아닌가? 이 무슨 도깨비장난인가?
그 작은 땅에 76만호 5도독부가 들어갈 땅이 어디 있단 말인가?
- 마한과 백제의 수도는 평양이다. 100% 확신해도 좋다. -
빼도 박도 못할 증거는 수없이 널려있다. 여기서 일일이 밝히지는 않겠다.
8
초고왕, 귀수왕, 진사왕, 아화왕, 직지왕, 곤지, 무녕왕, 동성왕, 성명왕, 의자왕 모든 백제 왕들의 시호를 정확히 적었다.
그런데, 도모왕=동명왕? 도모가 동명이라고? 웃긴다.
일본서기를 쓴 세력이 도모가 동명임을 몰라서 도모라고 적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정확히 도모가 맞는 것이다.
도모는 누군가? 바로 부여왕이다.
어떤 부여왕인가? 바로 대무신왕에게 망하고 연나부에 안치되었다가 독립한 새로운 부여의 창시자다.
그가 바로 천조대신의 칭호를 얻은 것이다. 동명은 절대로 100% 도모가 아니다.
<속일본기>에 도모왕은 백제의 시조이자 원조로 나온다.
그럼 천조대신은 백제의 시조이자 일본서기 세력의 시조와 원조가 된다.
즉 백제=일본서기의 세력이다.
이것으로 고대사는 한마디로 게임 끝이다.
부여 도모왕이 천조대신인데 무슨 얘기가 필요한가?
그야말로 고대사는 게임 끝인 것이다.
도모의 계열을 밝힐 수 있는가? 있다.
해부루-금와-대소로 이어지는 후예다.
갈사왕 도두와도 관련이 된다.
어제 즉위해서 언제 돌아갔는가? 알 수 있는가? 알 수 있다.
과연 지상에 강림한 천조대신의 손자는 누구인가? 알 수 있다.
그럼 고사기의 신들은 누구인가? 간단하다. 모두 한국 고대사의 제왕들이다.
지나사서에 부여시조는 동명으로 되어있다.
어찌된 것인가? 맞다. 바로 북부여의 시조일 뿐이다.
그러나 틀리기도 하다.
해부루의 동부여를 그들이 알 리 없었다.
그들이 접한 것은 원래 북부여와 새로 부활한 동부여이기 때문이다.
원부여는 고리가 되었고 새로 부활한 동부여가 고리의 서북쪽에서 이어지다가 일파가 몰려가 백제를 이룬 것이다.
그들이 그 과정을 기록하지 못한 것은 외국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하필 그 때가 중원이 대혼란기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때로 부여는 백제로 불리기도 한다. 언제?
신찬성씨록에 도모의 10대손으로 귀수왕이 나온다.
물론 이는 백제 귀수왕이 아닌 근귀수왕이다.
왜 그런지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겠다.
바로 신찬성씨록이 거의 정확한 기록이다.
내가 하필 일본삼서중에서도 성씨록을 제일로 치는 이유다.
<삼국지 부여전>
<삼국지 관구검전>
<후한서 부여전>
<진서 부여전>
<성씨록>
<삼국사기> <일본서기> 다 동원하여 근귀수왕이 10대손임을 증명해보라!
여러분이 그것을 찾아내야지만 정말로 역사를 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천조대신이 근초고왕이라고? 아서라! 지하에 계신 도모왕이 놀라신다.
9
그러다가 부여는 모용씨의 침입을 받는다.
때마침 관구검 전쟁으로 위나라 영향권에 들어있던(당시는 위를 대체하여 사마씨의 진이 들어섰다.) 옥저로 대대적으로 피난 간다.
그것이 역사를 갈랐다.
그 세력의 일부는 다시 부여로 돌아왔지만 대부분은 백제를 접수하고 왜를 점령하고 변진한을 점령하며 신라를 먹어치우고 최종적으로는 마한을 점령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열도(규슈와 혼슈 서부)마저 정복해 버린다.
그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마치 근세사에서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고 순식간에 아시아태평양일대를 먹어치운 것과 비슷하다.
한반도와 열도 남만주가 백제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 것이다.
그것은 불완전한 통일이기도 했다.
그런 백제는 요서의 부여와 합작으로 원수지간인 고리와 숙명의 한 판 대결을 펼친다. 바야흐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리와 백제가 충돌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어째서 백제가 북중국을 제치고 남중국의 동진과 먼저 교류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난다.
bc 18년에 건국된 백제가 아무런 충돌 없이 고리와 잘 지내다가 근초고왕 때 마한을 정벌하고 북진하다가 고리와 충돌했다고? 무슨 블랙코미디인가?
350여년을 평화롭게 지내던 사이가 어느 날 갑자기 철천지원수가 되나?
주류 이론대로라면 남쪽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백제가 무슨 수로 고리와 충돌하나?
현대 고고학으로 호남지방은 백제의 영향권도 아니었는데 겨우 한강유역만한 조그만 땅덩이를 가지고 고리와 맞짱 뜨나?
고리와 싸우면서 한편으로 남쪽에서 마한을 정벌하나?(고리 고국원왕과 최초로 충돌한 것은 369년, 그런데 주류들이 일본서기에서 따온 마한 정벌론은 369년이다.)
무슨 백제의 힘이 그리 남아도나?
근초고왕이 친 평양은 바로 요서의 평양이었다. - 100% 확신해도 좋다. -
바로 훗날의 안시성이요 조선의 원래 왕검성이다.
백제는 언제나 부여의 후신임을 자처했다.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고리에서 갈라져 나왔다면 고리와 철천지원수가 되어 싸웠을 것 같은가?
바로 온조왕으로 포장된(?) 세력은 마한이었다.
그대로 한씨 마한만 해씨 마한으로 대체했지 마한이란 이름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백제라고 한 것은 신라김씨다.
왜? 훗날 그것이 백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신라본기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왜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그러기에 고리 태조왕기에 마한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해씨의 마한인 것이다.
김부식이 눈이 둥그레졌다.
마한이 망했는데 나왔다고.
하지만 <삼국지>를 보라.
한씨를 대체한 그들도 계속 마한이었다.
바로 신라김씨의 농간을 김부식 그가 알 리 없었다.
그러기에 마한과 고구려는 몇 백 년을 사이좋게 지냈던 것이다.
각설하고 해씨는 훗날 백제의 8대성이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부여씨에게 정복당했지만 그들도 역시 부여의 핏줄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동명의 제사도 계속된다.
바로 부여씨의 포용정책이다.
마한이 소국으로 이루어진 부족국가였다고?
<삼국지>를 봐라! 분명히 진왕이 다 통제한다고 되어있지 않은가?
주나라가 분봉한 제, 진, 노, 허, 정 등의 나라가 다 독립국이었나?
간단히 말하면 행정구역 아닌가?
일본서기에 나오는 출운국, 축자국, 근강국, 대화국 등이 다 독립국이었나?
바로 마한의 행정구역이 국인 것이다.
오늘날, 도, 군 등과 같은 것이다.
왜 문헌을 저희들 편의대로 해석하는가?
어떻게든 한국고대사를 우매하게 만들기 위한 작태다.
상식적으로 따져봐라. 바로 옆에 중원은 그리 강대한데 바로 옆의 모든 기후조건이나 문화조건도 비슷한 동이국가들은 언제나 비실비실한가?
하지만 백제는 겉으론 강했지만 안으론 허약했다.
급작스럽게 정복된 지역들은 아직 절대적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국력이 열도를 비롯한 점령지역을 정비하느라 소비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근귀수왕의 급서와 진사왕의 쿠데타가 일어난다.
그리고 백제가 둘로 찢어진다.
진사왕은 누구인가? 바로 김씨다.
이 틈을 타고 고리는 극적으로 한숨을 돌리고 위대한 대왕 광개토의 등장을 맞는다.
순식간에 힘은 역전된다. 백제는 엄청난 영토를 잃는다.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이룬 자가 누구인가? 바로 비류왕이다.
정확히는 비류왕의 어머니와 함께 하였다.
바로 일본서기에서 신공으로 등재된 여인이다.
즉 신공은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비류왕의 어미요, 하나는 응신천황의 어미다.
그녀와 비류왕은 한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정복자였다.
광개토왕은 거기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
그녀가 정말로 백제본기에 나오는 소서노일 가망성이 많다.
- 아직 거기까지에는 단언하지 못한다. -
비류왕은 누구인가? 바로 일본무존=야마토다케루다.
그러기에 천황으로 등재되지 못한 것이다. 왜? 왜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왜왕은 누구였는가? 계왕 즉 경행천황이다.
훗날 잠깐 백제왕이 된다. 계왕이다.
어째서 경행기가 일본무존으로 가득한지 아시는가?
바로 백제왕이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무존이란 칭호를 올리는가?
바로 정복왕이기 때문이다. 계왕은 왜왕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째서 백제왕이 되었는가?
거기에 바로 근초고왕과 근귀수왕의 시호에 대한 비밀이 있다.
일본서기 신공기에 그 답이 나온다.
삼국사기에 그 답이 나온다.
다음 왜왕은 누구인가 성무다. 성무는 누구인가? 바로 무내숙녜다.
그럼 응신은? 바로 침류왕이다.
그가 침류왕이란 것은 일본서기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바로 기년조작의 위력이다.
기년조작의 방법론만 밝히면 침류임을 감춘 것이 침류라는 위력으로 다시 태어난다. 진사왕의 쿠데타로 밀려난 그가 한반도 남부에서 세력을 키우고 열도 서부에서 힘을 키워 동부 근기일대 지역을 점령한다.
그리고 백제로 건너가 진사를 죽이고 아화를 세운다.
이제 대륙과 열도의 세력이 역전된 것이다.
전지의 인질기사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마치 백제가 왜의 속국처럼 보인다.
이것을 무명은 마치 백제가 왜의 속국이라고 단정한다.
일면식 접촉도 없던 백제와 왜가 어느 날 갑자기 주종관계가 되나? 왜?
바로 신라의 농간과 조작을 모르기 때문이다.
백제를 버린 왜의 김씨세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바로 신라김씨의 죄악 때문이다.
10
위에서 얘기한 신공 49년 - 주류들이 369년이라고 엉뚱하게 둘러대는 - 에 대해 살펴보자.
그것은 결코 369년이 아니다.
북쪽에서 고리와 싸우면서 한편으로 남쪽에서 친히 마한정벌(주류들의 코미디 이론이다. 본문엔 분명히 신라정벌이다.)을 하는가? 정답만 제시한다. 347년이다.
눈을 크게 뜨고 백제본기를 보라 그 해가 언제인지? 근초고왕 2년이다.
바로 일본서기식으로 따지면 근초고왕 원년이다.
어째서 근초고왕기의 초반부가 공백인지 짐작 가는가?
바로 신라의 의도적인 삭제다.
거꾸로 신공원년을 계산해보라. 299년이다. 그 전해는 298년이다.
신라본기를 눈을 크게 뜨고 보라!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담이지만 신라본기는 지금까지 내 연구로는 백제본기나 일본서기와 정확히 1년 차이가 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차이 나는지 모르지만 각종 자료를 대비하면 신라본기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297년 유례이사금조에 이서고국이 신라를 침범한다.
그리고 무슨 이상한 미추왕의 댓잎군사 등이 나타난다.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인가?
물론 위에서 말했듯이 신공기는 중첩이다.
바로 백제를 세운 비류왕의 어머니(소서노?)와 일본의 전신인 야마대왕조를 세운 침류왕 응신의 어머니(아이부인)를 기리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신공이란 칭호를 올린 것이다. 결코 아무렇게나 올린 칭호가 아니다.
기년에서 주(主)가 비류왕모이고 부(副)가 아이부인이다.
기사에선 반대다. 따라서 이 부분은 기년과 기사가 중첩되어 있다.
어째서? 일본서기 기년의 기준이 바로 응신천황이기 때문이다.
바로 일본의 실질적인 건국자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해둔다.
신공 49년 전에도 근초고왕이 나오는데요?
신공 55년에 근초고왕이 붕어했으니 기년이 맞지 않는데요?
내가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단언하는 줄 아시는가?
그렇게 간단하다면 일본서기의 체면이 깎이지요!!
신공기와 응신기는 바로 일본서기의 핵심중의 핵심이다.
그 비밀의 답만 공개하겠다. 그가 침류왕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다.
41-19=22, 1+19+2=22, 390-(69+22)=298, 298+69+41-5=403, 298+69+22=389이다.
389가 무엇인가? 바로 왜국 건국 전년이다.
백제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건너간 응신이 정식으로 왜 건국을 선포한 것은 390년이다.
말했듯이 응신이 침류왕임은 이외에도 많은 증거가 수두룩하다.
바로 일본서기의 기년의 중심은 응신이기 때문이다.
바로 일본서기의 작자들은 응신(침류)을 일본 왜국의 건국시조로 여겼기 때문이다.
과연 403은 무엇인가? 22는 무엇이며 19는 무엇이고 또 5는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스스로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열고 생각하고 찾아보시라!
바로 고대의 사관은 정직하게 역사를 쓴 것이다.
비록 권력에 눌려 감추었지만 그들은 후세에 분명히 진실을 알리려 애를 썼다.
억지 논리로 가득 찬 주류학계,
부체제나 들먹거리며 역사의 발전단계를 거꾸로 돌리는 한심한 이들,
삼국초기 기년조정이나 한다고 하는 작자들,
임나일본부는 두둔하면서 백제는 똥으로 보는 비아냥꾼들,
- 이 모든 식민사학의 나팔수 동북공정의 앞잡이 - 들에게는 결코 보이지도 않고 생각해도 모를 것이다.
왜? 가슴을 열지 않고 머리를 비우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신공황후의 신라정벌은 사실을 얘기하고 있다.
엄청난 고대사의 비밀을 여러분은 지금 접하고 있다.
그러기에 신라가 백제의 부용국이 된 것이다.
지나사에 잠깐 스치는 그 기사가 왜 진실인지 낱낱이 드러난다.
왜 신라김씨가 철저히 백제를 말살하려 했는지 그 비밀이 송두리째 드러난다.
응신원년이 백제본기와 2갑자 차이나기 때문에 2갑자 인상한다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일본서기를 쓰는 저자들이 착오해서 그랬다고? 아주 웃기는 말이다.
그들이 몰라서 인덕 87년 등의 황당한 일을 했겠나? 바로 120년의 수치는 다음과 같다. 27+57+5+28+2+1=120이다. 무엇을 뜻하는지는 일본서기를 보시라!
각설하고 대륙의 군사력을 가지고 열도로 밀려간 응신에게 무내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왜왕을 양보한다.
그러다가 응신 사후에 무내의 아들과 응신의 후계자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그 결과 무내의 아들인 인덕이 즉위한다.
무내가 누구기에? 바로 목(木)씨다.
백제 8대성의 하나인 것이다.
바로 백제의 원래 왕성이었던 것이다.
그 인덕의 후손이 바로 목만치다.
그가 소아씨로 바꾼다.
또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목라근자의 아들이 목만치라면 여러모로 맞지 않는데요?
대답해 준다. 성씨록을 보시오!
목씨는 원래 왜의 왕족이었다.
신라본기의 호공은 바로 목씨다.
그가 목씨이기 때문에 신라 박(朴)씨가 된 것이다.
- 이제 박씨의 뿌리도 그 실체가 밝혀진다. -
성씨록에서 신무천황의 혈연이 신라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 것이 정확한 것이다.
즉 신라의 시조는 혁거세가 아닌 호공인 것이다.
그가 바로 박씨의 시조인 것이다.
박혁거세가 박씨의 시조라는 박씨들의 족보는 최상급 코미디다.
신라 김씨가 쓴 각본에 놀아난 것이다.
오늘날 박씨의 많은 부분은 바로 왜 목씨의 후손이다.
그런데도 왜놈이라고 경멸할 것인가?
여러분 조상에게 침 뱉고 형제에게 욕하는 꼴이다.
11
실성왕기에 왕은 알지의 후예라고 한다.
아니, 현재 이론대로라면 김씨치고 알지의 후예가 아닌 사람이 누가 있던가?
왜 굳이 알지의 후예라고 했는가?
바로 실성은 성한왕 계열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기에? 바로 알지의 계열로 가야김씨이거나 혹은 박씨다.
가야김씨는 수로가 아니던가?
시조가 수로라고? 웃긴다.
이것은 18편에서 논한다.
알지가 박씨라고? 그렇다. 현재로는 그럴 확률이 많다.
성한왕이 알지라고? 세한이라고? 웃기지 마라! 성한은 성한일 뿐이다.
이것은 16편에서 논한다.
바로 역사를 개작한 주역이 누구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바로 김씨 중에서도 가야김씨다.
가야김씨가 주역이고(김유신 일당) 신라김씨가 조연이다.(김춘추 일당)
탈해는 누구인가? 왕이던가? 아니다. 쫓겨났을 뿐이다.
그러기에 후세에 왕으로 등재된 것이다.
왜? 가야의 출자를 속이기 위하여(?) 신라를 감추기 위해, 말 그 대로 탈(脫) 해(解) 즉 해씨에게서 벗어난 것이다.
해씨가 누구였던가?
부여의 왕족이 아니었던가?
각설하고 탈해는 <왜국 동북천리> 용성국에서 왔다고 했다.
동북 천리라고? 그렇다. 그것이 탈해설화의 핵심이다.
그것 하나로도 고대사는 끝장이 난다.
왜 문무왕 때 꿈에 나타났는가? 바로 역사 개작의 시기를 알려준다.
12
거칠부는 대승하여 10개 군을 공취하였다.’
그런데 조령에서부터 강원도 한강유역 임진강에서 멀리 개마고원 일대까지 점령했다. 어느 날 갑자기 신라가 커진 것이다.
그런데 고리와의 충돌은 별로 없다. 몇 번 툭탁거릴 뿐이다.
더구나 전략상으로 고리 수도인 평양을 훨씬 뛰어넘어 북쪽으로 100km 이상 전진한 신라는 언제든지 배후에서 고리 수도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고리와 신라의 대전쟁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그런 기미가 전혀 없다.
오히려 한강유역을 뺏겼다지만 왕이 죽은 백제와는 죽어라 싸운다.
이 무슨 코미디 같은 얘긴가?
한마디로 고리 수도가 평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상식이다.
역사는 결코 상식을 뛰어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고리 수도가 대동강 평양이라고 버젓이 거짓을 가르친다.
고고학을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는 평양이 고리의 수도가 아니라는 명백한 고고학적 증거다.
지나는 길에 한마디 한다면 위덕왕 원년에 고리가 대병을 동원하여 웅천을 친 기록이 있다.
이를 두고 이도학은 중부권에 고구려의 유적을 들먹이면서 그의 저서인 <한국고대사, 그 의문과 진실>에서 고구려의 병력이 백제 수도(웅천성)를 공격했다고 논한 적이 있다.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주류 이론대로라면 신라가 이미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멀리 개마고원까지 진격했던 때다.
그래서 내세운 이론이 고구려군이 춘천- 음성의 루트를 따라 백제를 공격했다고 한다. 이 무슨 블랙코미디인가?
군사전문가에게 물어보기 전에 상식을 가진 사람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가능한 얘긴가.
그러면 먼저 신라를 돌파해야하는데 고구려가 무슨 대단한 이익이 있다고, 혹은 백제와 무슨 철천지원수라고 그리하나?
그리고 북쪽 국경 놔두고 신라와 고리가 청주일대(낭비성)에서 싸우는가? 절대 아니다.
바로 주류들의 생각에 대고구려의 환상이 늘 어른거린다는 것이다.
이도학은 내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주류학자다.
바로 이도학의 잘못이 아니라 한국 주류사학계의 잘못된 현실이다.
그럼 웅천이 어디냐? 바로 또 다른 백제다.
즉 당시 충청 호남 외에 또 다른 백제다.
그러기에 수나라 당나라의 고리 침공 때 백제와 고리가 대립한 기록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백제 5도독부가 나온 것이다.
광개토왕의 58성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전에 논했지만 식민사학은 이 58성을 몽땅 임진강에서 한강 사이에 몰아넣었다.
거기에 무슨 58성이 들어갈 자리가 있던가?
아니, 한강유역을 잃은 상태에서 백제의 수도 한성은 풍납토성에서 잘만 버티는구나! 그걸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 쯧쯧!
신라의 10군은 조령에서 개마고원까지 뻗어가면서 광개토의 58성은 코딱지만한 땅이라고 한다.
그때는 삼국이 본격적으로 전쟁하던 시기도 아니어서 성도 별로 없었다.
통상적으로 성은 군이나 현을 지칭한다.
그런데도 58성(58군현)은 그리 작고 10성은 그리 크더냐?
그 정도 차지했다고 광개토의 칭호를 얻나? 광개토란 호칭이 부끄럽다!
주류학계와 식민사학의 주장으론 광개토는커녕 코딱지토도 못된다.
그러면서 위대한 광개토왕이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한다.
저희들 이론으로 깔아뭉개고도.
그럼 58성은 얼마인가?
백제가 망할 때 200성이라고 했다.
무려 1/3이다.
더구나 백제는 5도독부다.
고리가 안동도호부 하나 신라가 계림도독부 하나다.
왜 그런지는 이미 설명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날 남한 땅 만큼의 넓이다.
백제는 그 많은 땅을 잃은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그런 신라가 대동강~원산만의 땅으로 통일했다고?
웃겨도 아주 웃긴다.
자기 영역보다 작은 구역으로 통일하는 것도 있나?
도대체 패강이 어딘지도 모르는 작자들이다.
역사상 최고의 쪼다는 누구인가?
고리 장수왕이다.
살기만 오래 살았지 뭐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게 없다.
그는 당연히 신라를 없애버리고 백제를 삼켜야 했다.
당시 고리의 능력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내부 정비와 권력강화에만 몰두했다.
바로 고리 멸망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장수왕이었다.
통일의 초석을 닦은 비류왕과 근초고왕의 백제가 스러지고 다시 주도권이 고리로 왔을 때 일거에 밀어붙여야 했다.
그랬으면 훗날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비록 일부는 열도에서 독립했을망정 ...
13
언젠가 어떤 자가 무예도보통지 들먹이면서 잘못에 한마디 사과도 없이 무슨 실존인물에 관한 각종설화 들먹이면서 위 얘기를 설화라 우긴 적이 있다.
설화인가? 아니다.
이첨이 자기가 본 것을 적고 그것이 관창일 것이라고 논한 것이다.
실존인물이 본 사실이 설화인가?
하지만 이첨도 몰랐다. 아니 알 리가 없었다.
김씨들의 농간을.
죽은 백제왕은 바로 분서왕이다. 백제의 분서왕이 아니다. 마한의 분서왕이다.
어째서 백제왕이라고 했는가?
바로 마한을 백제로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마한이 훗날 백제의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백제는 어디로 갔는가? 바로 열도로 갔다. 왜왕이 되어서.
그렇다면 백제본기는? 그렇다 마한본기+백제본기다.
분서왕은 낙랑태수에게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정확한 표현이다.(마한의 입장에서) 그러나 감춘 표현이다.(신라의 입장에서)
왜 근초고왕이 남조의 정권으로부터 영낙랑태수를 제수 받고 후대의 신라왕들이 낙랑공 혹은 낙랑왕을 제수 받았는지 식민사학의 나팔수와 동북공정의 앞잡이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대동강유역에서 낙랑의 유물이 왜 많이 나오는지 죽어도 모를 것이다.
백제가 낙랑군과 싸웠다고? 웃기지 마시라!
지나사 어디에 낙랑군이 백제와 충돌했다고 나와 있더냐?
백제왕을 죽인 큰 사건이 낙랑군과 관계되었다면 과연 지나사에 누락되었을 것 같은가? 백제본기의 낙랑은 거의 모두 신라다.
식민사학의 나팔수 동북공정의 앞잡이들은 이것을 천 년 만 년 지나도 알 길이 없다.
하늘이 과연 아직도 이 민족 이 역사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기사가 동국여지승람에 남아 있는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다.
역사는 다시 한 번 뒤틀어진다.
그 주동자가 누군가? 바로 비류왕이다. 김씨는 하수인일 뿐이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신공 5년은 303년이자 389년이기도 하다.
신라의 인질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을 일본서기는 보이고 있다.
303년에 인질탈출이란 치욕을 당한 백제가 가만있었겠는가?
신라를 닦달했을 것이다.
그런 신라는 살아남기 위해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거기서 선택된 것이 황창랑의 마한왕 암살특명이다.
그리고 304년에 그 일이 벌어진다.
각설하고 이 소년의 암살행동은 신라김씨에게 커다란 행운이 된다.
그것은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던 신라김씨가 부활하는 계기가 된다.
당연히 신라김씨들은 그 소년을 음악으로 기려서 추앙한 것이다.
고대에 음악은 아무나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예악(禮樂)이라고 해서 그것은 특별한 계층에만 허용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고려를 지나 조선초까지 전해왔던 것이다.
분서왕의 죽음으로 마한왕조는 끝이 난다.
이제 새로운 백제가 열린 것이다.
근초고왕이 남쪽을 정벌했으니 마한을 정벌했다고? 무슨 코미디하냐?
일본서기 어디에 마한 정벌이 나오느냐?
신라를 정벌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왜 역사를 너희들 멋대로 장난치느냐?
통합백제의 시조는 바로 비류왕인 것이다.
이는 어쩌면 비류설화의 원형일 수 있다.
오늘날 한반도 남부지역 곳곳에서 발견되는 북방계 유물은 바로 백제 정벌의 흔적인 것이다.
그러기에 가야지방을 비롯한 한반도 중남부의 유물이 일본열도보다 빠른 것이다.
그것을 마치 가야가 일본을 세웠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고고학의 무서운 허점이다.
무슨 허점? 문헌을 우선하지 않으면 잘못 이해될 수도 있는 허점이다.
14
백제가 가장 화려했던 비류왕부터 근구수왕까지 아이러니하게 백제사는 공백이다.
특히 비류왕 중간부터 근초고왕 중반까지는 거의 비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신라의 조작 때문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실체를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삭제한 것이다. 모조리 잘라낸 것이다.
아울러 같은 시기 고리의 기록도 덩달아 모조리 잘려나갔다.
왜? 백제와 고리에 신라김씨를 두고 무슨 일이 있었기에?
파사가 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가?
바로 백제가 세운 신라왕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파사는 신라의 시조가 된다.
그럼 호공은 무엇이고 성한이 시조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라본기의 시조요, 신라김씨의 시조일 뿐이다.
신라라는 이름으로서의 나라의 시조는 파사왕이다.
어제 세웠고 누가 세웠는가?
백제 비류왕의 어머니(소서노?)가 세우고 300년경에 세웠다.
그러기에 인질이 필요했던 것이다.
실성이 인질을 보냈다고? 조작이다.
아니, 고대의 사관이 조작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어째서? 미사흔은 인질이었지만 실성이 보낸 인질은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내물이 응신천황인 침류왕에게 보낸 인질이다.
그런 비리비리하던 신라를 키운 것이 누구던가? 고리다.
광개토왕이 백제와 왜의 사이를 비집고 그들에게서 빼앗은 한반도의 영토를 거의 신라에게 주었다.
공짜로 주었는가? 아니다. 왜?
그 대답은 실성과 복호가 쥐고 있다. 제상이 쥐고 있다.
실성이 인질이라고? 복호가 인질이라고? 인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질이 아니다. 복잡한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가? 바로 중원고리비에 그 답이 있다.
특히 실성은 절대 인질이 아니었다.
실성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는 고리와 신라 사이에 어떤 존재였는가?
눌지왕기에 그 답이 있다.
건흥 4년이 언제던가? 광개토비에 답이 있다.
건흥 4년은 눌지왕대를 벗어날 수가 없다.
바로 장수왕의 즉위 연호다. 중원고리비의 건립연호다.
왜 고리가 신라를 키웠는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지 않는가!!
프리미엄이 있었다.
무슨 프리미엄? 바로 신라의 프리미엄이다.
그것이 왜 고리가 신라를 살려주었는지 어째서 신라, 백제, 왜가 그렇게 관련되는지 싸잡아 드러난다.
그리고 눌지왕대에 신라 국경은 임진강에서 원산만이었다.
이때 신라는 이미 거기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신라본기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현대 고고학으로도 증명된다.
다만 엉뚱하게 고고학을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다 고리 강성대국주의 때문이다.
왜? 고리가 위대했다고 해야 논문장사가 되니까! 이게 주류학계의 썩은 현실이다.
그 점은 소위 재야사학계도 마찬가지다.
오직 고리를 위해서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
그런 신라가 조령 이남에 진흥왕 이전까지 묶여 있다가 거칠부의 10군 공취로 개마고원까지 치고 올라가나?
한심한 사람들! 남쪽의 적석고분은 모조리 고리 것이었다고?
그런 신라가 갑자기 친백제를 표방한다.
왜? 윤공천황 때문이다. 윤공이 누구기에?
15
역사는 다시 한 번 요동친다.
박제상 아니, 김제상이 일본천황이었다니!
삼국사기와 유사에 신라의 충신으로 왜국에서 순절한 박제상이 왜왕이었다니!
일본서기를 보면 윤공은 굉장히 친신라적이다.
의사가 신라에서 오고 승하하자 신라사신이 대대적으로 다녀간다.
그리고 통곡한다.
</td></tr></tbody></table>
15 역사는 다시 한 번 요동친다.
박제상 아니, 김제상이 일본천황이었다니!
삼국사기와 유사에 신라의 충신으로 왜국에서 순절한 박제상이 왜왕이었다니!
일본서기를 보면 윤공은 굉장히 친신라적이다.
의사가 신라에서 오고 승하하자 신라사신이 대대적으로 다녀간다.
그리고 통곡한다.
나는 화랑세기를 보면서 황아가 치술의 원을 풀기 위해 벌지와 덕지 두 아들에게 무예에 힘쓰고 보기에게는 의술에 힘쓰라는 것을 보면서 윤공이 제상이란 것을 직감했다.
돈장엔 제상은 파사-거리-흠실-아도-물품-제상으로 파사왕의 5대손이다.
즉 삼국사기 본기보다 열전의 기록이 맞다
조작한 자들이 열전에서 틈을 보인 것이다.
어쩌면 정직한 사관이 훗날의 진실규명을 위해 남겨놓은 키포인트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제상은 김씨다.
영해박씨가 박제상의 후손이라고? 이런~ 먼 선대에서 누군가 조작했구나!
그런 족보는 버려라.
어째서 박제상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나?
멍청한 김부식 때문이다. 아니 그도 몰랐다.
신라 왕통이 조작된 것을.
신라왕통이 조작되었다고? 그렇다.
지금의 삼국사기 기년으로 미추가 내물과 실성의 장인이란 것이 어디 말이 되는가?
일부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삼국사기 기년을 조정해야 한다고.
그럼 고리기년 백제기년 모조리 조정해야 하겠네!
그럼 고리 기년과 차이가 없는 지나사 기년도 모조리 수정해야 하겠네!!
유사와 사기의 다른 점에서 미사흔과 복호의 인질기록이 굉장히 차이가 난다.
유사에선 미사흔이 내물왕 때 인질로 갔지만 사기에선 실성이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단연코 유사가 맞다.
거기에서 왜왕의 사신이 ‘백제의 죄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인질을 요구한다.
그 왜왕은 바로 침류왕 응신이요, 백제의 죄는 진사왕의 쿠데타다.
바로 김씨의 쿠데타다.
그러기에 신라는 인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왜? 왜의 손아귀에 있었으므로.
실성 때는 고리가 이미 백제를 몰아내고 신라를 접수했거늘 무슨 인질을 보낼 필요가 있단 말인가?
다분히 정통김씨계열이 아닌 실성을 깎아내리고 계통을 조작하기 위한 수법이다.
일본서기에서 박제상의 기록이 5c에 들어가야 되는데 잘못 삽입되었다고? 웃기는 소리다.
일본서기가 정확하다. 왜? 당시의 강자인 백제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미질허질지 외 2명의 사신이 불타 죽은 것은 4c초다(303년?).
결코 박제상, 아니 김제상이 아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진사왕은 어쩌면 제상의 아버지인 물품일지도 모른다.
현재 이건 어디까지나 <삼국지>를 통한 추측일 뿐이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도 남는다. 여기서 일일이 따질 시간은 없다.
앞서 신공의 기년이 중첩이라고 말했다.
그럼 신공 5년의 인질기사는 몇 년인가?
소서노의 기년으로 하면 303년이요, 아이부인의 기년으로는 389년이다. 389년?
무슨 냄새가 나지 않는가?
바로 삼국유사를 보라! 390년에 미사흔 인질기록이다.
과연 그러면 또 다른 인질사건이 303년 이었단 말인가?
그랬을 가능성 거의 100%다.
위의 분서왕 기사에서 살펴본 대로다.
정말로 우연이지만 일본서기가 얼마나 정교하게 조작된 진실을 담고 있는지 실감이 난다. 바로 윤공의 기년을 풀면 그가 제상임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왜 윤공이 42년인가? 답을 제시하면 윤공몰년은 453년이다. 453-42=412이다.
눈을 크게 뜨고 신라본기를 보라! 그 때 무슨 기사가 적혀 있는지?
사기나 유사의 기록을 보자.
제상이 복호를 구하고 고리를 탈출한다.
각본은 코미디요, 능력은 슈퍼맨이다.
그런 얘기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미사흔을 구하는 과정을 보자.
그 먼 오사카만에서 신라까지 탈출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절대 불가능하다.
왜가 무슨 해적 집단인가?
한낱 신라사신의 말을 믿고 대마도에 병력을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인질과 사신까지 딸려 보내는가?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다.
모조리 날조된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파사왕대에 있었던 인질사건을 김제상에게 덧붙인 것이다.
화랑세기는 그것이 조작임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바로 왜국의 공주인 보미다.
왜국의 공주를 데려온 자가 인질에서 탈출했다고? 하늘이 노하신다.
바로 왜왕인 인덕천황이 보미를 딸려서 신라로 보내주었다.
그것도 유사의 기록이 맞다.
사기처럼 418년이 아니라 유사처럼 425년이다.
일본서기엔 426년이다.
여기서도 신라기록과 1년 착오가 있다.
지나 사서엔 뭐가 나오는가?
바로 왜 5왕의 하나인 제(濟)다. 바로 김제상의 이름이다.
제상이라고 조작한 이유는 바로 상(上) -임금- 이기 때문이다.
제상은 일본에 앞서 신라와 백제에서도 왕 혹은 왕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그렇다.
삼국사기처럼 일개 내마의 벼슬을 가진 자가 어떻게 왕의 공주에게 장가를 드나?
신분제가 극명한 고대사회(신라나 백제를 막론하고)에서 절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러기에 제상이 일본으로 가고 난 뒤에 치술은 눌지의 후궁이 된 것이다. 그런 치술은 제상에게 원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제상이 왜왕이 될 수 있었을까?
바로 신공황후인 아이부인의 친척이기 때문이다. 고사기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신공은 신라의 핏줄이라고.
바로 신라본기에 나온 이찬 급리의 딸이 왜왕의 아들에게 가서 낳은 여아이다.
그 여인이 훗날 백제 근귀수왕의 황후가 된다.
바로 아이부인이다.
아이부인이 낳은 아들이 바로 침류왕 응신이다.
바로 야마대왕조를 개창한 실질적인 일본의 건국시조다.
이제 신공의 신라정벌의 의미를 알겠는가?
한편으로는 비류왕모에 의한 정벌의 진실이요, 한편으론 신라에게 나라를 잃은 백제인들이 붓끝에 의한 복수를 한 것이다.
신라의 핏줄인 신공황후(여기서는 아이부인)에게 신라를 욕보이게 한 것이다.
그런 신공이 비미호라고? 열도에서 임신한 몸으로 신라를 점령했다고?
웃기지 마시라! 백제는 당시에 신라를 아예 없애버리지 않은 조상에 대한 한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비미호는 왕이었다.
당연히 일본서기의 세력이 열도라면 천황으로 등재되어야 한다.
그들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비록 기년을 조작했을망정 신공은 분명히 황후임을 밝혔다.
비류왕모(소서노?)도 아이부인도 다 황후였다.
16
이제 충격 백배, 비밀의 문 한가운데로 여러분은 이미 들어섰다.
1대가 거서간 2대가 차차웅 그리고 쭉 이사금? 탈해가 왜 하필 호공의 집을 빼앗는가? 불과 14살짜리 애가 대보(大輔)가 되나? 허루에게 이찬보다 상급의 벼슬을 주겠다.
그래서 주다란 벼슬을 주었다? 주다가 후일 각간이 되었다?
일성이 덕이 없어 동생인 파사를 왕으로 앉혔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뒤에 일성이 왕으로 앉는다? 아달라가 후손이 없었다.
그런데 후기신라에 아달라 후손이 버젓이 왕으로 등극한다?
골정과 이매가 죽고 이매의 아들인 내해가 등극했는데 골정의 아들이며 자기의 사위인 조분이 등극한다?
태자인 우로가 왕이 되지도 못한다.
첨해가 아버지 골정을 추봉하면서 세신갈문왕으로 한다? 우로가 여러 번 서불한을 역임했다고?
서불한보다 더한 직급이 있던가? 한 번 오르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별 볼 일없던 첨해는 버젓이 왕이 된다?
13대 미추의 딸이 먼 훗날 내물과 실성의 왕비가 된다? 유리하고 유례하고 헷갈리기도 한다? 신하들에게 이 아이는 우리 집안을 일으킬 아이라고 말하여 흘해가 왕이 된다?
그 정도 말할 정도는 왕이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흘해는 참으로 늙은 나이에 올라 오래도록 왕위를 유지한다?
내물과 실성이 서로의 왕비를 공유한다(상장돈장에서) 그런데 내물은 무척 긴 기간을 왕위에 있었다?
마누라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을 것인데 어찌 실성의 애를 낳나?
무슨 일급 코미디 영화각본 같지 않는가?
1호공(박) - 2남해(해) - 3유리(해) - 4허루(허) - 5?(허) - 6?(허) - 7일성(박) - 8아달라(박) - 9성한(김) - 10벌휴(석) - 11나해(석) -12 ?(김) - 13우로(석) - 14첨해(석) - 15세리지(김) - 16기림(석) - 17흘해(석) - 18파사(김) - 19?(김) - 20미추(김) - 21내물-22실성-23눌지-24자비-25소지-26지증-27법흥-28진흥-29진지-30진평
?는 몰라서가 아니고 일부러 제시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역사를 한다는 학자 중에 과연 누가 진평이 30대임을 밝힌 적이 있는가?
밝혀보려고 노력이나 했는가? 잘 보라! 1대 호공, 9대 성한, 13대 우로, 18대 파사, 30대 진평이다.
‘대대로 왕위를 전해 30대 김진평에 이르러.... 운운’이 이래도 잘못인가?
고대의 기록이 정확한 것이다.
김진평은 신라 30대 왕이었던 것이다.
파사왕이 근초고왕 언저리에 있는 일본서기의 기록이 맞는가?
멀리 옛날인 삼국사기의 기록이 맞는가?
단연코 일본서기가 맞다.
미추가 13대인데 백여 년도 더 뒤에 내물과 실성이 사위가 된다.
그게 제대로 된 기록인가?
삼국사기(정확히 구 삼국사)는 철저히 조작된 기록이다.
특히 신라와 백제본기가 그렇다.
백제와 신라가 모두 잘못 쓴 역사에 대해 책임이 있지만 신라가 다 뒤집어써야 한다. 왜? 최종 승자이기 때문이다.
혁거세는 없다.
우로는 왕이었다.
혁거세는 과연 누구인가?
바로 9대 성한왕이다.
신라사에서 한결같이 시조 혹은 태조로 나오는 인물이다.
그럴 리가 ~~ ?? 사실이다. 확신해도 좋다.
그러기에 유사에서 아달라조에 연오랑 세오녀의 기사가 나온 것이다.
그것이 결코 우연히 아니다.
바로 왜와 신라의 엄청난 비밀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서기에 그 무렵의 기록이 나온다.
신대에도 있고 역사에도 있다. 과연 무엇이라고 했는지 가슴을 훤히 열고 눈을 크게 뜨고 뒤져 보라! 왜 눌지부터 마립간이라 불렀는지 이해가 간다.
그것이 무엇이던간에. <삼국사기>는 조작되었지만 정곡을 찌르고 있다.
한마디만 더한다면 위의 왕호와 씨성은 잘못 되어 수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로는 거의 정확하다고 믿는다.
어라 조분이 안 보이네? 탈해도 안 보이네?
18대 파사왕의 인질 기록이 옮겨 갔다.
바로 삼국사기 18대 실성으로 옮겨 갔다.
고대의 사관은 인질의 기록과 불타 죽은 사신의 기록이 바로 18대 파사왕대에 있었던 점을 알려주고 있다.
혜안을 가진 자가 그것을 알아채기 바란 것이다.
성한부터 파사까지 김씨와 석씨가 교대로 왕위를 주고받고 있다.
그런데 김씨는 후세에 건재하건만 석씨는 씻은 듯 사라졌다.
왜? 과연 무엇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왜? 중기신라가 내물에서부터 시작되는지 한 눈에 알 수가 있다.
바로 그때부터 조작이 없기 때문이다. 조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나 유사에 파사의 부인은 사성부인 김씨라고 한다.
사기처럼 파사가 1c의 왕이라면 그 당시 김씨가 무슨 세력이 강하기에 김씨 황후가 탄생하나? 더구나 유사는 사요왕의 딸이라고 했다.
유사가 잘못되었다고? 천만에.
유사는 바로 김씨들이 조작하다 흘린 고대사의 편린을 보여주고 있다.
사요는 김씨왕이었다.
그런데 왜 신라본기에 없는가? 바로 백제왕이었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어째서 백제가 파사를 신라왕으로 세웠는지 이해가 가시는가?
바로 백제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제본기에도 사요왕은 없지 않은가?
당연하지. 김씨들이 파사를 조작한 주제에 사요를 떡하니 백제왕으로 올리겠는가?
허황후의 뿌리가 어디에서 출자했는지도 극명하다. 바로 신라다.
인도에서 장강을 거쳐서 왔다고? 무슨 소설이 그렇게 재미있더냐?
바로 허씨 왕족의 후예인 것이다.
김씨들이 감춘 것이다. 수로가 가야를 세웠다고? 일면 맞고 일면 틀리다.
바로 가야에서 금관국을 세웠다.
허황후가 신라허씨임이 밝혀질까 두려워 감춘 것이다.
왜? 부여 백제와 신라 왜 가야의 5차 연립방정식이 풀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무왕의 15대조는 성한이 맞는가? 맞다.
법흥이 모용씨라고? 미추가 위나라에 속한 선비족 후예라고?
개가 웃을 일이다.
신라김씨가 동해안 루트를 타고 남하했다고? 말놀음일 뿐이다.
성한-차웅-세리지 -파사-지마-조분?-내물-복호-습보-지증-입종-진흥-진지-용춘-춘추 15 - 14 - 13 - 12 - 11 - 10 - 9 - 8 - 7 - 6 - 5 - 4 - 3 - 2 - 1
자, 계산하면 성한은 180~220년대여야 맞다.
결코 알지가 될 수 없다.
더구나 세한은 아니다.
알지-세한-아도-수류-욱보-구도-미추는 더더구나 아니다.
미추는 절대로 구도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구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단지, 신라김씨들의 조작일 뿐이다.
미추를 13대 왕으로 끼워 넣어 삼국사기를 조작한 신라김씨들의 수작일 뿐이다.
바로 세한을 성한으로 조작하기 위한 술수다. 아래와 같이.
세한-아도-수류-욱보-구도-말구-내물-복호-습보-지증-입종-진흥-진지-용춘-춘추-문무 15 - 14 - 13 - 12 - 11 - 10 - 9 - 8 - 7 - 6 - 5 - 4 - 3 - 2 - 1 - 0
하지만 정직한 고대의 사관은 그 흔적을 남겨 놓았다.
삼국사기에 들어있다. 무수히 들어있다.
고고학이 그것을 증명한다.
무슨 고고학? 바로 황남대총이다.
난 이미 운모-옥모-홍모-아이혜-광명-내류-아로-조생-선혜에서 그 실마리의 일단을 보았다.
무슨 실마리? 왜 오릉의 전설이 생겼다고 생각하는가? 알정이 과연 신라사 초기의 우물인가? 계림이란 숲이 정말로 알지가 매달린 숲인가? 지하에서 성한이 웃는다. 자세한 것은 21편에서 논한다.
김대성이란 분이 <금문의 비밀>이란 책에서 문무왕비의 위력이 동양삼국을 들끓게 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문무왕비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동양삼국은 뒤집어진다.
물론 그 책에서 나온 김씨들의 세계는 <한서> 김일제전과 약간 다르다.
저자가 잘못 인용했다.
그나저나 일제의 후손인 김성金星을 성한왕이라고 이 분은 주장하는데 어디에서 김성이 나오나요? 난 아무리 찾아봐도 안 나오던데.
17
이제 이 싸이트의 대표적인 주류신봉자 무명에 대해서 종합하여 비판해 보자.
물론 뛰어난 점도 있고 날카로운 면도 있다.
현대사와 사회를 보는 눈은 존경할 만한 점도 있다.
하지만 역사학의 큰 얼개에서 그는 대표적인 식민사학의 나팔수, 동북공정의 앞잡이일 뿐이다.
그것이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의 글에 띄어쓰기와 오타로 인해 엉망인 글이 많아 바로 잡아 그대로 올리고 비판한다.
지금까지 나온 것을 종합한 것이다.
1) 윤내현을 비판한 진개의 침입논리 - 고조선이 대동강이라고 강변한다.
고조선의 위치를 가장 광범위하게 잡고 있기에 인기 있는 교수 윤내현. 그의 주장에서 다시 이해하기 힘든 부분 두 번째를 살펴보겠습니다.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里,至滿番汗為界,朝鮮遂弱 - 위략> (연이 이에 장군 진개를 보내 그 서방을 공격해 2천리 땅을 취하고 만번한을 그 경계로 하였다. 그랬더니 조선은 마침내 약해졌다.)
윤내현은 위략에 나오는 滿番汗과 浿水의 위치를 난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략에 나오는 패수는 지금의 난하 또는 그 지류였음을 알게 되고 만 번한은 난하와 그 지류인 汗水 유역에 있었음이 확인된다.-윤내현의 한국고대사신론
고조선은 서방 2천리를 연나라에 빼앗기고도 그 경계가 현재의 난하라는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서방 2천리를 빼앗기기 이전의 고조선의 서쪽 한계는 어디일까요? 연나라의 수도인 계나 연하도뿐 아니라 오르도스지역까지 고조선이 다스리고 있었어야 가능합니다. 윤내현의 주장에 따르면 연나라는 갈 곳이 없는 문제가 생깁니다.
문제는 이것이 아닙니다. 이해 할 수 없는 이런 주장을 윤내현이 하고 있는 주 근거는 바로 汗水입니다. 조금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만 汗水는 한서지리지에 대한 주석에서 응소가 언급한 강 이름입니다.
한서지리지에 요동군에 문 번한현이 있고 番汗현조에 浿水出塞外西南入海 구절이 있습니다. 이 浿水에 대해 응소가 汗水出塞外西南入海라는 주석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수경주에서 난하 상류의 한 지류로 나오는 汗水가 바로 문제의 패수라고 윤내현은 결론짓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만,번한도 난하유역 일 수 밖에 없다. 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당장 응소의 주석의 汗水가 난하 상류의 그 강이 맞다고 치더라도 그 다음 구절인 西南入海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윤내현 자신이 수경본문을 인용해 <패수는 임패현을 지나 동으로 바다에 들어간다>는 구절을 두고 난하를 이 조건에 맞는 강으로 지정해놓고는 이제 汗水한수문제가 나오니까 汗水한수가 서남입해한다는 조건이 있음에도 汗水한수가 패수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강이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간다고 난하를 패수라고 해놓고 그 다음은 서남으로 바다로 들어가는 정반대 방향의 강, 汗水가 패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편리할 때 마다 편리한 구절만 가져와 논리를 전개하다보니 자가당착적인 모순에 빠진 겁니다.
이런 이상한 논리로 패수와 만번한을 난하유역에 가져다 놓는 이 기괴한 논리를 받아들이라는 건가요? 참 제정신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당장 윤내현의 논리로 나가면 연나라가 오갈 데 없고 연하도의 엄청난 성 흔적도 고조선의 흔적이 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요?
---> 물론 윤내현이 다 맞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도 내가 보기엔 오류투성이다. 하지만 무명은 스스로의 글에서 무식함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里,至滿番汗為界,朝鮮遂弱 - 위략> 이다. 왜 그런가? 바로 이 글의 핵심글자는 바로 서방(西方)이기 때문이다. 고조선이 대동강이라면 가능한 얘긴가? 고조선이 요동이라면 가능한 얘긴가? 바로 고조선이 요서이어야만 가능한 얘기다. 내말이 틀렸는지 지도를 놓고 보시오!
그리고 그 후에도 고조선은 요서였다. 즉 연의 침입이 있은 후에도 중심지는 요서였다는 것이다. 어째서? 역시 그대가 말한 <위략>의 이 부분 다음에 삼국지에 주석으로 딸린 <위략>을 보라! 분명 우거를 설득하던 상 역계경의 세력이 동쪽의 진국으로 간 것이다. 여기서도 핵심은 바로 <동쪽>이다. 요동에서 동쪽에 무슨 진국이란 세력이 있었던가? 대동강 유역이 조선이라면 그 동쪽은 동해바다가 아닌가? 이 글을 만족하는 지리적 위치는 요서밖에 없다. 그러기에 훗날 수양제가 고리를 침공할 때 무슨 낙랑도니, 현도도니, 부여도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바로 요하(난하)를 건너 요서를 지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 고리의 수도는 요서 평양(안시성-왕검성)을 떠나 장안성(새로운 평양성인 오늘날 요동)에 있었다. 오히려 사료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무명이 아닌가?
사실 <위략>의 이 글도 문제는 있다.
땅은 선이 아닌 면적이기 때문이다.
사기와 한서 흉노열전엔 동호(명백히 조선을 말한다. -자세한 것은 생략하겠다)가 천 여리를 물러났다고 되어 있다.
무슨 뜻인가? 중심지, 바로 수도를 1000리 혹은 2000리 물러나 옮겼다는 뜻이다.
이는 후대의 역사를 보아 정확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애초 고조선의 수도는 바로 오늘날 난하나 북경서북일대라는 얘기가 된다. 이는 후대에 조선의 도읍이 북평일대라는 기록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다.
오늘날 요서의 찬란한 고대유물이 과연 누구의 것이었냐는 답이 나온다.
송호정처럼 그것이 동호였다고 동호가 무슨 나라였더냐?
그리고 동호는 바로 조선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지나의 기록이나 주장이라면 무조건 신뢰하는 그 버릇은 여전하시구먼.
연이 역수에서 요동에 걸친 나라였다면 제와 조를 능가하는 강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기나 전국책 등에서 연은 항상 최약체로 그려지는 것은 무슨 아이러니인가?
그리고 그렇듯 위대한 진개의 기록이 막상 사기나 전국책에 나오지 않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진정 모두가 조작되었거나 후대에 다른 기록을 참조했다고 봐야 된다.
다른 기록? 그렇다. 오히려 지나에서 조선의 기록을 참조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조선이 과연 고조선인가?
절대 아니다. 바로 변한조선이다.
후대의 기자조선이라 불리는 존재다.
바로 기자의 후손이 변한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연이 친 조선은 변한조선이요, 위만이 침탈한 나라는 기자조선이요, 한나라가 친 것은 위만조선이다.
즉, 무명의 수많은 머릿속의 이론은 근본부터 삐뚤어져 있다.
2) 왜와 백제의 논리 - 백제가 왜의 속국이라고 빈정댄다.
신찬성씨록 大原眞人 <出自謚敏達孫百濟王也> 대원진인은 민달천황의 손자인 백제왕의 후손이다. 이를 보고 봐라 민달의 손자가 백제왕이니 민달이 백제인 아니냐? 야호~ 라고 쾌재를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이는 어찌 보면 참 재수 없는 소리다. 민달이의 손자가 백제왕? 왜놈이 자기 왕족을 백제왕으로 파견했나?
그럼 백제는 일본의 완전 속국이네.
완전 백제를 왜국의 속국으로 보는 재수 없는 케이스.
그런데 이 구절을 왜 그리 좋아들 하는지...
그런데 백제왕의 후손이 왜 일본에서 계속 사나? 그런데 하나 참고할 것은 백제왕족을 백제왕이라 표현한 부분이 신찬성씨록에는 보인다. 하여튼 백제, 중국에서 문화를 수입해다가 일본에 전해줬는지 갔다 바쳤는지 불확실하고, 군사력은 띨띨해 일본의 군사원조를 툭하면 바라는 띨띨한 국가를 뭐 그리 대단하다고 자꾸 그러는지..내참. 하여튼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곤지와 무령왕의 케이스는 매우 복잡합니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서 인용한 백제기록들이 서로 틀립니다.
그런데 대체로 일본서기의 기록이 더 정확합니다.
일본서기를 토대로 보면
곤지는 461년(웅략5년, 개로왕7년)에 일본으로 간다.
간 사유는 웅략을 섬기던 백제여자池津媛이 간통하는 바람에 웅략이 불에 태워 죽인다.
그런 사건 때문에 개로왕이 자기 동생곤지를 일본으로 보내게 되는데(인질성격이 강함) 동생 곤지는 약간 열을 받아서 형인 개로에게 당신 마누라를 달라고 한다(아마 세컨드겠지) 그런데 그 여자는 이미 임신 중. 사월에 떠났는데 6월에 이끼섬 부근의 각라도에서 이 여자가 아이를 낳자 할 수 없이 아이와 여자를 백제로 돌려보낸다. (그 아이는 무령왕이 된다. 그래서 무령왕은 461년생.) 그리고 곤지는 일본으로 간다. (그래서 일본현지에 곤지신사가 있게 된다.) 곤지는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일본서기에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삼국사기에는 477년에 백제의 내신좌평이 되고 그 해 죽는다고 나온다. 아마 백제로 돌아온 모양.)
일본서기는 479년에 기사에서 곤지 아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이에 아들이 다섯 명으로 늘어났는데, 백제의 문근왕(아마 삼근왕)이 죽자 웅략천황은 곤지의 둘째 아들이 총명해 웅략하다는 이유로 백제의 왕으로 삼으면서 축자국 군사500명을 주어 백제로 돌려보냈다고 한다.(백제왕을 일본천황이 선택? )
그래서 그가 동성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물론 삼국사기는 동성왕이 어디서 왔는지 기록하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돌아오지 않은 곤지의 아들이 성씨를 이루고 사는데 그들이 바로 飛鳥戶造라고 신찬성씨록은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무령왕은 동성왕 다음으로 즉위하게 되는데 왕5년인 505년에 자기 아들(斯我君)을 다시 일본으로 천황을 섬기라고 보낸다(인질성격). 이 사아군의 아들이 법사군이고 왜군의 선조다. 라고 일본서기는 기록하고 있고,.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 사실을 모두 거짓이라고 말해야 하지만 저는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이 시기의 일본서기의 백제관련 사료가 생각보다 상당히 정확하다는 것이 이미 상당히 밝혀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시기야 약간 다르지만 일본의 지원으로 왕이 즉위하는 경우까지 삼국사기에도 나오니 말이죠. 전지왕이 일본에 인질로 가 있었다는 것은 삼국사기에 나오고 그리고 즉위하는데 왜 일본병사가 호위를 하고 왔다라고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는데... 사실 전지왕은 아신왕의 맏아들 태자였습니다.
둘째왕자도 아니고 일국의 태자가 일본으로 인질로 가야할 만큼 당시의 백제는 허약했거나 일본의 지원이 절실했겠죠. 그런데 전지왕은 일본천황에게 울면서 귀국을 청했다고 합니다. 전지왕은 즉위과정에서부터 일본에 상당히 예속된 상태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王薨 王仲弟訓解攝政 以待太子還國 季弟禮殺訓解 自立爲王 전支在倭聞訃 哭泣請歸 倭王以兵士百人衛送 - 삼국사기
위험하지만 이 전지왕의 즉위와 동성왕의 즉위가 유사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백제를 소재로 하여 대왜 민족적 자긍심을 고양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역사에 자랑스러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백제와 왜의 정치군사적 관계를 가지고 긍지를 느끼려 하는지...
군사력으로 긍지를 느끼려면 중국의 통일정권과 정면승부를 몇 차례나 치루면서 몇 차례 승리를 거두고 중국 통일왕조 하나를 멸망시킨 고구려의 사례를 드시든지, 아니면 국제적 역학관계에 대한 현실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삼국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한반도 통일왕조 수립에 성공한 신라의 현실적인 노력을 거명하면서 국제화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로 삼으시던지, 그도 저도 아니라면 백제의 문화전파를 일본서기를 통해서 입증해 진정한 힘인 문화의 힘을 강조하시든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거든요.,.
---> 악의에 찬 반 백제 이론이다.
왜놈이라 경멸하고 있다.
그들이 역사적으로 형제간임을 안다면 그랬을까?
스스로 조상을 욕한다고 느낀다면 그러겠는가? 영남인이라 그런가?
신라주의자라 그런가?
아화 전지, 구이신, 동성, 무녕, 무왕. 즉 열도에서 백제 왕권에 관계된 왕만 6명이다. 백제와 한 집안이 아니라면 가능한 얘긴가?
경행, 성무, 침류, 이중, 웅략, 서명 등 백제에서 왜 왕권에 간여한 것만 6건이다.
한 집안이 아니라면 가능한 얘긴가? 곤지가 인질이라고? 성씨록을 보라!
어떻게 웅략이 곤지가 되는지. 일본서기 기년을 보라!
어떻게 곤지가 웅략이 되는지! 물론 껍데기만 보니 무엇을 알 것인가!
무엇보다도 그는 왜가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왜(倭)다.
왜가 바로 왜(why)가 되었기에 고대사가 미궁에 쌓여 있고 엉망진창이 된 것이다.
바로 신라와 백제의 이야기는 바로 왜다. 그것이 바로 고대사의 핵심인 것이다.
나는 분명히 밝힌다. 왜는 백제라고.
여기서 그것을 모조리 내놓지 못하는 점이 미안할 뿐이다.
그러나 찾아보라. 일본서기, 고사기, 신찬성씨록에 그들이 백제였음을 누누이 밝히고 있다.
특히 성씨록은 아예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바로 무명처럼 색안경을 쓴 자들에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내친 김에 한마디만 더하자.
화랑세기에 진흥왕이 말년에 풍질이 걸려서 황후, 미실, 보명, 월화, 옥리 등 다섯 여인과 즐거움에 탐닉했다고 한다.
그 때 나는 상장돈장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혹시 옥리가 백제 성왕의 딸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중에 상장돈장을 보니 그 추측이 맞았다.
즉 옥리가 낳은 딸이 진평왕과 관계하여 선화를 낳았다.
그 선화가 바로 무왕과 결혼하였다.
즉 삼국유사의 기록은 사실인 것이다.
선화는 신라의 핏줄이기도 하거니와 백제의 핏줄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왕은 누구인가? 바로 민달의 손자다.
괜히 백제왕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성씨록은 바로 사실을 전하고 있다.> 무왕은 결코 법왕의 아들이 아니다.
바로 민달의 손자이며 백제왕인 것이다.
삼국유사에 왜 무왕의 설화가 전해지는지 명백해진다.
삼국사기는 정사지만 세세한 고대사의 비밀은 오히려 삼국유사가 더 깊이 전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미사흔의 기록도 그렇다.
각설하고 무왕은 나중에 서명천황이 된다.
그러기에 일본서기에서 왜국이 백제대사를 짓고 백제궁을 짓고 백제옷을 입고 조회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백제가 아니라면 어림도 없는 것이다.
스스로 백제임을 그 보다 더 표현할 수는 없다.
단순히 왜 왕권에 백제계가 많이 포진해서 그렇다고? 껌 씹는 소리들 말아라!
백제본기 무왕기의 마지막 부분은 의자왕의 대리통치기다.
그러다가 무왕인 서명이 죽자마자 반대세력을 일본으로 쫓아낸다.
3) 박창범 인식에 대한 비판
- 신라의 일식기록이 모두 지나사서에 있다고 한다.
삼국의 위치와 천문관측
박창범교수는 삼국의 천문관측 위치를 중국대륙으로 잡게 됨으로써 중국을 우리가 통치했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는 삼국은 한반도에 없었다는 주장은 활개를 치게 되었다.
박교수는 신라의 천문기록 중에서 초기의 기록의 최적관측지는 양자강유역이라고 발표했다. 후대의 최적관측지는 신라의 영토이지만 초기의 최적관측지가 양자강유역이라고 발표함에 따라 그 해석도 분분하다. 신라의 초기 영토가 양자강지역이라는 설과, 신라가 양자강지역을 다스리다 한반도로 옮겨온 것이다라는 설, 가야세력이 양자강지역에 있다가 한반도로 오면서 가져오게 된 천문기록이라는 설등...
과연 박교수의 주장대로 초기신라의 천문기록의 최적 관찰지는 양자강일까? 박교수는 일식현상을 분석해 도출된 결과라고 한다. 그리고 양자강지역이 신라의 천문관측지로 나오는 시기는 ad201년까지라고 한다.
이시기 신라의 천문기록 중에서 중국문헌에 나타나지 않는 독자적인 것들만 살펴보자
1. 남해11년, 월일 없음, 밤에 유성이 있었다. 2. 탈해23년 2월, 혜성이 동방에서 보였다. 3. 상동 또 북방에서 보였는데 20일에 사라졌다. 4. 파사25년 1월 별똥이 비처럼 왔는데 땅에 닿지는 않았다. 5. 지마9년 2월 큰 별이 월성서쪽에 떨어졌다. 6. 지마17년 8월 긴별이 하늘에 두루 미쳤다. 7. 일성20년 10월 혜성이 동방에서 보였다. 8. 상동 또 동북방에서도 보였다. 9. 내해5년 7월 태백이 낮에 보였다.
이상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박교수가 초기신라의 최적천문관측지가 양자강에 있었다는 증거로 사용한 일식기록이 전혀 없다. 모두 유성에 관한 기록정도다. 초기신라(201년 이전)의 천문기록 중에서 중국사서에 등장하지 않는 기록은 모두 9개. 그러나 3번과 8번은 하루에 나타난 상황이기에 7일의 천문기록이 있는 셈이다. 그중에서 천문현상 발생날짜를 알 수 있는 것은 탈해23년 2월조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발생 개월만 나와 있고 구체적 날짜가 없다.
박교수가 사용한 초기 신라의 일식기록의 특징은 매우 구체적인 날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두 중국문헌에 같이 나타나고 있는 것들이다. 혁거세재위 때 일식기록이 7번 나타난다. 이때의 기록을 보자
1. 혁거세 4년 4월1일 해에 식이 있었다. 2. 혁거세 24년 6월 그믐날 상동 3. 혁거세 30년 4월 그믐날 상동 4. 혁거세 32년 8월 그믐날 상동 5. 혁거세 43년 2월 그믐날 상동 6. 혁거세 56년 1월1일 상동 7. 혁거세 59년 9월 그믐날 상동
이 모든 기록은 일식이 있었던 달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날짜까지 기록되어 있다. 위의 7개의 기록은 한서오행지에 그대로 나온다.
이런 초기신라의 기록은 한서오행지의 기록과 동일하며 지마, 아달라, 벌휴, 내해임금때의 일식기록은 모두 후한서오행지에 나오는 기록과 동일하다.
이런 현상은 삼국사기 초기천문관측 최적지가 한반도가 아닌 이유를 너무나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굳이 슈퍼컴퓨터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일식에 관해 독자기록만 등장하는 것은 신라기 전체에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모두 중국기록과 중복되는 기록이다.
이를 바탕으로 박창범교수는 일식최적관측지를 추적한 것이다. 삼국사기와 중국사료에 동일하게 나오는 일식기록을 가지고 최적관측지를 추적하고는 "어 이상하다. 관측지가 중국으로 나오네" 라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는 <천문과 우리역사> 55페이지로 가면 당당하게 <삼국사기의 일식관측지는 한반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발표하고 학계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학계의 사람들은 모두 멍청한 사람들인가 보다. 책에는 오재성이란 분이 찾아왔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하고 있다. 이 말은 오재성이란 분의 주장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박창범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잘 알 것이다. 박창범은 학자이지만 코메디언인 셈이다.
---> 이 글은 바비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격받은 글이다.
여담이지만 바비님의 순발력이 부럽다.
어디서 그런 퍼뜩이는 재치가 나오는지!
그야말로 무명 사냥꾼이다.
신라기록이 모조리 지나사서에 나온다고 거짓이라고.
그렇다면 지나에 나온 기록 모조리 들어가야지 왜 일부만 들어갔나?
나머지 천문기록은 날짜가 없는데 일식은 날짜가 나온다고?
일식이 어디 다른 날 일어나는가?
그믐이나 1일에 일어나는 것이 상식이지 않는가?
같은 일식을 지나는 기록하고 신라는 기록하지 말라는 법 있는가?
왜 그렇게 조국을 뒤처진 나라로 까뭉개기에 열심인가?
그대 혹시 정말로 지나가 심어놓은 동북공정의 스파이인가?
그것보다는 오히려 신라의 일식기록이 왜 중기에는 전멸하는지 그것이 더 궁금하지 않는가? 바로 백제의 부용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말기에는 백제의 기술자와 고리의 기술자를 받아들여 마침내 다시 일식기록에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일본서기(백제서기) 기년과 신라본기 기년은 약간 착오가 난다.
이것은 지금까지 내가 정리한 바로는 1년 차이가 난다.
어쩌면 일식기록도 착오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착오가 난 것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마 백제와 고리에서 475년의 개로왕 패망기사가 신라본기엔 474년에 난 것과 같다.
4) 낙랑군의 논리
- 대동강이 낙랑군이라고 생떼를 쓴다.
윤내현의 논리가 재야의 교과서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윤내현의 주장중의 상당부분은 또 다른 역사왜곡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낙랑의 위치에 대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낙랑이 난하 유역에 있었음을 동의할 수 없는 삼단논법으로 증명한 후 평양의 낙랑은 다른 낙랑국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 서기44년에 동한의 광무제가 바다를 건너 낙랑을 정벌해 군현을 만들었다는 삼국사기조를 인용해 그 후에는 고구려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중국의 군사기지였다고 주장한다. 기막힌 사료의 취사선택에다 희한한 논리로 역사를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닌가? 즉 동한(후한)시기에만 중국의 군사기지 낙랑이 평양지역에 있었을 뿐 서한(전한)시기에는 아예 중국의 영향이 없었으며 낙랑, 대방군 모두 난하유역에 있었다는 것이다.
평양의 정백리127호분에서 낙랑태수연왕광지인이라는 인장이 발굴되고,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태봉리의 대형 전축분에서 대방태수장무이전이 출토되었음에도 이는 모두 유민이 자기가 살던 곳의 명칭과 직위를 가져왔다고 주장해버린다. 여전히 낙랑군과 대방군은 난하유역인데 그 이유는 난하에 조선현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열수가 난하의 지류이기 때문이란다.
참으로 편리하기 짝이 없는 논리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알만한 학자라면 어떤 미친놈이 이 논리를 받아들이겠는가? 그래서 윤내현은 사학계의 왕따인 것이다.
평양지역이 낙랑군임을 잔소리 말고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낙랑토성지역에서 발굴된 반량전을 제조하기 위한 주물틀, (군현의 치소도 아닌 곳에서 반량전이나 오수전을 제조하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다.)
-낙랑예관, 낙랑부귀의 명문수막새.(단순한 군사기지에 이정도의 명문수막새는 무리)
-지절4년(bc66년)명 칠곽이 나온 정백동37호, 영시3년(bc14년)명 일산대가 나온 정백동2호, 시원2년(bc85년)명 귀잔이 나온 석암리194호, 수화원년(bc8년)명 칠반이 나온 석암리 200호등 수많은 전한시대의 유물 ('어찌하여 서한시대에 조성된 유적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보다 훨씬 늦은 동한시대의 유적만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라는 윤내현의 주장은 잘 몰라서 생긴 의문일뿐..)
-한의 낙랑군 25현 가운데 23개현의 명칭이 드러난 봉니 (발굴과정에서 나온 것도 존재하므로 무조건 위조라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윤내현이 주장하는 '봉니가 출토된 곳은 공문서를 받은 곳이 된다'라는 말은 봉니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 지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 봉니는 문서뿐 아니라 상자를 봉해 보관하는데도 사용된다. 공문서를 받은 곳에서 봉니가 발견되었다면 그 문서는 개봉도 안 된 편지인 것이다. 봉니는 그 문서를 개봉하는 순간에 파괴되고 마는 마른 진흙덩어리임을 알아야 한다.)
-낙랑군 25개현중의 하나인 점제현의 위치를 보여주는 평남 용강군의 점제현신사비, 정백동1호분출토 부조예군, 정백동2호분출토 부조장인등의 인장 (점제현신사비는 일제의 위조 혹은 갈석에서 이치, 부조예군인장은 고조선의 인장 등으로 설명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한도가 있다. 서한(전한)이 설치한 낙랑군과 25개 현의 중심이 대동강 유역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난하 유역에 낙랑군과 대방군의 치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낙랑이란 글자가 단 한자라도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없다.
도대체 난하에 낙랑군이 설치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엉터리주장은 무슨 배짱으로 그리하는지 궁금할 뿐... 신채호선생이나 박은식선생이 이런 주장을 한다면 너무나 당연히 수긍할 수 있다. 나라를 일본에 잃은 백성이 2000년전에도 그러한 꼴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일제시기에 평양낙랑을 부정하는 것은 다른 당위성이라도 있지만 오늘날 역사를 왜곡해 가면서까지 그리하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 정말 누가 역사를 왜곡하는지 모르겠다. 지나 연호만 나오면 무조건 지나 땅인가? 근세조선은 모조리 명나라 청나라 땅이겠네.
서기 연호가 나오면 무조건 미국이나 서양 땅이겠네.
한마디로 고대인들의 역동성을 모르는 소치다.
더구나 그 때(지금도 그렇지만) 동아시아의 중심은 중원이다.
중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천지에서 중원의 연호를 쓴 것이 무조건 중원의 영역인가? 오히려 그런 연호가 집중되어 나오는 땅은 큰 세력의 중심부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 땅은 어디까지나 마한이고 백제였다.
한나라 수많은 군 중에 모두 군명이나 현명이 쓰인 명문이나 봉니가 전부 나왔는가?
어찌 낙랑군에서 꼭 나와야만 되는가?
낙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껄이는 소리. 위에서 이미 무수하게 논했다.
낙랑이라면 무조건 낙랑군만 생각하는 그 머리란!
낙랑과 대방이 어째서 지나인가? 바로 조선이 아닌가?
조선 땅의 원래 명칭이 아닌가?
한씨들이 낙랑에서 피난 온 것을 모르는가?
즉 그들도 마한 안에서 낙랑인인 것이다.
그들이 왕권을 장악하면 당연히 지명도 따라오는 것이다.
물론 윤내현이 말하는 낙랑국도 절대 아니다.
무명이 툭하면 꺼내는 <후한서지리지>를 봐라!
위에서 말했듯이 단편적으로 낙양에서 한단까지가 1100리이니 낙랑군 5000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요하를 넘어오지 못한다.
왜 하필 한단인가? 유주나 요동 낙랑군과 같은 동북로이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을 가려면 한단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지는 가깝게 느꼈을 것이고 변방을 멀리 느꼈다.
이는 지나사서의 지리지를 읽다보면 누구나 느끼는 바고 실제로도 그렇다.
진정 간단한 산수도 못하는가?
5) 백제의 논리 -
호남지역은 백제도 아니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희망으로 옛 역사가 바뀌어주지를 않습니다. 어떤 논리로도 요동과 나란히 나오는 요서가 광서성까지 가지 않습니다.
요즘 방송과 일부학자들이 함부로 했던 거짓말이 상식화되어 가고 있군요. 광개토대왕비 석회도말작전, 백제담로의 해외경영(필리핀까지 경영했다고 하더군요.), 백제왕이 일본천황이 되었다 등등 참 민망한 거짓말 그동안 많이 했습니다.
백제는 대제국이 아니며 해외경영(요서경략은 제외)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거의 없습니다. 하와이에 조선인들이 사탕수수농장으로 이민을 갔다고 해서 하와이가 조선 땅이란 논리를 펴는 분들은 없습니다. 일본 아스카문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제는 일본 땅에 독자권력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백제세력은 왜에 오히려 흡수되었지요. 백제는 6세기가 되도록 해외경영은커녕 전남지방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전남지역의 고고학자 10명에게 물어보십시오. 과연 백제가 전남전북을 제대로 장악했다고 보는지... 역사는 감계기능을 하라고 존재하는데 거짓말을 하면 역사의 존재의의를 허물어뜨리게 되죠.
---> 그래, 정말 옳은 소리다. 생각해 보라.
그대 말대로 겨우 한강 유역뿐인 백제가 고구려와 그리 치열하게 일진일퇴 하나?
그런 나라가 어떻게 요서는 경략하나?
또 그렇다면 광개토왕의 58성이 들어갈 자리는 어디인가?
그런 땅을 가지고 지나사에서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고 얘기하나?
어째서 공식기록인 <당서>에 고리보다 큰 영역으로 나오나?
적이 바로 강 건너 코앞에 있는데 수도라는 한성이 풍납토성에서 100여년을 잘만 번영하는가?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여 고구려와 단절되었는데도 여전히 고구려의 대군이 침입하고 고구려와 대립하는가?
공식 역사서에 그 땅이 발해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는가?
발해가 한반도 서남부에 있었다는 얘긴가? 상식을 가진 이가 할 소리요? 앞뒤 맞는 소리를 하시오!!
주류이론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모조리 폐기되어야 한다.
무명이 툭하면 다른 이를 비판하면서 사서를 편의부정하고 취사선택한다고 하는데 과연 누가 그런가?
<기록>을 부정하고 멋대로 해석하는 것은 그대가 신봉하는 주류들과 그대 자신이 아닌가?
백제가 굳이 중국 동남부와 동남아시아를 휘저었다고 하는 소리를 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 강역에서의 위치만은 제대로 대접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왜 문헌을 멋대로 해석하고 고고학을 왜곡하여 역사를 개판으로 만드는가?
6) 부여의 논리
- 어쩌다 옳은 소리 한 번 했다.
무명 글 : 진부여솔선백장인이라는 서진시기 도장이 1975년 내몽고자치주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부여가 어디에 있었기에 이런 유물이 내몽고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흥미로운 유물입니다. 내몽고 상경박물관측에서는 길림, 흑룡강성에 있던 부여족의 일파가 내몽고지역으로 이치 된 흔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기존의 부여의 영역을 염두에 둔 설명으로 보입니다.
혹시 부여국이 생각보다 서북쪽에 있었는가? 부여라는 종족의 영역이 생각보다 광범했었나? 고구려에 멸망한 부여가 그 후 서진시대까지 존속했었나?(아니군요...부여는 400년대에도 존속...) 등등의 의문이 잠깐 들기도 합니다만,,,
부여의 세력권이 대흥안령 지역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동호에서 이어지는 선비와 오환족이 부여지역에서 발생한 것은 아닐까...
고구려와 백제의 창건자들이 모두 부여출신이니까 부여는 대략 우리민족형성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셈입니다.
진나라가 부여의 부족장에게 준 도장이 장춘이나 하얼빈 부근이 아닌 내몽고 파림우기 부근에서 나오니 이상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 잘 보고 있소. 이는 내가 말한 부활한 부여다.
즉 고리의 서북에서 부활한 부여인 것이다.
그래서 현도군과 낙랑군을 비롯하여 지나 역대 왕조와 그렇게 많은 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만주 한가운데 있었다면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왜? 고리가 요서에 있었기 때문에.
모용씨가 멀리 만주 한가운데 부여를 쳤을 것 같은가?
바로 하북에서 가까운 부여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무명 한 사람을 골랐지만,
결코 그를 인격적으로 모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고대사 인식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나무라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현대사나 사회를 보는 눈은 존경할 만한 점도 많다.
오히려 세세한 면에서는 어느 누구에 못지 않게 뛰어나기도 하다.
17-1
그는 대표적인 식민사학의 나팔수, 동북공정의 앞잡이"
요 따위로 말씀하시면 기분이 팍 상합니다. 그러나 명예훼손소송은 하지 않을테니 너무 걱정은 마시고...
다른 것은 제껴두고 고조선의 위치이야기.. 도대체 제가 한 이야기가 잘못되었다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인지 찍어보세요.
1. 진개가 고조선의 서방2000리를 빼앗고 난뒤 만번한을 경계로 하였다. - 위략
2. 이때의 만번한은 난하와 그지류 汗水 부근이므로 패수는 난하다. - 윤내현
3. 그럼 진개가 2000리를 빼앗기전, 고조선의 경계는 난하의 서쪽2000리에 있다?? -저의 궁금점
4. 만약 난하가 패수고 위략의 만번한이 난하유역에 있었다면 고조선을 공격한 연나라의 수도는 최소한 난하의 서쪽 2000리를 넘어서 있다. -저의 중간결론
5. 그렇다면 진개의 동정이 있던 시기 연나라는 황하의 대만곡부인 오르도스지역 너머 있게된다.
6. 그럼 연하도는 어느나라의 것인가? 계성은 어느나라의 성인가? 그곳에서 출토되고 있는 엄청난 유물과 명문은 고조선의 것인가?
7. 연하도 유물이 연나라의 것임은 고고학적으로 명백하다.
8. 그렇기 때문에 난하가 패수라는 말은 위략의 기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9. 위략의 패수, 만번한은 난하가 아니라 요하유역이다.
자 여기서 몇번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당신은 식민사학이오 라고 하면 뺨따구 맞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어수선하게 이야기를 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좀 말씀하셔야 하겠네요. 그리고 혼자 기쁨에 넘쳐서 유레카를 외치는 것은 자유입니다만, 독립선언서가 아닌 다음에야 내가 모든 비밀을 밝혀냈다고 해봤자 별로 감동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많이 봐왔거든요.
18
이제 다시 환장할 일이 생긴다.
수로가 42년에 가야를 세웠다고?
그래서 비류백제 삼한백제론이 나왔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수로는 3말 4초의 사람이다.
가야사 조작의 키는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120+30+30+30+30=240 이다. 즉 4갑자 올린 것이다.
그럼 신라본기에 나온 가야의 기사는 거짓인가? 맞다.
42년 가야의 건국은 맞다.
다만 금관국과 가야를 삼국사기는 분명히 하고 있다.
금관국은 282년 이후에 세워졌다.
그것은 오늘날 고고학과도 일치한다.
누가 세워 주었는가? 백제다. 백제 부여씨다. 왜?
삼국사기 파사왕조에 수로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수로와 파사는 짝이다.
언제나 같이 움직인다.
파사가 5대왕으로 조작되었으니 당연히 수로도 거기에 따랐다.
왜? 수로와 파사는 같이 움직였으니까!
그러기에 수로설화에 파사석탑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파사왕을 뜻한다.
파사는 5대왕이 아닌 18대 왕이다.
마찬가지로 수로도 그 때 사람이다.
가야연맹? 전기 가야는 금관국이 주도하고 후기 가야는 대가야가 주도했다고?
무슨 풀 뜯어 먹는 소리냐?
가야는 제대로 된 나라도 아니었다.
오직 백제의 따라지, 왜의 따라지였을 뿐이다.
이래도 일본서기를 무시하는가?
그들은 한결같이 가야지방에 대한 지배권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정확한 것이다.
그것이 비록 <임나일본부>가 아니라도.
그런 가야가 왜를 세웠다고? 웃기지 마라! 피라미가 고래를 낳은 꼴이다.
고고학도 이미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가야 지방은 북방계 유물로 가득한 것을.
수로-거등-마품-거질미-이시품-좌지-취희-질지-겸지-구형-세종-솔우-서현-유신 13 - 12 - 11 - 10 - 9 - 8 - 7 - 6 - 5 - 4 - 3 - 2 - 1 - 0
즉 수로는 유신의 13대조가 된다.
그러면 수로는 어디에서 왔는가? 과연 그 애비는 누구인가?
이제 허접한 비류백제, 삼한백제론은 끝낼 때가 왔다.
비미호는 일본서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수로는 결코 1c의 사람이 아니다.
그런 이론은 무의미한 또 하나의 헛말일 뿐이다.
그렇다면 가야의 시조는 누군가? 삼국사기에서 밝히고 있다. 이진아고왕이다.
이진아고가 누구인지는 아직 모른다.
더 파고들어야 한다.
하지만 당연히 수로는 바로 투후 김일제의 후손인 것이다.
바로 흉노의 자손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무왕비의 위력이요, 성씨록의 위력이요, 돈장의 위력인 것이다.
이를 박창화가 절대로 알 리가 없었다.
첨부하자면 무력은 김유신의 할아비가 아니다.
유사 문무왕 조서에 나온 대로 문희는 세종-솔우-서운(서현)-문희의 계통이다.
유신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의 세종은 이사부의 아들 세종과는 다르다.
그 점은 너무 길므로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그럼 어떻게 해서 무력이 유신의 할아비로 둔갑이 되었는고?
바로 서현의 출세욕 때문일 것이다.
삼국사기와 유사, 화랑세기는 그 답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돈장엔 그 증거의 일단이 나온다.
19
요의 수도는 임황이요, 이 곳이 서요하의 상류지역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요동도 요서도 다 요의 땅이었다.
다만 요동은 약간의 요동(搖動)이 있다.
- 혹시 모른다. 요동이 진짜 왕씨 고리의 땅이었을지도 -
어쨌거나, 지나의 어느 시대 어느 기록에서 요나 거란족이 장성(만리장성) 남쪽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한 적이 있는가?
어디 중국을 침략하여(중국이 연운 16주를 떼어주기 전에) 나라를 세웠다고 지적한 적이 있는가? 없다. 결코 없다.
그런데도 안동도호부가 요동이고 만리장성의 기점이 압록강이었다고 망발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무엇을 근거로 그리 떠벌리는가?
만리장성이 요서를 가로질러 요하를 끊고 압록강에 닿았다고 식민사학과 그를 추종하는 이 나라 주류사학계는 아직도 망발을 늘어놓고 있는가?
모두다 학문의 교수대로 보내야 할 것들이 아닌가?
역설적으로 만리장성은 결코 요서를 넘어서지 못했고 안동도호부는 난하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 고리의 마지막 평양성은 어디였는가? 바로 오늘날 요동 지역임을 말해준다. 요사는 고대사의 비밀을 모조리 간직하고 있다.
그 뒤에 나온 <송나라 이후의 고지도>를 보더라고 결코 만리장성이 요하를 가로질러 압록강에 닿은 것으로 그려진 것은 없다.
바로 오늘날의 만리장성과 거의 궤적이 일치한다.
즉 명나라가 쌓은 오늘날의 장성이 바로 진시황대에 쌓은 만리장성인 것이다.
이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가? 물론 다른 증거도 고대문헌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존화사관주의자들, 사대주의, 식민사학, 동북공정의 앞잡이를 자처하는 주류사학과 그 추종세력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song님이 이 싸이트에서 논한 논리가 정확하다.
대릉하변의 조양이 선비족의 수도인 용성이라고? - 지나던 개가 웃는다. -
그곳은 바로 고조선의 터전, 고리의 터전이었다.
바로 한나라 요동의 군현과 고리가 충돌하던 지점이다.
그리고 요는 어쨌거나 연운 16주를 차지한다.
그곳은 장성 이남이었다.
사학자 누구도 연운 16주를 오늘날 장성의 북쪽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바로 요나라 시대의 장성이 오늘날 장성의 궤적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식민사학이나 지나의 억지 이론대로 요서를 가로지르고 요하를 건너 압록에 닿았다면 연운 16주가 요동이나 요서에 있었단 말인가?
즉 만리장성은 전국시대에 쌓고 다시 명나라가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축성한 것이다. 결코 다른 곳으로 옮겨 쌓은 것이 아니다.
그럼 요는 어디에서 성장했는가?
역사에서 지워졌지만 요는 분명히 고리의 영역에서 성장했다.
고리를 이은 발해의 영역 안에서 성장했다.
고리 멸망 후에 한때 강성하기도 했지만 얼마 뒤에 바로 발해의 지배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발해의 약화를 틈타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발해의 동만주에 뒤이어 서만주에서 일어난 것이다.
거기엔 또 하나의 변수가 있었다.
바로 오늘날 요동지역의 신라였다.
신라가 요동지역에 있었다고? 그렇다.
신라는 요동지역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신라 9주는 잘못된 것이다.
삼국사기와 후대의 기록을 보라!
9주 외에도 주가 몇 개 더 있었다.
삼국사기 지리지는 심히 잘못된 고증일 뿐이다.
잘못되고 날조된 역사의 편린일 뿐이다.
각설하고 이래도 요가 남의 역사인가?
어떻게 요의 역사가 지나사가 될 수가 있나?
민족적 친연성과 풍습, 문화, 역사 강역 어느 쪽도 우리하고 가깝지 되놈의 역사와 가깝지 않다.
고조선, 고리, 발해의 영역에서 일어났으니 당연히 우리역사인 것이다.
이게 다 누구의 죄인가?
바로 김씨의 죄다. 신라김씨의 죄다.
바로 뜻 없이 살아온 이 땅의 지배세력들이다.
20
일본열도 고대사의 위대한 천황으로 통하는 웅략은 누구인가?
고리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계획한 개로왕은 일차로 왜 왕권을 접수하기로 한다.
이미 대륙의 문명에서 멀어지고 문화적으로 떨어진 열도는 불안정하였다.
더구나 부여씨와 목씨의 타협으로 김씨인 윤공이 잠시 자리를 이었지만 부여씨와 목씨의 갈등도 여전했다.
하지만 대륙에선 부여씨가 이미 확실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고 열도의 부여씨도 응신의 후손을 비롯한 여러 씨족들이 강성한 상태에서 개로의 동생인 곤지의 등장은 커다란 회오리를 몰고 온다.
그는 거의 무력으로 정권을 잡고 왜왕에 오른다.
그러다가 백제가 다시 고리에 패망하고 수도인 평양이 대파되는 위기를 맞는다.
그러자 그때까지 왜의 영역이었던 충남과 호남지역을 백제에게 준다.
일본서기에서 천황이 구마나리를 주어 백제를 부흥하게 했다는 것이 결코 거짓이 아닌 진실인 것이다.
바로 호남의 왜식 고분들은 그때까지도 그곳이 백제의 직할 영역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그런 땅을 아낌없이 마구 준다?
바로 왜와 백제가 동족이 아니라면 절대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각설하고 웅략인 곤지는 국사를 맏이인 청녕에게 맡기고 백제로 온다.
그러다가 혼란한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희생된다.
그 시신은 다시 왜로 옮겨져 왜왕의 자격으로 모셔진다.
훗날 청녕이 다시 남조정권에 표를 올린다.
바로 왜왕 무(武)다. 결코 무는 웅략이 아닌 것이다.
왜 지나사서엔 5왕인데 일본서기엔 인덕-이중-반정-윤공-안강-웅략-청녕의 7명인가? 언제 지나사에서 외국역사 기(紀) 썼던가? 열전만 썼지.
인덕은 찬, 진은 반정, 제는 윤공 흥은 안강 혹은 미륜, 무는 청녕이다.
물론 그들의 부자관계 등도 맞지 않다.
지나사서에서 쓴 동이열전은 언제나 참고용일 뿐이다.
오직 일본서기, 성씨록을 참고하여 계통을 밝힐 수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다. 한국고대사도 그리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주는 삼국사기와 유사다.
동성이 왜 동성인가? 바로 동쪽 성에서 온 왕이기 때문이다.
왜는 백제의 동쪽이기 때문이다.
왜와 백제가 한 집안이 아니라면 절대로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서기에 천황이 동성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백제왕으로 보낸다.
그 천황이 과연 누구란 말인가? 바로 곤지의 맏아들인 청녕이다.
일본서기는 웅략기에 넣어놓았지만 결코 웅략이 아니다.
그 비밀은 바로 기년조작에 있다.
그러다가 훗날 계체가 왕위에 오른다.
이는 아마도 곤지의 막내이거나 손자일 확률이 높다.
일본서기가 맞다고 본다면(계체 나이를 감안하면) 아마도 곤지의 셋째에서 막내 사이일 것이다.
혹은 개로왕의 다른 아들일지 모른다.
다만 아직 웅략이후로는 잘 알지 못한다.
내가 거기까지 신경 써서 공부할 틈이 없었다.
왜 계체라고 하였을까? 바로 체(體)를 이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일본서기는 천황의 호칭을 그냥 아무렇게나 적지 않았다.
바로 그 호칭에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이다.
훗날 다시 천무가 정권을 쥔다.
생각건대 천무는 원래 김제상의 후손인 백제왕일 확률이 높다.
생각하라! 내가 왜 백제본기에도 없는 백제왕이라고 부르는지!
한 가지는 확실하다.
천무는 김씨다.
그럼 백제사에서 김씨왕이 있었는가?
그렇다. 확실히 있었다. 밝히지 않았는가? 사요왕이다.
그럼 사요가 최초의 김씨 백제왕이었나? 아니다. 누구인가? 바로 숭신이다.
그러기에 神의 칭호를 얻은 것이다.
언감생심이지만 천무가 정권을 잡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다.
김씨들은 이래저래 신라와 일본 양쪽에서 역사조작에 착수한다.
서로에게 이득이었으므로. 그들은 역사를 도살한 것이다.
천무 이래 신라와 일본의 빈번한 접촉은 바로 역사조작을 위한 수순이었다.
천무가 정권을 쥔 것은 백제와 고리와 망하고 김씨가 득세하던 바로 그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쩌면 일본의 문무천황은 정말로 신라의 문무왕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환무가 집권한다.
바로 오늘날 일본천황가의 직계다. 바로 부여씨다.
하지만 그들도 뒤틀어진 역사를 바꾸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륙의 일을 잊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로 매진한다.
하지만 족보는 필요했다. 그러기에 성씨록이 나왔다.
바로 일본삼서중에서도 성씨록이 핵심인 까닭이다.
바로 부여씨와 해씨 김씨와 박씨와 목씨의 족보인 것이다.
백제는 일명 구다라라 한다. 바로 구다라로 읽어야 한다.
물론 후대에 음가가 변형되었건 어쨌건 백제의 주류인 일본이 구다라라 하였다.
백제를 제대로 모르는 우리는 당연히 거기에 따라야 한다.
물론 우리가 백제의 주류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백제의 기록이 깡그리 사라졌기에 몰랐을 뿐이다.
구다라를 구다라라 읽어주는 게 무엇이 잘못된 일인가? 무엇이 창피한 일인가?
각설하고 고구려연구회 등에서 내 놓은 고구려 지도를 보자!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렇게 큰 고리가 무엇이 부족해서 콩알만한 백제와 신라를 꺾지 못하여 나라가 망하고 통일을 못했단 말인가?
당시의 기록은 분명히 고리와 더불어 백제를 대등한 나라로 그리고 있다.
76만호대 69만호다.
오히려 백제가 크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참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정의한다.
모두다 거짓이다.
위대한 고구려를 창조하기 위해 역사를 심히 왜곡하고 있다.
북한의 주체사학이나 식민사학이나 다 마찬가지다.
식민사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고대사 복원은 꿈일 뿐이다.
위대한 것은 고리가 아닌 백제였다.
그들은 망한 부여를 다시 일으키고 모용씨에게 두 번이나 패망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백제를 세우고 역사의 강자로 키워냈으며, 일본열도를 정복하고 바로 한민족의 역사지평을 넓혔다.
물론 거기에는 커다란 힘이 작용했다.
바로 찬란한 문화를 가진 역사 고조선이 있었던 것이다.
일부의 주장처럼 동남아나 해외로 뻗어나갔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일본서기나 지나의 기록은 분명히 그것을 예측하게 해 준다.
우리는 백제에 대해서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백제에 대해서 피어린 반성의 역사를 써야 한다.
패배주의, 빈정거림, 반(反) 백제주의의 식민사관으로는 결코 백제의 비밀과 역사의 비밀을 풀 수가 없다.
21
신라김씨의 시조는 알지도 아니요, 최초의 김씨왕은 미추도 아니다.
시조와 최초의 김씨왕은 바로 성한이다.
그런데 신라김씨들은 왜 하필 신라본기에서 미추를 김씨왕의 선조로 하였을까?
궁금하지 않는가? 과연 미추가 누구기에? 앞에서 얘기했듯 구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상장돈장에 분명히 미추가 구도의 아들로 등재되기는 했으나 그것이 조작임은 한 눈에 드러난다.
바로 구도-말흔-말구의 계보다.
사기에 미추이사금과 말구는 형제라고 했다.
말이 되는 소린가? 그러면 구도는 미추의 할아비겠네!
그리고 시대로 보아 말구가 과연 내물의 아비가 될 수가 있는가? 절대 아니다.
앞에서 미추는 20대 왕임을 밝혔다.
바로 내물의 전왕이다.
언젠가 김태식씨가 갈문왕을 논하면서 여러 얘기를 했는데 그의 얘기가 거의 정확하다.(거의?) 여기서 길게 따지지는 않겠다.
미추의 어미는 이칠갈문왕의 딸이라고 했다.
그럼 아비는? 당연히 왕이어야 한다. 왜? 이칠은 왕의 장인이기 때문이다.
그럼 미추의 아비가 왕이었나?
그렇다. 고대문헌 다 뒤져서 찾아보시라. 분명히 있다.
화랑세기에 진골정통을 소개하면서 왜 예로부터의 진골이 아니었다고 하였는지 이해가 간다.
<화랑세기>의 역자인 이종욱은 거기서 이상하게 얼버무렸다.
왜? 그 문장의 뜻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과연 그 뜻이 무엇인가?
미추가 어째서 진골정통이 아니면 왕비로 맞지 말라고 했는가?
거기서도 미추는 내물의 전왕임이 드러난다.
멀리 13대 왕이라면 가능한 얘긴가?
그러면 유례부터 흘해까지 진골정통을 왕비로 맞았는가?
유례, 기림, 흘해가 맞은 진골정통 왕비 제시해보라!
그것 하나로도 화랑세기는 절대로 위서가 아니다.
박창화가 재미삼아(?) 신라사 지으면서 내가 제시한 위의 신라 왕통을 따랐는가?
아니다. 바로 삼국사기에 나온 대로 했다.
바로 그가 화랑세기를 짓지 않았다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다.
그럼 미추의 할아비는? 알 수 있다.
왕이었다. 증조할아비는? 왕이었다.
바로 미추의 증조부터 이어지는 계통만 밝혀도 고대사의 비밀이 1/5은 다 드러난다.
왜 김유신의 혼령이 하필 미추왕릉으로 들어갔나?
유신은 알다시피 수로의 후손이다.
과연 수로와 미추는 어떤 관계였기에?
백제의 신라정벌(298년 이서고국의 침입)에서 어찌 미추왕이 등장하는가?
과연 미추왕은 어디에 묻혔는가? 앞에서 말한 황남대총이다.
황남대총이라고? 그렇다.
경주에 미추왕릉이 있던데? 웃긴다.
대나무가 있다고 미추왕릉인가? 바로 삼국사기에 답이 있다.
대릉에 묻혔다.
각설하고 황남대총은 왜, 가야, 신라, 백제를 아우르는 고고학의 결정판이다.
당시의 모든 비밀을 다 담고 있다.
그걸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다. 왜? 문헌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하긴 <일본서기가 백제서기>임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무얼 기대할 것인가?
어째서 왕릉에선 금관이 안 나오고 금동관만 5-6개 쏟아지고 은관이 나오며 왕비릉에서 금관이 나오나? 내물과 같은 계열의 왕이었다면 그랬을 것 같은가?
미추를 왜 하필 13대에 집어넣었을까?
왜 혁거세가 13세에 왕위에 올랐다고 했는가?
관련이 없는 것 같은가?
천만에! 고대의 사관은 후세에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
바로 성한왕에 대한 비밀의 코드다.
그것은 바로 13이다.
그러기에 가장 수치스런 기록인 우로왕의 죽음으로 인하여 우로는 왕에서도 삭제되는 비운을 당해야 했다.
22
고조선이 흩어진 이래 불행을 당한 것은 이 땅의 역사였다.
고리와 백제가 동족끼리 투쟁하다 망한 이후로 발해와 신라가 대립하다 끝내는 요-금-원-청을 거쳐 되놈들의 영역으로 넘어가 그들이 마치 요와 금과 청의 역사를 저들 것처럼 떠벌리게 되었다.
우리가 그들을 마치 다른 민족 다른 역사처럼 인식하게 되었으며, 일본열도는 뿌리를 잃어버리고 마치 독자생성의 논리가 맞는 양 발광하고 있다.
그리하여 대륙과 열도의 같은 형제가 서로를 몰라보고 원수가 되었다.
고리와 백제가 치열하게 투쟁한 것처럼.
그리고 오늘날 한반도의 두 형제는 마치 남보다 더한 원수가 되어가고 있고 타 족속인 되놈들에게는 유학이 들어온 이래 사대주의로 굽실거리며 얼치기 되놈이 되어 소중화를 자처하고 같은 뿌리인 만주인과 몽골인과 일본인은 오랑캐와 왜놈이라고 경멸하고 있다.
그러니 조상의 혼이 돕겠는가?
같은 핏줄을 미워하고 천시하며 남으로 여기고 경멸하는 그런 나라 그런 역사에게 조상들이 무엇이 좋다고 영광을 주고 미래를 주겠는가?
자기의 뿌리를 부정하고 선조로 인식되어야 할 단군의 목이나 자르는 족속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어 번영의 기틀을 주고 영광의 기회를 주겠는가?
황제가 중화 한족의 조상인가? 다만 상징일 뿐이다. 마찬가지다.
단군이 이 나라 사람 모두에게 직접조상은 아니라도 다만 상징일 뿐이다.
징기스칸이 몽골의 상징인 것과 같다.
로물루스 형제가 로마의 상징인 것과 같다. 워싱턴이 미국의 상징인 것과 같다.
오히려 황제란 작자가 한족에게 남긴 핏줄의 비율보다 단군족은 이 나라 이 민족을 비롯하여 만주인 일본인에게 훨씬 많은 핏줄을 남겨주었다.
벗어나라! 몽매에서 깨어나라! 어리석음에서 깨달아라! 민족의 뿌리를, 역사의 뿌리를! 남을 업신여기고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다.
스스로 깔아뭉개고 비하하는 못된 습관과 버릇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 키는 일본삼서가 쥐고 있다.
삼국사기와 유사가 쥐고 있다.
돈장과 세기가 뇌관을 쥐고 있다.
이제 한민족 역사의 네크워크를 구축할 때다.
조선-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온 것만이 우리역사는 아닌 것이다.
바로 잃어버린 북방의 역사를 우리 것으로 해야 한다.
잊고 살았던 열도의 역사를 다시 배워야 한다.
고대사의 복원은 바로 삼국초기의 복원이다.
그것이 복원되지 않는 한 고대사는 없다.
그것이 복원되면 고조선이 복원된다.
후대의 역사인 후신라와 발해도 복원된다.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주류학계나 재야학계나 모두 고대에 대한 인식은 고리가 30점, 신라가 10점, 가야도 역시 10점, 백제는 5점 밖에 줄 수 없다.
바로 핵심인 백제와 가야 신라사가 빵점 수준이다.
이 곳에서 만난 분들 중에 내 개인적인 평가로는 유정님이 최고수다.
그 외에 김태식, 바비, 신동훈, 정석근, song님 등이 뒤따른다.
솔직히 유정님은 내 글을 읽는다면 내 뜻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대단한 유정님과 바비님.
나는 그 정도로 미세한 것에서는 솔직히 유정님을 비롯하여 몇몇 분에게 결코 미치지 못한다.
김태식님의 그 박식함은 놀랍다.
가끔 그의 블로그를 들여다보며 동냥을 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큰 기틀이다.
줄기가 나와야 잎이 자랄 것이 아닌가? 밖에서는 구자일이란 분이 고수다.
다만 요즘 이상한 데로 빠져서 안타까울 뿐이지만...... 학계에서는 이덕일, 이형구, 김종서, 정형진 등이 앞서간다.
여러분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마구 쏟아내어 질문하지 마시기 바란다.
두 번 세 번 읽어보고 고대사서 다시 들여다보고, 지도 그려가면서, 계통도 그려가면서 생각하기 바란다.
개인별로 한 코너에 한 가지 씩만 질문해 주셨으면 한다.
물론 다 답변할지는 모르지만 시간을 내서 언젠가 한꺼번에 답변해 주겠다.
근거 없는 비방이나 어쭙잖은 증거 들이대면서 반박하지 말라.
웬만한 배짱과 증거로 내가 이런 주장을 한다고 보는가?
어느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챙긴다.
주류사학의 이론은 이제 모조리 폐기처분해야 한다.
지나와 동북공정의 하수인들은 이제 역사를 훔치는 것을 넘어 문명을 통째로 도적질하려 하고 있다.
그것이 지나의 주장대로 진실이라면 노여워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거짓말이 뻔하고 억지가 뻔한데도 이러한 때에 아직도 식민사학의 나팔수 동북공정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그것을 자각하지 못함은 스스로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다.
고구려 연구 한답시고 소위 역사학자란 인간들이 국민의 피 같은 세금 일년에 100억씩이나 쓰면서 무얼 연구하겠다는 건가?
모두 사기꾼들일 뿐이다.
문헌을 뒤지고 종합해서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고 다른 쓰레기 논문 짜깁기해서 논문을 쓴다.
그러니 또 다른 쓰레기가 될 뿐이다.
삼국이 부체제 부족국가 형태였다고?
천년 이상을 고대국가로 자란데서 어느 날 갑자기 퇴보하여 부족국가가 되나!
그 돈을 차라리 다른 데 써라.
그 돈으로 지나사서 일본사서 번역하고 보급하는데 써라.
당신들 주류들이 과연 일본서기 하나 제대로 번역했나?
성씨록 번역했나? 지나사서 하나라도 온전하게 번역했나?
그것이 우리가 배달국과 조선과 고리와 신라와 백제의 조상들에게 사죄하는 길이다. 고리는 1차 방정식이다. 부여는 2차, 가야는 3차, 신라는 4차, 백제는 5차 방정식이다.
1차 방정식도 제대로 풀지 못하는 주제에 5차를 풀겠다고?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
고리와 부여를 풀어야 가야, 신라, 백제(왜)가 나온다.
역으로 백제를 풀면 모든 것이 풀린다.
그 백제의 역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바로 일본삼서에 고스란히 존재한다.
고고학은 필요하다.
그러나 위험하다.
바로 문헌이 제대로 해석되지 못한 고고학은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역사왜곡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툭하면 하는 말이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문헌이 없다고 한다.
물론 중원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이래로 문헌이 공백인 적은 없었다.
다만 몰랐을 뿐이다. 그 문헌이 제대로 해석된다면 이제 고고학은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다. 역사의 기록이 있는 곳에서 고고학은 당연히 문헌역사학의 시녀일 뿐이다.
고고학이 주가 되는 것은 세세한 부분과 역사기록이 없는 곳에서의 추측뿐이다.
23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고 결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충격의 순간들을 지나왔다.
천조대신이 도모왕이고 도모는 결코 동명이 아니라는 것,
박제상이 아니고 김제상이며 그가 윤공천황이라는 것,
신라왕통이 조작되었다는 것,
성한이 신라왕이고 혁거세이며 문무왕비가 정확하다는 것,
신라소년에 의한 백제왕 암살이 마한의 분서왕이라는 것,
신라는 백제가 세웠다는 것,
응신이 침류왕이라는 것,
수로가 3~4c 사람이라는 것과 역시 백제가 금관국을 세웠다는 것,
파사가 신라 18대 왕이며 제상의 5대조이며 백제왕 사요의 사위라는 것,
백제에 김씨왕이 있었다는 것,
원래 왜왕이 목씨라는 것,
박씨의 시조가 왜 목씨 왕족이며 신라의 초대왕인 호공이라는 것,
고리의 평양이 요서에 있었고 훗날의 안시성이라는 것,
근초고왕이 공격한 평양성이 안시성이라는 것,
백제의 수도 한성이 평양이라는 것,
비류왕의 어머니가 소서노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녀가 신라정벌의 주역이라는 것과 그것을 기록한 일본서기가 사실이라는 것,
미추왕의 아버지도 왕이었으며 선대도 모두 왕이었다는 것,
결코 미추가 정통신라김씨가 아니라는 것,
알지는 박씨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 등 모두가 놀랄 새로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진실이 그러한 것을.
그 진실의 시작은 바로 부여가 부활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사기만 정밀하게 들여다봐도 부여가 부활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고구려본기 태조왕기에 그 답은 나와 있다.
어쭙잖은 문구 하나, 증거 하나로 역사를 판단하지 말라.
모든 증거를 종합하고 체계화하여야만 ?
그 진실의 시작은 바로 부여가 부활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사기만 정밀하게 들여다봐도 부여가 부활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고구려본기 태조왕기에 그 답은 나와 있다.
어쭙잖은 문구 하나, 증거 하나로 역사를 판단하지 말라.
모든 증거를 종합하고 체계화하여야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내 주장도 전부라고 하지는 않겠다.
세세하게는 착오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큰 덩어리로는 어디까지나 진실이다.
나는 결코 추측이나 소설을 쓰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역사서에 나온 것을 그대로 재해석하여 제대로 인식시켜 줄 뿐이다.
지금까지 나온 고고학을 참고하고 적용할 뿐이다.
바로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조작의 고리를 밝히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것은 바로 고대사서에 다 있다.
내가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여 여러분에게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역사를 원한다면 참고할 만한 뛰어난 저서들을 소개하겠다.
왜 그런지는 스스로 판단하시기 바란다.
살아있는 한국사 1,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 이덕일(일본삼서만 제대로 알면 무서운 존재가 될 분)
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문화의 비밀 - 이형구(고고학계의 최고 수작)
요서지역의 청동기 연구 - 복기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 김태식(화랑세기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
고깔모자를 쓴 단군, 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왕족,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천왕 - 정형진(뛰어난 역작)
후한서 동이열전 연구 - 기수연(기존 역사학계 최고 수작)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 - 강길운(정말로 꼭 필요함)
삼국지 바로 읽기, 대쥬신의 역사 - 김운회(생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중국북방이족과 조선상고사 - 나동현(많은 자료가 있어서 추천)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연구’에(후한서지리지의 수학적 연구 ) - 김종서(아직 확보하지 못했음 누군가 구해주시면 좋을 듯) 90점 - 물론 이 분의 <한사군위치의 연구>는 책으로 나온 것이 있다.
아나타는 한국인 - 박영미(인문서로 쓴 한일고대사)
일본속의 한국문화 유적을 찾아서 - 김달수(일본이 백제란 것을 알았다면)
백제와 대화일본의 기원 - 홍원탁(아직은 인식 부족)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부여기마족과 왜 - 존 카터 코벨(외국인이 본 뛰어난 혜안) 금문의 비밀 - 김대성(아직은 필자도 어려움. 그러나 뛰어난 역작) 한자로 풀어보는 한국 고대신화 - 김용길 (역시 뛰어남) 언어속에 투영된 한민족의 고대사 - 정연규(참고할 만함) 고조선과 부여의 제문제 - 한국고대사연구회(주류학계의 일단을 볼 수 있다.) 기후변화 - 김연옥(이 외에도 다른 기후변화에 관한 논문도 좋을 듯) 실크로드와 한국문화 - 정수일(이분의 저작은 문화교류사에서 일가견이 있다.) 중국역사지리 - 류제현(중국역사지리에 관한 저작으로 참고할 만함) 고조선 부여사 연구 - 백산자료원(어렵지만 봐둘 것)
그 밖에 일본서기 - 전용신 선생님,
고사기 - 권오엽 선생님,
조선상고사 - 신채호 선생님,
화랑세기 - 이종욱,
지나사 동이열전 부분과 지리지 부문(통전 수경주 요동관계 포함),
요서 요동 관계 기록 일체,
한국고대 금석문, 고대사 사료 집성(한치윤의 해동역사에 대부분 들어있음. 국사편찬위에서도 제공함),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도교 경전(노자, 장자, 열자, 포박자, 회남자, 주역)그 외에 많은 참고자료를 두루 섭렵해야 한다.
외골수와 아집은 또 다른 조작만 낳을 뿐이다.
다시 말하건대, 돈장과 세기는 바로 키포인트다.
결코 박창화가 끼적거린 것이 아니다.
그 가치를 알아야 진정한 고대사를 복원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당시 고대사서를 거스르는 게 아니다.
철저하게 보완하고 있다.
학자들이 쓴 논문이나 저서를 참고하는 것을 대부분 제외한 것은 그들이 잘못된 인식으로 역사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참고할 필요가치가 없다.
논문 얘기가 나왔으니 더한다면 김태식씨가 논한 논문이론이 참으로 와 닿는다.
그러면서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추천했다.
정말로 한 눈에 쉽게 읽어가야 논문이지, 무슨 주석 각주를 주렁주렁 매달고 그들만이 읽는 논문으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이미 학문이 아니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무슨 서론 본론 결론이 필요한가?
그저 논문 중에 자연히 드러나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이나 학계의 논문형태의 수준은 초등학생 수준보다도 못하다.
자세한 것은 김태식씨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카터 코벨이 위 저서에서 미술사가답게 고대 일본벽화를 얘기하면서 배에 실은 말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면서 부여족이 일본을 정벌했다고 단언하고 있다.
혜안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이다.
열도에는 말이 없었음을 모든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의 주류는 자생이론이다.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세력이 한반도를 침공했다는 것이다.
위에서 내가 논했듯이 자기 열도도 통일하지 못한 세력이 무슨 수로 밖으로 힘차게 뻗어 나가나?
그러면서 코벨은 구미학자들이 부여족이 일본을 정벌한 것을 주장한 것을 나열하고 그것은 의심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에가미가 기마민족정복설을 주장한 이래 많은 일본의 사학자들은 정말로 부여족이 정벌했음을 감지하고 또 주장하고 있다.
물론 소수지만. 그런데도 이 땅의 학자란 것들은 부여는커녕 백제마저도 부정한다.
그러니 임나일본부설에 끌려 다닐 수밖에.
누누이 말했듯 일본의 원류는 백제가 아니다. 바로 백제 그 자체다.
일본서기는 분명히 적고 있다.
바로 비류왕이 열도로 건너가 정복한 시기를. 일본서기의 기년만 풀면 그 답이 나온다. 코벨은 그것을 알지 못하였지만 분명히 짐작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학자 중에 과연 코벨만한 혜안을 갖춘 이가 있던가?
삼국사기와 일본삼서는 바로 동전의 양면이다.
결코 따로 놀지 않는다.
일본삼서를 해석하려면 삼국사기가 있어야 하고 삼국사기를 바로 잡으려면 일본삼서가 있어야 한다.
그 촉매를 하는 역할이 상장돈장이요, 화랑세기다.
삼국사기는 자식을 자식이라 부르지 못하는 한 맺힌 기록이요, 일본삼서는 부모를 부모라 부르지 못하는 피 맺힌 기록이다.
그 아픔을 감싸주고 밝혀주어야 할 후손의 책무를 망각한 채 그저 편가르기와 비아냥, 악의에 찬 경멸성 어조로 역사에 대해 지껄이는 자들은 반드시 역사의 철퇴를 맞게 되리라!
아직도 일본서기와 고사기를 소설이라 폄하하는 자들이 많다.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을 소설이라고 지껄이는 얼간이들이 많다.
표현이 지나치지만 나는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박창화 선생의 다른 저작이 종이비행기라면 두 저작은 최첨단 우주왕복선이다. 내용을 가지고 판단해야지 자구나 용어 등으로 판단하는 자체는 어디서 굴러온 개뼈다귀인가?
김부식이 삼국사를 쓰면서 구삼국사를 너무도 많이 깎아냈다.
소위 고대문자가 졸렬하네, 거치네, 어쩌고 하면서 유교사관으로 역사를 덮었다.
그가 한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우리 고유의 것은 많이 깎아내고 중국사서 참고하여 빠진 부분만 채웠을 뿐이다.
그런 것은 그리 안했어도 아무 하자도 없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차라리 일본서기처럼 원본 그대로 전해오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다 수많은 고대전적 참고하여 <삼국지>에다 배송지가 주석을 단 것처럼 많은 주석을 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면 오히려 고대사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은 진실을 살필 수 있었을 것이다.
말을 더하자면 한단고기에 대해서다.
한단고기는 절대로 위서가 아니다.
물론 한단고기가 100% 진서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저본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저본을 바탕으로 쓰여 진 것이다.
증거는 많다.
지금까지 재야에서 주장한 증거는 모두 아니올시다이다.
바로 상장돈장과 화랑세기를 비롯하여 일본삼서가 제시하는 증거를 한단고기 중간중간에 섬뜩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유립이나 누군가가 그걸 지어내었다면 내가 제시한 위의 사실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얘기와 똑같다.
한 가지만 제시한다면 태백일사에서 한결같이 마한을 대동강 평양일대로 직시하고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한단고기는 절대로 위서가 될 수가 없다.
바로 역사서적(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의 고기류)의 위서여부는 문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전하고 있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물론 한단고기는 많은 부분을 심도있게 검토해야 하고 많은 가필과 위조를 걸러내야 한다.
내가 제시하는 고대사 관련 논거에서는 될 수 있으면 한단고기는 제시하지 않으려 한다.
한단고기가 없어도 중고사(부여 건국~고리 멸망)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고리가 망한 것으로 우리역사의 암울은 시작되었다.
겉으로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진정한 암울함은 백제가 망함으로 그리 되었다.
백제는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고리의 방패였다.
백제가 망하니 순망치한격으로 고리도 망한 것이다.
바로 우리역사의 암흑은 백제가 망함으로 시작되었다.
신라는 백제의 존재와 기록을 깡그리 없앰으로써 그들의 치부를 감추려 했다.
그리해야만 그들의 비밀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를 헤매게 하고 이천년이나 역사의 굴곡을 둘러쓰게 한 죄니 그 신라김씨의 죄는 크다 할 것이다.
비아냥대지 마라!
스스로 잘못이 있다면 고치는 것이 진정한 학문의 길이요, 학자의 도리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일본서기가 조작이라는 등의 수작 집어치우고, 세기와 돈장이 위서라는 헛소리 그만들 하시고, 삼국사기와 일본서기가 매우 정교하게 조작된 사서라는 것을 아시고 새롭게 출발들 하시기 바란다.
정말로 최소한 기수연씨 같은 생각을 가지기 바란다.
끝으로 일본서기에
왜 신무가 76년, 개화 60년, 숭신 68년, 수인 99년, 신공 69년, 응신 41년, 인덕 87년, 윤공 42년 등인지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은 결코 아무렇게나 역사를 쓰지 않았다.
철저하게 계산하고 심사숙고해서 그렇게 썼다.
역설적으로 그 방법론을 찾아내면 바로 일본서기가 어떻게 기년조작을 했는지, 해당 인물이 과연 누구인지 속속들이 드러난다.
삼국사기의 계통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 뿌리 채 드러난다.
위에서 일부를 제시했다.
그들은 지하에서 그 혁명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학은 역사학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인문학의 도화선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학의 혁명은 바로 인문학의 혁명이 된다.
불개혁 필혁명(不改革 必革命) - 개혁하지 않으면 혁명이 온다.
출처 : tong - 和而不同님의 우리 역사. 문화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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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는 광복되었는가? 언젠가 문천님이 자비왕비가 파호라는 사실이 고대사의 핵폭탄이 될 것이라고 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것이 비록 작은 일은 아니지만 다음의 것에 비해선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것은 무엇인가? 언젠가 내가 얘기했던 일본삼서 - 일본서기, 고사기, 신찬성씨록 - 다. 거기에 우리고대사의 7~9할이 들어있다. 진정한 핵폭탄은 그것이다. 그동안 성찰한 성과를 일부나마 공개한다. 과정은 거의 없고 답만 제시할 것이다.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무시해도 좋고 비아냥대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언젠가 그러는 자들의 가슴에 비수로 꽂힐 것이다. 귀 있는 자 듣고 눈 있는 자 보아라. 가슴을 열고 머리를 비워라. 지난 나의 글들을 반추하여 새로운 사실을 응시하라.
이른바 주류학계라는 이병도 이기백류의 반동 식민사관이 아직도 이 나라 고대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눈부시게 발전한 고고학과 삼국사기 기록의 타당성이 계속해서 밝혀지면서 이미 주류의 기반은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 싸이트에서 자칭타칭 논객이라고 하는 몇몇 허섭스레기를 비롯한 많은 역사학자란 자들이 역사를 우스개 거리로 만들고 있다. 윤내현, 이덕일, 이형구, 김종서 등이 연구성과를 내놓고 새로운 견해를 제시해도, 이도학, 이종욱 등이 주류에서도 새로운 의견을 내고, 정형진, 구자일 등이 제도권 밖에서 의미심장한 소리를 내도, 박영미 등이 주변학문에서 놀랄만한 연구를 제공해도, 그 철밥통은 요지부동이다. 이른바 송호정을 비롯한 몇몇 반골들은 더 심한 반동 논리를 내놓고 있다. 그들 허접들이 주장한 것들은 아무 근거도 없는 억지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위 사람들이 맞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들이 결정적으로 모르는 것은 일본삼서다. 그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 싸이트의 대표적인 주류신봉자 무명의 글을 보자. 1) 윤내현을 비판한 진개의 침입논리 - 고조선이 대동강이라고 강변한다. 2) 왜와 백제의 논리 - 백제가 왜의 속국이었을 뿐이라고 빈정댄다. 3) 박창범 인식에 대한 비판 - 신라의 일식기록이 모두 지나사서에 있다고 한다. 4) 낙랑군의 논리 - 대동강이 낙랑군이라고 생떼를 쓴다. 5) 백제의 논리 - 호남지역은 백제도 아니었다고 한다. 6) 부여의 논리 - 어쩌다 옳은 소리 한 번 했다.
자세한 것은 이 글을 읽다 보면 자연히 드러날 것이고 나중에 종합해서 살피기로 한다. 그 논리가 과연 맞는가? 하나같이 자기모순일 뿐이다. 그가 제도권 안의 인사임이 틀림없는 데 숨어서 아닌 척 하는가? 이들이 바로 식민사학의 나팔수요, 동북공정의 앞잡이다. 그들의 논리가 맞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청 높여 역사가 잘못되었다고 떠들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높고 백화만발의 학설이 떠도는 것도 그만큼 잘못된 역사를 배우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제대로 된 성찰도 없는 것이 무슨 역사학인가? 역사학도 실제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역사학은 담론 위주다. 고구려가 어디서 어떻게 건국되고 몇 년 몇 년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광개토왕 58성이 어디 일대고, 백제가 어디서 건국되고 시조가 누구이며, 위례성과 한성은 어디인지, 삼국사기 초기기록 하나하나 모두 맞는지, 가야시조가 수로인지, 신라김씨의 계통은 어떻게 되는지, 부여씨의 계통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 무슨 백제의 의의, 고구려의 역할, 삼국통일의 의의 등이 중요한가? 신라가 통일했다는 논리는 맞는가? 다시 말하지만 이제 식민사학의 논리를 쳐부수고 주류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려야한다. 그 공격무기는 있는가? 있다. 바로 일본삼서다.
역사를 바꾸는 것은 언제나 아웃사이더다. 결코 주류가 이뤄내지 못한다. 지나간 모든 역사가 그러했다. 징기스칸도 알렉산도도 나폴레옹도 모두 아웃사이더였다. 사마천도, 세익스피어도, 이태백도 그렇다. 갈릴레이도 아인슈타인도 패러데이도 플레밍도 코페르니쿠스도 모두 아웃사이더였다. 어지러운 한, 일 고대사도 결국은 아웃사이더의 손에서 결정 날 것이다. 이미 수많은 아웃사이더들이 그 철옹성을 부수고 있다.
고대사의 핵폭탄이란 제호로 23편을 연재한다. 끝까지 두세 번 읽고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자기의 논리,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격하게 내깔려 질문하지 마라. 질문은 1편당 개인별로 1건씩만 해 달라. 진지하게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사서를 보고, 왜 저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졌는지 생각해 달라. 말로 안 되는 개소리 잡소리는 상대도 않겠다. 시간을 내서 얼마 뒤에 한꺼번에 질문에 응하겠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묻고 각자 의견을 내서 토론도 해보라. - 말이 경어체가 아니지만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한 문서 작성상 그런 것이고 뜻이 그런 것은 아니니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2
우리역사의 비밀이란 싸이트를 운영하는 송준희, 오재성의 논리는 맞는가? 한마디로 아니올시다이다. 한마디로 엉뚱한 도그마에 빠져 있다. 뜨거운 가슴만 있고 차가운 머리는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도 왜 그곳을 들락거리는가? 죽어버린 식민사학의 억지논리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소중한 자료들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어째서 일본삼서가 왜 핵폭탄인가? 바로 백제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터지지 않고 알아채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바로 뇌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낙랑군이 대동강 일대라고 주장하는 허황된 주류 이론을 보자. 상식으로 보아 그게 맞는가? 그 일대는 왕릉급 무덤과 유물로 가득하다. 낙랑군은 한나라 때 유주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게 과연 낙랑군일 수 있는가? 그 당시 지나사 어디에 군소재지 중에서 낙랑군만한 유적이 있는가? 수도인 낙양과 장안 일대를 빼고는 없다. 심지어 유주의 치소인 계(북경 서남부)에도 그만한 유적은 없다. 상식으로 보아 그곳은 절대 낙랑군이 될 수 없다. 그곳이 낙랑군이 아니라는 것은 <한서, 후한서, 진서, 삼국지>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여기서 그걸 다 거론하진 않겠다.
그럼 낙랑국인가? 그것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 단 한번 기록에 나온 실체가 그렇게 대단한가? 그곳이 낙랑국이고 고리가 점령했다면 무엇이 부족해서 고리가 통일을 못하고 신라에 망했단 말인가? 자세한 것은 19편에서 논한다.
바로 그곳은 마한의 수도인 위례성이요, 달지국이요, 통합백제의 수도인 한성인 것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고리와 맞짱을 뜰 수가 있다. 한강유역에 무슨 고분다운 고분이 얼마나 있는가? 고작 적석총 몇 기일 뿐이다. 과연 적석총이 백제의 양식인가? 오히려 대가야나 금관가야보다도 못하고 신라에 비해서도 훨씬 떨어진다. 그 정도 영역과 문화로 어떻게 고리를 상대로 싸우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백제는 무엇이고 통합백제는 무엇인가? 근거는 있는가? 있다. 일본삼서다. 화랑세기 상장돈장이다. 그곳에서 나온 수많은 한씨관련 유물은 충분히 증거가 되고도 남는다.
화랑세기, 상장돈장? 그렇다. 바로 그것이 핵폭탄의 뇌관이다.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삼서라는 핵폭탄이 터지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박창화가 지어낸 것이라고? 웃기지 마라! 그것이 박창화가 지어냈다고 하는 소린 유아원 애들보고 우주생성의 원리라는 초끈이론을 이해한다고 하는 편과 같다. 무엇보다 박창화가 그것을 지어낼 이유가 없다. 지어낼 능력도 없다. 박창화의 다른 저작을 종이비행기로 본다면 돈장과 세기는 최첨단 우주왕복선이다. 그것이 위서라면 동양사서(삼국사기, 유사, 일본서기, 고사기, 성씨록, 사기, 한서, 삼국지, 진서, 후한서 등)는 모조리 위서가 된다. 왜? 진실을 담고 전하고 있으니까? 박창화는 그 진정한 가치를 절대 알지 못했다. 그것을 알았다면 그는 상장돈장을 더욱 정성들여 필사했을 것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을 담고 있는가? 고대의 사관은 정직했다. 한, 중, 일 어느 나라를 통틀어서 말이다. 비록 그들이 권력자의 억압으로 왜곡된 역사를 썼어도 반드시 그 증거를 남겨놓았다. 어느 시대 어느 사서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반드시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찾으면 된다. 일본서기는 어떻게 왜곡되었는가? 한마디로 기년조작이다. 물론 일부 계통조작이 가해지긴 했어도 근본적인 틀은 기년이다. 알아낼 수 있는가? 있다. 삼국사기가 있기 때문이다. 알아냈는가? 대충 그렇다. 가장 중요한 신무부터 웅략까지 일목요연하게 뽑아낼 수 있다. 여기서 공개할 수는 없다.
삼국사기는 정확한가? 아니다. 심하게 왜곡되었다. 다만 타당할 뿐이다. 그 실체를 벗겨낼 수 있는가? 있다. 일본삼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 조작의 틀은 한마디로 계통조작이다. 그 계통을 밝히는 것은 일본삼서가 없으면 안 된다. 무엇이 그런 것을 가능케 했는가? 바로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이다. 왜? 김씨들이 조작하고 날조한 역사가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본서기도 삼국사기도 다 김씨들이 썼기 때문이다. - 김씨들이 조작한 역사,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캐내기 위해 여행을 떠나자.
3
언젠가 내가 고대사 최대 비밀은 부여씨와 김씨의 동시 등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타당한가? 타당하다.
바로 김씨와 부여씨의 계통과 연대기를 밝히면 신라와 백제 가야의 역사가 드러나고 왜, 부여, 마한의 역사가 캐내어지며 고리 역사의 실체가 밝혀지고 북부여, 고조선의 역사가 빛을 내게 된다.
이후의 후신라와 발해의 역사 전개를 비롯한 여러 이론에서 부족하고 비밀에 쌓인 수백 수천 가지의 의문이 한꺼번에 풀어진다.
그것이 바로 일본삼서의 위력이요 그 일본삼서를 깨우는 세기와 돈장의 위력인 것이다.
산책과 안사, 탐정 등이 일본서기를 비롯한 일본삼서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내 놓고 있으나 한마디로 인식부족이다.
조작설과 분식론의 산책설, 비류백제론의 김성호, 삼한백제론의 안사, 칠지도에 근거한 왜국 건국론의 탐정, 무녕왕에서 시작된 홍원기와 홍원탁의 대화왜론 등은 허점투성이다.
왜? 그들은 일본서기 자체가 백제의 기록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무부터 응신에 이르는 일본서기 핵심의 기록을 잘못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초기백제와 부활한 부여의 실상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특히, 신무에서 응신까지가 제일 중요하다.
- 그 실상은 누가 지웠는가? 바로 신라다.
신라김씨다. 왜? 백제의 부용국이었기 때문에.
지나사서에서 거짓말 하는 것 같은가?
아니다. 그들은 정확히 적고 있다.
그러면 신라는 언제부터 백제의 부용국이 되었을까?
그렇다가 어떻게 동등해졌을까?
그들은 또한 응신부터 계체에 이르는 백제와 왜의 헤게모니 장악투쟁을 모르고 있다. 왜?
신라김씨들이 조작한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돈장에는 나와 있는가?
그렇다.
그 조작의 논리가 낱낱이 드러나 있다.
신무, 응신, 신공, 숭신이 누구인지 송두리째 드러난다.
고대사의 신대로 포장된 인물들이 누구인지 한꺼번에 드러나고 일본서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과연 어디까지가 중첩인지 무섭도록 밝혀진다.
각설하고 일본에선 어쩌면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을 분석하여 그 위력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 계통을 파악하여 두려워 발표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라도 좋다.
일본이 백제의 주류로 밝혀지는 그 순간은 모든 게 허물어진다.
가히 혁명이 된다. 천하가 뒤집어진다.
그야말로 모든 역사를 새롭게 써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만 새로 써지는 게 아니다.
모든 인문학을 허물고 다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바뀌면 인식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 가치관이 바뀐다.
가치관이 바뀌면 의지가 바뀌고, 의지가 바뀌면 다시 역사가 바뀐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역사학의 가치인 것이다.
그 가치는 바로 박창화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의 붓끝에서 시작되었다.
박창화의 <우리나라 강역고>란 책이 전에 나온 적이 있다.
나도 소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읽으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 정도 역사인식과 지리 인식을 가진 분이 세기와 돈장을 지었다고?
차라리 유아원 애들보고 시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을 풀라고 하는 것이 낫다.
<강역고>가 움막이라면 돈장과 세기는 타지마할이다.
움막이나 지을 정도인 시골농부가 타지마할을 혼자 설계해서 지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지만 세기와 돈장은 절대 위서가 아니다.
그것이 위서라면 고대 동양사서가 모두 위서가 된다.
광개토비와 문무왕비가 모조리 거짓이 된다.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 색공을 바치는 집단이라고? 코미디 하는가?
겉으로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라 그게 무엇인지.
진골은 김씨고 대원은 박씨라고? 신라가 모계라고?
2부 체제의 대표로 왕과 갈문왕이 있었다고?
그런데 어째서 왕은 이사금 마립간 등으로 불리는가?
갈문왕도 갈문이사금 갈문마립간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역사가 무슨 장난거리인가?
어째서 화랑세기에 대원신통 소개하면서 진골정통인 선혜가 대원신통을 잇나?
대원은 박씨라는 이론대로라면 선혜는 김씨이자 박씨겠네!!
그리고 남해왕이 왜 나오는가?
바로 대원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대원? 대원이 무엇이기에? 상장돈장을 보라! 대원신통의 계보가 일목요연하게 나온다. 그런데 어째서 선혜가 대원신통을 이었을까?
박씨의 시조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혁거세라고? 웃기지 마시라. 혁거세는 김씨다.
김씨의 시조다.
신라김씨의 시조다. 알지가 아니었더냐?
알지는 신라김씨의 또 다른 시조일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왜 문무왕비와 후대의 기록이 차이가 나는지 신라김씨들의 음모가 낱낱이 드러난다. 김씨들은 기분 나쁠 필요도 없다.
그대들 대부분이 진정 김씨인지도 의심스럽기 때문에...
4
‘삼국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 정신을....’
맞는가? 통일이란 무엇인가?
역사학적으로 통일이란 무엇인가?
갈라진 문화를 가진 민족이나 나라를 다시 합치는 것이 아닌가?
진시황의 지나 통일,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
베트남의 통일 등이 다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류의 역사학자란 것들과 거기에 넘어간 국민들이 짖어대는 논리가 있다.
신라가 외족을 끌어들여 반역사적인 통일을 했다고 하면 고리와 백제는 외국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웃긴다.
외국을 망하게 한 것이 통일인가?
침략이 아닌가? 점령이 아닌가?
지나에서 고리가 자기 역사라고 주장하고 그 선대인 부여와 고조선도 자연히 자기 것이니 내놓으라면 대응논리는 있는가?
스스로 외국이라 해놓고. 백제의 주류가 일본이라고 밝혀지고 일본이 백제를 다시 찾겠다고 하면 다 내주겠는가?
기가 막힐 뿐이다. 대한민국이 아닌 경상민국 또는 경북민국이 될 것인가?
삼국이 어떤 관계였는지,
부여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길래 고리와 백제로 갈라졌는지,
부여는 조선을 어떻게 대체하였는지,
부여씨와 김씨는 어떤 고리로 역사를 이어왔는지,
왜국은 어떻게 건국되었는지,
일본서기가 직시한 일본열도 왜국의 건국시조는 과연 누구인지,
과연 일본서기의 백제와 삼국사기의 백제가 동일한 지칭인지,
동명은 누구이고 주몽은 누구이며 어떤 관계였고,
온조는 누구인지 비류는 구대는 누구인지,
성한은 누구이고 혁거세는 누구인지,
그런 것들을 밝힐 생각은 않고 희한한 통일논리로 역사를 더럽히고 역사 앞에 죄를 짓고 있다.
주로 주장하는 자들이 대부분 신라주의자 영남패권주의자들이다.
수구반동집단이다.
그들은 역사를 분탕질해놓고도 다시 이 나라를 조각내고 있다.
바로 지역감정이란 논리로.
어찌 지역감정인가?
그야말로 특정지역의 지역패권주의를 교묘하게 얼버무리고 있다.
각설하고 신라는 결코 통일하지도 통일할 의지도 없었다.
그들 김씨들은 단지 자기들의 권력유지에만 급급했을 뿐이다.
역사의식 민본의식은 애초에 없었다.
우리는 단군조선이 갈라진 이래 한 번도 통일되지 못한 불행한 민족이다.
그것은 거의 김씨의 죄다.
이제 그 죄를 낱낱이 밝혀나갈 것이다.
왜? 제대로 된 역사, 올바른 역사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후대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쳤는지 가슴을 치게 되리라.
5
고리가 산적집단인가?
- 산꼭대기에 나라를 세웠다고?
오녀산성이 고리의 졸본이라고?
지하의 주몽이 웃는다.
요즘 한창 고리 드라마 열풍이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 나는 하나도 보지 않는다.
그야말로 식민사학의 나팔수 동북공정의 앞잡이들이 자기들의 논리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다.
그들의 선전장이기 때문이다.
멋대로 놀아나는 지식인 방송인 국민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관구검기공비는 그것을 증명한다.
삼국지는 분명히 기록했다.
그것은 환도를 쳐부수고 고구려왕을 몇 차례 추격하여 옥저의 끝자락에 암석을 새겨 공을 기록했다고
- 그곳은 고리의 중심이 아니었으며 변경이었을 뿐이다.
삼국지 오서 오주전(손권전)을 보라!
고구려에 대해 뭐라고 써 놨는지?
통설대로라면 바다도 없던 고리가 오나라와 배로 통교하는가?
고리는 어디에서 세워졌는가? 바로 요서다.
졸본은 서요하와 노합하가 만나는 일대이고 국내성은 그 약간 남쪽에,
다시 남쪽에 평양성(안시성)이다.
이것은 6편에서 논한다.
그러기에 모본왕 때 지나의 북부인 태원 등을 공격했던 것이 가능한 것이다.
저 멀리 압록강 중류에 쳐박혀 있던 고리라면 가능하겠는가?
고리는 새로 건국되었는가?
아니다. 해모수의 부여를 동명의 부여가 이어받고 다시 주몽이 이어받은 것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여의 계승일 뿐이다.
언제 고씨라 칭하였는가? 바로 6대 태조대왕 때부터다.
그러기에 태조란 칭호를 얻은 것이다.
왜 고씨라 성을 바꾸었는가?
바로 부여가 부활했기 때문이다.
부여를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세우기 위해서다.
부여가 부활했다고? 그렇다. 부여는 분명히 대무신왕 때 멸망당했다.
그런 부여가 부활한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어떤 계기로?
각설하고 부여의 부활은 역사를 바꾸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 한민족의 불행의 서막이었다.
아니 행운이 될 수도 있었다.
김씨만 아니었다면 광개토대왕만 아니었다면(?) 이것은 9편에서 논한다.
첨언하자면 태조란 호칭은 동양사에서 바로 고리의 태조대왕이 처음이다. 이래도 시호법이 오직 지나에서 시작되었는가? 우리가 바로 황제의 나라 천자의 나라가 아니던가? 어찌 지나사에 태조대왕보다 앞선 태조란 칭호가 있었던가?
6
옥저는 어디에 있었는가? 요서에 있었다.
요동만 바다를 끼고 있었다.
그래서 북옥저 정벌기사가 주몽왕 때 나오고 남옥저의 구파해 망명기사가 온조왕 때 나온 것이다.
북옥저가 어디고 남옥저가 어디인가? 그리고 동옥저는 무엇인가?
삼국지는 거기에 대해 답을 주고 있다.
후대인들이 삼국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낙랑을 대동강에 비정하느라 온갖 억측과 곡해를 하고 있을 뿐이다.
허접들! 바로 (본)옥저와 동옥저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본옥저는 어떻게 되었는가?
바로 고리의 소유가 된 것이다.
그것이 잠깐 위나라의 세력권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진나라로 이어졌다.
그 잠깐이 역사를 갈랐다.
바로 새로운 백제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만큼 관구검의 고리 침공은 커다란 역사의 회오리를 몰고 왔다.
애초에 그곳은 한나라 현도군과 임둔, 진번군이 설치되었다.
곧바로 임둔 진번이 폐지되고 현도군은 쫓겨 갔다.
쫓겨 간 곳은 난하와 대릉하 노합하가 삼각으로 만나는 지점이었다.
군이라기보다는 명목상의 군에 불과했다.
바로 그 위에 부여가 있었다.
그러기에 부여의 낙랑침공이 가능했던 것이다.
바로 후한서의 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낙랑군을 대동강에 비정해 놓고 후한서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주류라고 뻐기는 자들이 과연 역사학자냐?
<후한서지리지>에 있다.
낙양에서 동북쪽 한단까지 1100리라고.
지도 놓고 비율로 따져봐라! 죽었다 깨어나도 같은 동북방향 5000리인 낙랑군은 오늘날 요하를 넘어오지 못한다.
공손씨가 요동에서 황해도까지 다스렸다고?
무슨 오지랖 떠시나!!
그런 공손씨가 아무리 사마의가 뛰어나다지만 일거에 요동 양평성 무너졌다고 황해도까지 한꺼번에 무너지나?
그대들 주류 이론대로라면 핵심지역이 그 정도 밖에 안 되었던 고리도 수나라 대군과 당나라대군을 수없이 물리쳤다.
그 정도 세력이라면 촉나라와 버금가는 세력이다.
공손씨는 겨우 천진일대에서 대릉하에 이르는 정도였다.
공손씨가 동이를 통제했다고? 맞는 말이다.
통제의 의미를 모르는 식민사관의 나팔수들이 있을 뿐이다.
연안항로를 이용하던 그 시절에 만주와 한반도, 일본열도의 모든 세력은 반드시 그 지역을 거쳐야 중원으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 훗날 대방군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러기에 통제한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것을 공손씨가 마치 동이를 지배한 것처럼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부여가 현도군 또는 요동군에 속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바로 현도나 요동군을 통해 지나 조정과 접촉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을 속국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는커녕 책도 읽을 줄 모른다.
다시 평양성이 고리의 수도가 되었다.
바로 한나라의 안평현이다.
그래서 옮겨간 현도군에 서안평현이 생긴 것이다.
안평은 바로 <괄지지>에 말한 왕검성이다.
원래 예맥의 땅이다. - 역사에는 한결같이 말갈로 나온다. -
그것은 훗날 안시성이 된다.
바로 고리가 수도를 요동 장안성으로 옮기고 난 다음부터다
장안성이 평양성으로 불리자 기존 평양이 안시성이 된 것이다.
그 남쪽의 옥저 치소 동이현은 비사성이 된다.
바로 요나라의 해주다.
발해의 남경남해부다.
남해부가 북청이라고? 요사가 엉터리라고? 착각하지 마라.
요사는 약간의 착오가 있을 뿐이다.
왜 착오가 생겼을까? 바로 김씨 때문이다.
그래서 안시성을 치던 당나라 병사들이 비사성의 군대를 부른다고 표현한 것이다.
비사성이 요동반도 끝이라고?
<삼국지>와 <삼국사기>가 다르다고? 그렇지 않다.
삼국지와 삼국사기는 똑같다. 똑같은 말을 다르게 썼을 뿐이다.
삼국지가 부분적으로 자세하고 삼국사기가 체계가 있을 뿐이다.
주류학계가 그것을 알 리가 없다.
머리를 열지 않고 가슴을 묶어두기 때문이다
7
언젠가 무명의 왜=일본열도를 한참 나무란 적이 있다.
그가 늘 하는 말로 왜는 해상능력이 있었고 군사력이 뛰어났단다.
무슨 근거로? 삼국지를 보라!
큐슈만 해도 수많은 소국들로 갈라진 섬나라가 무슨 수로 숭신천황대에 가야와 신라의 싸움에 간섭하고(성씨록 참조) 신라왕을 두 번씩이나 죽이고 바꾸며 한결같이 삼국사기에 왜로 쓰여졌는가?(왜 여왕 비미호만 예외다.)
- 어째서 예외였는지 이 글에서 밝히지는 않겠다. -
현대의 고고학을 비롯한 여러 연구도 결코 야마대 정권이 6~7c 전에는 열도를 통일하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다.
무명이나 일부의 말마따나 천 번을 양보해서 삼국지의 비미호의 왜가 혼슈섬 야마대 왜라고 쳐도 저희들 열도도 제대로 통일 못한 자들이 무슨 수로 몇 천리 바다 건너 신라를 대규모로 친단 말인가? 웃기지 마라.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지나사도 세계사 어디를 봐도 내부통일이 먼저고 밖으로 뻗어가는 것이다.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비스마르크의 독일, 징기스칸의 몽골, 알렉산더의 그리스 등 모두 마찬가지다.
더구나 섬에서 자기 주변도 통일도 못한 주제에 무슨 힘이 남아돌고 무슨 이득이 얼마나 있었기에 밖으로 싸돈단 말인가?
결코 왜는 열도가 아니다.
일본서기를 쓴 세력은 바로 부여요 백제인 것이다.
속시원히 밝힐 수 있는가? 있다.
삼국사기가 있고 삼국지가 있고 돈장과 세기가 있다.
거리낄 것이 없다. 아니 일본서기 스스로 백제요 부여임을 말하고 있다.
- 나는 부여요, 백제이니라! 후대의 인간들아, 들어라! -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라. 내가 거짓말하고 있는지.
<문제에 답이 있다.>는 격언이 있다. 마찬가지다.
삼국사기의 비밀은 바로 삼국사기안에 답이 있고 일본서기의 비밀은 바로 일본서기 안에 답이 있다.
고대의 사관은 문제를 내고 답을 모조리 제시해 놓았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후인들이 바보일 뿐이다.
마찬가지다.
한강 유역에 있던(주류학설대로라면) 별로 크지도 않던 백제가 무슨 주변도 통일하지 못하고 산동으로 진출하고 중국 동해안으로 북경지방으로 진출한다는 이론을 펼치는가?
그것은 적어도 백제가 한반도 전체와 남만주 일대를 영유하고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열본열도 경영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이론은 허점투성이다.
고고학으로 이미 호남지방 정도는 6c까지도 백제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기껏 한강유역 뿐이 백제가 무슨 역량이 있어서 백제가 고리와 맞짱을 뜨고(주류이론) 열도를 경영하고 해외로 나간단 말인가?(재야 및 비주류 이론대로라면)
- 그러기에 주류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백제의 실체를 끝없이 부정하고 진보역사이론은 백제를 치켜세우면서도 주류학설 따라 백제가 한강유역이라고 한다. - 바보들!
역으로 요동과 한반도를 전부 백제의 영향권이라고 한다면 위 얘기는 가능한 것이 된다.
즉 백제는 열도를 경영하고 해상능력을 바탕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된다.
충남과 호남으로 갇힌 백제가 고리와 계속 충돌하고 신라를 그토록 밀어붙일 수 있는가?
더구나 한강유역은 신라가 차지하여 고리와는 국경이 단절되었는데도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
주류의 이론대로 하면 그야말로 모순이 아닌가? 이 무슨 도깨비장난인가?
그 작은 땅에 76만호 5도독부가 들어갈 땅이 어디 있단 말인가?
- 마한과 백제의 수도는 평양이다. 100% 확신해도 좋다. -
빼도 박도 못할 증거는 수없이 널려있다. 여기서 일일이 밝히지는 않겠다.
8
초고왕, 귀수왕, 진사왕, 아화왕, 직지왕, 곤지, 무녕왕, 동성왕, 성명왕, 의자왕 모든 백제 왕들의 시호를 정확히 적었다.
그런데, 도모왕=동명왕? 도모가 동명이라고? 웃긴다.
일본서기를 쓴 세력이 도모가 동명임을 몰라서 도모라고 적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정확히 도모가 맞는 것이다.
도모는 누군가? 바로 부여왕이다.
어떤 부여왕인가? 바로 대무신왕에게 망하고 연나부에 안치되었다가 독립한 새로운 부여의 창시자다.
그가 바로 천조대신의 칭호를 얻은 것이다. 동명은 절대로 100% 도모가 아니다.
<속일본기>에 도모왕은 백제의 시조이자 원조로 나온다.
그럼 천조대신은 백제의 시조이자 일본서기 세력의 시조와 원조가 된다.
즉 백제=일본서기의 세력이다.
이것으로 고대사는 한마디로 게임 끝이다.
부여 도모왕이 천조대신인데 무슨 얘기가 필요한가?
그야말로 고대사는 게임 끝인 것이다.
도모의 계열을 밝힐 수 있는가? 있다.
해부루-금와-대소로 이어지는 후예다.
갈사왕 도두와도 관련이 된다.
어제 즉위해서 언제 돌아갔는가? 알 수 있는가? 알 수 있다.
과연 지상에 강림한 천조대신의 손자는 누구인가? 알 수 있다.
그럼 고사기의 신들은 누구인가? 간단하다. 모두 한국 고대사의 제왕들이다.
지나사서에 부여시조는 동명으로 되어있다.
어찌된 것인가? 맞다. 바로 북부여의 시조일 뿐이다.
그러나 틀리기도 하다.
해부루의 동부여를 그들이 알 리 없었다.
그들이 접한 것은 원래 북부여와 새로 부활한 동부여이기 때문이다.
원부여는 고리가 되었고 새로 부활한 동부여가 고리의 서북쪽에서 이어지다가 일파가 몰려가 백제를 이룬 것이다.
그들이 그 과정을 기록하지 못한 것은 외국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하필 그 때가 중원이 대혼란기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때로 부여는 백제로 불리기도 한다. 언제?
신찬성씨록에 도모의 10대손으로 귀수왕이 나온다.
물론 이는 백제 귀수왕이 아닌 근귀수왕이다.
왜 그런지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겠다.
바로 신찬성씨록이 거의 정확한 기록이다.
내가 하필 일본삼서중에서도 성씨록을 제일로 치는 이유다.
<삼국지 부여전>
<삼국지 관구검전>
<후한서 부여전>
<진서 부여전>
<성씨록>
<삼국사기> <일본서기> 다 동원하여 근귀수왕이 10대손임을 증명해보라!
여러분이 그것을 찾아내야지만 정말로 역사를 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천조대신이 근초고왕이라고? 아서라! 지하에 계신 도모왕이 놀라신다.
9
그러다가 부여는 모용씨의 침입을 받는다.
때마침 관구검 전쟁으로 위나라 영향권에 들어있던(당시는 위를 대체하여 사마씨의 진이 들어섰다.) 옥저로 대대적으로 피난 간다.
그것이 역사를 갈랐다.
그 세력의 일부는 다시 부여로 돌아왔지만 대부분은 백제를 접수하고 왜를 점령하고 변진한을 점령하며 신라를 먹어치우고 최종적으로는 마한을 점령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열도(규슈와 혼슈 서부)마저 정복해 버린다.
그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마치 근세사에서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고 순식간에 아시아태평양일대를 먹어치운 것과 비슷하다.
한반도와 열도 남만주가 백제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 것이다.
그것은 불완전한 통일이기도 했다.
그런 백제는 요서의 부여와 합작으로 원수지간인 고리와 숙명의 한 판 대결을 펼친다. 바야흐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리와 백제가 충돌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어째서 백제가 북중국을 제치고 남중국의 동진과 먼저 교류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난다.
bc 18년에 건국된 백제가 아무런 충돌 없이 고리와 잘 지내다가 근초고왕 때 마한을 정벌하고 북진하다가 고리와 충돌했다고? 무슨 블랙코미디인가?
350여년을 평화롭게 지내던 사이가 어느 날 갑자기 철천지원수가 되나?
주류 이론대로라면 남쪽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백제가 무슨 수로 고리와 충돌하나?
현대 고고학으로 호남지방은 백제의 영향권도 아니었는데 겨우 한강유역만한 조그만 땅덩이를 가지고 고리와 맞짱 뜨나?
고리와 싸우면서 한편으로 남쪽에서 마한을 정벌하나?(고리 고국원왕과 최초로 충돌한 것은 369년, 그런데 주류들이 일본서기에서 따온 마한 정벌론은 369년이다.)
무슨 백제의 힘이 그리 남아도나?
근초고왕이 친 평양은 바로 요서의 평양이었다. - 100% 확신해도 좋다. -
바로 훗날의 안시성이요 조선의 원래 왕검성이다.
백제는 언제나 부여의 후신임을 자처했다.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고리에서 갈라져 나왔다면 고리와 철천지원수가 되어 싸웠을 것 같은가?
바로 온조왕으로 포장된(?) 세력은 마한이었다.
그대로 한씨 마한만 해씨 마한으로 대체했지 마한이란 이름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백제라고 한 것은 신라김씨다.
왜? 훗날 그것이 백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신라본기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왜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그러기에 고리 태조왕기에 마한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해씨의 마한인 것이다.
김부식이 눈이 둥그레졌다.
마한이 망했는데 나왔다고.
하지만 <삼국지>를 보라.
한씨를 대체한 그들도 계속 마한이었다.
바로 신라김씨의 농간을 김부식 그가 알 리 없었다.
그러기에 마한과 고구려는 몇 백 년을 사이좋게 지냈던 것이다.
각설하고 해씨는 훗날 백제의 8대성이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부여씨에게 정복당했지만 그들도 역시 부여의 핏줄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동명의 제사도 계속된다.
바로 부여씨의 포용정책이다.
마한이 소국으로 이루어진 부족국가였다고?
<삼국지>를 봐라! 분명히 진왕이 다 통제한다고 되어있지 않은가?
주나라가 분봉한 제, 진, 노, 허, 정 등의 나라가 다 독립국이었나?
간단히 말하면 행정구역 아닌가?
일본서기에 나오는 출운국, 축자국, 근강국, 대화국 등이 다 독립국이었나?
바로 마한의 행정구역이 국인 것이다.
오늘날, 도, 군 등과 같은 것이다.
왜 문헌을 저희들 편의대로 해석하는가?
어떻게든 한국고대사를 우매하게 만들기 위한 작태다.
상식적으로 따져봐라. 바로 옆에 중원은 그리 강대한데 바로 옆의 모든 기후조건이나 문화조건도 비슷한 동이국가들은 언제나 비실비실한가?
하지만 백제는 겉으론 강했지만 안으론 허약했다.
급작스럽게 정복된 지역들은 아직 절대적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국력이 열도를 비롯한 점령지역을 정비하느라 소비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근귀수왕의 급서와 진사왕의 쿠데타가 일어난다.
그리고 백제가 둘로 찢어진다.
진사왕은 누구인가? 바로 김씨다.
이 틈을 타고 고리는 극적으로 한숨을 돌리고 위대한 대왕 광개토의 등장을 맞는다.
순식간에 힘은 역전된다. 백제는 엄청난 영토를 잃는다.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이룬 자가 누구인가? 바로 비류왕이다.
정확히는 비류왕의 어머니와 함께 하였다.
바로 일본서기에서 신공으로 등재된 여인이다.
즉 신공은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비류왕의 어미요, 하나는 응신천황의 어미다.
그녀와 비류왕은 한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정복자였다.
광개토왕은 거기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
그녀가 정말로 백제본기에 나오는 소서노일 가망성이 많다.
- 아직 거기까지에는 단언하지 못한다. -
비류왕은 누구인가? 바로 일본무존=야마토다케루다.
그러기에 천황으로 등재되지 못한 것이다. 왜? 왜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왜왕은 누구였는가? 계왕 즉 경행천황이다.
훗날 잠깐 백제왕이 된다. 계왕이다.
어째서 경행기가 일본무존으로 가득한지 아시는가?
바로 백제왕이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무존이란 칭호를 올리는가?
바로 정복왕이기 때문이다. 계왕은 왜왕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째서 백제왕이 되었는가?
거기에 바로 근초고왕과 근귀수왕의 시호에 대한 비밀이 있다.
일본서기 신공기에 그 답이 나온다.
삼국사기에 그 답이 나온다.
다음 왜왕은 누구인가 성무다. 성무는 누구인가? 바로 무내숙녜다.
그럼 응신은? 바로 침류왕이다.
그가 침류왕이란 것은 일본서기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바로 기년조작의 위력이다.
기년조작의 방법론만 밝히면 침류임을 감춘 것이 침류라는 위력으로 다시 태어난다. 진사왕의 쿠데타로 밀려난 그가 한반도 남부에서 세력을 키우고 열도 서부에서 힘을 키워 동부 근기일대 지역을 점령한다.
그리고 백제로 건너가 진사를 죽이고 아화를 세운다.
이제 대륙과 열도의 세력이 역전된 것이다.
전지의 인질기사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마치 백제가 왜의 속국처럼 보인다.
이것을 무명은 마치 백제가 왜의 속국이라고 단정한다.
일면식 접촉도 없던 백제와 왜가 어느 날 갑자기 주종관계가 되나? 왜?
바로 신라의 농간과 조작을 모르기 때문이다.
백제를 버린 왜의 김씨세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바로 신라김씨의 죄악 때문이다.
10
위에서 얘기한 신공 49년 - 주류들이 369년이라고 엉뚱하게 둘러대는 - 에 대해 살펴보자.
그것은 결코 369년이 아니다.
북쪽에서 고리와 싸우면서 한편으로 남쪽에서 친히 마한정벌(주류들의 코미디 이론이다. 본문엔 분명히 신라정벌이다.)을 하는가? 정답만 제시한다. 347년이다.
눈을 크게 뜨고 백제본기를 보라 그 해가 언제인지? 근초고왕 2년이다.
바로 일본서기식으로 따지면 근초고왕 원년이다.
어째서 근초고왕기의 초반부가 공백인지 짐작 가는가?
바로 신라의 의도적인 삭제다.
거꾸로 신공원년을 계산해보라. 299년이다. 그 전해는 298년이다.
신라본기를 눈을 크게 뜨고 보라!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담이지만 신라본기는 지금까지 내 연구로는 백제본기나 일본서기와 정확히 1년 차이가 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차이 나는지 모르지만 각종 자료를 대비하면 신라본기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297년 유례이사금조에 이서고국이 신라를 침범한다.
그리고 무슨 이상한 미추왕의 댓잎군사 등이 나타난다.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인가?
물론 위에서 말했듯이 신공기는 중첩이다.
바로 백제를 세운 비류왕의 어머니(소서노?)와 일본의 전신인 야마대왕조를 세운 침류왕 응신의 어머니(아이부인)를 기리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신공이란 칭호를 올린 것이다. 결코 아무렇게나 올린 칭호가 아니다.
기년에서 주(主)가 비류왕모이고 부(副)가 아이부인이다.
기사에선 반대다. 따라서 이 부분은 기년과 기사가 중첩되어 있다.
어째서? 일본서기 기년의 기준이 바로 응신천황이기 때문이다.
바로 일본의 실질적인 건국자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리 해둔다.
신공 49년 전에도 근초고왕이 나오는데요?
신공 55년에 근초고왕이 붕어했으니 기년이 맞지 않는데요?
내가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단언하는 줄 아시는가?
그렇게 간단하다면 일본서기의 체면이 깎이지요!!
신공기와 응신기는 바로 일본서기의 핵심중의 핵심이다.
그 비밀의 답만 공개하겠다. 그가 침류왕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다.
41-19=22, 1+19+2=22, 390-(69+22)=298, 298+69+41-5=403, 298+69+22=389이다.
389가 무엇인가? 바로 왜국 건국 전년이다.
백제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건너간 응신이 정식으로 왜 건국을 선포한 것은 390년이다.
말했듯이 응신이 침류왕임은 이외에도 많은 증거가 수두룩하다.
바로 일본서기의 기년의 중심은 응신이기 때문이다.
바로 일본서기의 작자들은 응신(침류)을 일본 왜국의 건국시조로 여겼기 때문이다.
과연 403은 무엇인가? 22는 무엇이며 19는 무엇이고 또 5는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스스로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열고 생각하고 찾아보시라!
바로 고대의 사관은 정직하게 역사를 쓴 것이다.
비록 권력에 눌려 감추었지만 그들은 후세에 분명히 진실을 알리려 애를 썼다.
억지 논리로 가득 찬 주류학계,
부체제나 들먹거리며 역사의 발전단계를 거꾸로 돌리는 한심한 이들,
삼국초기 기년조정이나 한다고 하는 작자들,
임나일본부는 두둔하면서 백제는 똥으로 보는 비아냥꾼들,
- 이 모든 식민사학의 나팔수 동북공정의 앞잡이 - 들에게는 결코 보이지도 않고 생각해도 모를 것이다.
왜? 가슴을 열지 않고 머리를 비우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신공황후의 신라정벌은 사실을 얘기하고 있다.
엄청난 고대사의 비밀을 여러분은 지금 접하고 있다.
그러기에 신라가 백제의 부용국이 된 것이다.
지나사에 잠깐 스치는 그 기사가 왜 진실인지 낱낱이 드러난다.
왜 신라김씨가 철저히 백제를 말살하려 했는지 그 비밀이 송두리째 드러난다.
응신원년이 백제본기와 2갑자 차이나기 때문에 2갑자 인상한다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일본서기를 쓰는 저자들이 착오해서 그랬다고? 아주 웃기는 말이다.
그들이 몰라서 인덕 87년 등의 황당한 일을 했겠나? 바로 120년의 수치는 다음과 같다. 27+57+5+28+2+1=120이다. 무엇을 뜻하는지는 일본서기를 보시라!
각설하고 대륙의 군사력을 가지고 열도로 밀려간 응신에게 무내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왜왕을 양보한다.
그러다가 응신 사후에 무내의 아들과 응신의 후계자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그 결과 무내의 아들인 인덕이 즉위한다.
무내가 누구기에? 바로 목(木)씨다.
백제 8대성의 하나인 것이다.
바로 백제의 원래 왕성이었던 것이다.
그 인덕의 후손이 바로 목만치다.
그가 소아씨로 바꾼다.
또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목라근자의 아들이 목만치라면 여러모로 맞지 않는데요?
대답해 준다. 성씨록을 보시오!
목씨는 원래 왜의 왕족이었다.
신라본기의 호공은 바로 목씨다.
그가 목씨이기 때문에 신라 박(朴)씨가 된 것이다.
- 이제 박씨의 뿌리도 그 실체가 밝혀진다. -
성씨록에서 신무천황의 혈연이 신라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 것이 정확한 것이다.
즉 신라의 시조는 혁거세가 아닌 호공인 것이다.
그가 바로 박씨의 시조인 것이다.
박혁거세가 박씨의 시조라는 박씨들의 족보는 최상급 코미디다.
신라 김씨가 쓴 각본에 놀아난 것이다.
오늘날 박씨의 많은 부분은 바로 왜 목씨의 후손이다.
그런데도 왜놈이라고 경멸할 것인가?
여러분 조상에게 침 뱉고 형제에게 욕하는 꼴이다.
11
실성왕기에 왕은 알지의 후예라고 한다.
아니, 현재 이론대로라면 김씨치고 알지의 후예가 아닌 사람이 누가 있던가?
왜 굳이 알지의 후예라고 했는가?
바로 실성은 성한왕 계열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기에? 바로 알지의 계열로 가야김씨이거나 혹은 박씨다.
가야김씨는 수로가 아니던가?
시조가 수로라고? 웃긴다.
이것은 18편에서 논한다.
알지가 박씨라고? 그렇다. 현재로는 그럴 확률이 많다.
성한왕이 알지라고? 세한이라고? 웃기지 마라! 성한은 성한일 뿐이다.
이것은 16편에서 논한다.
바로 역사를 개작한 주역이 누구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바로 김씨 중에서도 가야김씨다.
가야김씨가 주역이고(김유신 일당) 신라김씨가 조연이다.(김춘추 일당)
탈해는 누구인가? 왕이던가? 아니다. 쫓겨났을 뿐이다.
그러기에 후세에 왕으로 등재된 것이다.
왜? 가야의 출자를 속이기 위하여(?) 신라를 감추기 위해, 말 그 대로 탈(脫) 해(解) 즉 해씨에게서 벗어난 것이다.
해씨가 누구였던가?
부여의 왕족이 아니었던가?
각설하고 탈해는 <왜국 동북천리> 용성국에서 왔다고 했다.
동북 천리라고? 그렇다. 그것이 탈해설화의 핵심이다.
그것 하나로도 고대사는 끝장이 난다.
왜 문무왕 때 꿈에 나타났는가? 바로 역사 개작의 시기를 알려준다.
12
거칠부는 대승하여 10개 군을 공취하였다.’
그런데 조령에서부터 강원도 한강유역 임진강에서 멀리 개마고원 일대까지 점령했다. 어느 날 갑자기 신라가 커진 것이다.
그런데 고리와의 충돌은 별로 없다. 몇 번 툭탁거릴 뿐이다.
더구나 전략상으로 고리 수도인 평양을 훨씬 뛰어넘어 북쪽으로 100km 이상 전진한 신라는 언제든지 배후에서 고리 수도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고리와 신라의 대전쟁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그런 기미가 전혀 없다.
오히려 한강유역을 뺏겼다지만 왕이 죽은 백제와는 죽어라 싸운다.
이 무슨 코미디 같은 얘긴가?
한마디로 고리 수도가 평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상식이다.
역사는 결코 상식을 뛰어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고리 수도가 대동강 평양이라고 버젓이 거짓을 가르친다.
고고학을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는 평양이 고리의 수도가 아니라는 명백한 고고학적 증거다.
지나는 길에 한마디 한다면 위덕왕 원년에 고리가 대병을 동원하여 웅천을 친 기록이 있다.
이를 두고 이도학은 중부권에 고구려의 유적을 들먹이면서 그의 저서인 <한국고대사, 그 의문과 진실>에서 고구려의 병력이 백제 수도(웅천성)를 공격했다고 논한 적이 있다.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주류 이론대로라면 신라가 이미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멀리 개마고원까지 진격했던 때다.
그래서 내세운 이론이 고구려군이 춘천- 음성의 루트를 따라 백제를 공격했다고 한다. 이 무슨 블랙코미디인가?
군사전문가에게 물어보기 전에 상식을 가진 사람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가능한 얘긴가.
그러면 먼저 신라를 돌파해야하는데 고구려가 무슨 대단한 이익이 있다고, 혹은 백제와 무슨 철천지원수라고 그리하나?
그리고 북쪽 국경 놔두고 신라와 고리가 청주일대(낭비성)에서 싸우는가? 절대 아니다.
바로 주류들의 생각에 대고구려의 환상이 늘 어른거린다는 것이다.
이도학은 내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주류학자다.
바로 이도학의 잘못이 아니라 한국 주류사학계의 잘못된 현실이다.
그럼 웅천이 어디냐? 바로 또 다른 백제다.
즉 당시 충청 호남 외에 또 다른 백제다.
그러기에 수나라 당나라의 고리 침공 때 백제와 고리가 대립한 기록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백제 5도독부가 나온 것이다.
광개토왕의 58성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전에 논했지만 식민사학은 이 58성을 몽땅 임진강에서 한강 사이에 몰아넣었다.
거기에 무슨 58성이 들어갈 자리가 있던가?
아니, 한강유역을 잃은 상태에서 백제의 수도 한성은 풍납토성에서 잘만 버티는구나! 그걸 역사라고 가르치고 있다. 쯧쯧!
신라의 10군은 조령에서 개마고원까지 뻗어가면서 광개토의 58성은 코딱지만한 땅이라고 한다.
그때는 삼국이 본격적으로 전쟁하던 시기도 아니어서 성도 별로 없었다.
통상적으로 성은 군이나 현을 지칭한다.
그런데도 58성(58군현)은 그리 작고 10성은 그리 크더냐?
그 정도 차지했다고 광개토의 칭호를 얻나? 광개토란 호칭이 부끄럽다!
주류학계와 식민사학의 주장으론 광개토는커녕 코딱지토도 못된다.
그러면서 위대한 광개토왕이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한다.
저희들 이론으로 깔아뭉개고도.
그럼 58성은 얼마인가?
백제가 망할 때 200성이라고 했다.
무려 1/3이다.
더구나 백제는 5도독부다.
고리가 안동도호부 하나 신라가 계림도독부 하나다.
왜 그런지는 이미 설명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날 남한 땅 만큼의 넓이다.
백제는 그 많은 땅을 잃은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그런 신라가 대동강~원산만의 땅으로 통일했다고?
웃겨도 아주 웃긴다.
자기 영역보다 작은 구역으로 통일하는 것도 있나?
도대체 패강이 어딘지도 모르는 작자들이다.
역사상 최고의 쪼다는 누구인가?
고리 장수왕이다.
살기만 오래 살았지 뭐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게 없다.
그는 당연히 신라를 없애버리고 백제를 삼켜야 했다.
당시 고리의 능력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내부 정비와 권력강화에만 몰두했다.
바로 고리 멸망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장수왕이었다.
통일의 초석을 닦은 비류왕과 근초고왕의 백제가 스러지고 다시 주도권이 고리로 왔을 때 일거에 밀어붙여야 했다.
그랬으면 훗날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비록 일부는 열도에서 독립했을망정 ...
13
언젠가 어떤 자가 무예도보통지 들먹이면서 잘못에 한마디 사과도 없이 무슨 실존인물에 관한 각종설화 들먹이면서 위 얘기를 설화라 우긴 적이 있다.
설화인가? 아니다.
이첨이 자기가 본 것을 적고 그것이 관창일 것이라고 논한 것이다.
실존인물이 본 사실이 설화인가?
하지만 이첨도 몰랐다. 아니 알 리가 없었다.
김씨들의 농간을.
죽은 백제왕은 바로 분서왕이다. 백제의 분서왕이 아니다. 마한의 분서왕이다.
어째서 백제왕이라고 했는가?
바로 마한을 백제로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마한이 훗날 백제의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백제는 어디로 갔는가? 바로 열도로 갔다. 왜왕이 되어서.
그렇다면 백제본기는? 그렇다 마한본기+백제본기다.
분서왕은 낙랑태수에게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정확한 표현이다.(마한의 입장에서) 그러나 감춘 표현이다.(신라의 입장에서)
왜 근초고왕이 남조의 정권으로부터 영낙랑태수를 제수 받고 후대의 신라왕들이 낙랑공 혹은 낙랑왕을 제수 받았는지 식민사학의 나팔수와 동북공정의 앞잡이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대동강유역에서 낙랑의 유물이 왜 많이 나오는지 죽어도 모를 것이다.
백제가 낙랑군과 싸웠다고? 웃기지 마시라!
지나사 어디에 낙랑군이 백제와 충돌했다고 나와 있더냐?
백제왕을 죽인 큰 사건이 낙랑군과 관계되었다면 과연 지나사에 누락되었을 것 같은가? 백제본기의 낙랑은 거의 모두 신라다.
식민사학의 나팔수 동북공정의 앞잡이들은 이것을 천 년 만 년 지나도 알 길이 없다.
하늘이 과연 아직도 이 민족 이 역사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기사가 동국여지승람에 남아 있는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다.
역사는 다시 한 번 뒤틀어진다.
그 주동자가 누군가? 바로 비류왕이다. 김씨는 하수인일 뿐이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신공 5년은 303년이자 389년이기도 하다.
신라의 인질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을 일본서기는 보이고 있다.
303년에 인질탈출이란 치욕을 당한 백제가 가만있었겠는가?
신라를 닦달했을 것이다.
그런 신라는 살아남기 위해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거기서 선택된 것이 황창랑의 마한왕 암살특명이다.
그리고 304년에 그 일이 벌어진다.
각설하고 이 소년의 암살행동은 신라김씨에게 커다란 행운이 된다.
그것은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던 신라김씨가 부활하는 계기가 된다.
당연히 신라김씨들은 그 소년을 음악으로 기려서 추앙한 것이다.
고대에 음악은 아무나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예악(禮樂)이라고 해서 그것은 특별한 계층에만 허용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고려를 지나 조선초까지 전해왔던 것이다.
분서왕의 죽음으로 마한왕조는 끝이 난다.
이제 새로운 백제가 열린 것이다.
근초고왕이 남쪽을 정벌했으니 마한을 정벌했다고? 무슨 코미디하냐?
일본서기 어디에 마한 정벌이 나오느냐?
신라를 정벌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왜 역사를 너희들 멋대로 장난치느냐?
통합백제의 시조는 바로 비류왕인 것이다.
이는 어쩌면 비류설화의 원형일 수 있다.
오늘날 한반도 남부지역 곳곳에서 발견되는 북방계 유물은 바로 백제 정벌의 흔적인 것이다.
그러기에 가야지방을 비롯한 한반도 중남부의 유물이 일본열도보다 빠른 것이다.
그것을 마치 가야가 일본을 세웠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고고학의 무서운 허점이다.
무슨 허점? 문헌을 우선하지 않으면 잘못 이해될 수도 있는 허점이다.
14
백제가 가장 화려했던 비류왕부터 근구수왕까지 아이러니하게 백제사는 공백이다.
특히 비류왕 중간부터 근초고왕 중반까지는 거의 비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신라의 조작 때문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실체를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삭제한 것이다. 모조리 잘라낸 것이다.
아울러 같은 시기 고리의 기록도 덩달아 모조리 잘려나갔다.
왜? 백제와 고리에 신라김씨를 두고 무슨 일이 있었기에?
파사가 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가?
바로 백제가 세운 신라왕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파사는 신라의 시조가 된다.
그럼 호공은 무엇이고 성한이 시조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라본기의 시조요, 신라김씨의 시조일 뿐이다.
신라라는 이름으로서의 나라의 시조는 파사왕이다.
어제 세웠고 누가 세웠는가?
백제 비류왕의 어머니(소서노?)가 세우고 300년경에 세웠다.
그러기에 인질이 필요했던 것이다.
실성이 인질을 보냈다고? 조작이다.
아니, 고대의 사관이 조작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어째서? 미사흔은 인질이었지만 실성이 보낸 인질은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내물이 응신천황인 침류왕에게 보낸 인질이다.
그런 비리비리하던 신라를 키운 것이 누구던가? 고리다.
광개토왕이 백제와 왜의 사이를 비집고 그들에게서 빼앗은 한반도의 영토를 거의 신라에게 주었다.
공짜로 주었는가? 아니다. 왜?
그 대답은 실성과 복호가 쥐고 있다. 제상이 쥐고 있다.
실성이 인질이라고? 복호가 인질이라고? 인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질이 아니다. 복잡한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가? 바로 중원고리비에 그 답이 있다.
특히 실성은 절대 인질이 아니었다.
실성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는 고리와 신라 사이에 어떤 존재였는가?
눌지왕기에 그 답이 있다.
건흥 4년이 언제던가? 광개토비에 답이 있다.
건흥 4년은 눌지왕대를 벗어날 수가 없다.
바로 장수왕의 즉위 연호다. 중원고리비의 건립연호다.
왜 고리가 신라를 키웠는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지 않는가!!
프리미엄이 있었다.
무슨 프리미엄? 바로 신라의 프리미엄이다.
그것이 왜 고리가 신라를 살려주었는지 어째서 신라, 백제, 왜가 그렇게 관련되는지 싸잡아 드러난다.
그리고 눌지왕대에 신라 국경은 임진강에서 원산만이었다.
이때 신라는 이미 거기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신라본기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현대 고고학으로도 증명된다.
다만 엉뚱하게 고고학을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다 고리 강성대국주의 때문이다.
왜? 고리가 위대했다고 해야 논문장사가 되니까! 이게 주류학계의 썩은 현실이다.
그 점은 소위 재야사학계도 마찬가지다.
오직 고리를 위해서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
그런 신라가 조령 이남에 진흥왕 이전까지 묶여 있다가 거칠부의 10군 공취로 개마고원까지 치고 올라가나?
한심한 사람들! 남쪽의 적석고분은 모조리 고리 것이었다고?
그런 신라가 갑자기 친백제를 표방한다.
왜? 윤공천황 때문이다. 윤공이 누구기에?
15
역사는 다시 한 번 요동친다.
박제상 아니, 김제상이 일본천황이었다니!
삼국사기와 유사에 신라의 충신으로 왜국에서 순절한 박제상이 왜왕이었다니!
일본서기를 보면 윤공은 굉장히 친신라적이다.
의사가 신라에서 오고 승하하자 신라사신이 대대적으로 다녀간다.
그리고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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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역사는 다시 한 번 요동친다.
박제상 아니, 김제상이 일본천황이었다니!
삼국사기와 유사에 신라의 충신으로 왜국에서 순절한 박제상이 왜왕이었다니!
일본서기를 보면 윤공은 굉장히 친신라적이다.
의사가 신라에서 오고 승하하자 신라사신이 대대적으로 다녀간다.
그리고 통곡한다.
나는 화랑세기를 보면서 황아가 치술의 원을 풀기 위해 벌지와 덕지 두 아들에게 무예에 힘쓰고 보기에게는 의술에 힘쓰라는 것을 보면서 윤공이 제상이란 것을 직감했다.
돈장엔 제상은 파사-거리-흠실-아도-물품-제상으로 파사왕의 5대손이다.
즉 삼국사기 본기보다 열전의 기록이 맞다
조작한 자들이 열전에서 틈을 보인 것이다.
어쩌면 정직한 사관이 훗날의 진실규명을 위해 남겨놓은 키포인트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제상은 김씨다.
영해박씨가 박제상의 후손이라고? 이런~ 먼 선대에서 누군가 조작했구나!
그런 족보는 버려라.
어째서 박제상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나?
멍청한 김부식 때문이다. 아니 그도 몰랐다.
신라 왕통이 조작된 것을.
신라왕통이 조작되었다고? 그렇다.
지금의 삼국사기 기년으로 미추가 내물과 실성의 장인이란 것이 어디 말이 되는가?
일부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삼국사기 기년을 조정해야 한다고.
그럼 고리기년 백제기년 모조리 조정해야 하겠네!
그럼 고리 기년과 차이가 없는 지나사 기년도 모조리 수정해야 하겠네!!
유사와 사기의 다른 점에서 미사흔과 복호의 인질기록이 굉장히 차이가 난다.
유사에선 미사흔이 내물왕 때 인질로 갔지만 사기에선 실성이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단연코 유사가 맞다.
거기에서 왜왕의 사신이 ‘백제의 죄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인질을 요구한다.
그 왜왕은 바로 침류왕 응신이요, 백제의 죄는 진사왕의 쿠데타다.
바로 김씨의 쿠데타다.
그러기에 신라는 인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왜? 왜의 손아귀에 있었으므로.
실성 때는 고리가 이미 백제를 몰아내고 신라를 접수했거늘 무슨 인질을 보낼 필요가 있단 말인가?
다분히 정통김씨계열이 아닌 실성을 깎아내리고 계통을 조작하기 위한 수법이다.
일본서기에서 박제상의 기록이 5c에 들어가야 되는데 잘못 삽입되었다고? 웃기는 소리다.
일본서기가 정확하다. 왜? 당시의 강자인 백제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미질허질지 외 2명의 사신이 불타 죽은 것은 4c초다(303년?).
결코 박제상, 아니 김제상이 아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진사왕은 어쩌면 제상의 아버지인 물품일지도 모른다.
현재 이건 어디까지나 <삼국지>를 통한 추측일 뿐이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도 남는다. 여기서 일일이 따질 시간은 없다.
앞서 신공의 기년이 중첩이라고 말했다.
그럼 신공 5년의 인질기사는 몇 년인가?
소서노의 기년으로 하면 303년이요, 아이부인의 기년으로는 389년이다. 389년?
무슨 냄새가 나지 않는가?
바로 삼국유사를 보라! 390년에 미사흔 인질기록이다.
과연 그러면 또 다른 인질사건이 303년 이었단 말인가?
그랬을 가능성 거의 100%다.
위의 분서왕 기사에서 살펴본 대로다.
정말로 우연이지만 일본서기가 얼마나 정교하게 조작된 진실을 담고 있는지 실감이 난다. 바로 윤공의 기년을 풀면 그가 제상임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왜 윤공이 42년인가? 답을 제시하면 윤공몰년은 453년이다. 453-42=412이다.
눈을 크게 뜨고 신라본기를 보라! 그 때 무슨 기사가 적혀 있는지?
사기나 유사의 기록을 보자.
제상이 복호를 구하고 고리를 탈출한다.
각본은 코미디요, 능력은 슈퍼맨이다.
그런 얘기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미사흔을 구하는 과정을 보자.
그 먼 오사카만에서 신라까지 탈출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절대 불가능하다.
왜가 무슨 해적 집단인가?
한낱 신라사신의 말을 믿고 대마도에 병력을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인질과 사신까지 딸려 보내는가?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다.
모조리 날조된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파사왕대에 있었던 인질사건을 김제상에게 덧붙인 것이다.
화랑세기는 그것이 조작임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바로 왜국의 공주인 보미다.
왜국의 공주를 데려온 자가 인질에서 탈출했다고? 하늘이 노하신다.
바로 왜왕인 인덕천황이 보미를 딸려서 신라로 보내주었다.
그것도 유사의 기록이 맞다.
사기처럼 418년이 아니라 유사처럼 425년이다.
일본서기엔 426년이다.
여기서도 신라기록과 1년 착오가 있다.
지나 사서엔 뭐가 나오는가?
바로 왜 5왕의 하나인 제(濟)다. 바로 김제상의 이름이다.
제상이라고 조작한 이유는 바로 상(上) -임금- 이기 때문이다.
제상은 일본에 앞서 신라와 백제에서도 왕 혹은 왕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그렇다.
삼국사기처럼 일개 내마의 벼슬을 가진 자가 어떻게 왕의 공주에게 장가를 드나?
신분제가 극명한 고대사회(신라나 백제를 막론하고)에서 절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러기에 제상이 일본으로 가고 난 뒤에 치술은 눌지의 후궁이 된 것이다. 그런 치술은 제상에게 원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제상이 왜왕이 될 수 있었을까?
바로 신공황후인 아이부인의 친척이기 때문이다. 고사기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신공은 신라의 핏줄이라고.
바로 신라본기에 나온 이찬 급리의 딸이 왜왕의 아들에게 가서 낳은 여아이다.
그 여인이 훗날 백제 근귀수왕의 황후가 된다.
바로 아이부인이다.
아이부인이 낳은 아들이 바로 침류왕 응신이다.
바로 야마대왕조를 개창한 실질적인 일본의 건국시조다.
이제 신공의 신라정벌의 의미를 알겠는가?
한편으로는 비류왕모에 의한 정벌의 진실이요, 한편으론 신라에게 나라를 잃은 백제인들이 붓끝에 의한 복수를 한 것이다.
신라의 핏줄인 신공황후(여기서는 아이부인)에게 신라를 욕보이게 한 것이다.
그런 신공이 비미호라고? 열도에서 임신한 몸으로 신라를 점령했다고?
웃기지 마시라! 백제는 당시에 신라를 아예 없애버리지 않은 조상에 대한 한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비미호는 왕이었다.
당연히 일본서기의 세력이 열도라면 천황으로 등재되어야 한다.
그들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비록 기년을 조작했을망정 신공은 분명히 황후임을 밝혔다.
비류왕모(소서노?)도 아이부인도 다 황후였다.
16
이제 충격 백배, 비밀의 문 한가운데로 여러분은 이미 들어섰다.
1대가 거서간 2대가 차차웅 그리고 쭉 이사금? 탈해가 왜 하필 호공의 집을 빼앗는가? 불과 14살짜리 애가 대보(大輔)가 되나? 허루에게 이찬보다 상급의 벼슬을 주겠다.
그래서 주다란 벼슬을 주었다? 주다가 후일 각간이 되었다?
일성이 덕이 없어 동생인 파사를 왕으로 앉혔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뒤에 일성이 왕으로 앉는다? 아달라가 후손이 없었다.
그런데 후기신라에 아달라 후손이 버젓이 왕으로 등극한다?
골정과 이매가 죽고 이매의 아들인 내해가 등극했는데 골정의 아들이며 자기의 사위인 조분이 등극한다?
태자인 우로가 왕이 되지도 못한다.
첨해가 아버지 골정을 추봉하면서 세신갈문왕으로 한다? 우로가 여러 번 서불한을 역임했다고?
서불한보다 더한 직급이 있던가? 한 번 오르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별 볼 일없던 첨해는 버젓이 왕이 된다?
13대 미추의 딸이 먼 훗날 내물과 실성의 왕비가 된다? 유리하고 유례하고 헷갈리기도 한다? 신하들에게 이 아이는 우리 집안을 일으킬 아이라고 말하여 흘해가 왕이 된다?
그 정도 말할 정도는 왕이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흘해는 참으로 늙은 나이에 올라 오래도록 왕위를 유지한다?
내물과 실성이 서로의 왕비를 공유한다(상장돈장에서) 그런데 내물은 무척 긴 기간을 왕위에 있었다?
마누라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을 것인데 어찌 실성의 애를 낳나?
무슨 일급 코미디 영화각본 같지 않는가?
1호공(박) - 2남해(해) - 3유리(해) - 4허루(허) - 5?(허) - 6?(허) - 7일성(박) - 8아달라(박) - 9성한(김) - 10벌휴(석) - 11나해(석) -12 ?(김) - 13우로(석) - 14첨해(석) - 15세리지(김) - 16기림(석) - 17흘해(석) - 18파사(김) - 19?(김) - 20미추(김) - 21내물-22실성-23눌지-24자비-25소지-26지증-27법흥-28진흥-29진지-30진평
?는 몰라서가 아니고 일부러 제시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역사를 한다는 학자 중에 과연 누가 진평이 30대임을 밝힌 적이 있는가?
밝혀보려고 노력이나 했는가? 잘 보라! 1대 호공, 9대 성한, 13대 우로, 18대 파사, 30대 진평이다.
‘대대로 왕위를 전해 30대 김진평에 이르러.... 운운’이 이래도 잘못인가?
고대의 기록이 정확한 것이다.
김진평은 신라 30대 왕이었던 것이다.
파사왕이 근초고왕 언저리에 있는 일본서기의 기록이 맞는가?
멀리 옛날인 삼국사기의 기록이 맞는가?
단연코 일본서기가 맞다.
미추가 13대인데 백여 년도 더 뒤에 내물과 실성이 사위가 된다.
그게 제대로 된 기록인가?
삼국사기(정확히 구 삼국사)는 철저히 조작된 기록이다.
특히 신라와 백제본기가 그렇다.
백제와 신라가 모두 잘못 쓴 역사에 대해 책임이 있지만 신라가 다 뒤집어써야 한다. 왜? 최종 승자이기 때문이다.
혁거세는 없다.
우로는 왕이었다.
혁거세는 과연 누구인가?
바로 9대 성한왕이다.
신라사에서 한결같이 시조 혹은 태조로 나오는 인물이다.
그럴 리가 ~~ ?? 사실이다. 확신해도 좋다.
그러기에 유사에서 아달라조에 연오랑 세오녀의 기사가 나온 것이다.
그것이 결코 우연히 아니다.
바로 왜와 신라의 엄청난 비밀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서기에 그 무렵의 기록이 나온다.
신대에도 있고 역사에도 있다. 과연 무엇이라고 했는지 가슴을 훤히 열고 눈을 크게 뜨고 뒤져 보라! 왜 눌지부터 마립간이라 불렀는지 이해가 간다.
그것이 무엇이던간에. <삼국사기>는 조작되었지만 정곡을 찌르고 있다.
한마디만 더한다면 위의 왕호와 씨성은 잘못 되어 수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로는 거의 정확하다고 믿는다.
어라 조분이 안 보이네? 탈해도 안 보이네?
18대 파사왕의 인질 기록이 옮겨 갔다.
바로 삼국사기 18대 실성으로 옮겨 갔다.
고대의 사관은 인질의 기록과 불타 죽은 사신의 기록이 바로 18대 파사왕대에 있었던 점을 알려주고 있다.
혜안을 가진 자가 그것을 알아채기 바란 것이다.
성한부터 파사까지 김씨와 석씨가 교대로 왕위를 주고받고 있다.
그런데 김씨는 후세에 건재하건만 석씨는 씻은 듯 사라졌다.
왜? 과연 무엇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왜? 중기신라가 내물에서부터 시작되는지 한 눈에 알 수가 있다.
바로 그때부터 조작이 없기 때문이다. 조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나 유사에 파사의 부인은 사성부인 김씨라고 한다.
사기처럼 파사가 1c의 왕이라면 그 당시 김씨가 무슨 세력이 강하기에 김씨 황후가 탄생하나? 더구나 유사는 사요왕의 딸이라고 했다.
유사가 잘못되었다고? 천만에.
유사는 바로 김씨들이 조작하다 흘린 고대사의 편린을 보여주고 있다.
사요는 김씨왕이었다.
그런데 왜 신라본기에 없는가? 바로 백제왕이었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어째서 백제가 파사를 신라왕으로 세웠는지 이해가 가시는가?
바로 백제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제본기에도 사요왕은 없지 않은가?
당연하지. 김씨들이 파사를 조작한 주제에 사요를 떡하니 백제왕으로 올리겠는가?
허황후의 뿌리가 어디에서 출자했는지도 극명하다. 바로 신라다.
인도에서 장강을 거쳐서 왔다고? 무슨 소설이 그렇게 재미있더냐?
바로 허씨 왕족의 후예인 것이다.
김씨들이 감춘 것이다. 수로가 가야를 세웠다고? 일면 맞고 일면 틀리다.
바로 가야에서 금관국을 세웠다.
허황후가 신라허씨임이 밝혀질까 두려워 감춘 것이다.
왜? 부여 백제와 신라 왜 가야의 5차 연립방정식이 풀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무왕의 15대조는 성한이 맞는가? 맞다.
법흥이 모용씨라고? 미추가 위나라에 속한 선비족 후예라고?
개가 웃을 일이다.
신라김씨가 동해안 루트를 타고 남하했다고? 말놀음일 뿐이다.
성한-차웅-세리지 -파사-지마-조분?-내물-복호-습보-지증-입종-진흥-진지-용춘-춘추 15 - 14 - 13 - 12 - 11 - 10 - 9 - 8 - 7 - 6 - 5 - 4 - 3 - 2 - 1
자, 계산하면 성한은 180~220년대여야 맞다.
결코 알지가 될 수 없다.
더구나 세한은 아니다.
알지-세한-아도-수류-욱보-구도-미추는 더더구나 아니다.
미추는 절대로 구도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구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단지, 신라김씨들의 조작일 뿐이다.
미추를 13대 왕으로 끼워 넣어 삼국사기를 조작한 신라김씨들의 수작일 뿐이다.
바로 세한을 성한으로 조작하기 위한 술수다. 아래와 같이.
세한-아도-수류-욱보-구도-말구-내물-복호-습보-지증-입종-진흥-진지-용춘-춘추-문무 15 - 14 - 13 - 12 - 11 - 10 - 9 - 8 - 7 - 6 - 5 - 4 - 3 - 2 - 1 - 0
하지만 정직한 고대의 사관은 그 흔적을 남겨 놓았다.
삼국사기에 들어있다. 무수히 들어있다.
고고학이 그것을 증명한다.
무슨 고고학? 바로 황남대총이다.
난 이미 운모-옥모-홍모-아이혜-광명-내류-아로-조생-선혜에서 그 실마리의 일단을 보았다.
무슨 실마리? 왜 오릉의 전설이 생겼다고 생각하는가? 알정이 과연 신라사 초기의 우물인가? 계림이란 숲이 정말로 알지가 매달린 숲인가? 지하에서 성한이 웃는다. 자세한 것은 21편에서 논한다.
김대성이란 분이 <금문의 비밀>이란 책에서 문무왕비의 위력이 동양삼국을 들끓게 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문무왕비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동양삼국은 뒤집어진다.
물론 그 책에서 나온 김씨들의 세계는 <한서> 김일제전과 약간 다르다.
저자가 잘못 인용했다.
그나저나 일제의 후손인 김성金星을 성한왕이라고 이 분은 주장하는데 어디에서 김성이 나오나요? 난 아무리 찾아봐도 안 나오던데.
17
이제 이 싸이트의 대표적인 주류신봉자 무명에 대해서 종합하여 비판해 보자.
물론 뛰어난 점도 있고 날카로운 면도 있다.
현대사와 사회를 보는 눈은 존경할 만한 점도 있다.
하지만 역사학의 큰 얼개에서 그는 대표적인 식민사학의 나팔수, 동북공정의 앞잡이일 뿐이다.
그것이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의 글에 띄어쓰기와 오타로 인해 엉망인 글이 많아 바로 잡아 그대로 올리고 비판한다.
지금까지 나온 것을 종합한 것이다.
1) 윤내현을 비판한 진개의 침입논리 - 고조선이 대동강이라고 강변한다.
고조선의 위치를 가장 광범위하게 잡고 있기에 인기 있는 교수 윤내현. 그의 주장에서 다시 이해하기 힘든 부분 두 번째를 살펴보겠습니다.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里,至滿番汗為界,朝鮮遂弱 - 위략> (연이 이에 장군 진개를 보내 그 서방을 공격해 2천리 땅을 취하고 만번한을 그 경계로 하였다. 그랬더니 조선은 마침내 약해졌다.)
윤내현은 위략에 나오는 滿番汗과 浿水의 위치를 난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략에 나오는 패수는 지금의 난하 또는 그 지류였음을 알게 되고 만 번한은 난하와 그 지류인 汗水 유역에 있었음이 확인된다.-윤내현의 한국고대사신론
고조선은 서방 2천리를 연나라에 빼앗기고도 그 경계가 현재의 난하라는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서방 2천리를 빼앗기기 이전의 고조선의 서쪽 한계는 어디일까요? 연나라의 수도인 계나 연하도뿐 아니라 오르도스지역까지 고조선이 다스리고 있었어야 가능합니다. 윤내현의 주장에 따르면 연나라는 갈 곳이 없는 문제가 생깁니다.
문제는 이것이 아닙니다. 이해 할 수 없는 이런 주장을 윤내현이 하고 있는 주 근거는 바로 汗水입니다. 조금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만 汗水는 한서지리지에 대한 주석에서 응소가 언급한 강 이름입니다.
한서지리지에 요동군에 문 번한현이 있고 番汗현조에 浿水出塞外西南入海 구절이 있습니다. 이 浿水에 대해 응소가 汗水出塞外西南入海라는 주석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수경주에서 난하 상류의 한 지류로 나오는 汗水가 바로 문제의 패수라고 윤내현은 결론짓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만,번한도 난하유역 일 수 밖에 없다. 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당장 응소의 주석의 汗水가 난하 상류의 그 강이 맞다고 치더라도 그 다음 구절인 西南入海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윤내현 자신이 수경본문을 인용해 <패수는 임패현을 지나 동으로 바다에 들어간다>는 구절을 두고 난하를 이 조건에 맞는 강으로 지정해놓고는 이제 汗水한수문제가 나오니까 汗水한수가 서남입해한다는 조건이 있음에도 汗水한수가 패수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강이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간다고 난하를 패수라고 해놓고 그 다음은 서남으로 바다로 들어가는 정반대 방향의 강, 汗水가 패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편리할 때 마다 편리한 구절만 가져와 논리를 전개하다보니 자가당착적인 모순에 빠진 겁니다.
이런 이상한 논리로 패수와 만번한을 난하유역에 가져다 놓는 이 기괴한 논리를 받아들이라는 건가요? 참 제정신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당장 윤내현의 논리로 나가면 연나라가 오갈 데 없고 연하도의 엄청난 성 흔적도 고조선의 흔적이 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요?
---> 물론 윤내현이 다 맞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도 내가 보기엔 오류투성이다. 하지만 무명은 스스로의 글에서 무식함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里,至滿番汗為界,朝鮮遂弱 - 위략> 이다. 왜 그런가? 바로 이 글의 핵심글자는 바로 서방(西方)이기 때문이다. 고조선이 대동강이라면 가능한 얘긴가? 고조선이 요동이라면 가능한 얘긴가? 바로 고조선이 요서이어야만 가능한 얘기다. 내말이 틀렸는지 지도를 놓고 보시오!
그리고 그 후에도 고조선은 요서였다. 즉 연의 침입이 있은 후에도 중심지는 요서였다는 것이다. 어째서? 역시 그대가 말한 <위략>의 이 부분 다음에 삼국지에 주석으로 딸린 <위략>을 보라! 분명 우거를 설득하던 상 역계경의 세력이 동쪽의 진국으로 간 것이다. 여기서도 핵심은 바로 <동쪽>이다. 요동에서 동쪽에 무슨 진국이란 세력이 있었던가? 대동강 유역이 조선이라면 그 동쪽은 동해바다가 아닌가? 이 글을 만족하는 지리적 위치는 요서밖에 없다. 그러기에 훗날 수양제가 고리를 침공할 때 무슨 낙랑도니, 현도도니, 부여도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바로 요하(난하)를 건너 요서를 지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 고리의 수도는 요서 평양(안시성-왕검성)을 떠나 장안성(새로운 평양성인 오늘날 요동)에 있었다. 오히려 사료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무명이 아닌가?
사실 <위략>의 이 글도 문제는 있다.
땅은 선이 아닌 면적이기 때문이다.
사기와 한서 흉노열전엔 동호(명백히 조선을 말한다. -자세한 것은 생략하겠다)가 천 여리를 물러났다고 되어 있다.
무슨 뜻인가? 중심지, 바로 수도를 1000리 혹은 2000리 물러나 옮겼다는 뜻이다.
이는 후대의 역사를 보아 정확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애초 고조선의 수도는 바로 오늘날 난하나 북경서북일대라는 얘기가 된다. 이는 후대에 조선의 도읍이 북평일대라는 기록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다.
오늘날 요서의 찬란한 고대유물이 과연 누구의 것이었냐는 답이 나온다.
송호정처럼 그것이 동호였다고 동호가 무슨 나라였더냐?
그리고 동호는 바로 조선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지나의 기록이나 주장이라면 무조건 신뢰하는 그 버릇은 여전하시구먼.
연이 역수에서 요동에 걸친 나라였다면 제와 조를 능가하는 강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기나 전국책 등에서 연은 항상 최약체로 그려지는 것은 무슨 아이러니인가?
그리고 그렇듯 위대한 진개의 기록이 막상 사기나 전국책에 나오지 않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진정 모두가 조작되었거나 후대에 다른 기록을 참조했다고 봐야 된다.
다른 기록? 그렇다. 오히려 지나에서 조선의 기록을 참조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조선이 과연 고조선인가?
절대 아니다. 바로 변한조선이다.
후대의 기자조선이라 불리는 존재다.
바로 기자의 후손이 변한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연이 친 조선은 변한조선이요, 위만이 침탈한 나라는 기자조선이요, 한나라가 친 것은 위만조선이다.
즉, 무명의 수많은 머릿속의 이론은 근본부터 삐뚤어져 있다.
2) 왜와 백제의 논리 - 백제가 왜의 속국이라고 빈정댄다.
신찬성씨록 大原眞人 <出自謚敏達孫百濟王也> 대원진인은 민달천황의 손자인 백제왕의 후손이다. 이를 보고 봐라 민달의 손자가 백제왕이니 민달이 백제인 아니냐? 야호~ 라고 쾌재를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이는 어찌 보면 참 재수 없는 소리다. 민달이의 손자가 백제왕? 왜놈이 자기 왕족을 백제왕으로 파견했나?
그럼 백제는 일본의 완전 속국이네.
완전 백제를 왜국의 속국으로 보는 재수 없는 케이스.
그런데 이 구절을 왜 그리 좋아들 하는지...
그런데 백제왕의 후손이 왜 일본에서 계속 사나? 그런데 하나 참고할 것은 백제왕족을 백제왕이라 표현한 부분이 신찬성씨록에는 보인다. 하여튼 백제, 중국에서 문화를 수입해다가 일본에 전해줬는지 갔다 바쳤는지 불확실하고, 군사력은 띨띨해 일본의 군사원조를 툭하면 바라는 띨띨한 국가를 뭐 그리 대단하다고 자꾸 그러는지..내참. 하여튼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곤지와 무령왕의 케이스는 매우 복잡합니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서 인용한 백제기록들이 서로 틀립니다.
그런데 대체로 일본서기의 기록이 더 정확합니다.
일본서기를 토대로 보면
곤지는 461년(웅략5년, 개로왕7년)에 일본으로 간다.
간 사유는 웅략을 섬기던 백제여자池津媛이 간통하는 바람에 웅략이 불에 태워 죽인다.
그런 사건 때문에 개로왕이 자기 동생곤지를 일본으로 보내게 되는데(인질성격이 강함) 동생 곤지는 약간 열을 받아서 형인 개로에게 당신 마누라를 달라고 한다(아마 세컨드겠지) 그런데 그 여자는 이미 임신 중. 사월에 떠났는데 6월에 이끼섬 부근의 각라도에서 이 여자가 아이를 낳자 할 수 없이 아이와 여자를 백제로 돌려보낸다. (그 아이는 무령왕이 된다. 그래서 무령왕은 461년생.) 그리고 곤지는 일본으로 간다. (그래서 일본현지에 곤지신사가 있게 된다.) 곤지는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일본서기에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삼국사기에는 477년에 백제의 내신좌평이 되고 그 해 죽는다고 나온다. 아마 백제로 돌아온 모양.)
일본서기는 479년에 기사에서 곤지 아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이에 아들이 다섯 명으로 늘어났는데, 백제의 문근왕(아마 삼근왕)이 죽자 웅략천황은 곤지의 둘째 아들이 총명해 웅략하다는 이유로 백제의 왕으로 삼으면서 축자국 군사500명을 주어 백제로 돌려보냈다고 한다.(백제왕을 일본천황이 선택? )
그래서 그가 동성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물론 삼국사기는 동성왕이 어디서 왔는지 기록하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돌아오지 않은 곤지의 아들이 성씨를 이루고 사는데 그들이 바로 飛鳥戶造라고 신찬성씨록은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무령왕은 동성왕 다음으로 즉위하게 되는데 왕5년인 505년에 자기 아들(斯我君)을 다시 일본으로 천황을 섬기라고 보낸다(인질성격). 이 사아군의 아들이 법사군이고 왜군의 선조다. 라고 일본서기는 기록하고 있고,.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 사실을 모두 거짓이라고 말해야 하지만 저는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이 시기의 일본서기의 백제관련 사료가 생각보다 상당히 정확하다는 것이 이미 상당히 밝혀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시기야 약간 다르지만 일본의 지원으로 왕이 즉위하는 경우까지 삼국사기에도 나오니 말이죠. 전지왕이 일본에 인질로 가 있었다는 것은 삼국사기에 나오고 그리고 즉위하는데 왜 일본병사가 호위를 하고 왔다라고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는데... 사실 전지왕은 아신왕의 맏아들 태자였습니다.
둘째왕자도 아니고 일국의 태자가 일본으로 인질로 가야할 만큼 당시의 백제는 허약했거나 일본의 지원이 절실했겠죠. 그런데 전지왕은 일본천황에게 울면서 귀국을 청했다고 합니다. 전지왕은 즉위과정에서부터 일본에 상당히 예속된 상태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王薨 王仲弟訓解攝政 以待太子還國 季弟禮殺訓解 自立爲王 전支在倭聞訃 哭泣請歸 倭王以兵士百人衛送 - 삼국사기
위험하지만 이 전지왕의 즉위와 동성왕의 즉위가 유사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백제를 소재로 하여 대왜 민족적 자긍심을 고양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역사에 자랑스러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백제와 왜의 정치군사적 관계를 가지고 긍지를 느끼려 하는지...
군사력으로 긍지를 느끼려면 중국의 통일정권과 정면승부를 몇 차례나 치루면서 몇 차례 승리를 거두고 중국 통일왕조 하나를 멸망시킨 고구려의 사례를 드시든지, 아니면 국제적 역학관계에 대한 현실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삼국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한반도 통일왕조 수립에 성공한 신라의 현실적인 노력을 거명하면서 국제화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로 삼으시던지, 그도 저도 아니라면 백제의 문화전파를 일본서기를 통해서 입증해 진정한 힘인 문화의 힘을 강조하시든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거든요.,.
---> 악의에 찬 반 백제 이론이다.
왜놈이라 경멸하고 있다.
그들이 역사적으로 형제간임을 안다면 그랬을까?
스스로 조상을 욕한다고 느낀다면 그러겠는가? 영남인이라 그런가?
신라주의자라 그런가?
아화 전지, 구이신, 동성, 무녕, 무왕. 즉 열도에서 백제 왕권에 관계된 왕만 6명이다. 백제와 한 집안이 아니라면 가능한 얘긴가?
경행, 성무, 침류, 이중, 웅략, 서명 등 백제에서 왜 왕권에 간여한 것만 6건이다.
한 집안이 아니라면 가능한 얘긴가? 곤지가 인질이라고? 성씨록을 보라!
어떻게 웅략이 곤지가 되는지. 일본서기 기년을 보라!
어떻게 곤지가 웅략이 되는지! 물론 껍데기만 보니 무엇을 알 것인가!
무엇보다도 그는 왜가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왜(倭)다.
왜가 바로 왜(why)가 되었기에 고대사가 미궁에 쌓여 있고 엉망진창이 된 것이다.
바로 신라와 백제의 이야기는 바로 왜다. 그것이 바로 고대사의 핵심인 것이다.
나는 분명히 밝힌다. 왜는 백제라고.
여기서 그것을 모조리 내놓지 못하는 점이 미안할 뿐이다.
그러나 찾아보라. 일본서기, 고사기, 신찬성씨록에 그들이 백제였음을 누누이 밝히고 있다.
특히 성씨록은 아예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바로 무명처럼 색안경을 쓴 자들에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내친 김에 한마디만 더하자.
화랑세기에 진흥왕이 말년에 풍질이 걸려서 황후, 미실, 보명, 월화, 옥리 등 다섯 여인과 즐거움에 탐닉했다고 한다.
그 때 나는 상장돈장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혹시 옥리가 백제 성왕의 딸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중에 상장돈장을 보니 그 추측이 맞았다.
즉 옥리가 낳은 딸이 진평왕과 관계하여 선화를 낳았다.
그 선화가 바로 무왕과 결혼하였다.
즉 삼국유사의 기록은 사실인 것이다.
선화는 신라의 핏줄이기도 하거니와 백제의 핏줄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왕은 누구인가? 바로 민달의 손자다.
괜히 백제왕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성씨록은 바로 사실을 전하고 있다.> 무왕은 결코 법왕의 아들이 아니다.
바로 민달의 손자이며 백제왕인 것이다.
삼국유사에 왜 무왕의 설화가 전해지는지 명백해진다.
삼국사기는 정사지만 세세한 고대사의 비밀은 오히려 삼국유사가 더 깊이 전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미사흔의 기록도 그렇다.
각설하고 무왕은 나중에 서명천황이 된다.
그러기에 일본서기에서 왜국이 백제대사를 짓고 백제궁을 짓고 백제옷을 입고 조회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백제가 아니라면 어림도 없는 것이다.
스스로 백제임을 그 보다 더 표현할 수는 없다.
단순히 왜 왕권에 백제계가 많이 포진해서 그렇다고? 껌 씹는 소리들 말아라!
백제본기 무왕기의 마지막 부분은 의자왕의 대리통치기다.
그러다가 무왕인 서명이 죽자마자 반대세력을 일본으로 쫓아낸다.
3) 박창범 인식에 대한 비판
- 신라의 일식기록이 모두 지나사서에 있다고 한다.
삼국의 위치와 천문관측
박창범교수는 삼국의 천문관측 위치를 중국대륙으로 잡게 됨으로써 중국을 우리가 통치했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는 삼국은 한반도에 없었다는 주장은 활개를 치게 되었다.
박교수는 신라의 천문기록 중에서 초기의 기록의 최적관측지는 양자강유역이라고 발표했다. 후대의 최적관측지는 신라의 영토이지만 초기의 최적관측지가 양자강유역이라고 발표함에 따라 그 해석도 분분하다. 신라의 초기 영토가 양자강지역이라는 설과, 신라가 양자강지역을 다스리다 한반도로 옮겨온 것이다라는 설, 가야세력이 양자강지역에 있다가 한반도로 오면서 가져오게 된 천문기록이라는 설등...
과연 박교수의 주장대로 초기신라의 천문기록의 최적 관찰지는 양자강일까? 박교수는 일식현상을 분석해 도출된 결과라고 한다. 그리고 양자강지역이 신라의 천문관측지로 나오는 시기는 ad201년까지라고 한다.
이시기 신라의 천문기록 중에서 중국문헌에 나타나지 않는 독자적인 것들만 살펴보자
1. 남해11년, 월일 없음, 밤에 유성이 있었다. 2. 탈해23년 2월, 혜성이 동방에서 보였다. 3. 상동 또 북방에서 보였는데 20일에 사라졌다. 4. 파사25년 1월 별똥이 비처럼 왔는데 땅에 닿지는 않았다. 5. 지마9년 2월 큰 별이 월성서쪽에 떨어졌다. 6. 지마17년 8월 긴별이 하늘에 두루 미쳤다. 7. 일성20년 10월 혜성이 동방에서 보였다. 8. 상동 또 동북방에서도 보였다. 9. 내해5년 7월 태백이 낮에 보였다.
이상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박교수가 초기신라의 최적천문관측지가 양자강에 있었다는 증거로 사용한 일식기록이 전혀 없다. 모두 유성에 관한 기록정도다. 초기신라(201년 이전)의 천문기록 중에서 중국사서에 등장하지 않는 기록은 모두 9개. 그러나 3번과 8번은 하루에 나타난 상황이기에 7일의 천문기록이 있는 셈이다. 그중에서 천문현상 발생날짜를 알 수 있는 것은 탈해23년 2월조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발생 개월만 나와 있고 구체적 날짜가 없다.
박교수가 사용한 초기 신라의 일식기록의 특징은 매우 구체적인 날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두 중국문헌에 같이 나타나고 있는 것들이다. 혁거세재위 때 일식기록이 7번 나타난다. 이때의 기록을 보자
1. 혁거세 4년 4월1일 해에 식이 있었다. 2. 혁거세 24년 6월 그믐날 상동 3. 혁거세 30년 4월 그믐날 상동 4. 혁거세 32년 8월 그믐날 상동 5. 혁거세 43년 2월 그믐날 상동 6. 혁거세 56년 1월1일 상동 7. 혁거세 59년 9월 그믐날 상동
이 모든 기록은 일식이 있었던 달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날짜까지 기록되어 있다. 위의 7개의 기록은 한서오행지에 그대로 나온다.
이런 초기신라의 기록은 한서오행지의 기록과 동일하며 지마, 아달라, 벌휴, 내해임금때의 일식기록은 모두 후한서오행지에 나오는 기록과 동일하다.
이런 현상은 삼국사기 초기천문관측 최적지가 한반도가 아닌 이유를 너무나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굳이 슈퍼컴퓨터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일식에 관해 독자기록만 등장하는 것은 신라기 전체에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모두 중국기록과 중복되는 기록이다.
이를 바탕으로 박창범교수는 일식최적관측지를 추적한 것이다. 삼국사기와 중국사료에 동일하게 나오는 일식기록을 가지고 최적관측지를 추적하고는 "어 이상하다. 관측지가 중국으로 나오네" 라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는 <천문과 우리역사> 55페이지로 가면 당당하게 <삼국사기의 일식관측지는 한반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발표하고 학계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학계의 사람들은 모두 멍청한 사람들인가 보다. 책에는 오재성이란 분이 찾아왔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하고 있다. 이 말은 오재성이란 분의 주장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박창범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잘 알 것이다. 박창범은 학자이지만 코메디언인 셈이다.
---> 이 글은 바비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격받은 글이다.
여담이지만 바비님의 순발력이 부럽다.
어디서 그런 퍼뜩이는 재치가 나오는지!
그야말로 무명 사냥꾼이다.
신라기록이 모조리 지나사서에 나온다고 거짓이라고.
그렇다면 지나에 나온 기록 모조리 들어가야지 왜 일부만 들어갔나?
나머지 천문기록은 날짜가 없는데 일식은 날짜가 나온다고?
일식이 어디 다른 날 일어나는가?
그믐이나 1일에 일어나는 것이 상식이지 않는가?
같은 일식을 지나는 기록하고 신라는 기록하지 말라는 법 있는가?
왜 그렇게 조국을 뒤처진 나라로 까뭉개기에 열심인가?
그대 혹시 정말로 지나가 심어놓은 동북공정의 스파이인가?
그것보다는 오히려 신라의 일식기록이 왜 중기에는 전멸하는지 그것이 더 궁금하지 않는가? 바로 백제의 부용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말기에는 백제의 기술자와 고리의 기술자를 받아들여 마침내 다시 일식기록에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일본서기(백제서기) 기년과 신라본기 기년은 약간 착오가 난다.
이것은 지금까지 내가 정리한 바로는 1년 차이가 난다.
어쩌면 일식기록도 착오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착오가 난 것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마 백제와 고리에서 475년의 개로왕 패망기사가 신라본기엔 474년에 난 것과 같다.
4) 낙랑군의 논리
- 대동강이 낙랑군이라고 생떼를 쓴다.
윤내현의 논리가 재야의 교과서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윤내현의 주장중의 상당부분은 또 다른 역사왜곡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낙랑의 위치에 대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낙랑이 난하 유역에 있었음을 동의할 수 없는 삼단논법으로 증명한 후 평양의 낙랑은 다른 낙랑국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 서기44년에 동한의 광무제가 바다를 건너 낙랑을 정벌해 군현을 만들었다는 삼국사기조를 인용해 그 후에는 고구려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중국의 군사기지였다고 주장한다. 기막힌 사료의 취사선택에다 희한한 논리로 역사를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닌가? 즉 동한(후한)시기에만 중국의 군사기지 낙랑이 평양지역에 있었을 뿐 서한(전한)시기에는 아예 중국의 영향이 없었으며 낙랑, 대방군 모두 난하유역에 있었다는 것이다.
평양의 정백리127호분에서 낙랑태수연왕광지인이라는 인장이 발굴되고,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태봉리의 대형 전축분에서 대방태수장무이전이 출토되었음에도 이는 모두 유민이 자기가 살던 곳의 명칭과 직위를 가져왔다고 주장해버린다. 여전히 낙랑군과 대방군은 난하유역인데 그 이유는 난하에 조선현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열수가 난하의 지류이기 때문이란다.
참으로 편리하기 짝이 없는 논리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알만한 학자라면 어떤 미친놈이 이 논리를 받아들이겠는가? 그래서 윤내현은 사학계의 왕따인 것이다.
평양지역이 낙랑군임을 잔소리 말고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낙랑토성지역에서 발굴된 반량전을 제조하기 위한 주물틀, (군현의 치소도 아닌 곳에서 반량전이나 오수전을 제조하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다.)
-낙랑예관, 낙랑부귀의 명문수막새.(단순한 군사기지에 이정도의 명문수막새는 무리)
-지절4년(bc66년)명 칠곽이 나온 정백동37호, 영시3년(bc14년)명 일산대가 나온 정백동2호, 시원2년(bc85년)명 귀잔이 나온 석암리194호, 수화원년(bc8년)명 칠반이 나온 석암리 200호등 수많은 전한시대의 유물 ('어찌하여 서한시대에 조성된 유적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보다 훨씬 늦은 동한시대의 유적만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라는 윤내현의 주장은 잘 몰라서 생긴 의문일뿐..)
-한의 낙랑군 25현 가운데 23개현의 명칭이 드러난 봉니 (발굴과정에서 나온 것도 존재하므로 무조건 위조라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윤내현이 주장하는 '봉니가 출토된 곳은 공문서를 받은 곳이 된다'라는 말은 봉니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 지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 봉니는 문서뿐 아니라 상자를 봉해 보관하는데도 사용된다. 공문서를 받은 곳에서 봉니가 발견되었다면 그 문서는 개봉도 안 된 편지인 것이다. 봉니는 그 문서를 개봉하는 순간에 파괴되고 마는 마른 진흙덩어리임을 알아야 한다.)
-낙랑군 25개현중의 하나인 점제현의 위치를 보여주는 평남 용강군의 점제현신사비, 정백동1호분출토 부조예군, 정백동2호분출토 부조장인등의 인장 (점제현신사비는 일제의 위조 혹은 갈석에서 이치, 부조예군인장은 고조선의 인장 등으로 설명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한도가 있다. 서한(전한)이 설치한 낙랑군과 25개 현의 중심이 대동강 유역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난하 유역에 낙랑군과 대방군의 치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낙랑이란 글자가 단 한자라도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없다.
도대체 난하에 낙랑군이 설치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부 엉터리주장은 무슨 배짱으로 그리하는지 궁금할 뿐... 신채호선생이나 박은식선생이 이런 주장을 한다면 너무나 당연히 수긍할 수 있다. 나라를 일본에 잃은 백성이 2000년전에도 그러한 꼴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일제시기에 평양낙랑을 부정하는 것은 다른 당위성이라도 있지만 오늘날 역사를 왜곡해 가면서까지 그리하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 정말 누가 역사를 왜곡하는지 모르겠다. 지나 연호만 나오면 무조건 지나 땅인가? 근세조선은 모조리 명나라 청나라 땅이겠네.
서기 연호가 나오면 무조건 미국이나 서양 땅이겠네.
한마디로 고대인들의 역동성을 모르는 소치다.
더구나 그 때(지금도 그렇지만) 동아시아의 중심은 중원이다.
중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천지에서 중원의 연호를 쓴 것이 무조건 중원의 영역인가? 오히려 그런 연호가 집중되어 나오는 땅은 큰 세력의 중심부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 땅은 어디까지나 마한이고 백제였다.
한나라 수많은 군 중에 모두 군명이나 현명이 쓰인 명문이나 봉니가 전부 나왔는가?
어찌 낙랑군에서 꼭 나와야만 되는가?
낙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껄이는 소리. 위에서 이미 무수하게 논했다.
낙랑이라면 무조건 낙랑군만 생각하는 그 머리란!
낙랑과 대방이 어째서 지나인가? 바로 조선이 아닌가?
조선 땅의 원래 명칭이 아닌가?
한씨들이 낙랑에서 피난 온 것을 모르는가?
즉 그들도 마한 안에서 낙랑인인 것이다.
그들이 왕권을 장악하면 당연히 지명도 따라오는 것이다.
물론 윤내현이 말하는 낙랑국도 절대 아니다.
무명이 툭하면 꺼내는 <후한서지리지>를 봐라!
위에서 말했듯이 단편적으로 낙양에서 한단까지가 1100리이니 낙랑군 5000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요하를 넘어오지 못한다.
왜 하필 한단인가? 유주나 요동 낙랑군과 같은 동북로이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을 가려면 한단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지는 가깝게 느꼈을 것이고 변방을 멀리 느꼈다.
이는 지나사서의 지리지를 읽다보면 누구나 느끼는 바고 실제로도 그렇다.
진정 간단한 산수도 못하는가?
5) 백제의 논리 -
호남지역은 백제도 아니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희망으로 옛 역사가 바뀌어주지를 않습니다. 어떤 논리로도 요동과 나란히 나오는 요서가 광서성까지 가지 않습니다.
요즘 방송과 일부학자들이 함부로 했던 거짓말이 상식화되어 가고 있군요. 광개토대왕비 석회도말작전, 백제담로의 해외경영(필리핀까지 경영했다고 하더군요.), 백제왕이 일본천황이 되었다 등등 참 민망한 거짓말 그동안 많이 했습니다.
백제는 대제국이 아니며 해외경영(요서경략은 제외)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거의 없습니다. 하와이에 조선인들이 사탕수수농장으로 이민을 갔다고 해서 하와이가 조선 땅이란 논리를 펴는 분들은 없습니다. 일본 아스카문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제는 일본 땅에 독자권력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백제세력은 왜에 오히려 흡수되었지요. 백제는 6세기가 되도록 해외경영은커녕 전남지방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전남지역의 고고학자 10명에게 물어보십시오. 과연 백제가 전남전북을 제대로 장악했다고 보는지... 역사는 감계기능을 하라고 존재하는데 거짓말을 하면 역사의 존재의의를 허물어뜨리게 되죠.
---> 그래, 정말 옳은 소리다. 생각해 보라.
그대 말대로 겨우 한강 유역뿐인 백제가 고구려와 그리 치열하게 일진일퇴 하나?
그런 나라가 어떻게 요서는 경략하나?
또 그렇다면 광개토왕의 58성이 들어갈 자리는 어디인가?
그런 땅을 가지고 지나사에서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고 얘기하나?
어째서 공식기록인 <당서>에 고리보다 큰 영역으로 나오나?
적이 바로 강 건너 코앞에 있는데 수도라는 한성이 풍납토성에서 100여년을 잘만 번영하는가?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여 고구려와 단절되었는데도 여전히 고구려의 대군이 침입하고 고구려와 대립하는가?
공식 역사서에 그 땅이 발해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는가?
발해가 한반도 서남부에 있었다는 얘긴가? 상식을 가진 이가 할 소리요? 앞뒤 맞는 소리를 하시오!!
주류이론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모조리 폐기되어야 한다.
무명이 툭하면 다른 이를 비판하면서 사서를 편의부정하고 취사선택한다고 하는데 과연 누가 그런가?
<기록>을 부정하고 멋대로 해석하는 것은 그대가 신봉하는 주류들과 그대 자신이 아닌가?
백제가 굳이 중국 동남부와 동남아시아를 휘저었다고 하는 소리를 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 강역에서의 위치만은 제대로 대접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왜 문헌을 멋대로 해석하고 고고학을 왜곡하여 역사를 개판으로 만드는가?
6) 부여의 논리
- 어쩌다 옳은 소리 한 번 했다.
무명 글 : 진부여솔선백장인이라는 서진시기 도장이 1975년 내몽고자치주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부여가 어디에 있었기에 이런 유물이 내몽고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흥미로운 유물입니다. 내몽고 상경박물관측에서는 길림, 흑룡강성에 있던 부여족의 일파가 내몽고지역으로 이치 된 흔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기존의 부여의 영역을 염두에 둔 설명으로 보입니다.
혹시 부여국이 생각보다 서북쪽에 있었는가? 부여라는 종족의 영역이 생각보다 광범했었나? 고구려에 멸망한 부여가 그 후 서진시대까지 존속했었나?(아니군요...부여는 400년대에도 존속...) 등등의 의문이 잠깐 들기도 합니다만,,,
부여의 세력권이 대흥안령 지역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동호에서 이어지는 선비와 오환족이 부여지역에서 발생한 것은 아닐까...
고구려와 백제의 창건자들이 모두 부여출신이니까 부여는 대략 우리민족형성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셈입니다.
진나라가 부여의 부족장에게 준 도장이 장춘이나 하얼빈 부근이 아닌 내몽고 파림우기 부근에서 나오니 이상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 잘 보고 있소. 이는 내가 말한 부활한 부여다.
즉 고리의 서북에서 부활한 부여인 것이다.
그래서 현도군과 낙랑군을 비롯하여 지나 역대 왕조와 그렇게 많은 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만주 한가운데 있었다면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왜? 고리가 요서에 있었기 때문에.
모용씨가 멀리 만주 한가운데 부여를 쳤을 것 같은가?
바로 하북에서 가까운 부여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무명 한 사람을 골랐지만,
결코 그를 인격적으로 모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고대사 인식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나무라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현대사나 사회를 보는 눈은 존경할 만한 점도 많다.
오히려 세세한 면에서는 어느 누구에 못지 않게 뛰어나기도 하다.
17-1
그는 대표적인 식민사학의 나팔수, 동북공정의 앞잡이"
요 따위로 말씀하시면 기분이 팍 상합니다. 그러나 명예훼손소송은 하지 않을테니 너무 걱정은 마시고...
다른 것은 제껴두고 고조선의 위치이야기.. 도대체 제가 한 이야기가 잘못되었다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인지 찍어보세요.
1. 진개가 고조선의 서방2000리를 빼앗고 난뒤 만번한을 경계로 하였다. - 위략
2. 이때의 만번한은 난하와 그지류 汗水 부근이므로 패수는 난하다. - 윤내현
3. 그럼 진개가 2000리를 빼앗기전, 고조선의 경계는 난하의 서쪽2000리에 있다?? -저의 궁금점
4. 만약 난하가 패수고 위략의 만번한이 난하유역에 있었다면 고조선을 공격한 연나라의 수도는 최소한 난하의 서쪽 2000리를 넘어서 있다. -저의 중간결론
5. 그렇다면 진개의 동정이 있던 시기 연나라는 황하의 대만곡부인 오르도스지역 너머 있게된다.
6. 그럼 연하도는 어느나라의 것인가? 계성은 어느나라의 성인가? 그곳에서 출토되고 있는 엄청난 유물과 명문은 고조선의 것인가?
7. 연하도 유물이 연나라의 것임은 고고학적으로 명백하다.
8. 그렇기 때문에 난하가 패수라는 말은 위략의 기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9. 위략의 패수, 만번한은 난하가 아니라 요하유역이다.
자 여기서 몇번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당신은 식민사학이오 라고 하면 뺨따구 맞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어수선하게 이야기를 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좀 말씀하셔야 하겠네요. 그리고 혼자 기쁨에 넘쳐서 유레카를 외치는 것은 자유입니다만, 독립선언서가 아닌 다음에야 내가 모든 비밀을 밝혀냈다고 해봤자 별로 감동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많이 봐왔거든요.
18
이제 다시 환장할 일이 생긴다.
수로가 42년에 가야를 세웠다고?
그래서 비류백제 삼한백제론이 나왔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수로는 3말 4초의 사람이다.
가야사 조작의 키는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120+30+30+30+30=240 이다. 즉 4갑자 올린 것이다.
그럼 신라본기에 나온 가야의 기사는 거짓인가? 맞다.
42년 가야의 건국은 맞다.
다만 금관국과 가야를 삼국사기는 분명히 하고 있다.
금관국은 282년 이후에 세워졌다.
그것은 오늘날 고고학과도 일치한다.
누가 세워 주었는가? 백제다. 백제 부여씨다. 왜?
삼국사기 파사왕조에 수로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수로와 파사는 짝이다.
언제나 같이 움직인다.
파사가 5대왕으로 조작되었으니 당연히 수로도 거기에 따랐다.
왜? 수로와 파사는 같이 움직였으니까!
그러기에 수로설화에 파사석탑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파사왕을 뜻한다.
파사는 5대왕이 아닌 18대 왕이다.
마찬가지로 수로도 그 때 사람이다.
가야연맹? 전기 가야는 금관국이 주도하고 후기 가야는 대가야가 주도했다고?
무슨 풀 뜯어 먹는 소리냐?
가야는 제대로 된 나라도 아니었다.
오직 백제의 따라지, 왜의 따라지였을 뿐이다.
이래도 일본서기를 무시하는가?
그들은 한결같이 가야지방에 대한 지배권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정확한 것이다.
그것이 비록 <임나일본부>가 아니라도.
그런 가야가 왜를 세웠다고? 웃기지 마라! 피라미가 고래를 낳은 꼴이다.
고고학도 이미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가야 지방은 북방계 유물로 가득한 것을.
수로-거등-마품-거질미-이시품-좌지-취희-질지-겸지-구형-세종-솔우-서현-유신 13 - 12 - 11 - 10 - 9 - 8 - 7 - 6 - 5 - 4 - 3 - 2 - 1 - 0
즉 수로는 유신의 13대조가 된다.
그러면 수로는 어디에서 왔는가? 과연 그 애비는 누구인가?
이제 허접한 비류백제, 삼한백제론은 끝낼 때가 왔다.
비미호는 일본서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수로는 결코 1c의 사람이 아니다.
그런 이론은 무의미한 또 하나의 헛말일 뿐이다.
그렇다면 가야의 시조는 누군가? 삼국사기에서 밝히고 있다. 이진아고왕이다.
이진아고가 누구인지는 아직 모른다.
더 파고들어야 한다.
하지만 당연히 수로는 바로 투후 김일제의 후손인 것이다.
바로 흉노의 자손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무왕비의 위력이요, 성씨록의 위력이요, 돈장의 위력인 것이다.
이를 박창화가 절대로 알 리가 없었다.
첨부하자면 무력은 김유신의 할아비가 아니다.
유사 문무왕 조서에 나온 대로 문희는 세종-솔우-서운(서현)-문희의 계통이다.
유신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의 세종은 이사부의 아들 세종과는 다르다.
그 점은 너무 길므로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그럼 어떻게 해서 무력이 유신의 할아비로 둔갑이 되었는고?
바로 서현의 출세욕 때문일 것이다.
삼국사기와 유사, 화랑세기는 그 답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돈장엔 그 증거의 일단이 나온다.
19
요의 수도는 임황이요, 이 곳이 서요하의 상류지역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요동도 요서도 다 요의 땅이었다.
다만 요동은 약간의 요동(搖動)이 있다.
- 혹시 모른다. 요동이 진짜 왕씨 고리의 땅이었을지도 -
어쨌거나, 지나의 어느 시대 어느 기록에서 요나 거란족이 장성(만리장성) 남쪽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한 적이 있는가?
어디 중국을 침략하여(중국이 연운 16주를 떼어주기 전에) 나라를 세웠다고 지적한 적이 있는가? 없다. 결코 없다.
그런데도 안동도호부가 요동이고 만리장성의 기점이 압록강이었다고 망발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무엇을 근거로 그리 떠벌리는가?
만리장성이 요서를 가로질러 요하를 끊고 압록강에 닿았다고 식민사학과 그를 추종하는 이 나라 주류사학계는 아직도 망발을 늘어놓고 있는가?
모두다 학문의 교수대로 보내야 할 것들이 아닌가?
역설적으로 만리장성은 결코 요서를 넘어서지 못했고 안동도호부는 난하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 고리의 마지막 평양성은 어디였는가? 바로 오늘날 요동 지역임을 말해준다. 요사는 고대사의 비밀을 모조리 간직하고 있다.
그 뒤에 나온 <송나라 이후의 고지도>를 보더라고 결코 만리장성이 요하를 가로질러 압록강에 닿은 것으로 그려진 것은 없다.
바로 오늘날의 만리장성과 거의 궤적이 일치한다.
즉 명나라가 쌓은 오늘날의 장성이 바로 진시황대에 쌓은 만리장성인 것이다.
이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가? 물론 다른 증거도 고대문헌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존화사관주의자들, 사대주의, 식민사학, 동북공정의 앞잡이를 자처하는 주류사학과 그 추종세력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song님이 이 싸이트에서 논한 논리가 정확하다.
대릉하변의 조양이 선비족의 수도인 용성이라고? - 지나던 개가 웃는다. -
그곳은 바로 고조선의 터전, 고리의 터전이었다.
바로 한나라 요동의 군현과 고리가 충돌하던 지점이다.
그리고 요는 어쨌거나 연운 16주를 차지한다.
그곳은 장성 이남이었다.
사학자 누구도 연운 16주를 오늘날 장성의 북쪽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바로 요나라 시대의 장성이 오늘날 장성의 궤적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식민사학이나 지나의 억지 이론대로 요서를 가로지르고 요하를 건너 압록에 닿았다면 연운 16주가 요동이나 요서에 있었단 말인가?
즉 만리장성은 전국시대에 쌓고 다시 명나라가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축성한 것이다. 결코 다른 곳으로 옮겨 쌓은 것이 아니다.
그럼 요는 어디에서 성장했는가?
역사에서 지워졌지만 요는 분명히 고리의 영역에서 성장했다.
고리를 이은 발해의 영역 안에서 성장했다.
고리 멸망 후에 한때 강성하기도 했지만 얼마 뒤에 바로 발해의 지배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발해의 약화를 틈타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발해의 동만주에 뒤이어 서만주에서 일어난 것이다.
거기엔 또 하나의 변수가 있었다.
바로 오늘날 요동지역의 신라였다.
신라가 요동지역에 있었다고? 그렇다.
신라는 요동지역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신라 9주는 잘못된 것이다.
삼국사기와 후대의 기록을 보라!
9주 외에도 주가 몇 개 더 있었다.
삼국사기 지리지는 심히 잘못된 고증일 뿐이다.
잘못되고 날조된 역사의 편린일 뿐이다.
각설하고 이래도 요가 남의 역사인가?
어떻게 요의 역사가 지나사가 될 수가 있나?
민족적 친연성과 풍습, 문화, 역사 강역 어느 쪽도 우리하고 가깝지 되놈의 역사와 가깝지 않다.
고조선, 고리, 발해의 영역에서 일어났으니 당연히 우리역사인 것이다.
이게 다 누구의 죄인가?
바로 김씨의 죄다. 신라김씨의 죄다.
바로 뜻 없이 살아온 이 땅의 지배세력들이다.
20
일본열도 고대사의 위대한 천황으로 통하는 웅략은 누구인가?
고리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계획한 개로왕은 일차로 왜 왕권을 접수하기로 한다.
이미 대륙의 문명에서 멀어지고 문화적으로 떨어진 열도는 불안정하였다.
더구나 부여씨와 목씨의 타협으로 김씨인 윤공이 잠시 자리를 이었지만 부여씨와 목씨의 갈등도 여전했다.
하지만 대륙에선 부여씨가 이미 확실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고 열도의 부여씨도 응신의 후손을 비롯한 여러 씨족들이 강성한 상태에서 개로의 동생인 곤지의 등장은 커다란 회오리를 몰고 온다.
그는 거의 무력으로 정권을 잡고 왜왕에 오른다.
그러다가 백제가 다시 고리에 패망하고 수도인 평양이 대파되는 위기를 맞는다.
그러자 그때까지 왜의 영역이었던 충남과 호남지역을 백제에게 준다.
일본서기에서 천황이 구마나리를 주어 백제를 부흥하게 했다는 것이 결코 거짓이 아닌 진실인 것이다.
바로 호남의 왜식 고분들은 그때까지도 그곳이 백제의 직할 영역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그런 땅을 아낌없이 마구 준다?
바로 왜와 백제가 동족이 아니라면 절대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각설하고 웅략인 곤지는 국사를 맏이인 청녕에게 맡기고 백제로 온다.
그러다가 혼란한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희생된다.
그 시신은 다시 왜로 옮겨져 왜왕의 자격으로 모셔진다.
훗날 청녕이 다시 남조정권에 표를 올린다.
바로 왜왕 무(武)다. 결코 무는 웅략이 아닌 것이다.
왜 지나사서엔 5왕인데 일본서기엔 인덕-이중-반정-윤공-안강-웅략-청녕의 7명인가? 언제 지나사에서 외국역사 기(紀) 썼던가? 열전만 썼지.
인덕은 찬, 진은 반정, 제는 윤공 흥은 안강 혹은 미륜, 무는 청녕이다.
물론 그들의 부자관계 등도 맞지 않다.
지나사서에서 쓴 동이열전은 언제나 참고용일 뿐이다.
오직 일본서기, 성씨록을 참고하여 계통을 밝힐 수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다. 한국고대사도 그리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주는 삼국사기와 유사다.
동성이 왜 동성인가? 바로 동쪽 성에서 온 왕이기 때문이다.
왜는 백제의 동쪽이기 때문이다.
왜와 백제가 한 집안이 아니라면 절대로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서기에 천황이 동성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백제왕으로 보낸다.
그 천황이 과연 누구란 말인가? 바로 곤지의 맏아들인 청녕이다.
일본서기는 웅략기에 넣어놓았지만 결코 웅략이 아니다.
그 비밀은 바로 기년조작에 있다.
그러다가 훗날 계체가 왕위에 오른다.
이는 아마도 곤지의 막내이거나 손자일 확률이 높다.
일본서기가 맞다고 본다면(계체 나이를 감안하면) 아마도 곤지의 셋째에서 막내 사이일 것이다.
혹은 개로왕의 다른 아들일지 모른다.
다만 아직 웅략이후로는 잘 알지 못한다.
내가 거기까지 신경 써서 공부할 틈이 없었다.
왜 계체라고 하였을까? 바로 체(體)를 이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일본서기는 천황의 호칭을 그냥 아무렇게나 적지 않았다.
바로 그 호칭에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이다.
훗날 다시 천무가 정권을 쥔다.
생각건대 천무는 원래 김제상의 후손인 백제왕일 확률이 높다.
생각하라! 내가 왜 백제본기에도 없는 백제왕이라고 부르는지!
한 가지는 확실하다.
천무는 김씨다.
그럼 백제사에서 김씨왕이 있었는가?
그렇다. 확실히 있었다. 밝히지 않았는가? 사요왕이다.
그럼 사요가 최초의 김씨 백제왕이었나? 아니다. 누구인가? 바로 숭신이다.
그러기에 神의 칭호를 얻은 것이다.
언감생심이지만 천무가 정권을 잡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다.
김씨들은 이래저래 신라와 일본 양쪽에서 역사조작에 착수한다.
서로에게 이득이었으므로. 그들은 역사를 도살한 것이다.
천무 이래 신라와 일본의 빈번한 접촉은 바로 역사조작을 위한 수순이었다.
천무가 정권을 쥔 것은 백제와 고리와 망하고 김씨가 득세하던 바로 그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쩌면 일본의 문무천황은 정말로 신라의 문무왕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환무가 집권한다.
바로 오늘날 일본천황가의 직계다. 바로 부여씨다.
하지만 그들도 뒤틀어진 역사를 바꾸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륙의 일을 잊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로 매진한다.
하지만 족보는 필요했다. 그러기에 성씨록이 나왔다.
바로 일본삼서중에서도 성씨록이 핵심인 까닭이다.
바로 부여씨와 해씨 김씨와 박씨와 목씨의 족보인 것이다.
백제는 일명 구다라라 한다. 바로 구다라로 읽어야 한다.
물론 후대에 음가가 변형되었건 어쨌건 백제의 주류인 일본이 구다라라 하였다.
백제를 제대로 모르는 우리는 당연히 거기에 따라야 한다.
물론 우리가 백제의 주류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백제의 기록이 깡그리 사라졌기에 몰랐을 뿐이다.
구다라를 구다라라 읽어주는 게 무엇이 잘못된 일인가? 무엇이 창피한 일인가?
각설하고 고구려연구회 등에서 내 놓은 고구려 지도를 보자!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렇게 큰 고리가 무엇이 부족해서 콩알만한 백제와 신라를 꺾지 못하여 나라가 망하고 통일을 못했단 말인가?
당시의 기록은 분명히 고리와 더불어 백제를 대등한 나라로 그리고 있다.
76만호대 69만호다.
오히려 백제가 크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참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정의한다.
모두다 거짓이다.
위대한 고구려를 창조하기 위해 역사를 심히 왜곡하고 있다.
북한의 주체사학이나 식민사학이나 다 마찬가지다.
식민사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고대사 복원은 꿈일 뿐이다.
위대한 것은 고리가 아닌 백제였다.
그들은 망한 부여를 다시 일으키고 모용씨에게 두 번이나 패망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백제를 세우고 역사의 강자로 키워냈으며, 일본열도를 정복하고 바로 한민족의 역사지평을 넓혔다.
물론 거기에는 커다란 힘이 작용했다.
바로 찬란한 문화를 가진 역사 고조선이 있었던 것이다.
일부의 주장처럼 동남아나 해외로 뻗어나갔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일본서기나 지나의 기록은 분명히 그것을 예측하게 해 준다.
우리는 백제에 대해서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우리는 백제에 대해서 피어린 반성의 역사를 써야 한다.
패배주의, 빈정거림, 반(反) 백제주의의 식민사관으로는 결코 백제의 비밀과 역사의 비밀을 풀 수가 없다.
21
신라김씨의 시조는 알지도 아니요, 최초의 김씨왕은 미추도 아니다.
시조와 최초의 김씨왕은 바로 성한이다.
그런데 신라김씨들은 왜 하필 신라본기에서 미추를 김씨왕의 선조로 하였을까?
궁금하지 않는가? 과연 미추가 누구기에? 앞에서 얘기했듯 구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상장돈장에 분명히 미추가 구도의 아들로 등재되기는 했으나 그것이 조작임은 한 눈에 드러난다.
바로 구도-말흔-말구의 계보다.
사기에 미추이사금과 말구는 형제라고 했다.
말이 되는 소린가? 그러면 구도는 미추의 할아비겠네!
그리고 시대로 보아 말구가 과연 내물의 아비가 될 수가 있는가? 절대 아니다.
앞에서 미추는 20대 왕임을 밝혔다.
바로 내물의 전왕이다.
언젠가 김태식씨가 갈문왕을 논하면서 여러 얘기를 했는데 그의 얘기가 거의 정확하다.(거의?) 여기서 길게 따지지는 않겠다.
미추의 어미는 이칠갈문왕의 딸이라고 했다.
그럼 아비는? 당연히 왕이어야 한다. 왜? 이칠은 왕의 장인이기 때문이다.
그럼 미추의 아비가 왕이었나?
그렇다. 고대문헌 다 뒤져서 찾아보시라. 분명히 있다.
화랑세기에 진골정통을 소개하면서 왜 예로부터의 진골이 아니었다고 하였는지 이해가 간다.
<화랑세기>의 역자인 이종욱은 거기서 이상하게 얼버무렸다.
왜? 그 문장의 뜻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과연 그 뜻이 무엇인가?
미추가 어째서 진골정통이 아니면 왕비로 맞지 말라고 했는가?
거기서도 미추는 내물의 전왕임이 드러난다.
멀리 13대 왕이라면 가능한 얘긴가?
그러면 유례부터 흘해까지 진골정통을 왕비로 맞았는가?
유례, 기림, 흘해가 맞은 진골정통 왕비 제시해보라!
그것 하나로도 화랑세기는 절대로 위서가 아니다.
박창화가 재미삼아(?) 신라사 지으면서 내가 제시한 위의 신라 왕통을 따랐는가?
아니다. 바로 삼국사기에 나온 대로 했다.
바로 그가 화랑세기를 짓지 않았다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다.
그럼 미추의 할아비는? 알 수 있다.
왕이었다. 증조할아비는? 왕이었다.
바로 미추의 증조부터 이어지는 계통만 밝혀도 고대사의 비밀이 1/5은 다 드러난다.
왜 김유신의 혼령이 하필 미추왕릉으로 들어갔나?
유신은 알다시피 수로의 후손이다.
과연 수로와 미추는 어떤 관계였기에?
백제의 신라정벌(298년 이서고국의 침입)에서 어찌 미추왕이 등장하는가?
과연 미추왕은 어디에 묻혔는가? 앞에서 말한 황남대총이다.
황남대총이라고? 그렇다.
경주에 미추왕릉이 있던데? 웃긴다.
대나무가 있다고 미추왕릉인가? 바로 삼국사기에 답이 있다.
대릉에 묻혔다.
각설하고 황남대총은 왜, 가야, 신라, 백제를 아우르는 고고학의 결정판이다.
당시의 모든 비밀을 다 담고 있다.
그걸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다. 왜? 문헌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하긴 <일본서기가 백제서기>임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무얼 기대할 것인가?
어째서 왕릉에선 금관이 안 나오고 금동관만 5-6개 쏟아지고 은관이 나오며 왕비릉에서 금관이 나오나? 내물과 같은 계열의 왕이었다면 그랬을 것 같은가?
미추를 왜 하필 13대에 집어넣었을까?
왜 혁거세가 13세에 왕위에 올랐다고 했는가?
관련이 없는 것 같은가?
천만에! 고대의 사관은 후세에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
바로 성한왕에 대한 비밀의 코드다.
그것은 바로 13이다.
그러기에 가장 수치스런 기록인 우로왕의 죽음으로 인하여 우로는 왕에서도 삭제되는 비운을 당해야 했다.
22
고조선이 흩어진 이래 불행을 당한 것은 이 땅의 역사였다.
고리와 백제가 동족끼리 투쟁하다 망한 이후로 발해와 신라가 대립하다 끝내는 요-금-원-청을 거쳐 되놈들의 영역으로 넘어가 그들이 마치 요와 금과 청의 역사를 저들 것처럼 떠벌리게 되었다.
우리가 그들을 마치 다른 민족 다른 역사처럼 인식하게 되었으며, 일본열도는 뿌리를 잃어버리고 마치 독자생성의 논리가 맞는 양 발광하고 있다.
그리하여 대륙과 열도의 같은 형제가 서로를 몰라보고 원수가 되었다.
고리와 백제가 치열하게 투쟁한 것처럼.
그리고 오늘날 한반도의 두 형제는 마치 남보다 더한 원수가 되어가고 있고 타 족속인 되놈들에게는 유학이 들어온 이래 사대주의로 굽실거리며 얼치기 되놈이 되어 소중화를 자처하고 같은 뿌리인 만주인과 몽골인과 일본인은 오랑캐와 왜놈이라고 경멸하고 있다.
그러니 조상의 혼이 돕겠는가?
같은 핏줄을 미워하고 천시하며 남으로 여기고 경멸하는 그런 나라 그런 역사에게 조상들이 무엇이 좋다고 영광을 주고 미래를 주겠는가?
자기의 뿌리를 부정하고 선조로 인식되어야 할 단군의 목이나 자르는 족속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어 번영의 기틀을 주고 영광의 기회를 주겠는가?
황제가 중화 한족의 조상인가? 다만 상징일 뿐이다. 마찬가지다.
단군이 이 나라 사람 모두에게 직접조상은 아니라도 다만 상징일 뿐이다.
징기스칸이 몽골의 상징인 것과 같다.
로물루스 형제가 로마의 상징인 것과 같다. 워싱턴이 미국의 상징인 것과 같다.
오히려 황제란 작자가 한족에게 남긴 핏줄의 비율보다 단군족은 이 나라 이 민족을 비롯하여 만주인 일본인에게 훨씬 많은 핏줄을 남겨주었다.
벗어나라! 몽매에서 깨어나라! 어리석음에서 깨달아라! 민족의 뿌리를, 역사의 뿌리를! 남을 업신여기고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다.
스스로 깔아뭉개고 비하하는 못된 습관과 버릇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 키는 일본삼서가 쥐고 있다.
삼국사기와 유사가 쥐고 있다.
돈장과 세기가 뇌관을 쥐고 있다.
이제 한민족 역사의 네크워크를 구축할 때다.
조선-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온 것만이 우리역사는 아닌 것이다.
바로 잃어버린 북방의 역사를 우리 것으로 해야 한다.
잊고 살았던 열도의 역사를 다시 배워야 한다.
고대사의 복원은 바로 삼국초기의 복원이다.
그것이 복원되지 않는 한 고대사는 없다.
그것이 복원되면 고조선이 복원된다.
후대의 역사인 후신라와 발해도 복원된다.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주류학계나 재야학계나 모두 고대에 대한 인식은 고리가 30점, 신라가 10점, 가야도 역시 10점, 백제는 5점 밖에 줄 수 없다.
바로 핵심인 백제와 가야 신라사가 빵점 수준이다.
이 곳에서 만난 분들 중에 내 개인적인 평가로는 유정님이 최고수다.
그 외에 김태식, 바비, 신동훈, 정석근, song님 등이 뒤따른다.
솔직히 유정님은 내 글을 읽는다면 내 뜻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대단한 유정님과 바비님.
나는 그 정도로 미세한 것에서는 솔직히 유정님을 비롯하여 몇몇 분에게 결코 미치지 못한다.
김태식님의 그 박식함은 놀랍다.
가끔 그의 블로그를 들여다보며 동냥을 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큰 기틀이다.
줄기가 나와야 잎이 자랄 것이 아닌가? 밖에서는 구자일이란 분이 고수다.
다만 요즘 이상한 데로 빠져서 안타까울 뿐이지만...... 학계에서는 이덕일, 이형구, 김종서, 정형진 등이 앞서간다.
여러분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마구 쏟아내어 질문하지 마시기 바란다.
두 번 세 번 읽어보고 고대사서 다시 들여다보고, 지도 그려가면서, 계통도 그려가면서 생각하기 바란다.
개인별로 한 코너에 한 가지 씩만 질문해 주셨으면 한다.
물론 다 답변할지는 모르지만 시간을 내서 언젠가 한꺼번에 답변해 주겠다.
근거 없는 비방이나 어쭙잖은 증거 들이대면서 반박하지 말라.
웬만한 배짱과 증거로 내가 이런 주장을 한다고 보는가?
어느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챙긴다.
주류사학의 이론은 이제 모조리 폐기처분해야 한다.
지나와 동북공정의 하수인들은 이제 역사를 훔치는 것을 넘어 문명을 통째로 도적질하려 하고 있다.
그것이 지나의 주장대로 진실이라면 노여워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거짓말이 뻔하고 억지가 뻔한데도 이러한 때에 아직도 식민사학의 나팔수 동북공정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그것을 자각하지 못함은 스스로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다.
고구려 연구 한답시고 소위 역사학자란 인간들이 국민의 피 같은 세금 일년에 100억씩이나 쓰면서 무얼 연구하겠다는 건가?
모두 사기꾼들일 뿐이다.
문헌을 뒤지고 종합해서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고 다른 쓰레기 논문 짜깁기해서 논문을 쓴다.
그러니 또 다른 쓰레기가 될 뿐이다.
삼국이 부체제 부족국가 형태였다고?
천년 이상을 고대국가로 자란데서 어느 날 갑자기 퇴보하여 부족국가가 되나!
그 돈을 차라리 다른 데 써라.
그 돈으로 지나사서 일본사서 번역하고 보급하는데 써라.
당신들 주류들이 과연 일본서기 하나 제대로 번역했나?
성씨록 번역했나? 지나사서 하나라도 온전하게 번역했나?
그것이 우리가 배달국과 조선과 고리와 신라와 백제의 조상들에게 사죄하는 길이다. 고리는 1차 방정식이다. 부여는 2차, 가야는 3차, 신라는 4차, 백제는 5차 방정식이다.
1차 방정식도 제대로 풀지 못하는 주제에 5차를 풀겠다고?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
고리와 부여를 풀어야 가야, 신라, 백제(왜)가 나온다.
역으로 백제를 풀면 모든 것이 풀린다.
그 백제의 역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바로 일본삼서에 고스란히 존재한다.
고고학은 필요하다.
그러나 위험하다.
바로 문헌이 제대로 해석되지 못한 고고학은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역사왜곡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툭하면 하는 말이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문헌이 없다고 한다.
물론 중원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이래로 문헌이 공백인 적은 없었다.
다만 몰랐을 뿐이다. 그 문헌이 제대로 해석된다면 이제 고고학은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다. 역사의 기록이 있는 곳에서 고고학은 당연히 문헌역사학의 시녀일 뿐이다.
고고학이 주가 되는 것은 세세한 부분과 역사기록이 없는 곳에서의 추측뿐이다.
23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고 결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충격의 순간들을 지나왔다.
천조대신이 도모왕이고 도모는 결코 동명이 아니라는 것,
박제상이 아니고 김제상이며 그가 윤공천황이라는 것,
신라왕통이 조작되었다는 것,
성한이 신라왕이고 혁거세이며 문무왕비가 정확하다는 것,
신라소년에 의한 백제왕 암살이 마한의 분서왕이라는 것,
신라는 백제가 세웠다는 것,
응신이 침류왕이라는 것,
수로가 3~4c 사람이라는 것과 역시 백제가 금관국을 세웠다는 것,
파사가 신라 18대 왕이며 제상의 5대조이며 백제왕 사요의 사위라는 것,
백제에 김씨왕이 있었다는 것,
원래 왜왕이 목씨라는 것,
박씨의 시조가 왜 목씨 왕족이며 신라의 초대왕인 호공이라는 것,
고리의 평양이 요서에 있었고 훗날의 안시성이라는 것,
근초고왕이 공격한 평양성이 안시성이라는 것,
백제의 수도 한성이 평양이라는 것,
비류왕의 어머니가 소서노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녀가 신라정벌의 주역이라는 것과 그것을 기록한 일본서기가 사실이라는 것,
미추왕의 아버지도 왕이었으며 선대도 모두 왕이었다는 것,
결코 미추가 정통신라김씨가 아니라는 것,
알지는 박씨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 등 모두가 놀랄 새로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진실이 그러한 것을.
그 진실의 시작은 바로 부여가 부활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사기만 정밀하게 들여다봐도 부여가 부활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고구려본기 태조왕기에 그 답은 나와 있다.
어쭙잖은 문구 하나, 증거 하나로 역사를 판단하지 말라.
모든 증거를 종합하고 체계화하여야만 ?
그 진실의 시작은 바로 부여가 부활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사기만 정밀하게 들여다봐도 부여가 부활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고구려본기 태조왕기에 그 답은 나와 있다.
어쭙잖은 문구 하나, 증거 하나로 역사를 판단하지 말라.
모든 증거를 종합하고 체계화하여야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내 주장도 전부라고 하지는 않겠다.
세세하게는 착오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큰 덩어리로는 어디까지나 진실이다.
나는 결코 추측이나 소설을 쓰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역사서에 나온 것을 그대로 재해석하여 제대로 인식시켜 줄 뿐이다.
지금까지 나온 고고학을 참고하고 적용할 뿐이다.
바로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조작의 고리를 밝히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것은 바로 고대사서에 다 있다.
내가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여 여러분에게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역사를 원한다면 참고할 만한 뛰어난 저서들을 소개하겠다.
왜 그런지는 스스로 판단하시기 바란다.
살아있는 한국사 1,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 이덕일(일본삼서만 제대로 알면 무서운 존재가 될 분)
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문화의 비밀 - 이형구(고고학계의 최고 수작)
요서지역의 청동기 연구 - 복기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 김태식(화랑세기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
고깔모자를 쓴 단군, 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왕족,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천왕 - 정형진(뛰어난 역작)
후한서 동이열전 연구 - 기수연(기존 역사학계 최고 수작)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 - 강길운(정말로 꼭 필요함)
삼국지 바로 읽기, 대쥬신의 역사 - 김운회(생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중국북방이족과 조선상고사 - 나동현(많은 자료가 있어서 추천)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연구’에(후한서지리지의 수학적 연구 ) - 김종서(아직 확보하지 못했음 누군가 구해주시면 좋을 듯) 90점 - 물론 이 분의 <한사군위치의 연구>는 책으로 나온 것이 있다.
아나타는 한국인 - 박영미(인문서로 쓴 한일고대사)
일본속의 한국문화 유적을 찾아서 - 김달수(일본이 백제란 것을 알았다면)
백제와 대화일본의 기원 - 홍원탁(아직은 인식 부족)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부여기마족과 왜 - 존 카터 코벨(외국인이 본 뛰어난 혜안) 금문의 비밀 - 김대성(아직은 필자도 어려움. 그러나 뛰어난 역작) 한자로 풀어보는 한국 고대신화 - 김용길 (역시 뛰어남) 언어속에 투영된 한민족의 고대사 - 정연규(참고할 만함) 고조선과 부여의 제문제 - 한국고대사연구회(주류학계의 일단을 볼 수 있다.) 기후변화 - 김연옥(이 외에도 다른 기후변화에 관한 논문도 좋을 듯) 실크로드와 한국문화 - 정수일(이분의 저작은 문화교류사에서 일가견이 있다.) 중국역사지리 - 류제현(중국역사지리에 관한 저작으로 참고할 만함) 고조선 부여사 연구 - 백산자료원(어렵지만 봐둘 것)
그 밖에 일본서기 - 전용신 선생님,
고사기 - 권오엽 선생님,
조선상고사 - 신채호 선생님,
화랑세기 - 이종욱,
지나사 동이열전 부분과 지리지 부문(통전 수경주 요동관계 포함),
요서 요동 관계 기록 일체,
한국고대 금석문, 고대사 사료 집성(한치윤의 해동역사에 대부분 들어있음. 국사편찬위에서도 제공함),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도교 경전(노자, 장자, 열자, 포박자, 회남자, 주역)그 외에 많은 참고자료를 두루 섭렵해야 한다.
외골수와 아집은 또 다른 조작만 낳을 뿐이다.
다시 말하건대, 돈장과 세기는 바로 키포인트다.
결코 박창화가 끼적거린 것이 아니다.
그 가치를 알아야 진정한 고대사를 복원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당시 고대사서를 거스르는 게 아니다.
철저하게 보완하고 있다.
학자들이 쓴 논문이나 저서를 참고하는 것을 대부분 제외한 것은 그들이 잘못된 인식으로 역사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참고할 필요가치가 없다.
논문 얘기가 나왔으니 더한다면 김태식씨가 논한 논문이론이 참으로 와 닿는다.
그러면서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추천했다.
정말로 한 눈에 쉽게 읽어가야 논문이지, 무슨 주석 각주를 주렁주렁 매달고 그들만이 읽는 논문으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이미 학문이 아니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무슨 서론 본론 결론이 필요한가?
그저 논문 중에 자연히 드러나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이나 학계의 논문형태의 수준은 초등학생 수준보다도 못하다.
자세한 것은 김태식씨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카터 코벨이 위 저서에서 미술사가답게 고대 일본벽화를 얘기하면서 배에 실은 말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면서 부여족이 일본을 정벌했다고 단언하고 있다.
혜안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것이다.
열도에는 말이 없었음을 모든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의 주류는 자생이론이다.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세력이 한반도를 침공했다는 것이다.
위에서 내가 논했듯이 자기 열도도 통일하지 못한 세력이 무슨 수로 밖으로 힘차게 뻗어 나가나?
그러면서 코벨은 구미학자들이 부여족이 일본을 정벌한 것을 주장한 것을 나열하고 그것은 의심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에가미가 기마민족정복설을 주장한 이래 많은 일본의 사학자들은 정말로 부여족이 정벌했음을 감지하고 또 주장하고 있다.
물론 소수지만. 그런데도 이 땅의 학자란 것들은 부여는커녕 백제마저도 부정한다.
그러니 임나일본부설에 끌려 다닐 수밖에.
누누이 말했듯 일본의 원류는 백제가 아니다. 바로 백제 그 자체다.
일본서기는 분명히 적고 있다.
바로 비류왕이 열도로 건너가 정복한 시기를. 일본서기의 기년만 풀면 그 답이 나온다. 코벨은 그것을 알지 못하였지만 분명히 짐작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학자 중에 과연 코벨만한 혜안을 갖춘 이가 있던가?
삼국사기와 일본삼서는 바로 동전의 양면이다.
결코 따로 놀지 않는다.
일본삼서를 해석하려면 삼국사기가 있어야 하고 삼국사기를 바로 잡으려면 일본삼서가 있어야 한다.
그 촉매를 하는 역할이 상장돈장이요, 화랑세기다.
삼국사기는 자식을 자식이라 부르지 못하는 한 맺힌 기록이요, 일본삼서는 부모를 부모라 부르지 못하는 피 맺힌 기록이다.
그 아픔을 감싸주고 밝혀주어야 할 후손의 책무를 망각한 채 그저 편가르기와 비아냥, 악의에 찬 경멸성 어조로 역사에 대해 지껄이는 자들은 반드시 역사의 철퇴를 맞게 되리라!
아직도 일본서기와 고사기를 소설이라 폄하하는 자들이 많다.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을 소설이라고 지껄이는 얼간이들이 많다.
표현이 지나치지만 나는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박창화 선생의 다른 저작이 종이비행기라면 두 저작은 최첨단 우주왕복선이다. 내용을 가지고 판단해야지 자구나 용어 등으로 판단하는 자체는 어디서 굴러온 개뼈다귀인가?
김부식이 삼국사를 쓰면서 구삼국사를 너무도 많이 깎아냈다.
소위 고대문자가 졸렬하네, 거치네, 어쩌고 하면서 유교사관으로 역사를 덮었다.
그가 한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우리 고유의 것은 많이 깎아내고 중국사서 참고하여 빠진 부분만 채웠을 뿐이다.
그런 것은 그리 안했어도 아무 하자도 없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차라리 일본서기처럼 원본 그대로 전해오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다 수많은 고대전적 참고하여 <삼국지>에다 배송지가 주석을 단 것처럼 많은 주석을 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면 오히려 고대사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은 진실을 살필 수 있었을 것이다.
말을 더하자면 한단고기에 대해서다.
한단고기는 절대로 위서가 아니다.
물론 한단고기가 100% 진서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저본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저본을 바탕으로 쓰여 진 것이다.
증거는 많다.
지금까지 재야에서 주장한 증거는 모두 아니올시다이다.
바로 상장돈장과 화랑세기를 비롯하여 일본삼서가 제시하는 증거를 한단고기 중간중간에 섬뜩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유립이나 누군가가 그걸 지어내었다면 내가 제시한 위의 사실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얘기와 똑같다.
한 가지만 제시한다면 태백일사에서 한결같이 마한을 대동강 평양일대로 직시하고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한단고기는 절대로 위서가 될 수가 없다.
바로 역사서적(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의 고기류)의 위서여부는 문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전하고 있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물론 한단고기는 많은 부분을 심도있게 검토해야 하고 많은 가필과 위조를 걸러내야 한다.
내가 제시하는 고대사 관련 논거에서는 될 수 있으면 한단고기는 제시하지 않으려 한다.
한단고기가 없어도 중고사(부여 건국~고리 멸망)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고리가 망한 것으로 우리역사의 암울은 시작되었다.
겉으로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진정한 암울함은 백제가 망함으로 그리 되었다.
백제는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고리의 방패였다.
백제가 망하니 순망치한격으로 고리도 망한 것이다.
바로 우리역사의 암흑은 백제가 망함으로 시작되었다.
신라는 백제의 존재와 기록을 깡그리 없앰으로써 그들의 치부를 감추려 했다.
그리해야만 그들의 비밀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를 헤매게 하고 이천년이나 역사의 굴곡을 둘러쓰게 한 죄니 그 신라김씨의 죄는 크다 할 것이다.
비아냥대지 마라!
스스로 잘못이 있다면 고치는 것이 진정한 학문의 길이요, 학자의 도리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일본서기가 조작이라는 등의 수작 집어치우고, 세기와 돈장이 위서라는 헛소리 그만들 하시고, 삼국사기와 일본서기가 매우 정교하게 조작된 사서라는 것을 아시고 새롭게 출발들 하시기 바란다.
정말로 최소한 기수연씨 같은 생각을 가지기 바란다.
끝으로 일본서기에
왜 신무가 76년, 개화 60년, 숭신 68년, 수인 99년, 신공 69년, 응신 41년, 인덕 87년, 윤공 42년 등인지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은 결코 아무렇게나 역사를 쓰지 않았다.
철저하게 계산하고 심사숙고해서 그렇게 썼다.
역설적으로 그 방법론을 찾아내면 바로 일본서기가 어떻게 기년조작을 했는지, 해당 인물이 과연 누구인지 속속들이 드러난다.
삼국사기의 계통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 뿌리 채 드러난다.
위에서 일부를 제시했다.
그들은 지하에서 그 혁명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학은 역사학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인문학의 도화선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학의 혁명은 바로 인문학의 혁명이 된다.
불개혁 필혁명(不改革 必革命) - 개혁하지 않으면 혁명이 온다.
출처 : tong - 和而不同님의 우리 역사. 문화통 </textarea>
한기둥작성일 2007-07-19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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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존티토의 예언.....
John Titor - TIME TRAVELER (시간여행자)John Titor는 자칭 2036년에서 온 미국군인으로, 자신이 군대의 명령을 받들어 6년전 이쪽 세계의 2000년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0년 11월 2일부터 2001년 3월 24일까지, 그가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웹상의 여러 BBS와 채팅을 통하여 남긴 예언이 하나씩 맞아들고 나서 그는 인터넷상 가장 유명한 예언가가 되었다고 합니다.그가 처음 인터넷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0년 11월 2일로, 그는 웹 BBS에서 다른 이들과 대화하며, 자신은 2036년에서 온 미국군인이며, 자신의 임무는 타임머신을 타고 1975년으로 돌아가서, IBM 5100 컴퓨터(역사상 첫 휴대식 노트북 컴퓨터)를 갖고 돌아가, 2038년 세계가 맞이할 Unix bug(2000년 세계가 맞이했던 밀리니엄버그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1975년으로 돌아간 그는 컴퓨터를 얻은 후, 즉시 2036년으로 돌아가지 않고,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인류가 밀리니엄 버그를 해결하는 모습을 본 후, 2000년 11월 2일부터 2001년 3월 24일까지 4개월동안 부모의 집에 머물며, 부모의 컴퓨터로 세계각지의 네티즌들과 대화를 하며 많은 예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이야기들은 거짓이 아니며, 그는 정말 2036년의 미래에서 우리의 시대로 돌아왔으며 예언은 그저 역사의 일부분일 뿐입니다.1. 2000년 11월 2일, John Titor는 웹상에서 그들의 시대의 타임머신은 여전히 mini-black holes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이 이야기를 한지 1년도 안 되어서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 [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 Research])은 자신이 말한 이론이 사실임을 공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2001년 말, John TItor가 2001년을 떠난 후, CERN은 [mini-black hole] 로 타임머신을 제작할수 있다는 원리를 발표하였다.2. 2000년 11월 25일, 그는 광우병이 미국을 휩쓸 것이라고 단언하였으며, 2003년 12월 광우병이 미국 본토에서 발생하였다.3. 2001년 2월 그는 미국정부가 대형살상무기를 찾는다는 것을 이유로, 이라크를 공격할 것을 예언하였고, 03년 3월, 부시대통령은 확실히 이 이유로 제 2차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4. 그는 2001년 1월 29일에 [너희들에게 미래의 재난의 발생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는 것에 대해 나는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다. 예를 들자면 광우병 , 중동전쟁, 머나먼 섬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suffering people in far away islands )등. 어떤 것로로도 내가 그들에게 10만여명이 죽을 것이란 것을 알려줬을 때, 듣는 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유할 순 없다. John Titor의 팬들은 www.johntitor.com 의 사이트를 만들곤 이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리고 2004년 12월 동남아 대재난이 발생하였을 때, 그들은 suffering people in far away islands 과 10만명이 죽을 것. 이라는 이야기는, 동남아 재난의 발생을 예언한 것이었다고 단언하였다.John Titor의 이야기중 가장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은 그가 이야기한 타임머신이다. 마치 영화 백투더 퓨쳐에서의 타임카와 같다. John Titor는 2000년 11월 웹 BBS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찍은 타임머신의 사진을 BBS에 올리며 부터이다.John Titor의 말에 의하면 2036년에 타임머신은 매우 보편화되어있으며, 자신의 타임머신은 미국 General Electric 사가 생산한 것으로 그 타임머신을 자신의 애마인 1966 年産 Chevrolet Corvette Convertible에 장착하는 것으로 타임머신이 작동되면 그는 마치 백투더퓨쳐의 주인공처럼 차에 앉은 채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하였다. 그리고 그는 타임머신을 조작하는 "C204 Gravity Distortion Time Displacement Unit"의 설명서를 BBS에 올렸고, 지금까지도 많은 네티즌들이 그것을 다운 받아서 연구중에 있다.-John Titor 가 남긴 9대 예언-1. 04년의 미국대선의 결과는 05년 미국 각주간의 불화를 일으키고, 천천히 미국내의 내전을 빚어낼 것이다. 이 전쟁은 2015년까지 10년동안 지속된다.2. 미국의 내전기간, 중동각국은 핵전쟁을 시작한다.3. 2004 년후, 올림픽은 취소된다. -아마도 하계 올림픽인 듯 함..-4. 2015 년 미국내전은 3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인하여 끝난다. 러시아가 미국에 원폭을 투여하며, 이로 인하여 세계대전이 일어난다.5.세계대전중, 미국, 중국, 유럽과 러시아의 전역이 가장 참열하며, 총 사망자는 30억 정도에 다다르게 된다.6. 2007 년, 타임머신의 기본적 연구가 끝난다.7.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5개의 국가로 분열된다. 대량 기초건축들이 파괴된 관계로 사람들은 자급자족의 원시부락식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과학은 파멸되지 않았으므로 세계는 빠르게 다시 회복된다.8. 전쟁 후의 미국에서 사람들은 각 대학부근에 머물며 사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 대학은 University에서 Fort로 변하게 되며. 사람들이 그 곳에서 머무는 이유는 대학에는 책(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http://play.mgoon.com/Video/V802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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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루리웹
ㅎㅎ 일단. 3번째.. 중국.. 요새 판타지.. 가 되어 가고 있죠.. 불도 났고 하니.. ㅎㅎ 진짜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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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펌]여성부홈피에 외국기자가 올린글
[Opinion: Letters to the Editor]Men""s work To the Editor: Recently both your editorial writer and a female contributor to In My View expressed utter dismay and disbelief that Korean veterans have gotten so angry over the constitutional court""s decision to strike down a policy to award bonus points to the test scores of former soldiers who apply for low-level government jobs. 최근에 코리아헤럴드지의 사설기자와 코리아 헤럴드지의 ""나의 의견""란에 글을 투고한 한 여자는 그들이 쓴 글을 통해, 하위직 국가공무원을 지원하는 제대군인에게 공무원시험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를 폐지하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한국 남성들이 격분하고 있는것에 대해 강한 불신과 경멸을 나타냈다. The anger of these men makes perfect sense to me. Korean men must give 26 months of their young lives to an army that neither pays them for their efforts or offers them anything in the way of comfort or perks. Military service in Korea, according the hundreds of Korean men I have spoken to, is a tedious period of social and physical deprivation. And it is dangerous. Every year scores of young Korean men are killed while performing tasks such as serving in flood rescue operations and fighting off rabid demonstrators on the streets of Seoul. Yet these fallen heroes receive no tribute. No monuments are erected in their honor. Their deaths are footnotes in the news. 한국남성들(군필자들)의 분노는 나로서는 대단히 일리가 있는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남자들은 그들의 군복무에대한 보상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 군대에 가서 26개월이라는 젊은 청춘의 시기를 바쳐야 한다. 내가 지금껏 이야기 해본 수백명의 한국남자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군복무는 사회생활의 기회는 물론이고 신체의 자유마저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매우 위험하다. 매년 수십명의 젊은 군인들이 수해구조작업이나 서울 시내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데모를 막다가 목숨을 잃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전사한 영웅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다. 그들을 기념해서 기념비가 세워지지도 않는다. 그들의 죽음은 뉴스에서는 각주정도에 불과하다[역주:뉴스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지않는다는 의미 ] What makes the front pages of newspapers and the top stories in TV news shows in their stead? Feature stories about young women at elite officer training academies and their "bravery" in being women trying to make it in the Korean military. 이들의 죽음에 관한 뉴스 대신에 신문의 일면이나 텔레비젼 뉴스의 주요 뉴스로 나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사관학교에 다니는 젊은 여자들, 그리고 여자의 몸으로서 한국군대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용기에 관한 것들을 특집으로 다룬 이야기다. Always in these pieces, which seem to dominate the media now every Veteran""s Day the same way the several dozen American nurses who served in the Vietnam war now own that holiday in America, there is some feminist expert holding forth on the natural right of women to get the top prestige jobs in the military. It never ceases to amaze me how the expert never mentions requiring women to share in the hardships of the rank and file. The only conclusion to be drawn from such blatant omissions is that Korea""s feminists believe that the dangerous and thankless service of Korea""s half a million grunts is "men""s work." 요즘들어 미국에서도 베트남전쟁때 복무했던 수십명의 미국 간호사들이 매년 이와 비슷한방식으로 국군의 날 방송매체를 독차지하는데, 몇몇 여성운동전문가들은 여성들도 군대에서 최고 신망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성운동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어째서 한국남자들만이 지고 있는 군복무의 힘든 부분을 여자들이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여성들이 남자들이 지고있는 군복무의 힘든 짐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 하지 않고있는(당연히 주장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운동가의 뻔뻔스러움으로부터 도출해 낼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한국의 5백만명이 넘는 예비역과 현역들이 맡고 있는 위험하고 감사의 말조차 듣지 못하는 군복무는 ""남자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In her In My View piece, Sohn Jung-min displayed classic feminist reasoning: Men should not be compensated, Sohn claimed, for their military service because women have such hard lives already. Sohn even went so far as to say that the government should compensate women for doing housework and having babies, but should not give men a single won for their 26 months of military service. ""나의 의견""란에 글을 투고한 손정민이라는 여자는 전형적인 페미니스트식 추론을 보여주고 있다. 손정민은 한국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매우 힘들고 험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때문에 남자들에게 군복무에 대한 보상을 해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손정민은 심지어는 정부에서 여자들의 가사일,출산에 대한 보상까지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남자들의 26개월의 군복무에 대해서는 일체의 보상을 해주어서는 안된다(10원짜리 하나도 줘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역주:음..여기서 욕나올려구 하네여] Does this make sense to anyone with a brain not poisoned by radical feminism? Does the government force women to have babies? Who benefits more from having a baby, the woman who becomes a mother or the government? Yet, how many young men would go through 26-months of unpaid military hell if the law didn""t force them to. 급진적인 페미니즘에 오염되지 않은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손정민의 주장이 말이 된다고 생각할까? 정부에서 여성들로 하여금 출산을 강요하고 있는가? 출산을 하므로써 누가 더 이득을 보는가? 출산을 함으로써 어머니가 되는 여자가 더 이득을 보는가? 아니면 정부가 더 이득을 보는가? 만약에 법에서 강제적으로 한국남자들에게 군복무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월급도 받지 못하는 26개월의 군복무를 할려고 하겠는가? I am sure Sohn""s absurd arguments brought cheers among all those horribly disadvantaged young women at Ehwa University who were responsible for initiating the lawsuit that killed the test bonus and subsequently destroyed the morale of the nation""s fighting men. 이번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군가산점 폐지와 더불어 한국 군필자들의 사기를 꺽어버린데 그 책임이 있는, 자칭 자신들이 이사회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화여대생들은 손정민이라는 여자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분명 환호성을 질렀을거라 생각한다. But how is it that some pampered Ewha princess with her cell phone and European vacations has the gall to claim that some working class young man fresh out of getting bottles and rocks thrown at his skull for 26 months of riot police duty is more "privileged" than she in this society? Feminism would really be good for some laughs if hadn""t ruined the ability to reason in so many. 그러나, 부유한 집에서 애지중지 자라서 휴대폰을 들고 학교에 다니며 유럽여행이나 다니는 일부이화여대생들이 어떻게 뻔뻔스럽게도 26개월간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화염병과 돌멩이를 피해야하는 힘든 전투경찰로서의 군복무를 마치고 갓 제대한 빈곤계층의 젊은이들보고 이들이 이 사회에서 자신들보다 더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역주: 이글 쓴 미국인은 아마 전투경찰을 관심을 갖고 지켜봤나보군요. 일반군인들의 군복무야 외국인으로서 알기가 쉽지 않겠죠? 전투경찰이야 항상 사회에 노출되어있으니..] What truly amazes me in this whole affair is that Korean men have not been more militant in their response to the court""s decision to strip away the lone benefit of their service. The Herald editorial writers were shocked that a website got hacked; I am surprised there hasn""t been a full-scale revolt of the armed forces.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를 정말로 놀라게 한것은 자신들의 군복무에 대한 유일한 혜택마저 뺏아가버린 헌재의 결정에 대한 한국남자들의 반응이 그리 호전적이지 않다는것이었다. 헤럴드 신문의 사설기자가 웹사이트가 해킹당한데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는데, 나는 오히려 대한민국 군대에서 대규모의 반동이 없었다는게 놀랍다. What are these men risking their lives for? A constitution and a nation that doesn""t forbid the use of young able-bodied men as slave labor (young soldiers are called out to save the land of wealthy farmers in the rainy season), but absolutely forbids the awarding of 3 to 5 percent in extra points for veterans on a test for the lowest possible positions in the government because it offends the sensibilities of Ewha princesses? Moreover, what is the big deal about an extra three to five percent in points on a test. It seems to me that such a miniscule gap could easily be closed with a little bit of extra study. Oh, I forgot, feminism is not about giving women a chance to prove themselves; it is about giving women things because they are women. 한국에서 군복무하는 남자들은 누구를 위해 목숨을 거는가? 헌법을 위해서? 아니면 국가의 말단 하위직 공무원시험에 제대군인들에게 몇점의 가산점을 주는제도를 이화여대생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폐지시키는 정부를 위해서인가? 시험에서 3에서 5퍼센트의 가산점을 주는게 뭐가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내생각으로는 이러한 작은 차이는 공부에 약간만 더 노력을 투자한다면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참, 내가 깜박했군. 페미니즘이란게 여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도록 여자들에게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는게 아니지?, 페미니즘은 단지 자신들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기들에게 뭐든지 그냥 달라고 말하는거지. [역주: 최근 그런 생각이 팍팍 들고있음] Were feminism worth the paper its manifestos are printed on, . Korea""s women would be fighting to require that all women be drafted as well as men to serve the nation for 26 months. But don""t anyone hold his or her breath on that one. The Ehwa princesses would absolutely die if they had to wear nothing but green for two years, and the Korean courts, no doubt, would be sensitive to their pain. 만약 페미니즘이라는게 페미니즘의 강령이 인쇄되어있는 종이만큼의 가치 라도 있다면 한국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이 여성들에게도 26개월간 국가를 위해 복무 할수 있도록 모든 여성들 또한 징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싸우고 있어야 할것이다. 하지만 이문제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숨을 죽이지 말라. 이화여대생들은 아마도 만약에 자기들이 군복비스무리한 색깔의 옷이라도 2년동안 입어야 된다면 분명히 모두 자살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역시 이번에도 틀림없이 이들의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 할 것이다 ---보배드림/유머자료실---========================================================여자들을 색안경을끼고 바라보지는 않지만 요즘 돌아가는꼴을보면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듭니다.. 남자들이 너무나 착해서 그런가요?다른나라 사람이보기에도 말도 안되는데...정작 우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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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터] 여성부홈피에 외국기자가 올린글(펌)
[Opinion: Letters to the Editor]Men""s work To the Editor: Recently both your editorial writer and a female contributor to In My View expressed utter dismay and disbelief that Korean veterans have gotten so angry over the constitutional court""s decision to strike down a policy to award bonus points to the test scores of former soldiers who apply for low-level government jobs. 최근에 코리아헤럴드지의 사설기자와 코리아 헤럴드지의 ""나의 의견""란에 글을 투고한 한 여자는 그들이 쓴 글을 통해, 하위직 국가공무원을 지원하는 제대군인에게 공무원시험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를 폐지하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한국 남성들이 격분하고 있는것에 대해 강한 불신과 경멸을 나타냈다. The anger of these men makes perfect sense to me. Korean men must give 26 months of their young lives to an army that neither pays them for their efforts or offers them anything in the way of comfort or perks. Military service in Korea, according the hundreds of Korean men I have spoken to, is a tedious period of social and physical deprivation. And it is dangerous. Every year scores of young Korean men are killed while performing tasks such as serving in flood rescue operations and fighting off rabid demonstrators on the streets of Seoul. Yet these fallen heroes receive no tribute. No monuments are erected in their honor. Their deaths are footnotes in the news. 한국남성들(군필자들)의 분노는 나로서는 대단히 일리가 있는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남자들은 그들의 군복무에대한 보상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 군대에 가서 26개월이라는 젊은 청춘의 시기를 바쳐야 한다. 내가 지금껏 이야기 해본 수백명의 한국남자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군복무는 사회생활의 기회는 물론이고 신체의 자유마저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매우 위험하다. 매년 수십명의 젊은 군인들이 수해구조작업이나 서울 시내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데모를 막다가 목숨을 잃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전사한 영웅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다. 그들을 기념해서 기념비가 세워지지도 않는다. 그들의 죽음은 뉴스에서는 각주정도에 불과하다[역주:뉴스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지않는다는 의미 ] What makes the front pages of newspapers and the top stories in TV news shows in their stead? Feature stories about young women at elite officer training academies and their "bravery" in being women trying to make it in the Korean military. 이들의 죽음에 관한 뉴스 대신에 신문의 일면이나 텔레비젼 뉴스의 주요 뉴스로 나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사관학교에 다니는 젊은 여자들, 그리고 여자의 몸으로서 한국군대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용기에 관한 것들을 특집으로 다룬 이야기다. Always in these pieces, which seem to dominate the media now every Veteran""s Day the same way the several dozen American nurses who served in the Vietnam war now own that holiday in America, there is some feminist expert holding forth on the natural right of women to get the top prestige jobs in the military. It never ceases to amaze me how the expert never mentions requiring women to share in the hardships of the rank and file. The only conclusion to be drawn from such blatant omissions is that Korea""s feminists believe that the dangerous and thankless service of Korea""s half a million grunts is "men""s work." 요즘들어 미국에서도 베트남전쟁때 복무했던 수십명의 미국 간호사들이 매년 이와 비슷한방식으로 국군의 날 방송매체를 독차지하는데, 몇몇 여성운동전문가들은 여성들도 군대에서 최고 신망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성운동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어째서 한국남자들만이 지고 있는 군복무의 힘든 부분을 여자들이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여성들이 남자들이 지고있는 군복무의 힘든 짐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 하지 않고있는(당연히 주장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운동가의 뻔뻔스러움으로부터 도출해 낼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한국의 5백만명이 넘는 예비역과 현역들이 맡고 있는 위험하고 감사의 말조차 듣지 못하는 군복무는 ""남자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In her In My View piece, Sohn Jung-min displayed classic feminist reasoning: Men should not be compensated, Sohn claimed, for their military service because women have such hard lives already. Sohn even went so far as to say that the government should compensate women for doing housework and having babies, but should not give men a single won for their 26 months of military service. ""나의 의견""란에 글을 투고한 손정민이라는 여자는 전형적인 페미니스트식 추론을 보여주고 있다. 손정민은 한국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매우 힘들고 험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때문에 남자들에게 군복무에 대한 보상을 해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손정민은 심지어는 정부에서 여자들의 가사일,출산에 대한 보상까지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남자들의 26개월의 군복무에 대해서는 일체의 보상을 해주어서는 안된다(10원짜리 하나도 줘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역주:음..여기서 욕나올려구 하네여] Does this make sense to anyone with a brain not poisoned by radical feminism? Does the government force women to have babies? Who benefits more from having a baby, the woman who becomes a mother or the government? Yet, how many young men would go through 26-months of unpaid military hell if the law didn""t force them to. 급진적인 페미니즘에 오염되지 않은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손정민의 주장이 말이 된다고 생각할까? 정부에서 여성들로 하여금 출산을 강요하고 있는가? 출산을 하므로써 누가 더 이득을 보는가? 출산을 함으로써 어머니가 되는 여자가 더 이득을 보는가? 아니면 정부가 더 이득을 보는가? 만약에 법에서 강제적으로 한국남자들에게 군복무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월급도 받지 못하는 26개월의 군복무를 할려고 하겠는가? I am sure Sohn""s absurd arguments brought cheers among all those horribly disadvantaged young women at Ehwa University who were responsible for initiating the lawsuit that killed the test bonus and subsequently destroyed the morale of the nation""s fighting men. 이번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군가산점 폐지와 더불어 한국 군필자들의 사기를 꺽어버린데 그 책임이 있는, 자칭 자신들이 이사회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화여대생들은 손정민이라는 여자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분명 환호성을 질렀을거라 생각한다. But how is it that some pampered Ewha princess with her cell phone and European vacations has the gall to claim that some working class young man fresh out of getting bottles and rocks thrown at his skull for 26 months of riot police duty is more "privileged" than she in this society? Feminism would really be good for some laughs if hadn""t ruined the ability to reason in so many. 그러나, 부유한 집에서 애지중지 자라서 휴대폰을 들고 학교에 다니며 유럽여행이나 다니는 일부이화여대생들이 어떻게 뻔뻔스럽게도 26개월간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화염병과 돌멩이를 피해야하는 힘든 전투경찰로서의 군복무를 마치고 갓 제대한 빈곤계층의 젊은이들보고 이들이 이 사회에서 자신들보다 더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역주: 이글 쓴 미국인은 아마 전투경찰을 관심을 갖고 지켜봤나보군요. 일반군인들의 군복무야 외국인으로서 알기가 쉽지 않겠죠? 전투경찰이야 항상 사회에 노출되어있으니..] What truly amazes me in this whole affair is that Korean men have not been more militant in their response to the court""s decision to strip away the lone benefit of their service. The Herald editorial writers were shocked that a website got hacked; I am surprised there hasn""t been a full-scale revolt of the armed forces.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를 정말로 놀라게 한것은 자신들의 군복무에 대한 유일한 혜택마저 뺏아가버린 헌재의 결정에 대한 한국남자들의 반응이 그리 호전적이지 않다는것이었다. 헤럴드 신문의 사설기자가 웹사이트가 해킹당한데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는데, 나는 오히려 대한민국 군대에서 대규모의 반동이 없었다는게 놀랍다. What are these men risking their lives for? A constitution and a nation that doesn""t forbid the use of young able-bodied men as slave labor (young soldiers are called out to save the land of wealthy farmers in the rainy season), but absolutely forbids the awarding of 3 to 5 percent in extra points for veterans on a test for the lowest possible positions in the government because it offends the sensibilities of Ewha princesses? Moreover, what is the big deal about an extra three to five percent in points on a test. It seems to me that such a miniscule gap could easily be closed with a little bit of extra study. Oh, I forgot, feminism is not about giving women a chance to prove themselves; it is about giving women things because they are women. 한국에서 군복무하는 남자들은 누구를 위해 목숨을 거는가? 헌법을 위해서? 아니면 국가의 말단 하위직 공무원시험에 제대군인들에게 몇점의 가산점을 주는제도를 이화여대생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폐지시키는 정부를 위해서인가? 시험에서 3에서 5퍼센트의 가산점을 주는게 뭐가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내생각으로는 이러한 작은 차이는 공부에 약간만 더 노력을 투자한다면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참, 내가 깜박했군. 페미니즘이란게 여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도록 여자들에게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는게 아니지?, 페미니즘은 단지 자신들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기들에게 뭐든지 그냥 달라고 말하는거지. [역주: 최근 그런 생각이 팍팍 들고있음] Were feminism worth the paper its manifestos are printed on, . Korea""s women would be fighting to require that all women be drafted as well as men to serve the nation for 26 months. But don""t anyone hold his or her breath on that one. The Ehwa princesses would absolutely die if they had to wear nothing but green for two years, and the Korean courts, no doubt, would be sensitive to their pain. 만약 페미니즘이라는게 페미니즘의 강령이 인쇄되어있는 종이만큼의 가치 라도 있다면 한국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이 여성들에게도 26개월간 국가를 위해 복무 할수 있도록 모든 여성들 또한 징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싸우고 있어야 할것이다. 하지만 이문제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숨을 죽이지 말라. 이화여대생들은 아마도 만약에 자기들이 군복비스무리한 색깔의 옷이라도 2년동안 입어야 된다면 분명히 모두 자살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역시 이번에도 틀림없이 이들의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 할 것이다 ---보배드림/유머자료실---========================================================여자들을 색안경을끼고 바라보지는 않지만 요즘 돌아가는꼴을보면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듭니다.. 남자들이 너무나 착해서 그런가요?다른나라 사람이보기에도 말도 안되는데...정작 우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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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사일런트 힐과 현재 제작 중인 유명 게임 원작 영화들
- 영화내공 : 우수함 현재 제작 중인 유명 게임 원작 영화들2007년/ <레지던트 이블3: 익스팅션>(Resident Evil: Extinction) <왕의 이름으로: 던전 시즈 테일>(In the Name of King: Dungeon Siege Tale) <포스탈>(Postal) <피어 이펙트>(Fear Effect) <캐슬바니아>(Castlevania) <철권>(Tekken)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Alice) <스플린터 셀>(Splinter Cell) <서퍼링>(Suffering) <맥스 페인>(Max Payne)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들>(Prince of Persia: Sands of Time) 2008년/ <귀무자>(Onimusha) <레인보우 식스>(Rainbow Six) <클락타워>(Clock Tower) <콜드피어>(Cold Fear) <파 크라이>(Far Cry) <헤일로>(Halo) <메탈 기어 솔리드>(Metal Gear Solid)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유명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2007년과 2008년에 걸쳐 확실하게 선보일 영화만도 현재로서 20여편에 달한다. 가장 성공적인 게임 원작 프랜차이즈인 <레지던트 이블3: 익스팅션>은 이미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을 진행 중이다. 감독은 <하이랜더> 시리즈 이후 기억 속에서 잊혀진 호주 감독 러셀 멀케이. MTV는 괴물 창조의 대가인 스탠 윈스턴과 손잡고 <레지던트 이블> 스타일의 호러 게임 <서퍼링>을 영화화할 계획이며,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과 <홍번구>의 당계례 감독은 거부의 딸을 괴물들에게서 구하려는 용병들의 활약을 다룬 게임 <피어 이펙트>를 영화화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2008년은 밀리터리 액션 게임팬들의 스크린 나들이 원년이 될 가능성이 짙다. 밀리터리 액션 장르의 대표작인 <레인보우 식스>는 <새벽의 저주>의 잭 스나이더에 의해 영화화가 진행 중이며, 또 다른 걸작 밀리터리 액션 게임 <스플린터 셀>과 <메탈 기어 솔리드> 역시 2008년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고전 게임들의 영화화 움직임도 있다. 한국에서는 <악마성 드라큘라>라는 제목으로 80년대 후반부터 잘 알려진 <캐슬바니아>는 <레지던트 이블>과 <모탈 컴뱃>의 폴 W. S. 앤더슨에 의해 스크린에 옮겨질 예정이고,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들> 역시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 <사일런트 힐>로 게임팬들의 환심을 얻은 크리스토퍼 강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일본 전국시대를 무대로 사무라이와 악귀들의 결투를 다룬 3D 액션게임 <귀무자>를 블록버스터로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게임팬과 영화팬들이 동시에 기다릴 만한 프로젝트는 아마도 <헤일로>와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게임기 엑스박스의 첨병이었던 SF 액션게임 <헤일로>는 피터 잭슨이 영화화의 총제작지휘를 맡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을 흥분상태로 몰고간 프로젝트다. 하지만 최근 유니버설과 폭스가 1억달러가 넘어서는 제작비 상승을 감당하지 못해 하차하면서 프로젝트는 잠시 허공에 떠 있는 상태. 그간 루머로만 떠돌던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의 영화화는 더이상 지체되지 않을 듯하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지옥판이라 할 만한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는 정신착란증적인 이야기와 기괴한 비주얼로 소수의 게임광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아온 게임. 애초에 감독으로 내정됐던 웨스 크레이븐이 물러나며 프로젝트의 향방에 먹구름이 꼈지만,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의 마커스 니스펠 감독이 바통을 물려받고 <미녀와 뱀파이어>의 사라 미셸 겔러가 앨리스 역으로 출연을 확정지으면서 영화화는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역시 블리자드와 워너브러더스에 의해 영화화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감독 우에 볼은 여전하다. 우에 볼은 지난 3년간 <하우스 오브 더 데드> <얼론 인 더 다크> <블러드 레인> 등 명작 게임의 판권을 구매해 쓰레기 필름 더미로 재창조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며 게임팬들의 원성을 사온 인물. 이미 우에 볼은 제이슨 스타뎀과 버트 레이놀즈 등의 배우를 데리고 롤플레잉 게임 <던전 시즈>를 바탕으로 한 <왕의 이름으로: 던전 시즈 테일>의 촬영을 끝마쳤으며, 현재는 동명 게임을 원작으로 한 <포스탈>을 촬영 중이다. 우에 볼은 “<펄프 픽션>과 <폴링 다운>이 합쳐진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밝히고 있지만 ‘우에 볼 안티사이트’(www.uwebollsucks.com, 최근 문을 닫았다)까지 운영하며 제작 중단을 촉구해온 게임팬들의 신뢰는 이미 떠난 지 오래다. 자신의 악명을 잘 알고 있는 우에 볼은 최근 들어 <파 크라이>를 마지막으로 게임에서 손을 떼겠다는 말로 게임팬들을 회유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소시지 만드는 사람이다. 소시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크리스토퍼 강스 감독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우에 볼이 소시지 만들기에 다시 뛰어들지 않으리란 보장은 결코 없는 듯하다. 게임영화, 성공의 법칙을 발견하다 그로테스크 신천지 [필름 2.0 2006-11-16 18:30] 메일로 보내기 | 프린트 초현실적 이미지 속에 펼쳐진 지옥도의 충격과 공포. 동명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영화화한 <사일런트 힐>은 종래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가뿐히 뛰어넘으며 이 장르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하나의 유령이 할리우드 게임영화 시장을 배회하고 있다. 우베 볼이라는 유령이.” 만듦새가 좋지 않은 게임영화의 출연엔 종종 “우베 볼 때문”이라는 누명 아닌 누명이 따라붙곤 한다. 우베 볼(Uwe Boll) 감독의 이름은 한국 관객에게도 낯설지 않다. <하우스 오브 데드> <블러드레인> <얼론 인 더 다크> <던전시즈> 등 할리우드 역사상 최악의 게임소재 영화들을 1년에 한 편씩 양산해내고 있는 “게임영화계의 에드 우드” 우베 볼은, 얼마 전 자신을 비난하는 평론가와 기자들에게 권투시합을 신청한 바 있다.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유포된 그의 권투시합 중계 동영상을 두고 마이스페이스 닷컴의 한 캐나다 네티즌은 “우베 볼이 이 세상의 (쓸 만한) 게임들을 모조리 영화화해 그 씨를 말려버리기 전에 만국의 영화 노동자들은 결연히 단결해 맞서야 한다”는 덧글을 남겨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케 했다. 우베 볼이 크리스토프 강스의 신작 <사일런트 힐>을 봤다면 “내가 먼저 만들 걸”이라고 후회했을까, 아니면 그저 그런 영화라고 폄하했을까. <사일런트 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우베 볼로 말문을 연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영화의 원작인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 <사일런트 힐>을 제작한 일본의 코나미(Konami)사는 “우베 볼 같은 감독이 게임에 대한 이해 없이 영화화에 욕심을 품을까봐”라는 재밌는 이유를 들어 영화화 판권을 판매하는 데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레지던트 이블>을 제작한 바 있는 명민한 제작자이자 오랜 친구인 사무엘 하디다에게 고무 받은 크리스토프 강스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사일런트 힐>을 영화화해야 하는 까닭”에 대한 37분짜리 비디오를 만들어 코나미의 소심한 간부들에게 전달하는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일런트 힐>이라는 장점 많은 영화를 결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그리 훌륭하냐고? <사일런트 힐>은 <시민케인>은 아니지만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만큼 소름끼치고 <식스 센스>만큼 영리한 각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만한 파괴적 에너지를 지닌 영화다. 혹자는 이 영화에 대한 로저 에버트의 부정적 견해 “영화라기보다 게임에 가깝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다“를 먼저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레지던트 이블>에 대해 "<시체들의 새벽>이나 <화성의 유령들>를 참고했지만 <시체들의 새벽>의 좀비만큼 잔인하지도 <화성의 유령들>의 사건들처럼 대단하지도 않다”고 불평했던 전력을 돌이켜보면 그리 귀기울여 들을 만한 지적은 아닌 셈이다. 그의 의견을 폄하하자는 게 아니라, 오직 단순비교만으로 게임소재 영화의 미덕과 묘미를 전부 설명할 순 없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종래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끊임없이 되풀이해온 몇 가지 취약점들을 뛰어넘으며 대중상업호러영화로 관객과의 접점을 고민하는 데 있어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향후 게임소재 영화를 제작, 연출하려는 사람들은 호러영화로서 드물게 개봉 첫 주 2천만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이며 역대 개봉 주 최고의 흥행기록을 거머쥔 <사일런트 힐>을 중요한 연구사례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베 볼은 특히 더 그렇다. 지옥도 사이로 걸어 들어간 소녀 선천적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로즈(라다 미첼)와 크리스토퍼(숀 빈) 부부는 오래 전 기묘한 인연으로 입양한 딸 샤론(조델 퍼랜드)을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기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샤론에게 몽유병 증세가 발견되면서 이 가족의 소박한 행복이 위협받기 시작한다. 샤론의 몽유병은 심각한 수준이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속도로변을 잠옷 바람으로 걷고 있을 정도다. 로즈는 샤론이 몽유병 증세를 겪을 때마다 중얼대는 ‘사일런트 힐’이라는 단어에 실마리가 있을 것으로 보고, 크리스토퍼의 만류를 뿌리친 채 샤론을 데리고 사일런트 힐을 찾아 나선다. 사일런트 힐은 30년 전 일어난 대형화재로 인해 폐허가 된 후 지금은 ‘미국의 유령도시’ 같은 웹사이트에서나 그 자취를 발견할 수 있는 웨스트버지니아의 벽촌 오지마을. 수소문 끝에 드디어 사일런트 힐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로즈는 갑자기 나타난 눈앞의 장애물을 피하지 못하고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고 만다. 척하면 척이라고, 이쯤 되면 뭔가 심상치 않다. 아니나다를까, 정신을 차린 로즈는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샤론이 사라졌음을 알고 경악한다. 로즈는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던 지방 경관 시빌(로리 홀든)을 동료삼아 샤론을 찾아 사일런트 힐로 걸어 들어간다. 하늘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잿가루,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함 정도는 문제라고도 할 수도 없다. 난데없이 불길한 사이렌이 울리더니 사일런트 힐의 모습이 통째로 뒤흔들려 녹아내리며 지옥도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리고 척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괴물들이 마치 눅눅한 습기마냥 대기로부터 스며 올라오기 시작한다. 숨이 탁 막힐 듯 정수리를 관통해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드는 공포의 냄새. 도망갈 데도, 방어할 무기도 없다. 놈들이 하나둘 로즈와 시빌의 주위로 차오를 무렵, 크리스토퍼 역시 로즈와 샤론의 자취를 쫓아 사일런트 힐에 도착한다. 그는 사일런트 힐을 잿더미로 몰락시킨 화재와 샤론 사이에 뭔가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30년 전의 사건을 추적해나간다. 이곳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 한 가지, 왜 크리스토퍼와 로즈 일행은 똑같이 사일런트 힐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발견하지 못하는가. 사랑에 눈이 멀어서? 그런 시적인 이유라면 애초 묻지도 않았다. <환상특급>류의 고전 판타지 TV 시리즈와 오컬트 및 고어영화의 전통을 뒤섞은 이야기 구조. 클라이브 바커 문학의 고약한 악취미를 HR. 기거가 그린 듯 더할 나위 없이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구현해놓은 <사일런트 힐>은 호러 팬들에게는 축복을, 일반 관객들에게는 서스펜스를, 이런 장르에 다소 심드렁한 냉담자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심어줄 만한 영화다. 게임 모니터를 뛰쳐나온 괴물들의 풍경 너머 펼쳐진 지옥도의 충격과 공포가 롤러코스터처럼 관객을 덮치는 동안, 규범과 질서를 향한 디스토피아적 전망이 영화의 텍스트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청교도 질서에 복수의 칼날을 <사일런트 힐>을 이끄는 주요한 갈등은 사회를 지탱하는 규범과 개인의 대결이다. 여기서 규범은 종교의 형태로 나타나 한층 더 맹목적이고 폭력적인 권력구조를 띠게 되며, 개인의 희생은 호러영화의 장르적 특수성을 빌어 살이 찢기고 얼굴이 타들어가며 유아를 살해하는 강한 수위의 신체훼손을 동반해 구현된다. 여기까지는 현대 호러영화가 일반적으로 고수해온 과격한 표현양식을 감안해볼 때 다소 평범하다 할 만하다. 하지만 잘 만든 게임영화로서의 미덕 이외에 <사일런트 힐>이 갖는 텍스트적 장점은 장르의 전형을 파고들어 뒤집는 가치전복성에 있다. 청교도 근본주의에 입각한 폭력적 제도와 규율이 정상성으로 숭배 받는 사일런트 힐의 사회에서, 모든 갈등을 치유하고 영혼을 달래줄 임무는 공교롭게도 비정상성의 유기체들, 곧 악마와 괴물들에게 맡겨진다. 여기서 사회적 약자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합당한 처우를 받기 위해선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지배자들의 육신을 찢어발겨야 한다. 이 모든 아이러니는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잿빛 불길한 전망에서 비롯된다. <사일런트 힐>은 복수에 관한 절망적 이야기이자 무정부주의를 갈망하는 핏빛 우화다. 신은 부재하고 정의는 강자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편리하게 틀어졌으며 영적 구원 따위는 더욱 찾아볼 수 없다. 완벽하게 망가진 도덕률 위에 거짓 선지자와 자본주의 전사들이 약자를 희롱하는 가운데, 급기야 초월적인 존재가 나타나 사회적 강자들을 단죄하는 복수의 이미지는 <크라잉 프리맨>이나 <늑대의 후예들> 같은 크리스토프 강스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동일하게 읽히는 맥락이다. 하지만 <사일런트 힐>의 각본을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근거가 단순히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에 달려 있는 것만은 아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사일런트 힐>이 동명의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사실이다. 게임영화가 게임의 스토리를 단순히 답습하는 데 그쳤거나, 혹은 거꾸로 게임의 지명도를 이용하려 할 뿐 실제 게임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 어떤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되는지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보고 들은 바 있다. 굳이 <슈퍼마리오>와 <스트리트 파이터>, <하우스 오브 더 데드>같이 재앙에 가까운 기억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펄프 픽션>의 원안을 쓰고 <킬링 조이>를 연출한 바 있는 로저 에버리의 명민한 각본은 <사일런트 힐>을 어느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창조적 텍스트로 완성시킨다. 그는 공공연한 히트작인 게임의 세계관과 캐릭터들을 빌려와 펼쳐놓고 독창적인 이야기 변용을 통해 게임과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게임의 명성에서 얻을 수 있는 아우라 중 취할 것은 취하되 하나의 독립된 콘텐츠로서 존재를 과시하는 것이다. <사일런트 힐>이 보여주는 게임영화로서의 획기적인 가능성에 대해선 이외에도 할 말이 많다. 우리는 <사일런트 힐>과 기존 영화들과의 차이점을 통해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의 성공법칙을 가늠해볼 수 있다. 게임소재 영화, 이렇게 성공한다 새로운 영역에서 영화 소재를 찾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만화가 영감의 원천이라면 게임은 좀 더 실질적인 기획의 보고다. 매우 오래 전부터 게임을 영화화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던 것도, 유독 스토리상의 완결성을 중요시하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들이 주로 영화화돼온 것도 비슷한 단계를 거쳐 기획되는 게임과 영화의 매체 유사성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제대로 된 벤치마킹 모델 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숱한 실패사례만을 추가해나갔다. 본격 게임영화 시대의 개막을 열었던 록키 모튼, 이나벨 얀켈 연출의 <슈퍼 마리오>(1993) 이후 많은 작품들이 원작 게임의 팬덤 층과 일반 관객들을 아울러 만족시키기는커녕, 영화로서 최소한의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채 명멸을 거듭해왔던 것이다. 그 모든 혼돈을 한순간에 정리한 폴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2004)은 “원작을 뛰어넘으려 하지 말고, 하나의 팬픽을 완성해나가는 기분으로 임해야 한다”는 제작자 사무엘 하디드의 원칙에 입각, 본래 충실한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었던 원작에 새로운 캐릭터와 음모론을 가미한 이야기의 줄기, 화려한 액션 신을 추가해 완성됐다. 사무엘 하디드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사일런트 힐>은 <레지던트 이블>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미덕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을 뿐 아니라 몇 가지 부분에서 더 나은 고민의 결과를 드러내고 있다. <사일런트 힐>에 이르러 명확해진 게임영화의 성공법칙은 적절한 이야기 변용, 비주얼에 대한 고민, 인력구성의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요소는 이야기다. 성공적인 게임영화는 팬들에게 기시감과 새로움의 미덕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당신이 눈치 빠른 게임 팬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사일런트 힐>은 게임의 스토리를 무턱대고 답습하거나 원작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영화는 ‘사일런트 힐 1’의 기본 스토리에서 주인공을 여성으로 교체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함으로써 악의 주체를 교묘하게 변형시키며, 정치사회적 은유를 실어 입체적인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원작과 동일한 사건 동기와 시빌, 달리아 같은 원년 캐릭터를 등장시켜 게임 팬들을 만족시키는 한편, 모성에 입각한 신파 코드를 동력으로 액션 활극이었던 원작과 전혀 다른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영화를 독해하는 데 있어 원작 게임의 플레이 여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오히려 게임의 골수팬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스토리가 일종의 맥거핀으로 작용하면서 등장인물과 사건이 얽히고설키는 혼돈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원작에 대한 사전지식은 영화의 텍스트를 좀 더 농밀하고 단단하게 보충해주지만, 그 자체를 들어 영화 전체를 어림짐작하기란 불가능하다. 다소 헐거운 듯 모호한 스토리텔링도 <사일런트 힐>의 주된 전략이다. 설명이 부족한 맥락과 관계의 전후 사정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토론의 유희를 즐기게끔 이끈다. 예를 들어 이제 막 상영관을 나선 당신은 크리스토퍼와 로즈가 서로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나, 그에 대한 합리적 각주를 발견하기 위해 논의할 수 있다. 샤론과 사일런트 힐의 관계가 3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 차이를 감안할 때도 설명이 가능한지 따위의 지엽적인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구멍 뚫린 내러티브는 만듦새가 좋지 않은 영화 속에서 발견되지만, 영리한 영화의 각본은 의도적으로 설명을 배제함으로써 관객에게 더 많은 판단과 결정의 권리를 떠맡기기 마련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따져볼 때, <사일런트 힐>은 여실히 후자 쪽에 속하는 작품이다. 두 번째는 비주얼이다. 성공적인 게임영화는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풍경들을 가장 창조적인 방법으로 재현하는데, 이는 팬덤 층의 기시감 획득에 큰 영향을 끼친다. <블레이드> 시리즈의 프로덕션디자이너 캐롤 스피어는 107개의 세트와 정교한 CG를 통해 원작의 분위기를 십분 살린 지옥도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1970년대 실제 존재했던 사일런트 힐, 현재의 사일런트 힐, 잿더미로 쌓여 있는 사일런트 힐, 괴물들이 출몰하는 사일런트 힐, 이렇게 서로 상충하는 네 가지 세계가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구별된다. 더불어 <사일런트 힐>에 등장하는 괴물 크리쳐들은 원작이 아닌 게임 ‘사일런트 힐 2’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영화의 분위기에 더 어울린다는 이유로 채택된 이들 크리쳐 캐릭터들은, <사일런트 힐>이 무조건적인 원작의 재현보다 독립된 콘텐츠로서의 완성도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면도칼을 들고 다니는 어둠의 간호사들(원작에서는 파이프를 들고 다닌다)과 거대한 삼각두를 가지고 있는 ‘레드 피라미드’의 등장은 반가움과 함께 공포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효과적인 연출, 제작진의 인력구성에 대한 조명 없이 앞서 설명한 모든 미덕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크리스토프 강스의 효과적인 연출과 로저 에버리의 솜씨 좋은 시나리오, 사무엘 하디드의 경험에 근거한 제작지휘가 없었다면 이 재미있는 영화는 시작조차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크라잉 프리맨> 때 일본 원작만화를 영화화해본 경력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토프 강스는 영화광 출신으로 잘 알려진 감독이기도 하다. 사무엘 하디드(<레지던트 이블>을 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디드는 B무비 전문제작자로 통했다)와 크리스토프 강스의 인연은 일찍이 1982년 파리영화축제에서부터 시작됐다. 크레딧에 등장하지 않지만 비공식적으로 제작에 참여했던 <이블데드>(샘 레이미, 1981)의 상영차 파리에 머물고 있던 사무엘 하디드는 일곱 살 터울의 열혈 영화청년 크리스토프 강스를 만나 “호러의 이름으로 대동단결하자”며 의기투합한다. 이후 그들은 브라이언 유즈나, 가네코 슈스케, 크리스토프 강스가 공동 연출한 다국적 옴니버스 호러영화 <공포의 이블데드>(원제 <네크로노미콘>)와 <크라잉 프리맨> <늑대의 후예들>을 모두 함께 작업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사일런트 힐>을 만드는 데 있어 <크라잉 프리맨>에서 함께 작업한 바 있는 로저 에버리와의 동업은 거의 필연적이었다.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이자 연출가이면서 동시에 공공연한 게임광인 로저 에버리는 크리스토프 강스, 사무엘 하디드와 작당해 변두리 호프집에서 싸구려 맥주를 들이키며 <사일런트 힐>의 가장 기초적인 제작단계서부터 함께했다. ‘사일런트 힐 2’를 인생 최고의 게임으로 꼽는다는 에버리의 각본이 훌륭하지 않기란 우베 볼의 차기작에서 360도 회전 저속촬영 총격 신이 등장하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게임영화의 새로운 이정표 만화를 영화로 옮기는 일, 게임을 영화로 옮기는 일,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일 모두 대단히 많은 노력과 고민을 필요로 한다. 이들은 독해 방법에서부터 소비 이후의 존재 형태에 이르기까지 서로 완벽하게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서의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이나 연출상의 완성도가 다른 한쪽에서 역시 유효하리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원작에 대한 입체적 이해와 매체의 전환에 따른 콘텐츠 변용에 있어 각각의 사례에 걸맞는 확고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매체를 이동했을 때 발생하는 이야기 부재 혹은 과잉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또 기존 팬들에게 기시감을 넘어서는 새로운 즐거움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일런트 힐>은 그간 실패를 거듭해온 게임소재 영화시장에서 <레지던트 이블>과 함께 긍정적인 벤치마킹 사례가 될 만한 성과를 남겼다. <사일런트 힐>이 대중호러장르의 화법에 있어서도 주목할 만한 추이를 보였듯, 잘 만들어진 게임영화는 영화 콘텐츠 본연의 미학적, 장르적 완성도를 자연스레 획득한다. 사일런트 힐에서 벌어진 이 불운한 디스토피아 비극은 대책 없이 파괴적인 감수성과 염세주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셈이다.허지웅 기자
fora작성일 2006-11-17추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