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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탈 의료는 생사 기로에 서 있다.

ohio001 작성일 25.03.06 23: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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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조금 자극적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난 1년간의 혼란은 앞으로의 의료 붕괴의 서막일 뿐이라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써 봅니다.

여기에 제가 글을 쓴다고 더 많은 사람이 이 글을 볼 것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짱와레즈 부터 시작해서 20여년간

이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인연이 있었고 그 기간 동안 바이탈 과에 속하는 내과, 특히 호흡기 환자 및 중환자실을 경험해 오며 지금 대한민국의 의료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제가 느끼고 경험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리고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정부나 의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지금 진료를 보는 중에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이후 신종 플루, 조류독감, 메르스, 코로나와 같은 굵직한 사건들은 직접 격은 저에게 지금의 상황은 

그 어떤 상태보다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질환들은 전부 호흡기를 통하여 전염되며 그 전염력이 매우 높아 

한 번 발생하면 의료 시스템 자체가 멈출 수 있을 정도의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과목이 호흡기 인지라

이러한 환자들을 최전선에서 버텨왔습니다. 그때도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환자를 보는 것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의대 증원으로부터 시작되어 대형 병원의 전공의가 그만 둔 이후 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져 버렸습니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환자 수가 급감하였습니다. 이로 인한 충격은 대형 병원의 환자 수 감소, 이로 인한 필요 간호 인력의 정체 및 감소로 이어졌고 이후로는 제약 회사의 매출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는 제약 회사의 매출 감소,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설명 드려야 할 배경이 있습니다. 한국의 의료에서 필수 의료에 사용되는 거의 대부분의 약제의 가격은 정부가 책정합니다. 가격의 책정 과정에는 의사도 참여하지만 과반이 넘는 정부 측 인사로 인하여 거의 대부분 정부가 원하는 가격으로 정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일부 필수 약제는 과도하게 낮은 가격으로 책정되어 생산 비용 이하로 책정된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그동안은 다른 약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정부의 압박도 있어 어느 정도의 공급은 유지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하여 제약사의 매출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넘어가자 적자가 나는 제품의 생산은 완전히

멈춘 상태입니다. 작년 말부터 천식의 치료 및 진단에 사용하는 벤톨린이라는 약의 공급이 거의 중단되었고 이후에는

기도 내 출혈시 사용하는 약의 생산도 거의 멈춰 현재 입원 중인 환자에게는 그 약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지난 달 부터는 천식 및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의 급성 악화시 사용하는 메치솔이라는 약의 공급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것은 호흡기 내과에 대한 상확이고 다른 과에서도 필요한 약제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기초적인 진료 조차 어려운 

상태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 약가에 의사들이 높은 수익을 가져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약들의 생산 비용과 의사 수익과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제약 회사 측에서 이러한 약은 의사들이

안쓰면 안쓸 수록 이익이 더 커지는 약이니까요. 그러면 이러한 약의 가격이 얼마나 하기에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설명드리겠습니다. 

처음 말씀드린 벤토린 흡입액의 경우 1개(2.5 ml) 186원으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필리핀에서는 1000원에 거래되고 있고 호주의 경우 대략 2000원 전후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나이지리아에서도 약 2800원에 공급되고 있습니다. 추가로 말씀드리면 WHO 에서 아프리카에 원조를 위해 공급한 벤토린 흡입개 가격이 390원 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급했던 메치솔이란 약은 만들어 진지 오래된 약으로 지적재산권도 없어 카피약도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보험가 2300원 으로 고정되어 있어 카피약 다 해서 5가지 종류 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미국의 경우 같은 약이 10만 8000원에 공급되고 있고 (사이트에 따라서는 15만원에 파는 곳도 있고 쿠폰 이용하면 3만원에 파는 곳도 있었습니다.) 인도에서는 6400원,

필리핀은 38000원 정도 하고 있습니다.

최근 환율 상승으로 인하여 원료의 수입 가격 마저도 상승하여 이러한 약제의 생산은 더 어려워진 상태입니다.

 

이런 환경으로 인하여 제약회사는 이익이 나는 약제는 생산을 유지하고 적자가 뻔한 약제의 생산은 중단하거나

정부에 생색 낼 만큼의 소량만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시간이 갈 수록 더욱 악화되겠지요.

 

지금 생명을 다루는 과의 의사들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진료 환경 또한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법 리스크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 전에는 후배 의사들에게 바이탈도 하면 할 만하다고, 나쁘지는 않다고 이야기 해 왔지만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은 후배 의사들에게 이 길을 권유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는 큰 소송 없이 의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나 한번이라도 큰 소송이 걸릴 경우 전재산을 잃어버릴 위험이 항상 있습니다.지난 수 년간 월화수목금토 일하고 설이나 추석 연휴에는 당직 서고 1년에 휴가는 6일이 전부 였습니다. 자다가도 응급상황 생기면 한밤에라도 병원으로 갔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도 밤에 응급 상황이 생겨서 1시에 일어나 병원 갈

준비 하니 아이가 아빠가 걱정되서 잠을 못자겠다고 돌아올 때까지 안자고 울먹였다고 하더군요. 지금 손발이 묶인 상태로

환자를 보고 있는 상황에 아이까지 이러니 더 이상 중증 환자를 보는 것에 두려움과 회의감이 오더군요.

 

이제 마무리하자면 현재 필수 의료는 의사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병원에서 환자가 오면 의사가 진단을 하고 치료를 해야 하지만 점차 치료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많아지고 있고

이러한 문제는 이제 전공의 및 의대생이 돌아온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현재의 약제 수가 뿐만 아니라

현재의 의료 시스템 자체가 더 이상 유지 되기 힘든 상태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이후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 모르겠지만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5년, 10년 전과 같은 의료는 지속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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