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한 뒤, 직장에서 친구가 된 녀석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 녀석, 불투명한 유리가 트라우마라고 한다.
회사 기숙사 화장실에 문에 작은 불투명 유리창이 달려 있었는데,
그 녀석이 사비를 내서라도 바꾸겠다고 해서 그 문까지 바꿨을 정도였다.
회식날, 2차에 가서 왜 그렇게까지 불투명 유리를 싫어하냐고 물어봤다.
술에 잔뜩 취한 것 같았는데, 그걸 물어보니 녀석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안 듣는 편이 좋아..]
그런 말을 들으면 역으로 더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나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옛날에는 TV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 많이 했었잖아.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같은 귀신 나오는 거,
병원에서 일하는 주인공 집에, 한밤중 환자 할머니가 찾아오는 이야기가 있었어.]
주변에서도 다들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입원 중이라 찾아오는 건 무리일 텐데.. 어떻게 오셨지? 하는 이야기.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 있던 할머니는 돌아가신 거고,
천국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것 같다는 이야기였어.]
[그거 자체는 별 이야기가 아닌데,
재연 장면의 불투명 유리 너머에 서 있던 할머니 귀신이 엄청 무서웠거든.]
귀 기울이던 주변 사람들은 다들
[에이, 뭐야. 겨우 그런 이야기 가지고?]라며 다들 야유를 보냈다.
[아니, 여기서부터가 진짜 이야기야. 그 후부터 불투명 유리가 신경 쓰이게 돼서,
집에서도, 할아버지 댁에서도 계속 의식하게 됐거든.
그 이후로, 검은 그림자가 보이는 거 같더니 그게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어.]
목욕탕 불투명 유리 너머서도 검은 그림자가 서 있는 게 보여서,
부모님이 불평하는데도 그날부터 절연 테이프를 붙여 가려버렸다고 한다.
할아버지 댁에서도 고집을 부려,
장지문 아래 붙어 있던 불투명 유리를 죄다 갈아치웠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교체한 책받침 정도 사이즈의 불투명 유리를,
[이런 것 하나도 안 무섭다. 한번 보렴.] 하며 그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그 녀석도 용기를 내서 큰맘 먹고 유리를 눈 가까이 대고 살펴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유리 너머 크고 작은 그림자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더라고..
깜짝 놀라서 그만 유리를 떨어트려 깨버리고 말았어.
그것들은 유리 너머 서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어서 유리를 바라보면 보이는 거야..]
순간 주변이 싸늘해졌다가,
함께 듣던 선배의 [잘 지어낸 이야기구만! 너 괴담에 재능이 있네.]라는
웃음과 함께 분위기가 돌아왔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참고 있었기에, 나는 곧바로 화장실에 갔다.
그랬더니 화장실에는 마침 불투명 유리로 된 작은 창이..
아무래도 알아차리면 안 되는 모양이다.
나한테도 뭔가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