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의 아버지는 김용택은 대한민국 제2호 경제학 박사이자 미군정시절 재무부장(재무부 장관) 대리를 지낸 바 있다.
김용택은 1907년 군산에서 무역업을 하는 김홍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홍두는 구복동(현 중앙로 2가)에서 천일상회를 운영하며 군산부 협의회 위원과 군산상공회의소 의원을 지냈으며 군산 노동공제회 초대 회장, 신간회 군산지회장, 교육후원회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이자 사업가로 지역에서 명망 높았던 인물로 알려졌다.
김용택은 군산 공립보통학교(현 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유학, 보성중학교, 일본 명치 대학, 미국 미시간주 호프 대학을 거쳐 1937년 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북미 유학생총회 이사장과 총회장을 겸했던 김용택은 중국 상해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광복 후 대학 시절 가깝게 지내던 미국인 추천으로 재무부장 자리에 오른 그는 청렴성과 깔끔한 업무수행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제1공화국 시절인 1952년 2월 사회부 차관에 발탁된다.
김용택은 1967년 공화당을 탈당 후 서울시 중구 회현동 집을 정리한 후 은평구 응암동에 판잣집을 마련했으며 1984년 7월 16일 철거를 앞둔 여섯 평짜리 판잣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김혜자의 아버지는 김용택은 대한민국 제2호 경제학 박사이자 미군정시절 재무부장(재무부 장관) 대리를 지낸 바 있다.
김용택은 1907년 군산에서 무역업을 하는 김홍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홍두는 구복동(현 중앙로 2가)에서 천일상회를 운영하며 군산부 협의회 위원과 군산상공회의소 의원을 지냈으며 군산 노동공제회 초대 회장, 신간회 군산지회장, 교육후원회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이자 사업가로 지역에서 명망 높았던 인물로 알려졌다.
김용택은 군산 공립보통학교(현 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유학, 보성중학교, 일본 명치 대학, 미국 미시간주 호프 대학을 거쳐 1937년 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북미 유학생총회 이사장과 총회장을 겸했던 김용택은 중국 상해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광복 후 대학 시절 가깝게 지내던 미국인 추천으로 재무부장 자리에 오른 그는 청렴성과 깔끔한 업무수행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제1공화국 시절인 1952년 2월 사회부 차관에 발탁된다.
김용택은 1967년 공화당을 탈당 후 서울시 중구 회현동 집을 정리한 후 은평구 응암동에 판잣집을 마련했으며 1984년 7월 16일 철거를 앞둔 여섯 평짜리 판잣집에서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