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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인을 배신했다...

여섯줄의시. 작성일 22.05.18 15:55:29
댓글 24조회 12,319추천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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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여섯줄의시.의 최근 게시물
  • 3
    국방tV 보니 6.25발발 몇개월전에 국공내전이 끝난 상황이라 미국은 중공이 참전을 안 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자유대만이 6.25 참전의사를 밝혔음에도 니들이 참전하면 중국도 참전한다. 하면서 말렸는데
    덜컥 통일을 앞둔 시점에 중국이 참전을 했지요.
    사실 미국에 오판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때 맥아더의 뜻대로 중국에 원폭 투하했더라면
    대만이 참전해서 대륙으로 밀고 올라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쓸데 없는 생각도 잠시 해봅니다.
  • 3
    반대로 북한을 아예 없애버렸다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렸을지도 모르죠.
  • 0
    그저 존경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 마음열기22.05.18 15:59:07 댓글
    0
    그저 존경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 아나이런22.05.18 16:06:24 댓글
    0
    근데 휴전 안했으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ㅠㅠ
  • 아리랑동동222.05.18 17:08:19 댓글
    3
    반대로 북한을 아예 없애버렸다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렸을지도 모르죠.
  • 비주22.05.18 21:26:55
    0
    @아리랑동동2 북한을 없애버리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어차피 만주에 완충지대를 만들 생각을 했으니까...

    김일성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상관없이 만들었을 겁니다.

    한반도에 필요한 건 미국, 서유럽과 소련, 중공 등 강대국들에게

    말을 잘듣는 허수아비같은 정권이 필요했을뿐입니다.


    애시당초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독일처럼 나눠놨어야 했는데 그걸 나누지 않은 게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이며,

    북한군이 쳐들어올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애치슨 선언을 하면서 뒤로 물러난 게 미국입니다.


    그리고 밑에 글에도 게재를 했지만 중공군은 경고를 했고, 맥아더는 축소보도하거나 오판을 해서 계속 밀리게 됐습니다.

    휴전을 하지 않았으면.. 전쟁은 더 확대되고, 주변국들은 더 많이 개입했을 테고..

    일본은 더 큰 부자가 됐겠죠..
  • 푸우로도나리22.05.18 17:37:19 댓글
    1
    역으로 생각하면 당시에는 대륙간 탄도는 없던 시절이라... 핵투발 수단이 폭격기 말곤 없던 시절이라... 그냥 베이징이랑 북한 인접 지역에 핵투발 했으면 쉽게 끝났을 수도...
  • 비주22.05.18 21:34:23
    1
    @푸우로도나리 밑에도 글을 썼지만 이미 전쟁 이후인 쑥대밭된 상황이라서 원자폭탄 몇개로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맥아더가 요청한 건 한반도에 원자폭탄 34개

    과연 남한까지 영향이 없을까요?

    어차피 한반도란 땅은 중국에게 있어서 인접한 영역일분... 인구도 많아서 영향이 없을 테고, 소련은 핵실험에 성공했으니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고,

    그게 아니더라도 한반도에는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 되버리겠죠.

    무엇보다 그이후의 미국은 전쟁국가, 핵무기 이미지만 남게 될 겁니다.

    당시에 동맹국들과 미국 내부조차 원자폭탄 반대했으니까...

    쉽게는 끝나겠죠.. 한반도에 사람이 거의 없을 수도 있으니까..
  • 술푸지오22.05.18 16:09:34 댓글
    1
    당신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 귀여운배22.05.18 16:34:01 댓글
    0
    ㅊㅊ
  • 알렉산더22.05.18 16:55:22 댓글
    3
    국방tV 보니 6.25발발 몇개월전에 국공내전이 끝난 상황이라 미국은 중공이 참전을 안 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자유대만이 6.25 참전의사를 밝혔음에도 니들이 참전하면 중국도 참전한다. 하면서 말렸는데
    덜컥 통일을 앞둔 시점에 중국이 참전을 했지요.
    사실 미국에 오판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때 맥아더의 뜻대로 중국에 원폭 투하했더라면
    대만이 참전해서 대륙으로 밀고 올라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쓸데 없는 생각도 잠시 해봅니다.
  • 볼텍스가우리22.05.18 17:28:49 댓글
    0
    원폭을 사용했더라면...

    당시에는 몰래 참전했던 소련이 대놓고 참전해서 3차 대전...

    후대에는 방사능 문제...

    만약은 없지만...선택이 쉽진 않죠
  • 리처드펄22.05.19 07:07:50
    0
    @볼텍스가우리 평양에떨궛으면 우리도피해입어요 베이징에떨궈도한국도피해입음 방사능이 바람타고 바닷물타고 옵니다......
  • 비주22.05.20 05:51:51
    0
    @볼텍스가우리 ‘적의 주요 보급로에 원자력 방사능 폐기물을 설치해서 만주 지역과 한반도를 영원히 분리하겠다’는 구상이 들어가 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생각이었다.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6506.html


    ■불바다가 될 뻔한 평강고원

    평강이 바로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핵무기 공격의 가상표적이었기 때문이다. 즉 미 국방부는 미 극동군 사령부와 긴밀한 협의 끝에 ‘지상군 근접지원 핵무기 긴급사용(Emergency Use of Atomic Bombs in Close Supports)’을 수립했다.

    그런데 1951년 9월15일 극동군사령부가 작성한 문서에는 원폭 투하목표를 나타낸 지도가 첨부됐는데, 그 목표가 바로 강원도 평강지역이었다.

    https://m.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1209050950471
  • 치맥곰22.05.18 17:54:31 댓글
    0
    장제스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싶은 이유는 전쟁을 확전해서 3차 세계대전으로 끌고 가고 싶었다고 봅니다. 그래야 국민당이 중국 본토에서 미국 지원 받아 다시 싸울 수 있었을테니까요.

    미국 입장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됬는데 다시 세계대전을 치룬다는게 경제적이나 정치적이나 부담이 컸겠죠.

    게다가 유럽은 2차 세계대전으로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이제 복구하고 있어 유럽에 돈 푸는 중이기도 하였구요.

    개인적으로 서울 수복 후 바로 38선을 넘지 않은 점, 연합군을 둘로 쪼개서 북진한점, 중공이 참전 의사를 밝혔음에도 무시한 점, 만주 지방에 중공이 집결함을 알았어도 방어선을 재정비하지 않은 점이 패착요인이라 봅니다.

    당시 인민군도 5만도 안남아서 거의 북한이 와해 직전이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청천강까지 후퇴하고 방어선을 구축해서 버티는 전략을 썼다면 평양이 부산에 버금가는 도시로 발전해 있겠네요
  • 스피드러너22.05.18 19:43:21
    0
    @치맥곰 당시 장제스의 전략은 한반도전쟁에 참여해서 확전을 원했기 때문이죠.
    일단 한반도 내에 들어온 미 주력군을 이용해 중국 참전을 유도하고 같이 밀고 올라가 자신들은 만주부터 스타트를 끊으려고 했었습니다. 자신들이 만주까지 올라갔다는건 한국에 소련을 견제할 미군이 있다는거고 이미 그시점은 중공군은 쑥대밭이 되어 있다는 뜻이니까요. 미국이 x까고 니들은 좀 가만히 섬에서 짱박혀 있으라고 했으니...ㅋㅋㅋㅋ
  • 비주22.05.18 20:14:44 댓글
    1
    북한이 쳐들어올 것은 미국이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과 중공, 소련에 미국 간첩, 스파이가 많았고, 정보를 계속줬으니까..

    그런데 느닷없이 애치슨 선언을 하면서 미군을 다 빼버렸죠.

    북한이 쳐들어올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된 무기조차 남겨주지 않고 가버립니다.
    북한은 남한을 포기하란 신호로 받아들여서 쳐들어 갑니다.

    이승만은 물러나지 않는다고 거짓말하면서 다리 끊고, 대전에서 대구까지 도망갑니다.

    그런데 대구로 갔던 이승만이 다시 대전으로 갑니다.
    맥아더가 대구로 가지 말고, 대전으로 다시 가라고 했기 때문이죠.

    이때도 한반도에 미국이 참전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공산화될 거란 우려가 나오면서
    한국 전쟁에 참전합니다.
  • 비주22.05.18 20:27:48 댓글
    1
    미국은 중공이 참전을 안 할 것이라고 믿었다? 조선일보에서도 보도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맥아더가 중공군 개입 가능성 무시하고 北進한 이유 밝혀지다!

    맥아더, 중공군 끌어들이려고 트루먼에 허위 보고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후 유엔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元帥)는 전략가로서 그의 명성에 금이 가는 실수들을 되풀이했다. 북진(北進)하는 미군의 지휘권을 8군(서부전선)과 10군단(동부전선)으로 나누었고, 양자 간에 공간이 발생하도록 해 중공군이 그 빈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만들었다.

    .

    .

    1950년 10월 하순 중공군이 한국군을 표적으로 삼아 대규모 기습을 하였는데도 맥아더는 중공군 개입 규모를 실제의 10분의 1로 축소, 전면적 개입이 아니라는 보고를 하였는데, 이는 오판이 아니라 의도된 허위 보고일 가능성이 높다.

    전면적 개입을 하였다고 보고하면 워싱턴에서 북진을 중단시킬 것이기 때문에 축소 보고를 하고는 11월 말의 크리스마스 공세를 명령, 미군과 중공군이 본격적으로 대결하는 상황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야 워싱턴에서도 맥아더에게 원폭 사용 권한을 주고 중국 본토를 공격하도록 허용할 것이라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10월의 중공군 개입을 몰랐다는 것은 정보 오판이지만, 중공군의 개입 규모를 엄청나게 축소 보고, 대공세를 재개하여 대재앙을 부른 것은 범죄적 행동이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509100025
  • 비주22.05.18 20:39:19 댓글
    1
    6·25 때 만주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면 01 (기사 인용)

    미군은 패배했다. 압록강에서의 참패는 인천상륙작전의 승리를 덮을 만큼 컸다. 결국 한국전쟁의 솜씨 좋은 구원투수, 매슈 리지웨이 장군이 8군의 지휘권을 이어받았다. 리지웨이는 한국전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돌려세웠다. 그는 중공군에 쫓겨 서울을 다시 내주면서 황급히 도망치던 국면을 일시에 정비하고, 한반도의 허리에서 팽팽한 교착 국면을 이어갔다. 리지웨이의 승리는 맥아더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맥아더는 또 다른 전쟁에 승부를 걸었다. 트루먼과의 마지막 일전이다. 맥아더는 1951년 3월24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또다시 중국을 모욕했다. 입버릇처럼 하던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점이 좋지 않았다. 그 발언은 조심스럽게 중국과 평화협상을 모색하던 트루먼 행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얻는 결과를 가져왔다.

    트루먼은 맥아더의 해고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명분은 맥아더가 제공했다.

    .
    .

    맥아더와 공화당이 간과한 것이 있다. 미국 국민은 아시아에서 더 큰 규모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맥아더와 공화당은 그것을 몰랐다. 사흘 내내 이어진 청문회는 맥아더의 오판과 독선, 그리고 자기과시의 면모를 들춰내는 계기가 됐다. 워싱턴의 합동참모, 국방부 고위 관료, 한국전쟁 참전 관계자들 모두 맥아더의 오판으로 압록강에서 당한 쓰라린 패배의 기억을 강조했다. 맥아더는 청문회에서 장제스의 군대가 “약 50만 명의 정예부대”이며 전투력 면에서 “중국 공산군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런 주장에 수긍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맥아더는 결국 졌다. 트루먼은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남긴 반면, 맥아더는 1952년 공화당 경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잊혀진 사람’이 됐다. 대통령은 그의 부관 출신이면서 언제나 맥아더가 가진 반대의 덕목을 지녔던 아이젠하워에게 돌아갔다. 노회한 장군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 비주22.05.18 20:42:12 댓글
    1
    6·25 때 만주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면 02 (기사 인용)

    한국전쟁 당시는 1949년 8월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을 한 이후였기 때문에, 핵전쟁의 공포도 무시할 수 없었다.

    .

    맥아더가 1951년 2월11일 워싱턴에 보고한 내용에는 ‘적의 주요 보급로에 원자력 방사능 폐기물을 설치해서 만주 지역과 한반도를 영원히 분리하겠다’는 구상이 들어가 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생각이었다.

    .

    .

    물론 원자폭탄은 끝내 투하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만약 투하되었다면, 맥아더 신봉자들의 생각처럼 한국전쟁의 조기 승리로 이어졌을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동북아 정세, 전쟁에 대한 중국의 인식,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보면, 원자폭탄은 중국의 전쟁 의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인도 총리 네루를 만났을 때는 “중국 인구가 얼만데”라며 미국의 원자폭탄을 ‘종이호랑이’로 비유했다.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패배의 조종이었지만, 만약 중국에 떨어졌다면 그것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알렸을 것이다.

    무엇보다 스탈린의 생각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스탈린은 어떻게 해서든지 3차 세계대전을 피하려 했다. 전후 소련 체제의 안정과 미국과의 국력 격차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6506.html
  • 비주22.05.18 20:46:24 댓글
    1
    원자폭탄 ‘불바다’ 될 뻔한 한국전쟁

    사실 원자폭탄의 사용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미국은 수없는 갈등 끝에 원자폭탄의 사용을 포기했다.

    트루먼은 훗날 “2500만의 무고한 비전투요원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고, 전쟁을 세계대전으로 확전시킬 의도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트루먼으로서는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이어 3번째로 원폭투하를 결정한 지도자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피했을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우선 당시 미국이 보유한 369개의 원자폭탄은 원래 소련과의 전면전을 위해 비축해놓은 것이었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중국과 북한을 상대로 투하할 재고의 여력이 없었다. 또 하나 한반도와 중국 만주지역에는 적절한 핵공격 목표물이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핵공격의 주된 용도는 원래 (소련의) 도시나 산업지역 등을 공격하는 전략폭격이었다. 하지만 북한에는 산업기반시설이 부족했던 데다, 공학계일각에서는 북한 핵공포의 시발을 ‘한국전쟁’으로 보고 있다. 전쟁 후에도 북한은 전국토의 요새화로 핵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산군이 주로 산악지대를 이용해 공격했기 때문에 원폭의 목표를 설정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만약 적절한 목표물이 없이 핵공격를 가한다면 결정적인 전과를 얻을 수 없다. 한반도 등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는데도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하면 그야말로 큰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소련에게 ‘핵무기 별 것 아니네’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고. 그 경우 유럽은 소련의 위협을 감당할 결정적인 무기를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핵무기를 잘못 투하할 경우 소련의 자동 개입을 불러올 수 있었다. 이는 제3차대전의 개막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트루먼은 소련과의 전면전, 즉 3차대전을 피하고 한국전쟁을 제한전으로 국한시키려 핵무기 사용을 자제한 것이다.

    https://m.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1209050950471
  • 비주22.05.18 20:50:17 댓글
    1
    '원자탄 투하' 고려

    미국이 그들의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전쟁에서 가장 큰 뼈 아픈 패배를 당하자 트루먼 대통령은 비장의 카드를 뺐다. 그는 기자 회견을 통해 한국전쟁에서 원자탄 사용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한국전쟁은 자본주의 진영 대 사회주의 진영 간 국제전으로 비화,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그러자 세계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대부분 나라들은 미국의 원자탄 사용계획을 비판할 뿐 아니라, 미국 국내에서조차도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 미국 다음으로 한국전에 많은 지상군을 파견한 영국도 미국의 원자탄 사용계획에 적극 반기를 들었다. 영국 수상 애틀리는 화급히 워싱턴을 방문해 트루먼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방어선을 유지해 전쟁의 확산을 방지하면서 명예롭게 전쟁을 종식시키는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그러면서 한반도에서 결코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을 것임을 재차 확인하고, 유엔의 후원 하에 휴전을 모색키로 합의했다

    이러한 합의 배경에는 당시 미국의 주적은 소련이었기에 중국과의 전쟁에서 힘을 소비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미국은 당시 일본방위를 위해 주한미군의 전력을 보존해야 한다는 등의 요인도 있었다

    마침내 미국은 전 세계적인 반대 여론과 그 무렵 소련의 핵무기 보유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정보에 그만 한국전에서 원자탄 사용 카드를 접지 않을 수 없었다

    .

    .

    맥아더는 불명예 퇴진했다. 지금도 그때의 전황도, 상대를 모르는 국내 일부 극우 인사 가운데는 당시 맥아더의 원자탄 투하 주장이 옳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만일 그때 미국이 맥아더의 건의대로 원자탄을 사용했더라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돼 오늘의 우리들 대부분은 생명을 부지치 못했을 것이다. 설혹 그 틈바구니에서 용케 살았더라도 원자탄 피폭 후유증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신음하고 있을 테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31428
  • 비주22.05.18 21:03:09 댓글
    1
    중국은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자 이렇게 경고했다. “중국의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 중국 인민은 미국의 침략전쟁에 맞서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10월9일) 경고는 계속됐다. 북진이 계속되자 중공군은 평양 함락 즈음부터 30만 대군을 평안북도 동북부 산악지대와 함경도 개마고원 일대에 포진시켰다.

    맥아더는 이를 무시하고 동부전선에서 10월10일 원산, 17일 함흥과 흥남을 점령했고 서부전선에선 19일 평양을 점령했다. 26일엔 한국군 6사단 선발대가 압록강변 초산에 이르렀다. 북한 정권의 임시수도인 평안북도 강계만 점령하면 전쟁은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야전군과 미국 중앙정보국, 군 정보기관은 중공군의 전면적 개입을 거듭 경고하고 있었다.

    결국 10월26일 평안북도 동북지역에서 중공군의 대공세가 시작됐다. 미 1군단과 한국군 2군단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청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중공군 포로를 통해 중국의 전면적인 개입이 확인됐지만, 맥아더 사령부는 외면했다. 중공군은 열흘 남짓의 공세 뒤 슬그머니 사라져 맥아더의 오판에 날개를 달아줬다.

    사라진 중공군은 퇴각한 게 아니었다. 13병단의 18만여명은 다시 적유령산맥에, 9병단 12만여명은 장진호 및 개마고원 일대에 매복하고, 미군이 포위망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맥아더는 11월24일 다시 대규모 압박포위작전의 개시를 명령하면서 ‘크리스마스까지 전쟁을 끝내겠다’고 언론에 공언했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서부전선의 미육군 1, 9군단과 한국군 2군단은 일찌감치 중공군의 2차 공세에 치명상을 입고 38선 이남으로 퇴각했다.

    12월11일 죽음의 계곡 남단 중흥리를 빠져나오기까지 해병 1사단은 무려 7294명의 사상자를 냈다. 미군 전사는 ‘역사상 가장 고전한 전투’로 기록했고,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진주만 피습 이래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라고 평가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0719.html
  • 비주22.05.18 21:16:33 댓글
    0
    중공군은 처음부터 계속해서 경고를 했는데.. 참전 안할 거라고 믿었다는 건 종교인 건지..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는 중공군 참전을 애써 무시하거나 축소 보도하면서 밀리게 되었으며,

    이를 타개하고자 원자폭탄 34개를 요청했습니다. (일본처럼 1,2개만 터트렸다면 큰 효과는 없으니까..)

    만약 원자폭탄을 투하했더라면.. 북한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쑥대밭이 됐을 것이며

    정작 중국은 땅도 거대하고, 인구도 많아서 한반도의 원자폭탄엔 별 영향도 없고,

    북한은 이미 초토화된 상태라서 일본과 달리 항복할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 달라질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소련이 적극 개입하게 되고, 동맹국들조차 반대했으니 미국의 위치는 매우 안 좋아졌을 겁니다.

    자칫 제3차 세계대전까지 확전될 가능성이 컸고.

    적어도 동북아 전체로 더 확대됐을 것이며,

    최소한 한반도에선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 됐을 겁니다.

    일본만 더욱더 강성해질뿐...
  • 볼텍스가우리22.05.20 00:51:57
    2
    @비주 맥아더라 생각한 원폭 투하지는...한반도가 아니라

    만주와 북경 이었음.
  • 비주22.05.20 05:56:12
    0
    @비주 볼텍스가우리//윗글에 뉴스에 한반도라고 수도없이 나오는데..
    한반도가 아니란 건 무슨 근거인 건지...

    당시 중공군이 한반도, 만주에 있어서 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원자폭탄을 한반도에 떨어트리려고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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